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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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 VR: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2) 2016/05/29 PM 07:12
플레이엑스포에서 받은 디콘타임즈VR 창간호에 있는 오큘러스 리프트 기사가 괜찮아서 올려보아요

VR: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가상현실 혹은 VR의 역사에서 올해 2016년은 매우 중요한 해이다. 오큘러스,HTC, 소니 등 에서 첫 소비자용 VR 헤드셋 제품들이 출시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오큘러스와 HTC의 제품은 이미 출시되었고 소니의 제품은 올해 하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VR 대중황의 원년이라고 불리우는 해다.
가상현실 이라는 용어가 가상현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재론 래이어에 의해 1987년에 처음만들어 졌지만 개념으로서의 가상현실은 오랜전부터 있었다. 만일 인간의 상상력으로 그리는 세계를 가상현실이라고 한다면 VR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기술로서 가상현실은 20세기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특허 기록에 의하면 1957년에 제출된 모톤 하일리그 의 특허 문서에서 HMD 기기를 볼수있다. VR 헤드셋을 속 닮은 모습이 놀랍다.

모톤하일리그의 HMD특허 문서
1990년대가 되면 재론 래니어 등의 노력으로 VR에 대한 대죽적인 관심이 크게 일어나고 1990년대 중반에는 대중 소비자를 위해 보급형VR 헤드셋 제품이 등장할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당시에 출시된 보급형 VR기기의 성능은 당시의 기준으로도 매우 조악한 수준이었다, 결국, 대중화에 실패하고 VR 기술은 20년에 가까운 긴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VR 붐의 재점화
VR 기술을 긴 암흑기에서 다시 깨운 장본인은 약관 23세의 오큘러스 창업자 팔머 럭키이다. 아버지의 차고에서 처음 VR 헤드셋 시제품을 만든 2011년은 그의 나이 고작 18세 때였다. 20년 가까이잠자던 VR 기술을 깨워 오큘러스 리프트라는 획기적인 VR 헤드셋을 발명하고 VR 붐에 다시 불을 지핀 이 청년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오큘러스의 창업자 팔머 럭키
이 청년 발명가는 제대로 정규 교뮥을 받지 않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며 자랐다. 전자기술에 재능이 있어 전자기기를 직접 만드는 일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 이 재능덕분에 아이폰을 수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할수있었고 이를 콩해 적지않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청년은 VR 오타쿠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다양한 VR 헤드셋을 구입하는 데 썼다. 물론 신제품이 아니라 한때 고가로 팔리던 중고 VR 헤드셋들이 었다. 지구 상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VR 헤드셋을 구입하는데 36,000불(약4천만원)이나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구입한 VR 헤드셋 제품들 중에는 이 VR 오타쿠 청년이 개대하던 그런 수준의 제품은 없었다. 결국,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서 VR 헤드셋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이 말들고 있는 VR 헤드셋에 대한 피드백을 얻기 위해 3D 입체와 VR 게임 마니아들이 모이는 MTBS3D라는 인터넷 사이트의 포럼에 자신의 새로운 VR 헤드셋에 대한 개발 정보를 올리게 된다.
2011년 말에 팔머럭키의 손에 의해 이전에 볼수 없었던 넓은 시야각을 가지는 VR 헤드셋 탄생하게 된다, 이 시제품의 이름을 리프트 라고 짓는다. 이전 페품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단절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전 제품들이 고가의 광학 장치를 내장하고 있으면서도 최대 45도 정도의 시야각을 제공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팔머 럭키의 리프트는 저렴한 렌즈를 이용해서 무려 100도에 달하는 넓은 시야각을 제공할 수 있었다.

게임계전설의 합류
이 놀라운 시제품은 마치 같은 MTBS3D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던 게임계의 전설적인 개발자 존 카맥의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존 카맥도 개인적으로 VR헤드셋을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팔머 럭키가 만든 VR 헤드셋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거대한 비즈니스로 발전 하는 데는 존 카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FPS 게임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존카맥이 팔머 럭키가 만든 시제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지금의 이런 어마어마한 VR 붐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존 카맥을 팔머 럭키의 초기 시제품을 하나 구입하고 싶다고 했고 이에 팔머 럭키가 단 두개 밖에 없던 시제품 중 하나를 존 카맥에게 무상으로 보내주게 된다. 팔머럭키의 시제품을 받은 존 카맥은 이에 중대한 개선을 추가하게 된다. 일찍이 볼수없었던 넓은 시야각을 제공하는 팔머럭키의 헤드셋에 존 카멕이 추가한 첫 번째 개선은 헤드 트래킹 기능이다. ㅈ존카맥도 당시에 이미 개인적인 관심으로 직접만든 VR 헤드셋 시제품이 5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팔머 럭키의 헤드셋에 헤드 트래킹에 필요한 센서를 손쉽게 장착할 수 있었다. 거기다 이 센서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제조사에서 센서의 출력 빈도수를 높이는 펌웨어 업데이트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센서의 출력 값이 어플리케이션에 전달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센서의 드라이버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 드리아버 프로그램의 코드에는 존 카맥이 민간 우주 로켓 개발을 위해서 세운 회사의 로켓의 자세 제어를 위한 관성 센서용 코드가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VR 헤드셋의 헤드 트래킹을 위해 첨단 로켓 기술까지 동원된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개선은 존 카맥 다운 발상이 빛나는 경우이다. 팔머 럭키의 헤드셋은 럽은 시야각을 제공하는 대신 저렴한 접안렌즈가 장착된 것이라 시야에 보이는 영상이 어안렌즈로 보이는 것처럼 왜곡이 일어났다. 존 카맥은 접안렌즈로 인해 생기는 왜곡해서 디스플레이어에 출력하는 방법으로 이 왜곡해서 디스플레이에 출력하는 방법으로 이 왜곡을 없애버렸다. 그동안 성능이 크게 발전된 GPU가 있었기에 이러한 영상왜곡 처리를 소프트 웨어적으로 쉽게 할수있었다.
존카맥은 어렇게 자신이 개선한 기능을 팔머 럭키에게 제공해 주는 대신 이 획기적인 VR 헤드셋을 E3 2012에 가지고 나가 홍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팔머 럭키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존 카맥은 자신의 예전 게임 DOOM 3 를 리프트라는 이름의 이 새로운 VR 헤드셋용으로 수정해서 VR 체험이 가능하게 만들고 직접 E3쇼 부스에 가지고 나간다. 존 카맥은 여기서 사람들에게 이 새로운 VR 헤드셋을 널리 알리는 VR 전도사의 역할을 정말 열정적으로 한다.

에서 오큘러스 리프트 초기 시제품을 시연한 존 카맥
이런 존 카맥의 열정적인 VR 전도 활동으로 팔머 럭키가 200명 정도의 마니아를 위한 제품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킥스타터 펀딩을 목표 금액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놀라운 모금액을 달성하며 더이상 취미가 아닌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오큘러스란 이름의 본격적인 VR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10대 오타쿠 청년이 시작한 일이 20대 베테랑 개발자가 적극적으로 호흥함으로써 21세기의 새루운 VR 붐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2014년에는 세계 최대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 기업인 페이스북이 조그만 기업인 오큘러스를 무려 2조 원이 넘는 거액으로 인수하면서 이제 VR은 차세대를 기대하는 거대한 비즈니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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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페이스북이 인수하면서부터 내리막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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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럭키 팔머는 2조를 먹어서 금수저로 등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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