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즐기지 않았다
"나는 즐기지 않았다."
한 유명한 전 농구선수의 말이다. 국내 최고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왜 그는 그런 말을 해야 했을까.
분명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대중스포츠는 취미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더 즐기는 사람이 많다. 재능이 같다면 즐겁게 노력하는 사람의 능률을 억지로 하는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즐기는 사람이 최고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했다. 분명 즐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그 말은 다른 측면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노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과도한 경쟁사회였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높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낮은 것을 천하게 여기는 존중의 척도 때문에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높게 올라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할 일을 마치고 놀고 있어도 잔소리를 듣는다. 놀고 있는 동안 영어 문장 하나라도 외우라고 타박하며 노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긴다. 논다는 것은 곧 죄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놀다'라는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직업이나 업무와 관련이 없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재미있고 즐겁게 한다.' 그렇다. '직업이나 업무와 관련이 없는' 이라는 전제가 있지만 보통 뭉뚱그려 생각한다. 즐기는 것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노는 걸 죄악시하는 사회 속에서 노는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즐겼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2. 휴식의 의무
노는 걸 죄악시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쉬지(놀지)않고 고생해야 노력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게 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이야기다. 한 IT기업에서 유능한 인재가 근무 시간 안에 자기 할 일 이상을 해냈음에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야근을 하지 않아서'
반면, 능력이 부족해 밥 먹듯이 야근을 하는 사람은 고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어처구니없지만 이게 우리나라 사회의 모습니다. 쉬지 않고 고생해야만 노력했다고 생각해 고평가를 하는 황당한 상황이야말로 노는 걸 죄악시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병폐다.
'마스터키튼' 만화에서 본 이야기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납치범과 협상하는 협상가의 원칙 중 하나가 휴식의 의무라고 한다. 하루 8시간은 꼭 자둬야 말짱한 정신으로 납치범과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협상시간에 휴식이 부족해 실수라고 저지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 졸려서요." 변명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그렇다. 사람은 쉬어야 말짱한 정신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말짱한 정신 속에서 일을 해야 능률도 오른다. 졸리고 피곤한데 능률이 오를리가 없지 않는가. 사람이 피곤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도 늘어나 협업에도 차질이 빚어지기 마련이다. 일의 능률을 올리려면 휴식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고생해야 노력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에 주간에 놀고 야간에 야근을 하며 일하는 비정상적인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게 뭐하는 일인가. 애초에 업무량이 많으면 사람을 늘려야하는 것이고, 업무량이 적당하면 야근 할 필요가 없다. 어리석은 평가기준으로 일의 능률을 낮추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다보면 사람 자체가 망가진다. 인류의 선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 사람을 망가뜨리는 휴식 없는 장시간 노동은 그 집단에 속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이다.
이제는 알아야할 것이다. 휴식을 보장하지 않았던 까닭은 노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휴식은 일의 능률을 올려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 그것을 모르는 우리 사회는, 어쩌면 협상가의 원칙처럼 휴식을 의무화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3. 게임
게임은 사람이 휴식 중 즐길 수 있는 여가다. 그러므로 노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회의 인식은 게임에게 해가 된다. 그런 관점에서 게임사의 입장(다른 문화산업도 마찬가지다)에선 휴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편이 좋다.
보통 게임사의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구로의 등대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IT업계, 특히 게임업계는 야근을 많이 한다. 휴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아니, 어떻게! 사람들의 여가를 책임지는 문화산업이 휴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임업계야말로 앞장서서 휴식의 가치를 설파하고 다녀야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쉬면서 게임을 할 것 아닌가? 하긴 뭐, 일하면서 할 수 있는 모바일게임 양산을 하고 있으니 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이 나와 우리나라 게임 산업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아직도 모바일게임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은 아니다. 온라인게임회사야말로 앞장서서 직원들의 휴식을 보장하고, 사람들에게 휴식의 필요성을 역설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흔히 모범을 보여야하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실수가 있다면 일에 대한 모범만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휴식 또한 모범을 보여야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다. 게임업계가 휴식의 모범을 보여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떠할지.
쉬어야 능률이 오른다. 휴식을 의무화하지 않더라도 필요해서 쉬는 것이 권장되는 사회가 만들어질 바라며 글을 마친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쉬어야 능률이 오른다. (첨언하길, 투표도 권리지만 인식이 나쁘죠. 여러분, 투표를 휴식처럼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도 쉬는 시간을 줘야하는데 사람은 더더욱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