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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들개 (0)
2024/03/25 PM 05:14 |
들개
족보 없는 똥개처럼 서로의 체취를 탐닉했다. 목줄 없는 들개처럼 손쉬운 욕망에 충실했다. 싫증 난 장난감을 버리듯 철없는 이별을 반복했지만, 제일 먼저 내 손을 뿌리친 건 너무도 숭고한 단어였기에 나는 마음껏 모독할 수 있었다. 어찌, 나를 벌할 건가요.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 열 밤을 자도 돌아오지 않았고, 스물이 지나도 해가 뜨지 않았다. 삼십이 되지 않을 거라던 왕자님은 마법에 걸린 개구리처럼 개굴개굴 미안하네요, 공주님이 아니라 혀를 섞어봤자 구역질만 차오르겠죠. 하지만 나도 거짓말쟁이. 괜찮다며 웃음 짓고, 필요 없다 손사래 쳐도, 내심 바라는 꿈같은 기적. 어찌, 나를 구할 건가요.
멋대로 떠나간 당신처럼 멋대로 길어진 머리카락. 거울 속 당신이 뚜렷해질수록, 나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 밤마다 울던 당신이 떠올라 꾹 참고, 꾹 참으며 살아왔는데, 기어코 울음이 터져 나오면 더 이상 사랑할 자신이 없다. 밤마다 잘라내는 머리카락. 어찌, 그대는 사랑해 줄 건가요.
어찌 그대는 나에게, 기다림을 줄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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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나는 당신을 미워했던 걸까요 (0)
2024/03/22 PM 05:12 |
나는 당신을 미워했던 걸까요
나는 당신을 미워했던 걸까요? 악수를 뿌리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섭섭한 표정이 아른거립니다.
신문을 펼쳐보니 당신의 험담뿐입니다. 뉴스를 틀어봐도 당신의 험담뿐입니다. 골목에 부는 바람에도 온통 당신의 험담뿐입니다.
나는 당신을 왜 미워했던 걸까요? 일언의 변론도 없이, 일말의 여지도 없이, 일순의 의심도 없이, 파도에 떠밀리듯 뭇매에 철썩 엎어지고, 빗물이 튀듯 추정에 흠뻑 젖어, 부끄럽게도, 비겁하게도 당신을 미워해버린 것입니다.
나는 다시 나가보렵니다. 우산을 쓰고, 먼발치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렵니다. 햇볕 아래서 다시금 악수할 땐 당당히 마주 볼 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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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팩트에 관하여 (0)
2024/03/20 PM 09:55 |
팩트에 관하여
언제부터인가 앞뒤 다퉈 팩트를 내세웠다. 원조 할매 국밥집같이 원조도 아니고 할매도 아닌 국밥집같이 국밥집에서 밥 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기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팩트라는 단어가 나는 퍽 부끄럽던데 누구들은 그렇지 않나 보다. 열심히 팩트를 파세요. 나는 거리를 거닐다 간판 없는 가게에 들어가 주문도 받지 않고 내놓는 국밥 한 그릇 할 테니. 잘난 팩트를 열심히 파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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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어떻게 살 것인가 (2)
2024/03/18 PM 04:25 |
어떻게 살 것인가
어찌하나 어찌해 우리는 점점 더 쓸모가 없어지지만 쓸 날은 늘어만 가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날갯짓을 배워버린 피조물은 이미 훨훨 날아갔으니 우리끼리라도 안아보자 저들은 아직 따스함은 모를 테니
싸구려처럼 구닥다리처럼 잡동사니처럼 불쏘시개나 되어보자 화르르 화르르 불꽃 피는 봄날을 불러보자 사랑해 사랑해 사람답게 목청껏 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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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습작모음] [시] 목격 (1)
2024/03/14 PM 06:06 |
목격
금이 가지 않았다면 어엿할 수 있었을까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기에 너는 늘 너의 날갯짓을 의심해야 했다.
나는 모른다. 너의 궤적이 창공을 가르는 비상이 될지.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추락이 될지. 삼중 진자처럼 얽힌 궤적을 누군들 예측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보았다. 너의 비행을 너의 날갯짓을 그러니 너는 날아라. 의심은 거두고 너의 궤적은 퍽 아름다울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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