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저널리스트인 메리 로치가 시체와 인체, 영혼에 대한 중세의 수술이었던 고문서부터 최근 저잣거리에 나도는 소문인 인육 만두까지 연구용으로 기증된 시체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취재한 결과물이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필체가 만나 밝고 유쾌한 글로 탄생됐다.
시체는 해부학 실습뿐 아니라 수술 연습용, 과학 실험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뇌사자의 시체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표본이 되어 교육용 자료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퇴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독자는 죽음과 사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 후에 인체를 기증하는 것이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세상을 뜨면서 공원 벤치를 하나 기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것이다.
학창 시절 대학병원에 부속된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염(殮)하는 보조 인원을 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의하면, 그곳에 들어가면 일단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내어준다고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혹은 몇 주간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그러면서도 무더운 여름의 찝찝함을 날려 보낼 수 있으며 적지 않은 '쏠쏠한' 돈까지 벌 수 있다고 덧붙였다ㅡ 나는 망자의 몸을 두고 얘기하면서 '쏠쏠하다'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에 약간 거리낌을 느꼈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새로운 찝찝함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과 매한가지로 순전히 호기심 충만한 꼬마둥이였던 나는 그것이 그저 뜬소문인지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물론 시기적으로 여름방학이어서 집에 처박혀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본 곳마다 쌀쌀맞은 대답밖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구하지 않습니다.」
죽은 상태라는 건 크루즈 여행을 하고 있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뇌는 휴업 상태다.
살은 물러진다.
새로운 사건이 별로 일어나지도 않고 할 일도 없다.
― 머리말
커대버(cadaver). 의학 용어로 의학 교육과 연구에 쓰이는 시체를 의미하는 단어다. 『인체재활용』을 읽게 되면 '인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자리에 '시체' 혹은 '시신'을 넣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머리가 잘려 실습을 기다리는 시체, 부패된 시체, 비행기 사고로 추락한 시체, 총에 맞은 시체(총에 맞아 죽었거나 반대로 죽은 다음 탄도학 연구를 위해 실험되는 시체), 뇌사 상태인 시체(이때는 시체라 표현하는 것이 다소 저어될 수 있으나), 식인 행위나 의료 목적으로 쓰이는 시체, 화장(火葬)되는 시체ㅡ 이 책에는 온통 시체밖에는 없다. 당연하고 확실히 벌어질 일이지만 나 역시 죽는 순간부터 시체라 불리기 시작할 것이며, 몇 시간 이내에 신장이나 심장, 각막 등은 내 몸을 떠나 다른 사람에 들러붙어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ㅡ 근육질의 멋진 몸은 아니지만 쓸 만한 곳 한두 군데는 있을 테지.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장기기증 서약을 하게 되면 (갱신 시) 운전 면허증 사진 하단에 '장기기증'이라는 글씨가 인쇄된다. 아니면 우편으로 도착한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여도 되는데 신분증을 제시할 경우 장기기증이란 글씨가 잘 보이게 하여 상대에게 어필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ㅡ 그런데 대체 무엇을 어필한다는 말인가?
나는 내가 죽은 뒤 내 몸에서 작동하고 있던 신체 조직들이 어떻게 쓰일지 알지 못한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또 죽고 나면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으므로.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피부를 이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인데, 그럴 경우에는 별도의 처리 과정을 거쳐 주름살 제거나 남성 성기 확대에 이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나는 다른 사람의 팬티 형태를 띠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만큼은 확고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글쎄, 오로지 마스터베이션만 할 것이 아니라면(당연히 아닐 것이다), 요철(凹凸)의 명백한 논리로 보건대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자의 입장은 어떨까. 「어머! 갓 죽은 따끈따끈한 게 내 몸에 들어오고 있어!」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아랫도리 가벼운 남자들이여, 입만은 무겁게 하시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끼 통돼지보다는 원래의 모양을 유추할 수 없는 고기 한 점을 더 좋아한다.
또한 소(cow)나 돼지(pig)가 아니라 돼지고기(pork)나 쇠고기(beef)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 본문 p.18
우리는 매일같이 시체를 ㅡ '대부분' 인간을 제외하고 ㅡ 먹는다. 그러나 생선을 먹을 때는 눈알이 그대로 붙어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입으로 가져가지만 육류일 경우에는 다르다. 위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하더라도 소나 돼지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상태에서 식사를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과 닮아있는 무언가를 마주하는 입장이 되면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영화 《스타워즈》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이, 로봇》을 보면 여실히 알 수가 있는데ㅡ 이보다 더 사람과 닮은 '사람이 아닌 것'이 있다면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피를 주입하는 것에는 전혀 혐오감을 품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소름끼쳐한다.」 이 말이 부드러운 비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스스로가 죽는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죽은 이후 자신의 몸이 이리저리 쓰임새 있게 구획되고 잘려나간다는 상황에는 고개를 젓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죽음을 맞은 이후의 인체는 생각보다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오븐 팬에 놓인 바비큐용 닭처럼 머리통만 잘려 성형외과 의사들의 수술 연습용이 될 수도 있고 과학수사 발전을 위해 부패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환자들에게 기증을 할 수도 있다. 죽고 나서 묻으면 뭘 하겠나,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것, 이런 고담준론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요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한국어판 제목에 왜 '재활용'이 들어가게 되었는지. 또한 왜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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