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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밀물 (0)
2014/01/24 PM 11:19 |
한 남자가 병원에 찾아와서 수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먼저 불면증이 있냐고 물었고, 많은 양의 수면제는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면증은 없는데 잠이 설드는게 문제라면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취해봤다며 꿈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나는 호기심에 악몽을 자주 꾸냐고 물었고, 그는 꿈이 무서운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꿈이 무서운 이유
얼마전 오랜만에 그녀의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 엘리아나의 꿈을 자주 꾸곤 했는데 어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깨어나서 기억하는 꿈 그 외에 잊혀져 기억하지 못하는 꿈까지 모두 알 수 있게된다면 내 뇌에서는 언제나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그녀가 왜 나의 밤의 세계에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 때의 그 시간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마땅할겁니다. 그때의 그 시간들이, 지난 후에야 알게된 나의 간악한 면들과 모자란 것들을 저 멀리 던져놓는다면 아니, 그 때의 그 모자람까지 모두 더해놓는다고 해도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녀야말로 나의 사랑이었고, 뮤즈였고, 아테나였고, 아프로디테였습니다. 그녀는 그때만큼은!(그는 이 단어를 강조했다) 내가 태고의 어떤 시간에 잃어버린 반쪽의 영혼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로 채워진 한 편의 소네트였으며 수많은 세상의 진실이자 지고의 아름다움 그 자체인 여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변화하듯이 언제인지 특정할 수 없는 순간에 우리의 사랑도 다음 단계로 들어섰고 시간은 무참히도 내가 이 입과 마음으로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귓바퀴와 귓볼에 전하던 그 성스러운 단어들, 또한 그보다 그 뒤에 숨겨져있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을 모두 파헤치거나 희석시켜 놓았고, 이제는 사랑했었다라는 기억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제 깨어있을 때는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꿈 속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되어 있는 현재의 이 상황 자체가 너무도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감정이란 것은 그 반작용이 명확해서 낮의 나에게 있어서는 그녀야 잊고 다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대상에 불과한데도, 꿈은 그 뿌리로 들어가면 내 욕망의 투영인지라 내가 그녀에게 뭔가 바라고 있는 것이 남았나 싶어 스스로 죄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난 후에 며칠이 더 지나자 더 자주 그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 속에서 그녀를 만나는 일은 이제 현실에서 그녀를 마주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실제의 그녀는 만날만한 장소가 있고, 상황이 있고, 또 실제로 마주친다하여도 잠깐 서로 흠칫하고 놀라거나 할 뿐으로 대화가 계속될리는 만무하거니와, 혹여나 또 반드시 그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여도 서로의 감정이나 입장이 있는 탓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반면에 꿈 속의 그녀는 어떤 날의 꿈에 등장할지 알 수 없고, 또 때때로 꿈일 것을 알고 있다 하여도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우리는 미지의 것을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알고 계시겠죠. 꿈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습니다.) 또한 그러다보니 꿈 속의 그녀에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깨고 난 후의 기억만 남은 탓에 잘못 대처했다 싶으면 다시 잠들어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며, 거기에 애초에 꿈 속의 그녀는 내가 지난 기억에 생명을 붙여 어떤 날의 표정과 어떤 날의 말투, 또 몸짓, 대화 등을 참고해서 만들어낸 스스로의 창작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라서 결국에는 내가 느꼈던 그녀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고, 현실의 그녀와 다르게 나와 말도 하고 웃어도 주니 미칠 노릇입니다. 이슬람의 세밀화가들은 스스로 신이 보는 모습대로 그리기 위해서 수천번 수만번 그림을 그리다가 눈이 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실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고 했으니, 이제 저도 그녀와 헤어지고 낮의 세계에서 그녀를 완전히 놓아버리고 나서야 그녀에게 '눈멈'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 같아, 점점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다시는 낮의 세계에 그녀가 오지 못하도록 밤의 세계에서도 내쫓아 내고 싶은 것, 이런 이유로 꿈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에, 나는 이 이상한 이야기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사흘치의 수면제를 처방해주었다. 처방전을 받은 후에 그는 '감사합니다. 이제 됐네요. 낮의 나는 그녀를 완전히 잊었거든요.'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흘이 지난 후에 그는 다시 병원에 밝은 표정으로 와서는 또 사흘치의 수면제를 받아갔고,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후에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어느 날 수면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후에 그가 감정의 파고에 따라 우리 모두 흔들리는 날이 있다는 것, 아쉽게도 그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마 낮의 그가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 대한 생각을 그의 대뇌에서 친절하게 밤의 세계로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났다면 밤의 세계에서 재조직된 그녀의 기억들이 그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줌으로써 그는 그녀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데 성공했으리라.
그러나 인위적으로 밤의 그에게서 그녀를 떼어놓자, 견딜수 없도록 꿈의 그녀가 낮의 세계로 밀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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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해후 (1)
2014/01/23 PM 11:15 |
'딩동딩동!'
현관벨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괘종시계가 뎅뎅하고 열두시를 쳤기 때문에 밤이 아주 늦은 것을 알았다. 이 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올만한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어 나는 읽고 있던 책을 곧바로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반갑네. 미하일. 왠일인가?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다니."
역시나 현관에는 오래된 친구가 서있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것이 벌써 40년. 어느새 함께 하지않는 시간을 상상할 수 없는, 유쾌하고도 애틋한 친구는 온 몸이 비에 젖은 채로 아주 슬픈 표정을 하고 현관에 서있었다. 깜짝 놀라 나는 그의 코트를 벗기고 테이블에 앉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자 미하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왔네. 아마 자네와 나의 마지막 대화가 될거라고 생각되네."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겐가?"
"나는 이제 떠나야한다네. 저 곳으로."
미하일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이렇게 나이를 먹게되면 큰 병도 작은 병도 찾아오기 마련이고 언제나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몸이 아픈가.
"그게 아닐세."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방금보다 조금 더 굳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때문에 평소처럼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았다.
"아픈게 아닌가? 그럼......"
온갖 상상이 순간적으로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게 아닐세. 시간이 없네. 내 얘기를 차분히 듣게나. 이건 자네에게만 해주는 이야기라네."
그리고 그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지구인이 아니라네. 아니지. 어쩌면 지구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만. 엄밀히 따지자면 지구인이 외계인인 셈이지만. 나는 여기서 235만 광년 떨어진 파비앙이라는 별에서 왔네. 우리말로 하자면 RFHDAOUKJS(여기서 그는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발음을 했다.)정도 지만, 그래. 우리가 성지라고 부르는 별이지. 나는 이 곳에 동생을 찾으러 왔네. 오래전에 이 곳으로 날아온 내 동생을 말이야."
그는 여기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찾았나?"
내가 물었다.
"찾기야 찾았지. 그래서 오늘 떠나려는 거라네. 그 애에 대해 이제 충분히 알았거든. 데리고 돌아갈 수 없는게 아쉬울 다름이라네. 내가 너무 늦었어."
"그게 무슨 얘긴가? 설마 동생이 죽기라도 한건가?"
"아닐세. 그 이유를 가르쳐주려면 우선 우리 별 사람들만이 가지는 어떤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만. 다시 한번 들어보게나."
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별 사람들은 나이를 먹게되면 한 가지 능력이 생긴다네. 이 능력이 어째서 주어진 것인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신께 오랫동안 봉사해왔기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하지. 선물이라면 선물이고 벌이라면 벌이겠지만 우리는 단 한번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네. 놀라지 말게. 우리는 몸을 둘로 분열한다네. 나 역시 분열된거지."
그는 내 얼굴을 한번 빤히 바라보았다.
"오오, 제발 상상하지는 말게나. 가운데로 갈라진 채 걸어다니는 건 아니니까 말일세. 그건 자네로서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야. 나는 이 순간에도 우리 집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고 있는 또 다른 나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네. 자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보자면 자네의 양쪽 눈이 다리가 달려서 각각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보고 있고 자네는 동시에 그 두 곳을 인지하는 것과 같지.
(여기서 나는 다리 달린 두 눈이 돌아다니는 모습과 눈이 모두 뽑힌 채로 걸어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소름이 끼쳤다.) 상상이 되는가? 우리는 또 다른 나를 타인이라고 생각해야하는지 아니면 자신이라고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네. 분명 두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하나라네. 그리고 동시에 들어오는 두가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마치 두 개로 나누어진 몸이 자네의 손이나 같은거야.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손이지."
나는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미하일이 하는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도, 아니 제대로 알아들을 수 조차 없었다.
"너무 깊게 들어갔구만. 어쨌든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별로 재미가 없지. 대부분의 인생은 지나치게 안정적이야. 내 동생은 그런 삶을 거부했네. 어쩌면 조금 괴팍한 사람이였는지도 몰라. 그는 우리의 성지를 떠나, 환경이 비슷한 다른 별에 정착했다네. 그 곳이 바로 여기, 지구지.
그가 왔을 때 지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네. 커다랗고 진화가 덜 된 동물들만 있을 뿐이었어. 내 동생은 강한 의지와 힘으로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네. 그리고 동시에 외로움과 두려움에 지쳐, 누군가에 보호받고 싶다고도 생각했다네. 마침내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네. 그는 자신을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둘로 분리했고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사랑해오며, 이제껏 지구에 살아 남아온거야."
그는 목이 탄 듯 내가 따라놓은 와인을 한 잔 들이켰다.
"이제 알겠나? 인류는 그렇게 시작된거라네. 나는 동생을 만났지만 만나지 못하기도 한거지. 사랑하면 닮는다던가, 닮은 사람과 만나면 오랫동안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말하자면 그런거야. 계속해서 변형되고 나누어진 유전자속에는 최초의 형태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이 숨어있다네. 그래서 가장 가까운 형제유전자를 만나면 마음 속 깊숙히부터 행복을 느끼는거야. 그리고 다시 최초의 모습에 가까워 오기를 바라면서 아이를 낳지. 내 동생은 인류 전부인거야."
나는 미하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길고 긴 우주의 시간에서 몇 만년이나 몇 십만년 정도는 어쩌면 굉장히 짧은거라네. 그래서 나는 동생을 찾는 것을 조금 주저했던거야. 이런 결과가 될지는 상상도 못하고선 말이지...... 이제는 함께 이야기할 수도 안아볼 수도 없게 되었어.
나는 이제 떠나야겠네. 또 몇 만년, 몇 십만년이 지나고 나면 내 동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눈물을 흘리며 미하일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 친구."
"잘 있게. 사랑하는 내 동생."
갑자기 밝은 빛이 망막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의 지난 유쾌했던 대화들을 회상하며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에 한없이 슬퍼졌다.
2007년에 적어두었는데 요새 별그대에 완전히 빠져있어서 꺼내보았습니다.
원래는 두남자의 삶의 여정을 브로맨스적으로 써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었죠.
이 글을 보면 본래는 주인공인 내가, 은연중에 친구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잘 표현되지 않았네요.
2007년 당시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 이런 류의 이야기는 참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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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바라기 (1)
2014/01/23 PM 09:43 |
그대를 처음 본 뒤로
나의 꿈은 그대가 되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서로를 닮은 유일한 하나
나는 취해버렸습니다
나의 팔도 다리도 가슴도
태양의 향기만 가득합니다
뿌리박힌 나의 자유는
오직 그대를 향하는 것입니다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그대를 찾아가려다
나의 밀납날개는 소중히 녹아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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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지구가 멈추는 날 (4)
2014/01/23 PM 05:42 |
"11월 11일, 지상을 떠나온 지 180일이 넘은 것으로 생각된다. 오랜 시간 햇빛을 보지 못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다. 탐사선 내부에 설치된 대부분의 기계는 자기장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졌고, 나를 제외한 탐사원은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 우리의 지식으로 예상할 수 있었던, 모든 장애에 대비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아, 나는 오랫동안 혼자 임무를 수행했으며, 지쳤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 것도 끝이다. 내일이면 탐사선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모든 운명은 내일 결정될 것이다."
보이스 레코더를 내려놓았다. 그 것은 내가 임무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도구다.
지상은 지금 겨울이다.
탐사선의 외부는 지옥의 불길을 옮겨 놓은 것처럼 뜨거웠다. 그러나 탐사선 안은 따뜻했다. 탐사선의 온도 조절 장치는 다행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수많은 기계가 고장났지만, 나를 포함하여 임무를 끝마치기 위한 모든 부품들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탐사선의 외부가 녹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 지구의 내부를 탐사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높았던 지구 내부의 열과 자기장 때문에, 탐사선 외부의 일부분과 내부의 장치들이 고장 났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는 지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마저 모두 탐사선 외부를 지키는 것에 사용했다. 지구 내부를 탐사하고 돌아가 지구의 영웅이 되겠다던 탐사원들은 모두 이 여행을 견지디 못했다. 차라리, 나도 동료들처럼 끝없는 안식을 향했더라면...... 홀로 지내야만 했던 수 없이 많은 밤이 그런 생각들로 날 괴롭혔다. 탐사선의 외부처럼 내 마음 속에도 지옥이 끓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 모든 것이 다 끝이다. 내일 마지막 날에 내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어느 날,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인간의 몸이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1조분의 1초
1억분의 1초.
그렇게 천천히 변했다. 우리는 지구가 언젠가 멈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했다. 태양을 조사하기 위해 탐사선이 출발했고, 화성을, 수성을, 금성을 우리의 터전을 잃지 않으려 수많은 우주선이 지구 외부를 탐사하기 위해 떠났다. 하루는 점점 길어졌다. 그렇게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구 외부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지구의 중심을 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탐사선이 지구 핵을 향해 떠났다. 나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이유때문에 그 탐사선에 탑승했다.
“다들 시간이 없다는 건 알고 있겠죠. 탐사선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
“존, 당신은 어째서 이 임무에 지원했죠?”
“나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내일이면 지구의 핵에 도달한다.
나는 그날 밤, 탐사선에 탑승한 후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밝은 빛에 눈을 떴을 때 탐사선은 이미 멈춰 있었다. 지구의 안에는 또 하나의 태양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는 지구가 탄생한 이래 항상 같은 빛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그 에너지는 항상 그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웅웅 소리를 내며, 지구의 핵이 울었다. 나는 눈을 들어 그 밝은 빛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주시하자 나는 점점 더 그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숨을 뱉어낼 수가 없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나는 이제 멈출거야.'
'나는 이제 멈출거야.'
지구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이 그건 너무도 편안했다. 나는 물었다.
'왜 멈추려고 하지? 태양은 아직 불타고 있는데, 왜 네가 먼저 멈추는거야?'
'힘을 잃었지.'
지구는 죽어가고 있었다. 지구가 온 몸으로 말했다.
‘처음에 나는 스스로 돌 수 있었어. 처음 내가 태어나 미생물들이 내 몸 위를 덮고, 공룡들이 내 위를 뛰어 다닐 때, 그 때는 스스로 돌며 그들을 돌볼 수 있었지. 그리고 한참을 흘러, 인간들이 세상을 지배했지. 그 때 모든 것이 변했어. 그들은 말했지, 누군가를 위해 세상은 돌고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돌린다고. 세상을 모두 뒤엎고 있는 말의 힘은 엄청나서 내 마음을 변화시켰고, 나는 스스로 도는 법을 잊어버렸지. 몸의 변화가 마음을 변화시켜 버린 거야. 이제는 스스로 도는 법을 다시 기억해 낼 수 가 없어.’
지상은 더 이상 아무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의 발달된 문명이, 혹은 우리의 발달된 과학이, 삶의 질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새로운 윤리가 우리를 변화시킨 것이다. 모두 작은 쾌락을 쫓고, 큰 쾌락을 쫓고, 쾌락만이 지배하는 세상. 감정의 교류는 없고, 육체적 교류만이 존재하며, 기계적으로 일상을 사는 그런 세상. 아무도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움직일 수 없는 세상. 처음엔 천천히 이뤄졌지만, 곧 급격히 빨라진 변화들이 우리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고 지구를 멈추게 하고 있었다.
지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이 마지막 사람이야. 그래서 만나고 싶었어.’
나는 지구를 움직이게 하는 마지막 사람이다. 나는 지구에서 사랑이란 감정을 알고 있는 마지막 사람이고, 종말을 가져올 사람이다. 나는 지상에 있는 그녀를 생각했다. 내가 마지막 사람이라면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타오르는 가슴의 지옥에 존재하는 차가운 강을 느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그녀를 위해서 나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어.’
이제는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따스함이 심장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정신 감정을 받을지 몰라, 비웃을 것을 알기에 그 때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지구를 고쳐서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고 싶다.’는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어제 꾼 꿈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대화하다가 함께 영원히 꿈꿀 것이다.
2008년에 써놨던거네요.
문득 이 때의 감정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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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사랑 측정기 (6)
2014/01/21 AM 12:21 |
"예전에 내가 발명한 기계 중에 사랑측정기라는 게 있었네. 지금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고, 어느 문헌에서도 볼 수 없고,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물건이네만.......
벌써 20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 나는 성공에 목 말라 있었고, 정력이 넘치는 야심가였네. 세상에서 가장 잘 열리는 건 연인들의 주머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야.
난 내 모든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사랑측정기를 만들었지. 어떻게 생겼는가하면, 아주 작은 컴퓨터와 비슷했어. 마우스 대신 손잡이가 두 개 달린 컴퓨터. 화면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또 개인 건강 기록 또는 간단한 신상명세 등을 적었고, 측정기는 심박, 뇌파 등을 측정했지. 두 사람이 사랑하는 횟수라던가, 사랑을 할 때의 심박이나 뇌파를 측정하는 항목조차 있었네. 여러가지로 불편한 기계였지만, 반응은 좋았어. 연인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재미로 할 수 있었거든.
그 기계는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팔려나갔고, 나는 많은 돈을 벌었네. 문제는 처음 출시된지 3년 후 부터 시작되었어. 성능에 문제가 생겼냐고? 아니야. 이 기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작동했네. 그게 문제였지. 처음엔 장난감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네.
첫번째 문제는 오래된 연인들에게서 시작됐네. 오래된 연인들은 '이미 사랑은 끝났습니다.'라는 메세지 또는 '1일 23시간 12분 58초 남았습니다.' 정도의 메세지를 받았네. 그리고 정확히 그 시간이 된 순간 나는 더이상 그 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알게 되었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말이야.
오랜 시간 사랑을 하게 되면 이미 끝난 사랑인데도 정이나 잠시의 감정일 뿐이야라며 붙잡고 있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이 기계 때문에 그런 경우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단 말일세.
'이제는 사랑하지 않으니까 헤어지고 싶어.'라고 말하는 연인들이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급격히 늘었네. 오래된 연인들이 이런데 이미 결혼해서 살고 있던 부부들은 또 어땠겠나?
두번째 문제는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에서부터 시작됐네. 그들은 사랑의 깊이를 측정한 후에 서로를 만나고 싶어했다네. 우습게도 그들은 그들의 사랑이 오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 확인하고선, 시작도 해보지 않고 사랑을 끝냈지.
거기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세 번째 문제가 발생했네. 세 번째 문제가 가장 심각했는데, 어떤 연인도 평생동안 서로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지. 기계가 만들어진 후로 어떤 누구에게도 '평생동안 사랑할 것입니다.'라는 답을 내지 않았거든.
가장 완벽한 기계가 가장 불만족스러운 답을 내자,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만 쌓여,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네. 각 국의 정부에서는 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사랑측정기를 모두 압수하고 폐기시켰어. 기계에 대한 모든 기록을 삭제했고, 나는 이렇게 붙잡혔네. 그리고 다시는 이 기계를 만들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고 지금껏 감시를 받으며 살았지.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네.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로 얘기하지 않았을꺼야.
인간은 평생동안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야. 그 기계는......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기계라서 가장 완벽한 실패작이였지."
2058년 한 노인의 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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