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을 보았습니다. 리뷰를 쓰고 있는 현 시점에는(10월 9일) 관객 수 3백만을 넘어서 올해 다양성 영화 중 누적 관객 수 1위를 달리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제치고 계속 흥행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원스가 2007년 대단한 반향을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23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눈부신 성장이라 할 만 하지요.(물론 워낭소리가 갱신하기 전까지 최고 기록) 사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 배우로 보기는 어렵지만 Maroon 5의 보컬인 애덤 리바인이 가지고 있는 스타 파워를 생각해본다면 다양성 영화에 범주에 넣어두어야 할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무리 200개 미만의 상영관을 잡고 신청만 하면 달아주는 것이 다양성 영화의 타이틀이라지만 말입니다.
영화는 함께 음악을 하던 남자친구의 성공으로 뉴욕으로 오게 된 그레타와, 그래미를 두 번 이나 수상한 제작자이지만 그 빛을 잃어버린 남자 댄이 만나 음반을 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낯선, 낯설어져버린 도시의 외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그레타는 낯선 도시에서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던 상대인 남자친구 데이브의 배신으로 뉴욕에 혼자 남겨지게 됩니다. 친구가 한 명 있긴 하지만 그건 본질적인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죠. 마찬가지로 댄 역시 과거에는 성공했지만, 현재는 가족과 직장도 잃은 상태로 침잠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족과 직장, 두 대표 공동체에서 댄은 낯선 사람일 뿐이죠. 두 사람의 만남은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이루는 가장 큰 틀은 여기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분위기나 전개에서 상당히 닮은 점이 많아보입니다. 영화에서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도쿄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언어’를 쓴다는 공통점으로 함께하게 되는 것과 다르게 댄과 그레타에게는 ‘음악’이란 형태로 존재합니다.
기본적인 틀이 나쁘지 않으니 전작의 연출력을 생각하면 좋은 영화가 나올만한데,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갈수록 이 영화는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특히 그레타와 데이브, 댄과 바이올렛 각각 주인공들이 해결해야 할 갈등구조에서는 너무 작위적인 냄새가 납니다. 나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만큼 멀어졌던 딸의 숨겨진 재능을 알았다거나, 잠시의 외도 후에 조강지처에게 돌아오는 남자의 이야기는 지겹게도 많이 본 패턴이죠. 남자친구인 데이브와 그레타가 헤어지는 장면, 그레타가 남자에 대해 조언하면서 바이올렛의 호감을 사는 장면, 음악을 듣고 데이브의 외도를 알아채는 장면(이 장면은 정말 너무 어설퍼 보여서 당황했습니다), 심지어는 주요소품인 ‘스플리터’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음악들이 장면과 호응하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스에서 OST 전곡이 영화와 호응하면서 환상적이고 반짝이는 장면들을 만들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죠. 예를 들면 글렌 한사드가 버스 안에서 Broken Hearted Hoover fixer sucker guy를 부르는 장면이나, 마르케타가 if you want me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스토리와도 맞아 떨어지면서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환기시키니까요.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도대체 영화가 말하고 싶은게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달러로 음반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음악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기엔 너무나 조아한 낭만이고, 음반을 만들며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감정을 교류한 것, 서로의 갈등구조가 해결된 것이 음악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그 과정이 그렇게 극적이었나 하고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뻔한 장면들 속에서 개인의 감정에 몰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던 남자는 씨 로 그린을 찾아가서 돈을 빌려 모든 걸 해결했고, 씨 로 그린은 말합니다. “저 남자가 이 집, 차 다 사게 해준거야. 그리고 난 당신이 맘에 들어.”
비긴 어게인은 본래 영화의 완성도에 비한다면 지금 엄청나게 고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뷰들을 읽다보면 음악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음악’ 영화인가, 음악 ‘영화’인가. 전 절대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하는 쪽이라, 이 영화에 좋은 평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대사를 빌리자면 평범한 장면을 음악은 반짝이게 빛나는 장면으로 만들어주기는 하지요. 하지만 음악만으로 평범한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마크 러팔로의 대사들이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제 심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만들어진 그런 가수들을 원하는, 성공 방식에 취해버린 동업자 사울에게 하는 말들이요.
이 대사들은 마치 헐리우드의 성공방식을 만나 본래의 진주처럼 반짝이던 아름다운 재능을 잃어버리고만 감독의 고해성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빛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영화 초반 클럽에서 댄이 그레타의 음악을 들으며 하나하나 악기를 더하는 장면은 참 좋습니다. 그 때까지가 가장 기대감이 고조되었죠.
한줄평 : 음악은 평범한 순간을 반짝이게 만들 수 있지만 평범한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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