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운동을 합니다.
하지만 요즘 날씨는 폭염.
마스크 + 전력질주 인터벌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으므로 평범한 빠른걸음 산책으로 만족합니다.
그렇게 걷다가 대형 쇼핑몰을 보고 열기도 식힐 겸 아이쇼핑도 할 겸 들어가 패션 상가를 눈팅합니다.
요즘 옷은 뭐가 유행인지
역시 더운 여름엔 린넨 재질이 잘팔리는군
저런 하와이안 셔츠는 원빈급이 소화할 수 있겠지?
등의 생각을 하며 매장을 몇바퀴고 돌며 아이쇼핑을 하는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옷이 있었습니다.
NIX 매장에 있는 청색 셔츠였습니다.
안에 하얀 옷이나 흰색 쿨이너티를 입으면 매칭이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번 쯤 가격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습니다만,
매장으로 향하는 제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제 차림 때문이었습니다.
폭염속 한여름인데도 긴팔 긴바지 운동복을 입고(팔을 걷었다지만) 안은 땀으로 범벅인 몸입니다.
시착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당연히 입어볼 수 없으니 쉽사리 구매할 수도 없으며, 만에 하나 땀이 한방울도 나지 않아 입어볼 수 있다 하더라도 츄리닝 차림이니 어울리는지 아닌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음에 풀세팅하고 왔을때 입어보고 가격을 알아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다시 매장을 구경하는데 돌 때마다 청색 셔츠가 눈에 밟힙니다.
이대로는 집에 돌아가면 꿈에 나올 것 같습니다.
가기전에 가격표나 슬쩍 보고 가야겠다 싶어서 매장을 살피니 점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8세컨드나 탑10처럼 점원이 손님을 신경쓰지 않는 매장이 아닌 곳에서
옷을 구경하다가 점원을 맞이하게 되면 처음부터 구매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면 모를까
시착도 구매도 안할 츄리닝 차림의 저로서는 여간 부담이 가는게 아니었으니까요.
몇차례 더 정찰을 하고 점원이 확실히 없다는 확신을 한 저는 살금살금 매장으로 들어가 셔츠를 만져보고 가격표를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때
[그건 린넨 재질이에요.]
들려선 안될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분명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깐 고개를 숙인 것일지도 몰라 시간을 두고 정찰을 해봐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안심할 수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등뒤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는 무엇일까요???
돌아보니 안경을 쓴 남성이 과도한 친절과 기대를 품은 미소를 만면에 띄운채 싱글벙글하며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제가 다른 셔츠로 시선을 옮기자 점원은 즉각 반응합니다.
[그건 순면이에요. 지금 날씨에 입기엔 좀 덥죠. 요즘은 린넨이 잘팔립니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셔츠의 안쪽을 살펴 가격만 보고 나가려 하자 점원은 다시 반응합니다.
[지금 썸머 페스티벌 세일이라 20% 할인해서 원래 6만 어쩌구인데 4만9천900원에 판매하고 있어요.]
아 네
다음에 옷 제대로 입고 다시 꼭 올게요. ㅎㅎ 지금은 차림이 이래서 ㅎㅎ
하고 궁색한 변명을 하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분명히...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요즘 점원들은 은신술을 기본 소양으로 익히고 있는 건가요???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