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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글들] + 블레이드러너에 대한 소고 (0)
2012/12/20 AM 03:53 |
블레이드 러너를 처음 본 것은 정치경제학 시간 이였다.
굉장히 급진적이며 본질적인(radical)사고를 지닌 학문인 정치경제학시간에 이러한 공상과학물을 본다는 것은 상당히 이채로운 경험이었다. 영화는 레플리컨트라 불리우는 안드로이드의 수명연장을 위한 여정과 이들을 잡으려는 주인공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들 레플리컨트의 여정은 다분히 신화적이며 은유적이다. 한정된 수명을 늘리기 위한 여정은 창조주의 살해로 이어지고 이들은 예고된 죽음 앞에서 주인공에게 하나씩 제거된다. .
특이한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조인간은 안드로이드(android)라는 용어 대신에 리플리컨트(replican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이것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이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리플리컨트는 복제된 것, 즉 인간의 복제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복제된 인간은 개인성(individuality)상실된 완전한 개체화(individuation)된 오로지 수행성만을 위해 목적에 맞는 스펙, 그리고 수명마저 결정되어버린 존재로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벤야민이 대량 복제된 예술품을 이루어 말하길 아우라가 제거된 예술이라 하듯이 어찌 보면 이들은 인간의 아우라가 제거된 인간인 것이다.
벤야민의 복제된 예술의 아우라의 부재를 논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아우라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벤야민 자신도 여기에 대한 확답을 내놓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술의 아우라는 그렇다치고 인간의 아우라는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의 라스트씬에서 최후의 레플리컨트는 주인공을 구해주고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린다.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hauger gate. All th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을 보았어. 오리온 전투에서 불타오르던 우주전함들, 그리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어둠 속에 반짝이던 씨-빔의 물결도 보았어... 이 모든 기억들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한인간의 유언같은 그의 대사는 그들의 실존했음을,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웅변한다.
물론 그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는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느낀 그 어떤 것이 바로 인간의 아우라가 아닐까? 인간의 아우라는 존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어미 ~다로 정의 될수 없는 우리네 인생처럼 모호한 그 무엇만이 내머리속을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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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글들] 바람의 검심을 보다 (0)
2012/12/20 AM 03:47 |
케이블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바람의 검심을 보여주었다. 내 고교시절을 추억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만화이기에 오랜만에 재미나게 보고 있다. 특히 시시오 일파와의 전투는 이만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룡하다.
시시오 일파는 서구열강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은 강해져야 한다는 부국강병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들어 봉기한다. 이들의 이론은 다분히 사회진화론에 기이한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은 동양3국중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인 국가로 우리가 쓰고 있는 진화론을 대표하는 개념인 우승열패, 약육강식, 적자생존 은 일본에서 번역된 개념들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 십이 이러한 개념은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정당화 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흔히 아는 사실과 다르게 다윈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 라는 단어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은 사회 진화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허버트 스팬서 였다. 다윈이 만든 개념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였다.
적자생존과 그 유사개념인 약육강식, 우승열패는 매우 쉽게 이해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누가 적자, 약자, 강자, 우자, 열자, 인지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위와 같은 개념을 들먹이는 작자들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 자신과 자신의 소속집단을 강자로 그 외의 집단은 열자로 구분해서 자신들의 침략행위들을 자연의 섭리로 둔갑시켰다.
만화속의 시시오도 이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인간들이 그러하듯 결과론적으로 그 또한 적(適),강(强),우(優)자는 아니였다.
위와같은 연유로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보편타당한 법칙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차라리 다윈의 개념이 그 과학적인 진위여부를 제체 두고서라도 논리적, 역사적으로 타당한 개념이라고 사료된다.
중국의 학자 엔후(嚴復)는 natual selection을 천택(天澤)이라고 번역 했다. 그리고 바람의 검심의 시시오와 의 마지막 결투를 다루는 부분의 소제목이 내 기억으로는 '시대가 선택한 자' 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자연, 하늘, 시대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이성밖에 존재 한다. 물론 인간이 이것이 이성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착각한 적은 있었었다. 그렇다면 초이성적인 존재 앞에서 미약한 생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만화의 주인공 켄신은 비천어검류의 마지막 비기인 천상룡섬을 얻기 위해 사부와 대결하는 장면에서 결사의 마음을 버리고 본질적인 생에 대한 집착으로 돌아서서야 천상룡섬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시시오와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켄신의 생에 대한 본능이 그를 시대가 선택한 자로 만들었다.
아무리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살아가는 것,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것, 어찌 보면 생명체로서는 당연한 이 명제가 생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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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글들] 영지주의와 만화 (0)
2012/12/20 AM 03:43 |
에반게리온 序가 한국극장에 걸리는것을 보니 나름 감회가 새롭다. 대학 동아리시절 에바 극장판(당근 해적판)을 상영하여 솔솔히 푼돈을 모았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좌우 간에 에바 극장판 개봉에 맞추어서 에바의 주요 모티브중 하나인 그노시즘(영지주의)과 그 영향을 받은 만화에 대해 적어 보도록 하겠다.
그노시즘에 대해서는 네이버 검색에 의하면
"그노시즘(Gnosticism)이란, 그노시스 즉 영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서양의 신비주의를 말한다. '영지주의(靈智主義)' 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그노시즘이란 말은 그리스어의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어에서 이 말은 앎, 인식(認識), 지식, 깨달음 등의 의미를 갖는데, 그노시즘이 하나의 종교적 경향으로 발전하면서 '그노시스'란 말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기독교의 '믿음'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믿음을 능가하는 보다 높은 영적 차원의 단계를 의미하기도 했다. "
라고 한다. 하지만 영지주의는 나름 심원한 사상이고 여기에서는 영지주의의 종말론에 부분만 다루도록 하겠다. 영지주의는 영육의 이원론에 기반한 사상이고 여기서 육체는 영혼의 감옥으로 영혼이 그노시스의 다가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본다. 만약 이사상을 좀더 급진적으로 가져 간다면 육체의 죽음 더나가서는 인류의 전멸은 결코 슬픈일이 아닌 지향해야 하는 바 인것이다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서드 임팩트는 인류의 멸망과 다름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의 진화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 일파에 의해 추진된다. 그리고 이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 하나더 있는데 바로 "엔도 히로키"의 만화 "에덴"이 그것이다.
에덴은 에바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 전개 구조를 보여주는데 그면면을 살펴보면
두작품 모두 그노시즘의 영향을 받은 집단이 운영하는 파시즘적인 세계정부-에바에서는 제레, 에덴에서는 원부.프로퍼테일 로 불리운다- 가 존재하며 그들은 그노시즘 사상에 기초한 인류의 멸망 혹은 진화를 추구하는데 이들의 구체적인 목표는 객체로 존재하는 인류의 일원화- 에바는 서드 임팩트에 의한, 에덴은 콜로이드라는 물체를 통해서-로 주인공들의 속한 단체는 이들 세계정부의 음모를 막고자 한다. 라는 동일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다.
(흠. .이건 솔직히 표절로 신고해도 될것같다.. 물론 에덴이 에바보다 늦게 나왔다...)
이 유사한 두만화에도 다른점이 있다면 왜 제레와 원부같은 세계를 좌지우지할수 있는 권력자들이 이러한 일을 벌이는가에 대한 이유 정도일 것이다. 에바는 인간의 본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와 이에서 비롯되는 외로움과 고통이 주된 이유라 한다면 에덴은 빈부격차, 전쟁, 제노사이드 같은 인류 사회의 부조리함이 그 주된 원인으로 제시된다. 이들 제레와 원부가 풀고자하는 문제는 인류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여 인류의 멸망하때 까지 가지고 가야할 영원한 숙제 일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두작품은 아니 두작품의 작가들은 매우 힘든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두작품에 나오는 파쇼 집단이 해결방식(서드 임팩트, 콜로이드)는 현실세계에는 결코 실현될수 없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들과 대립관계인 주인공들은 전인류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허망한 방식과 다른 객체화된 인류(현실의 인류)도 실현가능한방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근데 누가 이문제에 현실적이고 설득력있는 해결법을 제시 할 수 있겠는가..
에바는 구 극장판에서 해결법을 제시하지 못했채 무게만 잡고 끝냈다가 다시 새로운 앤딩을 준비하고 있고, 에덴은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다 . 아마 두작품이 대중이 바라는 악이 멸하고 주인공이 승리하는 해피 앤딩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앞서말한 문제들은 미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에 도전했던 여타 작품들 처럼 "그래도 살아라" 라는 메시지만이라도 설득력있게 전달할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봐줄 용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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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글들] + 폴크루구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읽고 (0)
2012/12/20 AM 03:42 |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장자인 폴 크루그먼이 2007년에 쓴 미래를 말하다(원제: the conscience of a liberal)는 저자의 주종목인 국제 경제학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의 경제사 혹은 정치사쪽에 가까운 책이라 할 수있다.
이전 작품인 "대폭로"와 같은 견지에서 쓰인 이 책은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 이후 나타났던 중산층의 시대- 책에서는 "대압착의 시대"로 표기-을 추앙 하며 1960년대 이후로 미국의 정치의 주류가 된 혁명적인 신보수주와 그들이 추진한 일련의 불평등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타국의 정치, 경제사를 다룬 이 책이 나에게 엄청난 호감으로 다가온 이유는 이 책에서 나타난 미국의 흐름이 우리의 흐름과 매우 흡사 하다고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압축경제성장의 높은 성장율과 일본식 모델에서 받아들인 연공서열제와 평생고용제도 그리고 민주화 투쟁의 과정-정확히는 이 당시의 노동운동에 힘입어-에서 미국의 대압착과 비슷한 시대를 경험한바 있다. 하지만 IMF사태 이후의 10년의 세월 동안 이러한 시대는 사라져 버렸다.
지금 대한민국은 미국의 신보수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은 이명박 정권 하에 있다. 이들의 경제 정책은 지난 레이건과 부시 부자 시대의 경제 정책-이미 역사에 실패로 기록된-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형평성을 잃어버린 무분별한 감세정책, 복지 제도의 축소, 민영화 등등 절대 중산층의 확대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양극화는 이미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으나 우리 국민들은 양극화를 더 심화 시킬 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언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 버리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양극화과 심화되는 과정에서 이것을 축소하려는 의지가 없는 자들에게 위기의 중산층-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이 표를 던지다니. 미국도 이러한 현상을 우리의 앞서서 경험했다. 책의 저자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이런 현상을 가져온 원인을 크게 3가지로 유추한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 내의 고질적인 인종갈등이다. 두 번째는 안보문제로 걸프전 9.11.이라크 전쟁등이 문제. 세 번째는 미국의 개신교의 보수화를 들고 있다.
이 세 가지는 한국의 상황에도 쉽게 대입 될 수 있다. 인종갈등은 고질적인 지역감정으로 테러의 대한 공포는 북한의 대한 공포로 보수화된 개신교-일명 "개독교"-의 문제는 한,미 모두 격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은 imf 사태라 던지 언론의 우편향 같은 문제를 더 지적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절망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여러 경제적 현상-아시아 경제 위기, 서브 프라임 사태 등- 을 예언한바 있는 저자의 경력에 걸맞게 버락 오바마의 승리를, 민주당과 진보주의의 승리를 예언 하고 있다-2006년에 민주당이 중간 선거에서 승리 했기에 그 가 했던 다른 예언보다 쉬었다고 보지만...-
과연 이러한 낙관이 한국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가의 문제는 나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정의가 존재 하는 진보의 사회가 이 땅에 오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민주주의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보주의자이며 나는 그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폴 크루그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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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글들] 역사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0)
2012/12/20 AM 03:39 |
도올 선생이 했던 tv강의때 했던 말로 기억한다. 동양에서 신은 바로 "역사"라고..
사실상 동양 사상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후의 심판이라든지 부활, 영생이 존재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이 없다는 것은 옭고 그름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인간의 의식을 넘어선 절대적 기준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주요 사상이라 할 수 있는 도가나 유가 모두 자아와 생의 유한함을 긍정했다. 장자는 죽으면 사람의 도(道)는 자연의 도와 합치하여 우주안에 잠든다고 하였고 유가는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未知生, 焉知死)라는 공자의 말처럼 특별한 사생관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영속성을 갖기위해 "가"(家)를 만들고 이 "가"가 모여 "국"(國)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속성을 증거 하기위해, 그 국(國)과 가(家)를 도덕적 존재로 만들기 위해 선현들은 신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역사다.
공자는 춘추를 썼고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하면서까지 사기를 썼다. 사관들은 사초 한줄에도 목숨을 걸었다. 그러기에 군왕들은 역사를 두려워 했다
역사는 야훼와같은 치졸한, 유태인을 위한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전 인류적 스케일과 길이를 자랑하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만들어진 신"이다.
지금 뉴라이트라는 분들이 자금의 역사교육이 좌편향되어 있다 하면서 자신들이 역사를 바꾸겠다고 나서고 있다. 역사분야에 전공도 없는 분들이 3억원이나 되는 국민의 피땀어린 혈세를 가지고 고3학생들에게 수면제같은 강의를 강행 하고 있다. 실상 그들의 바라는 역사, 우편향의 역사-자신들은 중립이라 말하지만-란 지난 세기 동안 우리민족을 괴롭혀온 "친일파와 독재세력에 대한 면죄부"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문득 제5공화국이란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쓰였떤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Hominis, Hominis Possunt Historiam Condonare
(사람은, 사람은 역사를 용서할 수 있을지라도)
Hominis, Hominis Possunt Historiam Condonare
(사람은, 사람은 역사를 용서할 수 있을지라도)
Sed, Deus(그러나, 신은), Sed, Deus(그러나, 신은), Sed, Deus(그러나, 신은),
Sed, Deus Non Vult(그러나, 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Deus, Sed, Deus(신은, 그러나, 신은), Sed, Deus(그러나, 신은), Sed, Deus(그러나, 신은), Sed, Deus Non Vult(그러나, 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Deus Non Vult(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난 이 가사를 인용하여 뉴라이트라는 작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만약 당신들과 당신들이 믿고 있는 신이 그들을 용서할 지라도 결코 역사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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