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yptian Blue M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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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2014. 08. 20 (0) 2014/08/20 PM 07:24
옛날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전 여자친구가 헤어질 때 주었던 편지를 발견했다. 버리지 않았으니 어딘가 둔 것은 알았는데 서랍에 있는 줄은 몰랐다. 헤어질 때, 이미 몇 해 전에 단 한 번 그 편지를 읽고는 다시는 읽지 않았었다.
개나리색의 편지지에는 그녀처럼 작고 여린 글씨체로 수없이 많은 걱정과 충고들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갑자기 실수로 바다에 내려섰던 나비의 날개처럼 젖었다. 그녀는 노란색을 좋아했다. 아니, 물어본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으니 노란색을 좋아했던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 기억에 언제나 그녀는 노란색이었다. 헤어지기 얼마 전 프린트를 넣어두는 파일을 잃어버렸다기에 노란색으로 사두었었는데 끝내 주지 못해서 여전히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내 책상의 한 쪽에 꽂혀 있다.

요새 드라마를 보다 보니 그녀 생각이 자주 난다. 내 잘못으로 헤어졌고, 그녀는 잠시 외국으로 떠났다. 가끔 주위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날 만났을 때의 소심한 태도는 없고,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언젠가 연애는 세 번만 할거라고 다짐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내 세번째 인연이었다. 대단한 다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지키려고 노력한 적도 없지만 그 이후로는 정말로 설레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연애를 안한게 벌써 4년째다. 이젠 다시는. 연애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늘 머리에 맴돌고 있어 그냥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누가 물으면 그냥 성욕이 없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들 웃다가 같은 자리에선 다시 묻지 않는 것을 보면 꽤 괜찮은 대답인 것 같다.

몇 년간 연애도 안하면서 그녀를 떠올린다고 해서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사람들은 한 가지 방식으로 생각을 고정해버린다. 미련이 남아서 옛 애인을 떠올리는 사람처럼은 보이고 싶지 않다. 다만 오랜만에 다시 읽은 편지의 추억에, 성격도 외모도 그녀를 닮은 여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 때문에 그냥 잠시 나타나 느린 기차가 되어 내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 뿐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아주 빠른 속도로 머리에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만들어 놓은 적이 없으니 정차할 역은 분명히 없다.

오늘도 드라마가 방영되기에 문득 여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의 최고 전성기였던 그 예전에도 내가 그녀를 좋아했었는지 생각해봤다.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그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녀와 나 단 둘의 이야기가 아닌, 외적인 부분에서 우리에게 얽히고 섥혀 있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 때문에 계속해서 부정하려고 애썼지만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에 빌어 그녀를 떠올리는, 아니 그녀의 아름다움을 빌려와 다른 사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녀를 내가 아끼고 좋아하고 사랑했음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괴로웠던 시기지만 사랑했으니 윤택하다. 기억은 이런 식으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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