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0년작 선셋 대로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고전 영화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할 정도입니다. 이 영화가 많은 감독과 비평가들의 역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이유를 잘 알 것 같습니다.
벌이가 시원찮아 방세도 내지 못하고 있는 작가 조에게 낯선 남자들이 방문합니다. 그들은 할부금을 내지 못한 조의 차를 압류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조는 여기저기 돈을 구해보려 움직이지만 실패하고, 차를 압류하러 온 자들에게 쫓겨 선셋 대로 10086번지의 저택에 숨게 됩니다. 버려진 낡은 저택인 줄 알았던 곳은 무성 영화 시절의 여배우인 노마 데스몬드의 집이었고, 영화계로 복귀할 꿈을 꾸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 살로메의 수정을 조에게 맡깁니다. 조는 자신의 젊음과 꿈을 버려둔 채 노마에게 종속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노마가 자신에게 애정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 연말 파티 때, 그녀를 떠나려고 결심하지만 노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택으로 돌아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깊은 관계가 되고 맙니다. 조에 대한 그녀의 광기와 집착은 심해지고, 결국 끔찍한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간단한 줄거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노마가 복귀작으로 썼던 시나리오인 살로메는 영화의 비참한 말로를 예견하는 복선으로 사용되고, 무성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로서의 글로리아 스완슨, 그리고 감독이기도 했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조가 밀납 인형이라고 부르던 버스터 키튼 외 다른 무성 영화의 배우들이 스스로의 어떤 일부분을 연기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기만 합니다.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꿈을 이루기 위해 찾아왔다가, 자본을 상징하는 노마에게 종속되어 버리고 하인과 다름없이 부려지는 조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젊은 베티는 아름다운 빛, 연인으로 다가오지만 이미 타락해 버린 조는 노마에게서 달아나기는 하여도 그 것을 움켜쥐지는 못합니다.
드밀 감독을 찾아간 자리에서 다가오는 마이크를 밀어버리고, 핀 조명과 예전 자신들의 팬 사이에서 눈물을 흘리는 노마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황금기가 있다던 '미드나잇 인 파리'의 대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에게 자신이 꿈꾸고 보아왔던 황금기는 무성 영화가 제작되던 그 때인지 모릅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 스스로가 그 시기를 추억하고 간직하는 한 방법인지도 모르지요.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고 사랑을 보내는 것은 말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의 꿈에 불과할지 몰라도요.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혀있는 노마의 모습은 때로는 가련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턱을 들어 올린 상태로 마치 실에 걸린 인형인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소리를 제거하면 무성 영화의 스타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노마의 연기와 광기가 최고조에 이른 영화 후반부에 조와 노마가 함께 한 장면에 공존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화면 구성처럼 보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노마는 자신이 체포되는 과정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착각하는데,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 겹쳐져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특히 화면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스크린을 찢고 뛰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까지 받게 하는 전율의 명장면입니다.
두서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적었는데, 정말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이중 배상이나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볼 때도 생각한거지만 빌리 와일더 감독은 정말 대사를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언제고 계속해서 다시 보아야 할 영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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