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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살아 있는 정리 - 세드릭 빌라니 (0) 2014/08/20 PM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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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학자 하면 영화『뷰티풀 마인드』에 등장하는 수학자 존 내시처럼 무언가 떠오르면 벽에 수식을 마구 적는 괴짜를 생각하거나, 그리고리 페렐만이나 앤드루 와일스처럼 몇 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을 떠올리곤 합니다. 수학자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라는 이미지의 근간에는 수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평소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인식을 어느정도 개선시켜 준 작품이 일본의 영화『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였고, 좀더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 프랑스의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가 쓴《살아 있는 정리》입니다.

세드릭 빌라니는 프랑스 리옹대학의 교수이자 앙리 푸앵카레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에 있으며, 유럽수학회상, 페르마상, 푸앵카레상을 받은 수학계의 스타입니다. 그는 2010년에 '비선형 란다우 감쇠와 볼츠만 방정식에 대한 균형수렴 증명'을 한 공로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습니다. 세드릭 빌라니의《살아 있는 정리》는 필즈상을 탄 수학 정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수식들은 당연하게도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수학자의 역동적인 삶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별명인 '살아 있는 정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즈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단한 수학 정리도 첫 시작은 두 학자의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학자가 내뱉은 사소한 이야기에서 서로의 의문점을 물어보고, 토론합니다. 마치 평범한 사회인들이 술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대화처럼 수학 정리는 태동하게 됩니다. 무언가 어렴풋이 시작된 프로젝트는, 일상생활에 치여 마음속에만 있을 뿐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교수로서 강의도 해야하고, 집안일도 해야하고, 맛있는 치즈가게를 찾기도 해야 합니다. 프랑스 수학계의 패셔니스타로 불릴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깊다 보니 마음에 드는 옷들을 쇼핑할 시간도 필요하고, 락 콘서트에 가서 헤드뱅잉을 하기도 해야합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기기도 하는데, 지하철에서 읽는 만화책은 수학자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제격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옆 책상에서 클레르는 노트북으로「데스노트」를 보고 있다. 프린스턴에는 극장이 없지만 저녁 시간은 잘 보내야 하는 법. 나는 클레르에게 이 마성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강력 추천했고 이제 클레르도 푹 빠졌다. - p.82
세드릭 빌라니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가게 되면서 연구는 급진전을 보이게 됩니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이는 만큼 책에서 등장하는 다른 수학자들도 쟁쟁한데, 세드릭 빌라니의 수학 영웅인 존 내시부터 앤드루 와일즈 등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구름 위의 존재들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앤드루 와일즈도 그랬지만, 세드릭 빌라니도 첫 성과물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학술지『악타 마테마티카』에 제출한 논문이 거부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학자들 특유의 번뜩임, 수학 신의 계시를 받은 세드릭 빌라니는 아침에 불현듯이 생각난 아이디어로 문제를 극복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파트너 클레망 무오와 함께 '무오-세드릭 정리'를 만들어냅니다.

수학계의 발전에 진전을 이루고, 지금도 이루고 있는 세드릭 빌라니는 특유의 재치로 수많은 대중강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수학을 알리고 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학이 죽기보다 싫은 학생들과 시민을 인터뷰한 뒤 수학의 매력을 설득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왜 나는 수학이 싫어졌을까』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학은 엄격하지만 창의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보편적이고, 불평등하지만 민주적이라고 말합니다. 수학은 철저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며, 정말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학은 모순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섹시(sexy)하다고 말합니다.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는다. 응?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항을 다른 변으로 넘기고 푸리에 변환을 취해서 L2로 뒤집어야 해.' 말도 안 돼! 나는 종이 쪼가리에 한 줄을 홱 휘갈겨 써놓고 애들에게 빨리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9일의 이 아침에 또 다른 작은 계시가 모든 것을 밝혀주고자 내 두뇌의 문을 두드렸다. 안타깝다. 논문을 읽은 사람들은 이 충만한 행복감을 모를 터이니 - p.166
2014년엔 우리나라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렸고, 개최국 국가원수가 시상하는 전통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필즈상을 수여했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언제나 좋은 성적을 거둘 정도로 우리나라는 수학 우등생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필즈상을 수상할 날은 멀어 보입니다. 장 피에르 브르귀뇽 유럽연구재단 총재는 세드릭 빌라니가 참석한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의 기자회견장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최악의 교육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수학 영재들이 수학을 입시과목으로만 배우기 때문에 필즈상 수상까지 성장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성적 등을 학생생활기록부에 적지 못하게 하자 응시 지원자가 급감했다는 통계는, 우리나라가 수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세드릭 빌라니가 보여주는 수학의 세계는 분명 경이롭고, 섹시합니다. 수학을 단순히 수능을 보기 위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섹시한 매력을 지닌 수학의 세계를 알고 싶다면, 세드릭 빌라니의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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