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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데스트랩
공연장: DCF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공연 기간: ~2014.09.21
스릴러와 코믹, 긴장과 이완의 줄다리기 , 연극 <데스트랩>
이제 더 이상 식상한 멜로드라마는 싫다. 어느새 영화부터 드라마까지 스릴러가 대세다. 의학첩보스릴러. 타임 슬립 소재를 더한 스릴러. 그냥 스릴러. 그 외 이것 저 것. 현재 대한민국은 장르물 천국이다. 이렇게 한바탕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휩쓸던 스릴러 장르는 이윽고 무대 위까지 점령했다. 연극 <데스트랩>은 최근 대세인 차별화에 맞춰 스릴러와 코믹이 적절히 섞인 신 감각적인 작품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순간순간 극을 흔드는 반전의 연속. 그래서 매 순간 긴장하며 상황을 추리하는 스릴러는 재밌다. 그리고 그 추리의 빈틈을 메우는 유쾌한 웃음. 각 장르가 한 데 모여 약 2시간동안 끈질긴 줄다리기를 하고 있자면 시선을 쉬이 뗄 수 없다.
한 때 잘나간 추리 작가 시드니의 앞으로 희곡 한 편이 배달된다. 제목은 데스트랩. 희곡은 무척이나 참신했고 매력적이었다. 마구간을 개조한 저택에 은신하며 슬럼프에 힘겨워하던 시드니에게는 한 줄기 구원의 빛과도 같았다. 놀랍게도 이 희곡을 쓴 당사자는 시드니의 극작 수업을 들은 어린 작가 지망생 클리포드였다. 시드니는 그를 죽여서라도 저 희곡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기묘한 살인의 충동에 사로잡힌다. 곧 드디어 조우한 시드니와 클리포드 사이로 은근한 긴장감이 감돈다.
연극 <데스트랩>은 1978년 미국 극작가 아이라 레빈의 대표작으로 숱하게 공연되어온 작품이다. 약간의 스산함을 감도는 시드니의 집 안에서 마주한 두 주인공의 욕망 섞인 대립과 함께 희곡 ‘데스트랩‘이 완성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연극은 기본적으로 스릴러 장르의 작품답게 우리가 흔히 본 추리 소설의 고전적인 서사 구조를 충실하게 따른다. 제목 그대로 ’죽음의 덮‘처럼 일정한 공간에서 서로에 대한 강한 의심과 경계를 두다가도 순식간에 날을 세우는 두 남자를 보고 있으면 숨 막히는 긴장감과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대사는 없지만 오히려 능청스러운 그들의 대화는 인간이 가진 두 얼굴의 무서움을 훨씬 생생하게 전한다.
희곡 데스트랩을 차지하느냐, 빼앗기느냐. 또는 완성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끊임없이 멈출 수 없는 욕망을 내세우며 살인의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두 남자에게서 섬뜩하지만 커다란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틈틈이 찾아오는 반전은 화려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극히 평범하다. 살인을 한 자가 순식간에 살인의 대상이 되거나 싸움의 주도권이 변하는 식의 반전은 여느 고전 추리 소설에서 쉬이 보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낫, 칼, 도끼 등 다양한 무기가 진열된 무대와 시의적절한 조명 연출이 반전을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만든다. 기다린 듯이 나타나서 정교하게 완성되는 반전의 현장이 발칙할 정도다. 이처럼 일정한 사건의 반복과 변주로 그려지는 연극은 적절한 리듬을 타고 진행되며 기묘한 매력을 전한다. 분명 평범하고 지루한 스토리 구성인데 지루할 틈을 내주지 않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에 더해 이 연극은 한 발 더 나아가 코믹 요소를 활용하여 극의 지루함을 능수능란하게 감춘다. 시드니를 실제 모델로 희곡을 완성하려는 클리포드, 명성을 잃고 싶지 않은 시드니. 극이 진행될수록 서로의 목숨을 더욱 강렬히 위협하는 두 사람의 갈등이 고조에 이를 때마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유머는 웃음을 발생시키는 동시에 분위기를 빠르게 환기시킨다. 더욱이 살인한 전후로도 능청스럽게 상황을 정리하거나 유머러스하게 대사를 처리하는 인물은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고도 시치미 떼는 모습이다.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다. 특히 시드니와 클리포드의 긴장 관계에 틈만 나면 침입하여 분위기를 흩트리는 영매 헬가라는 코믹적인 여성 캐릭터는 극에 기여도가 높다. 특이한 언행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극의 진행 방향을 암시해주며 관객에게 추리의 재미를 느끼도록 하여 몰입도를 높인다. 몰입을 방해하면서도 강하게 이끄는 헬가의 캐릭터가 크게 활용된 극은 순간순간 큰 탄력을 받으며 유쾌하게 진행된다.
이 연극은 마치 실제 ‘덫’처럼 극 중 인물은 물론 관객까지 정해진 수순에 따라 이도 저도 할 수 없게 발을 묶는다. 그리고 거침없이 휘두르며 유희한다. 마치 사람을 앞에 두고 고무줄을 당길 듯 말 듯 해맑게 장난치는 어린 아이와도 같다. 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신이 되어 저울을 가볍게 기울이며 장난치듯 관객을 두고 줄다리기 게임을 유도한다. 스릴러로서 작품에 집중했다 싶은 순간이 되면 순식간에 코믹이라는 반대편으로 확 끌어당기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똑같이 행동한다. 관객은 예측되는 반전과 극의 진행이 눈에 선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발이 묶였기에 그 상황 자체를 즐기지 않을 수 없다. 극장 전체가 일종의 덫이 되어 관객을 무대 위 상황의 실제 인물처럼 간접 체험케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다.
그간 연극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에게도 보다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맞춤형 연극이다. 특별히 스토리 구성과 캐릭터 설정이 복잡하게 꼬인 구석이 없기에 극을 이해하기에 쉽다. 언뜻 어릴 적에 즐겨 읽은 고전 추리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나 심리 공포 소설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를 떠올릴 수도 있다. 클래식함이 대중성과 연결되는 동시에 필자와 같은 기존 추리 소설 마니아들에게는 다소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다. 코믹 요소가 극 전체의 구성을 보다 촘촘하게 메워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더니 어느새 선선한 가을바람이 막 불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무더웠지만 아직은 떠나보내기 아까운 여름이라면 한 번쯤 이 연극을 통해 소름끼치는 죽음의 공포와 뜨거운 인간의 욕망을 마주해보는 것이 어떨까. 누구나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성공을 꿈꾼다. 그를 위해 항상 인간은 처절하고도 안타깝게 몸부림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거나, 위험조차도 무릅쓰고 무언가를 쟁취하려 한다. 그래서 시드니와 클리포드는 전혀 다른 별나라 사람들도 아니다. 비현실적이지만 더없이 현실적인 인간의 욕망을 그 무엇보다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린 연극이다. 기괴하지만 섬세하게 그려진 무대를 마음껏 누비는 배우의 연기를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아마 모든 공연이 끝나고 파안대소 이후에 찾아오는 일련의 공허감은 아찔하고 깊숙한 여운을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