(李?, ? ~ 198년). 자는 치연(稚然).
후한 말 동탁의 수하 장수이자 군벌. 삼국지의 등장 인물. 곽사와 1+1
양주 출신으로 동탁의 수하. 정사 삼국지에서는 첫 등장이 이렇다. 손견이 호진을 개쳐발라 버리고 화웅을 사살하자 동탁이 이각을 손견의 사신으로 보내서 손견과 화친을 맺도록 조치했다. 그 조건은 아들들에게 자사나 태수의 직책을 준다는 것. 그러나 손견은 역적과 같은 편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동탁과의 화친을 거절했다.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한 이후 낙양에 남아 주둔하던 주준은 원술과 내통하던 것이 발각되어 형주로 도망쳤는데, 형주에서 세력을 키운 뒤 다시 낙양을 공격해 동탁이 임명한 하남윤 양의[1]를 죽이고 사예에 주둔하고 있었다. 동탁은 이각을 보내 이를 공격하게 했는데 이각은 주준을 격파한 뒤 형, 예주 일대의 백성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고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이때 영천군의 주민 대다수가 이각에게 죽었다고 한다.
또 당시 동탁에게 살해된 소제의 황후이던 폐황후 당씨(당희)가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가던 중 영천군에 쳐들어온 이각의 청혼을 받았는데 당희가 이를 거절하여 이각에게 살해당했다. 다만 당씨의 경우 이 때 거절했지만 이각한테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훗날 헌제에 의해 보호받아 천수를 누렸다는 상반된 기록도 있다.
동탁이 죽었을 때 채옹 등이 왕윤에게 살해당했지만 이각은 그나마 동탁이 본의 아니게 물려준 병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왕윤에 의해 압송당하는 것만은 모면했다.
동탁이 죽자 잘못을 빌며 사면을 청하지만, 왕윤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사면이 어렵게 되자 군사를 해산하고 도망치려 했다가, 어차피 죽을 거 반격이라도 해보자는 가후의 제안을 받자 생각을 바꿔 양주인들을 선동하며 마침내 왕윤을 죽이고 여포를 내쫓고 헌제를 옹립하여 권력을 잡았다. 그 후 거기장군, 개부, 영사예교위, 가절, 지양후의 관직을 얻고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대사마까지 얻었다.
이때 연의에서는 가후의 책략 덕분에 여포를 격파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양주에서 군사를 모으고 여포를 격파하여 장안을 점령한 것은 이각, 곽사의 활약+왕윤의 자멸성 행보 탓이 크다.
그리고 후한기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헌제는 자신의 형인 소제를 독살시킨 죄를 물어 이유를 참수형에 처하려고 했으나, 이각이 나서서 헌제를 윽박지르며 "동탁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잘못을 저지른 불쌍한 노인네를 왜 굳이 죽이려 한단 말이오!"라고 일갈하며 이유의 참수를 막았다. 이유는 이각 덕에 목숨을 부지하긴 했으나 헌제의 권위는 더욱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흔히 곽사와 함께 찌질세트로 취급되고 실제로 이각이나 곽사나 정치에 대한 개념이 뇌 속에 전혀 들어있지 않은듯 찌질행보가 극을 달리지만 군사적 능력만큼은 진퉁이었다. 연의나 코에이 삼국지의 영향력으로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지만 동탁은 그 시기 가장 강력한 군벌이었고 그 휘하 핵심무장은 호위직 전전하던 여포가 아니라 이들이었다. 여포를 격파해 장안을 장악한 후 장안에 쳐들어온 마등, 한수를 물리쳤고, 마등을 지원한 유언도 패퇴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연의의 피해자 중 한 명.
이때 자기들과 같이 왕윤에게 대항했던 번조가 고향 친구인 한수와 싸우다가 정 때문에 놔줬다는 이유로 번주를 주살한다. 세력 싸움에서 밀린 장제 역시 장안에서 나와 홍농에 주둔했으므로 장안은 이각, 곽사의 세상이 된다.
원소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두려워하여 원술, 공손찬, 도겸, 장연 등에게 작위를 주는 회유책도 썼다. 장제가 홍농으로 간 이후 곽사와 함께 장안을 분할하여서 통치하였는데, 통치력이 전무한 수준이라, 병사들로 하여금 도적을 잡게 하기는커녕 마음대로 하게 놔둬서 사람들이 도적보다 병사를 더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여러 막장행정으로 인해 결국 식량가격이 폭등하여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등 장안의 상태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당시 장안에는 30만 호가 살고 있었는데 이각,곽사가 다스리는 단 2년 동안 이 사람들의 대부분이 죽었다고 한다. 흠좀무...
이후 곽사와 사이가 틀어져서 싸우던 도중 헌제가 도망치자 다시 화해하여 헌제를 쫓는다 이에 헌제가 다른 군벌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헌제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지만, 이각과 곽사는 홍농군 조양현에서 이들을 철저히 격파하고 다수의 백관들을 살해한다. 헌제가 가까스로 추격에서 벗어나 황하를 건너 달아나자 이각, 곽사도 그다지 추격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헌제가 사절을 보내 강화를 제의하자 약탈품 몇 개를 돌려보내기도 한다. 정치적 식견이라곤 먹고 죽을래도 없던 이각, 곽사의 생각에서는 "아늑한 장안 놔두고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밖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정도의 계산이었던 듯.
그렇게 장안으로 돌아가지만 황제가 없는 이상 대사마니 대장군이니 하는 걸 인정해줄 사람은 없었고, 황제라는 구심점을 잃고 내부의 반란이 들끓어 점점 세력이 약해지자 결국 도적으로 전락해서 조조의 부하인 단외와 배무라는 무장들에게 삼족이 멸해졌다.
전투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외의 능력이 너무 형편없어 자기 분수도 모르고, 사람들을 다스릴 줄도 몰라 눈 앞의 욕망에 탐닉하다 패망한 케이스다. 만약 이들이 뛰어난 재능은 둘째치고 적어도 최소한의 통치 능력을 갖추고 서로 의심하는 막장짓만 안했어도 삼국지의 판도는 완전히 변했을 것이다. 연의의 영향으로 장제와 번조를 합쳐서 4인세트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질적인 힘이나 발언권은 이각, 곽사가 훨씬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헌제를 손에 넣은 후 관직을 요구하는 부분인데 이각, 곽사가 각각 대사마, 대장군 직을 요청한 것과 달리 장제와 번조는 그보다 격이 낮은 표기장군과 우장군 직위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