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에서 두마리 9천원 통닭을 사와 부모님께 드립니다.
부모님은 닭이 싸다면서 드시다가, 과거 어머니가 닭장사 하던 시절을 이야기하더니
점점 시점은 과거로 흘러가 온갖 추억담을 꺼내십니다.
대부분 한번씩은 들어본 이야기였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바로 행운을 몰라보셨었던 이야기들입니다.
1. 봉천동 분양받은 40평 4000원 매각
아버지 20살 시절. 맨주먹으로 서울로 상경해서 용접일 하시고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하숙집으로 아예 주소지를 등록하셨는데, 당시 봉천동에 신규 택지 분양인가 뭔가 하는 일이 있어서 옆방 사람 따라 응모했더니 되셔서 가보니 황량한 벌판에 코딱지만해보이는 땅에 밧줄쳐놓은거 보고 실망해서 4천원에 팔았다고 하십니다.
(당시 아버지 일당 800원)
2. 가락시장 점포 4천원에 분양받아 3천원에 매각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신 둘째 고모와 서울에서 힘을 합쳐 살다가 둘째 고모님이 아버지는 공장일 하는데 본인 스스로도 뭔가 해야겠다 싶어서 가락시장 점포를 분양받았다고 합니다.
근데 장사에 영 수완이 없고 아버지 보시기에 미래가 없어보여서 팔았는데, 그 당시엔 아무도 안사가서 고생고생 하다가 가격을 3천원으로 낮춰서 겨우 팔았다고.........
어머니는 큰 한 숨을 쉬십니다.
번외. 울산 아가씨 청혼
현대 울산공장에서 일하실 당시, 하숙하던 집의 고등학생 아가씨가 아버지를 그렇게 쫓아다녔다고, 서울 데려다 달라고 아버지는 당연히 [어린애가 제정신이냐] 라며 호통을 쳤고, 아가씨는 졸업하면 시집가겠다고 쫓아다녔는데 아버지가 무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 아가씨 울산에 꽤 많은 땅을 가진 지주 할머니의 외동손녀였다고 하더군요.
이건... 제가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니 아쉬운 점에서 제외.
이런걸 생각하면 신은 나름 우리 집안에 최선을 다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먼 과거의 일이지만요
거기에 외식하러 갈때마다 어머니가 아휴 그때 샀으면 10배는 올랐을텐대 라면서 한숨을 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