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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농담 - 밀란 쿤데라 (0) 2014/02/26 AM 10:01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므로.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게 내게서 달아나 버린 이 여인은 도피의 여신, 헛된 추적의 여신, 안개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내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미친 듯이 등불을 흔들어대며 해안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밤에, 길 잃은 배가 거친 파도에 휩싸여 헤맬 때, 이 사람은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 쪽으로 향하고, 나에게 와닿는 쪽에서만 그녀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그녀 자체의 모습, 그녀 혼자만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그러나 나는 이를 알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의 파도가 나를 온통 집어삼켰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내 나이에 대한 분노였고.......

나는 문득 내가 당에서 축출당했던 그 사건을 불가피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아득히 멀고 너무도 문학적인 이야기로만 비추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의 물결, 그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마저 다 씻어가 버리는데, 하물며 보잘 것 없는 두 개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쉽게 씻어가겠는가.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만 상쇄한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 질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왜 왕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것은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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