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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인간을 보라 : 인간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공연장: 스튜디오 76극장
공연 일정: ~09.21
중심에서 거리 두기 , 연극 <인간을 보라>
누구에게나 세상의 중심은 바로 자신이다. 사람은 저마다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주변의 상황이나 물질을 이용하여 개인의 이득과 안정을 얻는다. 인간 전체의 역사는 이와 같은 보편적 현상의 반복으로 이루어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은 오랜 과거부터 스스로를 지구의 중심이자 주인으로서 인식하며 문명을 발전시키고 세대를 이어왔다.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연과 동식물을 이용하여 기술을 발명하고 자원을 축적했다. 이 결과로 현재까지도 인간의 삶은 나날이 윤택해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주변을 돌아보면 어떠할까? 온난화 ,사막화, 녹조현상 등 자연은 병들었고, 동식물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지구라는 거대한 세계 위에서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가치판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해왔다. 스스로의 사고와 행위에 대하여 철저한 믿음을 지녔다. 이러한 즉 결국 반드시 한 번쯤은 인간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진정 만물의 ‘중심’일까? 멀리서 바라보는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언제나처럼 인간의 주변에는 다양한 종이 함께 살아간다. 그 중에는 인간을 창조한 ‘신’도 있다. 신들 역시 일련의 세계를 구성하며 살아간다. 특히 다수의 신은 지구의 정해진 구역에 따라 저마다 수 억 명의 인간을 관찰하는 의무를 실행한다. 여느 때처럼 인간을 관찰하던 ‘젊은 신’은 아이를 유괴 살인한 인간에게 멋대로 벌을 주었다는 이유로 ‘늙은 신’과 대립한다. ‘젊은 신’은 ‘늙은 신’에게 신이 인간의 운명에 선별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관찰 시스템의 구조 개혁을 요구한다. 한편, 인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구에서 살아온 종인 ‘바퀴벌레’ 역시 인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으로부터 부모의 죽음을 겪은 ‘젊은 바퀴벌레’는 분노와 동시에 공포감을 전하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꿈꾼다. ‘늙은 바퀴벌레’는 그런 그에게 인간의 문명과 탐욕에 대하여 알려준다. 그러나 이 때, 외계인들 역시 지구의 인간들을 비판하며 행성 획득을 호시탐탐 꿈꾼다.
연극 <인간을 보라>는 제목에 맞게 인간과 공존하는 다른 종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무대에 등장한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인간의 관찰자, 동반자, 경쟁자로 분류된 세 가지의 종의 이야기가 차례대로 진행되는 방식을 띤다. 안내자는 처음부터 관객을 향해 연극의 성격과 내용에 대하여 확고히 말한다. “이 연극에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연극은 철저히 세 가지의 종에 시선에 맞춰 인간을 그리며, 관객 스스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종의 속성부터 문명, 역사, 환경까지 인간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연극에서 활발히 언급된다. 신에서 바퀴벌레, 그리고 외계인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 태도에 대하여 점층적으로 강조,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 연극은 ‘인간’이란 존재 안에 가려졌던 이면과 폭력적 행태를 모두 고발한다. 환경파괴, 전쟁, 부정부패, 성매매 등 익숙하지만 쉬이 우리가 돌아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하여 주목케 한다. 결국 연극 속 주인공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인간’이란 흔히 인간 스스로가 긴 역사를 지나오며 이상적으로 정의한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물론 이 연극은 단순히 인간에 대한 부정적 시선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관객에게 인간이 스스로 어떠한 자세로 자기 존재와 주변 세계를 인식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생각하게끔 할 뿐이다. 연극은 개개인이 자기존재의 안위만을 챙기는 인간중심주의적인 가치관에 매몰되는 것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다.
연극은 전반적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된다. 주제의식을 무겁고 깊이 있게 전달하기보다 폭넓고 즐겁게 전달한다. 젊음과 늙음, 남자와 여자 상반되는 이미지의 두 존재를 배치하여 각 이야기마다 동일한 대립 구도를 설정함으로써 극의 밀도 역시 높인다. 한편, 두 연기자가 주고받는 대사는 일상적이고 위트가 있어 순간적인 웃음을 유발하며, 이러한 반복적 행위는 결국 극 전체를 역동적으로 만든다. 또한 외계인이 뿌린 기억상실가스를 마신 안내자가 극의 첫 대사를 똑같이 읊는 유쾌한 결말은 더욱이 관객에게 끝까지 참신하고 새로운 매력을 전달한다. 특히 이 연극은 미니멀한 무대 연출과 적절한 조명의 활용으로 극을 훨씬 깔끔하게 완성하여 인상이 깊다.
가끔은 아주 멀리 서 있을 때, 바로 눈앞에서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연극은 멀리 떨어져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미덕을 알려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