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도영 M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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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쓰기]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2/3 (0) 2019/05/08 PM 08:18

 

 

제목: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2/3

글쟁이: 게도영

 

 

 

 

  카페에서 마주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여자친구는 잘 지냈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못 지냈지만, 잘 지냈다고 거짓말했다. J가 커피잔을 들자 왼손의 반지가 눈에 띄었다. 무슨 반지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반지를 어루만지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더는 묻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 함께 말없이 책 읽던 추억이 떠올랐다. 

 

 여기서부터는 내 기억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다시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커피를 다 마시자 그녀가 일어났다. 그러고는 또각또각 걸어서 카페를 나갔다. J는 중간에 멈칫하거나 돌아보지 않았다.

  

 빈자리에 남은 커피잔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J는 말없이 떠나버렸고 나만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니 나 혼자서라도 이유를 찾아서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고민 끝에 답을 정했다. 내 키가 그녀와 사랑하기에 모자랐기 때문이었다고. 그녀보다 다만 몇 센티라도 컸다면. 최소한 그녀와 같은 키로,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 두어 번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동안 취하면 J 같은 좋은 여자는 다시는 못 만날 거라며 아무나 붙잡고 울며 하소연하는 게, 나의 술버릇이 됐다.

 

  사실 그녀와 이별하고 나서 오랫동안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3주 정도 울면서 J와의 이별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갖은 노력 끝에 아버지가 개인택시를 장만했다. 아버지는 첫 손님으로 어머니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 그리고 두 분이 사고를 당했다. 트럭 운전사가 졸음운전 중에 아버지의 차를 뭉개 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가 핸들을 잘 틀었던 덕분에 어머니는 왼팔하고 대퇴골이 골절되었지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입원하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때 동생은 어머니를 간호하는 등 울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했다. 반면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보험사, 경찰, 장의사 아저씨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차가운 받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장의사분들이 아버지의 남은 파편을 맞추어서 생전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가 그냥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오늘도 돈 벌러 가야겠다고 이야기할 것 같았다. 늙기 전에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 집 한 채씩 해주겠다고 큰소리치실 것 같았다.


  장례식을 넋 놓고 치렀다. 아버지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를 납골당에 안치하면서 문을 닫는데 달칵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한참 동안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가셔야 하나. 아버지의 죽음이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시간은 전과 다름없이 무척 잘 흘러갔다. 나는 가장의 역할을 맡아 전에는 신경 쓴 적 없었던 여러 일을 처리했다. 남겨진 빚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으로 대부분 갚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내가 버는 돈으로 조금씩 갚아도 한 1년이면 전부 변제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만 남았다. 통장을 정리하면서 아버지랑 어머니가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사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상속 포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사하고 싶지 않다고 밝히자 동생은 내 의견에 찬성했고 어머니는 병실 침상에 앉아서 대답이 없었다.

 

  날씨 좋은 날 어머니가 퇴원했다. 담당의가 수술 경과가 좋아서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병실에서부터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부축했다. 병원 주차장으로 미리 택시를 불러두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옆으로 하얀 벚나무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벚꽃 잎이 춤추듯 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풍경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우리 앞으로 열심히 살자고. 어머니는 말없이 내 얼굴을 한 번 보시고 미소 지었다.

 

 그러고 2주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자살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연락을 받고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한참을 펑펑 울었다. 시신은 평소 부모님이 함께 오르던 동네 뒷산에서 발견되었다. 그 산은 우리 남매가 어리고 부모님이 젊었을 때. 가족이 김밥을 싸서 돗자리 들고 올라가 소풍을 즐겼던 곳이다. 우리가 돗자리를 폈던 언덕 근처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나무에 목을 매어 삶을 끊어버렸다. 어머니가 마지막에 지녔던 것은 아버지의 낡은 넥타이와 편지 한 장이었다. 편지에는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적혀있었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납골당에 안치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두 분 이렇게 가실 거면 왜 나를 낳으셨나요?’


  울다가 지쳐서 두 눈이 퉁퉁 부은 동생이 옆에 있어서 그 말을 뱉지 못하고 도로 삼켰다.

 

-


  남자가 글 쓰던 손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튕긴다. 앞면이 나온다. 도로 주머니에 넣고 종이와 연필을 가방으로 눌러 날아가지 않게 한다. 뚜벅뚜벅 난간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내민다. 파란 하늘 아래로 깊은 강이 시간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다. 까치 두 마리가 다리 아래로 잇따라 먹이를 물어 나른다. 아마 그곳에 둥지를 튼 모양이다. 거리가 멀어서 좀 전에 빵을 물고 간 그 까치들인지 알 수 없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벤치로 돌아와 연필을 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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