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적으로 말하자면 시위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온 기분이었습니다.
제 경우엔 사람 붐비는 것을 많이 싫어하고 열광해있는 군중들 사이에 섞이는 것도 꽤 싫어하는편입니다만 지난 11월 12일 충정로에서 시위 참여하는 사람들을 멀찍이서 봤을 때의
부채감과 캥김, 그리고 박근혜 정권과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 잔 위로 차오르다보니 결국 다녀오게
됬습니다. 어쩌면 “다들 분노한 것 같지만 그래도 광화문
다녀온건 우리중 XX뿐이다 ㅋㅋ” 라고 냉소적으로 비웃던
한 친구 덕에 다녀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본인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도 다 관심없는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절 포함해서 이미 다른 친구들 몇몇이 광화문에 짧게나마 다녀왔었지만 정치 관심
없는걸 알고 그 친구 앞에선 다들 별 이야기 안꺼냈었거든요. 그 친구의 말 한마디가 제 오기 비슷한
뭔가를 건드렸나 봅니다.
근데 일전에도 짧게 다녀왔었고 26일 당일엔 종일을 비가 드문드문
내리는 거리를 돌아 다녔지만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는 절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어느정도 갖고있던건 분명히 알겠는데 그 군중 사이에 제가 섞이진
못하겠더라구요. 사람들 중엔 여러 구호를 뜨겁게 외치는 분들도 많았지만 제 경우엔 그냥 시위 한 중간
까지도 마음이 많이 가라앉아있었고 축 쳐져 있었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현 정권의 문제같은건 어찌보면
병든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독 표가 나는 꼬리였을뿐, 정말 깨끗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단순히 다음 정권의
탈환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인 시민들부터가 각성해야하고 긴긴 시간동안 흐려진 물을 맑게 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이런 거시적 관점을
제가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저 역시 결국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짧고 유한한 삶을 사는 사람 한명일 뿐이고 그래서 스스로 가끔씩 탈력감, 무기력함을 느끼곤 하거든요.
그 탈력감과 무기력함을 해소하고자, 또 딱히 애국 차원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각자 희생하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때 적어도 그 변화에 무임승차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하고 다녀오긴 했는데 다녀오고 나서 오히려 더 심한 피로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회의적, 비판적으로 보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게 더 도진 것 같아요. 누가 뜨겁게 구호 외치면서 후창 해달라고 할때도 잘 따라주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라 이런 문화 자체에 벽을 느낀 것 같기도 하구요.
어제 박근혜 담화문을
보고서 기가 차고 화가 치밀어오르긴 했지만 아마 다음주에 제가 광화문을 다시 다녀올것 같진 않습니다. 안타까운건
그렇다고 다음주 토요일에 집에서 누워 쉬거나 딴짓을 하며 놀더라도 그저 속편하고 별 생각없이 시간 보낼 자신도 없다는 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