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tainWebzine
접속 : 67   Lv. 6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217 명
  • 전체 : 59377 명
  • Mypi Ver. 0.3.1 β
[도서] 포수란 무엇인가 - 김정준 (2) 2014/05/21 PM 07:22

catc.jpg




 

[서지 정보]


포수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술, 경기를 리드하기 위해 알아야 할 포수의 지식, 프로의 포수들이 사용하는 고도의 기술 등 포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국내 유일의 포수 입문서이자 국내 최초의 ‘포수학’ 도서다.

최 고의 전력분석가로 손꼽히는 김정준 해설위원의 포수론을 읽다 보면 그동안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포수라는 포지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포수가 야구라는 게임을 어떻게 지배해 가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3번째 맞는 봄이다. 사회인 야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또 올해는 201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700만 관중 시대에 도전하는 해이기도 하다. 각종 매체가 구단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책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때에,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일단 저자의 이름부터 묵직하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아들'과 '전력분석의 대가'로 더 알려진 김정준 현 SBS 해설위원이다. 그러나 이 책이 더 눈에 띄는 점은 잔디 위에 있는 모든 선수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며, 그라운드의 사령탑 또는 안방마님이라고도 불리는 단 하나의 포지션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바로 시속 15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받아내고 5㎏에서 10㎏에 달하는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포수다. 최근 야구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뉴스는 FA(Free Agent, 자유계약) 자격을 얻은 롯데 자이언츠의 강민호 선수였다. 역대 최고인 4년 75억 원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물론 구단 측에서는 그를 대체할 만한 선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데,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팀의 한 시즌을 책임질 수 있는 중책이 포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전까지는 포수의 역할이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포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져야 시작할 수 있는 경기로, 포수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포수'라는 것의 뚜렷한 형체를 찾기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포수의 가치를 증명하고 평가할 수 있는 수치가 없는 것도 그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있다면 도루 저지율 정도가 되겠다). 타율, 출루율, 도루, 승률, 평균 자책점, 탈삼진 등 투수나 다른 야수들과는 달리 포수의 능력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투수가 던지는 공으로 시작하지만, 그 전에 포수의 사인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이다.




SDC15217.jpg




포수는 수 킬로그램에 달하는 장비를 몸에 착용한 채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150개 안팎의 공을 받아낸다. 투수가 던진 공은 약 0.4초 이내에 포수의 미트에 도달하는데, 때에 따라서는 도루하는 주자를 저지하기 위해 38.795m나 떨어진 2루 베이스로 공을 던지기도 한다. 이때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과는 달리 공을 잡은 다음 던지기까지의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도움닫기를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유명해진 것이 SK 와이번스 소속 조인성 선수의 송구 동작이다. 그는 2루를 향해 공을 던질 때 몸을 일으켜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앉은 그대로의 상태에서 강한 어깨의 힘으로 송구한다ㅡ 이러한 그만의 송구 동작은 '앉아 쏴'라는 별칭을 얻었다. 기동력을 발휘하는 소위 '발야구'에 대응하는 포수의 송구 능력은 그 어느 역할의 중요성보다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그들은 다른 어떤 포지션의 선수들보다도 더 극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올해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었는데, 소위 '홈 충돌 금지법'이라는 것이다. 홈 플레이트를 밟으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의 대립과 충돌은 때로는 선수들의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종종 '박진감'이라는 명목으로 관중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사실 본래 메이저리그 공식 규칙 7.06(b)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공을 소유하지 않은 포수는 득점을 시도하려는 주자의 길목을 막을 권리가 없다. 베이스라인은 주자의 것이고, 포수는 공을 수비할 때 혹은 이미 공을 손에 가지고 있을 때에만 베이스라인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이 있음에도 이른바 불문율처럼 홈 플레이트에서 주자와 포수가 충돌하는 것은 그저 경기의 일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포수 버스터 포지가 플로리다 멀린스의 스콧 커즌스와 충돌해 왼쪽 정강이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이듬해 부상에서 회복한 후 복귀했지만, '홈 충돌'은 작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또 벌어졌다. 이후 홈 플레이트에서의 충돌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활발하게 형성되었고 이것은 메이저리그 규칙 변경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이는 스포츠의 다이내믹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경기를 뛰는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진 결과다.




ap.jpg




포수라는 포지션은 언제나 위험에 맞서야 할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내의 모든 선수들, 특히 투수와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공격에서 1득점을 얻는 것과 수비에서 1실점을 막아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저자는 투수와 포수의 관계를 남녀 간의 연애에 비유한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다양한 상황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그에 대비해야 하는데, 포수는 동료 투수는 물론이거니와 상대팀 타자의 의도 또한 파악해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고받는 사인은 또 얼마나 많은지. 포수와 투수와의 사인은 주자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단순한 것도 있지만 투수가 갖고 있는 구종의 수를 진법(주로 5진법)의 수로 결정해서 손가락 수를 합산 한 후 나누어 뺀 나머지 숫자로 그 사인을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p.198) 그러나 한 팀에는 20명 안팎의 투수가 있고 또 투수들마다 약간씩은 차이가 있으니 포수는 스프링캠프나 시범경기를 치르면서 그 많은 사인을 완벽하게 숙지해야만 한다.



야수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앞으로 오는 공만 처리하면 된다. 반면 포수의 마음가짐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데, 투수의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조차 그것은 종종 포수의 책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18.44m 거리에서 투수가 던지는 강한 공을 받아야 하고, 홈 플레이트로 돌진하는 주자와의 불가피한 접촉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양 팀의 선발투수, 불펜, 타자들의 최근 컨디션, 팀 분위기 등을 고려해 승부의 흐름을 예측하고 판단해야 한다. 김정준 해설위원은 책을 끝맺으며 포수를 가리켜 외국인 선수가 넘보기 힘든 포지션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반면 현재 한국 프로야구는 김경문(NC 다이노스 감독)과 조범현(kt 위즈)으로 대표되는 훌륭한 포수들 이후로 소위 '포수 기근 현상'을 겪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강민호 선수의 화려한 계약이 눈에 띄는 이유가 될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포수를 매력적이라고 평가한 것은, 포수라는 포지션이 그만큼 힘들고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현역 최고의 포수라 불리던 SK 와이번스의 박경완 선수마저 은퇴한 현 시점에서 좋은 포수의 육성이라는 과제는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절실함이 되었다.




원문 보러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

신고

 

빠져든다.    친구신청

야구를 잘 몰랐는데. 야구 무슨.. 교과서인가??? 그거 봤는데, 해야할게 엄청 많더군요... 1루수 3루수 각각 무슨 사인 전달같은것도 하고 ㅎㄷㄷ

FountainWebzine    친구신청

포수는 야전의 총사령관이라고 불립니다. 모든 야수를 봐야함과 동시에 투수와 타자에 집중하면서 공도 받아야 하는 포지션이죠. 투수가 야구의 꽃이라고 하지만 그 꽃이 있기 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주는게 바로 포수라고 생각합니다.
[도서] 죽은 자의 정치학 (0) 2014/05/21 PM 07:18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현충원에 갑니다. 공식선거운동의 시작을 현충원에서 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그만큼 현충원, 국립묘지는 특별합니다. 국립묘지에는 죽은 자들만 묻혀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사상이 존재하고 정치가 존재하고 권력이 존재합니다. 국립묘지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를 예상하게 합니다. 목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저자 하상복은《죽은 자의 정치학》을 통해 국립묘지의 이데아를 매력적인 언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 나라의 국립묘지를 비교함으로서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짐이 곧 국가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주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의 신체입니다. 왕의 몸은 하나의 이미지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상징성은 죽어서도 유지됩니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왕이라는 한 인간의 몸에 집대성되던 정치적 이미지를 소실시키고 국민이라는 관념을 도입합니다. 왕과 달리 국민은 물질도 아니고 육체도 없는 근대국가의 이념들을 체현하는 정치적 의지의 개념적 집합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단일한 정치적 통합체를 현실로 느끼게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근대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 하나하나가 곧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은 스스로 국가를 지켜야 하는데, 이는 죽음마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죽음마저 불사하는 자랑스러운 국민을 위로할 상징적 장소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국립묘지입니다. 국립묘지는 묘지에 들어올 사람을 선정함으로서 현 체제의 국가가 어떤 인간상을 원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국가로서는 그들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민적 충격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일 경우 상황은 더 예민해진다. 죽음의 방치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헌법적 조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고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71
프랑스의 국립묘지, 빵떼옹은 앙시앵 레짐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도기적 시기에 새로운 체제, 새로운 국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는 왕과 신을 떠나 자유와 평등을 받아들였고, 빵떼옹은 혁명이 요구하는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강베타, 볼테르, 루소 등의 인물들이 안장되면서 빵떼옹은 위인들의 삶과 몸에 함축되어 있는 공화주의 이념과 가치를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나폴레옹과 왕정복고 시대엔 빵떼옹이 다시 만들어졌고, 결국 완전히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면서 현재의 빵떼옹이 됩니다.

미국의 국립묘지, 그중에서도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전쟁이 야기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연방 해체라는 정치적 위기 끝에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알링턴 국립묘지는 북부의, 북부에 의한, 북부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했습니다.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북부의 군인뿐이었고, 북부의 사상에 동조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국립묘지를 통해 연방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북부의 병사들은 영웅적이고 애국적인 국민으로 부활했지만, 남부의 병사들은 반역을 기도한 적으로 간주되어 국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국립묘지의 추모의례는 단순히 사자의 위로가 아니라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분리를 완성시키는 문화적 공간이자 행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여순사건으로 필요성이 제기되고 6.25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광복 이후 새로운 체제가 출범했지만 아직 국민적 정체성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일어난 두 사건은 반공주의라는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이승만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에 추가로 군사주의와 민족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사회에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현충원 역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4.19, 3.15, 5.18 민주묘지가 등장해 국립 현충원과 대립구조를 만들었고, 2005년에 있었던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나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현충원 안장은 현충원이 지닌 반공주의와 군사주의의 상징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민주묘지가 건립되면서 애국의 공간으로서 국립묘지의 유일함과 절대성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더 이상 보통명사 국립묘지가 아니라 국립 현충원으로 호명되어야 했다. 두 국립묘지는 단순히 명칭만이 아니라 역사와 이념에서 다르다. 현충원이 독립과 호국의 가치로 공동체에 대한 절대적 희생과 충성이라는 국가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민주묘지는 민주의 이름으로 국가권력과의 정치적 긴장을 말해주고 있다. 현충원이 권력의 표상을 중심으로 사자들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계급 논리로 포섭되고 있는 반면, 민주묘지에는 자유와 민주를 지향한 사자들이 평등을 표상하는 공간에 잠들어 있다. - p.450
국립묘지는 변화합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국립묘지는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표상하는 공간으로 조형되었지만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의 안장,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남부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화해와 통합의 기억을 표출하는 정치적 장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국립 현충원이 여전히 본래의 이념과 가치인 반공군사주의를 고수하면서 국민적 연대와 결속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강고함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가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립묘지와 민주묘지의 대립은 가치의 분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충원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박정희 대통령묘와 전재규 연구원의 묘의 크기를 똑같이 만드는 것과 같은 파격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저자는 좌와 우,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묘지를 대안으로 말합니다. 그로 인해 저자가 원하는 것은 국립묘지를 통한 정치적 화해인 것입니다.

원문 보러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


신고

 
[서브컬쳐] 창세인의 마법공방 - 마법이란 무엇인가? (2) 2014/05/21 PM 02:46

창세인의 마법 공방 [1]


 


마법이란 무엇인가?


 


magic.jpg


 


마법은, 인류가 태초부터 가져온 하나의 비원이었다.


 


소설 ‘공의 경계’의 이라야 소렌에 따르면, 마법이란 곧 ‘근원의 소용돌이에 다가가는 것’. 근원이 무엇인가에 따라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통상 나스 기노코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진리, 혹은 세계의 의지 정도로 이해된다. 즉, 마법이란 바로 근원의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비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 마법의 출발은 분명 이보다 훨씬 소박한 것이었다. 병들고 싶지 않아서(혹은 다른 사람을 병들게 하고 싶어서). 들짐승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성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인간은 마법을 갈구해왔고, 이러한 마법에 대한 기록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 문명, 어느 시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성적 논리가 사고를 지배하고 명백히 입증 가능한 과학만을 진실로 규정하는 오늘 날, 이러한 마법의 명맥은 영영 끊겼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종교, 혹은 비밀 조직의 형태로 여전히 마법의 존재를 믿으며 비의를 탐구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마법의 신비로운 분위기, 그 초자연적인 일탈의 짜릿함만을 차용해 가상의 현실 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이 만든 작품이 ‘판타지.’ 바로 환상 문학이다.


 


그렇다. 여러분이 오늘날 판타지를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인류가 오랫동안 가져온 '마법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wdqr.jpg


 

<'공의 경계'의 이라야 소렌. "넌 이미 마법에 빠져 있다.">


 


정통론에 따르면 판타지의 시초는 1954년에 출간된 J.R.R 톨킨 옹의 '반지의 제왕'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은 뾰족 모자를 쓴 마법사가 나와 마법을 쓰고, 오크와 엘프가 아웅다웅하는 오늘날의 정형화된 판타지 소설의 시초가 그렇다는 것이지, 톨킨 이전에도 중세의 로망스 소설, 동서양의 고전 소설, 나아가 고대의 신화에 이르기까지 마법과 마법사에 대한 문학은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에나 언제나 존재해왔다.


 


어쨌건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것을 계기로, 세계의 여러 나라에는 판타지라는 소재가 하나의 장르로서 대중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며, 소설을 넘어서, 게임, 만화, 영화 등의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하게 재창작되었다. 오늘날의 사람들 중에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혹은 트와일라잇 시리즈 중에라도 단 한편도 보지 않거나,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는 RPG 게임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만큼 판타지라는 장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마법의 다양한 원형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마법적 원형들은 기존의 고전적인 판타지 장르를 벗어나, 현대물, 학원물, 전쟁물, 무협 등의 장르와 활발하게 ‘퓨전’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의 작품을 쓰고자하는 예비 작가라면, 한번쯤 이런 마법의 원형들에 대해 알아보고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161bdcdd1e526d6b2e9f11bee68e89d0.jpg


 


그렇다면 판타지 장르의 가장 중요한 원천인 '마법'의 정의는 무엇일까?



아마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뾰족 모자의 마법사가 파이어볼을 쓰거나, 주문으로 저주를 걸거나, 연금술로 현자의 돌을 만들거나, 사물을 동물로 변신시키는 등의 초자연적인 행위를 떠올릴 것이다.물론 이 모든 것들이 다 마법적 행위에 들어가지만, 조금 더 깊숙이 따지고 들어가 마법과 비마법의 엄격한 구분점을 찾으려고 한다면, 곧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마법과 과학의 명확한 구분점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마법은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며, 과학은 명백히 입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근세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과학’은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의 경험적 추측을 통해서만 발전돼 왔다. 의학을 예로 들면, 어떤 약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된 것은 대학이라는 기관이 설립된 뒤였고, 그 이전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직접 환자의 몸에 이런저런 약제를 써보고, 이를 구전해줌으로서 그들의 지식을 이어갔다.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적합한 약초를 먹이는 동시에 환자의 몸에 박쥐의 피를 바르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은 과연 의사로 보아야 할까, 마법사로 보아야 할까?


 


둘째로, 마법과 신화, 마법과 종교의 구분점은 무엇인가?


 


마법과 종교는 엄밀히 말해 중세의 유럽에 와서야 교회의 권력에 의해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고대로 갈수록 이 둘의 구분은 애매해진다. 마벨의 ‘토르’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마법과 기교에 능한 외눈박이 신 오딘은 분명 북구 신화에서의 최고신이지만 동시에 마법사이기도 하다. 또한 고대의 많은 문명에서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은 곧 그 사회의 주술사이자 마법사로 여러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중세에 와서 마법은 하나님에게 행하는 기도, 성찬식, 엑소시즘 등 기독교에서 공인한 의식을 제외한 모든 초자연적 행위를 지칭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그 명확한 구분점은 정작 기독교의 수도사들도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따금 수도사 본인들이 전도의 과정에서 주기도문을 변형한 마법 주문을 만들거나, 기독교와 토착 신앙의 마법 의식을 결합하는 신종 의식을 만들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수도사~1.jpg


 


마법의 정의는 시대별로 크게 바뀌어왔다.


 


원시 사회와 고대 사회에서 마법이란 곧 지배자의 권위였다. 고대 부족 사회에서 부족 내에서 의술을 행하고, 제사를 지내는 주술사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어른으로써 지도자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천체의 운행을 연구해 점성술을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미래의 길흉을 점쳤으며, 의술을 통해 인간들을 구제했다. 또한 신의 권위를 빌려 백성들 앞에서 직접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최소한 성경이나 신화의 기록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마법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신관의 기적, 주술, 의술을 포괄하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행위'에서 마법사들만이 행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념이 된 때는 중세. 바로 기독교가 유럽의 지배적인 종교가 된 뒤였다. 기독교 사회는 하나님의 권능에 기대는 탄원이 아닌 인간이 자의적으로 세상의 원리를 바꾸려고 하는 행위를 싸잡아 이단으로 몰기 위해서 처음으로 '마법'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선조로부터 믿어오던 다른 신에게 탄원하는 것은 물론이요, 성경 구절이 아닌 주문을 외우는 행위, 부적을 만드는 행위, 마법의 묘약을 만드는 행위 등은 모두가 마법으로 분류되어 설령 그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종교 재판관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러나 '마법'의 영역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중세 시대도 여러 학자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다. 가령 중세 초기의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초자연적인 행위에는 악마의 의지가 숨어 있으며, 마법적인 기술을 인간에게 가르친 것 자체가 악마라고 주장했다. 반면 영국의 로저 베이컨(1214~1292년)은 다양한 종류의 기만과 속임수에 대해서만 '마법'이라는 정의를 붙여 연금술, 점성술, 공학 등의 학문 분야와 분리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스로가 연금술을 깊이 연구한 연금술 마니아였지만, 결코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한, 모든 마법을 악마적인 것으로 보던 중세 초기와는 달리, 후기로 갈수록 학자들은 '자연 마법'과 '악마적인 마법'을 구분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즉, 약초나 천체의 운행, 사물 자체의 속성을 이용해 벌이는, 타인에게 유해하지 않은 마법을 '자연 마법'으로 보았고, 악마, 혹은 악령의 힘을 이용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기만하는 행위를 '악마적인 마법'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의 '백마법', '흑마법' 개념은 바로 이런 구분법에서 온 것이다.


 


black&white.jpg


 


?<주의: 이런 백마법 흑마법이 아닙니다.>


 


마법의 정의는 지역별로도 달랐다.


 


동양의 경우, 마법에 해당하는 행위를 크게 신의 힘을 빌린 주술과, 인간이 스스로 도를 닦아 깨우치는 도술로 구분할 수 있지만, 역시 그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 사상이 아닌 대부분의 문명에서 신의 힘을 빌리는 행위는 마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몽고족의 샤먼은 하늘인 텡게르(тэнгэр)와 이어진 존재로, 텡게르의 권위를 빌려 예언을 하거나, 의술을 행하거나, 잃어버린 가축이나 물건을 찾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의 전래 이야기 속에서도 부처님을 믿는 승려가 법력으로 물건을 옮기거나, 솔잎을 국수로 바꾸거나, 사악한 요괴를 퇴치하는 일화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도술의 경우 도가의 신선 사상에서 온 것으로, 평범한 사람도 오랫동안 수양을 쌓으면 이를 수 있는 경지라는 면에서 기독교에서 규정하는 마법과 더욱 비슷하다. 이들이 행하는 도술은 서양의 시각에서 본다면 일종의 ‘자연 마법’이었다. 부적술로 악귀를 쫓는다던가, 축지법을 통해 천리 길을 한걸음에 걷는다던가, 72가지 변신술을 구사하는 도사의 모습은 여러 민간 전설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현대의 무협이나 퓨전 판타지에도 종종 등장하곤 한다.


 


2010-06-26_00%3B03%3B02.jpg


 

<도사란 무엇이냐~!>


 


이렇듯 마법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개념이 크게 변동해왔다.


 


마법이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행위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어떨 때는 신의 힘을 빌리는 기적을 지칭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였고, 어떨 때는 인간이 스스로 자연의 힘을 이용하거나, 악마의 꼬임에 빠져 행하는 행위만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또한 어떨 때는 약초학, 점성술, 연금술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어떨 때는 그러한 학문 분야를 배제한 미신을 지칭하는 데에만 쓰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마법적 모티프를 차용해 판타지 작품을 쓸 때는, 자신이 작품 속에서 나타낼 마법의 종류가 무엇이고, 그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개념을 정확히 잡는 것이 좋다.



 


가령,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에는 중세의 다양한 마법적 요소 중에서 '연금술'이라는 소재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물론 작중의 행위는 연금술이라기보다 거의 소환술에 가깝지만.) 또한 '디그레이맨'이라는 만화는 기독교에서 행하는 '엑소시즘'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는 중세 사회에서는 마법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좀비라는 소재는 분명 마법의 강령술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좀비물'이라는 독립적인 장르를 구축해 버렸다.



 


또한, 마법의 개념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도 작품마다 다르다. 소설 '해리포터'의 경우, 마법은 선천적인 능력을 타고난 선택받는 소수의 마법사만이 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에 라이트 노벨이자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어떤 마술의 금서 목록'에서 마법은 평범한 일반인이 선택받은 초능력자들의 초능력을 흉내 내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3.jpg


 

마법은 인류가 처음 문명을 형성한 시기, 아니 그 이전에 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원시 시대부터 주욱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고, 따라서 그 범위와 개념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 그 안에 담긴 원형이 궁금한 독자들과,



 


판타지 소설을 쓰고자 하지만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혀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예비 작가 분들을 위해



 


오늘부터 이곳, 창세인의 마법 공방에서



 


마법의 역사, 마법의 변천 과정, 그리고 역사 속에 실존했던 마법사들의 이야기에 대해 상세하고 흥미롭게


 


한꺼풀 한꺼풀 벗겨보고자 한다!



원문 보러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


신고

 

불어봐지옹그    친구신청

와.. 논문같네여 헠헠

FountainWebzine    친구신청

감사합니다 ㅎㅎ 굉장히 재미있는 글이죠?
[도서] 섬이의 문학산책 -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0) 2014/05/21 PM 02:43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저는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이 아직 어떤 경향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좋게 말하면 주변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들이 출중하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새로운 시선이 부족하다는 뜻이지요.

저번에 읽은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들보단 좋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제 사적인 생각을 좀 적어보자면, 지금 출발하는 젊은 작가들이 그때 출발했던 아주 조금 더 늙은 작가들보단 앞선 출발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을 더 예리하게 바라보고 다시 재구성하는데 탁월한 역량을 드러내고 있지요. 물론 그것이 작가와 작품의 역량을 판단하는 전부가 될 순 없겠지만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읽는 데는 주요한 관점이라고 봅니다.

이번 작품집에는 황정은 작가의 「상류엔 맹금류」,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 윤이형 작가의 「쿤의 여행」, 최은미 작가의 「창 너머 겨울」, 기준영 작가의 「이상한 정열」, 손보미 작가의 「산책」,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가 실려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충격보다는 내실, 이미지보다는 서사, 해체보다는 구성에 중점을 둔 작품들입니다. 이를 보면 넓게는 예술계, 좁게는 문학계의 흐름이 다시 한 번 변화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해외의 문학계에서 키치와 해체에 천착하는 자신들을 스스로 비판하며 서사를 복구하자는 의견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집을 읽으며 그런 경향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군요. 물론 속단할 일은 아닙니다. 이 또한 단순한 유행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주목할 만한 경향에도 아쉬운 부분은 분명 존재합니다. 이들에게선 변화의 시도는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변화라기보다는 과거로의 회귀의 느낌이 강합니다. 마치 삶에 염증이 난 사람이 그보다 더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요. 그것이 어떤 해결책으로 제시되기보다는 도피처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들은 2014년의 젊은 작가들이지만 2011년의 젊은 작가들보다 젊은 작품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탄탄하게 완성된 소설임에도 어쩐지 매력이 덜 한 이유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에게서 젊음을 읽을 수 있는 단서는 소재와 표현, 세련된 문장입니다. 무모한 도전이나 새로운 시각의 제시는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분명 젊은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완성도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작가에게는 창작의 자유가 있고 자신의 작품은 스스로 결정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새롭다고 해도 완성도가 떨어질 이유도 없고,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새롭지 않을 이유도 없지요. 그 둘은 수직적인 반비례가 관계가 아니니까요.

정리해보면,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은 이전보다 더 완성돼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문학계가 나아갈 지표가 될 만한 작품은 없었습니다. 사실 이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대를 걸어볼 뿐이죠. 오히려 이들의 탄탄한 기본 위에 앞으로 새로운 도전이 함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래로 향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ps. 저는 개인적으로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가 인상 깊더군요. 이 작가, 언젠가 큰일 낼 듯싶습니다.

원문 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


신고

 
[도서] 김준희의 즐거운 살인사건 (0) 2014/05/21 PM 02:41

린지 데이비스 <베누스의 구리반지>(1991)

2000년 전 서기 1세기의 로마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제정 로마의 9대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가 제위에 오른 것은 서기 69년이다. 당시 로마제국은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쪽의 시리아부터 서쪽의 히스파니아(스페인)까지가 로마제국의 속국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티투스가 유대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제국의 동방도 안정된 듯이 보였고, 브리타니아(영국)를 공략하는 과정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면에 이즈음 로마의 국내정세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서기 69년 한 해에만 황제가 세 차례 바뀌었다. 내전이 일어났고 신전은 파괴되고 불타올랐다. 그 다음에 황제가 된 인물이 베스파시아누스다. 이 한 해 동안 수도 로마의 시민들은 무척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이런 시기였던 만큼 황제의 자리를 둘러싼 음모도 있었을 테고, 불안한 치안을 틈타 시장이나 광장에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노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서기 69년은 로마시민들에게 돌이키기 싫은 악몽의 해였을지 몰라도, 상상력 풍부한 작가에게는 좋은 이야기 소재를 제공해주는 시기였을 수도 있다.

서기 1세기 혼란스러운 로마

영국 작가 린지 데이비스의 역사 추리 소설 <베누스의 구리반지>의 무대도 바로 이 시기다. 서기 71년 여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제위에 오른지 2년 후다. 베스파시아누스는 혼란기를 거쳐서 황제가 되었지만, 모든 로마인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뒷전에서 반란을 꿈꾸는 귀족도 있고, 이때를 틈타서 부정한 방법으로 한 밑천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로마의 밤거리는 여전히 위험하고, 낮에도 혼자 안심하고 돌아다니기 힘든 구역이 있다.

주인공 디디우스 팔코는 이런 로마 시내에서 탐정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서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가진 재산도 없고 벌이도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 아직까지 미혼이다. 하는 일은 주로 가정문제와 관련된 정보수집이다. 이혼문제나 유산상속문제 같은 일을 주로 다룬다. 간단하게 말해서 크게 돈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 팔코에게 어느 날 한 갑부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자는 자신과 함께 사업을 하는 동료인 노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노부스가 세베리나라는 이름의 여자와 약혼을 했는데 이 여자의 정체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세베리나는 이전에도 세 차례나 결혼한 경력이 있다. 당시 로마사회에서 그건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문제는 세 차례 모두 세베리나의 남편이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았다는 점이다. 세 남편 모두 부자였기 때문에 결혼을 거듭할수록 세베리나의 재산도 늘어갔다. 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세베리나가 교묘한 방법으로 살인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세베리나가 세 명의 남편과 함께 살았던 기간은 다 합해봐야 채 3년이 되지 않는다. 치안관이 이 세 명의 죽음을 조사했지만 특별히 세베리나에게 혐의를 둘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베리나는 죽은 세 명의 남편의 유산을 물려받아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그녀가 뭐가 아쉬운지 다시 부동산 갑부인 노부스에게 접근해서 결혼을 약속 받아낸 것이다. 팔코를 찾아온 의뢰인은 세베리나가 노부스를 죽이려 한다면서 그녀를 조사해달라고 한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팔코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다면 꽤 두둑한 돈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시끄럽고 악취가 풍기는 낡은 아파트를 벗어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팔코는 의뢰를 수락하고 혼자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죽은 전 남편들의 주위 사람을 만나보고 세베리나와 단독으로 대치하기도 한다. 그러던 도중 또 다른 살인사건이 터지고 만다.

로마에서 활동하는 가난한 탐정 팔코

서기 1세기 로마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같은 시기 동양의 사람들과 크게 다를게 없다. 겉모습이야 차이가 있겠지만 본질은 마찬가지다. 당시 로마는 계급사회였다. 귀족, 중산계급, 자유시민, 노예 등의 계급으로 나뉘어진 사회다. 자유시민 신분의 남자가 중산계급의 여자를 넘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팔코는 이런 자유시민의 신분이다. 노예의 신세는 아니지만 돈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에 그보다 특별히 더 좋을 것도 없다.

자유시민이 중산계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40만 세스테르티우스(로마의 화폐단위)의 돈이 있어야 한다. 팔코의 1년 생활비는 약 1천 세스테르티우스다. 이 정도면 팔코의 신분과 중산계급의 신분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당시 로마에서도 중산계급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한다. 중산계급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민들에게 돈을 뜯어내서 한 단계 더 신분상승을 하려한다.

서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고 부동산을 임대한다. 대출금이 연체되면 가혹한 방법으로 돈을 징수한다. 팔코는 이런 중산계급의 사람들을 증오한다. 임대업을 가리켜서 더러운 전염병 같은 것이라고 하고, 시내에는 사회 기생충들이 득실거린다고 말한다. 제정로마에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마는 공화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팔코가 세상에 대한 분노로 뭉친 인간은 아니다. 젊은 나이인 만큼 그도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기분 좋게 취하고, 술집에서 괜찮은 여종업원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조카들을 자상하게 돌봐주는 좋은 삼촌이기도 하다.

소설로 복원한 2000년 전의 로마

<베누스의 구리반지>는 '디디우스 팔코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이다. 전편인 <실버 피그>와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에서 팔코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특명을 받고 로마제국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지기 위해서 제국의 변방을 누비며 활약했다. 그러던 그가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자신의 아파트와 로마의 뒷골목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득권층이 장악하고 있는 로마시내의 풍경도 팔코가 환멸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팔코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정면으로 쳐들어갔다가 반죽음이 되도록 얻어맞고 거리에 버려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폭삭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눈 앞에서 목격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작가가 묘사하는 1세기 로마의 생생한 풍경 또한 흥미롭다. 팔코는 파리가 득실득실한 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빵 사이에 오이 피클을 끼워서 먹고, 친숙한 오줌냄새와 썩은 양배추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을 지나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베누스의 구리반지>를 펼치면 후덥지근한 열기가 느껴지는 2000년 전 로마의 뒷골목이 눈앞에 나타난다.

원문 바로가기 → 여기를 클릭하세요 ←


신고

 
이전 현재페이지21 22 23 24 25 다음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