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서기 1세기의 로마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제정 로마의 9대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가 제위에 오른 것은 서기 69년이다. 당시 로마제국은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쪽의 시리아부터 서쪽의 히스파니아(스페인)까지가 로마제국의 속국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티투스가 유대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제국의 동방도 안정된 듯이 보였고, 브리타니아(영국)를 공략하는 과정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면에 이즈음 로마의 국내정세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서기 69년 한 해에만 황제가 세 차례 바뀌었다. 내전이 일어났고 신전은 파괴되고 불타올랐다. 그 다음에 황제가 된 인물이 베스파시아누스다. 이 한 해 동안 수도 로마의 시민들은 무척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이런 시기였던 만큼 황제의 자리를 둘러싼 음모도 있었을 테고, 불안한 치안을 틈타 시장이나 광장에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노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서기 69년은 로마시민들에게 돌이키기 싫은 악몽의 해였을지 몰라도, 상상력 풍부한 작가에게는 좋은 이야기 소재를 제공해주는 시기였을 수도 있다.
서기 1세기 혼란스러운 로마
영국 작가 린지 데이비스의 역사 추리 소설 <베누스의 구리반지>의 무대도 바로 이 시기다. 서기 71년 여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제위에 오른지 2년 후다. 베스파시아누스는 혼란기를 거쳐서 황제가 되었지만, 모든 로마인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뒷전에서 반란을 꿈꾸는 귀족도 있고, 이때를 틈타서 부정한 방법으로 한 밑천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로마의 밤거리는 여전히 위험하고, 낮에도 혼자 안심하고 돌아다니기 힘든 구역이 있다.
주인공 디디우스 팔코는 이런 로마 시내에서 탐정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서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가진 재산도 없고 벌이도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 아직까지 미혼이다. 하는 일은 주로 가정문제와 관련된 정보수집이다. 이혼문제나 유산상속문제 같은 일을 주로 다룬다. 간단하게 말해서 크게 돈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 팔코에게 어느 날 한 갑부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자는 자신과 함께 사업을 하는 동료인 노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노부스가 세베리나라는 이름의 여자와 약혼을 했는데 이 여자의 정체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세베리나는 이전에도 세 차례나 결혼한 경력이 있다. 당시 로마사회에서 그건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문제는 세 차례 모두 세베리나의 남편이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았다는 점이다. 세 남편 모두 부자였기 때문에 결혼을 거듭할수록 세베리나의 재산도 늘어갔다. 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세베리나가 교묘한 방법으로 살인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세베리나가 세 명의 남편과 함께 살았던 기간은 다 합해봐야 채 3년이 되지 않는다. 치안관이 이 세 명의 죽음을 조사했지만 특별히 세베리나에게 혐의를 둘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베리나는 죽은 세 명의 남편의 유산을 물려받아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그녀가 뭐가 아쉬운지 다시 부동산 갑부인 노부스에게 접근해서 결혼을 약속 받아낸 것이다. 팔코를 찾아온 의뢰인은 세베리나가 노부스를 죽이려 한다면서 그녀를 조사해달라고 한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팔코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다면 꽤 두둑한 돈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시끄럽고 악취가 풍기는 낡은 아파트를 벗어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팔코는 의뢰를 수락하고 혼자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죽은 전 남편들의 주위 사람을 만나보고 세베리나와 단독으로 대치하기도 한다. 그러던 도중 또 다른 살인사건이 터지고 만다.
로마에서 활동하는 가난한 탐정 팔코
서기 1세기 로마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같은 시기 동양의 사람들과 크게 다를게 없다. 겉모습이야 차이가 있겠지만 본질은 마찬가지다. 당시 로마는 계급사회였다. 귀족, 중산계급, 자유시민, 노예 등의 계급으로 나뉘어진 사회다. 자유시민 신분의 남자가 중산계급의 여자를 넘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팔코는 이런 자유시민의 신분이다. 노예의 신세는 아니지만 돈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에 그보다 특별히 더 좋을 것도 없다.
자유시민이 중산계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40만 세스테르티우스(로마의 화폐단위)의 돈이 있어야 한다. 팔코의 1년 생활비는 약 1천 세스테르티우스다. 이 정도면 팔코의 신분과 중산계급의 신분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당시 로마에서도 중산계급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한다. 중산계급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민들에게 돈을 뜯어내서 한 단계 더 신분상승을 하려한다.
서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고 부동산을 임대한다. 대출금이 연체되면 가혹한 방법으로 돈을 징수한다. 팔코는 이런 중산계급의 사람들을 증오한다. 임대업을 가리켜서 더러운 전염병 같은 것이라고 하고, 시내에는 사회 기생충들이 득실거린다고 말한다. 제정로마에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마는 공화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팔코가 세상에 대한 분노로 뭉친 인간은 아니다. 젊은 나이인 만큼 그도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기분 좋게 취하고, 술집에서 괜찮은 여종업원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조카들을 자상하게 돌봐주는 좋은 삼촌이기도 하다.
소설로 복원한 2000년 전의 로마
<베누스의 구리반지>는 '디디우스 팔코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이다. 전편인 <실버 피그>와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에서 팔코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특명을 받고 로마제국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지기 위해서 제국의 변방을 누비며 활약했다. 그러던 그가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자신의 아파트와 로마의 뒷골목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득권층이 장악하고 있는 로마시내의 풍경도 팔코가 환멸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팔코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정면으로 쳐들어갔다가 반죽음이 되도록 얻어맞고 거리에 버려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폭삭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눈 앞에서 목격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작가가 묘사하는 1세기 로마의 생생한 풍경 또한 흥미롭다. 팔코는 파리가 득실득실한 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빵 사이에 오이 피클을 끼워서 먹고, 친숙한 오줌냄새와 썩은 양배추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을 지나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베누스의 구리반지>를 펼치면 후덥지근한 열기가 느껴지는 2000년 전 로마의 뒷골목이 눈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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