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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기도 (0)
2013/12/01 PM 08:11 |
그는 신을 실제로 본 마지막 제사장이었다. 오랜 기도 끝에 마침내 신을 영접할 수 있게 되자 인류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를 물었다.
"왜 사람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까?"
신은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고, 제사장은 머리를 조아린채 한참을 기다렸다. 태양이 떠오를 때쯤 물었던 질문의 답은 해가 뉘엿뉘엿 저쪽으로 넘어갈 때가 되어도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자 신은 마침내 답했고, 제사장은 그 소리를 따라 잠시 고개를 들어 자신의 창조자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내가 두 아이를 만들었을 때는 두 아이 모두 영원히 살 수 있었단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 온전한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었지. 어느 날......그들은 내게 아이를 원한다고 말했단다. 그리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이를 위한 삶이 그들의 생명을 줄여나가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
그리고 신의 눈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것이 보였다.
"나도 아이가 필요했단다. 아들아."
그 신성함에 제사장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다시 한참이 지나고 새로운 태양이 떴을때가 되서 지친 몸을 들어올렸을 때 그가 볼 수 있는 모든 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니?"
그가 물었다.
"음, 이해가 잘 안되요. 그럼 그 신은 죽은건가요? 신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죠?"
"또?"
그는 내 질문엔 대답을 하질 않고, 다시 물었다.
"음, 그럼 신에게도 부모가 있었을까요?"
그 대답까지 들었을 때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럼. 모든 이에게는 부모가 있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제외하고 말이야."
그는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시간이 한참 더 흐르고 나서, 나는 나의 부모님이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모든 힘들이 슬프게도 내게서 왔으며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처럼 선천적으로 얻은 것이 아닌 힘들을 사용하느라, 그들의 온전한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는 것도 알았다. 죄송스럽고 또 부끄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그가 들려준 제사장 이야기의 신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가 조금 지쳐서 나같은 모든 아이의 마음 속에 "그러니까 부모님께 잘하란 말이야 임마." 라는 한 마디를 해주러 갔기를 온 맘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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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거식증 (2)
2013/11/30 PM 09:19 |
“아무래도 거식증인가봐.”
엘리아나는 세면대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배고픔에 역겨움을 참고 음식을 뱃속으로 밀어 넣기는 했으나, 5분 안에 모두 토해버리곤 했다. 사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약간의 식사조절과 유산소 운동이었다.
“아직 부족해.”
그녀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병적인 상태라는 것 역시.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남자친구는 변해만 가는 그녀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실 그렇다. 어떤 남자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여자를 사랑하겠는가. 그 것이 헤어짐의 모든 이유는 아니었음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했던 말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넌 너무 뚱뚱해졌어. 섹시하지 않잖아.”
그리고 그녀는 그 말에 집착했다. 그 말은 요 몇 달 사이에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거울을 바라보면 마치 공포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처럼 거울에 비친 얼굴 위로 빨갛게 글씨가 떠오르곤 했다. ‘넌 너무 뚱뚱해.’라고.
그녀는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난 이미 다시 예뻐 보일만큼 살이 빠졌을지도 몰라. 벌써 몇 달째잖아. 제대로 먹지도 못한게.’
그녀의 뇌가 그녀의 눈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을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친 사람이 자신이 미친 걸 알아볼 수 없는 이유는 그에게만은 그게 분명하고 속일 수 없는 진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와 헤어진 후에 자신이 미쳐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생각에만 이를 뿐 그녀는 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선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그녀는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고,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해낼 것이다.
그녀의 생각대로 그녀는 미쳤다. 그러나 그 것 말고도 그녀가 모르는 많은 진실 중에는 또 다른 것들이 있다. 그녀가 음식을 토해내기 시작한지는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는 점이다. 그녀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녀의 장기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띄게 되었다. 대단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위는 마치 커다란 말미잘을 연상시켰다. 그녀의 식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성의 부재에 의해 위산의 산성은 줄었고 수많은 촉수들이 그녀의 위를 뒤덮었다. 그리고 음식이 입 속에서 잘게 씹어져 식도를 통해 위로 내려오면 그녀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만을 공급하기 위해 촉수들은 음식을 공격했다. 그리고 각자의 촉수들이 맡은 영양소를 모두 흡수한 후, 다시 식도로 밀어냈다.
그녀는 그녀의 위가 그렇게 변한 후로는 배설한 기억이 없다. 물론 배설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의 위에 달린 촉수들이 그녀의 식도를 통해 밀어낸 영양을 모두 잃은 음식물들은 그야말로 찌꺼기 그 자체이니까. 그녀는 강장동물이다. 말미잘이나, 히드라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왜곡된 모습이지만 아직 생각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보다 못한 점이 있다면 배설의 고통을 모두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점점 퇴화할 것이고 마지막에는 기생충이나, 더 나아가서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더 이상 적응하지 못하고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대부분은 사실 반(半) 강장동물이다. 인간을 다른 종보다 우월하게 만드는 이유는 감정과 이성뿐인데, 그 둘에는 어디에도 배설기관이 없다. 찌꺼기를 뱉으며 쾌감을 느낄만한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찌꺼기들을 뱉어낼 수단들을 생각해내고, 그 것을 행한다. 하지만 그 것은 자연적이지 않으며 완벽하지도 않다. 그래서 슬프게도 인간은 온갖 미(美)각과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을 잊고 찌꺼기를 뱉어내야 할 때가 되면, 우리가 처음 구토했을 때 느꼈던 자기혐오와 비릿한 맛과 역겨운 냄새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참담한 심정을 느끼며, 배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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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예지자의 연인 (2)
2013/11/30 AM 03:42 |
예지자의 연인
준비해온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을 잘 아는 나는 그래서 더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녀에게 느끼는 동정심이 내게 이야기를 꺼내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동정심은 길을 걷는 도중에 만나는 길고양이들에게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감정을 느끼는 마음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얻을 수 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인공은 남자야. 아니. 여자라고 보는게 낫겠네. 이 영화는 여자 쪽에 감정을 맞춰서 보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거든.]
이 이야기는 몇 년전에 보았던 영화의 내용이었다.
[영화 내용을 몰라서 난 뭐라고 판단할 수가 없어.]
거짓말.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하고 작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얘기해줄게. 먼저 한 남자가 나와. 도서관 사서인데 이름이 뭐더라. 찰리? 어쨌든 두 글자로 된 이름이었는데.]
[헨리야.]
[이 영화 봤어?]
[아니. 나랑 이야기 하고 있다는걸 잊지마.]
[본지가 오래되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 남자가 어렸을 때 차 사고가 나. 그녀의 어머니가 그 사고로 죽지. 근데 그는 하나도 다치질 않았어. 그는 긴장을 하거나 하면 무작위의 시간과 장소로 이동하거든.]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는거야?]
[응. 어쨌든 그 남잔 계속 무작위의 시간을 여행하면서 살아가. 시간을 여행할 때면 항상 옷이 없어져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옷을 구하거나, 여기서 저기로 도망치는 일이었지.]
[힘들겠네.]
[어, 그 남자에게 자기의 체질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을거야. 몇 번 그는 과거로 되돌아갔어. 어머니가 죽던 그 때로 말야. 그리고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자기에게 의미있는 공간으로는 자주 이동하게 된다는 사실도 말이야. 어쨌든 어느 날에 여주인공을 만나게 되. 이 영화는 그녀의 시간순으로 이동하거든.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 우리는 대개 시간의 흐름에 익숙한데 남자를 따라가면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힘이 들겠지.]
[맞아. 그녀가 열 살이나 되었을까? 좌우간 어렸을 때 갑자기 집 근처 숲 속에서 나체의 한 남자를 보게 되. 그녀는 그에게 담요와 먹을 걸 주지.]
[나라면 도망갔을지도 모를텐데.]
[넌 도망칠 수도...... 아니면 미리 담요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다 놓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녀는 농담에 희미하게 웃었다.
[닥터가 생각나네. 웃고 있는 사과 같은 거 말이야.]
[맞아. 난 이 영화를 먼저 보고 드라마를 보았는데 리버송과의 관계가 늘 이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었어. 자기의 미래를 알고 있는......]
[계속 이야기해봐.]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어쨌든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어. 그녀의 사춘기 시절에도 그는 계속 성인인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그녀와 대화하곤 했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닐거야.]
[응.......]
[그녀는 그와 결혼해. 결혼식 날에도 함께 결혼식을 준비하던 현재의 그가 아닌 더 나이 많은 그와 식을 올렸지.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결혼식 준비를 같이하던 그 헨리도 현재의 헨리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네. 듣고 있어?]
[듣고 있어.]
[화내지마. 난 그렇게 물어볼 수 밖에는 없으니까. 미안해.]
[미안할 필요 없는 것도 알고 있잖아.]
그 이야기에 나는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미안할 필요가 없다는 그녀의 말 때문이 아니라, 화를 내고 사과하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형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늘 내게 사과하지 말라고 말했다. 미안할 필요가 없다고. 처음에 내가 그녀의 체질을 몰랐을 때 나는 진심을 다해서 사과했었다. 물론 그 때는 사과할 일이 더 많았다. 그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면들이 아는 것보다도 더 많았기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사과조차 이렇게도 형식적이다.
형식적으로 서로를 대하는 인간들의 관계는 과연 살아있을까. 나는 늘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까해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크고 아름다웠지만 내면의 증거는 미세하거나 아무 것도 없었고, 나는 그때마다 그녀와 내가 타인임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녀는 왜 우는지 묻지 않고 바로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주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서는 다시 이야기 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할까 아니면 그만 되어야할까. 모든 질문은 다시 부정된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데, 아이는 유산되고 말아. 아이도 남편의 체질을 닮아서 태아인 상태에서 시간 이동을 해버렸거든.]
[내용이 좀 잔인한 것 같아.]
[헨리는 아이를 가지기를 포기하지.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어. 언제 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그녀가 아이를 가지는데 더 집착하게 만들었을지 몰라. 어느날 밤에 아이 가지기를 포기한 현재의 헨리가 아닌 과거의 헨리가 나타나고 그녀는 그와 결합해서 아이를 갖지.]
[이번의 태아는 시간여행하지 않아?]
[같은 체질이긴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어.]
[딸이었나보네.]
[응. 잘 기억이 안나. 첫번째 유산된 아이가 남자였는지 말이야. 만약에 남자였다면 남자만 이 시간여행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텐데. 사실 남자가 충동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건 사실이니까 뭐 그런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응. 확실히 남자는 충동적이야. 오빠도 그래.]
그녀는 갑자기 손을 뻗어서는 양 손으로 내 오른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이야기를 그만둘뻔 했다. 그녀는 내가 그녀와 대화한 대부분의 시간에서, 아니 모든 시간에서 완전한 대화상대였다. 하지만 가장 불완전한 대화상대이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어느 날에 마룻바닥에 알몸으로 죽어가는 헨리가 나타나. 헨리와 그녀 모두 그걸 보지. 곧 그는 사라졌고, 모두가 그가 죽었다는걸 알았어. 그리고 헨리는 기다리지.]
[과거가 그랬듯이 미래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테니까 체념하고 기다리는거야.]
[그래. 이미 알고 있겠지. 그는 사실 그녀의 집 앞 숲에서 죽어. 그 숲이 의미있는 공간이었던거지. 그녀와 만난 것도 필연적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사냥을 좋아해. 그래서 옷을 벗고 있는 그를 사슴으로 착각해서 총을 쏘지.]
[그게 끝이야?]
[아니. 그녀가 그의 모든 삶을 알 수는 없으니까 그녀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날에 그는 그가 죽은 후의 미래로 시간여행하기도 했었어. '나는 내가 죽은 후의 어느 날, 몇월 며칠로 시간여행했소.' 라고 말해주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딸 아이와 함께 그가 죽은 숲이 있는 그녀의 원래 집에서 그를 기다리면서 살아.]
[슬퍼. 하지만 뒷이야기가 더 있지? 결말 말이야.]
[어느 날에 그녀의 남편이 돌아와. 그녀의 딸이 먼저 그를 만나고, 어머니에게 알리지. 그녀는 저 멀리 집에서부터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밝은 얼굴로 그를 보러 뛰어가.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이미 시간이 별로 없었어. 그는 뒤로 강렬한 햇살을 받으면서 작별을 고하고 사라지지. 그게 엔딩이야. 그녀는 어느 날에 또 그가 찾아오기를 기도할 수 밖에는 없겠지. 그리고 짧은 만남 후에 또 다른 시간으로 그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밖에는 없을테고. 슬프고 힘들거야. 그녀의 사랑은 너무 희생적이고 비현실적이야.]
[그녀가 그럴 수 있는건 그를 무한히 사랑했기 때문이야.]
[무한한 사랑은 현실에 존재할까? 그녀는 영화 속의 인물이야.]
[누구나 무한한 사랑을 꿈꾸지 않아?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의 모든 것을, 그야말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그런 마음말이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실존할 수 밖에 없어.]
[......]
[무한히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미래를 본다. 전날의 꿈에서 오늘 있을 일들을 모두 알고 난 후에 그 하루를 살아간다. 그녀가 말했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어. 제발. 말하지마.]
[너와 함께 있을 때마다 내 미래도 고정되어 버려. 내가 만약 오늘 밤에 너에게 복권 번호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어버리면 너는 꿈 속에서 복권과 관련된 미래를 꿀거야. 그리고 함께 복권을 살지도 모르지.]
[어차피 그런 식으로 되지 않는다는거 알잖아. 난 전능한게 아니야. 내일 일어날 일을 아는 것 뿐이지.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오빠는 내가 싫다고 하면 하지 않을거잖아. 아니면 내가 사지 않겠지. 현실의 나는 오빠가 말하기 전까지는 복권의 번호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 얼마든지 속일 수 있잖아. 그러면 꿈 속에서 오빠를 그렇게 속이는 나를 볼테고. 미안해. 속이는게 아니야. 그건 그냥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이끌어가는 것일 뿐이야. 정말 속이는게 아니구.]
[바로 그게 문제야. 미안해. 나는 언제나 저 영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 현재는 너에겐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시 보는 것과 같잖아. 나는 내가 보는 네가 내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맞는지를 확신할 수가 없어. 나는 너의 생각대로 만들어진 각본 속의 인간 같아. 내가 니가 본 미래와 다르게 행동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니?]
[........]
[그럼, 너는?]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그녀를 기쁘게 하면 그녀는 12시간 전에 먼저 기뻐했다가 나를 만난 시점에 자기가 본 그대로 행동한다. 내가 그녀를 슬프게 하거나 혹은 화나게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럼 그녀가 내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감정은 처음의 감정과 같을까? 나의 현재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내가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한다고 해도 12시간 전에 먼저 알고 있다는 것, 그 것이 나를 지루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나를 괴롭게한다.
무한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나는 미래를 보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는 나를 사랑할까? 아니.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같이, 그녀도 꿈 속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단지 그녀가 보는 미래에 내가 있었다는 생각 또한 나를 괴롭게 한다.
그녀를 만나면 나는 둘째 아이가 된다. 첫째 아이와 부모님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하는 둘째 아이. 그리고 가장 큰 이점인 시간은 첫째 아이가 가지고 앞서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미래를 먼저 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우리는 때로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것, 단 두 번 듣는 것도 견딜 수 없어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 모든 행동을 두 번 겪는다. 적어도 내 보잘 것 없는 사랑보다는 훨씬 위대하다. 그녀는 무한한 사랑을 내게 주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별도 그녀는 12시간 전에 그대로 겪었을 것이다. 나를 사랑했다면 그 시간동안 그녀의 슬픔은 희석되었을까 아니면 증폭되었을까. 수많은 질문이 스쳐지나갔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궁금해졌다. 오늘 밤에 그녀는 어떤 내일을 꿈꿀까.
이야기는 비교적 쉽게 정리되었다. 내일 일을 오늘 밤 알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우리의 이별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원하는대로 삶이 흘러갈거라고 믿는다. 그녀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더 큰 믿음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두 번이나 이별을 겪었지만 내 생각이 조만간에 바뀔지도 모른다고 믿는 그녀는 한번도 이별을 겪지 않았다. 우리는 까페 밖으로 나왔다. 태연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 또한 그 때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표정을 지어준 것은 그녀의 배려였을까. 그 것 또한 미래에서 본 그대로일까.
한달이 지났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는 한번도 듣지 못한 것처럼 높고 격앙되어 있었다.
"꼭 할 말이 있어. 제발."
그녀는 많이 변해 있었다. 얼굴은 기나긴 겨울길을 걸어온 것처럼 희고, 야윈 얼굴은 그녀의 눈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었다. 곳곳에 매니큐어 색이 벗겨진 손톱이, 단정하지 않은 귀밑머리가, 떨리는 입술이 그녀를 꼭 붙잡고 안아주고 싶은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그녀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싶어한 것이 내 본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오빠, 오빠랑 헤어진 후로 나는 한번도 내일 일을 꿈꾼 적이 없어 꿈에는 오빠만 나와."
나도, 나도 알고 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사랑도 너의 꿈만 꾸었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있던 행복했던 일들만 가득해. 오빠가 내 능력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는거 잘 알아. 이제 그 능력이 없잖아. 우리 다시 만날 수 없을까?"
그녀의 눈 안에는 불안이 가득하다. 정말로 미래를 모르는 사람의 눈이다. 사랑받고 싶은 한 여자로써 나의 대답만을 기다리는.
그렇다면 나도 같은 시간선에서 함께 감정을 공유하며 무한히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두려워 태아처럼 웅크려 있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아들어 입 맞춰줄 수도 있고, 그녀 대신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다. 기쁠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함께 울며 서로에게 속한 인간으로 있을 수 있다. 오감 이하의 감각을 가진 모든 이들은 무한히 사랑할 수 있다.
턱을 괴고 오래 생각했다. 내가 싫어하던 그녀의 유일한 면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에게 완벽하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평범한 연애의 진리대로
아니.
그런다면 그녀는 다시 우리의 미래를 꿈꿀 것이다. 나는 또 다시 그녀의 꿈 속에서 이별을 고하는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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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코 속의 털 (5)
2013/11/29 PM 11:37 |
'콧털'인지 '코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하려는 얘기는 어디까지나 '코 속의 털'에 대한 얘기다. 인류가 면도를 시작한 이래로(알렉산더 대왕이 전투에서 수염이 잡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행하기 시작한) 이 '코 속의 털'은 꽤나 불편한 대상이 되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코 속의 털'이란 놈을 꽤나 혐오스럽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래서 나는 이 '코 속의 털'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편인데, 이 녀석은 관리하기 꽤나 까다롭다. 코 속에 가위를 집어넣고 자르기도 쉽지 않거니와, 뽑으려고 하면 눈물을 쏙 뺄 정도로 아프다. 그리고 또 관리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어느샌가 갑자기 삐져 내려와 나에 대한 안좋은 인상을 심어주곤 한다. 그러나 모두들 알다시피 '코 속의 털'과 점액은 코 안으로 들어오는 온갖 해로운 것들을 막아냄으로써 우리 몸이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에 일조하고 있으니 어찌 이 녀석을 내 몸에서 필요없는 놈이라 내칠 수 있으랴.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지나간 사랑과 그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 역시 그런 것이라, 잘라내기도 어렵고, 뽑으려 하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느샌가 밖으로 삐져나와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기억과 눈물들 역시 코 속의 털과 점액과 같이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감정을 느낄 때 해로운 것을 걷어내고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를 남몰래 도와주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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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개인의 슬픔 (0)
2013/11/28 PM 07:31 |
눈을 떴을 때는 버스 안이었다. 버스가 멈춰선 탓에 잠에서 깬 모양이다. 마지막 기억은 치킨 한 조각을 양념 소스에 찍어 입으로 넣은 것이다. 치킨 집에 들어간 것이 10시 반, 30분 안에 조리되어 나왔다고 해도 두 시간 정도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내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집으로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익숙한 번호의 버스에 익숙한 길을 지나는 것을 보니 막차에 탑승한 모양이라 안도한다.
중앙대 앞에서 우이동으로 향하는 151번 버스는 서울역을 지나간다. 새로 지어진 서울역의 역사 반대편에는 큰 빌딩이 있고, 빌딩에는 가을을 기념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다섯 명의 신사들이 빌딩의 벽면을 거닐고 있었다. 이 시간에도 누가 빌딩의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녀를 옆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말했을거다. "여보세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게 아니잖아요."
그녀의 이야기는 항상 옳다. 실제로 내게 말하지 않는 것이라도.
귀소본능이 있어서 집에는 무사히 도착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 우습다. 아무런 기억이 없어도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오늘은 취하기를 바랐기에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없이 온몸을 뒤졌다. 핸드폰도 지갑도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통화목록까지 확인하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 가방 안에 손을 넣어 지갑과 핸드폰을 꼭 쥐고 밖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곧 비가 내릴 것처럼 궂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별하기 전에 나는 저 벽면에 보이는 것처럼 그녀와 내 몸을 모두 가릴 정도의 큰 우산을 좋아했다. 예전에 자동우산이라 불리던 2단 우산은 여러 해를 내 첫 장난감처럼 사용되었지만, 곧 가방에 쏙 들어가는 3단 우산에 밀려 보일러실 옆 공간에 쳐박혀 있었다. 그리고 3단 우산은(홀로 쓰기에 작은 감이 있긴 하여도 용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기에도 내구성에도 밀려, 정말로 몹쓸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단순하고 우직한 장우산이 차지했다. 여리여리한 그녀의 몸에 단 한 방울 빗물도 뭍히고 싶지 않았던 나와 내 우산의 고결한 생각과는 다르게 비오는 날은 언제나 바람이라는 고난을 선물했다. 방향을 비껴드느라 언제나 내 한 쪽 어깨는 젖어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나는 젖지않은 그녀의 나른한 어깨와 젖은 내 어깨를 번갈아 보며 내심 즐거워했다.
빌딩 벽면의 광고 하나조차도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떠들던 동안에 잠시 내게서 멀어져 있던 그녀는 단 둘이 있는게 좋다던 그녀의 말처럼, 홀로 있는 순간에 더 가깝게 다가왔다. 뱃 속에 들어있는 술이 열기를 품는다. 이 열기가 지나가고 나면 아마도 내 장기들은 그만큼의 열을 잃을 것이다. '몸이 차가워지겠지.' 자켓을 다시 여미고, 비가 내리기를 빌면서 눈을 감았다.
"아저씨, 일어나요."
다시 눈을 뜨자, 나는 종점이다. 후다닥 내려서 집 쪽을 향해 걸었다. 어차피 집이 멀어서 택시를 타야하는데도 왠지 걷고 싶어져서 무작정 걸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밖은 적막하다.
음악은 내게만 들린다.
신나는 곡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원래도 잘 추는 춤은 아니지만, 스탭이 꼬여 무릎을 꿇은채로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기우제를 지내는 제사장처럼 나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궂은 하늘에서 기다리던 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개인의 슬픔이 온 세상을 뒤덮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뒤편에서 오던 한 대의 택시 안에서 기사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자 나는 일어나 무릎을 털고, 개인의 슬픔이 미치는 범위가 귀에 꽂은 이어폰과 같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부끄럽고 속상해 도망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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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의할 수 없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