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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반 훌릭 <쇠종 살인자>(1958)
찰리 챈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중국인 형사라면, 디런지에(狄仁傑)는 당나라 시대 중국의 작은 읍에서 범인을 검거하던 판관이다. 공직에 종사하고 있고 작은 읍의 수령을 맡고 있기에 디런지에를 가리켜서 디 공(公)이라고 부른다.
서극이 감독하고 유덕화가 주연했던 영화 <적인걸>의 모델이기도 했던 디 공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실존인물이다. 630년에 태어나서 700년에 사망한 디 공은 수많은 사건을 올바로 해결하면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했던 유능한 관리이자 수사관이었다. 측천무후 시대에는 재상의 자리에 올라서 정치를 쇄신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당나라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인물이기도 하다.
디 공이 살던 시대에 당나라의 위세는 대단했다. 당의 군대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중앙아시아를 넘나들었고 타타르족을 정벌해서 북쪽으로도 국경을 넓혀갔다. 상선들도 페르시아 만까지 오가며 교역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실크로드를 따라서 들어온 수많은 외국인들이 붐비는 국제도시였다.
명탐정으로 되살아난 실존인물 디 공
그렇다고 해서 범죄가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범죄가 발생하듯이 당나라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쇠종 살인자>에서 디 공은 장쑤성(江蘇省)의 지방 읍인 푸양(浦陽)에 수령으로 부임한다. 수령으로 부임한 첫 날, 디 공은 푸양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고장이라고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는다.
푸양은 땅이 기름진 데다가 홍수나 가뭄으로 피해를 보는 일도 없으니 농부들에게는 살맛 나는 곳이다. 당나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운하에 맞닿아 있으니 교통의 요충지로서 누리는 이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운하와 그곳으로 흘러드는 강에는 물고기가 지천이니 가난뱅이도 배를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곳에 범죄까지 없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디 공은 부임하자마자 전임 수령이 미해결로 남겨놓은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잔혹한 강간 치사 사건으로 얼마전에 푸줏간집의 딸이 자기 방에서 능욕당한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처녀는 과거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이웃집의 왕 서생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한다.
딸의 아버지는 왕 서생을 범인으로 고발하였고 나름대로의 증거와 증인도 확보했다. 그런데도 피의자인 왕 서생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법은 본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유죄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죄인이 끝까지 자백을 거부한다면, 적절한 수준의 고문을 동원할 수 있었다.
푸양의 전임 수령은 왕 서생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가벼운 고문을 했지만, 왕은 끝까지 굽히지 않은 채 고문을 받다가 실신했다고 한다. 피의자가 고문을 받다가 불구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한다면, 그 수령과 부하들은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전임 수령은 어쩔 수 없이 심문을 중단한 채 임기를 마쳤고, 이제 이 미결사건은 디 공에게 넘어온 것이다.
작은 읍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강력범죄
강간사건도 중요하지만, 푸양 읍에서는 괴상한 소문이 하나 떠돌고 있다. 디 공의 부하가 푸양 읍을 돌아다니면서 이 지역의 돈줄을 누가 쥐고 있는지 알아보던 도중에 듣게 된 이야기다. 푸양에는 대지주가 네댓 명 되지만, 변두리에 있는 절 보자사 주지승의 재산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것이다.
작은 읍에 있는 절의 승려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만지게 되었을까. 소문에 의하면 보자사의 중들은 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술 마시고 고기나 뜯으면서 백성들을 등쳐먹고 산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디 공에게 한 중년 여인이 찾아온다. 관아의 부하들이 전부 '미친 여자'라고 부르는 여인이다. 그 여인은 전임 수령 시절부터 걸핏하면 수령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디 공을 찾아온 이 여인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20년 전부터 반목해왔던 두 집안의 이야기다. 여인은 상대 집안이 어떻게 비열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의 집안을 몰락시켰는지 호소한다.
이제 디 공이 다루어야 할 사안은 세 가지로 늘어났다. 실제로 당나라 시대에 지방 수령들은 이렇게 한 번에 여러가지 사건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니 같은 날 살인과 절도, 강간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제각각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다고 수령이 사건수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수령에게는 다른 중요한 책무들도 있다. 조세 징수, 출생과 사망 기록, 토지 대장 작성 등의 전반적인 행정업무도 책임져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범죄가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버리면 정말 몸이 열개고 머리가 다섯 개라도 부족할 지경일 것이다.
네덜란드 작가가 묘사하는 당나라 서민들의 삶
<쇠종 살인자>의 저자는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 로베트르 반 훌릭이다. 그는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화와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미국 작가가 찰리 챈을 창조한 것처럼, 네덜란드의 작가는 펜 끝으로 당나라의 실존인물을 명탐정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그것도 7세기 당나라를 무대로 해서. 작가는 당시의 중국과 유럽을 비교하며 작품 후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중국 백성은 빈부라든지 사회적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과거시험에만 붙으면 누구나 관직의 길로 들어서서 고을 수령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은, 유럽이 중세 장원제의 질곡에 빠져 있을 무렵 상당한 수준의 민주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묘사하는 지방 서민들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빈부격차는 심하고 그 간격이 줄어들것 같지도 않다. 부유한 남자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두고 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간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푼돈과 금붙이를 훔치고, 돈 많은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더 많은 재물을 모으려고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살인과 사기사건들이 발생한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디 공은 하늘이 어쩌면 그렇게 참혹한 고통과 역겨운 피비린내를 내리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렇기에 디 공은 잔인한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에게 백성은 자신이 보듬고 안아주어야할 자식들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디 공은 뛰어난 수사관이기 이전에 자신의 백성들을 믿었던 자상하고 현명한 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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