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이겼다! 평화가 이겼다!
그래, 좋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헌신은 졌다. 공동체는 졌다.
내 인권이 욕보이면서도
내 젊음이 사라지는걸 느끼면서도
치기 어렸을지언정 열정을 담았던 연인을 떠나보내면서도
이 모든 것은 내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마음의 위안도 사라졌다.
이게 진보인가?
진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사회가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 아니었나.
아니야! 곡해하면 안돼.
판결문 자체만 보자.
국방의 의무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내용이야.
또한 생각해봐. 3권 분립 국가에서 법원의 판결과 정권이 이끄는 행정부는 서로 독립되어 있어.
그러니 이 사안으로 평화를 확립하려는 대통령과 정권을 비판해서는 안돼.
라고 나 자신의 마음을 자꾸 속이려고 해 보아도
실제로 대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뛰어다니는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앞으로 이 판결이 어떻게 적용될지.
누가 이 상황을 악용하고
누가 선의의 피해자가 될지
예측을 할 수 있는 이 상황에서는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
지지를 철회하고 싶다.
오른쪽 왼쪽 모두 썩었다고 말하던
어릴적 아버지 하시던 말씀이
오늘은 왜 이렇게 가슴에 사무치는 걸까.
그 말 때문에 입법이 수십년 이상 늦어진 거나 마찬가지고, 활동가들이
과연 대중의 반발을 몰라서 저 말을 고집하진 않았을 거니까 일종의
미필적 고의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