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 게시판 읽다가 문득 같은 환경이어도 자존감이 인생을 좌우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끄적여 봅니다.
6살정도때 까지의 기억. 아버지는 한살 터울인 형만 편애하고 나는 엄마가 바람펴서 낳은 자식이라고 하면서 대놓고 싫어했다. 물론 난 아버지의 친자식이다.
어머니한테 들은얘기이긴 하지만, 내가 아기였을때 이불로 얼굴을 덮어서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허구헌날 어머니를 때렸다. 6살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는게, 도끼로 찬장을 때려부순 일과 TV를 박살낸 일. 실제로 엄마가 맞는걸 목격한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멍들어있는 어머니 얼굴을 기억한다.
내가 7살때 엄마는 나만 데리고 집을 나왔다. 7살인 나는 유치원도 못가고 집에만 있었고 어머니는 일하느라 밤 9시 넘게 들어왔다.
몇번 이사를 더 다녔는데, 지금생각해보면 밤만되면 어머니 보고싶다고 매일 울어서 그랬던것 같다.
내가 8살때 한살터울 형까지 어머니가 데려왔다. 아버지는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인생을 살고있었고 매일 술에 절어 살았다고 한다.
형은 머리가 매우 똑똑해서 나 1학년 형 2학년일때 아버지 월급날에 내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지금생각해보면 2학년밖에 안된 형이 어떻게 아버지사는 집을 알고있는지 미스테리 이다. 하여튼 형은 나이에 맞지않게 똑똑했다.
아버지 월급날에 가면 아버지는 나에게 잘해주었다. 같이 안사니 보고는 싶었던 모양이다. 이것저것 과자도 많이 얻어먹고 가끔씩은 자고왔던것 같은데 어머니랑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어렸을때는 잘못만 조금 하면 어머니한테 개맞듯 맞았다. 빗자루로 뚜드려맞고 발로 밟히고 뒤통수맞고 아무튼 맞을때는 죽도록 맞았다.
여자혼자 아들둘 키우느라 매일 일나가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돈도없어서 단칸월세방을 전전하며 살았으니 스트레스가 엄청났을것이다.
유치원을 못다녀서 한글도 못떼고 학교에 들어갔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육성회비 (80년대에는 그런걸 납부했다)를 내지 않았다고 선생님한테 머리를 맞고 모욕을 듣기도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는 도둑질도 했다. 엄마돈을 몰래 빼쓰기도하고 문방구에서 장난감훔치다 걸리고 그랬다.
중학교때도 도둑질 하다 걸려서 정학을 맞기도했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학원은 꿈도못꾸고 삼촌들이 가끔 주는 용돈이 그나마 조금 사람답게 살게 해 주었다.
고등학교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1년후 엄마가 집을 나갔다.
두 형제를 키우느라 빚을 많이 지셨던 모양이다.
삼촌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은 꿈도못꾸고 바로 취업을 해야했다.
3년정도 후 어머니는 빚을 다 청산하고 다시 돌아오셨다.
그후로도 계속 삼촌집에 얹혀살았다. 뭐 돈이없으니....
뭐 제 인생이야기를 끄적여 봤습니다.
그냥 보면 아마 굉장히 불행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실겁니다.
그런데 전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자존감은 매우 높았습니다. 자존감이 외향적인 성격으로 표현되는건 아니었지만, 내성적임에도 저는 제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학교폭력도 좀 당하고 괴롭힘도 많이 당했는데, 그런게 제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일이 겪으면 그때뿐이고 말았거든요.
겉으로 보이는건 아버지도 안계시고 찢어지게 가난한 보잘것 없는 인생이지만, 저는 기계를 좋아하고 장난감과 그림그리는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것들은 남들보다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폭력을 당해도 그냥 그때뿐.. 집에와서는 제할일 하고 좋아하는일 하고 재미잇게 지냈습니다.
친구들이 제가 편모가정인걸 알게되면 몰랐다고 미안해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안계신게 저는 부끄럽지도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삼촌댁에 얹혀사는것도 부끄럽지 않았고 고졸인것도 안부끄러웠습니다. 가난한것도 안부끄러웠고 그냥 사람마다 환경이 다를뿐인거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고싶은걸 못사는건 좀 우울하긴 했죠.
어쨌든 그냥 어렷을적 격은것들은 '나는 저런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라는 교훈이 되었을 뿐입니다.
지금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벌이는 상당히 잘 버는축에 속하고 아이도 하나 낳아 잘 키우고있습니다.
보통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 부모님과 똑같이 된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게 전혀없네요.
내가 겪어서 나빴던것을 내가 하는것은 정말 멍청한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죠.
와이프가 좀 스트레스를 받게 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이고 나름 잘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밝고 똑똑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습니다.
자존감이란게 타고나는건지 키울수있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환경이 힘들고 상황이 어려워도 나는 나일뿐 남에게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어려운환경도 잘 이겨내는것 같습니다.
어려운일을 당하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 보면 그럴때일수록 더 힘내고 이겨내야 자신이 행복할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 분들이 그걸 몰라서 힘들어 하는건 아니겠지요. 모든사람들이 좀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두서없이 휘갈겨 봤습니다. 태클 환영.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잘 살아갈 수 잇는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