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전 사평이란 필명으로 ‘허니앤파이’라는 웹툰/웹소설 플랫폼에서 ‘구름도시 이야기’란 소설을 6개월간 연재했던 사람으로 일단은 소설가입니다.
허니앤파이에 계약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사건이 터졌었습니다. 허니앤파이 직원이 웹툰 작가에게 폭언, 욕설을 하고 임금마저 제때 주지 않았다. 이런 내용입니다. 당시 전 트위터를 통해 회사에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권선징악 내용을 담은 소설을 쓰면서 옳은 일에 옳다, 아닌 일엔 아니다.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곳은 제가 첫 데뷔를 한 곳이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일할 곳이기도 했으니까요. 이 사건은 파란을 일으켰으나 잘 해결됐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계약서를 갱신하지 않고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사건하고 무관한 일이고 서로의 사정이 있어 연장하지 못한 거라 회사 측에서도 작품활동에 영향이 있지 않게 배려해 줬습니다. 독점권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지금은 반백수로 새로운 연재처를 찾으며 구작을 무료연재로 풀고 있고 다시 재기하기 위해 신작 또한 준비 중입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됐습니다.
전 트위터를 유용하게 사용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출판사를 검색해서 작품 투고를 하고 관련 정보를 얻곤 했죠. 웹툰 작가들의 트윗을 보는 것도 즐겼습니다. 하지만 티셔츠 한 장 때문에 즐거웠던 트위터 생활이 박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근래 발생한 사건이고 현재 진행 중인 사건. 김자연 성우의 메갈리아 티셔츠 후원 사건입니다. 오해가 있을지 모르니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메갈리아는 미러링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차별에는 차별로 대응하고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하는 집단입니다. 이들은 평등이 아니라 차별과 폭력을 외치는 집단이며 페미니즘과는 어떠한 연관성 없는 사상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트위터에 눈을 더럽히는 온갖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마차 독자분들께 이 글들을 보여줘 눈을 더럽힐 수 없기에 아랫글로 대신합니다.
#김자연 성우를 지지합니다 # 넥슨 보이콧.
이들은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김자연 성우가 ‘부당해고’되었다 주장하고 차별되었다 외쳤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습니다. 김자연 성우는 부당해고 된 적이 없으며 회사 측과 논의하여 임금을 모두 받고 계약해지가 되었고 이는 김자연 성우의 사과글을 통해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하나 더. 김자연 성우가 계약해치 되는 과정에서 성차별은 없었습니다. 반사회적 집단인 메갈리아에 옹호하는 김자연 성우에 관한 클로저스 게임 이용자들의 항의가 있었을 뿐입니다. 김자연 성우가 물러나며 생긴 자리에는 다른 여성 배우가 와서 채우겠지요. 이 과정 어디에 성차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고 넥슨을 보이콧 하자는 사람들의 오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트위터는 고작 140자의 단문만 작성 가능해서 짧은 글과 사진을 이용해 사건에 관한 아주 단편적인 것만 보여줘서 사실을 왜곡시키는 힘이 강합니다. 동시에 파급력도 엄청나죠. 잘못된 정보를 사실 인양 마구잡이로 유포하고 그걸 진실이라 믿는 건 요즘 세상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메갈리아 이야기는 쏙 빼고 김자연 성우가 인증한 티셔츠의 페미니즘 선전 문구 때문에 ‘부당해고’ 되었다고 왜곡되어 전파됐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고 김자연 성우가 입장을 발표했음에도 불씨가 계속 타오른다는 겁니다.
평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는 작가들이 불판에 먼저 뛰어들었고 그들에 이끌린 동료 작가들 번역가, 일러스트레이터 출판사까지 모두 이 불판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이 오해했을 뿐이고 다시 사실을 알면 금방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념은 확고했고 사건을 설명하려는 독자들을 개, 돼지 취급하였으며 메갈리아가 말하는 차별과 폭력에 동의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굳게 지켰습니다.
‘옳은 일에 옳다고 하고 잘못된 일에 잘못됐다는 하는 것.’
그들 중 하나가 위의 말을 트윗으로 올리는 것을 봤을 때. 이 글을 써야겠다.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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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라이 기요시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소설가 시마다 소지가 집필한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 셜록 홈즈를 오마쥬하여 탄생한 인물입니다.
미타라이 기요시는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지성을 소유했으나 조울증 환자로 함께 지내기 고역스러운 인물입니다. 본직은 점성술사였으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점성술사 겸 탐정이 되었고 현재는 탐정으로 완전히 전직했습니다. 명함도 있지요. 그는 ‘옳은 일에 옳다고 하고 잘못된 일에 잘못됐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인물이며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상냥한’ 인물입니다. 비록 소설 속 가상 인물이나 그의 보여주는 강직하고 상냥한 모습은 존경하고 싶고 따르고 싶은 모습입니다.
소설가 시마다 소지는 제가 존경하는 작가이자. 목표로 삼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그가 창조한 미타라이 기요시와 닮고 싶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그 생각의 결과가 허니앤파이 사건 때 해명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죠.
옳은 일에 옳다. 잘못된 일에 잘못됐다고 말하는 데엔 용기가 필요하단 걸요. 단순히 말을 외치는 마는 만용이 아니라 말을 외치고 나서의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요.
시마다 소지는 작품 후기를 통해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가 영상화되지 않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현재는 영상화가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후기를 담고 있는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정확히 뭐라 쓰여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릇된 처세술을 가지고 있으며 미타라이 기요시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할까 봐서다.’
당시엔 이게 뭔 말인가 하고 넘겼습니다. 대충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완벽히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트위터에 올라온 글귀를 본 순간 이해하고야 말았습니다.
옳은 일을 옳다고 하고 틀린 걸 틀리다고 하는 용기. 멋진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틀린 일을 옳다고 하고 옳은 걸 틀렸다고 말했다면. 그리고 그렇게 말한 걸 용기 있는 행동이라 착각하고 믿는다면 이는 침묵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 됩니다.
미타라이는 항상 옳은 일을 합니다. 악인을 심판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그의 모습은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옳은 일을 행동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탐문 중 탈진해서 길거리에 쓰러질 정도로 몸과 두뇌를 혹사하고 모든 수수께끼를 밝히고 진실을 확인한 뒤에도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생각해서 심사숙고 후 최후의 일갈을 합니다. 옳은 일을 옳다고 외치는 건 순간의 만용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용에 의지한 외침은 결코 옳은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메갈리아를 지지하고 독자를 개, 돼지 취급하는 작가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당신들은 잘못되었다 외치는 작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왜 옳은 일은 옳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 말하지 않을까요? 전 그들이 트위터를 통한 단발성 외침이 아니라 옳은 일을 옳다고 말하기 위해 어려운 일을 하는 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겨우 6개월간 플랫폼에서 유료연재를 소설을 연재한 경험이 전부입니다. 완벽한 무명이고 시장에 어떤 영향력도 줄 수 없습니다. 글을 읽어 줄 독자도 없어서 작품을 통해 뭔가 발언하고 행동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현재로써 제가 할 수 있는 옳은 행동은 이렇게 논평을 쓰는 것뿐입니다. 미타라이 기요시를 떠올립니다. 행동이라고 한다는 게 고작 이것뿐이라 창피함을 느낍니다.
만용에 의지해서 메갈리아를 지지하고 독자를 무시하는 작가, 단체들은 분명 그에 상응된 대가를 치를 겁니다. 아니 치르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불매운동 소식이 들려오고 앞으로는 정부의 규제를 막아줄 방패가 되지 않겠다 선언합니다. 앞으로 다시 재기하기 더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행동은 옳고 정당합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작가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점투성이입니다.
나는 작가입니다.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읽어주는 독자가 없다면 글은 가치를 잃습니다. 그렇기에 무명이라 괴로워합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