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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발소리 (3)
2014/08/23 AM 02:25 |
퍼뜩 '나한테 없던 기억이 나를 쫓아올줄 몰랐다'란 영화의 대사가 생각이 났다. 요즘처럼 관계의 깊이가 엷어진 사회에선, 무심코 장난으로 던진 말이나 행동들로 인해 그 본의가 무엇이든간에 기억하지 못하는 가해자가 되기 십상이다.
요새는 때때로 그렇게 만들어진 나한테 없던 기억들이 나를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머리와는 다르게 마음은 아직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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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2014. 08. 20 (0)
2014/08/20 PM 07:24 |
옛날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전 여자친구가 헤어질 때 주었던 편지를 발견했다. 버리지 않았으니 어딘가 둔 것은 알았는데 서랍에 있는 줄은 몰랐다. 헤어질 때, 이미 몇 해 전에 단 한 번 그 편지를 읽고는 다시는 읽지 않았었다.
개나리색의 편지지에는 그녀처럼 작고 여린 글씨체로 수없이 많은 걱정과 충고들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갑자기 실수로 바다에 내려섰던 나비의 날개처럼 젖었다. 그녀는 노란색을 좋아했다. 아니, 물어본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으니 노란색을 좋아했던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 기억에 언제나 그녀는 노란색이었다. 헤어지기 얼마 전 프린트를 넣어두는 파일을 잃어버렸다기에 노란색으로 사두었었는데 끝내 주지 못해서 여전히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내 책상의 한 쪽에 꽂혀 있다.
요새 드라마를 보다 보니 그녀 생각이 자주 난다. 내 잘못으로 헤어졌고, 그녀는 잠시 외국으로 떠났다. 가끔 주위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날 만났을 때의 소심한 태도는 없고,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언젠가 연애는 세 번만 할거라고 다짐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내 세번째 인연이었다. 대단한 다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지키려고 노력한 적도 없지만 그 이후로는 정말로 설레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연애를 안한게 벌써 4년째다. 이젠 다시는. 연애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늘 머리에 맴돌고 있어 그냥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누가 물으면 그냥 성욕이 없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들 웃다가 같은 자리에선 다시 묻지 않는 것을 보면 꽤 괜찮은 대답인 것 같다.
몇 년간 연애도 안하면서 그녀를 떠올린다고 해서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사람들은 한 가지 방식으로 생각을 고정해버린다. 미련이 남아서 옛 애인을 떠올리는 사람처럼은 보이고 싶지 않다. 다만 오랜만에 다시 읽은 편지의 추억에, 성격도 외모도 그녀를 닮은 여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 때문에 그냥 잠시 나타나 느린 기차가 되어 내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 뿐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아주 빠른 속도로 머리에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만들어 놓은 적이 없으니 정차할 역은 분명히 없다.
오늘도 드라마가 방영되기에 문득 여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의 최고 전성기였던 그 예전에도 내가 그녀를 좋아했었는지 생각해봤다.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그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녀와 나 단 둘의 이야기가 아닌, 외적인 부분에서 우리에게 얽히고 섥혀 있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 때문에 계속해서 부정하려고 애썼지만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에 빌어 그녀를 떠올리는, 아니 그녀의 아름다움을 빌려와 다른 사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녀를 내가 아끼고 좋아하고 사랑했음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괴로웠던 시기지만 사랑했으니 윤택하다. 기억은 이런 식으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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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거울 (0)
2014/08/12 PM 09:18 |
나는 스스로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있다고 믿어서 금방 판단을 내리곤 했다. 어쩌다보니 상담 아닌 상담도 해주게 되었고, 그 중 몇 번인가 내 능력이 잘 맞아 떨어지자 주위에서도 치켜 세워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명해져서 어느새 내 입은 사람들의 평판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모두 내 환심을 사려고 했고, 나는 점점 우쭐해져서 모든 사람의 내면과 사정을 다 아는 것 같이 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늦게 한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결혼을 앞두곤 고민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신부가 될 사람은 절세의 미인인데 그녀의 얼굴을 볼 때면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울을 통해 바라보면 자신의 이상형 그 자체인 것처럼 너무 아름다워 몰래 손거울을 꺼내거나 쇼윈도에 비춘 그녀 모습을 계속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말했다.
"당장 결혼하세요."
거울은 상을 왜곡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눈 앞에 거울 하나를 두고 있는 것과 같은데, 그는 하나를 더 겹쳐야 그녀가 아름다워 보인다고 하니 두 번 반전된 상, 그게 본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그가 한가지를 더 물었다.
"그럼 평생 거울로 그녀를 보고 살아야 하나요."
"걱정말아요. 결혼하면 눈 앞의 거울은 깨지기 마련이니까. 파편이 눈에 박혀 가끔 아픈 날이면 그녀가 달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얼마 후 그는 청첩장을 건네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어주었으니 행복한 마음을 마음을 안고 식장에 도착했다. 절세의 미인이라던 신부를 보자, 눈을 비비고 보아도 내 눈에는 아닌 것이 결국 사랑이요, 내면이요, 제 눈의 안경이구나. 우리는 몇 개, 각자의 거울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불현듯 깨달음에 그 후로 나는 사람에 대한 내 평가를 다른 사람에게 단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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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2014. 8. 04 (0)
2014/08/04 PM 11:49 |
문득 상상 속에서 점점 더 아름다워져만 가는 여자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무한히 아름다워질 기회를 선물하고 있는 그 여자는 결국 점점 더 아름다워져서 노을이 내리는 바다나, 봄비, 새벽녘 달빛 같은 모든 자연물에 귀결되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 때쯤 되면 나는 모든 것에서 그녀를 보면서도 그 아름다움이야 말로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더이상 그녀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거라 확신한다. 확신에 기대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더, 더 아름답게 느끼기로 동의했다. 잊게될 때까지 계속해서 아름다워질 기회를 선물한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할수록 그녀는 더 많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잊으려 애쓸수록 더 기억나므로 사랑하려 할수록 빠르게 잊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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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신이 두려워 하는 것 (8)
2014/07/20 PM 08:29 |
한 청년이 어느날 신 앞에 나아가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신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물론 내게도 두려운 것이 있다. 그 것은 어떤 때에는 보통 사람도 나보다 더 강하게 만들고, 어떤 때에는 죽어가는 사람도 기쁘게 만들며, 어떤 때에는 내가 허락한 것보다 더한 절망을 주고, 또 어떤 때에는 나마저도 죽게 한다."
청년은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세상에 어떤 것이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까? 당신에게서 권능을 받은 저 지옥의 가장 강대한 악마입니까? 아니면 신만이 아는 또 다른 조물주입니까?"
신은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어찌 내게 권능을 받은 것이 나를 해할 수 있으며, 나를 만드신 분이 나를 해하려 하겠느냐. 그 것은 세상에서 사랑이라고 불린다."
"아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어찌 그 것을 제일 두려워 하신단 말입니까?"
"처음부터 그리 만들어지진 않았는데 그 것이 두려운 것은 사람이 사람의 방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사랑이란 이름을 붙여 저지르는 괴로운 일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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