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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사라지다 (0) 2014/06/30 AM 12:55
사라지다

5시 12분.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시계를 들여다 본다.

5시 37분.
갑자기 해야 할 서류정리에 짜증을 느낀다.

5시 57분.
아슬아슬하게 서류정리를 끝내고선 들뜬 마음으로 회사를 나오다.

6시 33분.
사라지다.




- 그녀를 잘 모르는 듯한 그녀의 아버지와의 대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만, 내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자식이란 것이 참 이상하게도, 분명히 나와 함께 살고 있고, 내게서 나왔을텐데 나와는 다른 점이 많단 말입니다. 조금 더 닮아줬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이건 나와 너무 다른데? 그렇다고 또 내 아내와 비슷하냐 하면 그 것도 아니란 말이죠.
오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것은 정말 아닙니다. 전 평생 그런 생각이라곤 해본 적이 없었고, 아내 또한 절대로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하려던 얘기는 다름 아니라, 그래...... 어디까지 얘기하다가 이 얘기가 나온거죠? 아, 그러니까 다른 점이 있다, 여기까지 얘기 했었군요. 그러니까 그런 점들이 하나씩 보이다보면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아이와 조금 덜 사랑하게 되는 아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란 말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고, 그런게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단 말입니다. 아, 그래요. 솔직히 제게 더 사랑받는 편인 아이는 아니였죠. 난 이날 이때까지 그 애가 우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답니다. 가끔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볼 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니까요.
정말 이런 이야기가 그 아이를 찾는데 도움이 됩니까? 어쨌든 그 애를 꼭 찾아주세요. 가족 말고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냐고요? 아! 예전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 별볼일 없는 남자라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별볼일 없어보이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 A와의 대화

"걔요? 걔랑은 안만난지 반년도 더 넘었어요. 1년이 넘게 만났지만 난 솔직히 내가 걔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걔도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에요. 난 분명히 말해서 이번 일과 연관이 없어요. 일단 만난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뭐하는 사람이죠? 경찰인가요? 그 것보다 걔에 대한 얘기를 좀 해달라고요?
이봐!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나가!"


- 다시 그녀의 가족인 그녀를 잘 아는듯한 그녀의 어머니와의 대화

"그 애와 남편과의 사이요? 원래 딸아이와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은 집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랍니다. 물론 아들과 아버지 사이보다는 조금 더 낫겠지만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요새 아이들과의 충돌 같은건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흔히 있는 일 아닌가요? 그 사람은 정말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연애시절에는 정말 말을 잘했죠. 유머도 있고, 지금은 무슨 얘기만 꺼내려고 하면 짜증부터 낸다니까. 우리 애가 독하다고요? 남편이 그렇게 얘기했다고요? 그 사람은 그 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요. 남자들이 다 그렇지 자식을 낳아놓고서 신경이나 쓰나? 돈 버는게 힘들다고 집에만 들어오면 누워서 티비 먼저 트는게 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애들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바로 어제까지도 그 애는 눈물을 흘리곤 했죠. 요새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 그 사람이랑 관련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 애가 자주 우는 편이 아닌 건 맞아요. 그런데 요 반년 사이에는 그게 좀 심해졌죠. 우울증 같은게 걸린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말이에요. 설마 얘가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겠죠? 어느 바다에 뛰어들었다던가 이런거 말이에요. 제발 그런건....... 남편과 그 애가 얘기 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냐고요? 근데 왜 이런 얘기를 물어보는 거죠? 우리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르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침착하라고요? 그런 말이 나오게 생겼어요? 경찰에서 실종자 명단에 올려서 목격자라도 찾아봐야 되는거 아닌가요? 제발 제발 우리 애를 찾아주세요......"


- 전단을 보고 찾아온, 그녀를 마지막으로 봤다고 주장하는 말쑥해 보이는 노숙자

"이봐. 내가 제대로 얘기해주면, 얼마나 주는건가? 많이는 안바라고 말이야. 경찰들은 도무지 이 얘기를 믿질 않는단 말이야. 어, 그거 먹을건가? 아니면 나 좀 주게. 술도 좀 시켜도 돼지? 아, 알았네. 알았어. 빨리 얘기 해주지. 그러니까 그 날도 건물 앞 벤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단 말이지. 그 벤치는 알지? 거기 벤치가 누우면 딱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이즈가 맞아. 거기 한 1년 정도 있었는데 말이야. 아.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그래 그래.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그래서 말이야. 아 목이 좀 맥히는데. 오 그래그래. 자네 참 좋은 사람이구만. 그러니까 말이야. 낮에 너무 더워서 좀 씻어볼까 하고 몰래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경비 자식, 그 나이도 나보다 어린 놈이 자꾸만 뭐라고 하더란 말이지. 나도 거기서 괜히 노숙을 하고 있는게 아냐! 옛날에는 집도 제법 살았고, 애들도 있고 번듯한 직장에 아내도 있었단 말이지. 그랬는데 이래저래 일들이 겹치고 마누라 바람나고, 그 년 생각을 하니까 또 열받는구만. 어쨌든 말이야. 그래서 못 씻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자네는 내 몸이 너무 더러우니까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내가 못 맡을까하고 생각하고 있나본데, 그런건 아니란 말이야. 어쨌든 잠이 나 자야겠다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누가 시끄럽게 굴더란 말이지. 누구랑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여자가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말이야. 뭐 그 것보다도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남자들이야 왠지 모르겠지만 어디서는 여자들 우는 소리는 이상하게 잘들리고 하지 않나? 어어. 미안하네. 이제 거의 다 얘기가 끝났어. 그 때가 몇시 쯤이였냐고? 이 사람아, 내가 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정확히 몇 신지 어떻게 아나? 지금이 몇 시지? 7시라고? 그 때랑 날씨가 비슷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퇴근이라 우루루 쏟아져 나오기도 한데다 이거보다 좀 밝았으니까 6시는 넘었고 7시는 안됐을거야. 그래. 그렇게 울면서 전화를 하고 있더니만, 갑자기 사라졌단 말이네. 그런게 아니야. 한눈 판 것도 아니고, 술 마신 것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사라졌어. 아니, 정말로 갑자기 사라졌다니까. 경찰에 가서 얘기해도 안 믿길래 여기와서 얘기해본건데........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로 사라졌다니까. 못 믿겠나? 정말 못 믿겠어? 하긴 나도 잘 안 믿기니까. 돈은 못 주겠다고? 난 솔직히 다 얘기한거야. 진짜 본대로 말한거라고. 에이, 씨발. 내가 이럴줄 알았어. 나 참 더러워서. 근데 요새는 핸드폰에 누구랑 통화했는지 그런거 다 알 수 있지 않나?"


- 핸드폰에 4통의 부재중 전화를 남긴 그녀의 현재 남자친구이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되는 B의 메모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만나면서도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위하듯이 나를 만나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 시위하고, 이해할 수 없게 행동하는 자신에게 시위하고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미처 끊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그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화살에 가슴이 뚫려 멍하니 하늘을 보며, 눈물짓고 내게 쓴 웃음을 보내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사랑이 어떻게 끝나게 될건지에 대해서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 그녀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별볼일 없는 남자 A와의 대화

"마지막 통화 내용을 듣고 싶다고? 당신 정말 누구지? 그런가. 알았어. 먼저 찾아왔을 때처럼 그 애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건가? 듣고 싶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당신 말대로 그 애를 먼저 따라다닌 건 내가 맞아. 그리고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내가 맞고. 난 날 사랑하지 않는 모습에 질려했지. 나는 자꾸만 그 애가 원하는 쪽으로 변해가려고 하는데, 그 애는 전혀 그렇게 변하질 않았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헤어진거야. 정말 그렇더라고. 나 때문에 아파하기는 커녕 채 한달도 안되서 다른 사람을 만났잖아. 얼마 전에 술을 마셨지. 그리고 전화를 했어. 왜 나는 사랑해줄 수 없었냐고 말이야. 왜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쉽게 내보이려하지 않고 숨기려고만 하는걸까. 상처입기 싫어서? 숨기면 상처받지 않나? 그리고나서 다시 잊고 있었어. 그런데 전화가 왔어. 퇴근하고 전화 한 것 같았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울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왠지 화가 나서 내게서 그만 사라져달라고 했지.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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