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은지가 오래 되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한 권을 사면 또 한 권이 나오므로 아무리 빠르게 모으더라도 제논의 역설처럼 평생 따라잡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과 함께 이탈로 칼비노의 선조 3부작 중에 한 권이다. 환상 소설에 가까워서 쉽게 읽히고 150p 가량으로 페이지도 많지 않다. 위 쪽은 맘에 드는 구절을 적어놓았고, 그 아래 감상을 적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나름 분석해보려고 했는데, 머리 속에 구름처럼 떠다니기만 할 뿐 실체가 잘 잡히지가 않는다. 대학시절 읽은 책들의 서평을 쓰지 않은 것이 화가 난다. 감상을 글로 옮겨서 실체로 만들지 말고 머리 속에만 두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본 영화도 제대로 리뷰한 적이 없다. 써보려고 하면 할수록 글이 막히는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 이 서평도 어딘가 끊어진 것처럼 끝나버렸다. 다음 책을 읽고는 제대로 쓸 수 있으려나.
‘젊은이는 그렇게 언제나 여자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그를 떠민 게 정말 그녀에 대한 사랑일까? 혹시 그를 떠민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아닐까? 여인만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존재의 확실성을 찾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행복하기도 하고 절망적이기도 한 젊은이는 달려가서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 여자란 분명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이며 그녀만이 그의 존재를 확인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자 역시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젊은이 앞에 있는 그 여자도 불안에 떨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젊은이는 어떻게 할까? 두 사람 중 누가 힘이 세고 누가 약한지가 중요할까?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젊은이는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가 갈망하는 그녀는 존재하는 여자이고 분명한 여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보다 많은 것을 안다. 아니 더 적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그가 아는 것과는 다른 것들을 알고 있다.’
-p. 80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내가 여기 왔다, 여인이여. 당신이 어떻게 나의 사랑을 기꺼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 여인은 대관절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녀는 내가 자기에게 줄 수 있고 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격분해서 이성을 잃더니 갑자기 한순간 그녀에 대한 사랑은 순전히 자신에 대한 사랑,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 버렸고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둘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사랑으로 변했다.
-p. 105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소설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
내용은 이렇다. 오래전 떠돌이였던 아질울포는 겁탈당하려던 소프로니아를 구해 주고 기사작위를 받았는데 어느 날 그녀의 아들임을 주장하는 청년 토리스먼드가 나타난다. 소프로니아의 처녀성을 지킴으로써 기사작위를 받고 지금껏 기사로 존재할 수 있었던 아질울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뒤를 구르둘루, 브라다만테, 랭보가 쫓는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는 네 명의 주요인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하얀 갑옷으로만 존재한다. 그는 의지로 일어나 의식으로만 존재한다. 그의 갑옷 안은 육체가 없고, 비어있다. 흙먼지가 일어나는 전쟁터를 걸어와도 언제나 그의 갑옷은 흠집 하나 없어 이질적으로 보이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옳고 이성적이다. 실존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존재로의 그는 완벽함, 이데아, 초자아 등을 상징한다.
두 번째 인물은 아질울포의 하인인 구르둘루다. 그는 존재하지만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사물에 자신을 동일시하려고 한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다음 행동을 짐작할 수 없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성적 욕구,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마도 원초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르둘루가 아질울포의 하인인 것은 당연하다.
세 번째 인물은 아질울포를 짝사랑하는 여기사 브라다만테로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혼돈의 모순적 인간이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어리석고 허약한 인간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나를 받아주는 클럽에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루초 마르크스의 말에서 탄생한 것 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모순적 존재인 아질울포(비현실적인 완벽함)에게 끌린다.
마지막은 젊은 기사 지망생인 랭보다. 그는 전쟁에서 아버지가 이교도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그 복수를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 전투에서 청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그 기사가 브라다만테라는 것을(브라다만테라는 것보다는 여성임을) 알게 된 후에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후 그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브라다만테에 대한 사랑 혹은 성욕에서 에너지를 얻으므로 리비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구르둘루를 제외한 세 사람의 관계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버지를 잃은 랭보는 복수의 방법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아질울포를 만난다. 비현실적인 아질울포에게서 차가움을 느끼고, 그가 알려주는 지식에 대해서 고지식하다거나,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민이 생기면 그에게 털어놓고 싶은 모순적인 감정을 품는다.(아질울포 역시도 전쟁터에 처음 발을 디딘 랭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브라다만테가 사랑하는 존재가 아질울포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하는데 그 후에 다른 기사가 아질울포를 공격하자 뱉는 말은 아주 인상적이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아. 아니 내가 보기에는 모두 너무 잘 정리되어 있고 질서정연한 것 같아……. 난 덕성과 용기를 보았는데 모든 것이 아주 차가웠어. 네게 고백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기사가 있다는 게 난 두려워……. 하지만 난 그에게 감탄했는데 그 사람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존재하는 사람보다도 더 신뢰할 수 있어. 그리고 거의…….”
랭보는 이렇게 말하다가 얼굴을 붉혔다.
“난 브라다만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질울포는 분명 우리 군대 최고의 기사야.”
-p.85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상태로 등장하는 랭보는 죽어버린 아버지보다 아질울포를 더 아버지처럼 대한다. 두려워하면서도 의존하고 싶어 하다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자, 그를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소설의 구조가 상당히 쉬워지고 결말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브라다만테의 사랑을 얻는 법이란 복잡할 필요 없이 정의된다. 부친인 아질울포와의 동일시를 통해 초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실체 없는 의식, 지식과 의지의 집합체를 상징하는 존재를 알고 있다. 랭보가 그를 받아들일 상태가 되면 아질울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부친과의 동일시는 외형적으로도 준비되어있다. 동일시는 그의 하얀 갑옷을 입는 것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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