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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닥터 슬립> (2013)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면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물론 해피엔딩이건 아니건 간에 소설 안에서 결말이 밝혀지고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지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그건 대부분 등장인물에 대한 것이다. 그 인물은 그 이후에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스티븐 킹에게 <샤이닝>이 그런 작품이었다. <샤이닝>이 발표된 것은 1977년, 이 작품에는 텔레파시 같은 일종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5살 소년 대니 토런스가 등장한다. 대니의 아버지 잭 토런스는 심각한 알콜중독자, 대니는 부모와 함께 콜로라도의 한 호텔에서 겨울을 보내지만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 호텔은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대니의 아버지도 그 안에서 사망한다(이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에서는 결말이 많이 다르다).
이 소설을 다 읽고나면 대니의 이후 인생이 궁금해질 수도 있다. 독특한 능력을 가진 5살 소년이 화재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럼 그 친구는 어떻게 살아갈까.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많은 것들이 문제일텐데. 또한 자신이 가진 능력이 그의 남은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건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쁜 쪽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능력을 이용해 돈벌이를 해서 한밑천 잡을 수도 있다.
소설 속의 가상인물에 대해서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스티븐 킹의 표현에 의하면 그렇지가 않다. 스티븐 킹이 항상 하는 얘기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자신이 소설 속에서 인물을 만들어내지만, 그 이후에는 그 인물이 스스로 알아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즉 스티븐 킹은 그 인물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받아적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1977년에 5살이었던 대니는 이제 40살에 가깝게 나이를 먹었을테고 그렇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혼자서 미국을 떠돌아다니는 청년
이런 의문은 스티븐 킹의 2013년 작품 <닥터 슬립>을 통해서 해결된다. 대니 토런스는 혼자서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병원, 요양센터, 재향군인회 등에서 잡무를 하면서 지낸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니도 알콜중독자다. 그동안 알콜 때문에 여러 문제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쫓겨나며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대니는 어쩌면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술에 쩔어서 살다가 떠나버린 아버지. 자신에게 알콜중독의 유전자를 남겨주고 떠난 아버지,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떠나버린 어머니. 대니가 결혼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일 수 있다. 자식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성장해서 또 알콜중독자가 되면 어떻게 할까.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른 다면.
‘이젠 끝이야, 술도 그만, 술집도 그만, 싸움질도 그만’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이면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던가. 백 번? 아니면 천 번? 술을 그만 마시자고 다짐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만 마실까. 다음 주부터? 아니면 다음 달부터?
대니는 술도 끊고 정착을 하기 위해서 ‘프레이저’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호스피스에 취직한다. 프레이저가 대니의 마음을 끌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공원에 있는 모형기차였다. 어린 시절 대니는 전동기차 세트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한번도 그 소원을 이루어 보지 못했다.
아무튼 대니는 호스피스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알콜중독치료모임에도 나가게 된다. 대니는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으로 죽음을 앞둔 이들이 편안하게 떠나도록 인도해 준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닥터 슬립’이다.
작은 마을에 정착해서 일을 하며 조용히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대니가 가진 능력은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대니는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소녀 아브라와 텔레파시로 연락을 하게되고, 그녀가 그 능력 때문에 어떤 집단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대니의 삶은 싸움터로 변한다. 대니는 아브라의 부탁으로 함께 그 집단에 맞서고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초능력 소녀를 지키려는 대니의 싸움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면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 뒷이야기를 읽으면 또 그 다음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스티븐 킹은 <샤이닝>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대니를 등장시켰듯이, 그 속편인 <닥터 슬립>에서 역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녀를 만들어낸다. 대니의 성장과정이 궁금했다면, 아브라의 미래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스티븐 킹이 <닥터 슬립>의 속편도 구상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닥터 슬립>이 출간된 것이 2013년이고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브라는 15살 생일을 맞는다. <샤이닝>의 속편이 나오기까지 35년이 걸렸다. 그러니 <닥터 슬립>의 속편이 나오려면, 성인이 된 아브라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면 최소 몇 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니의 운명에만 관심을 가져보자. 대니는 <샤이닝>에서 호텔에 머물고 있는 유령을 보게된다. 쉽게 말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은 뒤에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망자를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 그때의 경험이 대니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성장한 대니가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게 된 이유도 아마 그때의 경험 때문일지 모른다.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망령을 어린나이에 보았으니, 자신은 성인이 된 후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편안하게 보내줘야 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탄생이 하나의 기적이라면, 편안한 죽음 역시 하나의 기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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