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화는 원작 소설을 먼저 읽으시고 보시면 더욱 재미 있습니다.
조 원장은 3월 6일까지 무조건 간척공사를 끝내라는 새로운 명령을 원생들에게 내립니다. 그리고 이미 조 원장과 한 배를 탄 황 장로도 적극적으로 그를 도와줍니다.(만약 간척공사가 실패한다면 원생들의 분노는 조 원장은 물론이고, 기회가 있을 때 그를 처치하지 못한 황 장로에게도 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조 원장은 누굴 위해서 3월 6일을 고집하는 걸까요?
간척공사의 완성이 6일이든, 8일이든, 원생들 입장에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조 원장은 어떻게든 자신의 임기 중에 공사를 완성하고, 그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한 후, 돌기둥에 새겨 후세에 영원히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어지는 이상욱과의 대화에서는 자신에게는 어떤 욕심도 없다고 태연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갑작스럽게 조 원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297 페이지에서 이상욱은 조 원장이 원생들의 마음 속에 '희망, 신념, 신뢰'를 심어주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건가요? 조 원장이 심어준 것은 '증오' 아니었나요?
저는 이 부분이 납득이 되지 않아 소설 외적인 자료들을 조사해 보았는데, 이 소설이 연재되던 도중에 조백헌 원장의 모델인 조창원 씨가 구속되었고, 그의 가족들이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조창원 씨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오마도 간척공사는 전라도에서 주관하였고, 나환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조창원 원장에게도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변변한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조창원 원장은 '군인 정신'만을 내세워 원생들을 몰아부쳤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는 저의 추정입니다.) 소설의 내용처럼 공사가 점점 지연되자 정치인들은 책임을 뒤집어 씌울 누군가가 필요해집니다. 그런데 때마침 이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조창원 씨에게 혐의가 쏠리게 되자, 그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고 구속시킵니다.
저는 작가의 의도가 '조백헌'이란 가상의 인물을 통해 독재의 속성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설 속의 '조백헌' 때문에 현실의 '조창원' 씨가 피해를 입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조백헌'과 '조창원'은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당시의 독자들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작가는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며, 조백헌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조창원을 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간척공사의 실패는 비판하되 조백헌 개인의 선의와 희생만큼은 인정하자'라는 포지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00 페이지에서 이상욱은 자신의 이중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합니다.
그는 조 원장에게는 나환자지만, 원생들에게는 건강인입니다.
원생들은 그의 탈출을 '소록도 최초의 건강인의 탈출'로 받아들이게 되고,
같은 건강인인 조 원장까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