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살짝 감기 기운이 있어 아침 운동을 쉬고 늦잠을 자버렸습니다.
원래는 재택 중에도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7시엔 운동을 나가는데 오늘은 밤새 이불을 제대로 안덮은 것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머리가 살짝 아파 아침운동은 패스.
점심 이후부터 컨디션이 회복되어 퇴근 시간이 되고 잠깐 이불에서 뒹굴고 나서 밖을 나섭니다.
서울에는 한강강변이 있고, 거기서 산책과 조깅을 하는게 참 부러운 일이지만 수원도 밤에 걷기 좋은 장소가 여럿 있습니다.
집 근처에 호수 공원이 있고 조금 더 걸어 나가면 이렇게
잘 보존된 화성 성곽이 나오게 되지요.
옛날엔 산적들이 출몰하던 곳이었지만, 대대적 정비 이후로 산적들은 모두 토벌당해 시민 친화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고갯길을 넘을때마다 호랑이가 아니라 무서운 형아들이 나와서 돈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를 시전하곤 했었죠.)
조명도 잘 구비되어 밤에도 무섭지 않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저 좌측 끝에 보이는 횃불처럼 빛나는 팔달산 정상.
서장대를 목표로 갑니다.
밝게 빛나는 성곽만 따라가면 되는 일이라 밤길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경사가 살인적일 뿐...............
가쁜 숨을 고르며 정상에 도달합니다.
실전의 역사가 없는 화성이라지만, 실전이 벌어졌다면 여길 쳐들어왔을 왜적이 불쌍해지는 순간입니다.
아마 올라오다 다 숨이 차서 죽었을 테니까요 ㅎㅎ
저 아래로 화성행궁과 행궁광장이 보입니다.
평일 밤이기도 하고 시국이 이런지라 광장에는 인파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썰렁한 모습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자면 힘든것도 잊혀지지요.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는데.. 내려가다보니 20대 철없던 시절 죽을 뻔한 순간이 다시 기억납니다.
때는 비오던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아는 형님이 부른다고 [의리!]를 외치며 자전거를 끌고 산을 뺑돌아 거하게 술을 마시고 나서
술집을 나서보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산을 뺑돌아 집에 가야하는데 비도 오고 자전거도 있고 30분을 비맞고 가기가 싫었던 저는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죠.
바로 아까 저 밑의 화성행궁 광장 위치에서 자전거를 끌고 서장대까지 등반을 했습니다.
[가로질러가면 빠르지!!] 라는 참으로 단순 무식한 생각으로 벌인 일이었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와선 이 언덕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쯤 내려와서 위를 찍은 모습입니다. 저 한참 위부터 타고 내려왔죠.
살인적인 가속이 붙은건 당연합니다.
아마 이쯤 와서 저 밑의 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것을 보고 브레이크를 잡기 시작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나 있었습니다.
거친 산길을 끌고 올라오느라 브레이크가 빠진 모양이었나봅니다.
내려가기전에 점검해야했는데 술김에 뭐 생각이 났겠습니까만....
살고 싶은 마음에 발로 땅에 제동도 걸어보고 별짓을 다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고
저 끝의 차량 진입봉을 보고 도박수를 던져버렸습니다.
자전거를 버리고 냅다 점프를 해버렸죠.
그리고 결과는 이 차량 진입봉에 세번째에 제가 새우마냥 대롱대롱 걸리고 첫번째 진입봉에 자전거가 엎어진채 헛바퀴가 돌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만화같은 광경이다 싶지만 당시로선.... 살아난게 용하더군요.
반쯤 찌그러진 자전거를 들고, 구두 밑창은 떨어져 나간채로 비에 홀딱 젖어 절뚝거리며 [어휴 뒤X뻔했네] 하며 집에 가서 등짝을 대판 맞았던 과거의 기억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땐 내가 미쳤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