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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성공할 수 없었다.
지금은 바람의 나라를 국내 최초의 머드 게임이라 칭송하고 의미를 내세우만.. 실제로 바람의 나라는 등장 시점을 살펴본다면 성공하지 못한 망작의 운명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1990년 중후반의 컴퓨터 보급률과 인터넷 환경 때문입니다. 처음 서비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월 결제를 통한 무제한 사용이 아니라, 천리안, 하이텔 등을 이용한 전화 통신의 모뎀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접속 시간만큼, 전화 통화를 한 것과 비슷한 금액을 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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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라이트 게이머의 기준, 하루 평균 4시간이라고 했을 때. 한 달 동안 120시간이며... 대략 10~ 20만 원 이상의 금액을 낸다고 생각한다면 작지 않은 비용일 겁니다. 고로 바람의 나라는 환경적인 요건 덕택에 성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또한 첫 달의 수입이 100만원 미만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홍보 마케팅의 부재도 실패의 요인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접속자 자체가 작았다는 점이죠. 1996년 12월에 동시 접속자가 30명 미만이었다는 관련 사실을 찾아보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이머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람의 나라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환경적인 개선이 찾아왔기 때문이었죠,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초고속 광렌의 도입과 PC보급률 증가
두 번째, PC방 산업의 등장
세 번째, 스타크레프트 광풍의 시작
사실 직접적인 마케팅 수단이 없었던 바람의 나라가 1999년 동접자가 기아급수적로 늘었던 이유도 PC방이 가진 시각적 마케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PC방이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자면, 국민 게임인 스타크레프트 광풍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E스포츠의 종목에서 멀어졌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가슴 속에 불을 지폈던 스타크레프트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당구와 볼링과 비슷한 여가 활동, 놀이 활동으로서 10년 넘게 사랑받아 왔다는 점을 유심히 살펴봅시다.
각 지역에서 PC방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겼고, 스타크레프트를 사랑하면서 PC방에 자연스럽게 몰림 현상이 발생되었고, 게이머에게 게임을 추천할 수 있거나 타인이 어떤 게임을 즐기는지 볼 수 있는 게임 패션쇼(G스타)의 초기 모델이 PC방이라 할 수 있죠.
만일 PC방의 보급과 스타크레프트의 광풍이 없었다면 사실 현재의 바람의 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랑한 게임이 우리나라 게임 산업을 더 발전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되어준 것이죠. 고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