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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연쇄살인범을 쫓는 수사관의 내면 - (1973 ) - 1 (0) 2014/04/30 PM 09:29



로렌스 샌더스 <제 1의 대죄 >(1973) 1 - 수사관의 내면

통계에 의하면 살인사건의 절반 이상은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에 의해서 발생한다. 그러니까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우선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탐문수사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절차일 것이다.

이런 과정은 어디까지나 금전이나 개인적인 원한, 또는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별다른 동기도 없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을 '그냥' 죽이고 달아나는 살인자는 어떻게 추적할까. 설상가상으로 이런 살인자가 연쇄적으로 살인행각을 벌이고 다닌다면 어떻게 추적할까.

'대죄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로렌스 샌더스는 '미스터 베스트셀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로렌스 샌더스가 창조한 탐정 ‘에드워드 X. 델러니’는 바로 이런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데 뛰어난 재능과 집념을 가진 인물이다. 델러니의 가운데 이름 약자는 특이하게도 'X'다. <제 2의 대죄>에서 이를 궁금하게 여긴 한 여인이 델러니에게 묻는다.

"이름 속에 들어 있는 X는 뭐의 약자에요?
"더러운 것을 막기 위해서 빗장을 친 겁니다."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델러니는 농담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진지하고 엄격하고 깐깐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철권 델러니'일까. <제 1의 대죄>에서 델러니는 뉴욕시의 251 관할 구역을 지휘하는 서장으로 등장한다.

순찰경관부터 서장까지의 경력을 가진 델러니

델러니가 경찰이 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강직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델러니는 언제나 '질서'를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하다. 범죄자는 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델러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범죄자를 검거하고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제 1의 대죄>에서도 질서를 어지럽히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델러니의 관할구역에서 유명한 정치인이 머리에 흉기를 맞고 살해당한다. 피해자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건이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델러니는 여러 정황을 검토한 결과, 이 사건은 별다른 동기가 없는 살인범이 우연히 피해자를 고른 것이라고 확신한다.

델러니의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듯이 얼마 후에 다시 살인사건이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다. 성인 남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피해자 사이에 공통점은 없다. 이것도 이상한 점이다. 거리에서 사람을 죽이려면 상대적으로 연약한 여자나 어린아이를 고르는 것이 좋다. 범인은 왜 자신이 반격당할 가능성을 무릅쓰고 성인남성을 목표로 정했는지 의문이다. 델러니는 어떻게 이런 살인행진을 막을 수 있을까?

델러니는 가장 단순하면서 고전적인 방법을 택한다. 우선 살인에 사용된 무기가 어떤 것인지 알아낸다.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피해자를 죽음으로 이끈 상처부위를 검사해서 범행에 사용된 무기를 정확하게 알아낸다는 것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다.

사용된 무기를 알아낸 다음에는 지루할 정도로 단순한 작업을 반복한다. 시내에서 그 무기를 파는 모든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고객의 명단을 얻는다. 당연히 그 명단에 오르는 이름은 수천 수만에 육박한다. 그들 중에서 사람을 죽일만한 완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전과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전과는 없더라도 폭행경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지루한 문서작업을 통해서 일일이 확인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노가다'에 가까운 이런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나간 후에는 탐문수사를 시작한다. 용의자의 주변인물들을 만나고, 용의자의 재산관계를 조사한다. 불법으로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방과 거실을 수색하고, 기묘한 전화를 걸어서 용의자를 압박한다. 이런 단계에 이르면 델러니는 범인의 정체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다만 수색영장 또는 체포영장을 발부받거나, 기소할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할 뿐이다.

사실 델러니의 이런 수사방식은 최근의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요즘에는 용의자의 신분확인을 위해서 일일이 문서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컴퓨터로 신원을 조회하면 그 사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제1의 대죄>가 발표된 것은 1973년. 당시는 과학수사라는 것에 대한 개념도 없던 때였다. 휴대폰이나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기에 수사관들은 발품을 팔며 거리를 돌아다니고 수많은 서류를 뒤적여서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밖에 없었다.

범죄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철같은 델러니

당연히 엄청난 업무량이 자신과 부하들에게 떨어지지만 델러니는 망설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사람을 죽이고 뻔뻔스럽게 돌아다녀서는 안돼!”라고 말한다. 부인과 자식들에게는 다정한 남편이고 아버지지만, 범인의 앞에서는 강철 같은 법의 대리인으로 변한다. 이런 만큼 그에게 '철권'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아무리 확신이 있더라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체포할 수는 없다. 체포하더라도 곧 변호사를 통해서 풀려날 것이 뻔하다. 델러니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는 교묘한 심리전을 통해서 범인을 자멸하게 만든다. 범인을 24시간 감시하고, 희생자의 가족에게 범인과 전화통화하도록 강요한다. 범인에게 큰소리로 협박하고 호통치면서 그를 압박한다. 그러면서 부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그를 낭떠러지 끝까지 밀어붙여서 그가 곤두박질치면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말겠어!"

결과는 언제나 델러니의 승리다. 교묘한 범죄를 행하는 범인의 머리도 뛰어나지만 그래서 별다른 증거를 남기지 않지만, 델러니는 항상 그보다 한수 앞선다. 이런 심리전 때문인지 '대죄 시리즈'에서 델러니의 범인들은 법정에 서는 경우가 없다. 그의 범인들은 모두 스스로 몰락한다.

절망적으로 달아나다가 죽음을 맞는가 하면,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수면제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자살하기도 하고, 구치소에서 풀려나지만 언론의 공세를 받고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범인을 법정에 세워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지는 못하지만, 어찌보면 그보다 더 잔혹한 방식으로 델러니가 스스로 죄인을 심판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델러니의 부인도 델러니에게 '신의 대리인처럼 행동한다'라는 말을 한다. 델러니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을 파괴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가해야만 한다. 그것이 그가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는 방법이다. 동시에 자신만의 정의감과 사명감에 사로잡힌 인간의 내면이기도 하다.

원본출처 : http://www.fountainwz.com/index.php?mid=board_ssZA22&act=dispBoard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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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다니엘 켈만의『세계를 재다』- “재미없는 독일 문학에 결별을 선언한다!” (0) 2014/04/19 PM 01:36

sumE의 문학산책 -8-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

이번에 다룰 소설은 다니엘 켈만의『세계를 재다』입니다. 겉표지에 “재미없는 독일 문학에 결별을 선언한다!”고 되어있는데, 동의합니다. 읽는 동안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을 넘겼네요. 괴팍함을 양념으로 친 인물들의 성격 덕분에 엉뚱한 대화들이 재미를 더합니다. 게다가 훔볼트와 가우스라니! 18세기의 학자 판 어벤져스 인가요? 실제로 당대의 굵직굵직한 인사들이 짬짬이 나타나 흥미를 돋웁니다.

다니엘 켈만은 이야기의 완급조절이 뭔지 아는 작가입니다. 두 인물이 가진 심리의 기본이 될 어린 시절은 강렬한 에피소드 위주로 간략하게 지나갑니다. 이후 주인공들의 선택에 개연성을 부여하지요. 그리고 청년이 되기 전에 삶의 바꿀만한 사건을 한 방 터뜨려 주고, 본격적으로 인물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본격적이란 말은 인물이 자주성을 가지고 스스로 사건을 만들어가는 때라는 말입니다. 진짜 이야기는 언제나 주인공이 직접 움직일 때 드러나는 법이거든요. 이렇게 청년 시절이 지나가고 지루한 몰락의 과정 중,(소설에서는 지루하지 않게 아예 뛰어넘어버립니다. 좋은 선택이죠.) 두 인물은 교차됩니다. 그리고 삶을 돌이키려 애쓰고, 절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그들의 자리를 대체하지요. 이해하기 쉬운 정석적인 흐름이지만 맺고 끊음을 워낙 훌륭하게 해서 그 정석이야 말로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네요.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훔볼트와 가우스라는 두 인물을 대조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입니다. 훔볼트와 가우스에게는 여러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두 사람의 관계를 읽어내도록 만들죠. 두 인물은 1828년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자연과학자 회의에서 처음 만나고, 또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하지만, 그들이 보내는 삶의 과정은 비슷한 길을 걸어갑니다. 처음엔 누구보다 앞서서 걸었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다가, 모두에게 이해받을 정도로 유명해진 뒤에는 세상에 뒤처지고 말죠. 그리고 그들의 말년 또한 비슷한 깨달음으로 마무리 됩니다. 세상 앞에 우뚝 서서 세계를 재던 두 명의 위대한 인물들은 결국 자신들이 한 명의 작은 인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탁월하다고 느낀 부분은 바로 ‘고지’를 점령하고자 하는 두 인물의 모습입니다. 가우스는 우주에 대해 연구했고, 모든 별의 운동을 한 줄로 요약한 짧은 공식을 생각해 냈지만 자신이 그 공식을 발견하지 못할 것을 예견합니다.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을 이해해주던 아내를 잃고 나서요. 훔볼트 또한 침보라초 산을 등반하지만, 정상에 오르지 않고 도중에 그만둡니다.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그 때까지 훔볼트의 그림자 신세였던 봉플랑의 의지가 더 강해보이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훔볼트는 그 시대의 사람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이 되었지만, 에베레스트 산이 발견됨에 따라 그 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두 인물 모두 가장 위대해 질 수 있는 순간에, 가장 커다란 위기에 당면하게 되고 결국 무릎 꿇고 맙니다. 이때부터 이들의 운명은 정해집니다. 몰락이 시작되죠.

이러한 부흥과 몰락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혹자는 18세기 계몽주의의 한계로도 읽고, 또 누군가는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아니면 인간 내면을 고찰하는 소설로도 읽히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주제를 ‘앎’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달려왔던 주인공들이, 더 이상 알아내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고 나서야 ‘이해’를 깨닫는 장면은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인 대목입니다. 그리고 요이겐이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앎의 시대에서 벗어나 이해의 시대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


원문 출처 : http://www.fountainwz.com/index.php?mid=board_sUJo24&document_srl=3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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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서평] 뮈리엘 바르베리의『맛』- ‘맛’을 잃어버린 ‘나’에 대하여 (2) 2014/04/19 AM 11:28

‘맛’을 잃어버린 ‘나’에 대하여

뮈리엘 바르베리의『맛』

뮈리엘 바르베리의『맛』은 미각과 관련 된 멋진 작품들 중 하나일 겁니다. 사실 미각은 다른 감각들보다 묘사하기 어려운 데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사된 바는 아니지만, 미각은 다른 감각들에 비해 호불호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제각각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 연구가 있다면 알고 싶네요.) 때문에 ‘맛’에 대해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공감할만한 다른 기준을 제시해야합니다.

때문에 ‘맛’의 묘사는 철저히 다른 감각들에 의지합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요리왕 비룡’ 기억나시나요? 그 만화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시각적, 청각적 표현에 굉장히 많은 씬을 할애합니다. 과도한 면이 있어 오히려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단점이지만, 미각에 대한 묘사가 다른 감각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다른 감각에 대한 의지가 지나치거나 너무 도드라질 경우,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요. 이 소설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영리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납득시킵니다.

하나의 음식은 시각, 후각, 그리고 물론 미각에서 기쁨을 줘야 하지만 많은 경우 요리사의 선택을 좌우하고 요리의 향연에서 큰 역할을 하는 촉각에서도 기쁨을 줘야 한다. 청각이 이 원무에서 약간 뒷전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먹는 일은 소란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맛보는 일에 동반되는 모든 소리는 그것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방해하므로 식사는 분명히 근육 운동 감각적인 것이다.

-뮈리엘 바르베리, 홍서연 옮김,『맛』, 민음사, 2011, 46쪽.

이처럼 뮈리엘 바르베리는 ‘음식’이 맛뿐만이 아닌 다른 감각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정의합니다. 이 정의로 인해 모든 음식에 대한 묘사는 ‘공감각적’이어도 될 합당한 이유를 가지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합당한 이유에서 자유를 찾은 묘사는『맛』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거기에 미각을 표현할 때 단순히 감각적인 묘사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법을 통해 대상을 정의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를 테면 빵은 ~이다, 라는 식이죠. 이를 통해 모든 묘사는 단지 묘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깊이를 갖습니다.

이야기 면에서 볼 때,『맛』은 오슨 웰즈 감독의 영화 ‘시민 케인’을 연상시킵니다. 모든 부와 명예를 지니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순수함이다, 라는 주제가 그렇습니다. 타인의 취재와 자신의 회상이라는 점에서 다루는 방법은 다르지만, 과거로의 회귀가 기본 구성인 것도 그렇고요.

사실 여기서 이 소설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듯합니다. 다른 작품들의 영향이 너무 드러나는 나머지 맥이 빠지는 독자도 있겠고, 오히려 ‘맛’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러한 주제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할 독자도 있겠죠. 저는 전자였습니다.

결론을 내려 볼까요. 이 소설의 제목은 ‘맛’이고『맛』의 가장 큰 미덕도 ‘맛’입니다. 그리고 특출 난 미덕에 대한 존경은, 가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속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별로였지만 멋진 작품인 건 맞네요.

사족: 이 소설을 읽을 때 가장 큰 문제였던 점은, 제가 소설에 나오는 여러 요리와 재료들을 먹어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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