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시즌2 첫번째 에피소드보니 옛날 생각 떠오르네요.
조석봉 일병 때도 갑갑하긴 했지만 에피소드 초반부터 제 얘기 같아 숨이 힘들더라구요.
호열이가 김루리 일병 관물대 열었다가 뉴타입 있는 거 보고 한 마디 하잖아요.
에효 너도 군생활 힘들겠다 뭐 그런.정확히 제가 이등병 100일 휴가 다녀오면서 뉴타입 사오니까 행보관이 저보고 한 말이었거든요.
저는 06군번 화천의 한 부대 나왔습니다. 몸무게 43kg에 몸에 작게 여럿 하자 좀 있었는데
마침 그 때 장혁이랑 송승헌 병역비리 걸려서 그 때는 팔 하나 쯤은 없어야 공익 가는 분위기였어요.
운 나쁘게 강원도, 그 중에서도 특히 훈련 많은 부대의 땅개로 떨어졌어요.
그 때 이등병 월급이 3-4만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43kg가 25kg 군장 메고 오르막길이 대부분인 30-40km를 다니라니
이등병 때는 토하고 낙오 맨날 하면서 개처럼 쳐맞았었습니다.
다른 부대는 낙오하면 차도 태워주는 것 같던데, 저희는 그냥 늦게 따라오는 것 뿐이었습니다.
늦게 도착하면 텐트 안치고 꿀 빨았다고 끌려가서 또 맞았었죠.
욕도 드럽게 먹고 인신공격은 일상이었습니다.
널 낳은 부모가 불쌍하다느니 부모는 어떻길래 너 같은 게 나왔냐느니
매일이 스펙타클했었죠.
열심히 하면 변한다지만 그 부대는 초반에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체력적 적응을 하기 시작한 건 결국 일병 말 쯤 이었을까요.
그 때 까지 체력단련 시켜준다면서 부분대장은 저를 매일 운동장 뛰게 하고
계단내리막 전력질주, 추석에는 취권영화 보고서는 거기서 본 걸 시키면서 깔깔거리고는
PT비라면서 매달 2만원을 뜯어갔었습니다. 낙오 안하게 되니 PT는 안 받아도 되겠다고는 하는데,
수고한 선임에게 퇴직연금은 줘야하지 않겠냐면서 자기 전역 때까지 매달 담배 한 보루 사라고 하더군요.
결국 그렇게 했었습니다.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1-2달마다 빡센 훈련이 하나씩 있었는데 훈련 중 뒤져가던 인원들도 쵸코바와 물 한 모금에 깨어나는 걸 보니
저도 쵸코바를 사고 싶더라구요. 근데 도저히 이등병 일등병 월급에서 있는 대로 뜯기니
돈이 안 남아서 집에 5만원만 보내주면 안되냐고 전화를 했었습니다. 원래 저와 사이가 안 좋던 어머니는 군인 놈이 이등병 때부터
벌써 돈타령이냐고 핀잔만 받았죠. 진짜 힘들었던 것 같네요. 믿을 수 있는 사람도 기댈 수 있는 사람도 없었어요.
김루리 일병은 어머니라도 계셨지..
타소대 동기 이등병들은 가끔 마주칠 수 있어도 에이스 동기는 이미 저나 다른 타소대 동기들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타소대에 저와 비슷한, 소위 폐급 친구들은 모이면 개쳐맞는 거 작당모의 해서 헌병대에 찌를 거라고 전 중대가 주시하며 못 모이게 했었죠.
그러다가 언젠가 대대가 부대원들 부대 생활 조사를 한다더니 행보관이 관물대를 까며 이병 일병들이랑 일대일 면담도 나누더군요.
그 때 저와 몇몇 부대원들 관물대에서 뉴타입이나 스즈미야 하루히 같은 라노벨들이 나왔고,
며칠 지나니 부대원들 사이에서 해당 인원들에게 별명이 붙여지더라구요.
사회부적응자 클럽이라고. 당시 종합격투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병, 일병 상대로 저녁점호 시간에 기술 연습하며 놀아도
중대 간부들에게 부대 분위기 살리는 건강한 전투원이라 불렸고, 축구 좋아하는 선임들은 이병, 일병들을 골대 앞에 원하는 위치에
차렷시키고는 인간 핀볼로 골넣기 놀이를 하고 놀아도 대대 축구 대회에서 축구 잘하는 에이스들이라 평가 받았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며 살다 나중에 일병 말 쯤에 제 소대장이 사단 체육 대회 때
사단 본부로 이동 후 저와 맞후임 둘에게 잡일 시켜 놓고 까먹은 채 소대원들이랑 부대 복귀하는 바람에
옆소대 소대장에게 들러붙어 같이 복귀하라고 전달 받았는데, 그 타 소대장은 이미 술에 엄청 꼴아 있었었습니다.
뭐에 그리 화가 난 상태였는지 모르겠지만 도로를 타고 복귀 행군길 중 들고 있던 빈 맥주 박스를 던졌고 마침 후미에 있던 제가 맞았습니다.
정수리가 찢어지고 뇌진탕이 와서 2차선 도로에 쓰러져 꿈틀댔지만 그 소대장은 제가 뺑끼친다고 하고 버려두고 지 소대원들과 함께 가더군요.
뇌가 제대로 흔들려서 머리 속에서 어?왜 이러지? 생각은 어렴풋이 나는데 몸은 손가락 한마디조차 조종이 안되더라구요.
떠나는 소대 중 한 명이 소대장에게 욕을 하며, 제게 뛰어와서는 일으켜 부축 해줬는데
그 때 부터는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화낼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돌을 들고 그 소대장에게 뛰어갔었습니다.
반드시 저 머리를 국거리고기마냥 부숴야 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사람이 진짜 도니까 머리 말고 몸의 느낌이 안 들더라구요. 머리의 존재나마 느껴지는 건 꼭 뭔가를 죽이고 말겠다는 분노로 가득해서였구요.
5명 정도가 막으려 했지만 쉽게 제꼈던 것 같아요. 8명 쯤이 찍어눌러 막는 사이 그 소대장이 남은 인원들과 함께 뛰어 도망가고,
피칠갑 한 채 돌 들고 소리 지르며 쫓아 뛰어 복귀하니 타 연대 높은 대가리들도 보고 소소한 이벤트로 소문이 났던 것 같습니다.
제 대가리 짼 소대장 놈은 부대 밖으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결국 그 날 잡지 못했습니다.
소대장 중대장에게 얘기해봤자 뭉개기 바쁜 거 1년을 보아왔으니 모르겠고, 피칠갑 한 채로 대대장에게 갔었습니다.
부대 전입 오고 겪은 모든 걸 얘기하고 그 날 겪은 일도 얘기했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했었습니다. 저도 영창 갈 거 각오하고 지휘보고체계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얼마나 썩은 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대대장은 높은 사람이라 가장 밑바닥 굴러가는 거 안 보여서라고 믿고 싶었나봅니다.
보이면 레볼루숑까지는 아니어도 부대 돌아가는 꼴에 짜증이라도 내주길 바랬습니다. 그걸로도 충분할테니까요.
결과는 병원 다녀오라고 2박3일 휴가를 얻고,
제 머리를 터뜨린 소대장은 정훈장교로 보직변경.
후임들을 구타하고 착취하던 이들에게는 아침점호 시간에 주의로 끝나더군요.
그냥 그렇게 묻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대장 진급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대대장 진급에 영향이 가면 안되니 제 사건은 없는 일로 되었고,
애초에 모든 것의 시작은 대대장님의 진급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이에 맞춰 예방하고자 사고 칠 수 있는 애들은 누구일까 회의 하던 중에
애니 좋아하고 만화 좋아하는 애들이 특히 군대 적응 못한다고 간부 회의에서 얘기가 나오고
그렇게 구별된 해당 인원들을 그린캠프에 일괄등록 강제로 보내져
돌아오는 대로 전 부대원들이 본격적으로 해당 인원들을 꿀 빨고 온 정신병자 취급을 하기 시작하니
사회부적응자 클럽 인원들에게서 결코 닿지 않을 마음의 편지도 나오고, 헌병대에 신고가 나가려다 인터셉트도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한창 스트레스 받던 그 타 소대장이 축제 때 술에 꼴아서 던진 맥주 박스에 제가 맞은 거더라구요.
사건의 전말을 다 듣고난 이후에도 어디부터 사건이 시작되었구나 단정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다 빠짐 없이 거지 같았네요.
상병 때부터 그나마 낙오를 안하고 새로이 전입 오는 사회부적응자 클럽이라 낙인 찍히는 후임들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제 지위가 높아져도 제가 못보는 곳에서 뉴타입과 라노벨 좋아하는 친구들은
피식자로서 포식자들에게 짤없이 괴롭힘 당하고 착취 당하더군요.
전 저 나름대로 같이 있어주려 하고 커버 쳐주려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더라구요.
그러다 전역 했었습니다.전역할 때 남의 인생이니 아끼는 후임 둘에게 한 마디만 해줬었습니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근데 어디까지 안 참을 지는 잘 봐야 할 거라고..
제가 있던 부대만 x같은 거라 생각해왔는데, DP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나봅니다.
지금도 그러나 궁금은 합니다. 같은 계급끼리 생활관 같이 쓴다는데, 그건 그거대로 x 같은 뭔가가 있을 것 같긴 한데..
급결론은..군대에 있으면서 마음이 마침내 터져버리는 순간에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