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는 버스 안이었다. 버스가 멈춰선 탓에 잠에서 깬 모양이다. 마지막 기억은 치킨 한 조각을 양념 소스에 찍어 입으로 넣은 것이다. 치킨 집에 들어간 것이 10시 반, 30분 안에 조리되어 나왔다고 해도 두 시간 정도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내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집으로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익숙한 번호의 버스에 익숙한 길을 지나는 것을 보니 막차에 탑승한 모양이라 안도한다.
중앙대 앞에서 우이동으로 향하는 151번 버스는 서울역을 지나간다. 새로 지어진 서울역의 역사 반대편에는 큰 빌딩이 있고, 빌딩에는 가을을 기념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다섯 명의 신사들이 빌딩의 벽면을 거닐고 있었다. 이 시간에도 누가 빌딩의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녀를 옆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말했을거다. "여보세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게 아니잖아요."
그녀의 이야기는 항상 옳다. 실제로 내게 말하지 않는 것이라도.
귀소본능이 있어서 집에는 무사히 도착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 우습다. 아무런 기억이 없어도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오늘은 취하기를 바랐기에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없이 온몸을 뒤졌다. 핸드폰도 지갑도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통화목록까지 확인하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 가방 안에 손을 넣어 지갑과 핸드폰을 꼭 쥐고 밖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곧 비가 내릴 것처럼 궂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별하기 전에 나는 저 벽면에 보이는 것처럼 그녀와 내 몸을 모두 가릴 정도의 큰 우산을 좋아했다. 예전에 자동우산이라 불리던 2단 우산은 여러 해를 내 첫 장난감처럼 사용되었지만, 곧 가방에 쏙 들어가는 3단 우산에 밀려 보일러실 옆 공간에 쳐박혀 있었다. 그리고 3단 우산은(홀로 쓰기에 작은 감이 있긴 하여도 용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기에도 내구성에도 밀려, 정말로 몹쓸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단순하고 우직한 장우산이 차지했다. 여리여리한 그녀의 몸에 단 한 방울 빗물도 뭍히고 싶지 않았던 나와 내 우산의 고결한 생각과는 다르게 비오는 날은 언제나 바람이라는 고난을 선물했다. 방향을 비껴드느라 언제나 내 한 쪽 어깨는 젖어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나는 젖지않은 그녀의 나른한 어깨와 젖은 내 어깨를 번갈아 보며 내심 즐거워했다.
빌딩 벽면의 광고 하나조차도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떠들던 동안에 잠시 내게서 멀어져 있던 그녀는 단 둘이 있는게 좋다던 그녀의 말처럼, 홀로 있는 순간에 더 가깝게 다가왔다. 뱃 속에 들어있는 술이 열기를 품는다. 이 열기가 지나가고 나면 아마도 내 장기들은 그만큼의 열을 잃을 것이다. '몸이 차가워지겠지.' 자켓을 다시 여미고, 비가 내리기를 빌면서 눈을 감았다.
"아저씨, 일어나요."
다시 눈을 뜨자, 나는 종점이다. 후다닥 내려서 집 쪽을 향해 걸었다. 어차피 집이 멀어서 택시를 타야하는데도 왠지 걷고 싶어져서 무작정 걸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밖은 적막하다.
음악은 내게만 들린다.
신나는 곡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원래도 잘 추는 춤은 아니지만, 스탭이 꼬여 무릎을 꿇은채로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기우제를 지내는 제사장처럼 나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궂은 하늘에서 기다리던 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개인의 슬픔이 온 세상을 뒤덮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뒤편에서 오던 한 대의 택시 안에서 기사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자 나는 일어나 무릎을 털고, 개인의 슬픔이 미치는 범위가 귀에 꽂은 이어폰과 같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부끄럽고 속상해 도망치고 말았다.
갈등을 맺는 수단이 직접적이든, 이야기를 통한 대리충족이든.
이제 엄마가 등장할 차례죠.
작가와 엄마의 대화와 정표의 등장으로 얘기를 끝맺으시면 될 것 같네요.
남자는 3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