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대기업과 하청,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갑과 을의 관계, 나아가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의 삶의 만족도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더군요.
"자기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는걸 선전해야만 안심이 되는 나라는
이미 그렇게 좋은 나라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는 비판을 그대로 놔두고
수용할 수 있는 나라가 차라리 좋은 나라이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서 나오는 문구 중 하나지요.
저 역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건전한 비판과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분명 더 나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
*자아실현 의존증
얼마 전 유튜브에서 미국의 10대 아이들에게 한국의 아이돌 노래와 춤을 보여주고
평가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슈퍼주니어 편이었나요, 어떻게 이들이 결성되었는지 알고 있냐고
묻는 질문에 "서로 음악을 하다가 맘이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한 번 해보자"는
취지로 결성되지 않았겠냐고 되묻더군요.
한국의 거대 기획사가 이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시스템을 이야기 해줬을 때
다들 크게 놀라는 모습에서 사회적 시스템과 그에 따른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국 엔터테이먼트 시스템의 차이와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서
여기서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구요.
하지만 우리나라 아이돌 지망생들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는데
거의 유일한 방법인 기획사의 발탁에 자신의 재능을 의탁하는데 치중하는 것과 달리
저들에게는 하고싶은 일에 대한 자발성이 우선되는 것은 분명 인상깊게 볼 일입니다.
이는 거대 기업망의 끈끈한 사회적 구조에서 벗어나 있더라도 자신들의 실력과 가치가
인정받게 된다면 소위말해 분명히 뜰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기반에 깔려있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획사의 지원이 없다면 음반은 물론이고
방송에서 얼굴 한 번 비추며 자신을 알리게 될 기회가 거의 없겠지요.
김동률이 자신의 리메이크곡이 아무런 언질 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발표되는 것에
회의를 느낄 정도로 가수 협회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차마 서태지처럼 용기있게 탈퇴는 할 수 없겠더라고 말하는 것이나
우리나라가 특히 밴드의 불모지라고 불리우는 점도 어떤 불합리한 구조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 한 몫하고 있을 겁니다.
최근 강제 월드스타가 된 싸이의 경우 기획사의 발굴시스템과 육성, 그리고 기획에 따른
혜택을 받은 인물이 아니라는 점도 어쩌면 시사하는 바가 있겠네요.
기획사에서 주는 노래와 안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자신이 하고싶은 노래와 안무로
무대에 임한다는것. 한국에선 꽤나 찾아보기 힘든 일이지요.
(강심장 YG 토크들을 보더라도 회사에 사장이 2명 있는 것처럼
싸이는 단독으로 행동을 한다더군요.)
알기 쉬운 연예계를 예로 들었지만 자아실현과 취직이라는 측면에서
거대 권력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고자 하는 현상은 사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있습니다.
물론 능력과 스펙이 뒷받침된다면 이는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요.
문제삼을건 "그것이 지나칠정도로 과도하게 집중되는 사회적 기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를 찾는데 있을겁니다.
*권력의 이동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재임기간에 하신 말씀이지요.
그 말씀 그대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재정권을 겪으며 정부가 초월적인 권력을 휘둘렀지만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현재 한국에서의 고용 계약은 능력의 제공과 이에 따른 보수 지급의
형태를 넘어서 고용주가 피고용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른바 노예계약의 형식에
더 가까워보인다고 진중권이 지적한 적이 있지요.
실제 면접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여자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상태에서 사장님이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안한다면 따라가겠는가, 거부하겠는가?"
인사고과에 정신력을 반영하는 항목으로 마라톤을 넣었더니 퇴근 후 스스로 마라톤을 연습하다
사망까지 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도 우리 나라 직장인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
군대에서는 새로 여단장이나 대대장이 부임해오면 아래 부대의 간부들이 모두 자신들이 피우던
담배를 상관이 피우는 것과 같은걸로 바꾸더군요.
혹여나 그 분이 자신에게 "담배 좀 있나?" 물을 경우 언제든지 입에 물려드릴 수 있게 말이지요.
물론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간부들도 같은 취지로 그 담배를 한 갑은 지참하고 다녀야 하지요.
저의 경우는 새로 부임한 여단장의 취미에 맞춰 모든 부대 중대장 이상급 간부들이
주말마다 테니스와 탁구를 연습하는 진풍경을 목격하기도 했었습니다.
조선일보에서는 사회에서 성공하고 인맥을 넓히고 싶다면 골프를 배우라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었지요.
너무 극단적인 사례같이 느껴지지 않고 어느 정도 피부에 와닿는다는거,
아마 사회생활 조금이라도 해보신 분이면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자유로워야 할 개인의 기호와 여가시간까지 고용주나 상관에게 귀속되는
이러한 현상은 결코 정상적이라 보기는 어렵지요.
독재사회에서는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오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항과 투쟁이 있었지만,
권력의 주체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쥐고 있는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미쉘 푸코의 지적대로 소위 사회생활 잘하는 사회인이 되었다는 말은 곧
권력에 "알아서 기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과 동일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 권력의 혜택과 불공평이 더욱 심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갑의 위치를 부여잡는게 유일한 목표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편법과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에 정당한 처벌과 보상판결을 내리기보다는
더욱 강력한 시장 권력이 주어지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은 비판을 하기보다,
아니면 비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도 그러한 권력 주체의 구성원으로 합류하게 되길
갈망하게 됩니다. 삼성의 예를 들어볼까요?? 현재 대한민국 구직자 중 자신의 전공에 맞는
삼성의 일자리를 단지 기업의 불공정한 권력 행사의 이유로 마다할 사람은 아마 몇 안될 겁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거센 반발로 무노조 공장 설립이 무산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그
무노조 경영으로 대학교로부터 학위를 수여받는 권력의 위임 역시 한국에서는 목격이 가능합니다.
이를 비판한 경영, 경제학 교수들에 대한 퇴진운동과 학위수여식을 반대하는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탄핵요구라는 엽기적 행위도 발생할 수 있었던 건 그 대기업의 반사적 이익과 혜택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어떤 계산과 기대감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것처럼
잘못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에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취합하는 쪽을 선택해
그것을 함께 누리는 것이 더 달콤하고 편안한 선택일지도 모르니까요.
*결론
다시 갑과 을이 이야기로 돌아와서, 갑의 위치에서 행해지는 초월적인
권력 행사와 그에 따른 왜곡된 사회구조들을 쉽게 풀어써보려 했는데
어떻게 전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주제 뿐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 있더군요.
"그럼 갑과 을의 관계를 없애자는 말이냐?"
민주주의를 비판하면 "그럼 독재를 하자는 말이냐?"
는 식이지요.
비판이란 체제의 부정이 아닌 더 나은 발전을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과도하게 근본적인 비판은 결국 현상태의 귀결의 역설 (status quo)을 낳게 마련입니다.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고 있는 누군가에겐 현 체제가 아주 만족스럽고 편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한을 박탈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행사되는 과정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적법한 체계와 방법에 따라 이뤄지는 건지, 그로 인해 누군가는 불평등한 피해를 입고 있지 않은지,
갑은 행사되는 권한만큼의 책임 역시 부여받고 있는지,
개선점이 있다면 어떠한 방법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전에 갑에 도달하는 과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는지,
혹여 도태된다면 노무현이 바라던 세상에서처럼 재도전의 기회가 충분히 부여되는지
한 번 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과거 군사 독재의 잔재가 아직도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쉽사리 떨쳐내기 어려운 것만 보더라도
사실 조직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기는 매우 어려운데다 긴 시간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떤 위대한 영웅같은 지도자의 위업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작은 노력과 실천으로부터 비로소 출발하는 겁니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건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제가 좋아하는 훈데르트 바서의 인용문이, 민주주의의 마법같은 사회 실현력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끝으로 글을 마쳐볼까 합니다.
덧 : 글이 길어서 왠지 아무도 읽을 것 같지는 않근영;;
덧2 : 이 글은 링크의 뜬금없는 댓글들을 보고선 느끼는 바가 있어 즉흥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럼 오늘도 모두,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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