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잠을 잘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평소 생활대로 1시쯤 잠을 청해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는 평범한 하루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수 같은 가을의 늦은 모기들은 찾아온 추위를 피해 따뜻한 집 안으로 날아들었고, 추위를 피하니 뒤늦게 허기를 느낀 모양입니다.
모기 7마리가 30분에 한 번 꼴로 덤벼드는 바람에 저는 계속 이제 끝이겠지 이제 끝이겠지, 해치웠나
를 반복하다가 뜬눈으로 새벽 4시반을 맞이하고야 말았습니다.
전부 해치우고 한동안 더 나오나 나오지 않나 기다리다가 이젠 잠을 청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이 이른 출근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잠은 확 깨버린지 오래고, 다시 점을 청해봐야 겨우 2시간으로는 피로만 더해질게 분명했으니까요.
아기 방에서 곤히 잠든 딸과 와이프를 두고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 새벽 첫 차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나갑니다.
첫차이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이 이른 출근을 준비하는지 버스 안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앉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저도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두 눈을 감고 짧은 잠을 청합니다.
이어폰 볼륨은 최대한 작게 해놓았습니다.
출근시간대는 혼잡해 막히기도하고 천천히가기도하고 하면서 충분히 늦게 가지만 새벽 버스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할테니 안내음성을 놓치면 낭패입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잠이들지 않는게 좋지만, 잠을 부르는 버스의 공기가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잠든지 얼마나 지났을까 제 잠을 깨운건 버스의 안내방송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버스 기사와 그 뒷자리에 탑승한 아주머니의 말다툼 때문이었습니다.
즉시 창밖을 확인하고 목적지에 거의 다왔다는 사실에 안도한 저는 이번에는 새벽에 다른 사람들의 숙면을 방해하면서까지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사람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어폰 볼륨을 최소로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말소리는 음악소리를 뚫고 거슬릴 정도로 귀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저리 시끄럽게 하는지, 좀 조용히 하라고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에 이어폰을 빼고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여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버스기사분들이 이기적이라고 화를 내고 있었고,
버스 기사는 이기심이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소연하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바로 내일부터 벌어질 경기권 버스들의 파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당신들 이익을 위해 이기심을 위해 하는게 아니냐, 일반 시민들의 불편함은 생각지도 않느냐' 고 따지고 있었고
버스기사는 하루 5번 운전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증차와 증원을 요구했지만 시도 정부도 버스회사도 모두가 말을 뒤집으며 발뺌을 한다. 우리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다. 라며
점잖게 아주머니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버스기사분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새벽의 조용한 버스에서 아주머니가 너무 민폐를 부리는게 아닌가 싶어 짜증이 나던 찰나, 이어지는 아주머니의 말에 할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에요? 나 같은 사람은!! 우린 늦으면 짤린다구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히 일하는 두 사람이 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툼에 두 사람은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둘 다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누구일까
열심히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왜 싸워야하는걸까
문득 노회찬의 6411 버스 연설이 떠올랐습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 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만에 신도림과 구로 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중략)
누군가는 잠들어 있을 시간대, 알지 못하는 시간속에 알지 못하는 대화가 오갔습니다.
모기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잠들어 있을 시간입니다.
노회찬의 버스 연설을 생각하면서, 버스기사와 아주머니의 말다툼도 생각하면서
또 내일 내 출근길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 나도 파업에 영향이 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새벽이었습니다..
이제 9시까지 2시간 사무실에서 눈을 붙여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