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체제를 구축하는 미국의 국토안보부
모든 전화와, 모든 메일. 모든 인터넷 접속을 감시한다
공항검색에서 개인 이메일까지 … 최첨단 전자감시시스템 가동
빅 브라더(Big Brother)’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독재자로, 개인의 생활과 사상을 감시·통제하는 존재의 대명사로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최근 미국 민주당 소속의 일부 의원들과 인권단체들은 신설되는 국토안보부가 테러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빅 브라더’ 식의 통제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며 설립 자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미 미 의회에서 통과되고 부시 대통령이 승인한 국토안보부의 창설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토안보부는 대테러 안보라는 차원에서 국민을 감시·통제할 목적으로 정보기관들이 비밀리에 사용해 왔던 최첨단 전자 감시 시스템들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사회기반 시설과 실생활 환경이 전자통신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조성되어 있는 미국 사회는 모든 사람의 사생활이 데이터로 남겨지기 때문에 빅 브라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 공세가 국토안보부 창설로 확대되면서 정보기관의 인권 침해와 사생활 감시에 대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막강한 권한과 조직을 부여받은 국토안보부
올 3월에 정식으로 발족되는 부시 행정부의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는 1944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국방부를 창설한 이래 최대 규모로 신설되는 연방 부서이다. 규모면에서 국토안보부는 국방부에 이어 두 번째로, 다른 부서에서 흡수한 17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력과 함께 창설 첫 해인 올해 무려 375억 달러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다.
국토안보부의 1차적 임무는 미국을 겨냥한 국내외의 테러공격을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임무수행을 위해 국토안보부는 22개 부처를 흡수하여 통합 운영할 계획이다. 부서 내 조직들은 크게 국경안전국, 정보분석국, 인프라보호국, 생화학무기관리국, 비밀경호국(SS)을 비롯해 기존의 연방재난 긴급관리청(FEMA) 등 총 5국(局) 1청(廳)으로 구성된다.
국경안전국은 법무부의 이민국(INS), 재무부의 관세국, 교통부의 해안경비대, 교통보안청을 흡수해
국경과 해안 경비, 미 본토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통제·관리한다. 연방재난긴급관리청(FEMA)은 비상시 시민 대피와 구조를 전담한다. 정보분석국은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협조를 바탕으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9·11 테러를 거울삼아 신설되는 인프라보호국은 백악관, 연방청사, 의회의사당, 원자력발전소 등과 같은 주요 사회기간시설이나 건물을 보호하는 일을 맡는다. 생화학무기 관리국은 화학, 생물, 방사능, 핵과 관련된 테러를 집중 연구하고 대처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그동안 고위급 인사들을 은밀하게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경호국(SS)이 재무부 소속이었다가이번에 국토안보부로 흡수되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민간인의 사생활을 제한하는 각종 법령들이 국방부,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주정부 등 정부기관 곳곳에서 발효되어 왔지만 지난해 11월 19일 미 상원에서 아무런 수정 없이 통과된 국토안보부법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이 법안에 따라 국토안보부는 인터넷상의 대화 내용을 무작위로 감시하고 사용자가 온라인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파악해 사용자의 실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인 민주주의와 기술센터(CDT)는 “이 법은 인터넷을 통해 미국인의 개인 정보를 축적, 분석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국토안보부에 부여하고 있으므로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가 우려된다.”라고 지적한다. 거대 조직 국토안보부의 덩치와 부여된 막강한 권한에 비추어볼 때, 사이버 공간상에서의 인권침해 행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초대장관 톰 리지는 부시가(家)의 측근
국토안보부의 장관은 행정부 내 국방장관이나 법무장관과 같은 장관급 지위로 미국 내 테러위협과 관련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전쟁이나 기타 군사적 방어활동에 개입할 권한은 부여되지 않지만, 미 본토의 안보와 관련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밖에 비자 발급 업무를 관할하며, 외국인에 대한 비자발급을 거부할 수 있는 국무장관의 전통적인 권한도 이양 받게 된다.
국토안보부의 초대장관으로는 1년 가까이 백악관 국토안보국장을 지낸 톰 리지가 지목됐다. 그가 적임자로 발탁된 데에는 20년 넘게 부시 대통령과 스스럼없이 쌓아온 신뢰가 컸다. 1980년 아버지 부시의 대통령 출마를 위해 펜실베이니아 주(州) 이리 카운티에서 선거 조직책으로 일하면서 아들 부시와 친해졌다. 이러한 인연으로 1982년 부시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내리 6선 의원으로 피선되었으며 1994년에는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는 2000년 대선 때 부시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유력한 부통령 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하원의원 시절 낙태 반대를 지향하는 공화당 정책과 달리 찬성에 표결한 전력 때문에 탈락됐다.
9·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의 요청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사임하고 백악관 국토안보국장으로 들어갔다. 톰 리지의 중용은 대테러 전쟁과 미 본토의 안보라는 당면한 위기 상황에서
그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신뢰를 엿볼 수 있다. 톰 리지는 그야말로 부시가(家)의 측근 중 측근으로
백악관 부시 대통령의 집무실을 수시로 드나드는 몇 안 되는 핵심 참모 중 한 사람이다.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되는 감시시스템
사생활 침해 여부로 논란을 빚어온 인터넷 감청 시스템으로 연방수사국(FBI)에서 사용해 온 ‘카니보어(Carnivore)’, 국방부 첨단연구계획국(ARPA)이 인터넷상에서 의사소통 데이터를 감시할 목적으로 만든 ‘종합정보인지(TIA: Total Information Awareness) 시스템’, 여기에 경찰의 사이버안보강화방안(CSEA) 등을 더하면 미국 사회 전체를 촘촘한 감시망으로 엮어 놓을 수 있다. 기존의 감시 능력과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될 국토안보부가 구축할 빅 브라더 체제의 밑그림을 소개한다.
공항 보안
9·11 테러 이후 보안의 허점이 드러난 미국 내 대부분의 공항들은 단일화된 검색체계로 보안 강화를 꾀하고 있다. 공항보안의 초점은 테러리스트를 색출해내는 데 있다. 공항 입구로 들어서면 톨게이트에 차량용 스캐너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서 투시용 레이저를 쏘아 통행하는 모든 차량의 폭발물 탑재 여부를 검사한다.
공항에 도착한 탑승객들이 스마트 ID 카드를 발급 받는 동시에 신원조회, 지문, 얼굴 모습, 음성 패턴, 홍채 인식 등의 방식으로 개인의 모든 정보가 국토안보부의 종합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휴대 물품과 화물에도 무선 주파수 감응 장치(RFID)가 들어있는 전자추적 티켓에 부착되어 즉각적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비행기의 객실, 주방, 조종실, 기체 외부까지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지상의 안전요원에게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이러한 공항보안의 첨단화는 대테러 안보 분야 중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재정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최우선 과제로 추진될 전망이다.
해안 경비
미 군사전문가들은 미국 내 20개 대도시 중 14개 도시, 곧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9만 5000마일에 달하는 해안선과 접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해안을 통한 테러공격을 우려한다. 그리고 테러범들이 생화학무기나 방사능 폭탄 등을 360개가 넘는 미국 내 항구로 몰래 반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02년 6월 9일 서부 시애틀 지역에 스쿠버를 이용한 테러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국토안보국은
해안경비대를 통해 미 전역의 항구, 항만 연안과 강에 대해 경계령을 내린 적이 있다. 국토안보부는 그 기간에 즈음하여 25명의 테러리스트가 컨테이너를 이용해 미국 항구로 밀입국한 후 잠적한 것으로 보고 추적 중이다.
매년 개인보트 1700만 척과 상선·여객선 1만 척가량이 미국의 해안을 드나들고, 20억 톤에 달하는 교역 물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입항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통같은 보안 체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미 해군과 해병대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미 해안경비대는 국토안보부의 신설과 더불어 그 역할과 임무의 중요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해안경비대의 보안 강화 방안도 새롭게 짜여지고 있다. 국토안보부로 편입되면서 일반적인 경계근무에 첨단 기술을 이용한 대테러 작전망을 통합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음향 탐지기와 특수훈련을 받은 대테러 부대도 투입되어 선박을 보호하고 비상사태에 대응할 방침이다.
과거의 해안경비대는 전체 인력 중 2%인 약 3만 5000명만이 해상보안 활동을 수행했는데 주로 어획량 쿼터 시행, 마약 밀수범과 해양 오염 범죄자 검거, 해상 조난자 구조 등의 임무를 담당했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해안경비대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2900명의 예비군이 추가로 소집되었고 해상보안 인력이 58%로 확충되었다.
매년 600만 개에 달하는 화물 컨테이너들이 미국의 항구에 내려진다. 이 컨테이너들 중 2%만 내용물 검사를 해왔지만 앞으로는 감마선을 이용해 10센티미터 두께의 철판도 투과하는 ‘차량 화물 검사 시스템’이라는 장비로 선적되는 컨테이너 거의 전부를 검사할 예정이다. 그리고 해안경비대와 FBI는 미국의 항구로 입항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위치와 항로, 속도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GPS 시스템을 장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장비를 갖추지 않는 선박은 즉각적으로 해안경비대와 FBI의 집중적인 감시 대상이 된다.
사생활 감시에 의한 개인 정보 수집
데이터 단말기인 현금자동인출기(ATM)는 은행간 네트워킹 전문회사의 중앙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면 거래 내역은 법률에 의거하여 7년간 감시카메라에 찍힌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보관된다. 가끔 우리나라에서 ATM의 금전 거래 내역과 촬영된 화면을 통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큰 건물, 거리마다 비디오 감시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이 장비들은 건물 내부나 엘리베이터 천장, 가로등, 거리 모퉁이에 설치되어 사람들의 움직임을 감시한다. 맨해튼에만도 2400개에 달하는 외부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주고받은 이메일들은 개인적으로 삭제하더라도 인터넷 회선 서비스 업체들의 서버 상에 복사본이 남는다. 매일 자정마다 인터넷 회선 서비스 업체들은 서버상에 자동으로 생성되어 메일 백업 폴더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자료들을 다운받아 보관한다. 대부분 인터넷 회사들은 이 자료들을 파기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자들이 수시로 조회할 수 있고, 국토안보부법에 의거 수사기관이 영장 대신 소환장만 제시해도 요청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웹 사용 내역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올려져 있다. 검색 엔진에 입력된 검색어, 조회한 웹 페이지, 접속 횟수와 체류 시간,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 번호를 비롯해
전자상거래 내역도 알 수 있다.
이밖에 진료기록카드,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남는 구매기록, GPS 시스템이 내장된 휴대전화 등으로 자신의 정보와 위치가 무방비로 노출된다. 비록 사소한 정보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정보들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와 사생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
9·11 이후 미국의 선택은 자유보다 안전
지난 12월 6일 내셔널 프레스클럽의 오찬 연설에서 공화당 내 중진의원인 리처드 아미 하원의원은
“길모퉁이마다 경찰관을 배치하고 모든 방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면 안전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행동을 첨단장비로 엿보고 당국에 보고하면 안전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단일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거나 모든 사람의 이메일을 감시하면 우리는 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대테러 대응체제의 구축에 있어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자유의 여신상을 마주한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붕괴되던 날 미국의 자유도 함께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국토안보부의 신설로 효율적인 미 본토의 안보라는 방어망과 대테러 대응체제를 갖춘 셈이지만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그리고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테러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CIA와 FBI에서 국토안보부의 정보 접근 범위를 놓고 조금씩 파열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거대조직을 효과적으로 통합해 나가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자유보다 안전을 선택한 미국. 사생활 감시에서부터 공항과 국경, 해안선을 따라 철옹성 같은 안전망을 두르고 있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초라한 모습을 통해 9·11 테러가 낳은 미국의 공포가 무엇인지 실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