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랑하기에 모자란 키 – 3/3
글쟁이: 게도영
6개월이 지났고 동생은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워낙 똑소리 나는 아이여서 내가 힘들지 않도록 스스로 집안일도 하고, 슬픔에 젖어 공부를 놓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동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지인들에게 말수가 많이 줄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 말고는 별일 없었다. 어려움 없이 전처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일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데 시간은 너무 잘 흘러갔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오늘은 주말이었지만 나는 특근이었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나가려는데 신발 끈이 풀려있어서 고쳐 묶고 있으려니 어느새 동생이 다가와서 봉지를 내밀었다. 안에는 빵과 우유가 들어있었다. 동생이 굶고 다니지 말라더니 이어서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전보다 많이 일하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지만, 나는 괜히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헝클어뜨렸다. 그러고서 괜찮다고 왜 네가 미안해하냐고 말했다. 동생이 계속 풀죽은 표정을 하고 있기에 손가락을 튕겨서 이마를 딱 하고 때렸다. 녀석이 놀라서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찡그렸다. 도서관에서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 말고 오늘은 일찍 들어오라고, 퇴근하는 길에 치킨 한 마리 사 오겠다고 말했다. 건네받은 봉지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동생이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여유가 있었다. 가방을 메고 천천히 걸었다. 버스를 타면 10분 거리에 공장이 있었지만, 걸어가면 30~40분 정도 걸렸다. 돈을 아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되었기에 차라리 걷는 동안은 잡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공원을 지나다가 고양이를 보았다. 검은 고양이었는데 꼬리 끝이 하얬다. 녀석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나무 위에서 조심히 새의 둥지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새끼들이 둥지에서 어미를 찾아 뺙뺙거렸지만, 어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저걸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 걸음을 멈춘 채 보고 있었다. 이제 사냥꾼이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점심으로 새끼 새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갑자기 뒤에서 충격이 느껴졌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일어나서 뒤를 보니 곱슬머리 사내가 다가와 미안하다고 말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조깅하다가 심취해서 앞을 못 봤다고 했다. 내가 다친 곳이 없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곱슬머리 사내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려고 했다. 내가 두 번 더 사양하고 나서야 그는 인사하고 다시 음악을 들으며 달려갔다.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보았는데 고양이는 사라진 후였다. 밑에서 나는 부산한 소리에 놀라서 도망간 모양이었다. 둥지에는 새끼 새들이 여전히 뺙뺙거렸고 다행히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안도감과 함께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한 걸음 옮기려는데 발밑에서 뭔가 반짝였다. 500원짜리 동전이었다. 내 것이 아니었으니 아마 좀 전의 곱슬머리가 떨어트리고 간 것 같았다. 나는 동전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공원을 벗어날 때쯤 길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았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그네를 탄 채로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옛 추억이 떠올라 씁쓸함에 인상이 조금 구겨졌다. 옆에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빨간 풍선을 손에 쥔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밀며 풍선을 쥔 아이가 짜증 내는 것을 달랬다.
눈이 마주쳐서 인사했다. 아이 엄마가 인사하며 풍선을 쥔 아이에게도 인사하라고 시켰다. 아이는 낯을 가리는지 엄마 뒤로 쏙 숨었다. 나는 괜히 꼬마에게 뭔가 주고 싶어졌다. 주머니를 뒤져서 500짜리 동전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순식간에 풍선이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풍선을 놓쳐버린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덩달아 유모차의 아기도 울어댔다. 아이 엄마는 자식들을 달래느라 정신없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빨간 풍선이 날아간 하늘을 보았다.
새파란 하늘을 가만히 보았다.
구름이 일부러 그려놓은 듯이 근사하게 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오늘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길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 집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생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장롱을 열어 하나뿐인 정장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기왕에 죽을 거면 좋은 옷을 입고 죽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회사로 가는 길의 다리 위에서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아 유서를 쓰는 중이다. 막상 죽으려니 억울하고 겁이 났다. 그래도 죽기는 할 건데 잠시 시간이 필요해서 유서를 썼다. 쓰다 보니까 배고파져서 동생이 챙겨준 빵과 우유를 먹었다. 이제 더 쓸 말도 없는데 아직 겁이 가시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쓴 유서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마지막 글이 될 테니 가능하면 잘 쓰고 싶다. 다시 읽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 써야지.
내가 쓴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무슨 엉터리 소설같이 느껴진다. 삼류 작가가 이야기를 썼는지 나의 인생은 두서없이 엉망진창이었다. 글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가라앉아 버렸다. 틀리거나 말거나 아무려면 어때. 그런데 만약 정말로 삼류 작가가 쓴 거라면 결말을 어떻게 내려고 이따위로 쓴 건지 모르겠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진짜로 가야겠다. 사실 벤치에 앉을 때부터 죽을지 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동전 던지기로 정하기로 했다. 공원에서 주운 500짜리 동전으로 시도 중이었다. 다섯 번 던져서 3번 앞면이 나오면 뛰어내리고 반대로 뒷면이 3번 나오면 죽지 않기로 했는데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연속으로 앞면이 두 번 나왔다. 마지막에라도 운이 좋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이제야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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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무리한 편지를 잘 접어서 가방 밑에 깔아 두고 난간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옆에 가지런히 놓은 후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들고 가만히 바라본다. 두루미 한 마리가 자유롭게 날아갈 것처럼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제 보니 이거 새것이었네.”
남자가 주먹으로 동전을 꽉 쥐고 한숨을 쉰다. 눈을 감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다시 눈을 떠 난간 너머 깊고 검게 흐르는 강을 본다. 난간에서 몇 걸음 물러나서 주먹을 풀고 동전을 높이 던진다.
동전이 튀어 올라 정점에서 햇빛을 받아 잠시 반짝이더니 시간이 느려진 것 같다. 공중에서 회전하던 동전이 이제야 떨어지려 한다.
남자의 시선은 동전을 향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까치 한 마리가 동전을 물고 날아간다. 남자의 시선이 까치를 쫓고 그의 눈동자에 발가락이 하나 모자란 까치의 뒷모습이 비친다.
남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잠시 얼어 있다가 일그러진 얼굴로 변하고 곧이어 허탈한 얼굴로 변한다. 다리 위에서 허무하고 맥없는 웃음소리를 한참 토해낸다. 벗어 두었던 구두를 신고 가방 밑에 깔아둔 편지를 잘 접어서 가방 안에 넣는다. 그리고 가만히 하늘을 보다가 피식 웃는다.
남자가 다시 걸어간다.
< 끝 >
다 보고나면 가족영화였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