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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세가지 이야기 (0) 2014/06/30 PM 11:47
세가지 이야기

성 밖 거리에서 며칠째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그 남자의 눈물이 잠시도 멈추지 않아서, 그 모습이 너무도 서럽게 보여 온 도시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보았다. 사람들은 그가 우는 연유를 알아내려고 애를 썼고 급기야는 궁금증을 풀어주십사 하는 소가 올라오기에 이르렀다. 나도 이야기를 듣고는 궁금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 창고지기를 불러 수십년간 모아둔 수많은 보물 중 천리를 볼 수 있다는 안경을 꺼내 쓰고 그 남자를 관찰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고 싶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잡일을 하는 하인부터, 마을을 오가며 모든 소문을 다 듣고 다닌다는 방물장수들도 불러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그가 누군지 왜 저리 슬피 우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부모를 잃었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상복을 입지 않았다. 재산을 잃었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가 안쓰러워 사람들이 던져놓은 동전 중 단 하나도 줍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가 연인을 잃었겠거니하고 생각했다. 그런 일에 저렇게 눈물을 흘린다면 내 하렘의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한 명을 그에게 선물하리라 마음 먹고는 6일째 되는 아침, 마침내 나는 수행원과 함께 궐 밖으로 나왔다. 인파를 헤치고 나는 울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부모를 잃었소?"
그는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럼 재산을 잃었소?"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럼 연인을 잃었소?"
그는 역시 대답하지 않은 채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의 울음이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그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채로 한 쪽 무릎을 꿇어 예를 취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5일 동안 쉬지 않고 여기서 울었지요. 그 것은 내가 우는 이유를 이 나라의 높은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오셨으니 제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온 것 같군요. 내가 왜 울고 있는지 그 이유를 들어보면 내 가혹한 인생을 가엾게 여기고 말 것이며, 내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말 것입니다.
20년 전 오늘, 내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뛰어난 용사였고, 어머니는 세상에 손꼽을 만한 미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사랑했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남으로 그 행복은 정점을 찍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지 채 5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 불행은 그 마수를 뻗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의사는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아, 그렇게 나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열흘째 되던 날 아침, 어머니가 사라지셨습니다.
여기서 일곱 산 여덟 강을 건너면 얼음의 동굴이 나옵니다. 그 동굴에는 마신이 한 명 살고 있는데, 그 마신은 아름다운 여자의 영혼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미처 조리도 하지 못한 몸으로 일곱 산 여덟 강을 건너 얼음의 동굴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신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이를 살려주세요.'
마신이 말했습니다.
'하나의 영혼에는 하나의 영혼이 필요하다. 너의 영혼이라면 기꺼이 받아주지.'
어머니는 잠시의 지체도 없이 자신의 영혼을 마신에게 바쳤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니 어찌 내가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남자에게 물었다.
"스무해나 지난 일이오. 그 것이 이제와서 당신을 며칠동안이나 거리에서 슬피 울게 한단 말이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소. 어머니가 당신을 살렸다면 감사해야 할 일이지. 그걸 어찌 슬퍼한단 말이오?"
나는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여전히 눈물을 훌리며 남자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당신은 분명히 내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입니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내게 온기가 돌아오는 장면을 모두 목격한 아버지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업으시고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린채 5년간 떠돌아 다녔습니다.
5년이 지났을 때, 우리는 사막 위의 버려진 성에서 한 명의 점쟁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점쟁이는 수정구를 꺼내 우리에게 일의 전모를 알려주었습니다. 얼음의 동굴에 살던 마신은 오래 전부터 어머니의 영혼을 탐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아버지가 두려워 어머니에게 접근하지 못했기에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의 고통 앞에서는 눈 앞이 흐려집니다. 마신은 내게 주술을 걸고, 의사로 변장한 채 찾아와 내 목숨이 열흘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슬퍼하는 어머니의 귓가에 속삭였습니다. 여기서 일곱 산 여덟 강을 건너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마신이 있다고.
아버지는 분노했습니다. 아버지는 한 쪽 눈의 눈꺼풀을 베어버리고, 흘러나오는 피를 가슴에 묻히며 맹세했습니다.
'그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그 길로 온 재산을 처분하고 어떤 강대한 마신도 죽일 수 있을 방법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늘과 바다를 오가기를 오 년, 마침내 오래 전 강대한 마신을 죽여 봉인했다는 검을 찾았습니다. 어느새 아버지의 머리는 희고, 수염은 힘을 잃은채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감지 못하는 한쪽 눈은 하얗게 변해 이따금씩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신의 이야기를 할 때면 아버지의 눈은 시공간을 너머 알라의 영역 밖에 있는 마신의 실체를 파악하기라도 하는 듯이, 번쩍이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고통이 끝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준비를 끝마친 채 일곱 산과 여덟 개의 강을 건넜습니다. 얼음의 동굴 앞에서 아버지는 외쳤습니다.
'내가 오늘 너를 죽이리라.'
마신과 아버지의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뛰어난 검술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용맹함으로 마신을 마침내 궁지로 몰아 넣었습니다. 목에 겨눠진 검을 내리치려는 그 때, 마신이 말했습니다.
'너의 아내를 돌아오게 할 방법이 있다.'
아, 아버지는 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나의 영혼에는 하나의 영혼 만이 필요하지.'
아버지 또한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얼음의 동굴에서 나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아버지는 마신을 죽이기 위해 산 그 검으로 자신의 목을 찌르셨습니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마신에게 그렇게 또 한 번 속았습니다. 마신이 살아있기에 나는 아버지의 눈조차 감겨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니 10년이 지난 지금 어찌 내가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이구려. 어떤 연관이 있어 지금에서야 당신이 눈물을 흘린단 말이오. 이미 마신에게 한번 속았는데 다시 그의 말을 믿다니 당신의 아버지는 너무 순진했던 것이 아니오? 그리고 부모님을 마신의 손에 잃었다면, 당신에게는 복수가 우선이오."
나는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아직도 눈물을 흘리며 남자가 내 손을 붙잡았다.
"아직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이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분명 당신도 내 옆에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 후에 나 역시 반드시 복수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마신을 죽일 수 있다는 그 검을 들고, 나는 아버지가 그러했던 대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6살 때부터 검을 잡아왔습니다. 마신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5년이 지나, 아버지가 했던대로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나는 일곱 개의 산과 여덟 개의 강을 건너 얼음의 동굴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반드시 너를 죽이리라.'
나는 일갈하고, 얼음의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얼음의 동굴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신은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나는 다시 사막 위의 버려진 성을 찾았습니다. 아버지가 했던대로 점쟁이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수정구를 통해 바라보자 마신은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이 도시에 와 있었습니다. 마신이 사람의 모습을 하자 그를 죽이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그를 죽인다는 것을 상상할 때마다 아버지의 죽음이 떠오르며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드리웠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마신은 그래서 사람의 모습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에만 4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1년 전, 나는 그가 살고 있는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온갖 화초가 향기를 뽐내는 화원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한 여인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열매가 달린 모두 과실수보다 탐스러웠으며, 모든 꽃보다 향기로웠고, 사철 푸르를 저 나무들보다도 싱그러웠습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내 귓가에 울렸습니다.
'행복하게 살아라.'
복수의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를 부모님이 남겨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며 사랑을 나눴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어느새 마신을 죽이려던 검은 손질을 하지 않아 녹슬고 무뎌졌습니다.
일주일 전, 그녀는 내게 부모님을 소개시켜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발길이 향하는 방이 익숙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성의 수 많은 방들 중에서도 그녀의 발길이 향하는 그 방, 그 방이 의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서 믿을 수 조차 없습니다. 내가 4년 동안 복수를 다짐하며, 염탐하고 관찰했던 그 곳. 바로 그 방입니다. 그녀는 마신의 딸입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습니다.
복수의 감정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사랑이 가려버린 내 두 눈을 생각하자, 아버지가 왜 눈꺼풀을 잘라야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연인 또한 잃었습니다. 내가 어찌 부모의 원수 그 딸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며, 함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심장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고통이 이번엔 내게 조금의 주저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내 심장을 도려낸 버린 한 여인이 원수의 자식이니 어찌 내 사랑이 슬프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되었구려. 사랑을 만나서 복수를 하지 못했다니 몹쓸 일이오. 어서 그 원수를 찾아가 복수를 해야지, 왜 여기서 이렇게 슬피 울고 있단 말이오. 그 여인으로 인해 당신의 마음에 복수의 감정이 다시 싹텄으니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소."
나는 마음 속으로 그를 욕하며 자리를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했다. 어느새 비릿한 무언가가 목구멍을 통해 올라온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그가 말했다.
"당신이 이 세가지 이야기 중에 한 가지라도 기억해내어 함께 슬퍼하고 용서를 빈다면 나는 복수하지 않기로 다짐했소. 피를 묻힌 손은, 혹은 피를 묻힐 손은 언제나 파멸과 마주하기 마련이고, 그로인해 얻을 고통은 복수의 짧은 쾌감보다 길며, 언제나 복수보다 사랑과 용서가 더 아름답기 때문이오. 당신은 이 세가지 사랑의 슬픈 면을 하나도 보지 못하니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오."
무거운 고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죽어간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더 맑아진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는 사랑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던가? 사랑이 뭔지 그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사랑이 무엇이오?'
"끄르르르......."
피 끓는 소리 외엔 아무 것도 나지 않아서 나는 그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건 중요치 않다. 사랑이 슬픈 것이라면 모르고 죽을 수 있어서 행복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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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사라지다 (0) 2014/06/30 AM 12:55
사라지다

5시 12분.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시계를 들여다 본다.

5시 37분.
갑자기 해야 할 서류정리에 짜증을 느낀다.

5시 57분.
아슬아슬하게 서류정리를 끝내고선 들뜬 마음으로 회사를 나오다.

6시 33분.
사라지다.




- 그녀를 잘 모르는 듯한 그녀의 아버지와의 대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만, 내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자식이란 것이 참 이상하게도, 분명히 나와 함께 살고 있고, 내게서 나왔을텐데 나와는 다른 점이 많단 말입니다. 조금 더 닮아줬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이건 나와 너무 다른데? 그렇다고 또 내 아내와 비슷하냐 하면 그 것도 아니란 말이죠.
오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것은 정말 아닙니다. 전 평생 그런 생각이라곤 해본 적이 없었고, 아내 또한 절대로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하려던 얘기는 다름 아니라, 그래...... 어디까지 얘기하다가 이 얘기가 나온거죠? 아, 그러니까 다른 점이 있다, 여기까지 얘기 했었군요. 그러니까 그런 점들이 하나씩 보이다보면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아이와 조금 덜 사랑하게 되는 아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란 말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고, 그런게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단 말입니다. 아, 그래요. 솔직히 제게 더 사랑받는 편인 아이는 아니였죠. 난 이날 이때까지 그 애가 우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답니다. 가끔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볼 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니까요.
정말 이런 이야기가 그 아이를 찾는데 도움이 됩니까? 어쨌든 그 애를 꼭 찾아주세요. 가족 말고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냐고요? 아! 예전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 별볼일 없는 남자라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별볼일 없어보이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 A와의 대화

"걔요? 걔랑은 안만난지 반년도 더 넘었어요. 1년이 넘게 만났지만 난 솔직히 내가 걔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걔도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에요. 난 분명히 말해서 이번 일과 연관이 없어요. 일단 만난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뭐하는 사람이죠? 경찰인가요? 그 것보다 걔에 대한 얘기를 좀 해달라고요?
이봐!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나가!"


- 다시 그녀의 가족인 그녀를 잘 아는듯한 그녀의 어머니와의 대화

"그 애와 남편과의 사이요? 원래 딸아이와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은 집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랍니다. 물론 아들과 아버지 사이보다는 조금 더 낫겠지만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요새 아이들과의 충돌 같은건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흔히 있는 일 아닌가요? 그 사람은 정말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연애시절에는 정말 말을 잘했죠. 유머도 있고, 지금은 무슨 얘기만 꺼내려고 하면 짜증부터 낸다니까. 우리 애가 독하다고요? 남편이 그렇게 얘기했다고요? 그 사람은 그 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요. 남자들이 다 그렇지 자식을 낳아놓고서 신경이나 쓰나? 돈 버는게 힘들다고 집에만 들어오면 누워서 티비 먼저 트는게 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애들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바로 어제까지도 그 애는 눈물을 흘리곤 했죠. 요새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 그 사람이랑 관련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 애가 자주 우는 편이 아닌 건 맞아요. 그런데 요 반년 사이에는 그게 좀 심해졌죠. 우울증 같은게 걸린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말이에요. 설마 얘가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겠죠? 어느 바다에 뛰어들었다던가 이런거 말이에요. 제발 그런건....... 남편과 그 애가 얘기 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냐고요? 근데 왜 이런 얘기를 물어보는 거죠? 우리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르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침착하라고요? 그런 말이 나오게 생겼어요? 경찰에서 실종자 명단에 올려서 목격자라도 찾아봐야 되는거 아닌가요? 제발 제발 우리 애를 찾아주세요......"


- 전단을 보고 찾아온, 그녀를 마지막으로 봤다고 주장하는 말쑥해 보이는 노숙자

"이봐. 내가 제대로 얘기해주면, 얼마나 주는건가? 많이는 안바라고 말이야. 경찰들은 도무지 이 얘기를 믿질 않는단 말이야. 어, 그거 먹을건가? 아니면 나 좀 주게. 술도 좀 시켜도 돼지? 아, 알았네. 알았어. 빨리 얘기 해주지. 그러니까 그 날도 건물 앞 벤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단 말이지. 그 벤치는 알지? 거기 벤치가 누우면 딱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이즈가 맞아. 거기 한 1년 정도 있었는데 말이야. 아.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그래 그래.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그래서 말이야. 아 목이 좀 맥히는데. 오 그래그래. 자네 참 좋은 사람이구만. 그러니까 말이야. 낮에 너무 더워서 좀 씻어볼까 하고 몰래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경비 자식, 그 나이도 나보다 어린 놈이 자꾸만 뭐라고 하더란 말이지. 나도 거기서 괜히 노숙을 하고 있는게 아냐! 옛날에는 집도 제법 살았고, 애들도 있고 번듯한 직장에 아내도 있었단 말이지. 그랬는데 이래저래 일들이 겹치고 마누라 바람나고, 그 년 생각을 하니까 또 열받는구만. 어쨌든 말이야. 그래서 못 씻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자네는 내 몸이 너무 더러우니까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내가 못 맡을까하고 생각하고 있나본데, 그런건 아니란 말이야. 어쨌든 잠이 나 자야겠다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누가 시끄럽게 굴더란 말이지. 누구랑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여자가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말이야. 뭐 그 것보다도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남자들이야 왠지 모르겠지만 어디서는 여자들 우는 소리는 이상하게 잘들리고 하지 않나? 어어. 미안하네. 이제 거의 다 얘기가 끝났어. 그 때가 몇시 쯤이였냐고? 이 사람아, 내가 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정확히 몇 신지 어떻게 아나? 지금이 몇 시지? 7시라고? 그 때랑 날씨가 비슷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퇴근이라 우루루 쏟아져 나오기도 한데다 이거보다 좀 밝았으니까 6시는 넘었고 7시는 안됐을거야. 그래. 그렇게 울면서 전화를 하고 있더니만, 갑자기 사라졌단 말이네. 그런게 아니야. 한눈 판 것도 아니고, 술 마신 것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사라졌어. 아니, 정말로 갑자기 사라졌다니까. 경찰에 가서 얘기해도 안 믿길래 여기와서 얘기해본건데........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로 사라졌다니까. 못 믿겠나? 정말 못 믿겠어? 하긴 나도 잘 안 믿기니까. 돈은 못 주겠다고? 난 솔직히 다 얘기한거야. 진짜 본대로 말한거라고. 에이, 씨발. 내가 이럴줄 알았어. 나 참 더러워서. 근데 요새는 핸드폰에 누구랑 통화했는지 그런거 다 알 수 있지 않나?"


- 핸드폰에 4통의 부재중 전화를 남긴 그녀의 현재 남자친구이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되는 B의 메모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만나면서도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위하듯이 나를 만나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 시위하고, 이해할 수 없게 행동하는 자신에게 시위하고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미처 끊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그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화살에 가슴이 뚫려 멍하니 하늘을 보며, 눈물짓고 내게 쓴 웃음을 보내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사랑이 어떻게 끝나게 될건지에 대해서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 그녀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별볼일 없는 남자 A와의 대화

"마지막 통화 내용을 듣고 싶다고? 당신 정말 누구지? 그런가. 알았어. 먼저 찾아왔을 때처럼 그 애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건가? 듣고 싶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당신 말대로 그 애를 먼저 따라다닌 건 내가 맞아. 그리고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내가 맞고. 난 날 사랑하지 않는 모습에 질려했지. 나는 자꾸만 그 애가 원하는 쪽으로 변해가려고 하는데, 그 애는 전혀 그렇게 변하질 않았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헤어진거야. 정말 그렇더라고. 나 때문에 아파하기는 커녕 채 한달도 안되서 다른 사람을 만났잖아. 얼마 전에 술을 마셨지. 그리고 전화를 했어. 왜 나는 사랑해줄 수 없었냐고 말이야. 왜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쉽게 내보이려하지 않고 숨기려고만 하는걸까. 상처입기 싫어서? 숨기면 상처받지 않나? 그리고나서 다시 잊고 있었어. 그런데 전화가 왔어. 퇴근하고 전화 한 것 같았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울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왠지 화가 나서 내게서 그만 사라져달라고 했지.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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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관 (0) 2014/06/29 AM 09:59


"5도 정도 틀어진 것 같은데."
녀석이 또 시작했다. 나는 시체를 파묻는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 큰 홍수가 옆 마을을 덮쳤고, 그 희생자들을 묻는 중이다. 여기 지원해서 나온 이후로 이 녀석은 계속해서 각도를 지적했다. 관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게 좋다느니, 삐뚤게 들어간 것 같다느니, 이제는 구덩이도 정방형으로 지어진 묘지의 각과 일치하도록 똑바로 파라고 지시하는 중이다. 내 생각에는 시신이 부패하여 병이 돌지 않도록 빠르게 관을 땅에 파묻고 나면 그 조금의 각도라는 것은 하등 상관이 없다. 구덩이든 관이든 가까이서 보기에 틀어져 있고 묘지와 수평을 이루지 않더라도 그거야 인간이 그어놓은 구획 내의 일이고 더 넓은 범위에서 바라보면 의외로 더 올바른 각일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슬픔을 나눌 공간을 빠르게 만들어주고 사라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일을 계속 다시 하다가 지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녀석은 대충 하려 한다며 경건함이 부족하네 어쩌네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를 호도하고 비난하고 하는 것이다. 몇 번 몹쓸 사람이 되고 나니 이제는 그 녀석과 언쟁하기도 그만두었다. 오늘로 이 것도 끝이다. 내일부터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드러나는 것보다, 형식적인 것보다야 본질이 훨씬 중요하다. 나도 슬픔을 묻으러 왔다는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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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2014. 06. 26 단상 (0) 2014/06/27 AM 11:47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흐르지 않았다. 나는 종종 현재에 박힌 채 찬란했던 과거로 되돌아갔다. 그 시간은 때로 현재 시간의 흐름보다 훨씬 더 길게 늘어졌으며, 어떤 날에는 마치 찰나인 것처럼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와의 만남이 어찌 달콤하지 않을지. 그 달콤한 행복 후에 찾아오는 것은 현실과의 지독한 괴리감이었다. 결국 그녀와 헤어진 후에 가장 서글픈 사실이란 나 스스로가 이제 행복은 과거의 시간에 고정되어 있으며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볼 때만 고개를 내밀 뿐이고 앞으로 내 본래의 시간으로 절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 그 것을 믿고 인정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감정을 잃은 사람처럼 모든 사건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그저 바라보기만 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지독한 허무주의에 휩싸여 하루를 살아갈 힘을 모두 잃고 지쳐 쓰러지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가 행복을 차버렸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 시절 내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설혹 모든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다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입을 벌린 채 상처입은 영혼이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리는 지옥의 입구와도 같은 비참한 종말 뿐이며, 괴롭게도 그 구취는 분명 주위의 사람들마저도 모두 떠나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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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변명 (0) 2014/06/09 PM 09:44

독일에 대한 인상적인 글을 본 적이 있다. 2010년 월드컵 기간, 어떤 사람이 집에 대형 국기를 걸었다. 다음 날 국기는 잘려 있었는데 국가와 국기를 증오하는 집단이 저지른 일이었다. 이를 두고 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독일에는 나치의 망령이 잠들어 있다. 대형 국기를 걸어놓아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나치의 망령을 되살리는 일이다. 독일은 이처럼 애국심이 고조된 시기마다 잘못을 저질렀다."
생각해보면 나도 자신감과 자기애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후회할만한 일들을 저질렀다. 과거를 거울삼아 다시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흘러 넘칠듯한 지나친 자신감과 자기애는 통제되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 역시 외모를 꾸미지 않는 것이겠지. 다시 고개를 내려 배를 본다.
급격히 늘어만 가는 뱃살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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