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훈 MYPI

서상훈
접속 : 6588   Lv. 90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40 명
  • 전체 : 15100 명
  • Mypi Ver. 0.3.1 β
[우상의 눈물-다시 읽기] [우상의 눈물] 다시 읽기-part04-우상화. (0) 2023/01/19 PM 07:28


img/23/01/19/185c9923d0bf04e.jpg


img/23/01/19/185c9924465f04e.jpg


img/23/01/19/185c992462df04e.jpg


img/23/01/19/185c99244a6f04e.jpg


img/23/01/19/185c992467bf04e.jpg


img/23/01/19/185c992479ef04e.jpg


img/23/01/19/185c9924892f04e.jpg


img/23/01/19/185c9924837f04e.jpg


img/23/01/19/185c9924895f04e.jpg


img/23/01/19/185c99248b5f04e.jpg

1학년 때 이유대는 담임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담임의 배신으로 그는 '무사안일'이라는 공동체의 절대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리고 2학년이 된 그는 이번에는 담임 대신 최기표를 선택했습니다.

이어서 담임은 위험요소인 최기표에게 적절한 권력을 줘서 길들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아마도 부반장이 된 최기표는 더욱 날뛰겠지만, 자신에게 권력을 준 담임의 눈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 담임은 반아이들을 희생시켜 1년간의 무사안일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유대는 강하게 반발합니다. 그는 담임의 제안이 한 개인을 위한 것인지, 공동체를 위한 것인지 되묻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기표가 계속해서 악마로 숭상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담임도 이유대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최기표를 이용하려고만 할 뿐, 그의 구원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후로 담임은 한동안 계속해서 최기표에게 당근을 던져줍니다. 담임은 반의 결속이란 핑계로 추리닝을 사주며 다시 한 번 최기표를 길들여 보려 하지만, 그는 담임이 나가자마자 추리닝을 찢어버립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받아주면 고맙겠다'라는 담임의 대사와, 담임이 나가자마자 추리닝을 찟는 최기표의 타이밍입니다. 이처럼 담임은 무사안일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조차 내려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기표 역시 담임을 적대시 하면서도 아직은 그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며 이유대는 더더욱 최기표에게 매료됩니다. 그리고 점점 그를 우상화시킵니다.

신고

 
[우상의 눈물-다시 읽기] [우상의 눈물] 다시 읽기-part03-흉터와 훈장. (1) 2023/01/19 AM 09:39


img/23/01/19/185c77723f7f04e.jpg


img/23/01/19/185c7772641f04e.jpg


img/23/01/19/185c7772780f04e.jpg


img/23/01/19/185c7772c30f04e.jpg


img/23/01/19/185c7772c7df04e.jpg


img/23/01/19/185c7773149f04e.jpg


img/23/01/19/185c77732dcf04e.jpg


img/23/01/19/185c7773ab5f04e.jpg


img/23/01/19/185c7773deaf04e.jpg


img/23/01/19/185c77740acf04e.jpg

처음에는 담배빵을 '흉터'로 인식하던 이유대는, 담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것을 최기표와 자기 사이를 이어주는 특별한 무엇, 나아가 기표가 자신을 선택하여 특별히 내려준 '훈장'으로까지 인식하게 됩니다.


<제인 에어>에서 살펴봤듯이, 1인칭 시점의 소설에서는 독자들이 쉽게 화자에 동화됩니다. 즉, 독자들은 화자의 등에 올라타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중에 화자의 가치관이 바뀌어도 별 저항 없이 수용합니다. 그래서 화자의 가치관 변화를 통해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소설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이유대는 담임과 최기표 사이의 갈등을 예감하면서, 당연히 최기표가 이기겠지만 담임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위선적인 악이 무엇보다 위험하다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작품입니다. 때문에 위선적인 악인 담임과 순수한 악인 최기표가 갈등을 벌입니다. 그리고 이유대는 당시 대중들의 인식을 반영해서, 처음에는 최기표가  담임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이유대의 욕망은 자신이 숨어서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그는 괴벨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려면 히틀러가 필요하고, 최기표를 자신의 히틀러로 선택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어디까지나 최기표가 담배빵을 통해 자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우 부정적입니다. 긍정적인 인물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이 세계 속에서 '무사안일'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고

 

이지스함    친구신청

돼지의 왕이란 국산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군요, 거기서도 학교내에서의 위계서열, 부조리를 드러내는게

주요 소재였죠, 흔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희망하는 사이다식 전개를 보여주지 않고

양쪽 모두 얻은거 없이 비참하게 끝나는 결말까지..

이런 종류의 문학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간간히 나오는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심리는 달라지지 않나봅니다.
[우상의 눈물-다시 읽기] [우상의 눈물] 다시 읽기-part02-무사안일. (0) 2023/01/18 PM 10:23


img/23/01/18/185c50c8289f04e.jpg


img/23/01/18/185c50c8f13f04e.jpg


img/23/01/18/185c50c8f86f04e.jpg


img/23/01/18/185c50c91a7f04e.jpg


img/23/01/18/185c50c948af04e.jpg


img/23/01/18/185c50c9395f04e.jpg


img/23/01/18/185c50c955df04e.jpg


img/23/01/18/185c50c9425f04e.jpg


img/23/01/18/185c50c9579f04e.jpg


img/23/01/18/185c50c9597f04e.jpg

자율이란 단어로 그럴 듯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담임이 말하는 것은 전체주의입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내세우며 등장했던 전두환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리고 이유대는 그 사실을 간파하고 도전해 보지만, 노련한 담임에 의해 오히려 역습을 당합니다.


이 장면에서 담임의 위선을 눈치챈 사람은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이유대고, 다른 한 명은 임형우입니다. 여기서 이유대는 도전하기로, 임형우는 가담하기로 결정하면서, 각각 최기표와 담임의 대리인으로서 갈등을 벌이게 됩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무사안일'이 중요한 가치로 등장합니다. 담임이 추구하는 것도 결국은 1년 동안의 무사안일이고, 이후의 컨닝 사건에서도 사건을 흐지부지 덮어버린 영어선생이 '인자하다'는 평가를 받고, 최기표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끝내 문제를 덮어버린 임형우가 학교 전체의 영웅이 되어 추앙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담임은 이유대의 집을 가정방문하는데, 이는 후반부를 위한 설정입니다. '가정방문을 당하면 꼼짝을 못한다'라는 설정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단편소설답게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설정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지식인인 이유대의 욕망입니다. 그는 번거롭게 권력자가 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조력자로서 권력자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임형우 역시 동일한 욕망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회에 설명했던 것과 같이, 이런 나약하고 조금은 비뚤어진 지식인 유형은 70 ~ 80년대 소설에서 특히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이유대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대상으로 최기표를 선택하는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한병태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때문에 한병태가 그랬듯이 이유대 역시 최기표를 숭배하게 되고, 오히려 그에게 당한 담배빵의 흉터를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일종의 훈장처럼 인식하게 됩니다.

신고

 
[우상의 눈물-다시 읽기] [우상의 눈물] 다시 읽기-part01-반영론적 접근. (0) 2023/01/18 AM 09:37


img/23/01/18/185c24ea467f04e.jpg


img/23/01/18/185c24ea745f04e.jpg


img/23/01/18/185c24ea7a2f04e.jpg


img/23/01/18/185c24ea990f04e.jpg


img/23/01/18/185c24eae5ef04e.jpg


img/23/01/18/185c24eae68f04e.jpg


img/23/01/18/185c24eb253f04e.jpg


img/23/01/18/185c24eb28ff04e.jpg


img/23/01/18/185c24eb656f04e.jpg


img/23/01/18/185c24eb670f04e.jpg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진정한 악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작가의 인터뷰의 일부분입니다.


학생: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작품 [우상의 눈물]을 창작하신 의도를 알 수 있을까요?


전상국: 먼저 창작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과 연관해서 작품의 발상을 말해 보겠습니다. 이 작품을 창작할 당시 나는 정치꾼들이 벌이는 갖가지 위선적인 행태에 막연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선이야말로 가장 질 나쁜 악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발상에서 출발해 '잘못 쓰이는 힘' 또는 '나쁜 힘'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형상화한 작품이 [우상의 눈물]입니다.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것은 최기표가 행사하는 '강렬한 폭력'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가 가진 원시적인 폭력성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킵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화자인 이유대는 최기표가 담임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믿게 되고, 그를 추종하게 됩니다. (화자의 이런 착각은 결말에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된 착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중요한 등장인물들은 아래와 같이 당시의 현실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담임: 전두환 -> 새롭게 등장한 반의 지배자이자 위선적인 인물(큰 위선자)

최기표: 조폭 -> 오래 전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인물(원시적인 폭력성)

임형우(반장): 지식인1-> 담임의 의지를 실행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물(작은 위선자)

이유대(화자): 지식인2 ->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식을 대표하는 인물(작은 위선자) -> 인식의 변화를 통해 독자들을 설득하는 존재


박정희 군사독재가 갑작스럽게 종료되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민주화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우며 전두환 씨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당시 대중은 그에 대해 크게 경계를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작가는 대중들의 이런 잘못된 인식을 지적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고 이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권력자에 빌붙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임형우와 이유대는 닮았지만, 임형우는 담임을, 이유대는 기표를 선택합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를 통해 자신의 합리를 실현하려는 한병태와도 닮았습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의 표절 시비입니다. 분명히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전두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닮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자에 빌붙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 역시 당시 소설에서는 흔하게 등장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표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다시 읽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다시 읽기-마지막 회. (1) 2023/01/17 PM 06:19


img/23/01/17/185bf05f4e7f04e.jpg


img/23/01/17/185bf05f62af04e.jpg


img/23/01/17/185bf05f9fbf04e.jpg


img/23/01/17/185bf05fda9f04e.jpg


img/23/01/17/185bf05fdd6f04e.jpg


img/23/01/17/185bf060198f04e.jpg


img/23/01/17/185bf060199f04e.jpg


img/23/01/17/185bf060553f04e.jpg


img/23/01/17/185bf060668f04e.jpg


img/23/01/17/185bf0608f6f04e.jpg


img/23/01/17/185bf06490ef04e.jpg


img/23/01/17/185bf064afef04e.jpg


img/23/01/17/185bf064d76f04e.jpg


img/23/01/17/185bf064f58f04e.jpg


img/23/01/17/185bf065102f04e.jpg

이 만화는 원작 소설을 먼저 읽으시고 보시면 더욱 재미 있습니다. 


민음사 판에 수록된 '또 다른 결말'에서는 엄석대가 성공한 모습으로 한병태 앞에 다시 등장합니다.

엄석대가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기존의 결말은 여러 면에서 어색합니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어색함이 아니라 그냥 모호합니다.
30년 후에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 거라면 엄석대는 왜 반에서 도망쳐야 했는지, 그리고 과거의 초인적인 능력들은 다 어디로 가고 무능하게 변했는지...

그에 비해 '또 다른 결말'에서는 모든 것이 충실히 설명됩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른 결말' 쪽이 소설의 결말로서 더욱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병태 아버지의 평가도 유효하고, 한병태의 무효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무엇보다 '열한 시에는 일어서지'라고 말하고는 시간이 되자 칼같이 일어서는 엄석대의 모습은 '유리창 사건' 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럼 왜 작가는 기존의 결말로 끝을 맺어야 했을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만약 '또 다른 결말'로 끝을 맺었더라면, '6월항쟁'이 끝나고 4개월 후에 출간된 이 소설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지금처럼 독재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잠시 한병태도 살펴 보죠. '자율과 합리'라는 단어는 한병태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번 회에서 그 단어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정신적인 능력과 학문에 대한 천착의 깊이로 모든 서열이 정해지고 자율과 합리에 의해 지배되는 곳'

저 말을 좀 쉽게 바꿔보면 '대학의 서열에 따라 행복과 풍요의 서열이 결정되는 것' 쯤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한병태가 생각하는 '자율과 합리'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30년 전에 한병태가 엄석대에게 도전한 것도 설명이 됩니다.

처음 전학 온 날, 반 아이들은 한병태를 무시하고 시골 아이인 엄석대에게 복종합니다.
심지어 엄석대는 자기도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는 한병태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일입니다.
당연히 서울에서 온 엘리트인 자신이 반을 지배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반을 합리적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즉, 자신이 급장이 되는 것과 반이 '자율과 합리'를 되찾는 것은 한병태에게는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병태의 질문에 아버지가 '네가 급장이 되어 봐'라고 답했던 거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병태는 엄석대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엘리트임을 발견합니다.
때문에 저항할 명분은 사라지고 엄석대에게 항복하게 되지요.
그러자 엄석대는 한병태를 반의 넘버2로 끌어올려 주는데, 이렇게 반은 한병태의 입장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인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한병태도 행복해지죠.
마찬가지로 새로운 급장을 뽑을 때 한병태는 무효표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급장이 되든 그가 자신과 엄석대를 지배한다는 것은 '불합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대가 된 한병태는 '따라지' 대학을 졸업한 동창들이 자기보다 더 잘 사는, 새로운 '불합리'와 마주하게 되고, 자기 대신에 불합리한 사회를 바로잡아 줄 존재로 엄석대의 부활을 염원합니다.

또한 궁지에 몰린 한병태는 '한마디로 말해 나도 어서 빨리 그들의 풍성한 식탁 모퉁이에 끼어들고 싶었다'며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전학 첫 날에 반 아이들이 엄석대에게 땅콩과 계란 등을 바치는 걸 보며 한병태가 분노한 것은 과연 민주주의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엄석대의 '풍성한 식탁'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112페이지에서 한병태의 아내도 매우 재미있는 대사를 합니다.

"왜 엄석대란 친구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보니 대단한 분 같은데......"

그러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는 듯한 뉘앙스입니다.
호텔 지배인과 룸살롱 사장의 태도를 종합해 보면 엄석대는 거물급 조폭으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남편이 조폭과 절친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아내의 첫 대사로는 좀 이상합니다.
보통 '그 사람 좀 위험해 보이던데...'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예전에 이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은 권력에 굶주려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심지어 이 아내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제가 지난 7년간 국제학교에서 문학교사로 일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의 문학 교육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소설이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소설 속에서 'A는 선이다'라는 언급이 나오면 A를 선이라고 간주하고 그의 행동과 대사를 해석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해석에서는 '6학년 담임선생님은 민주주의를 가르친 영웅'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독자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작가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과연 6학년 담임선생님은 선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를 평가해 봤습니다.
그러자 '6학년 담임선생님은 악일 수도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러자 새로운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한병태를 통해 6학년 담임을 선이라고 정의해야 했을까?'

저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작품과 6월항쟁을 연결시켜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수박의 속살을 조금이나마 핥은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저의 부족한 해석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해석이 한국문학이 낳은 걸작들 중 하나인 이 작품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고

 

정짱    친구신청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이전 11 현재페이지12 13 14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