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도영 MYPI

게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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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쓰기] 단편소설_ 아롱이가 옆에서 눈물을 핥아 주었다 (4) 2024/09/30 AM 09:06



 소년은 가능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퇴근 시간쯤에 도서관으로 피신했다가 오면 아버지가 술병 옆에서 잠들어 있었고, 그런 날은 맞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물건을 부수거나 소년을 때렸다. 예전에는 엄마를 때렸었다. 하루는 아버지에게 맞아서 한쪽 눈이 퍼렇게 멍이 든 엄마가 소년을 붙잡고서 말했다.


"혼자 밥 차려 먹을 수 있으면 다 큰 거니까, 이제 네가 알아서 잘 살아."


 그날 엄마는 말을 마치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며칠 뒤 시장에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엄마가 사라지자, 다음 차례는 아롱이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소년을 위해 구해준 보더콜리랑 똥개 잡종이었는데, 검고 흰 털이 얼룩덜룩해서 젖소를 닮은 수캐였다. 새끼 때부터 똑똑해서 소년이 녀석에게 붙여준 이름을 금방 알아들었다. 집에 온 날 바로 배변을 가릴 줄도 알았다. 그렇게 똑똑해서 아버지에게 술 냄새가 나지 않을 때만 부르면 다가가서 꼬리를 쳤다.


 소년은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지 않고 바로 집에 와서 아롱이 밥을 주고 산책도 시켰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반찬도 오후에 TV에서 나오는 요리 방송을 보고 알려주는 것들을 따라서 만들었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채우려고 노력할수록 구멍만 더 커져서 소년은 그 구멍 한켠에 웅크리고서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잠들었다. 소년이 울 때마다 아롱이가 옆에서 눈물을 핥아주었다.


 어느 날 소년이 차린 저녁상을 먹던 아버지는 반찬이 짜다고 밥상을 엎어버렸다. 그러고는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나갔는데 열린 창문으로 담배 냄새랑 함께 깨갱하고 개가 우는 소리가 들어왔다. 대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조심히 나가보니 아롱이가 구석에서 낑낑거렸다. 소년이 다가가니 꼬리를 치면서 살살 다가오는데 한 쪽 다리를 절었다. 불쌍해서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드니까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절뚝절뚝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소년은 방으로 돌아가서 돼지 저금통을 열어보았다. 만 팔백 원이 보였다. 이걸로 아롱이를 동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아롱이에게 미안해졌다. 돈이 없는 것보다, 아롱이를 병원에 데려가면 아버지가 소년을 때릴 것 같아서였다.


 며칠 동안 절뚝거리던 아롱이는 어느 날 소년이 학교에 다녀오자 사라졌다. 동네를 뛰어다니며 애타게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녀석이 집을 나간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처럼 소년을 두고 집을 나갔어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찾다가 지쳐서 집에 돌아와 방바닥을 물걸레로 닦다가, 괜히 옆 반의 상철이가 저희 아버지 따라가서 개고기 먹었다고 자랑하던 것이 떠올랐다. 그 개는 어디서 난 거였냐고 소년이 물었을 때 상철이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소년은 도서관 구석에서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회색 개 한 마리가 주인을 위해서 소원을 들어주는 황금사과를 구하는 대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목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황금사과를 입에 물고 의기양양하게 꼬리치며 달려가는 그 회색 개의 코가 아롱이랑 닮았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 검은 코가 너무 촉촉해 보여서 갑자기 소년의 볼에 눈물이 흘렀다. 오늘은 곁에서 눈물을 핥아줄 친구도 없는데 계속 그랬다.

 

 훌쩍이던 소년이 소매로 눈물 콧물을 닦고서 일어나 도서관을 나서는데, 주변에는 어른들이 있었지만, 모두 저마다의 문제로 힘들었으므로, 그곳은 어린 발자국 소리와 코 먹는 소리를 빼면 조용하기만 했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년은 어쩌면 아롱이가 황금사과를 물고 돌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상상 속에서 재롱을 떠는 아롱이의 모습이 예뻤다. 그래도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때 어느 집의 열린 창문으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반찬은 고기반찬인 것 같았다. 소년은 좀 전까지 슬펐는데, 이제는 배고프고 슬펐다. 그리고 곁에는 아롱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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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    친구신청

옥...직접 쓰신건가요?

게도영    친구신청

예.😃

토토르드    친구신청

필력 좋으시네요 괜히 옆에 있는 아들래미 한번 안아주게 되네요 ㅠㅠ

게도영    친구신청

감사합니다. 😊
[1. 글쓰기] 귀뚜라미 (0) 2021/08/23 PM 09:51



 

 

귀뚜라미

 

 

 

 

선선한 밤에

귀뚜라미 신나게 우네

 

그 소리 부엌 창문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여름이 지나가니 슬퍼서 우나

가을이 다가오니 기뻐서 우나

 

어쩌면 아랫집 아기 잘 자라며

자장가 불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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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쓰기] 산책로 (0) 2021/04/04 PM 05:26

 

산책로

 

 

                      게도영

 

 

 

 나무는 봄이 좋다

 분홍 꽃비 맞으며 깔깔대는

 노란 모자와 아이들

 

 

 나무는 여름이 좋다

 그늘에서 손잡고

 다정하게 미소짓는 연인들

 

 

 나무는 가을이 좋다

 둘이 걷던 길

 이제 홀로 걷는

 노인의 뒷모습

 

 

 나무는 겨울이 좋다

 눈 덮인 길 위로

 발자국 남기며 흐르는

 뜨거운 청년의 눈물

 

 

 그리고

 

 

 나무는 당신이 좋다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

 묵묵히 걸어가는

 고독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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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쓰기]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3/3 (0) 2019/05/13 PM 12:07

 

 

 

제목: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3/3

글쟁이: 게도영

 

 

 

 

  6개월이 지났고 동생은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워낙 똑소리 나는 아이여서 내가 힘들지 않도록 스스로 집안일도 하고, 슬픔에 젖어 공부를 놓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동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지인들에게 말수가 많이 줄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 말고는 별일 없었다. 어려움 없이 전처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일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데 시간은 너무 잘 흘러갔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오늘은 주말이었지만 나는 특근이었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나가려는데 신발 끈이 풀려있어서 고쳐 묶고 있으려니 어느새 동생이 다가와서 봉지를 내밀었다. 안에는 빵과 우유가 들어있었다. 동생이 굶고 다니지 말라더니 이어서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전보다 많이 일하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지만, 나는 괜히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헝클어뜨렸다. 그러고서 괜찮다고 왜 네가 미안해하냐고 말했다. 동생이 계속 풀죽은 표정을 하고 있기에 손가락을 튕겨서 이마를 딱 하고 때렸다. 녀석이 놀라서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찡그렸다. 도서관에서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 말고 오늘은 일찍 들어오라고, 퇴근하는 길에 치킨 한 마리 사 오겠다고 말했다. 건네받은 봉지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동생이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여유가 있었다. 가방을 메고 천천히 걸었다. 버스를 타면 10분 거리에 공장이 있었지만, 걸어가면 30~40분 정도 걸렸다. 돈을 아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되었기에 차라리 걷는 동안은 잡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공원을 지나다가 고양이를 보았다. 검은 고양이었는데 꼬리 끝이 하얬다. 녀석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나무 위에서 조심히 새의 둥지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새끼들이 둥지에서 어미를 찾아 뺙뺙거렸지만, 어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저걸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 걸음을 멈춘 채 보고 있었다. 이제 사냥꾼이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점심으로 새끼 새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갑자기 뒤에서 충격이 느껴졌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일어나서 뒤를 보니 곱슬머리 사내가 다가와 미안하다고 말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조깅하다가 심취해서 앞을 못 봤다고 했다. 내가 다친 곳이 없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곱슬머리 사내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려고 했다. 내가 두 번 더 사양하고 나서야 그는 인사하고 다시 음악을 들으며 달려갔다.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보았는데 고양이는 사라진 후였다. 밑에서 나는 부산한 소리에 놀라서 도망간 모양이었다. 둥지에는 새끼 새들이 여전히 뺙뺙거렸고 다행히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안도감과 함께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한 걸음 옮기려는데 발밑에서 뭔가 반짝였다. 500원짜리 동전이었다. 내 것이 아니었으니 아마 좀 전의 곱슬머리가 떨어트리고 간 것 같았다. 나는 동전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공원을 벗어날 때쯤 길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았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그네를 탄 채로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옛 추억이 떠올라 씁쓸함에 인상이 조금 구겨졌다. 옆에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빨간 풍선을 손에 쥔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밀며 풍선을 쥔 아이가 짜증 내는 것을 달랬다.

 

  눈이 마주쳐서 인사했다. 아이 엄마가 인사하며 풍선을 쥔 아이에게도 인사하라고 시켰다. 아이는 낯을 가리는지 엄마 뒤로 쏙 숨었다. 나는 괜히 꼬마에게 뭔가 주고 싶어졌다. 주머니를 뒤져서 500짜리 동전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순식간에 풍선이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풍선을 놓쳐버린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덩달아 유모차의 아기도 울어댔다. 아이 엄마는 자식들을 달래느라 정신없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빨간 풍선이 날아간 하늘을 보았다.

 

  새파란 하늘을 가만히 보았다.

 

  구름이 일부러 그려놓은 듯이 근사하게 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오늘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길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 집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생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장롱을 열어 하나뿐인 정장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기왕에 죽을 거면 좋은 옷을 입고 죽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회사로 가는 길의 다리 위에서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아 유서를 쓰는 중이다. 막상 죽으려니 억울하고 겁이 났다. 그래도 죽기는 할 건데 잠시 시간이 필요해서 유서를 썼다. 쓰다 보니까 배고파져서 동생이 챙겨준 빵과 우유를 먹었다. 이제 더 쓸 말도 없는데 아직 겁이 가시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쓴 유서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마지막 글이 될 테니 가능하면 잘 쓰고 싶다. 다시 읽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 써야지.

 

  내가 쓴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무슨 엉터리 소설같이 느껴진다. 삼류 작가가 이야기를 썼는지 나의 인생은 두서없이 엉망진창이었다. 글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가라앉아 버렸다. 틀리거나 말거나 아무려면 어때. 그런데 만약 정말로 삼류 작가가 쓴 거라면 결말을 어떻게 내려고 이따위로 쓴 건지 모르겠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진짜로 가야겠다. 사실 벤치에 앉을 때부터 죽을지 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동전 던지기로 정하기로 했다. 공원에서 주운 500짜리 동전으로 시도 중이었다. 다섯 번 던져서 3번 앞면이 나오면 뛰어내리고 반대로 뒷면이 3번 나오면 죽지 않기로 했는데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연속으로 앞면이 두 번 나왔다. 마지막에라도 운이 좋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이제야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무리한 편지를 잘 접어서 가방 밑에 깔아 두고 난간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옆에 가지런히 놓은 후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들고 가만히 바라본다. 두루미 한 마리가 자유롭게 날아갈 것처럼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제 보니 이거 새것이었네.”

 

   남자가 주먹으로 동전을 꽉 쥐고 한숨을 쉰다. 눈을 감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다시 눈을 떠 난간 너머 깊고 검게 흐르는 강을 본다. 난간에서 몇 걸음 물러나서 주먹을 풀고 동전을 높이 던진다.

 

  동전이 튀어 올라 정점에서 햇빛을 받아 잠시 반짝이더니 시간이 느려진 것 같다. 공중에서 회전하던 동전이 이제야 떨어지려 한다.

 

  남자의 시선은 동전을 향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까치 한 마리가 동전을 물고 날아간다. 남자의 시선이 까치를 쫓고 그의 눈동자에 발가락이 하나 모자란 까치의 뒷모습이 비친다.

 

  남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잠시 얼어 있다가 일그러진 얼굴로 변하고 곧이어 허탈한 얼굴로 변한다. 다리 위에서 허무하고 맥없는 웃음소리를 한참 토해낸다. 벗어 두었던 구두를 신고 가방 밑에 깔아둔 편지를 잘 접어서 가방 안에 넣는다. 그리고 가만히 하늘을 보다가 피식 웃는다.

 

  남자가 다시 걸어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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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쓰기]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2/3 (0) 2019/05/08 PM 08:18

 

 

제목: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2/3

글쟁이: 게도영

 

 

 

 

  카페에서 마주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여자친구는 잘 지냈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못 지냈지만, 잘 지냈다고 거짓말했다. J가 커피잔을 들자 왼손의 반지가 눈에 띄었다. 무슨 반지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반지를 어루만지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더는 묻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 함께 말없이 책 읽던 추억이 떠올랐다. 

 

 여기서부터는 내 기억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다시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커피를 다 마시자 그녀가 일어났다. 그러고는 또각또각 걸어서 카페를 나갔다. J는 중간에 멈칫하거나 돌아보지 않았다.

  

 빈자리에 남은 커피잔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J는 말없이 떠나버렸고 나만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니 나 혼자서라도 이유를 찾아서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고민 끝에 답을 정했다. 내 키가 그녀와 사랑하기에 모자랐기 때문이었다고. 그녀보다 다만 몇 센티라도 컸다면. 최소한 그녀와 같은 키로,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 두어 번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동안 취하면 J 같은 좋은 여자는 다시는 못 만날 거라며 아무나 붙잡고 울며 하소연하는 게, 나의 술버릇이 됐다.

 

  사실 그녀와 이별하고 나서 오랫동안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3주 정도 울면서 J와의 이별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갖은 노력 끝에 아버지가 개인택시를 장만했다. 아버지는 첫 손님으로 어머니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 그리고 두 분이 사고를 당했다. 트럭 운전사가 졸음운전 중에 아버지의 차를 뭉개 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가 핸들을 잘 틀었던 덕분에 어머니는 왼팔하고 대퇴골이 골절되었지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입원하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때 동생은 어머니를 간호하는 등 울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했다. 반면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보험사, 경찰, 장의사 아저씨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차가운 받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장의사분들이 아버지의 남은 파편을 맞추어서 생전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가 그냥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오늘도 돈 벌러 가야겠다고 이야기할 것 같았다. 늙기 전에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 집 한 채씩 해주겠다고 큰소리치실 것 같았다.


  장례식을 넋 놓고 치렀다. 아버지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를 납골당에 안치하면서 문을 닫는데 달칵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한참 동안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가셔야 하나. 아버지의 죽음이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시간은 전과 다름없이 무척 잘 흘러갔다. 나는 가장의 역할을 맡아 전에는 신경 쓴 적 없었던 여러 일을 처리했다. 남겨진 빚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으로 대부분 갚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내가 버는 돈으로 조금씩 갚아도 한 1년이면 전부 변제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만 남았다. 통장을 정리하면서 아버지랑 어머니가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사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상속 포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사하고 싶지 않다고 밝히자 동생은 내 의견에 찬성했고 어머니는 병실 침상에 앉아서 대답이 없었다.

 

  날씨 좋은 날 어머니가 퇴원했다. 담당의가 수술 경과가 좋아서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병실에서부터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부축했다. 병원 주차장으로 미리 택시를 불러두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옆으로 하얀 벚나무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벚꽃 잎이 춤추듯 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풍경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우리 앞으로 열심히 살자고. 어머니는 말없이 내 얼굴을 한 번 보시고 미소 지었다.

 

 그러고 2주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자살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연락을 받고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한참을 펑펑 울었다. 시신은 평소 부모님이 함께 오르던 동네 뒷산에서 발견되었다. 그 산은 우리 남매가 어리고 부모님이 젊었을 때. 가족이 김밥을 싸서 돗자리 들고 올라가 소풍을 즐겼던 곳이다. 우리가 돗자리를 폈던 언덕 근처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나무에 목을 매어 삶을 끊어버렸다. 어머니가 마지막에 지녔던 것은 아버지의 낡은 넥타이와 편지 한 장이었다. 편지에는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적혀있었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두 분 이렇게 가실 거면 왜 나를 낳으셨나요?’


  울다가 지쳐서 두 눈이 퉁퉁 부은 동생이 옆에 있어서 그 말을 뱉지 못하고 도로 삼켰다.

 

-


  남자가 글 쓰던 손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튕긴다. 앞면이 나온다. 도로 주머니에 넣고 종이와 연필을 가방으로 눌러 날아가지 않게 한다. 뚜벅뚜벅 난간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내민다. 파란 하늘 아래로 깊은 강이 시간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다. 까치 두 마리가 다리 아래로 잇따라 먹이를 물어 나른다. 아마 그곳에 둥지를 튼 모양이다. 거리가 멀어서 좀 전에 빵을 물고 간 그 까치들인지 알 수 없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벤치로 돌아와 연필을 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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