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199년 즈음 태어나 이후 언제 죽었다는 기술은 정사에 없으나 연의에선 234년 오장원 전투에서 패해 전사하였다.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무장.
아명은 아소(阿蘇), 자는 원명(元明)으로 병주 신흥군 운중현 출신이다.
아명 때문에 어릴 때는 진소라고 불렸다. 진의록과 두씨 사이에서 나온 아들로 두씨를 조조가 가져갔기 때문에 조조밑에서 길러진다. 하안과는 불알친구라고 한다.
별로 한 일도 없지만 제후들과 같은 곳에서 껴서 놀아도 조조와 조비에게 책망 받는 일이 없었다고 하며, 조예가 즉위하자 표기장군 급사중이 되어 조예를 호위했다. 조예가 사람의 작은 흠집을 파헤친 다음에 그 죄목으로 죽이는 걸 좋아해 사람을 마구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진랑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조예가 좋아해 아명으로 부르면서 수도에 큰 집을 지어주고 온갖 금품을 내렸다고 한다.
진랑은 아무런 능력치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황제와 친하단 이유로 온갖 뇌물을 받아먹으니 공이나 후에 비하 정도로 재산이 많아졌으며, 233년에는 가비능, 보도근를 무찌르러 출발해 전투 하나를 승리로 이끌고 보도근 휘하의 설귀니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귀환했다.
234년에 오장원 전투에서 2만을 이끌고 원군으로 참전했으며, 237년에 온갖 악독한 짓을 하자 유방(한고조가 아닌 삼국시대 인물)과 손자(마찬가지로 삼국시대 인물)가 상소해 조우와 함께 면직된다. 이후 기록은 없어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그의 아들로는 진수가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오장원 전투에만 등장해 촉에 거짓 항복한 정문이 진랑의 동생 진명을 죽이고서 진랑을 죽였다고 하는 것 때문에 제갈량에게 거짓항복이 들키자 오히려 제갈량에게 모든 것을 불어 진랑은 사마의와 함께 야습했다가 촉병의 복병에 걸려 화살을 수십발 맞고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