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
재밌게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계속 뇌리에 남아 곱씹게 되는
마력이 있는 영화에요.
이 영화를 보고 뭔가 불편한 감정이 계속 남더군요.
그 부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1. 권선징악 결말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 마지막에 심판을 받고 피해자는 보상을 받는다. 이게
일반적으로 깔끔하게 끝나는 범죄영화의 결말이죠. 하지만 기생충에서는 피해자들은 가정이 파탄 난 채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범인은 열린 결말이지만 여지를 주고 끝나고 맙니다.
이런 영화는 기본적으로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죠. 살인의 추억도 이런 느낌이 있었는데 기생충은 더욱 심한 이유가 있습니다.
2. 선악구도가 일반적인 영화와 다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많이 가진 자vs아무것도
없는 자]의 선악구도를 연출할 때는 대부분 부유층을 악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가족의 사랑은 없거나, 도덕심이 해이하거나, 큰 부정을 저지르거나. 반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는 그래도 올바르고 역경을 이겨내 이런 자를 처단하는 역할을 맡죠.
이런 구도가 많은 것은 대부분의 영화 관객인 서민층-부유층에 많게는
열등감, 적게는 부러움이나 시기심을 느낀-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생충은 이런 구도가 완전히 반대에요. 부유층은 착하고 예쁜
동화와 같은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위로 압박하는 모습이 잠깐 나오긴 하지만 그게 갑질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죠.
반면 주인공의 가족을 중심으로 한 빈곤층은 이 부유층을 속이고 빌어먹기 일수입니다. 나도 돈만 많았으면 착했다라는 변명을 입에 달고요. 또 다른 기생충
집안과는 돕는게 아니라 아귀다툼을 벌이고 서로 상잔하죠.
근데 영화는 이 구제할 도리가 없는 빈곤층 가족들을 현실적이면서 재미있고 친숙하게 묘사해 관객들을 공감하게 만듭니다. 나도 저 상황이었으면 저렜을지도 몰라 하고 말이죠. 보는 사람이 송강호 가족들과 비슷할수록 더 공감하기가 쉽겠죠.
3. 묻지마 살인범을 이해하고 만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 역은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입니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못해 가족을 책임지지도 못하고 아무런 계획도 없죠. 그리고
그 본성은 마지막에 적나라하게 등장합니다.
자기 가족들을 죽이려는 범인 앞에서 주인공은 분노하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딸을 잡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 범인에게 분노해 몸으로 막고 덤벼서 해결한 것은 엄마 쪽이에요.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모든 사건이 끝나고 범인의 냄새를 못 견뎌 하는 사장에게 분노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가족이 살해당한 분노도 아니고, 오직 자신의 열등감이 폭발해 살인을
저지른 겁니다.
이 사건은 최근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르는 묻지마 살인을 연상케 합니다. PC방
살인 사건이나 노인이 아무 연고도 없는 가족들을 살인한 사건 등… 우리가 저 사건들을 뉴스로 접할 때
어떻게 반응했죠? 세상에 미친 놈들 많네. 아무리 열등감이
심해도 저런 짓을 하냐, 이해가 안 간다…. 등등.
근데 문제는 앞에서 말했듯이 영화가 앞에서 이 가족의 입장을 공감하게 연출해왔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주인공의 심정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거부하게 되는 상황에 오고 만 겁니다. 저런 살인범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다니 있을 수 없어! 하고 말이죠. 전 그게 이 영화가 의도한 불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략 이런 식으로 관람 후 하루동안 든 생각을 정리해보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바로 직후 제 감상은
간단했습니다. 영화의 주제를 송강호가 역설적으로 직접 설명해주거든요.
복잡한 해석을 굳이 할 필요 없이 이 말 하나면 충분한 것 같아요.
“계획 없이 사는 인생은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