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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린제이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 (2005)
'연쇄살인이 무조건 나쁘기만 할까?'
작가 제프 린제이는 어느날 대화 도중에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물음에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인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냥 살인도 아니고 '연쇄살인이 나쁠까'라고 질문을 던지다니. 어찌보면 참신한 생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쳇말로 홀딱 깨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면 이런 발상에서 일련의 흥미로운 연쇄살인, 그리고 색다른 개성의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제프 린제이는 ‘덱스터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에서 이런 연쇄살인범을 창조한다. 주인공인 덱스터 모건은 마이애미 경찰서에서 혈흔분석가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범죄현장에서 발견되는 혈흔으로 범인을 추적하면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연쇄살인범으로 돌변한다.
하이드로 변해버린 지킬박사,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했던 '나자리노'처럼 덱스터도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덱스터와 다른 연쇄살인범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덱스터는 법으로 처벌받지 않은 연쇄살인범들을 노린다는 점이다. 그들을 정식으로 체포해서 법정에 세우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제거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덱스터에게 그 연쇄살인범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덱스터가 불타오르는 정의감만으로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이 그렇듯이 덱스터도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면이 있다. 이런 점들이 기존 연쇄살인범과 덱스터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연쇄살인범을 사냥하는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인 범죄소설, 제프 린제이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소설의 패턴을 과감하고도 신선하게 뒤집어 버린 것이다.
소아성애자를 뛰쫓는 덱스터
제프 린제이가 2005년에 발표한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는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덱스터는 이번 편에서도 연쇄살인범의 뒤를 쫓는다. 이번에 덱스터의 표적이 된 살인범은 소아성애자다. 그는 여러 명의 남자 아이들을 유괴 및 납치해서 살해한 후에 그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공범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사진을 보건데 전문사진사가 소아성애자를 돕고 있는 것만 같다. 덱스터는 이 두명의 변태성욕자들을 찾아나선다. 이들을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덱스터의 주변에서 또 다른 잔인한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가 죽지는 않았으니 살인사건은 아니다. 범인은 피해자의 사지를 절단한 후에 친절하게도(?) 절단부위를 지혈시키고 붕대까지 감아두었다. 출혈에 따른 쇼크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피해자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꼴이 된 것이다.
덱스터는 변태성욕자들을 쫓으면서 동시에 사지절단 사건도 함께 추적한다. 여동생인 데보라가 마이애미 경찰서에서 형사로 근무하기 때문에 덱스터는 사건에 대한 정보도 남들에 비해서 많이 얻을 수 있다. 덱스터는 혈흔분석가, 데보라는 형사. 이 정도면 꽤나 잘 맞는 콤비다. 데보라는 덱스터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하고 마음약한 덱스터는 그런 부탁들을 모두 들어준다. 덱스터는 왜 이리 끔찍하게도 헌신적일까?
연쇄살인범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의 살인이건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이건,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연쇄살인은 말할 것도 없겠다. 덱스터는 종종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덱스터는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반면에 덱스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덱스터와의 결혼을 바라는 여성도 있고, 덱스터와 함께 낚시를 가고 싶어하는 어린아이도 있다. 평소의 덱스터는 어둡고 우울한 연쇄살인범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 앞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다. 작가 제프 린제이는 기존의 연쇄살인범들과 많은 면에서 다른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낸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연쇄살인범들에게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학대당하거나 또는 부모가 학대당하는 모습을 주기적으로 보며 성장한다. 친구나 주위사람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유형 또는 무형의 폭력을 계속 접하며 자라온 것이다. 연쇄살인범들은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부정하려고 하지만 그 기억은 내면 한쪽에 자리잡은채 조금씩 힘을 키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연쇄살인이라는 방법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어린 시절의 피해자는 세월이 지나면 힘을 키워서 가해자로 돌변한다. 시리즈 내에서 덱스터도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안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던 폭풍이 드디어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덱스터는 과연 어떻게 벗어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덱스터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언제 어떻게 밝혀질지도 의문이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는 성인이 되서도 좀처럼 아물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