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 보고 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스포를 안하려 최대한 노력은 하지만
조오금 포함될 수 있습니다.
좀 내용이 길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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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전형적인 SF입니다. 노골적 사이파이에요. 흔히 최근 많이 나오는 수퍼히어로 물이나
퍼시픽림 같은 서브컬쳐 영화와는 다른 좀 더 "전통적인" SF 장르에 충실합니다.
'반란'을 소재로 했으나 SF 전쟁 물이라기에 스케일이 너무 작고요. 스타워즈 처럼
액션 어드벤처 역시 아닙니다. 영화는 상당히 어둡습니다. 영화는 메시지와 상징으로
가득차 있고 상당히 프로파간다 적입니다. 미래지만 노골적인 계급사회고 심지어
후반가서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까지 제시합니다. 이 영화는 휴머니즘과 도덕이
거세된 합리성이라는 가치가 대립하는 영화 라는 것이죠. 미셸 푸코의 '광기의 시대'가
생각이 나더군요. 이 이야기는 밑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SF면서 액션이 적고 어둡
고 메시지가 가득 담아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블레이드 러너 시절의 SF 영화
들이 생각나더군요. 지극히 철학적이고 어둡고 메시지가 가득하며 사실 재미는 그다지
없는 과거 SF 영화들이요.
이 영화는 SF 중에서도 세부 장르로 따지면 포스트-아포칼립스 무비입니다. 반면 영화적
구조는 오히려 로드무비와 재난 어드벤처 영화의 결합 같습니다. 사실 월드워Z 때도 영화가
후반이 좀 이런 느낌이었는 데 설국 열차는 영화가 전반적으로 이렇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종일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공간은 밀폐되고 위험이 산재하며
하나둘씩 동료를 잃습니다. 클리셰라면 클리셰죠. 캐릭터 영화인것 같았던 광고와 달리
원톱영화에 가깝고 캐릭터는 영화적 메시지를 위해 소모됩니다. 캐릭터가 이렇게 소모되니까,
캐릭터 들이 보여줄게 그다지 없습니다. 단선적일 수 밖에 없어요. 비중이 높은 미국대장이나
틸다 외의 캐릭터는 보여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송강호도 맡은 역할이 제한적이고 대사도
적기 때문에 후반가기 전까진 그냥 사이드 킥 정도고 사실 후반에서도 맡은 소임에 비해
엄청난 모습을 보이진 않아요. 오히려 고아성이 인상적이더군요.
이런 부분 때문에 (+ 캐릭터 포스터 광고)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 들로 인해 비평을
받기도 하는 데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어벤저스 처럼 캐릭터를
다 끌고 갈만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캐릭터들은 커티스(길리엄)와 윌포드(메이슨) 사이에 낀
악세사리 정도입니다. 잔혹하고 어두운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 하기 위한 장기말인것이죠.
대신 캐릭터의 묘미를 살려 주는 것은 다름아닌 커티스와 메이슨입니다.
이 영화는 에반스와 틸다를 위한 영화였고 나머진 왜 굳이 비싼 돈으로 캐스팅했는지(...) 좀
아쉬운 부분. 이렇게 소비할거면 배우진을 좀더 저렴하게 써도 되었을 텐데 이건 제작자가
너무 봉감독의 욕심을 들어준 셈입니다. (박찬욱 감독 본인도 스토커에 니콜키드먼 쓸때부터
알아봤어야) 몇명은 까메오 수준입니다.
액션 장면은 사실 대단히 볼건 없습니다. 그래도 구도나 컷, 편집, 실험성등 은 신경쓴 듯 보
여요. 미장센이나 편집 정도는 잡았달까요. 하지만 액션의 비중이 크진 않습니다. 홍콩 영화의
반도 안나옵니다. 이 영화를 SF 액션 어드벤처 쯤으로 생각하셨다면 안보시는 게 좋습니다.
스타트렉하고는 정반대에 위치하는 영화입니다.
봉준호가 마더 때도 히치콕이나 코엔 형제 영화에서 보여주던 편집과 타이밍, 소리를 통한
서스펜스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의 "도끼"를 이용한 액션 시퀀스에도 그런 면면들이
보입니다. 좋아요. 하지만 대단하다 까진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슬로우 액션을 싫어해서 좀 타이
밍을 잘 활용해서 박자감을 통한 타격감이라도 잘 살려 맞췄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너무
이미지 적인 느낌이 들더군요. 영화로 배가본드를 보는 느낌?
FPS 게임을 연상 시키는 1인칭 적외선 카메라 장면이 있는데요. 유니크 하지만
이젠 워낙 흔해진 기법이라 관객들이 우와 하진 않을 것 같더군요. 그래도 멋지게
연출하긴 했습니다. 메이슨이 저쪽 보라고 할땐 좀 웃었어요.
영화가 좁은 공간에서 싸우다 보니 전반적으로 컷이 좁습니다. 당연히 롱샷, 와이드샷은 적고
이스타블리징샷(장소 설명을 위한 넓게 배경을 보여주는 샷)같은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공간이 주는 압박감은 관객을 꽤나 지치게 만들어요. 많은 일반 관객들은 피곤해 했을겁니다.
이 좁은 공간이 주는 서스펜스나 압박감이 핸드 헬드캠이나 좁은 화각의 앵글과 겹치면서
가뜩이나 어두운 영화가 더 어둡게 느껴집니다. 하필 조명도 어둡게 때리더군요.
근데 의외로 클로즈업은 많지가 않더군요. 유명 배우들 썼으면 남용 할법도 한데 주요배역
외에는 좁은 공간을 자체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네요. 기차 안이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각인 시키고자 한 것이겠죠.
예전 크리스 에반스의 인터뷰(유니크하게 촬영한다고 한 발언)나 틸다가 봉준호를 히치콕
같다고 말 한 것은 봉준호 특유의 촬영때문이겠죠. 봉준호 감독은 스토리보드를 작성하고
그 스토리보드 대로만 촬영하기로 유명합니다. 보통 그렇게 안하죠.
한 씬을 찍을때 카메라 여러대로 찍고 가장 멋진 샷으로 편집하기 마련인데 봉준호는
스토리보드를 아예 확실하게 해놓고 딱 그것대로만 한다는 겁니다. 마틴 스콜세지 아니면
요즘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어요. (3D애니메이션 조차 이렇게 안합니다. ㅎㅎ. 한장한장이
노가다인 2D애니메이션이 아니고야)
예전 히치콕이 이렇게 찍었다고 하죠. 아마 그런 이유로 저 두 배우가 그런 인터뷰를 한 것
같습니다. 뭐 살인의 추억 이후 모든 영화들이 잘 나왔으니까 저 방법이 틀렸다고 말하긴
그렇죠. 다만 그래도 상황에 맞춰서 좀 더 많은 카메라로 찍고 많이 세분해서 편집했으면
좀더 다이나믹 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영화가 좀 전반적으로 많이 불친절 합니다. 예를 들어 초반에 애들을 잡아가는 이유를
맨 뒤에 가서야 가르쳐 준다던가 영화 설정에 대해서도 중반쯤 가야 하나둘씩 나오는 점,
캐릭터 들에 대한 서술적 설명도 거의 없죠. 사실 대사들이 많지도 않습니다. 세익스피어 적인
서사적이거나 시적인 대사도 없고요. 송강호가 인터뷰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다 외워왔다고
대단하다고들 하던데 사실 커티스와 틸다, 윌포드 빼고는 그다지 외울 것도 없겠더라고요.
그래놓고 맨 나중에 가서는 '연극' 적으로 풀어냅니다. '대담'이 이어지는 거죠. 클라이막스
씬에서 저렇게 풀어 낸다는 것은 정말 이야기나 그 대화 내용이 자신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관객에 반정도는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배신'에 관한 반전이 있죠. 아니 배신이라고
하기도 뭐합니다. 오히려 스파이라고 해야하나? X라고 할까요? 너무 노골적으로 X를 커티스가
처음 만나는 공간 뒤에 W 마크가 있어서 전 좀 의문이었거든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초중반까진 그 W에 도청기가 있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전화기 였을줄은)
이런 대사를 통한 연극 적 갈등 해소 역시 다소 불친절하다면 불친절 합니다.
치고 박고 싸울 줄 알았더니 논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논쟁이 아니라 훈계라고
해야겠네요. 하지만 전 이런 점이 좋더군요. 대사가 적던 영화가 후반에 말싸움이나 하는
꼴이 되려 맘에 들었습니다. 이것도 "저예산 SF" 장르 영화들이 예산을 아끼면서도
철학적이면서 많은 생각을 남게 하는 전형적인 장르의 재미 아니겠습니까?
말에 대해서 말이 많은 데 사실 뭐가 문제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나쁘지않은 결말로 생각되요.
이렇게 어두운 영화가 권선징악 혹은 함무라비 법전 복수극으로 끝나거나 혹은
스포일러라 말할수 없는 커티스의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끝났어도
결국 이야기는 진부했을 것이고 취향에 따라 욕을 먹었을 겁니다. 이런건 취향차가 커요.
라그나로크 식의 결말 역시 진부하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희망적 메세지를 남긴 것은
시커멓고 텍스쳐 많던 세트 영화가 밝은 흰색의 눈 밭을 보며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나요? 눈을 피해 기차 안에 들어왔지만 하얗고 순수한 바깥 세상을 동경하는 것
그것은 이 영화가 디스토피아 적 결말은 가진 영화는 아니라는 이야기죠.
사람들이 이 결말에 실망하는 점은 반란의 성공 유무나 혹은 차라리 잔혹할 정도로
디스토피아 적인 결말(커티스의 선택, 부당거래 같은)을 생각 했는 데 되려
"묵시록" 적 결말에 라그나로크 이후의 세상을보는 듯한 결말에 납득을 못하는 거겠죠.
사람들은 결말을 원했는데 상당히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을 마지막에 배치했으니까요.
이 영화는 "계급 사회" "구조주의(시스템)" 에 대해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입니다.
디스토피아 적 결말이었다면 "그래 세상은 이따위야" 식의 허무주의 영화가 되었을 것이고
반란이 성공하면서 끝났다면 스타워즈/스타트렉 류의 "액션 어드벤처 SF"로 찍었어야
했죠. 윌포드는 사회 시스템의 상징입니다. 윌포드가 말하죠. 탑승객이 인류고 기차가
세상이라고. 그리고 기차에 탄 사람들은 미치광이라고. 기차가 감옥 같다는 이야기도 하지요.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책인 "광기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 같은
책들이 떠오르더군요. 윌포드는 도덕을 거세한채 합리성을 바탕으로 인류 생존을 위함이다라는
대의를 내새웁니다. 커티스는 윌포드가 이야기한 충격적인 사실에 절망하지요. 극단적인 상황
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결국 윌포드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죠. 휴머니티가 가벼운
가치도 아니거니와 결국 죽는 것은 꼬리칸이고 사실 상당히 당연한 것이거든요.
사실 아 몰라 그럴바엔 다죽자 식의 카미카제 결말이 될수도 있었지만
이상주의자인 냄궁민수와 기차에서 태어난 희망을 상징하는 요나의 행동이 이야기의 디스토피아
적 결말에서 그래도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남기고 영화를 끝내게 하는 것이죠.
코카콜라 PPL 짐승의 경우도 황당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이 많지만 누가봐도 메타포, 심볼이잖아요?
그것도 알기 쉬운.
다시 열린 결말이고 그래도 조금은 희망적이다 라는 점은 봉준호 스럽기도 합니다.
원래 봉준호 영화가 결말이 참 생각할 거리가 많잖아요?
그밖에 창문 밖 전경은 너무 3D 애니메이션 스러워 오히려 덜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머 저예산이니까요.
메이슨 역의 틸다는 너무 인상적이라서 커티스를 잡아 먹을 수 있을 정도더군요. 좀더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랬다간 커티스 안습이라. 그래도 크리스 에반스 원톱영화라서
틸다를 아낀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다른 역의 비중을 줄이고 라도 좀더 비중을 줬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리고 크리스 에반스는 아마 일생 일대의 연기를 했습니다.
몸만 쓰는 캡틴 미국과는 다르죠.
PS. 이 영화를 신자유주의 어쩌고 하는 것은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좌파 노릇하려거든 책을 좀더 읽고 영화도 한참 더 봐야 한다고 봐요.
요약
- 진중한 메시지를 담은 어둡고 전통적인 SF영화. 훌륭한 영화이다.
다소 고전적인 장르적 묘미를 가지며 두 배우의 호연이 돋보인다.
액션은 나쁘지 않으나 새로울 것은 없고 이야기는 서사적 재미는 덜하고
다소 문학적이고 상징적이므로 액션 영화를 원한 분에게는 복잡한
2시간이 될 수 있을듯.
매우 추천!
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