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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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10선 (11) 2024/05/04 AM 09:55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시인만세’를 위해 KBS에서

2008년 10월, 3주에 걸쳐 인터넷, 우편엽서, 면접 설문을 통해 

1만8천298명, 시인 1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결과



10위 - 김소월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운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9위 - 도종환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8위 - 정지용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7위 - 이형기 <낙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6위 - 한용운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 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5위 - 천상병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4위 - 윤동주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볕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3위 -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위 -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가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위 - 김소월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연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 즈려발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아니눈물 흘리오리다.






1위- 김소월 <진달래꽃>

2위- 윤동주 <서시>

3위- 김춘수 <꽃>

4위 - 윤동주 <별 헤는 밤>

5위- 천상병 <귀천>

6위- 한용운 <님의 침묵>

7위- 이형기 <낙화>

8위- 정지용 <향수>

9위 - 도종환 <접시꽃 당신>

10위- 김소월 <초혼>




젊었을 때는 

많이 읽고 감동받고 그랬는데

세월이 흘러 먹고 살기 급급해서 

멀어져 가고 있네요 


어떤 시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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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웬즈데이    친구신청

시를 안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그러고보니 요즘은 책도 잘 안보게 되는것 같아요....

Nang A    친구신청

오랜만에 책 보려고 하면 읽기가 힘들더라구요
한참 단련되어있던 읽기 능력이 퇴화되고 있나봐요 ㅎㅎ

체셔토깽이    친구신청

시도 책도 현대인들에게서 떠나간지 오래지요.

러시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있을 적에 만난 러시아 애에게서
한국 사람들은 더 이상 시를 읊지 않는다고 하니 당황해하며 놀라던 기억이 나는군요...

Nang A    친구신청

한참 때는 가방에 시집 한권씩 넣고 다녔는데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죠 ㅎ

Nang A    친구신청

박참새님 글 올리신 거 본 기억이 있네요
개성있더군요 ㅎ

구름나무    친구신청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먼 후일 - 김소월

제 인생 가장 아름답다 생각하는 시 입니다.

Nang A    친구신청

참 좋은 시죠 ㅎ

:OIOIO:    친구신청

석문(石門)





조지훈 / 시인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볼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우는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남긴 푸른 도포자락으로 이 눈물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줄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허공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모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전 석문을 좋아합니다.

Nang A    친구신청

좋은 시 감사합니다 ㅎ

게바라최    친구신청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저는 조지훈 시인의 낙화 좋아합니다^^

Nang A    친구신청

좋은 시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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