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때 자주 읽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집입니다.
정말 재밌고 아름다운 글 들이 많은데, 스타일도 좋구요. 특히 '불을 향해 가는 그녀'는 정말 좋아해서 첨부합니다.
특히 무덤덤한 톤으로 마무리 짓는 마지막 구절이 제일 좋아요. 좁은 문의 마지막 구절 '하녀가 등불을 들고 들어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 멀리 호수가 아련히 반짝인다. 오래된 정원의 썩은 샘물을 달밤에 보는 것 같은 빛깔이다. 호수 건너편 둔덕 숲이 고요히 불타오른다. 불은 순식간에 번져간다. 산불인 모양이다. 물가를 장난감처럼 달리는 증기 펌프가 또렷이 수면에 비친다. 언덕을 시커먼 인파가 끝없이 올라온다. 정신을 차리니, 주변 공기가 소리 없이 바짝 마른 듯 환하다. 언덕 밑 시내 일대는 불바다.
-- 그녀가 빼곡한 사람들 무리를 휘휘 가르며 홀로 언덕을 내려간다. 언덕을 내려가는 이는 그녀 한 사람뿐이다. 신기하게도 소리 없는 세계이다. 불바다를 향해 똑바로 치닫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안절부절 못한다. 그때, 말로써가 아닌 그녀의 마음과, 참으로 분명한 대화를 나눈다.
“어째서 당신만 언덕을 내려가는 거지? 불에 타 죽을 셈인가?” “죽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서쪽엔 당신의 집이 있잖아요. 그래서 난 동쪽으로 가요.”
화염 가득한 내 시야에 까만 한 점으로 남은 그녀의 모습을, 내 눈을 찌르는 통증처럼 느끼며 나는 잠을 깼다. 눈꼬리에 눈물이 흘렀다.
내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걷는 것조차 싫다는 그녀의 말을 이미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성에 채찍질하여,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싸늘이 식어버렸다고 겉으로는 체념하고 있었다 해도, 그녀의 감정 어딘가에 나를 위한 한 방울이 있으려니 하면서 실제의 그녀와는 무관하게 오직 나 자신 제멋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한 자신을 호되게 냉소하면서도 은밀히 담아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런 꿈을 꾼 걸 보면, 그녀의 마음이 눈곱만치도 내게 없다고 나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까지 굳게 믿어버리고 만 것일까.
꿈은 나의 감정이다. 꿈 속 그녀의 감정은, 내가 지어낸 그녀의 감정이다. 나의 감정이다. 게다가 꿈에는 감정의 허세나 허영이 없잖은가.
이런 생각에, 나는 쓸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