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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자와 완전범죄 - (1956) (0) 2014/09/24 AM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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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아를레이 <지푸라기 여자> (1956)

 

'막대한 재산 있음. 적당한 배필을 구함. 가급적 함부르크 출신의 미혼녀를 원함. 경험 많고 가족, 친지없고 호화생활에 적응 가능하고 여행을 즐길 것. 감상적인 올드미스나 어리석은 인형은 사절함'

 

신문에서 이런 광고를 본다면 여성은 어떤 느낌이 들까. 호기심에 우선 자신이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지 한번쯤 따져볼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나 친지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은, 분명 재산 때문에 생겨날 귀찮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호화생활에 적응하는거야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니 이것도 특별히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재벌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젊은 신부를 구한다면 분명히 뭔가 '약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아주 많다던지 아니면 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던지, 성격이 진상이라던지 하는 약점. 그래도 그 약점을 모두 뛰어넘을 만큼의 재산과 호화생활이 보장된다면 한번쯤은 당사자에게 편지를 보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날만도 하다.

 

공개적으로 신부를 구하는 갑부

 

부자와의 결혼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자라면, 그동안 가난한 생활을 유지해온 여자라면 더욱 그런 충동이 생길 것이다. 카트린 아를레이의 <지푸라기 여자>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여성이다.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살던 힐데가르데는 전쟁으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되었다.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작은 행복을 손에 넣을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행복이란 재산의 힘, 이것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막대한 현금과 보석, 부동산 등이 지금까지 채워질 수 없었던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 모든 충족을 만족시켜줄 것이다.

 

그래서 힐데가르데는 매일같이 신문에 실리는 구혼광고를 눈여겨 본다. 구혼광고 때문에 신문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몇년 동안이나 이 광고를 열심히 읽어나가면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행운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바로 위의 광고문구를 보게 된다.

 

광고에서 내세우는 모든 조건이 힐데가르데에게 맞아 떨어졌다. 34세인 그녀는 결혼을 한적도 없고 감상적인 올드미스도 아니다. 나름대로 예쁜 외모도 가지고 있다. 돈의 힘을 빌린다면 그 외모를 더욱 매력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상대방이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부자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든 것이 돈으로 처리되어 버리는 세상 아닌가.

 

그녀는 정성껏 편지를 써서 보내고 얼마 후에 상대방으로부터 만나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고급호텔에서 힐데가르데가 만난 사람은 60대 초반의 중후한 남성이었다. 점잖은 외모를 가지고 있고 생각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힐데가르데가 결혼할 상대는 그 남성이 아니다.

 

갑부의 비서가 하는 매혹적인 제안

 

자신의 이름을 앤턴이라고 밝힌 그 남성은 힐데가르데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앤턴은 세계적인 갑부인 70대 남성 칼 리치몬드의 비서로 수십년 동안 일하며 재산을 모았다. 리치몬드는 성격이 괴팍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을 끝없이 모욕하고 학대해왔다.

 

앤턴은 힐데가르데에게 한 가지를 제안한다. 그녀가 리치몬드와 결혼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리치몬드가 사망하면 그 재산은 대부분 힐데가르데가 물려 받는다. 그러면 그 재산 가운데에서 20만 달러만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다.

 

확실히 좀 이상한 제안이지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힐데가르데는 곰곰히 생각한 끝에 이 제안을 승낙한다. 얼마 후면 그녀는 갑부와 결혼해서 목욕물처럼 돈을 써대며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고작(?) 20만 달러가 문제일까?

 

완전범죄를 다룬 범죄소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작당해서 노인의 재산에 접근하는 것도 남들에게 비난받을 만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재판정에 서야할 만큼의 범죄는 아닐 것이다. 만일 범죄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이 입만 잘 맞추고 뒷처리를 깔끔하게 한다면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다.

 

많은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꾼다.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서 살인을 하거나 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사기건 은행강도건 살인이건, 오랜 기간동안 치밀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계획하는 이유도 바로 자신들의 범죄가 완전범죄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해결사건'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사건들이 완전범죄에 해당한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말할 것도 없다.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꾸는 반면에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완전범죄를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범죄소설의 기본틀은 '권선징악'이니까, 독자들은 탐정과 형사가 치밀하고 논리적인 추리 끝에 범인을 밝혀내는 것을 무엇보다 보고 싶어 하니까 그럴 것이다.

 

그렇더라도 완전범죄를 다룬 작품들이 몇개 있어도 좋지 않을까. 완전범죄를 다룬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심어놓은 트릭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누가 범인일까 맞춰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브라운 신부의 말처럼, 범죄자가 예술가라면 완전범죄는 그 예술가가 만들어놓은 최고 걸작일 것이다. 완전범죄를 다룬 작품을 읽는 것은 그 걸작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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