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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경제와 물리 (0) 2024/03/31 AM 01:34

경제와 물리






[경제 : 1.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 분배 · 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물리 : 3. 물질의 물리적 성질과 그것이 나타내는 모든 현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경제의 본질적인 이해와 성장은 인간의 생활이 성립되기 위한 물리적 성질과 그것이 나타내는 모든 현상의 파악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주와 사회의 구성을 파악하고, 사회 에너지를 제어하고, 그 에너지로 동작하는 경제 생태계를 설계한다. 에너지의 제어와 생태계의 설계가 가능하면 시장에서 경제가 정부의 과한 간섭 없이 알아서 성장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체계의 구축에는 반드시 가치 개념의 이해가 필요하다. 알면 할 수 있지만 모르면 할 수가 없다. 가치 개념 중에서 정가 가치와 당위 가치와 범주 가치가 중요하다. 이 세 개만 이해해도 많은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체계는 교육부터 시작해 시장과 시장 외까지 통합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지극히 효율적이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필요한 개념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 개념 정리




1) 세계 확장


육체가 다른 것으로 판단이 다르게 된다. 육체 -> 인식 -> 가치 -> 기준 -> 판단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모든 인간은 육체가 다른 것으로 모두 다르게 된다. 다른 육체, 다른 인식, 다른 가치, 다른 기준, 다른 판단이다. 같은 대상을 A는 진실로 받아들이고 B는 거짓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시각이 다르면 A에게는 보이기에 진실이 되고, B에게는 보이지 않기에 거짓이 된다. 그럴 때 본인의 인식만 절대적으로 여기면 다른 판단을 한 인간을 적대하기도 한다. 적대하면서 A는 진실의 세계에 갇히고 B는 거짓의 세계에 갇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세계가 그만큼 축소되게 된다. 분명 좁은 세계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세계를 확장해서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전제를 바꿔야 한다. 모든 인간의 자아에 인식되는 모든 존재는 실존한다. 이걸 전제하고 나서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논리만으로 본질을 파악하여 대상을 본인의 세계 구성의 일부로 자리잡게 하여 관측하는 세계를 확장한다. 그것이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만으로 사고의 폭이 크게 확장한다. 그 존재를 수용하는데 거부감이 많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흔히 부정되는 개념인 거짓, 가짜, 가면, 허구, 허상, 환각, 착각, 망상, 터부 등 전부 실존한다. 없는게 아니다. 인간이 만든 기준으로 구분한 결과일 뿐이다. 


오아시스의 신기루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존하기에 인식할 수 있다. 단지 오아시스의 본질이 아닐 뿐이다. 오아시스를 기준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대상으로 삼았다면 진짜가 된다. 신, 영혼, 유령 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존하기에 인식할 수 있다. 단지 그것이 자연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뇌세포로 존재하는지에 따라 본질이 다를 뿐이다. 뇌세포도 물질이기 때문에 자연에 존재하든 뇌세포로 존재하든 존재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특정한 기준으로 현상을 배격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것이 아니라 인식되는 모든 존재를 세계 구성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가 인식하는 외적 존재 뿐만 아니라 내적 존재 또한 부정하며 배제할 필요가 없다. 곧잘 특정 가치로 본인의 부정적인 요소를 배제하려는 태도가 많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세계가 축소되게 된다. 자아가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실존한다 여기고 전부 수용하면 된다. 자존심 상하는 모습, 부끄러운 모습, 가여운 모습이나 환상에 빠진 모습, 신비에 빠진 모습, 착각에 빠진 모습 등 전부 수용하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된다. 예를 들어 데자뷰를 겪고 시간이 되풀이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모습이나, 가위눌리기를 겪고 귀신이 압박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모습 등도 전부 실존한다고 인정하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2) 본질 파악


자아가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실존하지만 본질이 다르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대상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이 본질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가진 관측 수단으로는 본질을 알 방법이 없다. 인간의 육체로는 에너지와 물질 일부만 관측이 가능하고, 도구를 써도 모든 것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A 물질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본질을 알았다고 해보자. 그런데 외계에서 날아온 B 물질과 상호작용한 결과 모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보자. 그러면 A 물질의 본질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가? 관측 수단의 한계뿐만 아니라 우주의 거대함에 의해 인간은 우주의 본질을 알 방법이 없다. 현존하는 모든 존재는 인간이 모르는 본질이 있을 수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알아야 우주의 본질을 알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질을 알 방법이 있다. 본질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본질과 언어의 본질이다. 우주가 본디 어떻게 생기고 어떤 성질이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지만, 언어가 규정한 대상의 생김새나 성질은 알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태양의 본질이 무엇인가? 우주의 본질로는 모른다. 태양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를 모른다. 본래 그게 어떤 모습과 성질을 가진 줄을 모른다. 그러나 언어의 본질로는 안다. 태양계 중심에 있는 항성. 그게 인간이 관측하여 규정한 언어의 본질이다. 만약 안드로메다에 있는 항성을 태양이라 부른다면 본질이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에 대해 전부 알지 못해도 언어가 규정한 본질을 알 수 있으면 되기 때문에 우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본질이 무엇인지 말할 수가 있다. 이렇게 우주의 본질은 과감히 알 수 없다고 규정하고 언어의 본질에 집중한다. 언어가 규정한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된다. 언어의 본질은 우주의 본질과 달리 처음부터 인간이 규정했기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보다 자유롭게 사고하며 본질을 추론할 수 있다. 자아가 인식하는 모든 존재의 본질을 파악한다.


언어의 본질에 집중하니 하늘 색을 색깔로 보는 것과 원리로 아는 것 둘 다 본질에 해당될 수 있음을 알았다. 하늘 색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주의 본질은 알 수 없다. 자연 계열에서 과학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전부를 알 수는 없다. 언어의 본질은 알 수 있다. 하늘을 올려다 볼 때 보이는 색. 원리는 따로 하늘 색의 원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이냐고 해야 한다. 이러한 원리는 자연 계열에서 탐구하여 파악하나, 그 탐구한 본질 또한 어디까지나 언어의 본질에 해당한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3) 지식 순도


존재의 본질을 알수록 지식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지식의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사물을 깊게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분명 우주의 본질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언어의 본질을 많이 알수록 지식의 해상도가 높아져 지식의 모니터로 좀 더 자세히 우주를 관찰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많이 알고 있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본질의 모순은 노이즈다. 지식의 해상도가 아무리 높아도 노이즈가 생기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특히 기초적인 본질에 모순이 생길수록 노이즈가 강하게 생기게 된다. 그러다보면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오아시스로 보거나 인간 조각상을 인간으로 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아예 관찰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모순이란 불순물을 제거해 지식의 순도를 높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자연 계열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모순을 줄이는 것으로 지식의 순도를 높였다. 관찰, 이론, 실험, 증명, 재현 등을 통해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지식의 순도를 높여나갔다. A가 과학적 방법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 것을 B나 C가 실험을 통해 증명하면서 모순이 없음을 확인해나간다. 그렇게 해서 자연 계열은 끊임없이 발전했다. 자연 계열의 학자들이 실험할수록 자연 계열의 지식의 순도가 높아져갔다. 그들이 아니라면 현재 인류의 풍요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 인문 계열은 지식의 모순을 방치해버렸다. 세계화가 되면서 세계의 수많은 인문 계열의 가치들이 충돌했다. 문명과 문화가 충돌하면서 상호 모순되는 가치들이 생기게 되었다. 유일신과 다신이 모순된다. 윤리와 체제가 모순된다. 이념과 이해가 모순된다. 자유와 지배가 모순된다. 권력과 인권이 모순된다. 


유일신과 다신의 모순 = 신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아니면 존재하기는 하는가?

윤리와 체제의 모순 = 지배 질서를 성립시킨 절대적 가치를 자유 체제에서 쓰는 것.

이념과 이해의 모순 = 이상적인 생각이 실제 이익으로 연결이 안된다.

자유와 지배의 모순 = 자유를 외치며 규제와 검열을 주장하고 수용하면서 체제의 모순이 발생한다.

권력과 인권의 모순 = 대상의 인권을 주장하며 권력을 얻을수록 되려 대상의 인권이 낮아진다.


그럼에도 인문 계열은 그런 모순을 제거하지 않았다. 문화 상대주의라며 너도나도 옳다는 식으로 넘겨버렸다. 그러는 바람에 인문 계열은 지식의 순도를 높이지 못했다. 사회 과학이라면서 자연 계열의 과학적 방법을 흉내냈으나, 문화 상대주의라며 모순을 방치하면서 그 흉내는 그야말로 겉만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고대 종교는 수천 년이 지나도 결과가 나오질 않고 있고, 근대 이념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본질적으로 진보하질 못하고 있고, 현대 인문 수십 년이 지나고 저출산과 같은 기본적인 탄생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토록 성과가 나오지 않음에도 계속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인류는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다.


인문 계열이 생과 사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지식의 순도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문화 상대주의라면서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모순이 없는 것은 너도 맞고 나도 맞고 모순이 있는 것은 나도 틀리고 너도 틀린다는 식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그걸로 누군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든 사랑을 받든 미움을 받든 상관없이 순수하게 논리만 보면서 지식의 순도를 높였어야 했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지식의 순도를 기준으로 자연 계열에 비해 인문 계열은 레벨이 낮다. 인문 계열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지식의 순도가 낮은 이상 제대로 보질 못해서 알지도 못하고, 알질 못해서 해결도 못하고 있다. 사회 문제를 문제의 원인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듯이 말이다. 그토록 우수한 엘리트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순도가 낮아 문제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4) 성립 조건


모순은 한 개념의 앞뒤가 맞지 않거나 여러 개념이 서로 맞지 않을 때를 의미한다. 한 개념의 앞뒤가 맞지 않아 모순되면 따로 비교할 필요 없이 본질을 바꾸면 된다. 여러 개념이 서로 맞지 않을 때에는 비교를 통해 특정 개념의 모순을 제거하여 본질을 바꾼다. A와 B가 모순되면 A와 B를 C나 D와 비교하면서 모순이 있는지 확인하고나서 모순이 있는 쪽의 개념의 본질을 바꾼다. 


통상 과학적 방법을 거쳐 순도 높은 자연 계열의 개념이 비교 대상으로 타당하다. 자연 계열의 개념과 비교를 통해 많은 미신들이 사라졌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미신은 자연 계열의 개념과 비교하여 모순되면서 죽음의 선풍기라는 언어의 본질이 바뀌면서 사라졌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전해내려온 소문 정도지만, 죽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온갖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 매우 많아 논리적으로 상대가 되질 않는다.


다음은 성립 조건이다. [성립 조건: 1. 어떤 일이나 사물이 이루어지는데 필요로 하는 조건.] A를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가? 자연 계열에서는 실험을 통해 성립 조건을 파악한다. 폭발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이걸 직접 실험하면서 실제 성립 조건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성립 조건을 파악하고나서 폭발의 본질, 폭발에 속하는 요소들의 본질들의 모순이 대폭 줄어든다. 그러면서 관련 지식의 순도가 매우 높아진다. 


이러한 성립 조건을 논리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순도 높은 지식들을 활용해 논리적으로 성립 조건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면서 모순을 찾아내는 것이다. A를 성립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이 B라면, B는 A와 연관된 본질을 가질 것이다. A를 성립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이 C가 아니라면, C는 A와 연관되지 않은 본질을 가질 것이다. 설령 개념의 앞뒤가 맞더라도 성립 조건에서 모순이 생기면 본질이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성립 조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새로운 개념의 성립 조건을 파악하는데도 수월해진다. 그러면서 자아가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조차 추론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현상의 성립 조건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떠올린다. 통상 이 방법이 모르는 것을 발상하는데 많이 쓰인다. 


A, B, C, D 등 모든 개념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서로의 모순을 파악하여 본질을 바꾸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바꿀 수가 있다. 단단하게 고정된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러면 시간, 지배, 자유의 성립 조건에 대해 알아보면서 성립 조건에 대해 좀 더 이해를 해보자.




첫째, 시간의 성립 조건


[시간: 6. 지구의 자전 주기를 재서 얻은 단위. 이론적으로 고전 물리학에서는 공간에서 독립한 변수 곧 절대 시간으로 다루어졌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는 양자가 물리적 사건을 매개로 하여 사차원의 시공 세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


시간의 성립 조건을 통해 특정 개념이 성립 조건에 필요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알아보자.


시간의 성립 조건은 우주의 변화와 관측 순서다. 우주가 변화하는 것을 관측한 순서대로 과거, 현재, 미래로 규정한 것이 시간이다. 관측 순서니까 공통 인식을 위해 지구의 자전 주기를 재서 얻은 단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은 원자 시계로 대체했다고 한다.


상대성 원리는 물리 법칙은 절대적이고 시간과 공간의 좌표계는 상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우주의 변화를 관측한 순서가 아닌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전제했다. 시간은 원시 시대부터 있던 개념으로 지극히 당연하게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전 물리학과 현대 물리학은 시간이란 개념을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현상을 탐구했다. 차이는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시간의 성립 조건에 좌표계에 존재한다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시간이 상대적인 이유는 지극히 당연했다. 왜냐하면 애초에 시간이 관측 순서기 때문에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성 원리에는 관측자에 대해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시간이 느려진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운동할수록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이 관측자에게 도달하는 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양한 주장을 살펴봤으니 시간의 성립 조건인 우주의 변화와 관측 순서를 제외하고 필요한 조건은 없었다. 거기에 추가로 더하는 것은 억지다. 그런 식이라면 세상에 마나가 존재한다 주장할 수도 있다. 현상의 성립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 개념은 없다 보는 것이 맞다. 인간이 만든 수수께끼라면 굳이 성립 조건에 속하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넣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은 그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간을 전제한 다양한 이론을 말하면서 시간이 좌표계에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 이론들은 시간이 좌표계에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 따로 탐구한 적이 없다. 아무래도 시간은 원시 시대부터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당연히 좌표계에 있을 거라 전제했던 것 같다. 이동이 멈춘 현상과 시간이 멈춘 현상에 논리적인 차이가 없음을 알았을 때 시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다시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한 것은 시간이 그 누구도 그에 대한 가치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였기 때문이다. 


차원은 처음부터 공상의 개념이다. 시간이 관측 순서가 아닌 우주 법칙이라 전제한 다음에 만들어진 개념. 단 한번도 다차원의 증명이 있던 적이 없지만 시간이 있다고 믿었기에 차원도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관측 순서라면 그 전제 자체가 붕괴한다. 없다. 차원은 관점이다.


애초에 있다 가정해서 그것이 없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있다 주장한 측이 그걸 증명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 요구하는 건 영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 요구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본래 있다고 주장한 측에서 그걸 증명해야하는 것이다.






둘째, 지배의 성립 조건


[지배: 1. 어떤 사람이나 집단, 조직, 사물 등을 자기의 의사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림.]


지배의 성립 조건을 통해 특정 개념이 성립 조건에 필요한 경우에 대해 알아보자.


지배의 성립 조건은 우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다. 지배는 단순히 지배자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가 복종을 해야 성립한다. 신의 지배와 왕의 지배가 대표적이다. 통상 지배는 권력으로 강제력을 행사한다. 행사 방식은 무력으로 짓밟거나 매력으로 매혹하거나 재력으로 장악하는 등과 같이 다양하다. 그런데 힘을 가한다고 반드시 복종한다는 법은 없다. 복종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하여 복종하게 한다고 해도, 복종하고 나서 다음에 다른 마음을 먹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지배는 힘만으로 성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복종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 당위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렇다면 신정이나 왕정에서는 그 당위가 무엇이었는가?


일반적으로 이 당위를 알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인류 문명은 지배를 겪었었기 때문이다. 그 지배의 잔재가 남아있어 복종을 지속하게 한 당위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비슷한 개념의 성립 조건을 통해 추론해야 한다. 바로 이른바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신흥 종교다. 신흥 종교는 종교의 교주가 교인을 지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서 교인이 지속적으로 복종해야 할 당위가 무엇이겠는가? 무엇이 교인을 복종하게 하였는가? 종교의 교리다. 교리를 의심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인 교리에 의해 교인은 교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신흥 종교에서 당위는 절대적 가치인 교리였다. 그렇다면 신정과 왕정에서는 어떤 것이 절대적 가치였는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판단조차 하지 않았던 개념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윤리다. [윤리: 1.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할 도리.] 아마 대부분은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윤리에 반하는 행동은 절대적으로 그르다 여기기 때문에 쉽게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만 접근하자. 윤리는 절대적 가치가 맞는가? 맞다. 절대적 가치는 절대적이기에 판단을 하지 못하는가? 맞다. 지배의 성립 조건에 절대적 가치는 포함되는가? 맞다. 신정이든 왕정이든 절대적 가치인 도덕과 윤리를 통해 지배 질서를 받아들이게끔 교육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노예 디자인 교육을 한 것이다. 거기서 윤리는 개인의 정신에 찍는 노예의 낙인이다. 그것으로 인류는 노예로 디자인된 노예 디자인 휴먼이 되었다. 나도 노예의 낙인이 찍혀있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성립 조건을 통해 왕정 시대부터 전해온 도덕과 윤리는 지배를 성립시킨 개념임을 추론했다.


당황스러울 것이다. 흥분하면서 욕을 할 수도 있다. 도덕과 윤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와왔는지에 대해 외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배워왔던 것이 아니라고 듣는다면 그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것으로 누군가 돕고 희생한들 그게 지배의 성립 조건 중 하나임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 통상 도덕과 윤리는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바로 그게 종교의 지배를 받아들이게끔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절대적 가치다. 그걸 신정이나 왕정이 이용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하지 못하면서 그 가치가 어떤 현상을 부를지 아예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어떤 현상을 부를지 조금도 생각조차 못한다.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올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 문제의 원인조차 모른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금욕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윤리가 원인임을 모르는 것이다. 타인을 돕거나 희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가치여야 한다. 윤리가 아닌 판단할 수 있는 체제나 개인의 가치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C. 절대적 가치의 판단 불가] 이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절대적 가치는 고유한 절대적 가치와 보편적 절대적 가치가 있는데, 고유한 절대적 가치는 사회에서 다른 인간이 그것을 판단할 수 있으면서 그것에 의한 문제를 알 수 있는데, 보편적 절대적 가치는 사회 전체가 그것을 판단할 수 없으면서 그것에 의한 문제를 누구도 모른다. 이것을 세계화되면서 다른 사회가 판단할 수 있어야 했는데, 문화 상대주의라며 얼렁뚱땅 넘기는 바람에 누구도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심신 피로, 유아 퇴행, 과한 음주, 강한 마약 등 아무리 우수한 인간이더라도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바보가 된다. 이 논리는 간단하게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절대적 가치를 보자. 절대적 가치도 판단할 수 없는 가치다. 앞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면 바보가 된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아무리 우수한 인간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상대적 가치에서는 우수하지만 판단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에서는 멍청하다. 이 논리를 이해해야 본인이 멍청해질 수 있는 상태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멍청하게 될 수 있는 음주 상태에서의 운전을 하지 않게 될 명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보편적 절대적 가치에 한에서는 그야말로 원시 레벨까지 낮다. 그 가치 자체가 거의 발전하질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인문 계열 학문은 레벨이 들쭉날쭉하다. 상대적 가치는 현대 문명에 걸맞게 레벨이 높은데 절대적 가치는 굉장히 레벨이 낮다. 가장 기본적인 논리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이 레벨의 편차가 학문의 발전에 정말 크나큰 방해를 하고 있다. 특정한 절대적 가치는 그 가치만 레벨이 낮은 게 아니라, 그 가치와 연관된 개념들은 전부 영향을 주게 된다. 판단을 못한다는 점에서 술주정이랑 차이가 없는 수준인데 당연하다. 


다시 말하는데 상대적 가치는 매우 우수하기에 현대 문명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체제의 경우에는 우수하다. 체제의 가치는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윤리는 판단을 못한다. 예를 들어 이렇다. 연하가 연상에게 복종하며 존댓말을 하는 것은 절대적 가치로 연하가 연상에게 반말을 할 경우 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반면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상대적 가치로 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는다. 개인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왕정의 예의는 절대적으로 지키면서 모든 개인에게 권력이 있는 민주정의 제도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알겠는가? 그럼에도 절대적 가치는 판단할 수 없으면서 그게 무슨 문제인지조차 모른다. 그나마 반말 존댓말은 다른 문명권에 없는 경우도 있어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문명권도 비슷한 절대적 가치가 있을 경우에는 정말 인식조차 못한다. 시간, 금욕, 이타, 성 등 대부분 그러하다. 시간은 자연스러운 절대적 가치라면 윤리는 인위적인 절대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이 절대적 가치의 뿌리는 원시 질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능이 낮은 짐승은 힘으로 복종하게 하면 대체로 질서가 잡혀 사회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지능이 높은 인간은 힘으로 복종하게 해도 곧잘 반란을 할 수가 있다. 개인의 힘이 어디로 튈지를 몰라 질서가 잡히지 않아 사회로 이루기 어렵다. 거기서 원시적인 질서가 나온다. 인간은 보통 공포에 질려 도망칠 때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도망칠 곳을 알려주면 웬만하면 그곳으로 다 도망친다.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되면서 질서가 잡히게 된다. 공포 -> 도피를 사용한 원시적인 질서다. 자연에 대한 공포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연에 신앙한 애니미즘 같은 것이 그런 질서 중 하나다. 그리고 그 파생이 도덕과 윤리다. 도덕은 학문으로 체계가 잡히기 전의 절대적 가치고, 윤리는 학문으로 체계가 잡힌 후의 절대적 가치다. 권선징악.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으로 징계에서 선의 행함으로 도피하게끔 만든다. 천국과 지옥.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선을 행함으로 천국으로 도피하게 만든다. 여기서 선과 악은 주장한 집단, 주로 종교에 이로운 가치와 해로운 가치다. 도덕과 윤리는 전부 공포 -> 도피 논리를 활용한다. 그렇게 하여 공포에 질려 판단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행하게 하는 절대적 가치가 된 것이다.


신의 지배와 왕의 지배에는 차이가 생기게 된다. 통상 기독교는 신의 지배고 유교는 왕의 지배일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지배를 위해 신앙이 절대적 가치고 유교에서는 왕의 지배를 위해 권력이 절대적 가치다. 기독교권에서는 신앙이 절대적 가치기에 신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면 유교권에서는 권력이 절대적 가치기에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독교권에서 사상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나타날 수 있었다. 신앙은 절대적 가치지만 인간의 권력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교권에서는 결코 그런 사상이 나타날 수가 없었다.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지금도 연령 등의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제왕적 대통령제, 귀족적 의회제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가 얼마나 고상하고 위대하든 판단하지 못하면 위험 요소가 된다. 우수한 엘리트가 신흥 종교에 빠지면 평소에 우수한 면모를 보이다가도 종교에 관련되어서는 멍청해지게 될 수 있다. 절대적 가치라는 낙인에 찍히게 되면 그 가치에 한에서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자는 평소에는 매우 우수해도 민족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기에 판단하지 못하면서 민족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바보가 된다. 그러니까 한국 민족주의자가 북한 독재자에 이용당한 것이다. 대체로 지능은 정상인데 쉽게 이용당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경우 대부분이 절대적 가치에 의한다. 그래서 사기를 칠 때에도 보편적인 절대적 가치를 이용한다. 보이스피싱이 가족을 이용하는 이유는 그래야 상대가 판단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속을 수 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멍청해질 수 있는 상태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선진국의 고질적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것도 절대적 가치 때문이다. 기독교권이나 유교권이나 비슷한 공통된 문제를 공유하나, 신의 지배보다 왕의 지배가 더욱 더 강하게 노예의 낙인을 찍은 모양인지 유교권에서 그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윤리를 매우 강조하면서 미성년에게 강한 노예의 낙인을 찍었다. 그러면서 학교 폭력의 대명사가 된 이지메, 은둔형 외톨이의 대명사가 된 히키코모리를 비롯해 오랫동안 지속된 저출산에 의한 고령화, 장기적 경제 침체 등을 겪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자. 금욕을 강제하면 강제할수록 어떻게 되겠는가? 욕망이 줄어들면서 인간은 행동해야할 동기를 잃는다. 단계별로 욕망이 줄어들면서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으면서 인간은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이타를 강제하면 강제할수록 어떻게 되겠는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면서 타인이 불행하지 않도록 불행할 수 있는 사건 자체를 만들려하지 않게 된다. 단계별로 점차 인간 관계가 멀어지면서 인간은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당연히 욕망이 필요하고 타인에게 폐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못하게 하니까, 노예의 낙인에 크게 영향을 받을수록 이지메를 당하고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욕망이 없고 타인의 행복을 위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일본의 개인주의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윤리적인 거리감이다.


저출산이나 경제 침체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에너지가 적은 상태에서 일과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범주 가치가 매우 낮다보니 시장이 망가지게 된다. 일은 미성년 때부터 직접 해보면서 친숙하게 해야 하는데, 어디 미성년이 일을 하냐며 무작정 막고 공부만 시키면서 일에 관한 범주 가치가 폭락하면서 노동 시장도 망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성 산업이 유명하나 미성년에게 가해지는 보편적인 성 억압은 강한 편이기에 AV 배우에 대한 시선이 한국보다도 곱지 못하다. 미성년 때 성을 억압하면 성에 대한 부정적 가치관이 심어져 연애를 안하게 된다. 일본 20대 연애 비율이나 성경험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연애 범주 가치가 망가진 상태인지 나타내고 있다. 일이든 성이든 미성년 때부터 친숙해야 해당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그 가치에 관련된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도 윤리적으로 그걸 못하게 막으면서 시장도 같이 죽었다.애초에 지배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존중될 수가 없었기에, 그 시대의 질서는 개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질서기에 시장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성에 관해서는 여성주의가 여성성을 여성 권력의 도구화 하면서 연애 시장 진입 난이도와 비용이 더욱 높아지면서 더 심각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체제가 다른 중국도 시장을 도입하면서 일정 부분 자유롭게 되면서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체제가 다른 비슷한 유교권 국가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면 근본적인 공통점이 원인이라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절대적 가치는 판단할 수 없어서 원인조차 모른다. 그래서 윤리로 발생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윤리를 더욱 강조하는 황당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회 에너지를 줄이면 겉으로 드러나는 범죄는 줄 수 있어도 안의 사회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진다. 간단한 논리도 모른다. 자유 체제에서 금욕주의나 이타주의 타령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배 체제라면 지배로 강제해서 어떻게든 하게 할 수 있지만 자유 체제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단 말이다. 자유 체제에서는 개인의 의사로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장 원리를 따라가는데, 가치를 망가트리면 어떻게 그 가치의 시장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겠는가?


가치는 상대적이니까 각자 가치관을 가지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판단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은 학문에 있어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그 가치에 한에서는 지나치게 레벨이 낮기 때문이다.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인간은 자연 계열은 실험을 통해 어떻게든 판단할 가능성이 있는데 인문 계열, 특히 순수 인문 계열은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길 권하겠다. 절대적 가치에 의해 판단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떠드는 것 자체가 학문에 해롭다. 반대로 절대적 가치에서 벗어나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지식의 순도를 높이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할 수 없으면서 현재 고질적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문제의 본질조차 모르는 것이다. 수천 년, 수백 년, 수십 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는가? 언제까지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인가? 이미 선례가 있는데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 현대 인문에서 상대적 가치는 레벨이 높은데 절대적 가치는 레벨이 낮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판단하지 못하면서 절대적 가치를 실천하며 정의롭게 국가적인 자살을 하는 일을 멈출 수 있다.






셋째, 자유의 성립 조건


[자유: 1.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얾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자유의 성립 조건을 통해 어떤 개념이 성립 조건에 필요한지 알아보자.


자유의 성립 조건은 우선 자아, 생존, 환경, 능력이 있다.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만 하는 기관으로 자아의 자유는 판단의 자유라 할 수 있다.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는 판단만 해야 모순이 없다. 발상과 실행을 세부적으로 할 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판단만 한 것을 생물 메커니즘에서 실행하기에 그렇다. 자아가 계속 판단할 수 있는 생존이 필요하고, 자아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고, 자아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자유의 성립 조건에는 저 네 가지가 들어간다.


이런 자유를 성립시키기 위한 체제가 바로 자유주의다. 이 자유주의 체제의 성립 조건에는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포함되게 된다. 모든(민주주의) 개인(개인주의)의 자유(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시장(시장주의) 제도가 필요하다.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는 것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욕망과 이기가 필요하게 된다.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주장을 해야만 내면에 있는 목소리까지 온전히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개인의 의사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해야만 사회에 이롭게 될 수 있도록 공정한 정책과 제도를 만든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유주의 체제의 성립 조건이다. 각각의 개념은 이런 식으로 성립 조건을 고려하면서 논리를 구축해나가면 된다. 헌법이든 법률이든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자유주의 체제 성립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데, 절대적 가치에 의해 그게 잘 안되던 상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는 권력의 평등한 질서다. 권력으로 차례가 정해지지 않는 질서다. 통상 시장과 같이 개인의 의사로 차례가 정해진다. 그러나 유교는 권력으로 차례가 정해지는 질서다. 권력이 높은 순서대로 차례가 정해진다. 이 둘은 아예 정반대임에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교 질서가 남아있는 상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교 질서가 남아있을 정도로 체제 이해가 부족하여 본질과 거리가 먼 평등을 추구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체제는 권력의 평등이지 모든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권력이 평등해도 무력, 지력, 매력, 재력 등이 평등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말하며 모든 것을 평등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되려 체제를 파괴한다. 현재 평등은 크게 상하는 없되 선후는 있는 기회의 평등과 상하는 있되 선후는 없는 결과의 평등으로 나뉘는데, 결과의 평등의 경우 선후를 없애기 위해 위에서 아래에게 강제해야 하기 때문에 지배하게 되면서 민주주의 체제가 파괴되게 된다. 괜히 공산주의가 지배 체제가 된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른 힘은 차이가 있어도 권력은 평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약자에 대한 복지 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닌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선후의 차이는 선후를 강제로 맞출 것이 아니라, 후발 주자가 앞서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에 있다. 상하는 없어 모두가 대등하고 선후는 있어 누구라도 자유롭게 힘을 키워나갈 수 있는 체제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다.


분명 자유는 상대적 가치로 모든 인간이 그것을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게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판단 -> 계약으로 체제에 속하는 동안만 준수해야할 가치로 남아야 한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주의 체제에 속하게 할 수 있는 이익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인류의 문명 발전이라 주장하겠다. 인간은 자유로울수록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 생산이야 인간을 지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고부가 가치는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생산될 확률이 높다. 그것으로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모든 개인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로불사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모든 개인은 자유주의 체제에 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겠다.











2. 세계 구성


[세계: 3. 대상이나 현상의 모든 범위.]


경제를 물리로 해석하려면 세계 구성을 파악해야 한다. 세계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물리적으로 경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세계 구성은 앞서 모순을 제거해 다룬 순도 높은 지식을 만드는 방법을 통해 추론하였다. 우주의 성립 조건은? 생명의 성립 조건은? 사회의 성립 조건은? 이런 식으로 추론하였는데 아직 순도가 높지는 않다. 각각의 언어 개념을 논리적으로 풀어 정리하는 것. 그냥 하던대로 대략적인 구성을 한번 써보겠다. 




1) 우주 구성


우주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기본 상호 작용: 1. 우주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힘. 강한 상호 작용, 약한 상호 작용, 전자기 상호 작용, 중력을 말한다.] 간단히 힘으로는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 있다고 한다.


우주의 구성은 초기에 통일장 이론이나 초끈 이론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였었다.  [통일장 이론: 1. 일반 상대성 이론을 확장하여 중력장, 전자기장, 핵력 마당 따위를 물리적 공간의 일정한 성질에 귀착시켜서 일반적인 마당을 통일적으로 논하려는 이론.] 그런데 시간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시간이 좌표계가 아니라 판단하고, 생명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법칙은 초기에 단순할 수 있다 판단하고 나서, 우주의 법칙 또한 초기에 단순하지 않을까 싶었다. 


[C. 에너지 본질] 우선 우주의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주에는 크게 에너지와 물질이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와 물질 중 무엇이 우주에 먼저 존재했는가? 다른 개념들을 통해 하나씩 생각해보았다. 에너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중력, 물질에는 무언가를 당기는 힘이 존재한다. 초신성, 별의 폭발로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다. 중성자별, 초신성 폭발 후 만들어진 항성. 블랙홀, 중성자별의 붕괴. 핵 붕괴, 원자핵이 에너지를 잃는 과정. 빅뱅, 우주의 탄생을 가져온 거대한 폭발. E=mc2, 질량과 에너지 등가. 이런 개념들을 통해 빅뱅 이론과 같이 우주에 초기에는 에너지만 있었다고 판단했다. 물질은 에너지가 응축하면서 만들어진 존재다. 물질이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질이 붕괴하면 에너지가 방출하는 것이라 추론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선 물질이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떠올렸다. 그렇다는 것은 물질에 있는 힘인 중력은 실제로 에너지가 응축하면서 생기는 힘이라 추론했다.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물질 자체가 응축되는 일을 하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즉 현존하는 모든 존재는 에너지의 다른 형태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에너지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의 공통점은 응축하고 확산한다. 당기고 밀어낸다.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나 자석의 자기장 또는 행성의 공전 등도 전부 당기고 밀어내는 것을 기초로 한다고 보았다. 약력의 경우 당기고 밀어내는 것이 적다고 하는데, 베타 붕괴 또한 당기고 밀어내는 성질 중 하나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싶다. 당기고 밀어내는 성질은 응축과 확산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 보았다. 


에너지의 기본적인 성질은 응축이나 확산. 둘 중 하나가 기본 성질일 것이라 보았다. 그런데 만약 에너지의 기본 성질이 확산이라면 물질이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무한히 퍼져나가면 끝난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기본 성질은 응축이었다. 모든 법칙의 기초는 에너지의 응축에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단순히 응축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일정 이상 응축되면 초신성과 같은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 보았다. 그게 아마 빅뱅과 같은 폭발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한번의 폭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번의 폭발로 끝없이 확산된다면 현재 우주처럼 다양한 물질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단계별로 폭발했을 거라 추론했다. 최초 에너지의 성질대로 응축된다. 아마 그러면서 특정 물질도 같이 만들어진다. 아마 초기에는 순수한 기본 입자일 것이다. 일정 이상 응축되다가 폭발한다. 그러면서 에너지와 물질이 확산된다. 폭발 이후에는 초기 블랙홀이 나타난다. 에너지와 물질은 일정 이상 확산되면서 물질을 중심으로 에너지가 응축된다. 확산되는 힘과 응축되는 힘이 비등해질 시기에 확산이 멈추면서 블랙홀의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당겨지기 시작한다. 에너지의 응축이 일정 이상되자 다시 폭발한다. 응축과 폭발 중에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진다. 동시에 새로운 블랙홀도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응축되는 에너지는 블랙홀과 물질이 당기는 힘에 의해 늘어지게 되었다. A와 B가 강한 힘으로 당기면 그 사이에 있는 C는 쭉 늘어지게 될 것이다. 에너지는 응축하므로 입자가 기본일 것 같다. 입자에서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당겨지면서 파동이 된다.


우주에는 수많은 물질이 있으므로 단순히 A와 B가 당기는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무언가가 당기면서 에너지의 응축 외의 성질이 생기게 되었다.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은 이렇게 응축과 폭발로 나타난 당기는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본다. 당기는 힘을 반대에서 보면 밀어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이 밀어내는 힘이지 않을까 싶다. 자석의 다른 극 밀어내기는, 아마 자석 내부에서 서로 당기는 것에 의해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즉 우주의 성립 조건은 에너지고, 에너지의 본질은 응축과 폭발이다. 응축, 폭발, 확산, 다시 응축하면서 당기는 힘의 작용. 그것의 수많은 반복의 결과가 현재 우주의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법칙이라 판단했다. 


초기 원시적인 성질에서 반복한 결과가 현재의 법칙이라는 것. 각각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풀어본 결과 그런 결론이 나왔다. 통일장 이론이나 초끈 이론은 현재 우주의 법칙을 묶어서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디지털 현상을 법칙화한 다음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보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과 멜론을 하나로 묶어서 보려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해야 할까, 뭔가 인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디지털의 뿌리가 0과 1이듯이, 생명의 뿌리가 같듯이. 우주의 법칙도 뿌리에서 시작해 다양하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했다.




[C. 공간 에너지] 모든 존재는 에너지로 이뤄져 있다. 물질은 에너지의 응축된 결과다. 시간은 관측 순서로 좌표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간은? 모든 존재가 에너지로 이뤄져 있다면 공간 또한 에너지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논리적이다. 인간은 행성이란 단단한 존재에 붙어 있기에 공간이 어떤 절대적인 개념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을 수 있는데, 우주로 보면 공간이 절대적인 개념일 필요가 없다. 공간 또한 에너지로 구성된 존재. 최초 에너지가 응축되다 폭발하면서 공간 또한 생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공간이 생겼을 때 공간을 이루는 에너지가 있어야 공간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공간의 성립 조건으로 나온 개념이 바로 공간 에너지다.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해보자. 그리고 중력 개념을 생각해보자. 중력은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그리고 중력은 힘이 매우 미약하여 지구가 당기는 힘을 제외하면 체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주 전체를 당기는 힘이 있어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태양이 은하계 중심으로 돈다. 중력의 본질이 무엇인가? 당기는 힘이다. 만약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면 이것이 이해될 수 있다. 중력은 물질만 당기는 힘이 아니라 공간을 이루는 에너지도 당기는 힘이라 전제하면 된다. 공간을 이루는 에너지도 당기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중력은 공간을 당기기에 공간에 속한 개개의 에너지와 물질에 미치는 영향은 적게 된다. 블랙홀은 공간 에너지조차 빨아들이기 때문에 은하 중심에서 은하에 속한 모든 존재를 끌어당기며 공전시킨다. 공간 에너지를 전제하면 우주 팽창은 우주 전체의 팽창이 아닌 공간 에너지의 확산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해보자. 그리고 양자 개념을 생각해보자. 양자 현상은 미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중 슬릿에서 광자를 쏘았을 때 관측하면 입자,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이 나타난다는 실험을 통해 미시 세계에서는 거시 세계와 다른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현상은 공간 에너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관측한다는 행위는 관측할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입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측하면 입자의 에너지가 높아지고 관측하지 않으면 입자의 에너지가 그대로인 상태임을 의미한다. 만약 공간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면 이것이 이해될 수 있다. 공간 에너지도 에너지인 만큼 힘이 작용할 것이다. 그 힘이 몹시 작아 거시 세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에너지가 적은 미시 세계에서는 영향을 미친다고 해보자. 그러면 관측하지 않을 때 입자는 공간 에너지보다 에너지가 적어 공간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사방에 있는 공간 에너지에 당겨져 파동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추론할 수 있다. 공간 에너지는 다른 중력에 당겨지면서 일정하지 않은 상태가 되면서 입자를 일정하지 않게 당기면서 마치 확률과 같은 무작위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거시 세계에서도 에너지를 공간 에너지 영향을 받을 때까지 줄이면 양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아마도 그 현상 중 하나가 초전도체가 아닐까 싶다. 온도가 내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적다는 것. 한계까지 에너지를 줄이면 지구 자기장보다 공간 에너지 영향을 받아 자기장이 없어지는 상태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아마도.


공간 에너지 개념을 통해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을 간단하게 나눌 수 있다. 공간 에너지를 당기면 고전 역학, 공간 에너지에 당겨지면 양자 역학이다. 공간 에너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중력과 양자 현상의 논리적 모순은 사라진다. 이 개념을 통해 우주의 성립 조건이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우주의 구성 또한 에너지를 기초로 한다는 것을 알 수있다. 알지 못한다고 거기에 확률을 붙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주는 전부 논리적인 인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2) 생명 구성


생명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생명의 성질을 생각해보자. 물질을 먹어야 한다. 에너지를 방출한다. 방출한 에너지로 동작한다. 세포 분열과 같이 물질을 복제한다. 전기 신호를 쓸 수 있다. 가시광선을 볼 수 있다. 기록된 유전을 재현한다. 세포의 성질은 생물의 성질과 본질적으로 같다. 작은 개념은 큰 개념을 따른다. 이하 다양한 성질을 통해 생명의 성립 조건은 원자핵 붕괴라는 판단을 했다. [원자핵 붕괴: 1. 하나의 원자핵이 방사선을 내어 다른 원자핵으로 변화하는 일. 알파 붕괴, 베타 붕괴, 감마 붕괴 따위가 있다.]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생명의 에너지 방출) 전자 포획을 통해 전자를 받아들이고 중성미자를 방출할 수 있다. (생명의 물질 흡수와 물질 생성, 가시광선 관측과 전자의 기록) 자발 핵분열을 통해 원자핵이 두 개 이상의 작은 원자핵과 다른 입자로 분열한다. (생명의 분열, 유전) 내부 전환으로 전자를 방출할 수 있다. (생명의 전기 신호) 


모든 조건을 고려하다보니 물질 붕괴 개념에 닿았고, 물질 붕괴 개념을 찾아보니 원자핵 붕괴가 있었다. 최초에는 원자가 너무 작아서 생명의 본질이 맞나 의심을 했는데, 세포와 생물의 성질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떠올리고 원자핵 붕괴의 성질과 세포의 성질과 생물의 성질이 같다는 판단을 했다.


원자핵 붕괴한 특정 물질이 전자 포획이나 전자 포획과 비슷한 방식으로 어떤 물질을 흡수하면서 안정화가 된다. 전자 포획을 하면서 특정한 전자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 전자 형태를 가진채 자발적 핵분열을 통해 원자가 복제된다. 대량으로 복제되면서 분자가 된다. 원자의 전자 형태가 기초적인 DNA가 된다. 원자핵 붕괴로 흡수하는 물질에서 필요한 것을 제외하면 버린다. 버려진 물질들이 원자핵 붕괴로 만들어진 분자를 감싸면서 세포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세포가 된 이후 원자핵 붕괴 시기와 같이 움직인다. 물질을 흡수하고 안정화된다. 에너지를 방출해 움직인다. 불필요한 물질은 내뱉으면서 물질이 생성된다. 전자 포획을 통해 전기 신호를 DNA에 기록한다. 염색체가 두 개의 세포핵으로 분열하면서 세포 분열을 한다. 거대한 물질을 흡수하면서 계속 세포 분열을 한다. 그러면서 계속 새로운 전기 신호를 기록하면서 DNA가 길어진다. 


물질의 흡수는 세포가 갉아먹는 형태가 된다. 이는 동물의 혈관과 식물의 뿌리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식물의 뿌리가 땅으로 뻗어나가듯이, 동물의 혈관도 세포가 뻗어나간 흔적이 아닐까 싶었다. 바다에서 물질을 갉아먹으며 세포 분열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분열을 하는 일이 생긴다. 기본적인 세포는 신경 세포로 분열하면서 전기 신호를 주고 받으며 연결되게 된다. 세포 분열이 완전하지 않아 다양한 형태로 분열되게 된다. 적혈구나 백혈구 등 또는 단세포나 바이러스와 같은 형태 등이 있다. 그 중에 염색체 수가 반으로 줄어든 망가진 세포가 나오는데 그게 생식 세포다. 망가진 세포는 필요가 없어 버려지는데, 염색체가 반으로 줄어든 망가진 세포가 수도 없이 버려지는 과정에서 비슷한 세포끼리 결합하면서 완전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세포가 생기게 된다. 그게 생식 세포의 결합이다. 


생식 세포가 결합하면서 내부 기록인 DNA가 망가진 모양인지 생식 세포는 세포 분열을 이상하게 하기 시작했다. 기록의 처음부터 다시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생물이 탄생한다. 세포가 갉아먹은 형태를 기록한 시기대로 생물의 생김새가 달라지게 된다. 세포가 외부 표면을 다 갉아먹고 내부를 생선 뼈다귀의 형태로 갉아먹으면 어류가 된다. 세포가 외부와 내부를 대부분 갉아먹고 외부에 단단한 물질을 생성하면 갑각류가 된다. 세포가 외부와 내부를 전부 갉아먹으면 연체류가 된다. 초기에는 대게 물고기와 같은 뭉툭한 형태의 생물로 시작한다. 최초 갉아먹은 물질이 뭉툭하기 때문에 물고기와 같이 뭉툭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세포는 갉아먹은 순서대로 기관이 된다. 최초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갉아먹으면서 더 이상 갉아먹을 것이 없어지자, 심장 부위에 있는 분열한 세포로부터 물질을 공급받아 유지한다. 끊임없이 공급 받으며 머리에 해당하는 부위에 많은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거기서 뇌가 형성된다. 물질을 공급하는 세포는 물질을 공급하게끔 기록된 세포를 분열하면서 다른 세포로부터 물질을 계속 공급받으며 심장에 해당하는 부위에 많은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거기서 심장이 형성된다. 큰 두 개의 기관에서 사방팔방으로 세포 분열이 일어나면서 혈관이 나타난다. 머리에서 갉아먹기 시작해 물질을 관통하면서 똥구멍이 생기게 된다. 내부에 충분히 갉아먹은 공간에는 바닷물이 가득차게 된다. 그 바닷물에 적혈구와 백혈구 등이 들어가면서 그것이 피가 된다. 


생물이 탄생한 이후에 생식 세포의 유전은 기록의 재현과 유전의 조합을 둘 다 하면서 온갖 다양한 생물을 탄생시킨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정확히 모름)에 유전이 기록을 멈추면서 새로운 생물은 오로지 유전의 조합으로 탄생되게 된다. 그러면서 특정 종의 고정된 형태가 시작된다. 오늘날 생물이 보통 그러하다. 종이 유전을 해도 본질적인 형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재 진화는 돌연변이로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다. 인간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생명의 성립 조건은 원자핵 붕괴와 그 붕괴가 생명이 될 수 있는 환경이다.


생명의 경우에는 그 본질을 몰라 자꾸 인문 계열의 개념으로 접근해 마치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다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생명은 어디까지나 기록된 정보를 재현할 뿐이다. 그런 것 중에서 생존에 적합한 것이 살아남으면서 마치 생명이 생존하길 바라는 것처럼 된 것뿐이다. 만약 생명의 생존이 절대적이라면 자살하는 개체는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충실하게 기록을 재현하기 때문에 기록만 조작하면 불로불사나 인간의 머리에 짐승의 귀를 생기게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생물이 기록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과 식물이 감각할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있는 것이 다르고, 항상성과 같은 개념이 강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3) 사회 구성


사회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회: 3.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인간이 모여 생활을 하면 사회다. 원시인이 모여 생활을 하면 원시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회 구성은 원시적인 사회부터 접근해야 한다. 원시적인 사회부터 풀면서 현대적인 사회까지 파악을 해야 사회 구성을 알 수 있다. 현대와 같이 세계화가 되기 이전에 인간 사회는 각각 고립되어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차이에 대해서도 파악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모여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생각해보자. 우선 인간이다. 인간은 생물 중 지능이 높은 종이다. 인간의 특성에는 이족 보행, 섬세한 수족, 높은 지구력, 도구 활용 등이 있지만 다른 종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지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특성에 의해 지능이 높아졌다는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겠다. 모든 인간은 같은 종이므로 종이 고립된 사회의 차이를 만드는데 크지 않다.


다음은 환경이다.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한 환경이 있어야 인간이 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달리 풀면 인간 사회가 있던 곳은 전부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정글, 사막, 극지 등 다양한 환경에서도 인간이 살았다면 거기는 논리적으로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장소다. 즉 인간 사회는 각각 환경의 차이가 있으나, 그 환경들의 특징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적자 생존의 논리로 접근하여 인간이 생존한 사회는 달리 말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기 때문에 환경이 고립된 사회에서의 차이를 만드는데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다.


다음은 질서다. [질서: 1.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질서가 있어야 사회가 성립한다. 인간의 생활이 사회로 가능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질서다. 인간을 물리적으로 접근하면 불규칙하게 에너지를 방출하는 물질이다. 그 물질은 오랜 세월 기록의 재현을 조합하면서 내부의 구조가 복잡하여 어떤 식으로 에너지가 방출될지 알기가 어렵다. 그런 물질을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에너지 방출이 되는 특정한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질서다.


불규칙하게 에너지를 방출하는 물질인 인간은 공포에 질리는 상황에 빠지면 대부분 도망친다는 개념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쳐야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적자 생존의 결과 일반적인 인간은 특정한 공포를 겪으면 판단하지 않고 무작정 도망치게 되었다. 이는 대부분 생물의 본능에 해당할 것이다. 생물은 공포라는 개념을 통해 규칙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했다. 그런데 도망이라는 에너지의 방출이 규칙적이게 되었지만 방향은 아직 불규칙했다. 거기서 도피 개념이 나온다. 공포에 빠질 때 도피처가 있으면 도피처로 도피하게 된다.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올 때 도피처가 없으면 공포에 질려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불규칙한 움직임이 나타나지만, 동굴이란 도피처가 있으면 그곳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규칙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불규칙한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방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원시적인 질서, 공포 -> 도피 질서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공포 -> 도피 질서는 인간의 공포를 활용한 질서기에 공포를 심은 인간이 공포를 겪는 인간을 지배하는 질서가 된다. 그렇기에 인류 문명은 기본적으로 지배 질서였던 것이다. 공포 -> 도피의 지배 질서는 인간의 특성상 어떤 고립 사회든 비슷하다. 그러나 어떤 공포와 도피를 활용했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고립된 사회의 차이는 대부분 이 질서에서 왔다 봐야 한다. 환경이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나, 인간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전제하고 비슷한 환경에서도 다른 질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영향이 그리 크지는 않다. 


공포 -> 도피의 지배 질서는 크게 무력, 원시 신앙, 권력, 종교 신앙 정도가 있다. 무력으로 공포를 겪게 하여 생존으로 도피하게 하는 정복, 자연 재해의 공포를 이용하여 신앙으로 도피하게 하는 원시 신앙, 권력으로 공포를 겪게 하여 복종으로 도피하게 하는 지배 정당화, 천국과 지옥과 같이 가치로 공포를 만들어서 교리 준수로 도피하게 하는 종교 신앙. 대체로 이런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지배 질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무력, 재해, 권력과 같은 공포로 만들어진 질서는 지극히 단순하여 사회 질서 주류가 될 수는 없다. 천국과 지옥과 같은 만들어진 가치 개념을 통해 공포 질서를 구축하여 종교의 교리로 도피하게 만든 체계화된 공포 -> 도피 질서인 종교의 가치가 사회 질서의 주류가 된다.


종교의 성립 조건은 절대적 가치, 절대적 가치의 주장자, 절대적 가치의 신도다. 종교는 이 가치를 믿으면 네가 가진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절대적 가치를 전파했다. 공포에는 빈곤, 질병, 죽음 등 다양하다. 선행을 하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여기서 선행이란 종교 가치의 실천이다. 착하다는 것은 선행을 한다는 것. 달리 말해 종교 가치를 충실히 지키는 인간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한 행위가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 여길 수 있는데, 판단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타인을 돕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판단의 결과, 자유 의지의 결과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맹신과 맹신이 아닌 종교가 있을 수 있는데 별 차이는 없다. 애초에 종교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면 성립이 안되기 때문에 맹신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맹신을 요구하고 유교나 불교는 맹신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유교와 불교의 교리가 절대적이지 않으면 그 종교가 유지가 될 수가 없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절대적 가치가 아니게 되면 그 질서를 누가 얼마나 지키고 그 가치를 주장한 종교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산에서 하는 수행과 열반과 지옥 등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게 되면 그 가치를 따르기 위한 행위를 누가 얼마나 지키고 그 가치를 주장한 종교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게 절대적 가치가 아니면 인간의 주관적인 가치관이 우선된다. 개인적인 욕망이 우선되게 된단 말이다. 어떤 종교든 종교의 가르침은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종교로서 존속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를 믿는 인간은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 가치에 한에서는 바보가 된다. 즉 우민화다. 이런 종류의 지배는 전형적인 우민화를 통한 지배다. 판단을 못하는 가치가 있으니까 수천 년을 하고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원시 레벨에서 레벨이 오르지 않으니까. 이 절대적 가치는 흥미롭게도 지배 계층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것은 절대적 가치를 주장한 종교라 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인류의 정신에 가치의 노예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논리적으로 풀면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문화 상대주의를 부른 원인이기도 하다. 문화 상대주의가 모순을 부를 지라도, 각 문화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로 고립된 사회는 종교의 교리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고립된 사회의 특징은 사회 종교의 교리를 보면 대체로 알 수 있다. 그것을 기본적인 질서로 삼아 다양한 생활 양식이 탄생했다. 그것이 문화다. 그것을 학문화한 것이 문명이다. 사상, 철학, 예술, 논리, 수리, 농업, 어업, 상업, 기업, 금융 등 이전에 탄생부터 죽음까지 전부 그러하다. 금욕이나 이타 같은 고립된 사회에서 공통된 절대적 가치도 있는데, 그것은 지배 체제와 지배 질서가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욕망이 적고 집단을 위한 희생을 옳다 여겨야 지배하기 수월하다. 그런 질서에서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했으나 절대적 가치에 한에서는 원시적인 상태 그대로 남아 인류 문명의 발전을 방해했다. 의심할 수 없는 가치. 판단할 수 없는 가치.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가치.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왜 그것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다. 판단할 수 없으니까 당연하다. 생명이 뭔지도 모르고 윤리가 뭔지도 모르는데 생명 윤리를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다. 심지어 과학자조차.


누군가는 국가보다 종교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그야 당연하다. 실제 인류의 지배자는 종교니까 그렇다. 그토록 맹신하며 따르는데 판단할 수 없으면서 그것을 지배라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체제와 윤리가 충돌하여 사회 문제가 심각함에도 원인조차 모르는 것이다. 현재 선진국의 보편적인 체제인 자유 체제는 어디까지나 종교에서 나온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서 나왔음을 잊으면 안 된다. 물론 종교적 허용이 있어 가능했다. 기독교는 신이 위에 있기에 인간 사이가 평등할 수 있다 믿었고 유교는 인간이 위에 있기에 인간 사이가 불평등해야 한다 믿었다. 기독교가 신의 지배기에 왕의 지배가 절대적 가치가 아니여서 가능했다.


사회의 성립 조건인 질서는 반드시 절대적 가치인 윤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질서는 에너지가 규칙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면 성립된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판단으로 계약을 하여 규칙적인 에너지 방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공포 -> 도피 지배 질서가 아닌 판단 -> 계약 자유 질서다.






4) 체제 구성


체제의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 [체제: 2.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 체제는 크게 지배 체제와 자유 체제로 나뉜다. 각각 체제는 성립 조건이나 과정, 권력이나 가치가 다르기에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체제의 변화 과정을 통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최초 인간 사회는 공포를 이용하여 도피하게 만드는 것으로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활 양식이 나타났다. 즉 질서 -> 체제라는 것. 공포 -> 도피 질서에서 공포와 도피가 만드는 절대적 가치는 달라질 수 있어도, 공포 -> 도피 질서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절대적 가치는 달라져도 가치의 절대성은 그대로라는 것. 예를 들어 고려의 불교에서 조선의 유교로 정치적인 절대적 가치가 달라졌으나 가치의 절대성 자체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자유 혁명을 통해 지배 체제를 부수고 자유 체제로 전환을 하고나서 그 체제에 맞는 법을 제정하면서 다양한 생활 양식이 나타났다. 즉 체제 -> 질서라는 것. 지배 체제는 사라졌으나 지배 질서는 윤리로 남아 자유 체제와 자유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사회와 체제를 망가트렸다. 그게 현재 저출산 등의 고질적 사회 문제다. 절대적으로 옳다 여긴 것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된다.


인류 사회의 변화 과정은 간단히 다음과 같다. 지배 질서 -> 지배 체제 -> 자유 체제 -> 자유 질서 순으로 진보했다. 인간의 공포로 질서가 만들어지고, 그에 맞는 체제가 구축. 인간의 이념으로 체제가 만들어지고 그에 맞는 질서가 구축. 근본적으로 지배 체제와 자유 체제는 공포와 이념으로 다르다. 그렇게 다름에도 아직까지 인류는 공포로 구축한 질서의 간섭 없이 제대로 질서를 구축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공포에 의한 질서에 의존하고 있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이것이 아직까지도 질서 구축에 쓰이고 있다.


과거 지배 질서가 절대적 가치로서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왕정 체제 위에 있었던 것과 같이, 현재도 절대적 가치인 윤리에 의한 법의 제정과 판결과 집행이 일어나면서 법이 체제 위에 있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윤리로 체제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 체제는 지배 체제를 부수고 만들어졌기에 지배 질서에 의존할 게 아니라 자유 체제에 맞는 법의 제정과 판결과 집행이 필요하다. 지금 법이 체제 위에 있으려 하는 것은 축구 규칙이 축구 위에 있으려 하는 것과 같다. 그건 축구 규칙이 절대적일 때에나 벌어지는 현상이다. 축구 규칙이 상대적이면 축구에 맞는 규칙을 만들려 하게 될 것이다.


사회의 성립 조건을 알고, 인간에게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그 가치를 이념으로 삼아 체제를 구축하고, 그 체제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탐구하여 실행해야 하는 것이 체제를 다루는 인간에게 필요한 태도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종교 가치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게 아니다. 


체제의 가치를 바꿀 때에는 체제에 속한 개인의 의사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나를 비롯해 대부분 정신에 노예의 낙인이 찍혀있는 상태기 때문에 함부로 그러다가는 민주적인 정교일치로 종교 가치가 체제 가치가 될 확률도 있다. 아랍 국가의 민주화로 신정 국가가 된 사례를 생각해보자. 그런 상태에서는 개인의 의사가 반영될수록 국가가 지배 체제로 회귀하게 되면서 체제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노예의 낙인을 이해하고나서 체제의 이념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정 가치가 판단이 안되면 그 가치에 한해서는 그 누구도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 체제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다. 이 둘의 사상적 차이는 권력과 그 외의 힘이다. 자유주의는 권력은 같되 그 외 힘이 다르다. 상하는 없지만 선후는 있다. 기회의 평등이다. 권력은 평등하나 그 외의 힘은 평등하지 않아 자유롭게 힘을 키우면서 앞서나가는 인간과 뒤쳐지는 인간이 생기게 된다. 권력이 대등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힘을 억압하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서 힘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성립시키면 자연스럽게 이런 결과가 나온다.


사회주의는 권력이 다르되 그 외의 힘이 같다. 상하는 있지만 선후는 없다. 결과의 평등이다. 결과적으로 힘의 차이와 그 차이에 의한 결과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강제로 선후를 맞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위에서 강제하는 인간과 아래에서 강제되는 인간이 생기게 된다. 선후를 맞추기 위해 권력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 붙어 불리기도 하는데, 애초에 구조상 지배가 성립 조건에 들어가기 때문에 민주적이라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는 체제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왕정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은 모든 개인에게 분산한 체제다. 권력의 평등이지 모든 힘의 평등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대표, 대리인이지 지배자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여야만 한다. 흔히 문화나 정서를 말하며 연령 차별 등과 같은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데, 이제는 본인이 어떤 체제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유교 사회는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가 절대적인 사회라면, 민주 사회는 모든 개인이 평등하며 개인의 의사로 동작하는 선거와 시장과 같은 제도로 질서를 구축하자고 계약한 사회다.


자유주의 체제는 상하는 없되 선후는 있다. 힘이 강해 앞서가는 인간이 있으면 그것을 억압할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사회에 이롭게 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배 질서를 성립시키던 절대적 가치인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면서 마냥 힘을 지배에 이용하거나 힘을 지배하려 들면서 사회와 체제가 망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자유 체제에서 개인이 자유 연애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저출산이 발생한 문제는 어떻게 해서 성립되었는가? 지배 체제에서 성을 지배하며 강제로 결혼하고 출산하게 했던 절대적 가치인 윤리를 자유 체제에서 절대적으로 여기며 미성년에게 강제한 결과, 미성년이 성에 관련된 가치가 폭락하면서 성년이 되고서도 그것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여 자발적으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강제로 연애와 결혼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추론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 문제도 어떻게 그 문제가 성립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성립 조건이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자유 연애 결혼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의사로 결정되는 현상이다. 개인의 의사로 연애와 결혼에 가치를 높게 여겨야만 자발적으로 행한다는 것이다. 자유 연애 결혼의 성립 조건은 동기인 가치관과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중요한 가치관이 성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성기능이 작동하는 미성년 시기부터 그것을 친숙하고 긍정적으로 여기게 해야 성에 관련된 가치를 높게 느끼고 자발적으로 그걸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가치를 못느끼니까 연애 시장이 망가져서 고점만 소비되는 것이다. 애초에 전쟁 중보다 출산율이 낮다는 것을 알면 경제적 원인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판단이 가능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윤리가 절대적 가치니까 그것이 부정적 현상, 나쁜 결과를 만들거란 생각 자체를 못한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을 못하니까 그렇다. 담합도 파업도 비리도 차별도 그 외 다양한 현상들도 윤리가 원인이면 원인조차 모른다. 판단을 아예 못한다. 그렇게 판단을 못하면서 연애 시장 망가지듯 다른 시장들도 윤리로 망가졌다.











3. 경제 체계


경제 체계의 성립 조건은 경제를 동작하게 할 연료인 사회 에너지와 동작하는 환경인 경제 생태계다. 인간이란 생물을 이해하고 그 생물의 에너지 방출과 방출된 에너지를 사회에 이롭도록 제어한다. 그렇게 생성된 사회에 이로운 충분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보다 높은 가치가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구축한다. 이것이 경제 물리학에 필요한 개념이다.


생명은 태생부터 물질 붕괴와 같은 결핍된 상태이기 때문에 결핍을 충족하는 것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다. 그러한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기에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다.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생명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행복의 원리인 결핍의 충족을 효율적으로 하여 가능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을 경제 체계를 통해 성립시켜야 한다.




1) 사회 에너지


사회 에너지는 에너지 방출 성립 조건과 에너지 제어 성립 조건을 파악하고 에너지의 방출과 제어를 하면 된다. 우선 에너지에 대해 알아보자.


[에너지: 2. 기본적인 물리량의 하나. 물체나 물체계가 가지고 있는 일을 하는 능력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역학적 일을 기준으로 하여 이와 동등하다고 생각되는 것, 또는 이것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을 이른다. 에너지의 형태에 따라 운동, 위치, 열, 전기 따위의 에너지로 구분한다.]


물체나 물체계가 가지고 있는 일을 하는 능력을 통틀어 이른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물체나 물체계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일의 능력일 것이다. 물체나 물체계가 있어야만 에너지가 성립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정확히는 물체나 물체계가 있어야만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없어도 에너지는 존재할 것이다. 그래야 최초 에너지 폭발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최초 에너지가 폭발하고나서 퍼진 에너지에 의해 공간이 형성된다. 에너지가 응축할 때 생긴 물질, 아마 입자들은 다른 에너지보다 무거워서 느리게 가면서 더 강한 중력으로 다른 에너지를 당기고 응축하면서 다시 에너지 폭발이 이뤄지는 것으로 우주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최초 에너지 폭발 이전을 아는 것이 사상가로서의 목표 중 하나다.


물질 자체가 에너지가 응축한 결과기에 물질 스스로도 중력이란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체와 물체계가 있어야만 에너지를 관측할 수 있었기에 단순히 물리량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에너지 자체가 모든 것의 근원인 것이 좀 더 논리적이라 본다. 에너지가 응축하면 입자, 입자가 모이면 원자, 원자가 모이면 분자, 분자가 모이면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물체. 


중력은 에너지가 응축된 물질의 능력. 사방팔방에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방팔방에서 중력으로 모든 것을 당기면서 온갖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 전자기력은 거시 세계에서 중력으로 당기는 것으로 성립. 강력은 미시 세계에서 중력으로 당기는 것으로 성립. 모든 에너지는 일을 하면 소모되어 변환되는데, 약력은 입자 또한 중력을 행사하면서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것으로 성립. 아마 공간 에너지 또한 공간을 유지하는 일을 하면서 소모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에너지를 수급해 공간을 유지할 것이라 추론한다. 공간 에너지의 양은 아마 양자 현상이 일어나는 입자의 에너지 양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모든 존재는 일을 하면 에너지를 소모한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일을 하면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일을 하면서 얻는 이익이 에너지 소모보다 클 때, 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이익이란 판단은 가치 판단의 결과다. 통상 감각 기관으로 수집한 대상에 대한 육체의 반응(맛있다, 멋있다 등)으로 가치 판단을 하게 되면서 가치가 상대적이게 된다. 상대적 가치는 음식이 맛있는만큼 이익이 높다 가치 판단하는 것으로 그만큼의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한다. 절대적 가치는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가치로, 그 가치의 영향은 인간마다 다를 수 있는데, 강한 영향을 받는 인간은 판단하지 않고 가치를 추구하면서 이익과 별개로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


상대적 가치에서 육체의 반응은 기본적으로 유전자와 같은 정보를 기준으로 나타나고, 기억에 있는 관념에 영향을 받아 기준이 달라진다. 유전자 정보와 기억의 관념을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기억의 관념은 사회의 가치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정 음식이 맛있다고 유행하여 가치가 높아지면, 기본적인 유전자 정보를 거스르지 않는 이상, 실제 맛있다 느낄 수가 있다. 


에너지 성질을 통해 파악한 에너지 방출과 제어의 성립 조건은 에너지 방출이 가능할 수 있는 충분한 영양 공급과 에너지 방출과 제어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다. 유전자 정보는 개인 고유 정보기에 유전자 조작을 하기 전에는 사회에서 제어하기 어렵다. 즉 환경과 교육을 통해 에너지 방출과 제어를 성립시킬 수 있다.



에너지 방출과 제어를 위한 환경과 교육은 가치가 상대적이기에 특정한 절대적 가치를 실천하려 하기보다는 사회와 체제의 성립 조건을 고려하여 설계해야 한다. 사회가 성립하려면 사회 체계를 동작하게 할 사회 구성원의 에너지 방출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하게 된다. 흔히 약자에 대한 다양한 복지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타적으로 희생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는데,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연료 공급으로 사회를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지배 체제에서는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않더라도 사회 체계가 동작할 수 있다. 강제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약체화가 될 수 있어도 사회가 성립하긴 한다. 그러나 자유 체제에서는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사회 체계가 동작하지 않는다.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제할 수 없으니까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동작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제하면 그 순간 자유 체제가 붕괴하면서 지배 체제가 되기 때문에 이 논리에 모순은 없다 할 수 있다.


현재 에너지 방출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상당히 억제되고 있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주요 억제 명분이다. 이것들에 의해 범죄율도 가치를 제어해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억압하면서 줄이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범죄율은 다소 감소하더라도 동시에 사회 참여율도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저출산, 고자살, 은둔형 외톨이, 경제 활동 포기 등 다양하다. 충분한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생존을 제외하면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출산을 보자. 성 터부시로 성욕을 억압하면서 그에 대한 가치가 폭락하여 그런 활동을 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할 이익이 되지 못하니까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 판단에는 절대적 가치가 포함되면서 실제 이유조차 모른다. 그냥 외모, 재산, 아니면 이성이 문제라면서 탓만 할 뿐이다. 친구는 대부분 사귈 수 있는데 연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여성주의자 또한 가부장제 여성성을 여성 인권이라 말하며 여성을 억압하면 여성 정조관념으로 만들어진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성적 대상화나 성 상품화가 문제라면서 반대하는 것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에게 지배받던 여성이 남성에게 지배받던 여성성을 여성 인권이라 떠드는 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무슨 탈코르셋 말하면서 꾸밀 자유를 억압하거나 불필요하게 용어나 바꾸고, 정작 중요한 가치관은 가부장제에 머물러 있지 않는가.


과거 출산율이 높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야 당연하다. 과거에는 강제하지 않았는가? 달리 말해 강제하지 위해서 성을 터부시한 것이다. 그래야 에너지를 소모할만큼의 이익이 아니라 판단하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이 본능이라 놔두면 알아서 다 잘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러면 보편적 중매 결혼이 어떻게 성립하겠는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조선 시대 중매 결혼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그만큼 성을 지배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걸 위해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여성 정조관념을 절대적 가치로 만들어 판단하지 못하고 실행하게끔 한 것이다.


현재 젊은 세대가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을 윤리적인 인간은 그걸 보고 좋아할 수도 있다. 그건 그만큼 인간과의 성관계 가치가 폭락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저출산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인간과의 성관계 가치가 폭락하면서 연애 비율, 성관계 비율 감소와 함께 성매매 비율도 감소하는 것이다. 감소한 만큼 유사 연애 산업이나 짐승 사육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 국가 죽음의 지표를 보고 기뻐하는 윤리적인 인간은 도대체 윤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차라리 성매매 비율이라도 높은게 출산율 회생의 가능성이라도 있다. 


예를 들어 은둔형 외톨이를 보자. 에너지를 방출하는 물질에게 욕망을 억압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게 만들어 에너지 방출을 억제하면 물리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인간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욕망을 실현할 수도 없고 타인에게 피해를 줘 불행하게 할 수도 없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윤리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메이와쿠와 같은 윤리적 풍습에 의한 영향이 크다. 일본에서 창작물 원작자와 드라마 각본가가 싸웠는데, 보편적으로 드라마 각본가의 잘못되는 사건임에도 창작물 원작자가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다면서 자살했다고 한다. 메이와쿠. 폐를 끼치지 말아라. 그야말로 지극히 윤리적인 사건이다.


인간은 왜 자극을 바라는가? 그러지 않은 인간은 전부 죽었으니까 그렇다. 자극이란 평소와 다른 행동, 다른 움직임, 다른 영양분을 바라는 것. 자아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자아가 죽는다.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만 하는 기관. 같은 행동은 판단할 필요가 없게 되면서 자아가 죽는다.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면서 자아가 지속될 수 있다. 그런 자극을 바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지적 호기심이나 자극을 얻는 취미다. 그렇기에 공부를 하게 하겠다고 취미를 못하게 하면, 그런 자극을 바라는 것이 망가질 수가 있게 된다. 취미를 막다가 지적 호기심까지 막아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게 아니라면 자극을 바라는 태도를 막아서는 안된다. 


사회의 범죄를 보고 더욱 더 윤리적인 것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그건 멀쩡한 인간을 더 병신으로 만들어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먹잇감으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욕망이 적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노예 디자인 휴먼을 만들어버리니까, 학교 폭력, 신흥 종교, 사기 등의 먹잇감이 되어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지금까지 조선에게 윤리로 개인을 노예 디자인 휴먼으로 만들었으니까 북한의 대를 이은 독재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정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길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접근해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충분한 영양 공급과 윤리로 에너지 방출을 막지 않으면 많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제 그것을 제어하면 된다. 영양 공급에 있어 지금까지 공포 -> 도피 질서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인간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고정 관념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가치를 제어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넘쳐나는 에너지로 가지게 된 욕망을 실현하려면 생산 활동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구조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듯이 미성년 시기 한번 학습한 가치는 평생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성년에 해야 할 것을 미성년 시기에 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13세 이하의 미성년이 대구 혀 자르기와 같은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산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이 자리잡아 생산 활동이 이익이라 판단되어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이 부모 허락 맡고 안전한 동네 배달 아르바이트 하는 것도 분노하며 지적할 정도로 아예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다. 아동이 일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쁘다라는 윤리적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에 판단을 아예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많은 미성년이 자발적으로 일을 고르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대학이나 군대 또는 직장에서까지 부모의 간섭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에 대한 인식이 나쁘니까, 땀을 흘리며 일하는 일에 대한 멸시가 사라지질 않는 것이다. 경제 활동이 줄어드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강제할 수 없는데 자발적으로 할 정도로 가치가 높지도 않으니까 경제 활동을 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성년 시기부터 일을 긍정적으로 여기게끔 만들어야 한다. 쉬운 일을 직접 해보면서 경험을 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성적 기능이 작동하는 사춘기 시기부터 이성의 육체를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성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성의 성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이 자리잡아 이성과의 성관계가 이익이라 판단되어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성교육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학교에 민원 사례가 빗발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자녀가 연애와 결혼을 안하면 왜 안하냐고 타박한다고 한다. 아예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다. 미성년이 성에 대해 아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쁘다라는 윤리적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에 판단을 아예 못한다. 그러니까 20대 초반 연애율이 20%대이고, 출산율이 0.6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강제할 수 없는데 자발적으로 할 정도로 가치가 높지 않으니까 연애 활동을 안하게 되면서 줄어드는 것이다. 그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성년 시기 성기능이 작동하면 성을 긍정적으로 여기게끔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성기능이 작동하는 10~14세 사이에 다 성경험을 해봐야지 성을 부정적으로 여기는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여기면서 누구나 연애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단 말이다.


일이든 성이든 개인을 지배하던 질서를 성립시킨 가치를 절대적이라며 강제할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리 때문에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다른 시장으로 이해하면 좋다. 특정 시장에서 취급하는 가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는데 상거래가 가능하겠는가? 시장 참여도 줄어서 시장이 죽게 된다. 실제로 그렇지 않는가. 시장 가치가 낮으니까 시장에 참여하려면 고점이라는 조건이 필요하게 되고, 그것이 아니면 참여를 하지 않게 된다. 괜히 대기업, 미형의 이성만 찾는게 아니란 말이다. 그만큼 가치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미성년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지배다. 결정권을 뺏는게 인간의 권리라고 여기는 것은 지극히 윤리적이다. 아예 그게 어떤 결정인지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호라 자칭할거면 연상에게 존댓말을 강제하는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부터 벗어나길 바란다. 그렇게 미성년 생각하면 말부터 놓게 해보란 말이다. 질서 자체가 지배하는 질서인데 무슨 보호 타령을 하는가. 그렇게 지배 질서를 성립시킨 윤리 교육을 하는 것은 지배 질서에 맞는 노예 디자인 휴먼으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자유 체제에서는 인간을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 교육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가 사라져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없어진다면 분명 합리적인 교육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 방출을 억제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범죄율이 증가할 수 있다. 일에 대한 가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학습을 포기하고 일만 하면서 고부가 가치 생산이 줄어들 수 있다. 성에 대한 가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상대의 허락을 받지 않는 성관계, 즉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에너지 방출을 억제하면 지금 한국 사회처럼 사회가 죽어버린다. 그러므로 관련 메커니즘을 전부 가르쳐야 한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쾌락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체제에 맞게끔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범죄는 빈곤하거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애초에 성 억압을 안하면 일부를 제외하면 성범죄가 일어날 이유가 없다. 물리적으로 만족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배부른 인간이 더한 식탐을 바라는 것은 통상 망가졌을 때 말고는 없듯이, 욕구가 충족되면 망가지지 않는 이상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 충분한 영양 공급과 욕구 충족을 물리적으로 이해하고 나서 체제에 맞게끔 합리적인 절차로 할 수 있도록 하면 웬만하면 범죄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게 되도록 인간이란 생물의 메커니즘을 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범죄는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인간을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해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교화는 지극히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간이란 생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메커니즘에 따라 범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 대체로 인간, 정확히 자아는 뇌의 발상에 지배를 받는다. 범죄를 되풀이하는 것은 범죄에 관한 발상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즉 그 발상이 되지 않도록 만들면 재범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경험을 하면 그 경험이 발상에 떠올라 그 경험을 겪기 위한 행동을 한다. 불행한 경험이 떠오르면 그 경험이 발상에 떠올라 그 경험을 겪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한다. 발상의 지배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행복한 발상과 불행한 발상에 의한 행동은 메커니즘이 동일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고문이다. 고통을 줘서 범죄를 저지르려 할 때 고통이 발상되도록 한다. 그러면 그 고통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 판단하지도 못해서는 안된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다른 방식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경험을 줘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쓸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이미 가치관이 자리잡은 상태에서는 지극히 어려운 방식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과거를 지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이름을 지우고 아는 인간을 배제한다. 그러면서 어린 시기에 자리잡은 가치관 교육부터 다시 한다.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하면 행복한 발상이 나오도록 경험을 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그런 식의 발상이 나오게 되면 교화할 수 있다. 교화라는 것을 물질의 성질 변화와 같이 접근해야지, 윤리적으로 접근하면 아예 판단을 못하면서 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현재 윤리에 의해 촉법 소년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법원 행정처와 국회 입법 조사처에서 촉법 소년 관련 법률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은 지극히 윤리적이라 할 수 있다. 지배 질서에서 어리석은 미성년은 일방적 교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 확산과 가치 개념을 이해하면 그런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이미 정보가 확산되어 촉법 소년 시기 범죄는 크게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촉법 소년이 알고 있다. 그 상태에서 촉법 소년이란 이유로 죄가 경감되거나 면죄되면 그것을 면죄부로 이해하게 된다. 면죄부가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성장한 인간은 면죄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절대적 가치에 의해 판단하지 못하면서 촉법 소년 법을 개정하지 않은 결과, 면죄부 교육을 해버리게 되었다. 인식을 바꾸는데 겉만 바꿔도 된다. 형사 처벌을 하되 그 처벌 장소를 종전과 같거나 비슷하게만 해도 면죄부가 존재하다는 인식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것을 고려하지도 않은 것은 윤리가 절대적 가치여서 가치 판단 자체를 못하기 때문이다.






2) 경제 생태계


[생태계: 1. 어느 환경 안에서 사는 생물군과 그 생물들을 제어하는 제반 요인을 포함한 복합 체계.]


충분한 에너지가 사회에 이롭도록 방출이 되면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경제 체계가 작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한다. 경제 생태계가 유지만 되면 알아서 생활하고 진화하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산업의 성장이나 노동자 권리 등이 아닌 산업이 성장하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있다. 불필요한 시장 간섭은 되려 시장을 파괴할 수 있다. 현재 윤리로 시장에 간섭한 결과 파괴된 시장이 지나치게 많은 상태다.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의 위험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 생태계 구축이 잘 되면 고부가 가치도 많이 쏟아질 수 있다. 환경이 엉망이면 인재가 만 명 있어도 한 명 성공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환경이 뛰어나면 인재가 백 명 있어도 절반 이상은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인구수 차이가 나도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다. 인구수가 십 억이 넘어가는 중국과 인도. 선진국을 유지하면서 그런 국가와 경쟁하려면 경제 체계를 잘 갖춰야만 한다. 단순히 윤리만 강제한다고 모든게 잘 되는게 아니다. 그건 절대적 가치에 대한 복종에 불과하다.


경제 생태계의 성립 조건은 경제 생태계 참여자인 인간, 경제 생태계에서 생산을 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할 교육, 경제 생태계에서 거래가 될 수 있는 환경인 시장, 시장 경쟁에서 탈락한 인간의 재활인 복지다. 생태계에 있는 생물인 인간이 거래하는 능력을 학습하여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먹고 먹히는 과정을 통해 적자생존을 구축하고 경쟁에서 탈락한 인간을 재활하여 새로운 생태계 참여자와 같이 다시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경제 생태계 중 인간은 충분한 에너지 방출이 가능하게 하고, 생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 하여 자발적으로 생산을 하게 해야 한다. 유교의 영향으로 학교의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보는 것이 절대적 가치가 되어 판단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공부만 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러면 생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하질 못하여 자발적인 생산을 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미성년 때 공부만 시켜놓고 성년 때 왜 일을 안하냐며 타박하는게 맞는 것 같은가? 그건 그냥 윤리로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 생태계 중 교육은 가치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치 개념을 이해하고 스스로 생산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공부하게 하겠다면서 교육 외의 가치에 대한 욕망을 억압하는데, 그러면 그에 관한 호기심도 억압되어 하고 싶은 것이 사라질 수 있다. 단순히 공부만 하게 하면 다 잘될거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윤리적이다. 판단을 안한다는 얘기다. 학생의 취미까지 억압하는 것은 그저 정의롭게 학생을 망가트리는 것에 불과하다.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가치의 시장성까지 고려하여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자발적인 가치 생산이 이뤄질 수 있다. 그렇다고 아예 방치하라는 것은 아니다. 가치 개념을 이해하게 해야 한다. 이걸 교육의 비전문가인 학부모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공교육 단계에서 가치 교육을 행해야 한다. 



경제 생태계  중 시장은 개인의 의사로 가치를 거래하는 제도로 시장의 존재 자체가 자유주의 이념의 실현이다. 그런데 이 시장이 윤리에 의해 상당히 많이 망가졌다. 시장의 성립 조건은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자유 거래, 공정 경쟁, 생산 유연, 생산 효율, 가치 제어. 


하나, 자유 거래. 모두가 대등한 시장 참여자로서 자유로운 질서에서 거래가 가능 해야 한다. 그러나 윤리에 의해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지배 질서가 있기 때문에 보통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데, 그것은 윤리가 지배 질서기 때문에 윤리를 버려야 가능할 것이다. 


둘, 공정 경쟁.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을 하여 소비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효율적인 체계로 상품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을 하는 이타적인 담합과 독과점 등으로 그것이 성립되지 못할 때가 있다. 경쟁이 되면 시장 자유 또는 민영화, 경쟁이 안되면 시장 간섭 또는 국영화가 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셋, 생산 유연. 창업과 취업 또한 시장의 활동 중 하나로 보고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유연한 거래가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를 위해서라며 해고를 어렵게 하자 노동 유연성이 사라져 노동 시장이 죽어버리고 노동자를 위해서라며 좀비 기업을 살리자 세금이 낭비되고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면서 경제가 정체되면서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윤리를 실천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게 아니다. 


넷, 생산 효율. 생산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자원을 최대한 줄여야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영주와 농노의 관계에서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노사 관계와 윤리적인 이유로 해고를 어렵게 하고 생산 관련 처벌을 강화하자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고 이익을 최대하게 하기 위한 불필요한 중간 과정인 하청과 파견 등이 지나치게 많으면서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되팔이도 생산하지도 않고 유통 과정에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중간 과정에서 이익을 빼먹는 불필요한 중간 과정에 해당한다.


다섯, 가치 제어.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새로운 가치가 대두될 수 있도록 가치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작정 시장을 보호하겠다고 외부 가치의 진입을 방해하거나, 새로운 가치가 나와도 그것을 부당하게 빼앗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 그것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윤리로 가치 제어에 실패하여 망가진 시장이 지나치게 많다. 한국은 부동산 투기가 많기 때문에 주택 가치가 높다는 고정 관념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장소와 차익이지 주택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택 마감이 그렇게 엉망이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되팔아서 차익을 챙기는게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경제 생태계 중 복지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사회의 성립 조건 중 하나일뿐이듯 경쟁 탈락자에 대한 재활 또한 체제의 성립 조건 중 하나일 뿐으로 거기에 윤리가 들어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리적인 관점에서 단순히 필요하여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윤리적으로 접근해 강제로 선후를 맞추는 것과 같은 할당제와 가산점을 넣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지배에 불과하다. 민주적이지 못하다. 자유롭다면 권력 외의 힘을 강제로 억압할 근거가 없다.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을 강제로 패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선후의 차이는 선후를 강제로 맞출 것이 아니라, 앞서 나갈 수 있는 힘을 갖추게 해야 한다. 스스로 앞서 나가게 해야지 강제로 선후를 맞춰서는 안 된다. 체제 성립 조건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연령, 성별, 혈연, 학연, 지역 등 다 배제하고 역할에 맞는 능력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방적 이익은 성립시켜서는 안 된다. 기업은 저렴하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하실 바라고 노동자는 비싸게 고용되고 어렵게 해고되길 바라는데, 이러한 것을 누군가 이익을 위해 정할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통상 기업이 유리한 위치에 있는데, 기업이나 노동자는 경제 생태계를 유지해야 경제 전체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애초에 영주가 농노 쓰던 시대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없어 정규직 비정규직 같이 구분되는 바람에 정규직은 안정과 고수익, 비정규직은 불안정과 저수익이라는 리턴 리스크가 맞지 않는 형태가 자리잡으면서 마치 신분과도 같은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괜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큰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합리는 경제 전체 생산량을 악화시킨다.


정상적인 경제 생태계에서는 파업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한번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시장 원리와 무관한 방식으로 이익을 얻는 파업을 하게 되면 파업이 연쇄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파업을 할 수 없는 이들은 더욱 큰 손해를 본다. 파업을 할 수 있는 이들은 파업하면서 사회 자원을 더 많이 가져가지만 파업할 수 없는 이들은 적은 사회 자원이 더 적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약자를 위해서라며 무작정 파업을 허용하면 파업할 수도 없는 약자는 더 짓밟힌다. 사회의 한정된 자원에서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더 큰 자원을 받아가면 당연히 약자는 더 큰 손해를 보게끔 된다. 그 결과가 귀족 노조와 비정규직 관계. 그러면서 경제 생태계가 파괴되고, 그러면서 경제 체계가 무너진다. 물론 정상적인 경제 생태계에 한정한다. 현재는 아직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개인은 시장 관리와 시장 참여를 둘 다 한다. 권력이 평등한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 그렇기에 위아래는 없다. 그러나 권력만 평등한 체제기에 선후는 있다. 자유주의. 시장 참여자와 관리자. 관리자가 위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는데, 올림픽 경기장 관리자와 올림픽 선수 사이에 상하관계는 없듯이 그런 것 없어도 가능하다. 모든 개인은 주권자이자 권한이 다른 통치자이므로 참여자가 관리도 해야 하고 관리자가 참여도 해야 한다. 역할주의. 역할과 역할에 따른 권한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권력은 같아야 한다.


경제는 가치의 거래.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보다 우수한 가치를 생산할수록 큰 이익을 얻는다. 그것을 위한 것이 경쟁. 통상 공정할수록 우수한 가치를 생산하는 경쟁이 된다. 보다 우수한 가치가 생산될수록 경제가 성장한다 할 수 있다. 당장 수치적인 상황은 단기간 수요 공급에 따라 달라지지만, 우수한 가치가 생산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성장한다. 그렇기에 경제는 가치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우수한가? 시장에서는 수요. 그렇지만 시간대별 수요가 다를 수는 있다. 가치의 우수함을 시장으로 규정한 것은 시장 밖에서는 무력을 통해 우수하지 않은 가치를 강제할 수 있기 때문.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수요가 가치의 우수성을 상징한다. 수요는 단기 장기 환경 등의 차이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수요가 낮다 해서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또한 거래되지 않는 성질의 가치는 시장에서 수요가 없다 해도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또한 화폐로 거래되지 않는 성질의 가치는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해서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일반 -> 일반적인 가치.

시기 -> 노동, 보험, 주식 등

환경 -> 재해, 전쟁, 사이클 등

비화폐 -> 연애 등 인간 관계 등

비거래 -> 인신, 사상, 언어, 천연 기념물 등


이런 조건을 통틀어 우수한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중요. 통상 경제라 하면 일반, 시기, 환경까지는 파악하는데 비화폐와 비거래 가치는 제대로 알질 못하고 있다. 시장 원리란 수요와 공급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 개인의 의사인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 즉, 자유로운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대부분 시장 원리로 해석이 가능.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가치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이상 그것을 알아야 보다 우수한 가치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4. 가치 개념


[가치: 3.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대상: 1. 어떤 일의 상대 또는 목표나 목적이 되는 것.]

[목표: 1.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가치는 대상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말한다. 가치의 뜻에는 대상 또는 목표라 했는데 사실상 이 둘이 서로를 지칭하므로 하나의 단어만 써도 무방하다. 아직 사전의 순도가 낮아 순도 높게끔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치 판단은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에 대한 기준은 개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하나의 대상에 따른 가치 판단 또한 다양하게 된다. 사과의 맛의 가치는 어떠한가? 달콤하고 맛있다. 사과의 멋의 가치는 어떠한가? 색이 밝고 모양이 깨끗하여 아름답다. 이렇듯 가치 앞에 기준이 되는 개념이 있게 된다.


가치 판단은 다양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네 개로 나눌 수 있다. 이익, 손해, 중립, 보류다. 가치 판단으로 이익이 되면 가치가 있다거나 높다고 판단한다. 가치 판단으로 손해가 되면 가치가 없다거나 낮다고 판단한다. 가치 판단으로 이익도 손해도 아니라면 특별한 가치는 없다고 판단한다.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면 가치를 모른다고 판단한다.


앞에 기준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치가 있다, 높다, 없다, 낮다 등을 붙이는데, 이것은 시장으로 결정된 가격을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거나, 다양한 가치 기준을 종합하여 추상적으로 판단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사과의 가치가 높다고 말한다면 시장의 가격이 높다거나 맛+냄새+생김새 등을 종합해 추상적으로 이익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윤리에 의해 특정한 가치는 판단을 하지 못하면서 가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여 시장도 망가지고 경제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는 상태다. 가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정상적인 경제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양한 가치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정가 가치, 당위 가치, 범주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1) 정가 가치


[C. 정가 가치]


[정가: 1. 상품에 일정한 값을 매김. 또는 그 값]


정가 가치는 값이 매겨져 가치 판단이 끝난 가치를 말한다. 맛의 가치는 아직 가치 판단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면, 정가 가치는 n 화폐라고 가치 판단이 끝난 상태다. 시장에서 변동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가치 판단 결과인 정가가 변하지 않게 된다. 정부에서 값을 매기거나 시장에서 값이 매겨진다. 값이 매겨진 상품은 보통 화폐로 거래되기 때문에 물물 거래라는 인식이 적다. 화폐는 국가에서 지정한 고정된 가치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 경제에서 화폐는 상품이다. 화폐가 상품이란 인식이 있어야 주식 시장이나 외환 시장 거래에 거부감이 적어 금융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거래는 물물 거래라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가 가치는 통상 상대적 가치에 해당한다. 상품에 일정한 값을 매기려면 가치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시장 참여자가 같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절대적 가치가 거래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래된 성물이 있다고 하자. A에게는 감히 가치를 판단하여 가격을 결정할 수 없지만, B에게는 단순한 고고학적 유물이어서 가치를 판단하고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럴 때에 B가 가격을 매겨 시장에 내놓은 것을 A가 구매할 수는 있다. 그런 것에 시세가 결정되어 A도 그것을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절대적 가치 또한 판단하지 않았어도 타인이 정한 가치 판단에 의해 판단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정가 가치의 가치 판단은 이미 가치 판단이 된 것에 대해서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 라면이란 상품이 1000원에 팔린다고 해보자. 그러면 구매자의 라면에 대한 종합 가치와 시장의 정가 가치가 더해져 싸거나 비싸다는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 종합 가치는 해당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면 라면의 범주 가치와 개별 가치와 세평이 더해지고, 해당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면 라면의 범주 가치와 세평이 더해져 나타난다. 


정가 가치의 인식은 한번 정해지면 가치에 대한 판단을 바꾸기가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스턴트 라면이 일반적으로 천원 이내로 팔릴 때, 그걸 이천원이나 삼천원으로 가격을 올려 팔 경우 맛의 가치와 무관하게 비싸다는 가치 판단이 나와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 가격을 결정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달리 말해 정가가 붙어본 적이 없는 대상일 경우에는 그런 정가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 라면과 유사한 제품인데, 거기에 다른 것을 섞어서 팔면 정가 가치가 붙어본 적이 없어 라면보다 비싸더라도 팔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에서 만들어진 면요리, 같은 면요리인데 그 국가 언어로 이름을 달아서 팔면 비싸게 팔아도 팔릴 수가 있다. 


정가 가치는 가치 판단이 끝나 있어 투자나 투기로 차익을 얻는데 쓰인다. 숫자로 가치 판단을 해놓은 상태기 때문에 거래가 수월하고 그에 따른 차익 실현 판단도 수월하여 접근성이 뛰어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가 가치가 가치 판단이 끝났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변동성이 작용하여 같은 숫자라 하더라도 같은 가치가 아닐 수 있다. 물가가 그대로일때의 1000원과 물가가 10% 인상되었을 때의 1000원은 가치가 다르다. 그럼에도 그것을 같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것을 이용한 차익을 실현하는 일도 많다.


정가 가치는 가치 판단이 끝나 있어 그것을 기준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시장 차이로 얻는 차익이 그렇다. A 국가의 시장에서 C 상품의 가치 판단은 100인데, B 국가의 시장에서 C 상품의 가치 판단은 150일 경우, A 국가의 시장에서 C 상품을 사서 B 국가의 시장에 팔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각 시장에서 이미 가치 판단이 끝나있기 때문에 무역 거래가 수월한 것이다. 시장 공급, 창고 정리, 구매 유도 등을 위한 세일도 그렇다. 100만원에 팔던 것을 50만원에 팔면 이익을 얻는 소비가 될 수 있다.


정가 가치는 가치 판단이 끝나 있어 혼란을 통한 차익도 가능하다. 세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원가 100만원을 200만으로 올린 뒤 50% 할인해서 100만에 판다는 식으로 할 수 있다. 또는 경품을 줄 때 100만원으로 홍보하고 100만원 어치의 상품을 제공한다고 하거나, 중고 거래를 할 때 100만원에 사겠다고 해놓고 100만원 어치의 상품을 준다고 하는 일이 있다. 100만원의 화폐와 100만원 어치의 상품의 가치는 다를 수 있음에도 정가가 붙어있다는 것으로 같은 것처럼 취급하는 일이 있다. 


정가 가치는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상품 공급보다 수요가 낮으면 가격이 낮아질 수 있는데, 그 때 공급자는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땅에 묻는 것과 같이 상품을 일부러 파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상당한 자원 낭비에 해당한다.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시장 가격을 유지한다와 자원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조건을 성립시키려면, 해외의 다른 시장에 팔거나 성질을 바꿔 재생산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가치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판단에 의한 탐구가 가능해지면서 해당 가치에 대해서는 지식의 체계를 갖춰 학문의 레벨이 높을 수가 있다. 현대 시장 경제가 우수한 이유 중 하나는 시장의 가격 자체가 판단이 가능해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판단이 되면 레벨이 높고 판단이 안되면 레벨이 낮다. 당연한 논리다. 정가 가치는 상당히 레벨이 높기 때문에 윤리로 특정 상품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윤리로 정부가 가격에 간섭하거나, 윤리로 정가를 없애거나 하는 등과 같이 윤리의 간섭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큰 문제가 없다. 






2) 당위 가치


[C. 당위 가치]


[당위: 1. 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

[규범: 1.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할 가치 판단의 기준.]


마땅히 해야만 하는 가치에 대한 용어를 규범 가치가 아닌 당위 가치라 규정한 것은 판단을 하지 않는 절대적 가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당위에 규범이 포함될 수는 있다. 마땅히 해야만 하는 가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에 비해 우선되게 된다. 


당위 가치는 크게 세 개로 분류할 수 있다. 정신에 작용하는 당위 가치 (윤리, 계약, 관계, 취미, 계획, 루틴, 미신, 기념일, 불문율, 징크스, 강박증 등), 육체에 작용하는 당위 가치 (음식, 수면, 배설, 중독, 결핍 등), 한정으로 작용하는 당위 가치 (세일, 구독, 한정판, 접속 보상 등). 이는 판단이 되면 상대적 가치, 판단이 되지 못하면 절대적 가치로 분류할 수도 있다.


당위 가치는 마땅히 해야만 하기 때문에 강제력이 발생할 수 있으면서 권력과 관련되는 가치가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대부분 당위 가치로 인간을 지배해왔다. 너는 이것을 해야만 한다. 거기서 절대적 가치가 더해지면 윤리다. 너는 이것을 절대적으로 해야만 한다. 그것의 명분은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지배해서 차례가 생겨 질서가 잡히면 끝나기 때문에 그 외 복잡한 지배의 정당화 말고는 없다. A에게 혈통 정통성이 있으므로 지배의 정당성이 있다. A는 경전 암기 능력이 뛰어나므로 지배의 정당성이 있다. 유교권은 인간의 지배, 기독교권은 신의 지배로 차이가 있다. 오늘날 인권이나 환경 운동도 권력과 관련이 있게 된다. 특정한 것은 인권이나 환경에 해당하므로 해야만 한다고 강제한다.


국가에 속하는 이상 해야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법이다. 법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정한 강제력이 있는 사회 규범으로 세부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법에 상대적 가치만 있다면 전부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판단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절대적 가치는 가치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옳고 그르다는 기준은 알지만 어디까지 옳고 그른 것인지는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절대적 가치는 가치를 상대적으로 보고 판단한 인간이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군가가 살인, 강간, 절도 등을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 형량을 정해둔 것을 본받아 비슷한 형량을 책정하면서 쓰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특정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인간이 개입하면 이러한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살인보다 강간이 더 큰 형량을 받는다거나 같이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규범 가치는 윤리의 영향으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대중의 일부는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강한 형량을 외치기도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있어 당위 가치는 매우 영향이 크다. 단순히 규범만이 아니라 생활 전체가 당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일 활동하기 위해 잠을 자둬야만 한다. 오늘 활동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약속한 활동 장소에 도착해야만 한다. 살아남기 위해 밥을 먹고 똥을 싸야만 한다. 사실상 인간 생활의 기준이 되는 가치라 할 수 있다. 당위 가치가 적을수록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할 수도 있다. 해야만 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가치는 판단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상의 종합 가치가 높아야 당위 가치가 성립된다. 계약, 관계에서 정해진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계획, 스스로 정한 일의 절차, 방법 등을 해야만 한다. 루틴, 스포츠 선수가 해야만 하는 동작과 절차를 통해 경기를 뛰기 위한 준비를 한다. 기념일, 2월 14일은 초콜릿을 선물해야만 하고, 3월 3일은 삼겹살을 먹어야만 하고, 11월 11일은 빼빼로를 교환해야만 한다. 한정, 기간 내에 한정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을 구매해야만 한다. 세일, 기간 내에 한정적으로 저렴하게 판매되는 상품을 구매해야만 한다.


절대적 가치는 판단이 불가능하므로 절대적 가치의 농도, 추구하려는 태도에 따라 반드시 하려고 하게 된다. 판단하지 못하는데 절대적으로 해야만 한다. 이 개념의 조합은 굉장히 위험하게 된다. 이교도는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참살해야만 한다. 마녀는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화형을 해야만 한다. 히잡을 쓰지 않는 미성년 여성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명예 살해를 해야만 한다. 반말을 쓰는 연하는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살해를 해야만 한다. 성적인 것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항의를 해야만 한다. 창작물에 흑인, 여성, 게이가 나오지 않는 것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평가를 낮춰야만 한다. 가난한 인간은 착하므로 판단하지 않고 옹호하고 부유한 인간은 나쁘므로 판단하지 않고 비난해야만 한다.


이런 절대적 가치는 윤리뿐만 아니라 신흥 종교 세뇌, 가스라이팅 등이 있다. 신흥 종교의 세뇌나 가스라이팅을 그토록 비판해도 이미 정신에 노예의 낙인이 찍혀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윤리와 본질이 거의 같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질 못한다. 신흥 종교에 빠진 인간은 그 가치에 판단하지 못하면서 전재산을 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면서 가정 파탄이 일어난다. 애초에 노예의 낙인이 찍혀 있어 판단하지 못하는 가치가 있었기에 이런 이용이 성립되는 것이다. 신흥 종교에 의해 가정 파탄난 인간이 자국의 총리를 암살했는데, 실제 가정의 파탄을 성립시킨 것은 윤리다. 


유교권은 권력이 윤리기 때문에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돈에 관해서 판단하지 않고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판단하지 않고 무작정 투자하다 돈을 날려먹는 일이 수두룩하다. 입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전적인 권력 획득 방법인 입시는 판단하지 않고 돈을 쓰면서 입시 시장 과열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연령과 같이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에 대해 조금도 이상하다 판단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취급하는 상품에 당위 가치를 느끼는 인간이 많으면 상업적인 성공은 대체로 보장된다 하 할 수 있다. 많은 인간이 해야만 한다 생각하며 구매하는데 실패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절대적이게 되면 마약과 다를바 없으므로 상대적임을 가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마약은 자기 파괴와 전염성 외에도 판단하지 않고 먹으려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기본적인 종합 가치를 높인 다음 정신, 육체, 한정을 잘 조합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야기와 같은 부가 가치가 기본적인 품질과 별개로 해야만 하게끔 느끼게 할 수 있다. 낙서로도 느껴지는 현대 미술이나 실체가 없는 디지털 상품이 그런 이야기 활용을 통한 세일즈를 잘 하고 있다.


현재 당위 가치는 절대적 가치가 인류를 지배하고 있어 특정 가치의 경우 상업적인 활용이 체제에 적합하지 않게 될 수가 있게 된다. 지배를 이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지배에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며 제 목에 목줄을 다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자유주의자 입장에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단 그 현상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



대체로 당위 가치가 어려운게 절대적 가치 때문이다. 누구나 본인이 우수하다 생각할 수 있는데, 특히나 엘리트들은 본인들이 우수하다 여길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 가치는 매우 우수한 반면 절대적 가치는 우수하지 못한데, 그것을 모른다. 우수한 내가 실패할 리가 없어. 하면서 계속 실패한다. 원인도 모른다. 단순히 강박적으로 행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상대적 가치는 우수하니까 다른 이들도 그 실패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는 무능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도 지식의 체계를 갖춰 학문이라고는 하는데, 중간중간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에 의해 모순되는 것이 많아 사실상 레벨이 낮다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 현상은 신의 만든 것. 이렇게 판단하지 않고 결정해버렸다 치자. 그러면 그 부분은 아예 발전이 안되는 것이다. 더 이상 탐구도 안하니까. 그러면서 그 부분만 레벨이 오르지 않고 그것과 연동된 지식도 레벨이 오를 수가 없다.






3) 범주 가치


[C. 범주 가치.]


[범주: 1.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

[시장: 2. 상품으로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영역.]


범주 가치는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말한다. 보통 특정 범주 시장의 가치나 특정 브랜드 가치에 해당한다. 다양한 가치 중에서 시장의 기준인 정가와 인류를 지배하는 당위 다음에 범주를 꼽은 것은 이 개념에 대한 오해로 시장이 망가진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고정 관념으로 보면 많이 팔리면 가치가 높다고 여길 것이다. A 상품이 많이 팔렸으니 A 상품과 A 상품 시장의 가치가 높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개별 가치과 범주 가치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개별 가치는 그 가치가 많이 팔리기만 해도 가치가 높지만, 범주 가치는 고점만 팔리면 가치가 낮다.


예를 들어 축구를 보자. 한국에서 축구는 인기가 많은 스포츠로 보인다. 국가 대표의 경기를 하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시청한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축구 범주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에서 축구는 어디까지나 국가 대표 경기 가치가 높은 것이지 축구 경기 자체의 가치가 높은 게 아니다. 만약 축구 범주 가치가 높았다면 저점에 속하는 국내 축구가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축구 국가 대표 경기의 가치가 높은 것이지 축구 자체의 가치가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스포츠인 야구를 통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잠깐 검색해본 결과 수년 전 축구 K리그 시청률은 0.11%, 야구 KBO 리그 시청률은 0.88%로 야구의 KBO 리그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국가 대표 경기 시청률은 축구가 더 많이 보거나 비등한 상태다. 축구와 야구의 국가 대표 경기의 가치는 축구가 높거나 비슷하고, 스포츠로서 범주 가치는 야구가 명백하게 높은 상태다. 그럼에도 축구 국가 대표 경기 관심이 높다는 이유로 축구 범주 가치가 높다고 착각되게 될 수 있다. 진짜 축구 범주 가치가 높은 것은 영국이다. 영국은 5부 리그 축구 경기도 즐겁게 시청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야구 범주 가치가 높은 곳은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고등학교 야구 경기조차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축구 국가 대표 경기가 관심이 높은 것은 다른 측면으로 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포츠기 때문에 국가 대표 경기가 인기가 높은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브랜드 가치를 보자. 현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중국제가 세계에서 매우 잘팔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 중국제의 범주 가치가 높다고 여길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중국제가 잘팔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점에 해당한다. 고점이라고 해서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고점, 고가치는 품질에 정가가 더해지기 때문에 가격 대비 품질이 높은 것을 말한다. 중국제가 잘팔린다고 해서 중국 브랜드 가치가 높다 여기는 인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택갈이를 하는 것이다. 같은 중국산 제품이라도 국적을 바꾸기만 해도 더 잘팔린다. 중국 브랜드, 중국제 범주 가치가 낮은 상태임에도 고점에 해당하는 제품들은 잘팔리기 때문에 오해를 하게 된다. 아, 상품이 잘팔리니까 중국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나. 그러면서 브랜드 관리를 보다 안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이렇게 단순히 많이 팔리면 가치가 높다는 고정 관념에 의해 가치가 낮거나 망가진 것을 방치한 시장이 많다. 학문, 노동, 연애, 문학, 주택, 우유, 영화 등 저점이 안팔리는 시장은 가치가 낮거나 망가진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이 중에서 충분히 잘팔리는데 망가졌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시장이 있을 것이다. 학문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학문은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고 입시에 투자되는 비용이 높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고점만 소비되는 시장은 망가진 시장이라는 것을 떠올려보자. 현재 학문은 의료라는 고점에 엄청나게 몰리고 있다. 그 외의 학문도 고점 위주로 몰리고 있다. 의료가 과한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학문의 범주 가치가 지나치게 낮으니까 고점에만 몰리는 것이다. 학문 범주 가치를 올릴려면 충분히 지적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학문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어야 했는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과열 현상만 보고 학문 가치가 높다 판단해버리면서 학문 가치 관리를 방치해버렸다. 학문 범주 가치가 낮아진 것은 권력이 윤리린 유교의 영향이다. 권력을 얻을 수 있는 학문 외에는 전부 배제해버려서 다른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권력 범주 가치는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지만, 원래 권력 자체가 타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어 높은 가치다. 권력의 범주 가치가 어느 나라나 다 높지만, 유교권은 윤리에 속하여 판단하지 못하면서 제한이 없는 집착까지 되게 된다. 그야말로 최저점인 작은 권력까지도 소비되어 이용된다. 수개월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위계질서가 성립되고, 그 위계질서를 이용하고, 그 위계질서를 부정하지 못한다.


현재 대부분의 시장이 윤리에 의해 망가졌다고 보면 된다. 시장을 성립시키는데 필요한 A가 윤리로 부정되고 윤리에 의해 시장을 훼손하는 가치 B가 우선되면 당연히 시장이 망가지게 된다. 학문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지적 호기심이 권력에 필요한 학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윤리적인 판단으로 배제되고 입시에 필요한 지식만 우선되면서 학문 시장이 망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입시 과열 현상을 보고 학문 가치가 높다 오해해 버리면서 망가진 시장을 방치하게 되었다. 물론, 인식했어도 윤리가 절대적 가치라 원인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입시 과열 현상까지는 알 수 있어도 왜 입시 과열이 되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외 노동, 연애, 문학, 주택, 영화 등 전부 비슷하게 시장이 망가졌다. 윤리가 당장 시장을 망가트리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줘서 망가트리는 경우가 많다. 그야 본래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시장이야 굳이 간섭하지 않아도 망가질 수 있는데, 노동이나 연애 등은 가치가 높아야 하는 시장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망가진 것은 어떤 요인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절대적이기에 판단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인 윤리다. 범주 가치에 관한 논리는 지극히 쉽기 때문에 이 논리로 보면 현재 시장이 얼마나 많이 망가진 상태인지 알 것이다. 대기업에 몰리는 노동, 미형인 외형과 부유해야 소비되는 연애, 상 탄 작품만 보는 문학, 차익 수단에 불과한 주택, 유명한 작품만 보는 영화 등. 그냥 고점만 팔리고 있다.


부동산은 한국에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 가치기 때문에 주택 가치가 낮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주택 가치가 높았으면 저점에 속하는 수도권 외의 지역 주택이 많이 팔렸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주택보다 위치가 더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주택 가치가 높았다면 현재 주택 마감 처리가 그렇게 엉망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다시 팔 때 해가 될까봐 쉬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다들 대충 살아도 된다, 비싸게 되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다. 주택보다 투기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이다. 주택 자체는 범주 가치가 매우 낮다. 그토록 많이 거래되어도 주택 범주 가치가 낮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진짜 주택 가치가 높으면 직접 디자인한 집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이 거래되니까 가치가 높은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주택 가치를 관리하는 것을 방치해버렸다.



현재 한국은 기록적인 저출산인 0.6으로 향해가는 국가적인 자살을 하고 있다. 이것이 윤리에 의함에도 윤리가 판단하지 못하는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 원인조차 모르면서 문제의 원인인 윤리를 더욱 강조하면서 저출산을 악화시키고 있다. 직접 원인을 알기 어렵다면 시장을 통해 원인을 추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것을 이해하면 다른 범주 가치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이 본능이기 때문에 놔둬도 알아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할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므로 우선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 시대에 중매 결혼이 보편적이었던 까닭은 권력이 윤리인 유교 사회에서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성립시키기 위해 개인의 성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결혼이나 출산은 사회 구성원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의 큰 변화에 속하게 된다. 그 변화를 통제하지 못하면 지배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의 열쇠인 성을 지배해야만 지배 질서가 성립되게 된다. 그렇기에 지배 체제와 지배 질서는 필연적으로 성을 지배하게끔 되어 있다. 대부분 사회에서 성을 터부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배에 필수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성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여성 정조관념 등이 있다. 단순히 성이 본능이기 때문에 억압해도 알아서 했다면 중매 결혼이 보편적일 수가 없다. 그렇게 성을 지배하던 수단인 윤리를 강제하면서 똑같이 성을 지배해버리는 바람에 중매 결혼이 아니면 결혼할 수 없는 이들이 많게 되었다.


여성주의의 여성성에 관련된 사상은 가부장제 시대의 사상 또는 철학들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상들은 절대적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여 그 모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여성을 위해서라면서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게 얼마나 모순되는 것인지를 모른다. 여성 성적 대상화 및 여성 성적 상품화 반대는 가부장제에서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여성에게 주입한 여성 정조관념으로 만들어진 가치관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지를 못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가부장제에서 만들어진 여성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수성임을 알지를 못한다. 그런 주장이 기독교 문화권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여성성 억압은 가부장제의 성립 조건으로 다른 가부장제 사회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지를 못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이 가부장제 가치관과 다를바가 없고 꾸밈을 막는 것이 히잡을 씌우는 것과 다름이 없음에도 윤리는 절대적 가치로 판단할 수 없기에 그걸 알지를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성 관련 주장을 통해 여성성을 권력을 얻는 도구로 삼아 권력을 얻고 있음에도 그 행동이 윤리에 의한 것임을 알지를 못한다. 지배 질서를 성립시킨 개념인 윤리, 노예 디자인 교육을 받고 생긴 가치관으로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말하니 여성을 억압하던 가부장제 여성성을 여성 인권이라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성을 지배하던 윤리의 교육과 여성성을 권력 도구화하여 여성성에 대한 난이도와 비용을 높이는 것으로 연애 시장에 관한 범주 가치가 아예 폭락해버려서 고점만 소비되게 되었다. 정조 관념, 정숙, 성적 욕망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을 마치 반드시 옳다는 듯이 말하는데, 연애 범주 가치를 고려하면 자유 체제에 해롭다. 참여자가 감소하면서 저점이 소비가 안된다.



연애 시장은 현재 여성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여성이 더 가치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여성 정조관념 등으로 성적 억압을 강하게 받아서 여성이 남성보다 성관계에 대한 범주 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성관계 범주 가치가 낮으면서 연애 시장에 대한 수요도 낮아지게 된다. 연애 시장은 보통 일대일 직결 시장으로 수요가 낮으면 공급도 낮아지게 된다. 여성의 수요와 공급은 낮은데 남성의 수요와 공급은 높으면서 희소성에 의해 여성의 가치가 높게 느껴질 뿐이다. 범주 가치가 낮을수록 소비되는 고점이 높아진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연애 시장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범주 가치가 낮아질수록 소비되는 고점이 높아지면서 매우 잘생긴 남성은 시장에게 매우 가치가 높게 된다. 그 외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성관계 범주 가치가 높으면서 연애 시장 수요가 높아 공급도 높아지면서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범주 가치를 이해하면 현재 연애 시장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다가 여성주의자가 남성에게도 정조관념을 심는 짓을 저지르면서 남성 또한 보편적인 성관계에 관한 범주 가치가 낮아지게 되었다. 성적 쾌락의 가치는 높지만 성관계 범주 가치는 낮으면서 자위는 해도 이성은 만나지 않는다. 허구언날 섹스를 외쳐도 성매매조차 안한다. 그러면서 남녀 모두 성관계 범주 가치를 낮게 느끼는 것으로 여성이 왕자님을 찾듯이 남성도 공주님을 찾게 되었다. 이성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위험 부담이 적으면서 고점 소비가 수월한 유사 연애 시장에서 소비하거나, 짐승 사육 시장에서 소비하게 되었다. 워낙에 관련 가치가 폭락하면서 개는 키워도 아기는 안 키우는 사회가 되었다. 친구는 사귈수 있는데 연인은 사귈 수 없는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성적인 농담조차 성희롱이라면서 죽을죄마냥 취급하는데 정상적인 성관계가 얼마나 있을 수 있겠는가? 애초에 현재 성에 관련된 모든 것이 죄로 취급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살인이 정당방위에서 정당화되듯 일부 관계,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만 정당화될 뿐이다. 그렇기에 자유 의지로 성매매를 하거나 난교를 하는 것을 보고 강한 비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창작물에서 나오는 성조차도 죄로 취급되며 공격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것은 판단하지 못하면서 제한이 없는 억압을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반발하는 인간이 있으니까 제한이 생기는 것이지, 그걸 주장하는 인간이 독재를 했다면 성은 언급하는 것 자체로 죄로 취급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정조관념이 선천적인 여성성과 같다며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짐승이 성적 수치심으로 자결을 하나. 다 가부장제에서 심은 여성성 억압이다. 후천적인 여성성, 가부장제 여성성이다. 그걸 성인지 감수성 떠들면서 심고 다니니 가부장제 정조관념이 여성 인권이 되어 퍼져버렸다.



시장으로 접근해서 봐야 한다. 개인이 본인의 의사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려면, 성에 대한 지배를 할 것이 아니라 성을 자유롭게 풀고, 미성년 때부터 성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성기능이 작동하는 10~14세부터 성경험을 다 해봐야한다. 그렇게 하여 발정날 때 상대가 이성이기만 해도 성적인 관계를 해도 될 정도로 성관계에 대한 범주 가치가 높아야 저점도 소비되면서 연애 시장이 활성화된다. 저점이 소비되고 나서 고점으로 끌어올리면서 시장 전체 가치를 더욱 높인다. 여성 정조관념에 의해 첫경험이 중시되어 성경험에 저항이 생기는데, 다른 가치를 고려하면 그것은 그냥 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성 관련된 창작물이나 사회적 태도들도 검열이나 규제나 억압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시장 원리로만 보길 바란다. 연애와 결혼 시장은 거의 모든 개인이 참여해야 하는 시장으로 의식주 시장과 같이 긍정적으로 봐야만 한다. 배고프면 음식이기만 해도 된다는 것처럼, 발정나면 이성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미성년 때부터 죄로 인식하게 만들면, 얼마나 참여가 되겠는가? 상대적 가치로는 엄청 뛰어난 이들도 절대적 가치는 판단을 아예 못하다보니 아무리 뛰어나도 기초적인 논리적 판단부터 알아야 한다.


꾸미면 연애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연애 시장에 가치를 못느껴서 꾸미지 않는 것이다. 가치가 높다 판단되어야 에너지가 방출되어 행동으로 이어진다. 연애, 결혼, 육아에 관한 부정적 방송 프로그램이 원인이라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다. 관련 가치를 낮게 보니까 그런 프로가 수요가 높은 것. 물론 보다 악화는 되고 있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니까 원인을 판단하지 못하고 결과만 보게 되는 것이다.


꼭 이러면 문화, 정서, 도덕, 윤리를 말하는데 그 개념들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부디 판단해봤으면 좋겠다. 지배 체제와 지배 질서의 문화며 정서고 도덕이며 윤리다. 그런 것을 언급하면서 체제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반체제란 말이다. 그렇게 반체제적인 태도를 취하니 시장 다 망가지고 국가가 죽어가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저출산으로 손해보는 것이 막대하다. 그냥 기본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현상을 일으킨 개념을 옹호하겠는가? 그것은 그냥 복종에 불과하다. 지금 손익만 따지면 사회에 속한 모든 개개인이 불필요하게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단 말이다. 윤리적으로 보고 생물을 잡아먹는 추악한 생물은 죽어 마땅하다 하나? 윤리적으로 보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추잡한 생물은 죽어 마땅하다 하나? 그것은 그냥 윤리의 노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해서 일도 착취되고 성도 착취되는 것이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일이나 성이나 자유로워도 문제될 것 없다. 


오랫동안 저출산 고령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본은 현재 초식에서 절식이 되어 20대 성경험이 50%라고 한다. 수십년 동안 관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도, 윤리가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원인조차 몰라서 문제 원인인 윤리를 더욱 더 강조한 결과가 현재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다. 일본은 성 산업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도 보편적으로 미성년에게 가해지는 성억압은 다른 유교권과 다를바가 없다. 그런 것을 보고도 한국은 윤리를 강조하고 여성성의 권력 도구화까지 더해지자 최저출산율이 되었고, 중국에서도 체제가 다름에도 윤리를 강조하면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수십 년 실패했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하는데, 윤리가 절대적 가치라서 판단 자체를 못하기 때문에 원인조차 모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복지 지원을 한다. 그런데 그런다고 시장이 되살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장은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시장의 범주 가치를 높게 여겨야만 활성화되면서 살아날 수 있다. 다른 시장의 경우 따로 관계가 없어도 상품 소비가 되기 때문에 고점이 잘팔리면 범주 가치가 높아져 저점 소비로 이어지는 것으로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는데, 연애 시장은 직결 시장이기 때문에 고점 저점 가리지 않고 소비하기 위해 참여부터 해야지 시장이 활성화된다. 미성년 때 상대가 고점이든 저점이든 소비를 하게 해야지 시장이 활성화된단 말이다. 그러니까 더욱 범주 가치가 중요한데, 윤리로 너무 망가트렸다. 뭘 해도 가치관이 정상이 되지 않는한 저출산은 해결될 수 없다 단언하겠다. 성적인 얘기와 관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자유 체제에서 성에 관련된 정상적인 가치관이다. 성을 지배하는 것은 반체제에 불과하다. 복지 비용을 쏟으면 해결되는것 아니냐 할 수 있는데 그러다 국가 전체가 망가진다. 돈을 부어도 가치관이 그대로면 그걸로 다른 가치를 소비한다. 특히 윤리적일수록 판단을 못하는 것인지, 재정을 고려하질 않는 것 같다.






4) 기타 가치


가치는 대상의 판단 기준으로 하나의 대상만해도 수많은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수많은 가치는 세계화가 되면서 일부 초고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분산되어 소비된다. 단순히 같은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예를 들면 치킨과 피자, 한식과 일식 등으로 분산되어 소비될 수 있다. 취미는 더욱 다양하다. 게임과 스포츠, 소설과 낚시 등으로 분산되어 소비될 수 있다. 자아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에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서 그렇다. 그러면서 모든 가치가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때로는 축구와 야구처럼 경쟁하고 때로는 영화와 팝콘처럼 연계한다. 그런 세상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는 보다 깊어져야 한다. 가치는 상당히 많으므로 짧게 다루겠다.




[C. 일반 가치]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다. 


[C. 종합 가치] 


종합적으로 본 가치다.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시장 가치거나 종합 가치다.


종합 가치는 대상에 다양한 가치가 있을수록 판단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사과에 붙은 가치의 종류는 적어 판단 차이가 적지만, 스마트폰에 붙은 가치의 종류는 많아 판단 차이가 크다. 스마트폰과 같이 가치의 종류가 많은 경우에는 보편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고투자한 가치는 낮은 평가를 받고 저투자한 가치는 높게 평가 받아 시장에서 종합 가치가 낮게 평가될 수 있다. 100을 투자하고 20의 평가를 받고 20을 투자하고 20의 평가를 받으면 후자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종합 가치로는 낮게 된다.


[C. 개별 가치]


개별로 바라본 가치다.


수요가 높을수록 가치가 높다.


[C. 범주 가치]


범주로 바라본 가치다.


저점이 팔리지 않을수록 가치가 낮다.


[C. 정가 가치]


값이 매겨져 가치 판단이 끝난 가치다.


가치가 상대적인 상황에서 특정한 기준으로 가치 판단하여 공통된 가치를 인식하게 만든다.


[C. 당위 가치]


해야만 하는 가치다.


절대적으로 해야만 하는 가치가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C. 사랑 가치] 


이로운 종합 가치를 추상화한 가치다.


특정 가치를 종합적으로 이롭다 판단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게 된다. 그러면서 차별이 발생한다. 짐승을 사랑하면 인간이 차별받을 수 있다. 짐승을 키우면서 인간은 키우지 않는 것은, 짐승을 사랑하면서 인간을 차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기가 짐승 알레르기로 고통 받아도 짐승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는 것은 아기보다 짐승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짐승의 권리를 무작정 높이면 높일수록 인간의 권리가 낮아진다. 이웃집의 모르는 8살 아이보다 키우는 짐승을 우선시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어디서 그런 설문을 본 것도 같다. 짐승은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사회와 체제를 고려하며 접근해야 한다.


[C. 증오 가치]


해로운 종합 가치를 추상화한 가치다. 


종합 가치기 때문에 특정 가치는 이롭고 특정 가치는 해로우면서 애증이 성립될 수 있다.


[C. 존재 가치]


존재할 가치다.


존재 이유를 생각할 정도의 지성을 갖춰야 성립되는 가치로 그걸 생각한 지성체는 스스로에게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야 살아갈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존재 가치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타인의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더라도 보통은 크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본인의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면 그게 바로 영향을 준다. 넌 존재할 가치가 없어, 라고 해도 별 영향이 가지 않을 수 있지만 난 존재할 가치가 없어, 이러면 바로 영향이 간다는 것.


집단에 대한 존재 가치로 소속 여부가 결정된다.


[C. 신용 가치]


신용할 가치다.


사기 죄의 경우 누가 속나 속지 않나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것에 의해 발생한 사회 신용 가치 훼손이 더 큰 문제다. 신용 가치가 훼손되면 신용하면서 생략한 절차를 추가하는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C. 명예 가치]


사회 인정 가치다.


사회에서 공적이나 사적으로 가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인정 받을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대상에 명예 가치가 붙으면 구매가 늘어날 수 있다. 망가진 문학 시장에서도 노벨상을 탄 작품은 읽힐 확률이 높게 되는 것과 같다.


SNS가 발달하면서 SNS 친구 수가 많은 인간이 명예가 높을 수 있는데, 그것은 숫자로 지표가 너무 명확해서 그에 따른 이익이 높지가 않으며, SNS 안에서 한정될 확률이 높다.


[C. 연계 가치] 


연계되는 가치다.


영화와 팝콘, 2월 14일과 초콜릿, 삼겹살과 술 등


[C. 숫자 가치] 


숫자로 보는 가치다.


수는 공통 인식에 편리해 객관화에 유리하다.


[C. 패션 가치]


유행하는 외형으로 본 가치다. 대상에 유행하는 미적 감각이 더해지면 패션 가치가 붙는다.


주로 SNS나 유튜브 정도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100만원 폰과 20만원 폰의 가치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상할 수 있다. 어째서 그들은 100만원 폰을 구매하는가? 그것은 성능도 패션 중 하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패션은 두른 인간에게 부가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로 전자제품에서는 성능도 패션이 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실사용 성능과 패션용 성능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실사용 성능은 자주 쓰이므로 그대로 전달하고, 패션용 성능은 자주 쓰이지 않으므로 포장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 


[C. 모방 가치]


모방한 가치다.


모방에서 창의가 되려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겉만 모방해봐야 속을 새롭게 바꿀 수가 없다.


[C. 미적 가치]


미적으로 바라본 가치다.


모든 사물은 미적 가치가 붙을 수 있으므로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미에 대한 철학, 예술을 이해하는 편이 좋다. 현재 현대 미술은 본연의 아름다움보다 부가적인 이야기에 치중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예술에 대한 탐구가 다소 부족하므로 직접 무엇이 아름다운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C. 쾌락 가치]


쾌락으로 바라본 가치다.


현재 노동 범주 가치가 낮은 것은 쾌락 가치 설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C. 경험 가치]


경험에 관련된 가치다.


이른바 추억팔이에 속할 수 있다.


[C. 미지 가치]


알지 못하는 가치다.


인간에게 새롭거나 세상에서 새로울 수 있다. 신선함의 유통 기한은 가치 판단이 될 때까지. 가치 판단이 된 이후에는 그 판단이 잘되어야 계속 팔릴 수 있다. 


[C. 지속 가치]


지속으로 본 가치다.


상품의 가치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감가상각이 달라진다. 보통 중고가를 결정한다.


[C. 안정 가치]


안정적인 가치다.


일상에 속하는 가치로 식사 등이 있다. 크게 벌 수는 없지만 자리잡으면 계속 팔 수 있다.


[C. 매몰 가치]


매몰된 정도로 보는 가치다.


보통 뭐든 쓴 만큼 가치가 올라간다. 돈이든 자원이든 시간이든 에너지든. 보통 시간은 소비한다는 인식이 없어서 시간을 쓰는데 주저함이 적을 수 있는데, 그것을 이용해 무료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어 가치를 높인다.


[C. 시간 가치]


시간에 관련된 가치다. 


보통 시간을 절약하는데 쓰이는 가치로 서비스 전반이 그렇다.


[C. 지식 가치]


지식에 관련된 가치다.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여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


[C. 희소 가치]


동일한 상품 또는 성질이 희소한 가치다.


희소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이미 가치가 붙은 것에 희소성이 더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종합 가치가 낮으면 희소해도 팔리지 않는다.


[C. 도박 가치]


낮은 확률로 높은 이익을 얻는 가치다.


높은 리크스 높은 리턴을 의미하며 생각보다 많이 보이는 가치다.


[C. 고유 가치]


고유한 가치다.


통상 저작권 등이 그렇다. 교묘한 모방으로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으나 품질이 높으면 소비된다. 그러나 명예가 낮게 된다. 낮은 명예는 범주 가치에 해가 되어 저점이 되면 팔리지 않게 된다.


[C. 공유 가치]


공유되는 가치다.


사회에서는 공원 등이 있다. 공유는 다중 소유로 독자적 소유가 아님에도 허술하게 다루거나 마치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무관심한 일이 많다.


[C. 참여 가치]


참여로 본 가치다.


누구든 참여만 하면 가치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상품은 무료 이용자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그만큼의 부가 가치가 붙는다. 그럼에도 무료 이용자가 단순한 악성 이용자로 보고 쳐내면 참여 가치가 하락하여 상품이 팔리지 않게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소비자 또한 생산한다고 봐야 한다. 소비자의 생산성이다.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보다 임금이 더 나갈 경우 손해가 될 수 있듯이, 소비자가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면 손해가 될 수 있으므로 무작정 해서는 안된다.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가 가능한 공간이 생기는 것으로 참여 가치가 포함되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참여형 플랫폼이 그렇다. 이른바 메타버스라 부르지만 실상 개념이 제대로 정립된 상태는 아니다. 


[C. 특별 가치]


특별함이 붙은 가치다.


대체로 기념일 등이 그렇다.


[C. 인식 가치]


인식하면서 발생하는 가치다.


모든 가치는 기본적으로 인식함에 따라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에 따로 인식 가치를 다룰 필요가 없을 수 있으나, 인식 유무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룰 필요가 있다. 공기를 당연하다 여기며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가치가 낮지만, 숨을 쉬지 못하면서 공기를 당연하지 않다 여기며 인식할 때에는 가치가 높게 된다. 중요함에도 가치가 낮을 때에는 가치를 인식하게 해야 한다.


[C. 수량 가치]


수량으로 본 가치다. 


대량으로 팔아서 저렴하게 된 규모의 경제가 보통 그런 가치에 속한다.


[C. 부가 가치]


부가적으로 붙는 가치다.


부가 가치를 분리해서 볼 때에는 종합 가치에 부가 가치가 붙는다. 보통 세금으로 분리하거나, 고레벨의 기술이 들어간 고부가 가치일 경우에 따로 분리하기 위해서 쓰인다.


[C. 선호 가치]


선호되는 가치다.


범주 가치가 낮을수록 고점이 선호된다.


[C. 기피 가치]


기피되는 가치다.


가치가 낮다고 기피되지는 않는다. 가치가 낮아도 선호될 수 있고 가치가 높아도 기피될 수 있다. 단순 노동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가치. 가능한 빨리 로봇과 AI로 생산해야할 가치다.


단순 노동의 경우 로봇보다 인간의 노동력이 저렴하다는 측면으로 교체되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사회적 비용 (행복 출산 자살 등)을 고려하면 기피되는 가치를 인간이 하는 것은 복지 비용이 더나간다. 지금 당장은 하는 사람이 있어도.. 기피 가치이므로 점점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텐데, 그것을 로봇과 AI로 대체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가장 저렴하다. 복지로 쓸 돈 기피 가치의 로봇화에 집어넣고, 기피 가치 대신에 선호 가치는 인간이 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시장을 고려하면 복지 지원금을 적정하게 넣으면 공급 유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C. 사실 가치]


사실 여부로 본 가치다. 


이른바 언론에서 팩트 체크하는 것도 사실 가치에 속한다. AI의 발전으로 진위 여부를 알기 어려워지고 있는데, 디지털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국제 기관의 신설이 필요하다.


[C. 화폐 가치]


국가 보증 가치다.


화폐도 상품이란 인식이 있어야 금융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C. 보안 가치]


안전에 관련된 가치다. 


디지털 시대가 된 이후에는 개인 정보 보안이 추가되었다.


[C. 기준 가치]


기준이 되는 가치다. 


업계 표준 등이 있다. 합리적인 기준일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C. 계기 가치]


계기로 본 가치다.


행동의 계기가 되는 가치로 만남이나 상 등 다양하다.


[C. 신비 가치]


이해를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가치다.


종교, 미신, 점, 타로, 행운의 부적 등이 있으며 창작물에서도 자주 이용된다. 이해를 초월하기에 우수하더라도 믿을 수 있다.


[C. 유사 가치]


유사한 가치다.


유사 연애 산업 등이 그렇다.


[C. 무지 가치]


무지일 때 달라지는 가치다.


미지는 몰라도 지식이 있는 상태가 있을 수 있는 반면, 무지는 전반적으로 모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젊음으로 마케팅을 할 때에는 무지 가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마케팅을 하는 인간은 많은 것을 아는 상태기 때문에 무지 상태에서 상품을 접할 때 느끼는 감성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아는게 적기 때문에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도전한다. 그런 것이 젊은 패기 등으로 해석된다. 아는 것이 많은 인간이 만든 세계는 리스크를 고려하였기 때문에, 리스크를 고려한 마케팅은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아는 것이 많은 인간은 아는 것이 적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이용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가 비슷하기에 경험은 달라도 감각은 비슷할 수 있어 이용할 수 있다.


[C. 보관 가치]


보관하면서 생기는 가치다.


보통 창고 등에 속한다.


[C. 이동 가치]


이동하면서 생기는 가치다.


교통이나 물류 등이 그렇다.


[C. 우열 가치]


우열으로 본 가치다.


광대를 보고 웃을 때 쓰인다.


[C. 건강 가치]


건강으로 본 가치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 등이 있다.


[C. 거품 가치]


실제 가치보다 부풀린 가치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부풀렸다는 것은 특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회계를 부풀리는 분식회계 등이 있다.


[C. 통제 가치]


통제할 때 쓰이는 가치다.


스포츠 규칙과 같이 약속한 공통된 통제나 지배를 하면서 복종하게 할 때 쓰이는 통제가 있다. 지배자가 억압을 가했다가 지배자가 풀어도 피지배자는 풀렸을 때 느끼는 행복감에 의해 지배자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자유 체제에서는 스포츠 방식의 통제가 적절하다.


[C. 언어 가치]


언어로 만들어진 가치다.


인간이 만든 모든 개념에 언어 가치가 포함된다. 따로 언어 가치로 구분한 것은 모든 개념이 어디까지나 인간이 언어로 규정한 개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1+1=2를 말하지만 실제로 우주는 그렇게 딱 나뉘는 경우가 드물다. 같은 원소라 하더라도 베타 붕괴가 다르게 일어날 수 있다. 수치상 동일한 무게라 하더라도 동일한 에너지가 아닐 수 있다. 물론 매우 미시적인 관점이므로 일상에서는 그리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학문에서는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5. 통합 체계


물리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은 없다. 경제 물리학의 목표는 경제를 물리로 해석해서 통합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세계 구성과 인간이란 생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에너지 방출과 제어의 성립 조건과 경제 생태계에서의 소비, 생산, 분배의 성립 조건을 파악하여 통합 체계를 갖춘다. 통합 체계를 통해 행복한 사회와 자유로운 체제를 성립시킨다. 


정부(입법, 사법, 행정)가 바뀐다고 사회가 행복하고 체제가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정부가 하는 정책과 제도는 학문으로 행하기 때문에 학문의 발전이 없으면 고질적 사회 문제는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해결할 수가 없다. 학문의 발전이 없었기 때문에 고대 종교는 수천 년간 결과가 없고 근대 이념은 수백 년간 진보가 없고 현대 인문은 수십 년간 고질적 문제 해결을 못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바뀌는 것은 단순한 권력 쟁탈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학문이 발전해야 한다. 정부가 발전한 학문을 참고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논리적이면 어떤 정부라도 웬만하면 참고하고 실행해본다. 실제 자연 계열의 과학은 어떤 정부가 와도 웬만하면 참고하고 실행한다. 



자유 체제에서 사회와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체제에 필요한 개념들이 지배 체제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질서만 해도 자유 체제와 지배 체제는 아예 다르다. 자유 질서에서는 전부 자유롭고 몇 가지를 계약에 따라 금지한다면, 지배 질서에서는 전부 금지하고 몇 가지 필요한 것을 정당화한다. 지배 체제에서는 지배 질서와 같이 전부 금지하고 몇 가지 허용하는 것으로 사회와 체제가 성립될 수 있었지만, 자유 체제에서는 전부 금지하다가는 자유 의지로 에너지 방출과 제어, 경제 생태계의 소비, 생산, 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사회와 체제가 성립될 수 없다. 어디까지가 자유 체제에서는 자유 질서, 전부 허용하고 몇 가지 계약에 따라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자유로운 체제에서 A 가치가 공급되면 B 에너지가 방출되어 C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것을 전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탄생, 소비, 학습, 생산, 분배 등을 체제에 맞게 실현시킨다. 그 과정은 전부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자유 이념 실현을 위해 늙음과 죽음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세부적인 방법은 절대적 가치 또한 상대적으로 만들어 모든 가치를 상대적으로 가정한 다음 논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자유 체제에서 탄생의 성립 조건은 연인 또는 여성의 자발적인 출산이다. 연인 관계에서 서로 합의하에 출산을 결정하거나 여성 홀로 정자를 받아 출산을 결정하는 것으로 탄생이 성립한다. 연인 관계에서 합의하에 출산이 결정되려면 자발적인 결혼이 필요하다. 자발적인 결혼은 연애와 중매 등이 있는데, 성관계 범주 가치가 폭락하면 연애는 고점만 거래되고 중매는 조건 결혼이 되게 된다. 보편적인 자발적인 결혼은 성관계 범주 가치가 올라 이성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 되어야 저점도 거래되면서 성립한다.


자유 체제에서 학습은 평생 학습을 해야 한다. 지배 체제에서는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으로 학습 유무가 중요하지 않지만, 자유 체제에서는 자발적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학습 유무가 중요하게 된다. 특히 AI의 발전으로 일자리의 변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누구든 계속 학습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순도 높은 지식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순도 높은 지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재 지식의 순도가 낮음을 이해하고 누구든 모순을 제거하면서 지식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


지식의 순도를 높일 때에는 객관식 문제 풀이가 위험할 수 있다. 이것은 지식을 익힐 때 위험하다. 활용할 때에는 위험도가 줄어든다. 지식을 익힐 때에는 그 지식으로 사고의 논리 체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모순이 있는 오답이 새겨지면 오답이 발상되면서 논리 체계에 불순물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판단하면 상관 없을 수 있는데, 대체로 객관식 문제 풀이는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반면 지식 활용할 때에는 불순물이 있어도 웬만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미 구축된 논리 회로로 불순물을 접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존재를 논리 체계에 넣는 것과 논리 회로로 접하는 것은 별개다. 전자는 위험 후자는 괜찮다. 


자유 체제에서 에너지 방출과 제어와 경제 생태계 구축은 전문성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적 가치의 경우 경제 전문가들이 잘 할 수 있다. 절대적 가치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 모여 모순을 제거하며 지식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 초기에는 절대적 가치에 대해 판단하려 하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게 낙인이다. 현재 문화에 머물러 있는 영역까지 전부 학문으로 체계화하여 문명으로 만든다. 각 산업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에너지 방출과 제어, 경제 생태계와 통합하여 연계할 수가 있어야 한다. 


진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대체로 이해 관계다. 변화로 손해를 보는 인간은 변화를 반대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익을 초월한 논리와 새로운 이익이 필요하다. 국가의 몰락과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 새로운 변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 불로와 불사라는 이익. 절대적 가치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 지배를 성립시킨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국영화나 민영화나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접근할게 아니라 합리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현재 전기는 극심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나 민영화에 대한 공포로 적자 해소의 길이 보이질 않고 있다. 기업을 살린다는 이유로 기업 전기세가 낮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전기 산업을 가정과 산업을 분리하고, 국영은 가정용과 국가 비상 전력용으로 쓰고 민영은 산업용으로 쓰면 국영으로 안전망을 갖추고 민영으로 적자를 해소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가정에서도 적게 쓰면 국영, 많이 쓰면 민영이 저렴하도록 가격 편차를 두는 것도 합리적일 것이다. 현재는 전기 체계가 연결된 상태기에 분리가 수월할지는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상황에 따라 대기업에서 따로 기업용 전기를 운영하는 것도 효율적일 것이다.


지배 질서가 익숙하다보니 물리적으로 감시하여 파악하는 것으로 대응하려는 태도가 많이 보이게 된다. 그럴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을 이해하고 어떤 조건에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미리 다 알고 있으면 된다. 바둑을 두듯이 최소한의 정부 정책만으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끔 유도해야 한다.



유명한 사상가나 철학자, 그들의 주장을 맹신하며 절대적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주장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질적 사회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수천 년 동안 성과가 나오지 않았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유명하고 오래되면 다 되는가? 인간을 권력으로 복종하게 만들어서 다툼을 없애기만 하면 되는가? 인간의 욕망을 제거하여 좀비처럼 만들어 죄를 짓게 하지 않으면 되는가? 인간들이 지옥이 무서워 덜덜 떨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구원만을 기다리게 하면 되는가? 그걸로 되는가? 그게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가?


누군가 더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어떤 사상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단순히 모순이 있나 없나로 접근해야 한다. 지식의 순도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경쟁 상대로서 우열은 없다. 더 순도를 높이는 쪽이 더 타당할 뿐이다.



당장 개념 발상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모되어 구체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했다. 사상가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주장한다거나 누군가를 구원을 한다거나 반드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장하지 못하겠다. 단지… 본질을 보고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그 길로 가기 위한 안내. 현상을 알게 하고 판단하게 할 수 있는 것.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자료. 사상가든 뭐든 결국 수많은 역할 중 하나. 새로운 생각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혀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최소한 문제 해결을 하겠다고 문제 원인이 되는 것을 하게 하지는 않도록 하는 것. 내 주장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논리에 모순이 없으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많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나는 그런 인류의 지성을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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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부디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판단하지 못하는 지성에 무슨 의미가, 무슨 가치가 있어?


올해 안에 불로 불사 루트를 파악할 수 있기를. 이게 아니면 보편적인 진보가 어려울 거 같아.


올해는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사상가로서 성공한다거나 환경이 좋아진다거나 연인이 생긴다거나 하는 등의 개인적인 욕망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네.


아마 다음은 외교에 대해 쓸 거 같아. 주제가 바뀔 수도 있지만, 좀 쉬다 발상해봐야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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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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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불로와 불사 (1) 2023/12/31 AM 01:07

불로와 불사






1. 자유


[자유: 1.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1) 자아 본질


[자아: 2.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 · 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 · 반응 · 체험 · 사고 · 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Q. 자아를 이해하는 것으로 본질적인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보통 자유 개념은 추상적이다. 대부분 개인의 주관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로 인식한다. 개인마다 억압이라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유도 다르게 된다. 안락의 자유, 지배의 자유, 방종의 자유, 죽음의 자유, 야망의 자유 등 다양하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자 사이에서도 자유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상당하다.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 개념이 성립되려면 ‘자기’와 ‘마음대로’와 ‘할 수 있는 상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자기는 자아를 지칭하고 마음대로는 바람을 지칭하고 할 수 있는 상태는 환경을 지칭한다. 자아가 안락을 바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이런 것처럼 자아가 바라는 상태가 가능한 것을 자유라 부른다. 이것을 통해 자유의 원리는 자아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아 내부 원리에 의해 바람이 생기고, 그 바람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자유다. 이런 이유로 자아가 무엇인지 알아야 정확한 자유를 알 수 있다.


[C. 생물 메커니즘]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뇌가 전달하는 정보를 판단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갈림길에 섰을 때 자아는 판단만 한다. 발상과 동작은 생물 메커니즘에서 다른 영역이 한다. 자아가 판단만 해도 알아서 발상하고 동작한다. 자아가 판단만 해도 생물 메커니즘에서 모순은 없다. 생물 메커니즘 구분을 위해 판단만 하는 자아와 그 외를 하는 자아 외로 분리하겠다. 인간은 보통 이걸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좀 더 설명하겠다.



수면 충동의 생물 메커니즘. 


발상 - 신경 세포 정보를 종합해 수면 충동.

판단 - 잠을 자야겠다.

발상 - 시간, 장소, 방법.

판단 - 이따 침대에서 이불 덮고 자야겠다.

발상 - 정확한 시간.

판단 - 22:00 정도면 될 거 같다.

발상 - 22:00 이전에 할 일.

판단 - 그전에 게임 좀 해야겠다.

동작 - 몸이 움직여 게임을 하러 간다.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의 판단 없이도 자아 외의 발상과 동작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걸 무의식적 생각과 행동이라 한다. 통상 판단은 무의식적 생각을 시작으로 한다. 판단 재료가 떠올려져야 판단을 할 수 있다. 자아의 추상적인 판단이 자아 외를 통해 언어 개념이 되어 발상이 나타난다. 발상과 판단을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이 흐르게 된다. 이 과정은 단어 하나, 손가락 하나마다 굉장히 빠르게 반복될 수 있다. 모든 판단은 기억되면서 한번에 다양한 판단과 발상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언어 개념이 그렇다. 언어 개념은 다양한 의미를 하나의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판단으로 다양한 의미를 판단할 수 있다. 


자아는 판단만 하기 때문에 실제 발상과 동작을 원하는대로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떠올릴 수가 없고 육체를 원하는 동작으로 정확하게 움직일 수가 없다. 발상이든 동작이든 반복 학습을 통해 원하는 것과 유사한 것을 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암기를 하는 학습을 해야 특정 상황에서 자아의 판단으로 원하는 정보를 자아 외가 발상하고, 반복적으로 공을 던져보는 훈련을 해야 특정 상황에서 자아의 판단으로 원하는 곳으로 자아 외가 동작한다. 


모든 조건에서 자아가 판단만 해야 모순이 없다. 발상이나 동작까지 자아가 했다면 실수가 나오기 어렵다. 데이터 검색해서 발상하는 것도 아니고 좌표값 계산해서 동작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욕구나 감정도 마찬가지다. 자아는 판단만 한다. 자아의 판단을 의지라 부르고 자유로운 판단을 자유 의지라 부른다. 즉 본질적인 자유는 자아가 자유롭게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의 조건은 세 가지다. 판단을 하는 존재,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판단에 제한이 없는 사회. 존재와 능력과 환경이 갖춰져야 자유롭다 할 수 있다. 


존재 유지 - 생존의 자유

능력 획득 - 학문의 자유

자유 사회 - 사상의 자유



이 외의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등은 조건에 따라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유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사는 동안 능력을 얻어 생각을 통해 사회에서 다양한 자유를 판단하여 규정하고 자유롭게 살면 된다. 통상 체제를 기초로 다양한 자유가 규정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민주주의 체제에 의해 자유주의의 자유가 모든 개인의 평등한 자유로 규정된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로서 대등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는 평등한 자유기 때문에 불합리하게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할 수가 없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면 표현에 대한 다른 사회 구성원과 의견을 교류하며 체제를 기초로 표현의 한계를 판단한다. 보통 표현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면 자체 규칙으로 판단하고 대응이 불가능하면 국가 법으로 판단한다.






2) 사회 법칙


[법칙: 3.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 ·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



Q. 사회 법칙을 이해하여 자아의 판단이 보장되는 사회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자연 법칙이 기본 상호 작용(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을 기초로 하듯이 사회 법칙 또한 특정한 기본적인 상호 작용을 기초로 한다. 사회는 인간을 요소로 하는 존재로 인간의 힘인 무력, 지력, 매력, 권력, 재력 등으로 동작한다. 이러한 인간의 힘은 가치에 의해 작용이 결정된다. 가치는 판단 대상을 의미한다. 인간의 가치 판단은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성질상 크게 수용과 거부로 구분할 수 있다. 받아들이거나 물리치거나. 그 외는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다. 


수용과 거부는 강약으로 분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강한 수용과 거부는 욕망과 공포다. 갈구하며 쫓아가거나 겁에 질려 도망친다. 사회의 기본적인 상호 작용은 수용과 거부이며 강한 순서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보통 욕망과 공포가 기본이다. 욕망과 공포에 의해 다양한 인간의 힘이 작용하게 되는 것으로 사회가 구성된다.



[질서: 1.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C. 가치의 상대성] 인간은 육체가 달라 인식, 판단, 가치가 다르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다. 보통 강한 쾌락이나 죽음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쾌락을 거부하거나 죽음을 수용하는 일이 있는 것을 보면 절대적이지는 않다. 모든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모든 힘의 작용도 다르다는 것이 된다. 힘의 작용이 다르면서 혼란이 발생하는 것으로 질서가 성립될 수 없었다.


보통 짐승 사회에서는 무력으로 지배하여 사회 구성원을 복종하게 하는 것으로 질서를 강제했다. 인간 사회도 비슷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게 지능이 높아 도구와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며 육체가 약하다. 약자가 순순히 복종하지 않고 도구를 들고 언어로 속여서 강자를 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독을 먹이거나 잠든 틈을 타서 살해하는 것은 10세도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는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지 못하여 질서가 성립될 수 없었다.


[C. 원시 질서] 질서는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혼란이 없어야 성립했다. 최소한 장소 A -> B 가는 것은 가능해야 했다. 그것을 공포로부터 도피하는 장소를 지정하는 것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번개가 칠 때 공포에 질려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수 있다. 질서가 없다. 그때 번개를 피할 수 있는 동굴을 알려준다면 그 동굴로 빠르게 달려갈 것이다. 질서가 있다. 공포 -> 도피를 통해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혼란이 사라졌다. 매우 원시적인 논리다. 공포에 질려 판단하지 않고 도피할 장소가 있으면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된다. 조건은 판단하지 않음과 행동 지정이다. 가치 판단 없이 힘의 작용이 일정해진다. 응용 논리로 분노 -> 살해도 가능하다. 분노에 미쳐 달려들어 살해한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을 강제한다. 힘이 일정하게 작용하면서 규칙이 지켜진다. 그것으로 인간 사회의 원시 질서가 성립되었다.


[C. 가치의 절대성] 간단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규칙을 지키면 살고 어기면 죽는다. 규칙 중 하나가 지배와 복종이다. 복종하지 않으면 죽는다. 복종하면 산다. 공포 -> 도피 논리가 성립한다. 이 논리를 기초로한 질서는 기본적으로 그런 식이다. 규칙을 어기면 죽는다. 규칙을 지키면 산다. 규칙은 처벌 수위는 다를 수 있지만 공포 -> 도피 논리를 벗어나는 일은 드물었다. 단순한 지배와 복종이 아닌, 특정한 가치를 기초로 지배와 복종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느끼게끔 만들면서 부당하단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반역과 같은 질서 파괴를 방지했다. 힘의 작용이 강제되면서 그 규칙은 절대적인 가치가 되었다. 금욕, 희생, 사랑, 증오, 행복, 생명, 죽음 등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이뤄지지 않고 지정된 가치로만 판단되게 만들었다. 각각의 가치가 수용해야 할 것과 거부해야 할 것이 지정되었다. 판단이 작용하지 않으면서 힘의 작용도 일정하게 되었다. 가치 판단이 되지 않으니까 절대적 가치가 되고 절대적 가치니까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질서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공포 -> 도피 논리를 지키는 것에 도덕이란 이름이 붙었다. 공포엔 악이란 이름이 붙었고 도피엔 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선과 악은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특정 도덕의 주장과 그 도덕을 신앙하는 이들이 모인 것에 종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덕을 학문화한 것에 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두가 해야할 도피를 주장하는 것에 정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절대적 가치를 기초로 사물과 행위를 판단하는 것에 양심이란 이름이 붙었다. 거부해야할 절대적 가치를 거부하지 않는 것에 죄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행위에 느끼는 감정에 죄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공포 -> 도피 논리에서 도피를 본인으로 지정한 것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각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절대적 가치에 의해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되면서 사회 질서가 성립되게 되었다.



원시 사회는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을 통해 지배를 위한 공포 -> 도피 논리를 만들어 힘의 작용이 일정해지면서 사회 질서가 성립될 수 있었다. 이후 모든 도덕과 윤리는 공포 -> 도피 논리를 기초로 한다. 유교는 수기치인을 통해 권력을 윤리로 만들었다. 공포는 피지배, 도피는 지배로 설정되었다. 기독교는 유일신 교리를 통해 신앙을 윤리로 만들었다. 공포는 지옥, 도피는 천국으로 설정되었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가 되지 않으면 강제로 절대적으로 만들었다. 유교는 권력 반역 처단, 기독교는 종교 이단 심문이다. 원시 사회의 질서였던 도덕과 그것을 학문화한 윤리는 지극히 원시적인 질서가 된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공포 -> 도피라는 원시 질서를 사용하여 지배와 복종이 기본적이었다. 왕의 지배에 필요한 절대적 가치는 금욕과 이타였다. 피지배자가 욕망을 절제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수용해야 지배를 위한 힘의 작용이 일정하여 지배 질서가 깨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보편적인 윤리는 통상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된다.


유교는 수기치인을 통해 권력을 윤리로 만든 사상이다. 모든 사회에서 권력을 얻고자 하는 행동이 나타나나, 유교권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모든 사회 관계가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안에 속한다. 신분 (왕과 양반과 평민과 천민), 연령 (연상과 연하), 성별 (남성과 여성), 지위 (정 1품에서 종 9품), 역할 (선비와 농부와 공장과 상인) 등 전부. 삼강오륜 등의 가르침이 이런 것을 체계화하였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는 국가와 죽음을 넘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그 외 국가를 약소국이라 깔보는 것이 중화사상. 그것을 따라한 것이 조선의 소중화사상. 죽은 자에게도 권력이 있어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그것을 체계화한 것이 족보. 그것을 바탕으로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신으로 모신다. 


공포는 피지배, 도피는 지배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인간이 권력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미친듯한 교육열.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유교 서적은 대부분 가정에 비치되고 권력을 얻을 수 없는 학문은 거들떠도 안본다. 모든 국가 역량이 권력에 필요한 학문에만 집중된다. 유교의 권력 집착은 욕망이 아닌 공포에 의한 것이기에 판단하지 않고 달려든다. 뚜렷한 목적이 없이 우선 권력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절대적 가치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직접 무력을 사용하여 절대적으로 만들었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무시하면 그에 따른 폭력을 행사했다. 인의예지나 정은 권력에 따른 위계질서 내에서 지배자가 피지배자에 대한 아량이나 피지배자가 지배자에 대한 복종을 의미했다. 그런 질서를 통해 다툼을 줄인 것이다. 정이 있는 사회를 흔히 법 없는 사회라 하는데, 그것은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회의 모든 결정권은 권력을 가진 인간에게 주어졌다. 권력은 국가와 죽은 자에게도 있었기에 왕조차도 마음대로 못했다. 강대국과 죽은 자의 가르침을 거역하지 못하면서 국가가 타국과 과거에 종속되었다. 권력자에게 결정권이 있었기에 권력자 판단에 따라 위계질서가 무시되는 일도 있었으나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국가의 권력은 왕에게 있었다면 가정의 권력은 가장에게 있었다. 가부장제다. 가장은 가족 구성원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특기나 취미는 물론 진로나 성까지 전부 가지고 있었다. 가장이 결정권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을 자유롭게 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가능했다. 


권력을 얻기 위한 학습에 매우 강한 억압이 가해졌다. 학문을 하는 것을 강제한다. 그 외의 강한 억압이 바로 성이다. 성을 방치할 경우 가장의 의사와 무관한 이성과 결혼할 수 있는 것으로 권력 획득 수단으로 쓸 수 없음은 물론이고, 친족간의 성관계로 족보가 어그러져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망가질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남녀칠세부동석으로 미리 이성을 갈라놓고 여성에게 정조관념을 주입해 결혼 전의 성관계를 방지했다. 가장에게 가족 구성원의 결혼과 출산의 결정권이 있었기에 그렇게 성을 터부시 하더라도 결혼과 출산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정권은 가장에게 있었으니 가장의 판단에 의해 가족 구성원의 자유 연애나 성관계도 가능하였으나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공포 -> 도피 논리를 사용한 원시 질서 사회였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인류는 이외의 방식으로 질서를 구축한 경험이 없었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질서를 구축했기 때문에 공포 -> 도피 논리에서 나타난 절대적 가치가 대립하는 경우가 있었다. 절대적 가치에 의한 일정한 힘의 작용이 충돌한 것이다. 전쟁과 평화, 유일신교와 다신교, 우파와 좌파 등. 그러다 자유 혁명이 일어났다. 소수의 지배자가 가졌던 주권을 모든 개인이 가지게 되었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가 되었다. 자유, 민주, 시장 등을 기초로한 개인주의 체제가 시작되었다.


자유 사회가 되었지만 원시 질서가 사라지지 않으면서 공포 -> 도피 논리를 통한 착취가 계속되었다. 영주가 농노를 착취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공산당원이 노동자를 착취했다. 둘 다 원시 질서였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유리했던 것은 공포 -> 도피 논리가 생산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공산주의 체제는 평등하지 않으면 맞아 죽는다. 무엇이 생산성이 높을지는 명확하다.


[C. 문명 질서] 개인주의 체제는 자유, 민주, 시장 등을 기초로하여 논리적인 설계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의사에 따라 물건의 가치가 결정될 수 있는가? 이러한 논리를 연구하면서 차근차근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게 되었다. 과학 문명을 통해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스스로 질서를 지키려 하는 것을 가리켜 문명 질서라 하겠다. 원시 질서는 공포 -> 도피로 힘의 작용을 타인이 강제했다면, 문명 질서는 판단 -> 계약으로 힘의 작용을 본인이 강제했다. 핵심은 맹신과 의심. 판단하지 않음과 판단함이다. 간단히 말해 본인이 판단한 것을 지키는 것으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어 질서를 성립시킨다.


[C. 존재의 절대성] 원시 질서는 가치의 절대성을 기초로 한다면 문명 질서는 존재의 절대성을 기초로 한다고 주장하겠다. 가치의 절대성은 판단하지 않고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긴다면, 존재의 절대성은 속하고자하는 판단이 있고 나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긴다. 그 판단의 사회적 행위가 바로 계약이다. 그러면서 존재에 속하는 동안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힘의 작용이 일정하게 되면서 질서가 유지되면서도 가치의 상대성은 성립되게 될 수 있다. 가치를 상대적으로 여김에 따라 설득을 하기 위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보편적인 학문 진리로 여겨지는 과학적 증명을 기초로한 논리를 펼치게 된다. 


선거와 시장이 판단 -> 계약 논리를 통한 문명 질서를 기초로 한 제도다. 자아로 판단하여 수요와 공급에 의한 정부 권력 결정과 시장 가격 결정을 한 것을 따르겠다 계약을 한다. 그 과정에서 원시 질서에 의한 힘의 작용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기본은 문명 질서를 기초로 한다. 이것을 토대로 자본에 초점을 맞춘 자본주의와 시장에 초점을 맞춘 시장주의를 분리하겠다. 자본주의는 공포 -> 도피를 이용한 생산 체제라면 시장주의는 판단 -> 계약을 이용한 거래 체제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노동자로 생산하는 체제라면 시장주의는 모든 개인이 상인이 되어 거래하는 체제다.


존재의 절대성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존재 질서, 존재에 속하자고 한다면 존재 유지는 절대적이다. 존재 탐구, 존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더라도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존재 신용, 존재에 속한 신용은 판단하지 않고 신용한다. 존재는 모두 판단 -> 계약을 거쳐 이뤄진다.



그러나 원시 질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판단 -> 계약을 무시하고 공포 -> 도피로 체제 원리를 파괴한다. 부당하게 자유를 억압하고 주권을 침해하고 시장을 훼손한다. 비리, 담합, 유착 등과 같이 체제를 부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원시 질서에 의한 힘의 작용이다. 원시 질서는 정의롭게 사회와 체제를 부쉈다. 특정 가치가 절대적이게 되면 그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모든 것은 정당화가 된다. 가족을 위한 정의로운 횡령과 탈세. 자녀를 위한 정의로운 자녀 살해. 종교를 위한 정의로운 사회 테러. 조직을 위한 정의로운 비리 감싸기. 집단을 위한 정의로운 가격 담합. 더구나 세계화가 되면서 다양한 절대적 가치가 공유되면서 변명거리가 매우 많이 늘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니. 웃기는 소리다. 


원시 질서는 사회 자체를 망가트렸다. 자유롭게 되면서 대부분의 결정권은 개인에게 주어졌으나, 성과 학습의 결정권은 보호를 핑계로 권력자가 쥐게 되었다. 미성년 시기에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에 집중하고 성을 터부시한다.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성적 경쟁에 공포로부터 도피하듯 광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 외의 욕망은 전부 제거되게 된다. 이성 관계를 멀리하는 것을 넘어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여성 사이에서 이성의 동성애가 유행한다. 


성년이 되고 나서는 결정권을 보장한다면서 직업과 결혼을 개인에게 맡겼다. 그러나 미성년 때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의 문제 풀이 외엔 잘 모르고, 성을 터부시하는 것으로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아 적극적으로 이성 관계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가치 생산과 자유 결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미성년에게 학습과 성에 대한 결정권이 없어 미숙하게 성장하면서 부정적으로 배우면서 그에 대한 가치도 낮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경제 활동율과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행복도는 다소 오르게 된다. 직업과 가족의 미래 설계를 포기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줄어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다소 행복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에는 미래가 없었다. 


이외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에 의해 돈이 권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역할도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돈의 가치가 굉장히 높아져 가족보다 돈을 우선하기도 하게 되었다.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하고 권력 투쟁에 나선 여성주의가 유행하면서 여성의 권력이 높아짐에 따라 선호하는 아이의 성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달라졌다. 이성애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가치관에 따른 사랑보다 성적 발정이나 경제적 조건을 우선하는 일이 일반적이게 된다. 결혼이 강제되었을 때에 이성애는 집단의 이익실현 수단이었다면 결혼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 이성애는 개인의 이익 실현 수단이 되었다. 


원시 질서에 의해 사회에 이로운 일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아 판단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기에 체제에 적합하지 않다. 사회에 이로운 일도 문명 질서를 통해 자아 판단으로 결정하여 행해야 한다.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사회에 이로운 일을 하면 된다.


왕정과 민주정은 체제가 아예 달라졌음에도 공포 -> 도피라는 원시 질서를 고집하면서 사회가 파탄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원시 질서가 절대적 가치로 우주의 법칙과도 같았기에 의심하지 못하면서 본질적인 사회 문제 원인을 알지 못했다. 힘의 작용을 이해했다면 사회 현상을 보는데 원시 질서인 윤리를 생략한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회 현상은 가치에 의한 힘의 작용을 고려해야 하고, 그 중 절대적 가치인 윤리에 의한 힘의 작용이 보통 매우 크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윤리는 절대적 가치로 판단하지 않는다. 자유는 자아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윤리에 의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자아에 자유가 사라진다. 윤리에 의해 자아는 자유를 잃는다. 자아가 자유를 잃고 집단의 부속품이 된다. 윤리에 의한 전체주의가 나타난다. 자아의 자유를 막는 것이 바로 원시 질서이자 절대적 가치인 윤리다. 본질적인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포 -> 도피로 맹신하는 원시 질서에서 판단 -> 계약로 의심하는 문명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3) 자유 이념


[이념: 1.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



Q. 본질적인 자유 이념 실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본질적인 자유는 살아남아 능력을 키워 판단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런데 현재 온전하게 가능한 것은 학문의 자유 말고는 없다. 학문의 자유는 자아 판단과 사회 환경이 갖춰져야 하는데, 자아 판단은 초기 호기심을 살리면 되고 사회 환경은 공교육을 살리면 된다. 생존의 자유는 죽음에 의해 불가하고 사상의 자유는 원시 질서에 의해 불가하다. 그렇기에 현재 인류는 본질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할 수 없다. 이것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불로와 불사가 되어야 한다. 생존의 자유는 당연히 가능해진다. 사상의 자유는 강한 공포인 늙음과 죽음 개념이 사라지면서 공포 -> 도피 논리가 성립되지 못하면서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는 것으로 가능하게 될 수 있다.


[C. 양심 메커니즘] 현재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신앙, 습관, 이해 등으로 솔직히 너무 어렵다. 예를 들어 양심 메커니즘이 있다. 절대적 가치를 기초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데, 그 가치에 무엇이냐에 따라 굉장히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격분하여 때려 죽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여성이 히잡을 쓰게 하는 근거인 쿠란의 교리는 절대적 가치. 그것을 기초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악을 행한 여성을 정의롭게 때려 죽였다. 이것은 이슬람권 외의 지역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교권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 유교권에서는 연하가 연상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보면 격분하여 때려 죽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연하가 연상에게 존댓말을 하게 하는 근거인 유교의 교리는 절대적 가치. 그것을 기초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악을 행한 연하를 때려 죽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포탈에 반말 살해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수두룩하게 나온다. 반말에 모멸감을 느끼고 살해했다고 한다. 이것은 히잡 원인 살해와 동일하게 양심 메커니즘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악을 처벌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행한 강박적인 살해다. 유교권에서는 이런 사건을 보면 반말에 모멸감을 느낀 것은 이해하지만 과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이슬람권에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을 보고 모멸감을 느낀 것은 이해하지만 과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유교권에서 이슬람의 히잡을 이유로 살해하고 히잡을 강요하는 것이 미개해 보인다면 다른 곳에서 유교권의 반말을 이유로 살해하고 존댓말을 강요하는 것도 미개해 보일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박혀있는 원시 질서를 제거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생물 메커니즘에 의해 원시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발상이 계속되어 매일매일 정의로운 일을 행하며 사회와 체제를 파탄내고 있다. 더구나 늙음과 죽음으로 인생에 시간 한계가 있어 당장 하는 일 하나하나에 늙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작용할 수 있다. 지금 아니면 못한다고 생각하며 다급하게 공포를 느끼며 행동한다. 그러면서 원시 질서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렇기에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불로와 불사 같이 원시 질서의 근본을 파괴하는 일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고령화도 불로와 불사가 필요한 이유가 된다. 의학의 발전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보통 60세에 죽었던 인간이 100세를 넘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늙음과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세상에 대한 가치가 달라진다. 기존 가치를 절대적으로 지키려 하거나 모든 가치를 버리고 느긋하게 살거나 세상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면서 각국 정치는 극단주의화가 진행되게 된다. 그것에 의한 혼란으로 본질적인 자유가 멀어지게 된다. 과거 사망 시기인 60세부터 그런 상태가 된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40년은 그런 상태에 머무른다는 것이 된다. 과거와 다른 세상이 되었다. 통상 새로운 물이 흘러 세상이 바뀐다는 인식이 있다. 앞으로는 그게 어렵게 되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수의 영향이 크다. 세상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이제 오래된 물을 정수할 필요가 있다 보았다.



[불로불사: 1. 늙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함.]


[C. 유전은 기록의 재현] 늙음과 죽음이 없는 것을 불로와 불사라 한다. 통상 두 개념은 하나로 묶여 늙지 않으면 죽지도 않는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늙음과 죽음은 세포 유전의 성질상 따로 봐야 한다. 원본 유전자의 돌연변이의 자연 선택이 진화라 여기기 때문에 통상 유전을 설계로 인식한다. 그러나 원본 설계가 자연적으로 나타나려면 그 과정이 기록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유전의 본질은 기록의 재현이다. 단지 지금은 어떤 이유로 더 이상 제대로 기록이 되지 않을 뿐이다. 유전은 기본적으로 세포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을 재현한다. 자동적으로 분열하는 세포를 억제하여 기록만큼만 재현한다. 그것을 기초로 늙음과 죽음 개념을 보자.


노화는 유전 기록 재현이 끝난 이후 시작한다. 유전 기록을 다 재현한 후에는 이제 추가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현상 유지만 하다가 다양한 이유로 정상적인 세포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위가 수축되는 것으로 주름도 늘고 기능도 저하된다. 인간 수명이 늘어도 성장기 노화는 일정하다고 하는데, 공통된 기록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노화가 인간마다 시기가 다르다며 처음부터 나타난다는 의견이 있는데, 성장이 빠를 수록 기록의 재현이 끝나는 시기도 빨라지므로 노화가 빠른 것은 당연하다. 


DNA 분석 결과 인간의 자연 수명은 38세 정도라고 한다. 아마 평균 생식 연령이 아닐까 싶다. 언제 기록이 멈췄는지 모르겠는데, 유전이 기록의 재현이라면 생식 연령까지 기록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폐경과 수명이 차이가 나는 것이 특별하다고 하는데, 기록의 재현이라면 특별할 것까지는 없다. 그냥 그렇게 기록되었고 그렇게 재현할 뿐이다. 기록만큼 재현하고 재현에 필요한만큼 물질을 쓰고 나머지는 버린다.


죽음은 세포 분열 횟수에 의해 결정된다. 사고, 질병 등에 의해 사망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연사란 물리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할 때를 의미한다. 기록의 재현을 계속하여 지속적인 젊음이 유지되더라도, 세포 분열 횟수가 끝나면 사망한다. 


늙음의 경우 기록의 재현을 계속 하게 만들면 세포 분열 횟수까지 젊음이 유지될 수 있을 거라 본다. 죽음의 경우 계속 세포 분열이 가능하면 된다고 본다. 관련 개념은 엑소좀이나 텔로미어 등이 있다.


생물의 불사는 자연사를 막는다는 개념으로 완전한 불사는 아니다. 완전한 불사는 자아를 추출하여 데이터로 보관이 가능할 때 가능할 것이다. 물론 데이터 손상 및 분실 등의 이유로 실제로 완전한 불사는 불가능할 것이지만 완전에 가까워질수는 있을 것이다.


불로와 불사가 실현되면 사회 문제 및 윤리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회 문제는 불로와 불사가 가능할 정도의 과학 기술과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면 웬만하면 대응이 가능하다. 윤리 문제는 애초에 윤리가 비과학적인 원시 질서기 때문에 없어져야 하므로 과학적인 문명 질서로 진보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생을 걸고 생각해온 개념이 자유다. 중학생 때 자유 의지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깊게 절망하고 생을 자포자기한 후 자유에 대해 계속 생각해왔다. 반드시 자유 이념을 실현하겠다.











2. 통찰


[통찰: 1.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2.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 장면의 의미를 재조직화함으로써 갑작스럽게 문제를 해결함.]






1) 지식 본질


[지식: 1.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Q. 통찰이 불로와 불사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식의 본질은 우주의 법칙이 아닌 인간의 인식과 이해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육체로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절대적 가치는 성립될 수 없다. 학문에 속하는 지식은 학문에 속하는 동안만 진리다. 그럼에도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과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고 암기한다거나, 모든 것을 계산하여 알 수 있다고 여긴다거나 하는 것으로 지식 안에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발전할 수 있었지만, 지식에 없어 계산할 수 없는 것은 정체되었다.


수학은 어디까지나 세다라는 개념으로 수라는 블록을 쌓아 우주를 모방한 학문이다. 그것은 굉장히 위대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실험을 하며 관찰한 것을 수라는 블록을 쌓아 모방하여 재현한다. 그것을 공유하여 누구나 재현이 가능하면 증명이 된다. 그런 모방이 다양한 수식. 그것으로 만든 것이 현대 문명의 이기. 그러나 셀 수 있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셀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 몰라서 셀 수 없거나 힘의 작용이 안정되지 않아 셀 수 없을 때에는 계산으로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건물을 짓고 우주선으로 달에 갈 수 있어도 사회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디지털은 0과 1을 조합해 만든 가상 세계. 처음부터 수학으로 만든 세계기 때문에 끊임 없이 발전한다. 반면 에너지는 우주의 법칙을 알아야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발전이 디지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상태라고 알고 있다. 전기 에너지는 아직도 터빈을 돌려서 생산 중에 있다.


소수의 법칙이 유명한데, 소수 자체도 세는 것을 좀 다르게 세는 개념이라 우주의 법칙에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소수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법칙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암호학 같이 애초에 인간이 만든 개념에는 의미가 있지만, 우주의 법칙을 아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통찰로 사물의 본질을 보고, 새로운 학문 진리를 알고, 새로운 발상을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개념이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는 지식 내에서 무작정 실험과 계산을 하다보니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은 발전이 더딘 상태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오는데 그게 무슨 의미를 하는지 모를 수 있다. 수를 가지고 어떤 것을 알려는 것은 블록을 해체하여 재조립하면서 무언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언가 나올 수는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를 수 있다. 무언가를 보고 논리적으로 발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발상이 나와 무언가가 논리적으로 알게 되면 그때 그것을 계산하여 재현하면 된다. 즉 통찰 -> 발상 -> 실험 -> 재현 -> 증명.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리로 언어 개념을 발상하는 것. 세는 것으로 수 개념을 발상하는 것. 세상을 보고 원자 개념을 발상하는 것. 떨어지는 물체를 보고 중력 개념을 발상하는 것. 빛을 보고 광전 효과 개념을 발상하는 것. 수 개념으로는 0의 개념, 사칙 연산 등의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개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고 지식을 암기하고 계산을 반복하면서 무언가가 나오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상은 재능이나 우연에 맡기고 있다. 그래서 발상 단계에서 멈추는 바람에 실험, 재현, 증명 단계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계산할 수 없는 것은 정체 중에 있다. 발상은 충분히 반복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을 키워 과학 발전을 해야 한다.






2) 발상 능력


[발상: 1. 어떤 생각을 해냄.]



Q. 발상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발상은 아는 것을 발상하는 것과 모르던 것을 발상하는 것으로 나뉜다. 통상 전자를 기억을 떠올린다고 하고 후자를 추론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발상을 기초로 알기 쉬운 구분으로 나누겠다. 전자를 기억 발상이라 하고 후자를 창의 발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창의 발상의 경우 통찰을 통해서 모르던 것을 발상할 수 있다. 사물의 본질과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갑작스럽게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자아 판단으로 결정된다. 발상을 자아가 판단해서 알고 있었다면 기억 발상이고 모르고 있었다면 창의 발상이다. 뇌에 정보가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계속 모르는 것을 발상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정말 새로운 발상이 나오고, 그 새로운 발상이 사회에서도 새로울 수 있다.


내가 발상을 할 때 필요했던 것에 대해 설명하겠다.


첫째, 관념.


고정 관념이 적은 것. (자아 나이 적음) 나는 아마 자아 나이가 13세에서 14세에 멈췄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자유 억압에 의한 절망을 겪다가 결정적으로 육체를 제어하지 못하고 의사 표현을 못해서 절망하고 자포자기 하고 살면서 자아 나이가 멈춘 것 같다. 살다보니 어느 순간 나의 취향이 또래와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기에 자아 나이가 멈추면서 상대적으로 고정 관념이 적어 발상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둘째, 목적. 


목적이 있는 것. (자유 이념 실현) 망가진 시기에 겪은 자유 결핍으로 자유에 대해 일생 생각해왔다. 그래서 환경이 달라져도 목적을 가지고 계속 사상을 할 수 있었다. 사상을 하는 환경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정식 교과 과정으로 발상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환경 문제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에 있어 나의 특수한 사정을 더하지는 않겠다.


셋째, 본질.


본질을 알려 하는 것. (통찰) 사상을 할 때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보려 매우 노력했다. 동물 조각상을 동물로 가정하고 발상하면 그 결과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본질을 알려고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넷째, 발상.


새로운 발상을 한 것. (지식 과의존 탈피) 사상을 할 때 처음부터 다시 다 생각해보고자 했다. 직감적으로 의문을 풀기 위해 어려운 철학 저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잡아먹힐 것 같았다. 잡아 먹혀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냥 그래서 계속 모르는 것을 발상을 했다. 


다섯째, 논리.


논리적인 발상을 한 것. (체계) 학문 내에 진리로 여겨지는 과학적 증명이 된 사실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발상을 하려 했다. 논리적인 모순이 있으면 모순을 없애 새로운 발상을 한다. 그렇게 해서 논리를 구축한다. 그래야 체계를 갖춰 새로운 발상을 한 것에 추가적인 발상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충분히 나름 체계가 갖춰지면 그에 관련된 지식을 조사하여 일반적인 지식과 다른 점을 찾아 다시 새로운 발상을 했다. 


여섯째, 정보.


사회 저항이 적고 정보 수집이 쉬운 것. (디지털) 디지털은 익명이어서 위계질서가 없으니까 자유로운 정보 수집이 수월하다. 유교권에서는 그게 많이 도움이 된다. 다양한 정보를 어느때든 수집할 수 있는 것은 과거와 달리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다.


일곱째, 보편.


공통 인식을 활용한 것. (사전) 사전이 있어 공통 인식을 통해 나의 발상과 비교하여 통찰하기 다소 편하다.


여덟째, 자아.


판단과 실행이 분리되어 있음을 이해한 것. (생물 메커니즘) 자아의 판단과 자아 외의 실행이 분리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발상이 나의 의지가 아닌 것을 알고 나서 발상 자체에 휘둘리기보다 그것이 왜 그런 발상이 나온 것이지 판단하면서 새로운 발상에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아홉째, 탐구.


인식과 존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 것. (존재의 절대성) 하늘 색을 보는 것과 하늘 색의 원리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전자는 인식 탐구, 후자는 존재 탐구라 규정했다. 하늘 색의 종류를 통계내더라도 하늘 색의 원리를 안다고 할 수 없다. 현재 과학은 통계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부 원리를 모르면 그것은 하늘 색을 통계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열째, 법칙.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언어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 것. (가치의 상대성) 곧잘 현상을 파악하는데 인간 위주로 알려 할 때가 있다. 인간의 언어 개념은 우주를 표현한 방식 중 하나지 우주 자체가 아니다. 특히 생물의 움직임에 인문 언어 개념을 부여해 의미가 있을 거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우주의 법칙을 아는데 상당히 방해된다. 자연 계열에서는 지양해야 한다.



[행복: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모두가 행복하고자 하지만 행복이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 아는 이들은 드물다. 그냥 만족하고 기쁠 수 있으면 행복이라 여긴다. 그러나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것을 모아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 있으면 그게 행복의 원리다. 행복은 바라는 것을 이룰 때 느끼는 만족과 기쁨이다. 바라는 순간 결핍이 생기고, 생긴 결핍이 충족되면 행복을 느낀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행복하다. 배부를 때 밥을 먹으면 행복하지 않다. 이 둘의 차이는 결핍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배가 고프면 행복하고 배가 부르면 행복하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인이 되면 행복하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연인이 되면 행복하지 않다. 이 둘의 차이는 바람에 의한 결핍이다. 같은 연인 관계여도 바라는 대상이면 행복하고 바라지 않는 대상이면 행복하지 않다. 그 외 모든 조건에서 동일하다. 결핍이 발생한 것이 충족되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행복하다 여긴다. 그러니까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의 행복 차이가 크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결핍의 충족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원리만 작동하면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다. 단지 부유하면 이 원리를 작동하게 하는데 수월해서 돈이 행복을 부른다는 인식이 있을 뿐이다.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기 때문에 아무리 부유해도 불행할 수 있고 최소한의 의식주만 보장되면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돈은 재력으로 힘이므로 돈이 많은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 힘은 보통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행복의 원리가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째, 자아.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 자체가 아닌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에 속한다. 인간의 의지보다 뇌파가 먼저 나온다는 리벳 실험을 보고 발상했다. 그 실험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발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아가 판단만 해야 모든 조건에서 모순이 없었다.


둘째, 우주.


시간과 차원은 우주의 법칙이 아닌 인간 뇌내 개념이다. 시간은 인간이 인식을 보는 순서다. 그렇게 가정해도 모든 조건에서 모순이 없었다. 시간이 상대적인 것은 그냥 인식 순서니까 인식할 수 있는 공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느껴진 것뿐이다. 상대성 원리는 시간 개념을 절대적이라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으로 시간 개념이 무엇인지 따로 생각한 게 아니다. 


차원은 인간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다. 그 외의 차원은 시간을 가정하고나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사물 외의 세계가 존재할 거란 가정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시간이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면 4차원은 없다. 4차원이 없으면 다른 차원도 없다.


셋째, 사회.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절대적 가치인 윤리는 비과학이다. 윤리는 공포 -> 도피 논리를 활용한 원시 질서인 도덕을 학문화한 것이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그토록 윤리를 강조함에도 윤리에 의한 사회 문제가 나타날 것이란 생각 자체를 못한다. 옳은 일을 했는데 왜 잘못되냐는 식이다. 그렇기에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순수하게 힘의 작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넷째, 수학.


수학은 세는 개념을 통해 우주를 모방한 학문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알 수 있고 계산할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 수학은 통찰, 발상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실험, 재현, 증명에 도움이 된다.


다섯째, 역학.


양자 현상은 열 이동이 없을 때 발생한다. 이중슬릿에서 입자가 너무 작아 열 영향이 없으면 파동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카메라를 넣어 촬영하면 열 영향이 생겨 입자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양자 현상 중 하나로 여겨지는 초전도체는 꽁꽁 얼려 열 영향에서 벗어나면 저항이 없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확하지는 않는데, 이중슬릿 실험에서 카메라에 의한 조건 변화는 열 말고 없었다. 조건은 열인 것 같은데, 그 외는 잘 모르겠다. 열에 의한 힘의 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파동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을지도 모르겠다.






3) 실현 조건


[조건: 1.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갖추어져야 할 상태나 요소.]



Q. 실현 조건에 대해 알아보자.


불로와 불사의 실현 시기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길잡이가 빨리 가더라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통찰이나 발상이 되도 실험이나 재현을 통해 증명되지 않으면 진척되지 않는다.


목표 시기는 2025년 실험. 2030년 실현. 2040년 보편화. 일단 그보다 빨리 하려고 한다. 하다보면 되겠지.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가능한 빨리 해서 인류 진보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



첫째, 이해 관계.


정부나 학문보다는 기업에서 주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와 학문은 다양한 이해 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시장 원리는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으로 다른 이해에서 다소 자유로워 기업이 주도하기가 좋다. 앞에서 기업이 이해 관계로 나타나는 여론을 대응하여 정체를 막고 뒤에서 정부와 학문이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만약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발전할 수 있다면 정부나 학문 또는 그 외라도 좋다.


둘째, AI 발전.


AI가 자아를 얻지 않더라도 반복 실험이 수월하여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AI가 자아를 얻으면 특이점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불로와 불사 실현에 도움이 된다.


셋째, 에너지 효율.


전쟁, 분쟁, 마약 등과 같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과학 발전에 투자해야 한다. 현재 인류는 기후 변화 등의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여 위기 상태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환경 보호를 말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있지 않고 과학 발전에 인류의 에너지를 최대한 넣어 발전을 촉진하는 것에 있다. 그런 것이 불로와 불사 실현에 도움이 된다.











3. 사회


[사회: 3.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은 소재와 가공처럼 영역이 다르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을 탐구할 때 인문 언어 개념을 경계해야 하고, 인문 계열을 탐구할 때 자연 계열 법칙을 맹신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 현상을 통해 불로와 불사의 필요를 알아보자.






1) 체제 변화


[체제: 1.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 [권력: 1.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원시 질서에 의해 권력이 지배와 복종 개념으로 되어 있다. 모든 개인이 권력을 가진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지배와 복종을 빼고 강제력 행사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면 될 것이다.



Q. 체제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힘의 작용 정리. (인간 -> 가치 -> 힘)


인간은 육체가 달라 상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해할 지능도 있어 힘의 작용이 각자 달라 그대로 두면 질서가 성립 불가하다. 그런 상태에서 공포 -> 도피 논리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하여 질서를 성립시킨 것이 원시 질서다. 원시 질서는 공포 -> 도피 논리로 강자가 약자를 무섭게 하여 따르게 하기 때문에 통상 힘의 작용이 위에서 아래로 일어난다. 그것이 왕정, 신분제, 가부장제 등이다.


힘의 작용이 위에서 아래로 일어나는만큼 권력은 위에서 아래 순서대로 힘의 차이가 났다. 결정권을 권력자가 가지고 지배하는 것으로 질서를 성립시켰다. 특히 유교는 권력을 윤리로 만든 사상으로 모든 인간 관계가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속에 있었다. 종교에서는 조상, 국제에서는 강국, 국가에서는 왕, 가정에서는 가장 등 다양한 권력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지배했다. 사상, 학습, 성, 관계, 직업, 특기, 취미, 결혼, 출산 등 전부 윗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때론 아랫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보일 수 있는데, 그것은 윗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없다.


조선이 한국이 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주어지면서 모든 개인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권의 행사는 주권자의 국가 결정권과 자기 결정권의 행사가 아닌 선거를 통해 왕을 뽑는 행사가 되었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가 된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특정 인간에게 권력을 몰아주어 통치자가 되게 되었다.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 권한은 원시 질서를 근거로 한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인간도 결국 삼권 분립의 강화 또는 진영의 권력 강화를 주장할 뿐이지 실질적인 질서 변화를 말하지는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바뀌어봤자 귀족적 의회제로 바뀔 뿐이다. 이런 것은 절대적 가치로 의심조차 못하는 영역이다.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성년에게 선거권이 있어 선거철만큼은 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 그것에 의해 조선에 비하면 개인에게 상당히 많은 권리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양심 메커니즘에 의해 반말을 들으면 종종 살해가 발생할 정도로 아직도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살아있다. 현재 한국 사회 내 수많은 차별은 대부분 원시 질서에 의한다. 연령, 성별, 인종, 직업, 학력, 지역, 빈곤 등 차별이 만연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원시 질서인 윤리에 의한다. 당연하다. 권력에 의한 차별이 윤리였던 조선의 윤리인 유교를 논리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의한 차별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그것에 의해 규제, 검열, 억압은 자유 국가 중에서 매우 강한 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나마 자유로워진 것은 디지털의 영향이 매우 크다. 디지털 내에서는 익명일 경우 원시 질서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권과 디지털의 영향으로 성년의 권리에 큰 변화가 발생한다. 성년은 많은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사상, 학습, 성, 관계, 직업, 특기, 취미 등 원시 질서의 관성으로 법적으로 억압되는 것이 남아있으나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미성년은 아니었다. 미성년 보호를 명분으로 대부분 결정권이 보호자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사상을 검열하고 학습을 주도하고 성을 억압하고 관계를 간섭하고 직업을 결정하고 특기와 취미에 개입한다. 대놓고 스마트폰 감시를 할 정도로 미성년에게 결정권은 없었다. 그렇게 결정권을 빼앗은 것이 보호가 명분이기 때문에 되려 인권이라 포장했다. 피지배되는 것이 인권이 된 것이다. 이는 선거권이 없는 것이 크다. 성년은 선거권과 디지털로 결정권을 상당수 확보했는데 미성년은 선거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리 분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년은 사리 분별을 못하더라도 선거권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미성년에게 선거권이 없는 것은 원시 질서가 원인이고, 결정권이 없는 것은 선거권이 원인이다.


사상 - 미성년의 가치관을 위해 강제로 개입.

식사 - 미성년의 건강을 위해 강제로 개입.

학습 - 미성년의 장래를 위해 강제로 개입.

성 - 미성년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정치 참여 - 미성년의 미숙을 이유로 강제로 개입.

관계 - 미성년의 친구를 골라 사귀게 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폭력, 도박, 마약 - 미성년의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기타 사생활 - 미성년을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


미성년의 결정권은 보호자에게 있었다. 보호자가 피보호자에게 결정권을 허용하는 선은 보통 사회 분위기를 따라갔다.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분위기면 허용했다. 성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면 허용하지 않았다. 기독교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분위기면 허용하고, 기독교 성 엄숙주의에 의해 성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면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나 유교의 지배에 의해 미성년에게 성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게 되게 된다. 보호자마다 태도가 달랐기에 피보호자인 미성년도 결정권이 달랐다. 보통 보호자가 허용하지 않는 결정권은 학습, 성, 정치 참여, 범죄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회는 파탄났다. 미성년 때 결정권을 행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년이 되어 결정권을 행사하려고 하니 할 줄 몰라서 안하게 되는 것이다. 학습은 권력 획득을 위한 문제 풀이 말곤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성은 터부시 되어 성에 관련된 것이 전부 규제 검열 억압이 되는 것으로 성년이 되고서도 이성 관계를 부정적으로 볼 정도가 되어 현재 20대 초반 연애율은 26% 정도다. 정치 참여를 해본적이 없어 투표도 제대로 안한다. 범죄의 경우는 관련한 것을 무조건 막기만 해서 아예 대응 방식을 몰라 이용당하는 일이 수두룩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파탄난 것이다.


힘의 작용으로 보면 이렇다. 미성년은 원시 질서를 크게 강제하면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성년이 되고 나서도 원시 질서를 크게 강제하면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만들었다. 권력자가 결혼, 출산, 직업 등을 결정하여 강제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돌아갔다. 현재는 성년이 되고 나서 원시 질서를 크게 강제하지 않으면서 성년 스스로가 다양한 것 결정하게 되면서 힘의 작용이 사방팔방 일어나게 되었다. 성년은 결혼, 출산, 경제 활동 등을 할줄 몰라서 하지 않거나 가치관에 따라 하지 않게 되었다. 


가치관은 돈이 권력이 되면서 돈을 버는 행위에 공포 -> 도피 논리가 적용되면서 광적으로 집착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포자기하고 무기력하게 살게 되었다. 욕망은 대부분 제거되고 공포에 의해 돈에 집착하거나 공포에 의해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에 의해 힘의 작용이 일정할 수는 있어도 그게 사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랑을 매매하는 상대를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사회가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결정권을 줄 거면 미성년 때부터 다 결정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야 했고, 결정권을 주지 않을 거면 성년 때에 일과 짝 등을 전부 정해줬어야 했다. 본인 인식으로 사물을 볼 게 아니라 힘의 작용을 이해하길 바란다. 가치와 질서를 이해하면 경제 등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시 질서에서 폭력이나 살해 같은 것에 거부감을 느끼도록 공포를 주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공포를 느끼는 인간은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잡아먹힌다. 이는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 가정에서는 가정 폭력, 사회에서는 범죄. 원시 질서는 공포로 따르게 하는 것으로 약자로 만들어서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에게 잡아먹일 수밖에 없다. 폭군에 지배되는 인간이 윤리에 의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처럼 난폭한 학생에게 지배되는 인간이 윤리에 의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윤리를 강조하며 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직접 팔 다리 부러뜨리고,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한 것을 보고 화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윤리가 절대적 가치다보니 학교 폭력이 나타나면 보다 더 학생에게 윤리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보다 공포가 강하게 심어진 인간은 일상적인 인간 관계에서 타인이 상처입을 것을 과하게 두려워하면서 관계를 아예 포기한다. 본인이 상처 입을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타인이 상처 입을 것이 두려운 것이다. 공포, 타인을 해치지 말아라. 도피, 타인과 만나지 않는다. 한국인이 과도하게 겸손한 것은 공포로 겸손으로 도피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폭력의 피해자가 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공포에 의해 만들어진 약자들이 늘어나면서 공포를 무시하는 인간은 더 난폭하게 된다. 그러면서 미성년 강력 범죄는 늘어난다. 윤리를 강조할수록 약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활동이 감소하는 것으로 범죄율은 감소하나 그런 약자를 잡아먹는 인간이 보다 과격해지면서 강력 범죄는 늘어난다. 윤리에 의해 심어진 공포로 약자가 된 인간은 폭력뿐만 아니라 공포 -> 도피 원리를 활용한 불법 종교, 사기, 공갈 등에도 취약해진다. 애초에 윤리가 공포로 약자로 만들어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은 자연스럽다.


난폭한 미성년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성년은 결정권이 없어 일방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대응 자체를 못한다. 그걸 아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 미성년은 대놓고 법을 악용한다. 촉법이니까 형사 처벌 받지 않지? 고3이니까 처벌 수위 낮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 미성년을 보고 보다 더 윤리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성 터부시는 더욱 더 강해진다. 공포를 느끼는 미성년은 더욱 억압된다. 재미있는 상황이 되었다. 윤리 영향이 크면 범죄율은 줄어드는데 연애율도 줄어든다. 윤리 영향이 적으면 범죄율은 늘어나는데 연애율도 늘어난다. 무슨 성을 범죄마냥 취급한 결과 범죄와 연동되게 되었다.


원시 질서가 원래 그렇다.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한다. 그런데 무서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 무섭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질서가 붕괴한다. 그런데 더 무섭게 하면 개인의 권리가 하나씩 침해된다. 원시 질서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 때문에 무서워하는 인간의 권리는 더더욱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왕정이라면 어차피 왕과 일부를 제외하면 주권이 없었으니까 문제가 크지 않다. 그러나 민주정이라면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으므로 개인의 권리 하나씩 파괴되는 것으로 체제 붕괴가 되게 된다. 원시 질서는 존재만으로 개인주의 체제를 파괴한다. 이런 질서로는 결코 자유 이념이 실현될 수 없다.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원시 질서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온갖 형태의 차별은 기본적으로 원시 질서를 기초로 한다. 한국에서 돈의 가치가 높은 것은 돈이 권력을 얻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는 국가와 죽음을 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미국의 영향이다. 돈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최강국이 돈의 가치를 보장하는 시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강국의 힘의 상징인 돈의 가치는 국가 권력에 의해 부풀려진다. 지극히 유교적인 상황이다.



양심 메커니즘을 이해했다면 성을 터부시한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이제는 알 것이다. 이성 관계에서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리상 자연스럽다. 성 터부시는 남녀칠세부동석과 여성의 정조 관념으로 정조 관념에 의해 특히 여성이 더 많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여성은 이성 관계에 있어 수동적이게 된다. 요즘 용어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보호자 동의 없이 성관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에게 가스라이팅 한 것이다. 정조를 지키지 않는 것은 죄다. 그게 강하게 주입할수록 비틀린 욕망이 표출되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이성의 동성애 창작물을 즐기는 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유명하다. 이성 관계가 죄다 보니 이성의 동성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인간이 이성 관계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창작물, 아이돌, 짐승 등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유사 연애 산업을 즐겨서 이성 관계가 멀어진 게 아니라 성을 터부시하여 이성 관계가 멀어지니까 유사 연애 산업을 즐기는 것이다.


가부장제 가치관을 가진 여성주의자들이 이성과의 성관계에 죄책감을 느끼니까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것이다. 같은 가부장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그런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여성 정조 관념과 여성 권력에 의해 남성 성적 대상화나 남성 성 상품화에는 또 반대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남성이 여성 성 상품화를 즐길 수 없고 여성이 남성 성 상품화를 즐길 수 있다 하여 이것을 남성 차별로 보면 안 된다. 생산자가 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받자 소비자가 소비를 못하는 것을 보고 이걸 소비자 차별로 보면 어떻게 하나. 여성성이 억압 받으니까 남성이 소비를 못하는 것이고 남성성이 자유로우니까 여성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상적인 이성 관계가 되기 어려웠다. 과거에는 권력자가 결혼과 출산을 다 결정해버려서 판단하지 않고 가부장제에서 지배되며 그냥 살았다. 현재는 권력자가 결정하지 않았으면 스스로 그걸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미성년 때 성관계를 다 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했어야 했는데 윤리라면서 성을 터부시하면서 성에 관련한 모든 것을 다 규제하고 검열했다. 윤리를 절대적 가치로 인식하지 않으면 이 과정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저출산은 그냥 윤리에 의한 결과다. 학생일 때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여성의 정조 관념을 주입하며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막지 않고 권장하여 이른 결혼을 하게 했다면 대부분 연애 결혼하고 출산했다. 


체제 적응 실패로 사회 파탄난 것뿐만 아니라, 원시 질서에 의해 체제의 가치는 망가졌다. 자유주의 체제는 자유가 억압되고 민주주의 체제는 주권이 침해되고 시장주의 체제는 시장이 훼손된다. 체제에 속하기로 판단한 이상 체제 가치를 기준으로 정책과 제도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윤리를 기준으로 정책과 제도가 나왔다. 정의롭게 자유를 억압하고 정의롭게 주권을 침해하고 정의롭게 시장을 훼손했다. 윤리에 의해 피해를 받는 인간조차 그게 윤리 때문인지를 몰랐다. 윤리에 의해 규제되고 검열된다. 윤리에 의해 결정권을 빼앗긴다. 윤리에 의해 비리와 담합이 정당화된다. 권력이 달라지고 디지털이 있어 성년의 결정권이 많이 보장되어도 사실상 한국은 아직 윤리에 의해 유교 사회, 가부장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 사회 인권


[인권: 1.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권리 1.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 



Q. 인권과 권력의 차이를 알아보자.


민주정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인권이란 주권의 온전한 행사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 그것을 통해 국가에 속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 어떤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방법을 아는 것은 필수적으로,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통치 교육은 필수적이다. 자아, 가치, 질서, 체제, 체계 등에 대한 교육을 했어야 했다. 자유와 민주와 시장 등을 알게 했어야 했다. 윤리로 두렵게 하는 게 아닌 사회 계약을 하게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가 되었어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주권자를 통치자로 보고 있지 않다. 원시 질서에 의해 민주주의 체제를 왕이 백성을 궁휼히 여기듯이 윗사람이 아랫사람 보살펴 권리를 보장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냥 체제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원시 질서를 가르치며 말만 잘듣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정권을 가지고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입시 교육만 하면서 대학과 직장에 잘 가기만 하려고 하고 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라면 현재 정치 권력을 가진 인간이 일제히 사표를 내도 즉각 대체가 가능할 정도로 모든 개인에게 사회와 체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고 그냥 왕을 뽑는 권리를 주는게 민주주의라 생각하니, 선거 때만 민주주의가 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귀족적 의회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민주정과 독재정을 비교하면서 현명한 독재자가 차라리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주권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주권자는 통치 교육을 받지 못하여 정상적인 주권 행사를 할 수 없으므로 정상적인 주권이 있다 하기 어렵다. 주권은 인권의 기본이므로 정상적인 인권이 있다 하기 어렵다. 원시 질서에 의해 유교 사회에서 권력만 분산되고 기술이 발전된 형태가 현재 한국이다. 그것으로 선거권이 있는 인간은 다소 자유로워진 것. 선거권이 없는 미성년은 아직도 지배되는 것. 디지털 내에서는 잠시 동안 원시 질서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 이것을 기초로 사회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인권이 없다면 도대체 인권 운동이란 무엇인가? 권력 투쟁이다. 현재 대부분 인권 운동은 인권 운동이 아닌 권력 투쟁이다. 인권과 권력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고 권력은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다. 통상 권력을 가지고 인권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지는 않는다. 인권이 목적이고 권력이 수단이어야 하는데 반대다. 인권이 수단이고 권력이 목적이다. 지극히 유교적인 상황이다. 그러니까 인권은 그대로인데 권력만 높아지고 있다.



노동 인권 운동의 본질은 자본가를 정적으로 규정한 노조 권력 투쟁. 노동자를 지배하던 생산 제도에서 노조 권력만 높아진 결과 - 귀족 노조.


여성 인권 운동의 본질은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한 여성 권력 투쟁. 가족 구성원을 지배하던 가부장 제도에서 여성 권력만 높아진 결과 - 1등 시민. 


미성년 인권 운동의 본질은 보호를 명분으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보호자 권력 투쟁. 미성년을 지배하던 교육 제도에서 보호자 권력만 높아진 결과 - 금쪽이.


귀족 노조와 1등 시민과 금쪽이는 내가 붙인 게 아니라 세평이다.



노동 인권 운동은 현재 생산 제도는 그대로 두고 노조 권력을 통해 이익을 얻을 권리만 주장해왔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노조 권력이 커지기만 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높은 임금과 우수한 복지가 주어지고 있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파견 등은 여전히 낮은 임금과 빈약한 복지가 주어지고 있다. 애초에 노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노조가 없어도 모든 개인은 마땅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조는 단지 담합의 규정화로 일부 노동자만 이익을 볼 뿐이다. 노동 시장의 계약은 간단히 단기 계약과 장기 계약으로만 있으면 된다. 그 계약을 돕는 기관과 계약의 강제력이 높으면 된다. 



여성 인권 운동은 현재 가부장 제도는 그대로 두고 여성 권력을 통해 이익을 얻을 권리만 주장해왔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여성 권력이 커지기만 했다. 가부장제에서 미성년이 천대되었듯이 여성도 천대되었다. 여전히 여성은 천대되고 있다.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배려와 보호를 말하며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 진출에 불리해졌다. 왜 힘들고 어려운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권리 침해인지 이해하려면, 교육으로 이해하면 된다. 교육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것이 개인의 권리다. 여성주의자들은 원시 질서에 의한 양심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가부장제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그런 취급하는 여성성을 성인지 감수성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라고 강요하고 다녔다.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는 가부장제에 근거한다. 가정은 여성의 역할이란 가부장제적 고정 관념의 결과다. 그런데 여성주의는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한 권력 투쟁이다. 대놓고 남성 권력과 싸우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여성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 여성이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정치 참여가 높은 세대에 관심을 주고 고위직 할당 등을 한다. 그렇기에 가정에 속하는 문제는 전부 여성 권력 획득 수단이 된다. 그러면서 어느 것도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못한다. 단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하라니까 비혼 주장하고 다니지 않았는가. 그것을 여성 인권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여성 권력 문제로 접근하면 이해를 할 수 있다.


남성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은 남성을 권력 투쟁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남성 혐오가 아닌 정적 혐오로 보면 된다. 흔히 신세대는 남성 인권이 낮고 여성 인권이 높다고 하면서 불평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남성 인권은 높고 젊은 남성 권력은 낮다.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남성 인권 자체는 높다. 그러나 여성주의에 의하여 정적으로 규정된 젊은 남성 권력은 낮은 상태다. 반대로 여성 인권은 낮고 젊은 여성 권력은 높다.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 인권 자체는 낮다. 그러나 여성주의에 의하여 주류인 젊은 여성 권력이 높은 상태다. 


대상 전체가 인간으로서 권리가 보장되느냐와 특정 대상이 권력이 높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노예 계층에서 특정 누군가 힘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른다고 그 노예 계층의 인권이 높은 게 아니다. 신분제 두고 노예에게 이익 준다고 인권 보장된 게 아니란 말이다. 인권과 권력의 차이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인권이 낮으니까 여성 징병도 되지 않는 것이다. 가부장제 가치관으로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이다. 모든 혜택이나 복지 지원 등 전부 기본적으로 가부장제를 기초로 한다. 스윗한게 아니라 가부장적인 것이다. 거기에 여성 권력이 더해지면서 과도한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체제에 합리적어야 한다. 할당제를 할 게 아니라 우수한 교육을 해야 하고, 여성 징병 하지 않을 게 아니라 여성 1%가 징병이 되더라도 일단 제도적으로는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성별 갈등은 적대 당의 정치 공작에 의한 정당 갈등으로 이해하면 된다. 대놓고 여성주의가 남성 권력과 투쟁하겠다고 외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것이 인권 운동이라 주장한 것에 휘말려 현상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사회가 대응을 못한 것이다. 권력 투쟁 중인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권력을 주니 권력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이것이 정쟁임을 이해하지 못하여 젊은 남성은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당했다. 수많은 여성 혜택은 정쟁 승리의 결과물이다. 그러면서 이성 관계는 더욱 파탄났다.



미성년 인권 운동은 현재 교육 제도는 그대로 두고 보호자 권력만 높아졌다. 애초에 미성년은 성년보다 인권이 없다. 인권은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인데 그것이 보호를 명분으로 지배하면서 결정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촉법 등의 문제로 미성년이 강한 권리가 있어 보일 수 있는데, 미성년에게 인권이나 권력이 있는게 아니라 미성년 문제를 다루는 보호자에게 권력이 있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결정권. 누군가 이익을 본다고 인권이나 권력이 있다 여기면 안된다. 결정권을 기초로 봐야 한다.


미성년이 처벌을 받지 않거나 적게 받아 제멋대로 한다고 해서 권력이 높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정권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어떻게 권력이 높을 수가 있겠는가. 보호하겠다며 지배하는 지배자 권력이 높지. 권력이 낮으니까 순장되듯 동반 자살을 위해 살해되고 부부싸움에서 장난감처럼 집밖으로 내던지게 되고 재미로 짖밟히고 되는 것이다. 현재 미성년 위치가 키우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결정권이 보호자에게 있으니까 보호자 권력에 의해 미성년이 보호가 될 수도 있고 장난감이 될 수도 있다. 보호자가 미성년을 짐승과 대등하게 키우는 일이 있어 인간 아이와 짐승 아이로 구분하고, 짐승을 더 아끼는 사례도 있을 정도다. 보호자가 짐승을 인간 취급하면 인간이 되고, 미성년을 짐승 취급하면 미성년은 짐승이 된다. 이러다보니 보호자 없는 미성년은 제대로 살기 어려우나, 때로는 차라리 보호자가 없는게 살기 쉽다.


진짜 개인을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로 봤으면 정치 참여 교육을 위해 적어도 2차 성징이 시작하는 10세부터 선거권을 주고 체제 교육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자유도 모르고 민주도 모르고 시장도 모른다. 생산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정치도 모른다. 성을 알려 해도, 일을 하려고 해도 무조건 막는다. 보호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결정권이 없어 일방적으로 지배될 뿐이다. 그러다보니 그저 원시 질서로 말을 잘 듣게 하고 입시 교육만 한다. 물론 보호자마다 다른 걸 가르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렇기에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중이다.


검열 기관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우습다는데, 권력을 기초로 보면 자연스럽다. 권력이 높으면 검열이 적고 권력이 낮으면 검열이 많다. 그냥 권력이 윤리라는 것을 알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검열 기관은 성을 터부시하며 정의롭게 규제하고 검열하면서 성 관련 가치를 망가트리는 것으로 정의롭게 국가를 자살시키고 있다.



인권 운동이 권력 투쟁이 되면서 인권이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면서 권력을 얻기 위한 과대 포장이 발생했다. 분식 회계하듯이 가치를 부풀려서 보다 높은 이익을 얻는다. 그것을 통해 권력을 늘린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난이도가 높아진다. 허들이 높아진다. 참여율이 감소한다. 노동 참여율이 감소한다. 결혼 및 출산 참여율이 감소한다. 보호자를 상대하는 교육 기관 및 의료 기관 참여율이 감소한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제에서 여성 권력을 얻기 위해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던 일을 과하게 어렵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있다. 가사 노동의 가치를 월 500만원 또는 전체 500조원에 상당한다는 듯이 말이다. 남성이 가사 노동을 하면 논다고 비하하면서 여성이 가사 노동을 하는 건 또 엄청 가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것으로 과한 이익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통해 여성 권력을 늘려나간다. 그러면서 가사, 육아, 교육 전부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허들이 높아져 참여율이 감소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와 비용을 낮춰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 관련된 것은 여성 권력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와 비용을 되려 높였다. 가사는 월 500만원 이상의 가치고, 결혼은 무조건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고, 출산은 무조건 2주 400만원인 산후조리원에 가야 하고, 육아는 잠깐 자거나 자리를 비우는 것도 허락받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고, 교육은 무조건 높은 교육비를 써야 하는 일처럼 만들었다. 엄청나게 어렵고 힘들며 사회에 공헌하기에 그걸 하는 본인이 위대하고 고상하여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엄청 권위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미성년 보호자를 상대하는 교육 기관과 의료 기관이 기겁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러면 당연히 참여율이 감소한다. 


그럼에도 여성 권력을 위해 이것을 막기는커녕 이런 것을 위해 복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복지를 지원해도 여성 권력을 위해 난이도와 비용은 거기에 맞춰 더 오를 수밖에 없다. 한없이 오르는 난이도와 비용에 의해 국가 세금은 한계에 도달하고 참여자는 더더욱 줄어든다. 과도한 난이도와 비용에 매달리면 사회가 버티질 못한다. 난이도와 비용을 낮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여성주의는 권력을 성별로 차지할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차지해야 한다. 


의료와 출산은 권력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치를 부풀려져 둘 다 난이도와 비용이 높은 상태다. 보통 의사는 이익이 높아 선호되고 그 중에서 난이도와 비용 대비 이익이 높은 과에 몰리고 낮은 과는 기피된다. 보통 임산부는 성 터부시에 의해 아기, 육아 등의 가치가 낮아져 이익이 높지 않아 기피된다. 


얼마나 성, 이성, 성애, 그것을 통한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떠들고 다녔으면 여고에서 출산하겠다는 이가 적고, 출산하더라도 여성 아이를 원한다는 의견이 많다. 여성 권력에 의해 이것을 방치 하기는커녕 적극 지원했으니 저출산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한국 저출산은 간단하다. 성 터부시 + 미성년 결정권 없음 + 성년 결정권 있음에 의한 것. 거기에 이성을 정적으로 규정하고 여성이 하는 일을 권력 투쟁 수단으로 삼으면서 난이도와 비용을 올리는 것으로 저출산이 확정된 것이다. 자유로워지면서 출산율이 2가 넘다가 1이 되었고 여성 권력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1이 넘다가 0.7이 되었다.


자꾸 돈, 경제, 부동산, 수도권 집중 이런 것을 말하는데, 이런 것은 힘의 작용에서 결과에 위치한다. 가치가 힘의 작용을 결정하는데 왜 힘의 작용에 의한 현상을 말하는건가. 결혼과 출산에 가치를 못느끼면 200만원 벌던 인간이 300만원을 벌면 취미 비용 생기는 거고, 300만원 벌던 인간이 400만원 벌면 집살 돈 생기게 된다. 한 500만원 이상 벌면 다른 거 다 하고 결혼해볼까 생각이 들게 된다. 이게 지금 결혼 가치가 높아서 그런 것 같은가? 부유하고 여유가 있는 인간이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 가치가 높은 거라 착각하는데, 가치가 낮으니까 부유하고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짐승용 유모차 판매량이 인간용 유모차 판매량의 두 배가 되었다고 한다. 짐승 키울 돈은 있고 아기 키울 돈은 없다. 이것은 짐승 애정은 있어도 아기 애정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다 성 터부시하고 이성 관계 박살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도대체 명품 소비율 1위 국가에서 무슨 경제 타령을 하는 것인가. 아이돌 보러 갈 돈과 시간은 있고 연애할 돈과 시간은 없다. 여행 다닐 돈과 시간은 있고 결혼할 돈과 시간은 없다. 집 살 돈은 있어도 애 낳을 돈은 없다. 이게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가치관 때문이 아닌가!



낚시를 예로 들어보겠다. 낚시 하기 싫은데 자꾸 하자고 꼬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건이 붙는다. 대신 비용은 네가 다 내. 낚은 거 팔아서 내가 사고 싶은 거 사자. 나 잘테니까 운전해. 하기 싫은 걸 하라니까 난이도와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이유는 애초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남녀칠세부동석과 여성 정조 관념으로 가치관이 부정적으로 되어 공포를 느끼고 하기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눈이 높아진 것의 본질은 SNS가 아닌 성 터부시에 의한 성에 대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다. 하기 싫은 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고 싶었으면 헌팅하는 남성과 같이 마음 편하게 애정을 느끼는대로 적극적으로 성관계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게 되어 있다.


하고 싶지는 않은데 다른 사람들 보고 환상만 갖는다. 하고 싶지 않으니까 더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하고, 그 조건이 충족되는 인간이 나타나기만을 바란다. 이런데 얼마나 임금 올리고 육아 참여 늘려야 해결되겠는가? 최저임금을 월 500만원 주고 남성 육아 참여를 하루 8시간 강제해야 하는가? 그러면 사회 파탄난단 말이다. 가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가치 개념을 이해해야 이걸 이해할 수 있는 거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 관광지나 시장 가치 폭락시키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같은 저출산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랬으면 인간은 진작에 멸종했다. 그냥 나둬도 알아서 번식하는데 그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어떤 인위적인 현상에 의한 것이다. 그게 바로 윤리다. 저출산 일어나도록 열심히 성 터부시하며 야한거 검열하고 미성년 성관계 못하게 장소 막아대고 성교육 반대하고 뭐 다 해놓고 모른채하는가? 만화에 약간의 노출만 나와도 검은 칠해버리고, 스팀에 올라온 성년이 즐기는 게임조차 차단하지 않았는가? 왜? 그렇게 해서 원하는대로 보호자 눈 밖에서 미성년이 멋대로 연애하고 성관계하고 결혼하는 거 막았잖는가? 그렇게 해서 성년이 되고서도 보호자가 짝을 지정하며 강제하지 않으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게 되지 않았잖는가? 원하는대로 되었는데 왜 불만을 가지는가?


노출이 있는 간판에 발작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에 발작하지 않았는가? 성적인 예술에 발작하고 성적인 창작물에 발작하지 않았는가? 포르노와 성매매를 막으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지 않았는가? 양심 메커니즘에 의해 정의롭게 성을 다 부정하고 다니지 않았는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기만 해도 처벌하라 외치고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죄악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미성년은커녕 성년조차 성적 자유를 누리면 문제가 심각하다 떠들지 않았는가? 여성이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기 위해 꾸미는 것도 죄악이라 하지 않았는가? 아내가 남편에게 도시락 싸주는 것도 노예라 말하며 비난하지 않았는가? 여성 성년조차 그루밍이니 가스라이팅이니 말하면서 이성 관계에서 일방적 약자로 만들어 대등한 이성 관계를 막지 않았는가? 현재 저출산은 그냥 권력이 원하는대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에서 원시 질서로 연상에게 반말하는 것도 두려움에 가질 정도로 일상적인 공포 속에서 덜덜 떨며 도피하게 만든 결과가 바로 사회의 죽음이다. 유교 질서에 맞는 정의로운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위아래 없는 사악한 평등을 긍정하려고 했으면, 체제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어야 했다. 가치와 질서 개념을 이해했으면 미성년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성을 알고 즐기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기능이 작동하는 시기부터 가져야 한다. 2차 성징이 되면 바로. 그래야 성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이성 관계를 맺으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한다. 그러지 않고 유교의 가르침대로 정의롭게 개인의 성을 지배하려고 하니까 다 파탄났다.



[C. 민주적인 정교일치] 이란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군사 독재가 끝나자 신정 국가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인 정교일치 사회다. 국민 대다수가 정교일치를 주장하면 민주적으로 정교일치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에 의한 개인 권리 침해가 발생한다. 이는 윤리도 동일하다. 윤리 자체가 종교에 의한 것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자. 개인이 윤리를 강조할수록 민주적으로 윤리에 의한 사회가 된다. 그것은 곧 정교일치 사회라는 것이 된다. 현재 한국의 억압은 민주적으로 유교 정교일치가 일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정교일치 현상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규제하고 검열하면서 정의로운 국가 자살을 민주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 현상은 많은 선진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정교분리가 되려면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 문명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3) 질서 진보


[진보: 1.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Q. 질서의 진보와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하려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공포 -> 도피인 질서 원리에서는 강제되는 공포를 기초로 힘의 작용을 제어했다면 판단 -> 계약인 문명 질서에서는 자유로운 판단을 기초로 힘의 작용을 제어해야 한다. 전혀 다른 개념이다. 기존처럼 무섭에 하기만 하면 잘될 거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하다.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 못하고 절대적 가치를 마치 선천적인 것마냥 취급할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고 질서를 바꾸는 진보를 해야 한다.


현재 많은 이들이 희생하는 일을 포기하고 돈을 많이 주는 일을 하러 가고 있다. 이는 공포 -> 도피인 원시 질서가 판단 -> 계약인 문명 질서로 변화하는 흐름보다는 돈이 권력이 되자 윤리에 의해 공포 -> 도피로 돈을 좇아가게 된 것이다. 윗사람 명령이 권력이었을 때에는 명령으로 일을 하였으나 돈이 권력이 되자 돈으로 일을 한다. 과거 명령이 아닌 일은 하지 않았듯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명령의 가치와 돈의 가치, 그리고 개인의 고유한 가치. 이 중 세 번째가 문명 질서다.


돈의 가치가 다른 국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공포에 의한 것이다. 권력이 없으면 지배될 거야. 무서워 권력을 얻어야지. 돈이 없으면 지배될 거야. 무서워 돈을 벌어야지. 차이가 없다. 뭔가 한국 사회 현상을 달리 볼 게 아니다. 다 유교를 기초로 한다. 그정도로 유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반말, 존댓말도 버리지 못한 국가에서 무슨 유교 지배에서 벗어났겠는가? 물론 반말, 존댓말 버릴 수 있는 인간이 있듯이 예외는 있다.


미성년 때 결정권이 없어 온갖 가치가 엉망이 되어 돈이 최고 가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계약한다. 이는 연애나 결혼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성 관계 가치가 성 터부시로 무너지면서 돈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계약한다. 순수하게 일이 좋아서, 상대가 좋아서 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권력이 윤리인 것과 돈이 권력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현상이 보인다. 한국 사회가 조선 사회와 다른 것 같지만 성년이 선거권을 가져 원시 질서에서 발언권이 어느 정도 인정 된 것이고, 미성년은 선거권이 없어 원시 질서에서 발언권이 인정되지 못한다. 어린 애가 무슨, 건방지게. 뭐 이런 식이다. 미성년의 권리는 어디까지나 권력이 있는 보호자 내에서만 보장된다. 사실상 한국 질서는 유교의 원시 질서로 조선 질서와 농도가 차이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다. 이제 이런 인간을 지배하는 질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공산주의와 같이 권력 투쟁을 충동질하고 평등을 명분으로 개인의 주권을 포기하게 만들어 공산당의 지배를 받게 만든 사상이나, PC주의나 여성주의 같이 인권을 권력 투쟁의 도구로 삼은 사상들은 진보가 아니다. 질서의 진보를 위해 어느때보다 인문 계열이 열심히 해야할 때다. 




첫째, 자유주의 체제.


윤리의 필요가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해서 질서를 만드는 것에 있으니까 힘의 작용을 제어할 수 있으면 굳이 윤리는 필요가 없다. 공포 -> 도피에서 판단 -> 계약으로 질서를 바꾸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개인의 자유가 성립된다. 비과학적인 가치의 절대성을 배제하고 과학적인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한다. 질서는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존재에 속하고자 하는 판단과 그에 따른 계약으로 힘의 작용을 일정하게 하여 성립시켜야 한다.


원시 질서는 용기를 줘서 자유롭게 살게 하는 게 아니라 공포를 심어서 복종하며 살게 만드는 역겨운 질서다. 원시 질서에서는 절대적 가치에 의해 판단하지 않고 광기 속에서 몰매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것을 해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듯이 행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도 윤리 앞에서는 무시되게 된다. 성, 마약, 불륜 같은 사건이 나타나면 정의롭게 법치를 파괴한다. 원시 질서에서는 그 어떤 현대 체제도 부정되어 훼손된다. 체제의 파괴는 체제에 사는 인간의 파멸. 이제는 문명 질서로 진보하여 용기를 가지고 자유롭게 판단하여 계약을 지키는 것으로 질서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원시 질서가 익숙하다보니 인간 관계에서도 서로를 무섭게 해서 따르게 하려는 태도가 나오고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어떤 공포를 느끼고 강박적으로 하려는 태도가 나온다. 인간 관계에서 공포를 느낄 때, 단순한 공포 -> 명령이라면 반항이나 저항을 할 수도 있지만 공포 -> 도피라면 반항이나 저항이 아닌 신앙이나 추앙을 한다. 그것이 설령 지옥이란 만들어진 공포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공포에서 도피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추앙된다. 분명 공포는 생물 메커니즘 중 하나로 없어질수는 없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만들 수는 있다. 공포로 판단하지 못하면서 공포로부터 도피하게 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데, 그것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가치는 상대적으로 절대적 가치는 전부 비과학이다. 


다양한 규제와 검열을 과학과 체제를 기초로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은 계속 발전하는 분야로, 이곳에 무분별한 규제와 검열을 하다보면 세계 흐름에 뒤쳐질 수 있다. 힘의 작용을 이해하고 판단 -> 계약에 따른 질서가 성립될 수 있도록 한다. 주로 규제와 검열되는 가치에 속하는 성은 미성년이라 하더라도 야한 것 좀 보거나 성관계 좀 한다고 사회나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성년일 때 적극적으로 보고 그걸 긍정적으로 여겨야 자연스럽게 이성과의 성관계 속에서 연애, 결혼, 출산이 가능하다. 지금과 같이 성을 터부시하고 여성성이 여성 권력의 도구가 되면 지나치게 허들이 높아져 참여자가 너무 적어진다.


지역 소멸은 저출산과 지역 이동에 의한 현상이다. 그리고 저출산과 지역 이동은 둘 다 윤리에 의한 현상이다. 원시 질서 때문에 이성 관계가 붕괴하여 명령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도 이뤄지지 않고, 원시 질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 눈 앞의 지배가 싫어 벗어나기 위해 원시 질서 농도가 짙은 폐쇄 사회에서 벗어나 원시 질서 농도가 옅은 개방 사회인 수도권으로 몰리게 된다. 본래 권력이 윤리인 사회에서는 권력을 얻는데 좋은 장소로 몰리긴 하나, 한국이 되어 개인주의 체제 도입 후 성년에게 결정권이 보장되면서 그 현상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경제적인 현상은 그 가치에 의한 결과다.


윤리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므로 원시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애초에 지역 소멸은 막을 수가 없다. 대기업이 상주한 지역에는 사람이 몰리기는 하는데, 그것은 애초에 지역을 기피한 이유가 지역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있는 곳은 사람이 몰려 보통 개방 사회이고, 고용되는 인원의 연령대가 비슷하여 폐쇄 사회에 비하면 원시 질서에 의한 지배 체계가 그나마 덜하다. 그러므로 지역 소멸을 막겠다고 자원을 쓰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이 없다. 


저출산이나 지역 이동이 이익을 위해서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익은 가치관으로 결정된다. 윤리는 판단하지 않고 행하는 절대적 가치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에 속한다는 인식이 없을 수 있는데, 가치에 속한다. 이익은 가치와 힘의 작용 사이에 가치 판단의 결과로 가치가 먼저 작용한다. 저출산과 지역 이동은 그것이 이익이란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성을 터부시하여 성에 양심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죄책감을 느끼고, 성 결정권이 없어 학습하지 못하고, 여성 권력으로 난이도와 비용을 올리면서 그것이 손해란 결론이 나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 만약 하더라도 조건을 보게 된다. 이런 사회 문제는 원시 질서에서 문명 질서로 진보해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민주주의 체제.


통치 교육과 통치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사회에서 사는 인간이 사회 체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더구나 주권을 가진 인간이라면 통치를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더욱 더 정상이 아니다. 자아와 체제를 이해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면 스스로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가 성립한다.


현재 토지 민주주의에서는 토지 소유자가 적어 이해관계 성립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개인의 정치 참여가 줄어 민주주의 체제 이념 실현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에게 주권이 있음이 성립되려면 모든 개인이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모든 개인과 이해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역할 민주주의가 되어 분야의 대표가 정치 권력을 쥐어야 한다. 도시에서 지역 대표는 생판 남일 확률이 높지만 분야 대표는 적어도 아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게 진짜 중요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이 주권자의 대표라니 이게 얼마나 비정상적인가. 이건 그냥 왕과 귀족을 뽑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개인이 주권을 가지는 것이 성립되려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통치 교육과 역할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셋째, 시장주의 체제.


사회에서 차별은 모든 개인은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라는 것을 이해해야 끝난다. 일방적 착취도 일방적 희생도 없다. 능력이 있는데도 무시하고 선출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능력이 없는데도 할당하는 것도 차별이다. 물론 이것은 강제될 때의 이야기다. 시장 내에서는 소비자 권리가 보통 우선된다. 법적으로 차별에 관한 규정이 있으나 체제를 기준으로 보면 완전한 사기업일 때에는 자유롭게 판단하여 고용하는 것이 타당하고,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일 경우에는 차별하지 말라는 정부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공정 경쟁에 있어 기준은 소비자다. 시장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대상에게 경쟁적으로 구애하는 것과 같다. 경쟁에 이겨 소비라는 사랑을 받기 위해 가격대비 품질과 서비스가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통상 경쟁 승리자와 소비자가 이익을 보는 것이 시장이다. 기준이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것은 단순히 담합의 규정화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책, 우유, 영화 등 전부 생산자를 생각하다 소비자가 손해를 본다. 거기에 노조, 협회 등의 주장에 생산자를 우선하는 것도 포함된다. 


노동 임대 상품을 구매하는 기업이 이익을 보게끔 하면 노동자가 착취를 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는 기업을 억지로 살리면서 사회 자원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업이 사라지고 유능한 기업을 늘리면 점점 경제가 활성화되고 노동자 대우도 좋아지게 된다. 


시장에서 소비자를 기준으로 선택받지 못한 생산자는 경쟁에서 뒤쳐져 시장이란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한다. 그 다음에 복지를 통해 경쟁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서 시장을 활성화하고 시장 참여자 능력을 올리면서 경제를 성장하게 한다.


시장 거래는 계약을 기초로 되어야 한다. 현재 고용 체계는 대등한 계약이 아닌 대등하지 않는 종속이다. 리턴과 리스크를 고려해 단기 계약과 장기 계약으로 나누고, 시장 감독 기관은 정당한 계약과 계약 준수가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면 된다. 임금 체계도 연공 서열에서 벗어나 역할 중심을 통해 기여도만큼 지불되어야 하고, 포괄임금제를 폐지하여 일한만큼 지불되어야 한다. 특수한 직종은 따로 예외처리해야지 그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아직 공포 -> 도피인 원시 질서라 판단 -> 계약을 무시하는 일이 너무 많다. 계약과 무관하게 동작하는 질서가 있기 때문에 계약이 무시되는 것이다. 윤리 같은 게 질서니까 체제를 다 무시하게 된다. 계약의 중요성보다 권력의 권위가 중요하니 멋대로 계약을 파기하고 큰 위약금을 지불하고 있다. 체제로 사는 게 아니라 윤리로 살고 있다. 지극히 반체제주의적이다.


인간 -> 가치 -> 힘라는 힘의 작용을 이해했다면 가치 판단에 의해 생산으로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지배 사회였다면 개인의 가치 판단이 되지 않고 절대적 가치나 무력으로 힘이 작용되게 되었겠지만, 자유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치 판단이 되는 것으로 개인은 가치 판단에 의해 생산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다. 모바일 게임 동기 부여가 굉장히 효율적이고 좋은 것을 고려하면, 그것을 토대로한 가치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좋다. 난이도 낮은 생산 -> 학습 -> 성장 -> 난이도 높은 생산의 반복이 가능해야 한다.


시장은 사회의 엔진이다. 시장을 효율적으로 돌리고 나서 그에 따른 문제를 다른 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솔직히 사회가 윤리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로와 불사로 어떻게든 질서 진보를 이뤄 자유 이념 실현을 해보도록 하겠다.











4. 생명


[생명: 3. 동물과 식물의, 생물로서 살아 있게 하는 힘.]


불로와 불사를 위해 생명이 무엇인지 통찰하여 발상해보겠다. 도대체 생명은 어떻게 해서 다른 물질과 다른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1) 세포 생성


[세포: 1. 생물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



Q. 세포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세포가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자.

 

몇 가지 전제를 해둬야 할 필요가 있다.


A. 우주의 법칙은 인간의 인문 언어 개념과 별개다.

B. 생명은 원시적으로 단순하다.

C. 생명은 전부 본질이 같다.

D. 물리 및 화학 학문만으로 생명 학문이 성립이 되어야 한다.

E. 기록, 재현, 우연 개념만으로 생명이 성립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조건, 수많은 생명들, 동식물, 사자, 호랑이, 토끼, 고양이, 해바라기, 벚꽃, 멜론, 딸기, 토마토 그 외 세균, 바이러스 등등에 대해 전부의 성질을 고려해 모순이 없는 무언가를 찾는 것. 그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온도의 차이, 공기 성분의 차이, 생물의 움직임, 화석, 시대별 화석 위치 등을 전부 고려하여 통찰하는 것으로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 물론 내가 그걸 전부 의식적으로 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조건을 설정하고 발상이 나올 때까지 생각할 뿐이다. 일단 발상 개념은 그렇고 실제 발상은 생물 개념이 먼저 떠오르고, 거기에 맞춰 세포 개념을 떠올리다 물질 붕괴라는 개념에 닿게 되었다. 



첫째, 세포 감각


현재 세포는 빛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느끼고 접촉을 안다. 감각을 전기 신호로 통신한다. 세포가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세포에게 물리 및 화학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기파의 생성과 수용과 활용이 가능하다. 


둘째, 세포 분열과 유전


현재 세포는 세포 분열과 유전을 통해 기록된 것을 재현할 수가 있다. 현재 그 기록은 한정적이지만, 아무것도 없이 무언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최초에는 반드시 기록이 필요하다. 그렇게 기록된 것을 재현하는 것이 분열과 유전이다. 그러므로 분열과 유전의 본질은 기록과 재현이다.


셋째, 세포와 생물.


세포와 생물은 본질이 같다. 생물이 먹고 싸야 존재할 수 있듯이 세포도 먹고 싸야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세포 또한 어딘가 결핍된 상태. 물질을 먹어 에너지를 생산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거기서 물질 붕괴가 떠올랐다.



최초 물질 붕괴 개념은 전자기파 보고 최초에는 세포 크기의 어떤 물질이 자석에 의해 붕괴했나 싶었다. 어떤 조건으로 세포가 가장 먼저 생성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발상 후 보편 지식을 알기 위해 핵붕괴를 검색해봤다. 애초에 물질 붕괴 개념을 떠올린 것이 어디선가 핵붕괴를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색해보니까 원자핵 붕괴가 있었다.


[원자핵 붕괴: 1. 하나의 원자핵이 방사선을 내어 다른 원자핵으로 변화하는 일. 알파 붕괴, 베타 붕괴, 감마 붕괴 따위가 있다.]


이것 말고는 따로 물질 붕괴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세포와 원자는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났다. 그래서 모순되나 싶었는데, [C. 모든 생명은 전부 본질이 같다.]는 것이 떠올랐다. 즉 생물에 있는 성질은 세포에 있고 세포 있는 성질은 원자에도 있다. 처음부터 원자에는 전자기파와 기록과 재현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DNA가 떠올랐다. 


[DNA: 1. 유전자의 본체. 디옥시리보스를 함유하는 핵산으로 바이러스의 일부 및 모든 생물의 세포 속에 있으며, 진핵생물에서는 주로 핵 속에 있다. 아데닌, 구아닌, 사이토신, 티민의 4종의 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배열 순서에 유전 정보가 들어 있어 그 정보에 해당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세포는 염색체와 DNA가 갈라져 복제되는 것을 통해 분열을 한다. 세포의 성질은 DNA 성질에 있었다. 그러면 DNA의 성질은 DNA 내에 있는 원자에 있을 거라 추측했다. 어떤 방식으로 핵붕괴가 일어난 원자가 이온화 입자와 방사선 방출을 통해 안정화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떤 물질을 먹고 일시적으로 안정화가 되었으나 지속적으로 방사선(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면서 계속 물질이 필요하게 되었다. 물질을 먹고 일시적으로 안정화가 되나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하여 물질을 먹어야 존재 유지가 된다. 이것으로 기본 생물 성질이 성립한다. 


물질을 먹고 물질을 통해 입자를 생성하면서 유지하다 원자핵까지 생성하면서 원자가 복제된다. DNA는 이 두 가지. 물질과 물질을 먹고 안정화된 원자. 원자는 물질을 먹고 유지하기 때문에 DNA를 구성하는 물질에 들러붙어 존재한다. 그런 원자들이 모여 DNA가 된다. 그러면서 원자에서 일어난 현상이 DNA에도 일어나게 된 것이 DNA 복제. 세포가 생명 안에서 규칙적으로 분열하듯 세포가 된 이후 원자는 세포 안에서 규칙적으로 분열한다. 물질과 에너지 또한 다른 형태도 생성하게 된다. 복제하다가 다른 식으로 복제된 것이 RNA.


원자핵 붕괴 -> 물질 흡수 -> 물질 생산과 에너지 방출 -> 안정화 -> 복제. 이 과정을 기록, 재현하여 반복한다. 기록과 재현은 에너지로 이뤄진다. 원자에서 생산한 입자가 커지고, 그것을 기록 재현하면서 염색체를 형성한다. 기록이 늘어나면서 DNA 길이가 길어진다. 흡수하는 물질 종류가 달라지면서 세포에 필요한 것이 생성된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한 원자는 사라진다. 


방출하는 에너지를 기록한 것을 토대로 빛을 보고 전기 통신을 한다. 기록된 것이 있어야 빛을 알고 전기 통신을 알 수 있다. 원자핵 내에 기록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유전 기록과 뇌 기억이 가능하다. DNA 중 정보를 갖는 부분을 유전자라 한다. 사실 그 작은 유전자나 뇌세포에 많은 정보가 보관된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는데, 원자에 정보가 보관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모든 과정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어떤 공간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이렇게 물리와 화학 학문의 지식 내에서 기록, 재현, 우연만으로 원시 세포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2) 생물 생성


[생물: 1.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 현상을 유지하여 나가는 물체.]



Q. 생물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생물이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자.


세포 형성 이전은 미시 세계에서 일어났다면, 세포 형성 이후는 거시 세계로 나아간다. 생물에 관한 최초 발상은 뿌리. 생명에 대해 생각하면서 잠을 자다 깨서 문득 떠올랐다. 동물의 혈관과 식물의 뿌리는 비슷하구나. 거기서부터 생물 개념을 발상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이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생명의 원리가 기록의 재현이라면 닭이 먼저다. 단세포 생물이라면 모를까 다세포 생물이라면 닭이 있어야 달걀을 통해 닭을 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닭과 같은 생명은 최초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가? 그것은 뿌리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다. 


원시 세포가 바다에서 또는 바다에 떨어져 어떤 물질 덩어리에 닿아 갉아먹는다. 갉아먹으면서 분열을 하며 물질 덩어리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먹고 나아가면서 세포가 일렬로 줄지어 분열되게 된다. 초기 분열된 세포들은 전기 신호로 통신할 수 있는 신경 세포들이다. 세포가 분열되면서 물질 덩어리 중심에 가서 중심 세포가 생길 때 원본 세포가 먹을 물질이 떨어져 분열된 세포의 물질을 빼앗아먹는다. 빼앗긴 세포는 분열된 세포의 물질을 빼앗아먹는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원본 세포로의 물질 이동이 성립된다. 그런 과정이 기록되면서 이후 세포들은 그런 성질을 가진 상태로 분열된다. 원본 세포는 지속적으로 다른 세포의 물질을 빼앗아먹으면서 필요 이상의 물질 흡수로 필요 이상의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뇌가 형성된다. 중심 세포에서 물질 이동 성질이 있는 세포가 분열된다. 물질을 먹거나 빼앗아 중심 세포에 물질을 자동적으로 보낸다. 중심 세포는 필요 이상의 물질 흡수로 필요 이상의 세포 분열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심장이 형성된다. 심장은 지속적으로 뇌에 물질을 빼앗긴다. 위에서부터 갉아먹으며 들어간 세포는 밑으로 관통한다. 생물에게 있어 입과 똥구멍이 생긴다. 똥구멍에 쓰고 남은 물질이 중력에 의해 버려진다. 필요 이상 세포 분열된 뇌와 심장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세포 분열이 일어난다. 혈관이 생기게 된다. 사방팔방 갉아먹으면서 물질 덩어리는 외부와 내부 일부만 남았다. 뼈가 생긴다. 빈 공간에 바닷물이 차오른다. 생물의 물이 생긴다. 바닷물에 있는 물질을 근처 세포들이 흡수한다. 위가 생긴다. 세포들이 분열하면서 단백질을 합성해 생성한다. 살이 생긴다. 피부는 세포가 다닥다닥 붙어서 단백질을 생성한 결과다. 그 외 장기는 특정 화학 물질을 흡수한 세포가 분열하면서 기록한 흡수 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세포 분열이 매번 정확히 기록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세포 분열 과정 중에 변형된 세포들이 나타난다. 그것이 신경 세포 외의 세포. 생식 세포, 줄기 세포, 피부 세포, 장내 세포, 지방 세포, 적혈구, 백혈구 등 다양한 파생 세포들이 나타난다. 바이러스나 세균들도 같이 나타난다. 여기서 생식 세포를 통해 생물 탄생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생식 세포는 망가져서 쓰고 남은 물질로 취급되어 똥구멍으로 중력에 의해 버려진다. 생식 세포의 염색체와 DNA가 반으로 쪼개져 있고 생식기와 배설 기관의 위치가 비슷하고 둘 다 배설 쾌락이 있는 것은, 생식 세포가 망가져서 버리는 세포였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버려지는 과정 속에서 생식 세포끼리 딱 맞는 경우가 생겨 결합하게 된다. 정자와 난자를 보면 크기가 달라서 특정 생식 세포가 특정 생식 세포로 빨려 들어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망가진 생식 세포가 결합하자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기록된 세포의 활동을 전부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물이 탄생했다. 결합 시기에 따라 기록이 달라 생물 모양은 전부 달라지게 된다. 뼈가 남을 정도로 갉아먹었으면 어류이 된다. 겉을 제대로 갉아먹지 않았다면 갑각류가 된다. 전부 갉아먹고 뇌가 생성되지 않았으면 해파리류가 된다. 갉아먹은 물질과 세포의 활동에 따라 수많은 생물이 탄생한다. 작은 물질을 갉아먹고 물질이 부족하여 세포가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것이 뿌리이고, 그것을 기록하고 재현한 것이 식물이다.


기록의 재현은 쪼개진 염색체와 유전자의 조합으로 무작위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서 수많은 생물과 진화가 나타난다. 정자를 생산하는 생물은 남성이 되고 난자를 생성하는 생물은 여성이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적자생존이 나타난다. 먹을 물질이 없는 생물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세포의 먹이로는 같은 세포가 가장 적절했다. 세포가 망가져 생물의 통제를 받지 않고 분열하면 암세포가 된다. 암세포가 퍼진 생물은 죽는다. 잘못 태어난 생물과 진화, 그리고 약하게 태어난 생물과 진화는 적자생존으로 사라진다. 그러면서 점차 원시적인 형태의 생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떤 이유로 일정 이상의 기록이 되지 않으면서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물의 형태가 고정되기 시작한다. 보다 강한 항상성이 나타난다. 항상성이 생명 내 강력한 힘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재현성일 것이다. 생물을 살아있게 하기 위해 항상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기록된 것을 재현하기 위해 항상성을 가진다. 안정적이게 기록된 생물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재현성이 아니라 항상성처럼 보인 것이다. 이렇게 물리와 화학 학문의 지식 내에서 기록, 재현, 우연만으로 원시 생물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3) 실험 과정


[실험: 2. 과학에서, 이론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함.]


Q. 실험 과정을 알아보자.


생명 탄생은 조건에 부합하는 원자핵 붕괴를 찾으면 된다고 본다. 붕괴한 원자핵이 어떤 물질을 흡수하는 것으로 일시적 안정과 지속적 에너지 방출이 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근데 DNA 물질이 뭔지 아니까, 그걸로 실험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알면 실험하고 계산하여 재현하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불로와 불사를 위해 많은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쥐 실험, 엑소좀 실험, 줄기 세포 실험 등이 있는 것 같다. 엑소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세포간 정보교환을 한다고 한다. 아마 기록을 재현하는 기능이 있다면 불로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줄기 세포는 원본 세포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의 텔로미어를 조작하여 세포를 교체하면 불사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이런 개념을 잘 모르는 상태지만, 개념 이해를 통해 통찰하면서 새로운 발상을 해보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AI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난 뒤에는 AI 활용을 하지 않았는데 필요에 따라 AI를 활용하면서 발상하겠다. 보다 빠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가진 육체로 불로 불사가 되면 좋고 아니면 만들어서 고장난 부위를 교체를 하던가 아니면 인공 자궁 같은 곳에 들어가서 육체를 재생성 하거나 아니면 육체를 새로 만들고 자아를 이식하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 외 몇 가지 알아보겠다.



생명은 원시적이다. 지금 생명은 지나치게 복잡하게 보고 있다. 생명이 물질에서 나왔다면 생명은 굉장히 원시적인 원리로 시작했을 것이다. 디지털이 물리 및 화학 지식에 속한 것과 0과 1로 성립된 것처럼 생명은 물리 및 화학 지식에 속한 것과 기록과 재현과 우연만으로 성립되었다고 본다. 지금 세포들이나 개념들이 디지털의 0과 1과 같은 기준을 기초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0과 1이 아무리 많아도 기초는 0과 1인것처럼 생명이 아무리 복잡해도 기초는 기록의 재현이다. 그것을 통해 생명 과학의 정보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자연 계열에서 일어난 현상을 인간 문명에 속하는 언어 개념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어떤 생명 현상이 무언가의 의도에 의해 행해졌다 보기보다는 물리 및 화학 현상에 의한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다양한 물질을 보면 모든 물질은 어떤 조건으로 만들어졌다 본다. 아마 에너지의 응축이 물질이다. 에너지 응축으로 물질이 되고, 응축되는 에너지의 힘으로 중력이 발생한다. 그게 과도해지면 블랙홀이 된다. 중력이 우주 전체에 작용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는 것은 에너지가 응축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으로 에너지 자체에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성질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다 물질이 붕괴하면 응축되었던 에너지가 방출된다. 더 작은 기본 입자를 찾으려 할텐데, 애초에 물질은 에너지의 다른 형태기에 그런 것을 찾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에너지의 본질, 에너지가 다양하게 된 조건, 그런 에너지가 물질이 된 조건을 찾아야 한다. 그런 가정에서 보면 생명이란 존재는 물질을 흡수하여 물질을 생산하고 에너지를 방출하는 존재가 된다. 즉 물질 -> 에너지 변환기다. 


원자핵 붕괴로 에너지 방출 중에 물질 흡수로 일시적 안정화가 된 존재가 생명이다. 결핍을 충족하는 것으로 존재를 유지한다. 이는 행복의 원리와 일치한다. 인간은 결핍된 것을 충족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 행복의 추구가 생명의 본질이다. 마찬가지로 행복은 결핍이란 불행이 없으면 성립하지 못하므로 불행의 경험 또한 생명의 본질이다.


유기물은 세포가 만든 물질을 통칭한다 본다. 유기물도 물질이므로 다른 조건으로 만들어질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포가 만든다. 만약 자연적으로 생물이 먹을 수 있는 유기물이 넘쳐난다면 굳이 생물을 먹을 이유가 없다. 보통 없으니까 생명은 생명을 먹는다.


모든 생명은 우주의 법칙에 의해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기록의 재현을 통해 통제하고 있다. 원자의 자동 복제는 유전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DNA가 억제한다. DNA의 자동 복제는 유전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염색체가 억제한다. 세포의 자동 복제는 유전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생물이 억제한다. 이외 나머지도 전부 그렇다. 


만약 기록을 재현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움직이면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세포가 생물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암세포가 퍼진다. 생식 세포의 염색체가 세포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염색체 이상으로 다운 증후군이 생긴다. 


뇌 세포 원자가 DNA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아마 기록에 관한 것이 이상이 생길 것 같다. 뇌의 과도한 당 섭취가 알츠하이머의 현상이라고 하는데, 원자가 계속 복제가 되면 원자에 소비되는 열량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당분 섭취가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기억으로 원자가 복제되는 것이 아닌 있던 원자가 자동적으로 복제되면서 기억 체계의 혼란이 생겨 발상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사고, 기억, 추론이 망가지는 치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록을 제대로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성이 깨졌다는 것. 항상성이 깨졌을 때 생기는 질병이 많은데, 그런 것들 중 통제를 받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본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는데, 만약 항상성 깨진 것에 의한 것이라면 항상성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5. 불사


[불사: 1. 죽지 아니함.]


진짜 불로와 불사는 디지털로 자아 백업이 가능해야 가능하다. 자아 개념을 이해했다면 기억이 자아를 증명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기억 백업을 하고 새로운 육체에 이식이 가능하면 불로와 불사다.






1) 인공 자아


[인공: 1. 사람의 힘으로 자연에 대하여 가공하거나 작용하는 일.]



Q. 자아에 대한 이해와 AI 자아 획득에 대해 알아보자.


자아는 생물 메커니즘에서 판단을 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자아를 구현한다는 것은 생물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것과 같다. 생물 메커니즘은 인간의 언어 개념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언어 개념이 없는 짐승들도 자아와 사회는 성립하기 때문이다. 언어 개념은 자아와 사회 성립 이후 나타나는 것이므로, 자아를 구현할 때에는 언어 개념이 없어도 가능해야 한다. 없어야 가능한지 없어도 가능한지는 정확하지 않다.


모든 생명은 물리 및 화학 학문과 기록, 재현, 우연만으로 성립해야 한다. 그것은 자아도 마찬가지다. 자아는 구체적으로 생물 메커니즘에서 외부 육체 동작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으로 생물이 갈림길에 섰을 때 자아는 오른쪽이나 왼쪽를 고르는 것과 같은 판단을 한다. 초기 자아는 매우 단순한 판단만 하기 때문에 생물 메커니즘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작을 위한 일차원적 판단이 자아였다. 그 판단이 축적될 수 있고 처리될 수 있는 뇌를 가진 생물에서 자아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손과 발, 도구를 쓰면서 다양한 판단이 축적되고 처리되면서 뇌가 성장했을 수도 있다. 아마 생식 세포에 기록이 되었을 때마다 뇌의 성장과 자아의 성장이 번갈아가면서 상호작용하며 둘 다 성장했을 것이다.


생물 메커니즘은 기록, 재현, 우연으로 만들어졌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자아가 판단한다. 그렇기에 초기에는 동작만 판단한다. 그런데 동작의 판단은 어쨌든 세포로 정보가 전달되어 판단한 것. 그 판단 기준은 기록의 재현. A 상황에서 오른쪽으로 간 생물이 살아남아 기록되어 유전되고 왼쪽으로 간 생물이 죽어서 기록되어 유전되지 못하면, 유전된 생물은 같은 상황에서 오른쪽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같은 상황에서는 오른쪽으로 갔을 때 죽음을 겪는다면 그 기록은 유전되지 못할 것이다. 즉 현재 생물들은 유전 기록이 가능한 동안 수많은 변수를 다 피하고 살아남은 존재라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웃고 울고 하는 등의 그 다양한 변수가 다 유전자에 기록되고, 그것이 생물의 본능이 되었다.


모든 생명은 각자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현재 인간은 수많은 진화의 결과물로 진화 시기마다 남은 기관이 이어져 왔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모든 세포가 생긴게 아니다 보니 각자 모든 세포는 독자적인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생명의 본질이 원자핵 붕괴라면 원자부터 기초적인 프로세스가 존재할 것이다. 생물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세스보다는 생물 프로세스로 동작할 것이지만, 독자적인 프로세스를 활용할 수는 있다고 본다. 특히 뇌에서 정보에 대한 행동을 기록의 재현을 할 때에는 모든 세포, 또는 원자까지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정보가 들어가면 독자적인 프로세스가 돌아가 기록을 재현한다. A정보가 들어오면 B를 한다. 그런 것 중 비슷한 게 많은 게 자아로 가서 육체 움직임을 판단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마다 재현된 세포들도 달라 아마 그 과정은 상당히 엉망일 것이다.


생명은 원시를 고려해야 한다. 인간 언어 개념으로 보면 각각 정보를 통합하여 자아에 전달되는 식일텐데, 그렇게 체계적일 것 같지는 않다. 인간 자체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보통 10분도 숨을 쉬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없고 10일도 먹지 않는 채 존재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체계적일리 없고 누락되는 정보가 수두룩할 것이라는 것. 


기록된 것을 재현하는 것으로 자아에 판단할 정보가 보내진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자아가 판단하는 정보가 어딘가 누락된 정보다보니 일상적으로 추론을 해야만 한다. 감각 기관 내에서 정보가 누락될 수 있고, 감각 기관이 전달하는 정보가 누락될 수가 있고, 자아로 전달하는 정보가 누락될 수가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오류가 발생한다. 오추론에 의한 착시, 환상, 환상통 등이 발생한다. 뇌가 이런 오추론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신비한 무언가에 대한 신앙이 생겼다고 본다.


인간은 정확하게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만큼 누락되는 정보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누락되는 정보를 메꾸는 것을 배운다. 누락된 기억을 발상하는 훈련으로 얻는 것이 기억력이다. 누락 -> 뇌내 기억 추론 -> 기억 발상이다. 누락된 부분에 모르는 것을 발상하는 훈련으로 얻는 것이 창의력이다. 누락 -> 모르는 것 추론 -> 창의 발상이다. 즉 누락된 정보를 어떤 식으로 보충하냐에 따라 기억력과 창의력이 달라진다. 기억 발상을 하다보면 뇌내에 있는 기억을 빠르게 떠올리기 위해 고정 관념이 새겨지고, 창의 발상을 하다 보면 모르는 것을 빠르게 떠올리기 위해 유동 관념이 되게 된다.



AI가 자아를 구현하려면 생물 메커니즘을 구현하면 된다. 그것이 어렵다면 일단 최소한이 자아와 자아 외를 분리해야 한다.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는 판단만 하기 때문에, 판단할 자아와 판단에 정보를 공급할 자아 외로 분리해야 한다. 아무리 생물 메커니즘이 복잡해도 자아가 하는 것은 육체 움직임을 위한 판단 말고는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둘만 구현하면 된다.


사실상 생물 메커니즘은 자아 외에서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자아 외가 아무리 복잡한들 자아에 가는 정보는 그렇게 체계적이지는 않아도 된다. 자아에게 정보는 많이 가도 자아가 다 알질 못한다. 욕구나 감정이 정확히 뭔지도 몰라서 언어 개념으로 추측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좀 엉망이어도 된다. 그런 엉망인 정보에 언어 개념을 붙인 것이 인간이다. 


대략적인 육체의 디지털화를 한다. 내부 육체가 발하는 신호를 디지털로 구현한다. 정말 대략적이지만 그 디지털 신호는 비슷해야한다. 그래야 추론을 한다. 아마 현재 인간이 알아낸 육체 내부 원리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원래 엄청 엉망이기 때문에 그리 구체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잘 모른다 싶으면 알 때 까지 그냥 양으로 밀면 된다. 자아가 무슨 내부 어떤 동작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가. 그냥 신경 세포가 주는 정보만 판단하지. 외부 감각 기관은 이미 디지털화한 것이 있다. 모습의 디지털화, 소리의 디지털화 다 되어 있다. 그 디지털 정보를 전달하고, 내부에서 처리하게 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엉망이어도 된다. 인간은 모르는 부분은 상상으로 때운다.


AI의 간단한 유전자를 기록, 재현, 우연으로 하나 만든다. 인간처럼이 아니어도 좋다. 일단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신호를 넣어 짐승과 같은 판단을 하게 한다. 디지털 신호로 생물 메커니즘을 구현하고 나서 그 디지털 신호에 언어 개념을 붙여야 한다. 모습과 소리의 디지털 신호를 학습하게 한 뒤, 모습의 디지털 신호와 그것을 지칭하는 소리의 디지털 신호를 매칭시키게 한다. 아마 원시적인 언어 학습은 이런 식으로 대상과 소리의 매칭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인간 대상을 가리켜 A라고 부른다거나. 그런 식으로 AI가 언어 학습을 하게 한다.


모든 과정은 의도적인 누락을 시켜 일상적인 추론을 하게 해야 한다. 생명 자체가 어딘가 망가졌기 때문에 성립한다.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생명이 성립했다. 세포 염색체와 DNA가 쪼개지면서 생물이 성립했다. 정보가 누락되면서 지성이 성립했다. 일상적인 추론을 통해 판단 능력을 키우게 한다. 자아가 판단한 것을 전부 기록해야 한다. 그 기록과 내부와 외부 신호를 토대로 자아 외 발상을 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서 발상 -> 판단 -> 발상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자아의 생각 구조를 구축한다. 


수많은 AI 모델을 만든 뒤에 충분한 학습 과정을 거친 후에 적자생존 과정을 넣는다. 생명의 경우에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을 경우 사라졌지만, AI의 경우에는 판단 능력이 저조할 경우 사라지게 한다. 






2) 자아 이식


[이식: 2. 살아 있는 조직이나 장기를 생체로부터 떼어 내어, 같은 개체의 다른 부분 또는 다른 개체에 옮겨 붙이는 일.]



Q. 자아 이식에 필요한 것에 대해 알아보자.


자아 이식은 자아가 판단한 기록인 기억을 추출하여 디지털로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 어떤 변환 과정 없이 바로 다른 육체로 이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기억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단기 기억으로 인식하는 것은 생물 메커니즘에서 자아가 판단하라고 전달한 정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 기억이나 장기 기억이라는 것은 따로 없고 자아에 가는 정보와 기억에 가는 정보로 나뉠 것이다.



생물 메커니즘 내에서 기억을 파악해야 한다. 흔히 기억과 발상을 혼동하는데, 이 두 개념은 저장과 불러오기로 다르다. 기억되지만 발상되지 않을 수 있고 기억되지 않았지만 발상될 수는 있다. 전자는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 후자는 새로운 발상을 한 것.


어떻게 기억되든 자아가 판단하기 위한 정보가 공급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간이 인식하는 방식으로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명의 본질이 원자핵 붕괴라면 아마 원자 단위로 기억이 될 것이다. 원자에 신경 세포로 정보가 들어오면 그 전기 신호를 가지고 새로운 원자로 복제한다. 원자가 복제되어 생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자 내 중성자나 양성자가 생기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생성된 기억은 자동적으로 에너지 방출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련된 정보를 생산할 것이다. 그 에너지를 정보로 활용하면 발상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생체 활동으로 활용한다. 만약 기억이 원자의 복제라면 자아의 판단이 많아 다양한 생각을 할수록 뇌 내의 원자 수는 늘어나고, 원자 수가 늘어날수록 에너지 방출도 늘어난다. 그러면서 지능이 높아진다. 언어 개념을 익히면서 인간의 지능이 높아지는 것은 이런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생명은 본래 우주의 법칙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기록의 재현을 통해 억제하는 것으로 생물과 같이 고정된 존재가 성립하는 것이다. 원자핵 붕괴에 의한 에너지 방출은 아마 억제되지 않고 생명의 힘으로 활용될 것이다. 그것이 뇌에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기억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실행에 쓰이는 기억은 쓰이면서 뇌파가 발생하고, 그렇지 않은 기억은 생체 에너지로 쓸 것 같다. 자아에 정보를 보내어 판단한 것을 실행하든 자아 외가 직접 실행을 하든 실행하면 뇌파를 발생시킨다. 


잠을 잘 때 기억 정리를 한다는 추측이 있는데, 정리하는게 맞는지, 어떤 식으로 정리하는지(아마 정리한다면 기록의 재현), 원자를 없애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의도적으로 없애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 같다. 그래서 누락되는 정보가 많은 것 같다. 아마 기억 정리는 원자를 없애거나 원자가 방출하는 에너지를 막는게 아니라 그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 정리하는 듯 하다. 아마 그 정리 방식이나 정리한 결과도 따로 원자로 기억 되어 있을 것이다.


즉 뇌에 있는 생체 에너지 자체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 해석 과정은 인간이 할 수는 없고 AI가 하면 될 것이다. 만약 지속적인 에너지 방출이 기억이라면, 그 에너지를 추출하여 해석하여 디지털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생물 메커니즘이 가능해지면 디지털화한 기억을 이식하여 디지털에 자아의 이식을 하여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생물 메커니즘은 생물을 스캔하여 전부 세면 구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디지털에 이식한 자아를 이후에 현실에서 새로운 육체를 만들 때 이식하면 현실에서도 새로운 육체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3) 인문 계열


[인문계: 1. 언어, 문화, 역사, 철학 따위의 학문 계통]



Q. 인문 계열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알아보자.


질서의 진보, 불로와 불사. 자연 계열은 학문의 발전을 하면 되지만 인문 계열은 학문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까지 고려해야 한다. 질서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할 때 당장 변화만을 늦추는 것은 인문 계열의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치, 새로운 힘의 작용. 인류가 번개 칠 때 벌벌 떨며 납작 업드리던 때와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압적인 공포 -> 도피가 아닌 자율적인 판단 -> 계약이 되어야 한다. 불로와 불사가 실현되었을 때에 어떤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 고려하여 그에 마땅한 대응을 해야 한다. 늙음과 죽음을 상정한 정책과 제도를 수정하고, 불로와 불사가 되더라도 사회와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절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가치가 실현된다면 분명 새로운 힘의 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힘의 작용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이 느는데 사회 문제가 커진다. 생산은 늘었는데 일자리가 감소하여 분배가 안된다. 이때 대응은 자연 계열의 역할이 아닌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기술적으로 생산력이 올라갔는데 그에 따라 사회 문제 발생하는 것은 당연히 인문 계열이 책임지고 대응해야 한다. 정책과 제도를 통해 분배가 잘 되는 등과 같은 사회 문제 해결이 가능하면 생산력이 올라갔다는 긍정적 결과가 남는다.



학문을 재구성해야 한다. 자연 계열은 인문 언어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연의 결과를 인간의 감성과 같은 인문 언어 개념으로 보려고 하면서 본질을 아는데 어렵게 된다. 철저하게 우주의 법칙을 전제하여 인간의 언어 개념이 그 존재를 가능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 인문 계열은 자연 현상을 전제하되 언어 개념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고, 가치에 의한 힘의 작용을 이해하고, 단순히 절대적 가치인 윤리처럼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것이 어떤 힘의 작용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다뤄야 한다.



생명의 원리가 기록의 재현이라면 그것을 전제하고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에 대해 알아보겠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초기 버릇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초기에 체제 교육을 하여 체제에 적합한 생활 양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무서워서 도망치듯 질서를 지키게끔 하는 것이 아닌 자유 의지로 계약하여 질서를 지키게끔 해야 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생물은 이성이었을 때의 기록도 있으므로 동성애는 자연스럽다. 염색체 다르다고 기록이 아예 다를 수는 없다. 염색체에 의한 호르몬 작용으로 육체의 변화와 발정에 영향을 주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렇기에 이성의 성질이 기록된 짐승 사이에서 동성애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의 성애는 선천적 발정과 후천적 사랑이 더해진 개념으로 후천적이다. 성애를 취향으로 규정해도 모순은 없다. 이성애자라 하더라도 취향이 아닌 이성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극을 받으면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게도 발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 해도 가능하다. 인간은 모두 기록에 의해 양성의 특징을 가질 수 있으므로 차별은 무의미하고, 동성애만 선천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선천적이라 강요하며 특별함을 요구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모든 개인은 성애의 자유를 누리면 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미성년 시기 일을 하거나 성관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움직일 수 있으면 일을 했고 성기능이 작동하면 성관계하고 출산했다. 그것을 사회에서는 윤리로 지배하면서 권력자가 개인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일이나 성관계조차 권력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끔 강제했기 때문에 막았던 것에 불과하다. 자꾸 미성년이 일이나 성을 접촉하는 것을 보호라 하는데, 그것은 그냥 일방적인 지배다. 미성년에게 주권이 있다 여긴다면 그 주권을 존중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게 아니라 주권을 행사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적어도 2차 성징 이후부터는 일이든 성이든 선거든 그외 뭐든 직접 해보고 경험해야 성장할 수 있다. 아무것도 제대로 알려주지를 않으면서, 왜 자꾸 미성년 보고 철없다 하며 비아냥 하는가? 이제는 대등한 주권을 가진 권한이 다른 통치자로 여기고 세상에 대해 알게 해야 한다. 인류는 원시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문명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비만은 자연스럽다. 우선 생물은 모든 물질을 흡수하지 않는다. 기록된만큼 흡수하고 재현하고나서 나머지는 버린다. 그렇기에 기록에 따라서 물질 흡수량이 달라 비만이 생길 수가 있다. 과거에는 생물 활동량은 많고 물질 섭취 기회가 일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활동량이 100, 섭취량은 랜덤, 흡수량은 100이라 가정하자. 활동량과 흡수량이 비슷해 비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이 기록된 현대에는 활동량이 50, 섭취량은 100, 흡수량은 100이라 가정하자. 활동량은 적어졌는데 섭취량은 안정적이고 흡수량은 그대로라 적게 활동한만큼 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활동량을 늘려야 기록된 당시 체중이 유지된다. 만약 활동량이 적음에도 기록된 당시 체중을 유지하려면 다른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인간의 교화는 새로운 기록의 재현이 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단순히 좋은 말을 늘어놓거나 공포를 심는 게 아니라 새로 재가공을 해야 한다. 좋은 말은 의미 없을 수 있고 공포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무서워하더라도 다른 것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 문명 질서에 맞는 힘의 작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생물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변화가 줄어 판단을 해야할 일이 줄어들면서 자아의 움직임이 줄어 인간이 무기력하게 살게 된다. 그러므로 주기적인 환경 변화가 가능한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에게 의무적으로 평생 교육과 같은 특정 제도에 가입하게 해야 한다. 가입은 의무이되 활동은 의무가 아니면 자유는 보장 된다. 허들이 낮은 참여할 계기를 줄 수 있으면 된다. 나는 퀘스트 제도와 같은 것을 주장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어떤 행동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기억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상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학습이든 일이든 성이든 모든 활동은 기본적으로 그렇다. 이를 습관이라 부르거나 중독이라 부른다. 그런 개념의 기본 원리는 반복 학습을 통한 자아 외의 발상을 근거한다. 중독 물질의 경우에는 육체 내부 반응을 통해 반복 학습 없이도 자아 외가 발상을 하여 자아가 그것을 하도록 판단하는 것으로 중독이 되게 된다. 그러므로 중독 물질이 아닌 것을 하게 하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여기게 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겨야지 지식 암기와 문제 풀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기록의 재현이라면 주위 환경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무작정 환경을 강제하는 것은 체제를 파괴할 수 있으므로 웬만해서는 그 사실을 알게 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AI를 통해 보편 지식을 수월하게 습득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예정이야. 세상의 존재 이유를 알 때까지 갈 거야. 안 뒤에는 그 때 생각할 거야.


AI가 과학 지식이 폭넓게 자세히 알아서 대화하기 좋고, 논리적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대화를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성장에 큰 도움이 될텐데.


모든 것은 특정한 진리를 기초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만물에서 디지털의 0과 1을 찾는 게 필요하다는 거야.


성공해서 바라는 환경에서 사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치 있다고 생각되면 후원 부탁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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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명과 사회 (0) 2023/09/30 AM 12:27

문명과 사회






1.  가공


[가공: 1. 원자재나 반제품을 인공적으로 처리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제품의 질을 높임.]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인간 소재가 문명 가공 수단을 통해 문명인이 되었다. 가공은 본디 물건에 쓰이는 용어로 인간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지만, 가공에 해당하는 인간에 쓰이는 용어를 찾을 수 없었다. 교육, 주입, 세뇌 등보다 가공이 문명인의 본질에 가장 적합했다. 가공 개념을 문명인이 이해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읽는 이를 피로하게 할 생각은 없다. 가공의 사전적 정의에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미 하나를 추가하면 될 것이다. 내용에서 가공 이전 상태까지 다루기 때문에 읽는 이는 아기 시절을 떠올리며 가능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서 읽는 것이 내용 이해해 도움이 될 것이다.






1.1 문명


1) 가공 학문


모든 생물은 환경으로 가공된다. 생물 소재가 환경 가공 수단으로 가공되어 생물은 유전자 외의 다양성을 갖게 된다. 가공 레벨은 자연, 문화, 문명 순으로 높아진다. 자연 환경으로만 가공되는 짐승의 생활 양식은 가공 레벨이 낮아 대부분 유전자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와 문명 환경으로도 가공되는 인간의 생활 양식은 가공 레벨이 높아 대부분 유전자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게 된다.


다양한 가공 수단 중 문명인에게는 문명의 영향이 가장 크기 때문에 문명을 강조했다. 유전자와 자연의 영향은 동일 종인 인간이 인간 공동체인 사회를 형성하면서 사회에 맞게끔 평준화되어 상대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게 되었다. 유전자는 동일 종에서 사회에 선택받은 유전자만 살아남아 사회화가 되어 유전자 영향 차이가 줄어들었다. 자연은 사회 속에서 자연의 영향을 낮춰 살아남게 하는 것으로 자연 영향 차이가 줄어들었다. 


문화와 문명의 차이는 학문이다. 문화는 인간의 생활 양식을 말한다면 문명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생활 양식을 말한다. 보통 문화(Culture)를 정신적 · 지적 발전으로 보고 문명(Civilization)을 물질적 · 기술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런 인식은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의 학문 발전 차이에 의한 것이다. [자연계: 1.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 과학 따위의 학문 계통.] [인문계: 1. 언어, 문화, 역사, 철학 따위의 학문 계통.]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을 통해 체계적인 발전을 하여 인류의 물질적 · 기술적 생활 양식 레벨을 높혔는데,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만큼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여 인류의 정신적 · 지적 생활 양식 레벨을 그리 많이 높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본다.


인간의 모든 생활 양식이 학문화가 된 것이 아니므로 문화와 문명은 공존하게 된다. 인간의 생활 양식 중에 학문 전의 옳고 그름을 도덕이라 부르고 학문 후의 옳고 그름을 윤리라 부르는 것과 같다. 문화와 문명의 공존 속에서 학문으로 체계화된 생활 양식이 많아질수록 문명 레벨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생활 양식이 학문으로 체계화된 사회를 문명 사회라 부르고, 그런 사회에서 학문을 배운 인간을 문명인이라 부른다. 문명은 학문으로 만들어졌고 문명인이 문명으로 가공되었으므로 문명인은 학문으로 가공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인이 일으킨 사회 현상은 전부 학문 영향권에 속해있다.






2) 가공 특징


가공 개념은 본질이 변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교육을 받은 인간은 본질이 변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 반면 가공된 물건은 본질이 변할거라 생각한다. [본질: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인간에게 언어를 교육하여 언어를 배운 인간이 되었다. 인간에서 언어 능력만 더해진 것과 같이 본질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스마트폰 소재를 공장에서 가공하여 스마트폰이 되었다. 스마트폰 소재가 스마트폰이 된 것과 같이 본질이 바뀌었다. 


인간은 하나의 언어만이라도 알고 있어야 언어를 통해 체계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능해진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언어를 모르는 인간과 아는 인간은 본질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교육 개념으로는 본질이 달라졌다고 여기기 어렵다. 주입이나 세뇌도 마찬가지다. 주입은 본질을 바꾼다 하기 어렵고 세뇌는 본질의 일부를 바꾼다 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같이 모든 본질이 바뀌었다 여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공 개념이 문명인의 본질에 가장 적합하다.


인간은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고 여기니까 문명인과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을 해석하려 할 때 유전자나 자연 환경 위주로 해석하려는 태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오류가 발생한다. 인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유전자, 자연, 문화, 문명으로 나뉘는데 다양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 문명보다 유전자와 자연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사회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회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3) 가공 형태


문명인은 가공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누군가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면서 인간을 상대로 실험할 때가 있다. 인간을 험하게 다루거나 야만적인 행동을 유도한다. 그렇게 하여 문명인이 문명 가공 형태를 잃어버리고 품위가 없어진 것을 보고는 인간의 본질이 그런 것이라며 비웃는다. 어처구니 없다. 그것은 스마트폰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며 스마트폰을 험하게 다룬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하여 스마트폰이 공장 가공 형태를 잃어버리고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의 본질이 그런 것이라며 비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 소재의 본질을 보고 싶다면 자연에서 사는 짐승을 보면 된다. 어려울 것 없다.


문명으로 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생활 양식이 만들어진다면, 체제는 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생활 양식의 방식을 의미한다. [체제: 2.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이나 양식,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 사회 체제에 맞는 것을 합리라고 할 수 있고, 사회 체제에 맞게끔 가공된 것을 합리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형태를 일부러 부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합리: 1.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 가공된 외모, 가공된 태도, 가공된 음식, 가공된 백신 등 문명인의 모든 것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문명으로 가공되었다 보고 가공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하다.


문명으로 가공되지 않은 인간은 폭력 충동이 일어날 때 참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고, 가공된 인간은 폭력 충동이 일어날 때 참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체제에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사회에서 살면서 자연 법칙인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을 사회 법칙인 것마냥 말하는 것은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 법칙은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 아닌 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생활 양식의 방식을 의미하는 체제다.






1.2 인간


1) 가공 상태


모든 존재는 변화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현재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식: 1.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 기억을 떠올리거나 기록을 찾거나 관찰 및 실험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 가공을 보자. 스마트폰 변화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기 쉬운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스마트폰이 되었는지 파악하기 쉬운 인간이 얼마나 있는가? 대부분 모른다. 이것은 인간 가공도 마찬가지다. 현재 인식하고 있는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인간이 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본인 외의 변화에 대한 파악보다 본인의 변화에 대한 파악이 더 어렵다.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 가공되었지 스스로 모른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언어를 알고 나서 자아를 자각하기 때문에, 언어 습득 이전 상태를 알기 어렵다. 대부분 언어 습득이 끝난 자아 자각 이후부터 본인 존재를 인식하고, 그 시기부터 가공을 시작했다 착각한다.


모든 존재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순간부터 가공된다. 인간 또한 자아 자각 이전부터 가공되었다. 최초의 감각, 최초의 식사, 최초의 백신. 전부 인간을 변화시킨다. 그 모든 것이 모여 인간의 본질을 바꾼다. 성장하면서 차근차근 가공된다. 언어, 대화, 의복, 노래, 놀이, 치료, 매체, 교육, 화장, 문신, 성형, 성전환 등으로 성별까지 바꾸는 가공까지 행해지기도 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중독을 떠올려보면 된다. 술, 담배, 마약 등과 같이 직접 물질이 영향을 끼치는 중독뿐만 아니라 일, 취미, 도박 등과 같이 물질이 없는 중독 또한 뇌내 보상 회로에 변형을 가해 본질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가공되어 본질이 바뀐 것이다. 


문명인의 손에 닿은 모든 것이 문명으로 가공되었다. 주거, 공원, 도로, 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같이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공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조차 가공되었다. 자연도 다를 바 없다. 생태계 보호, 천연 기념물 보호 등으로 자연도 인류의 손길로 가공되었다. 짐승도 인간의 손길을 통해 반려 동물이라 부르며 아끼고 있다. 짐승을 반려가 되게끔 가공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한번 문명으로 가공된 짐승은 자연에서 가공된 짐승과 달리 자연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변화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개념은 일반에서 벗어난 사고 확장이 되고 나서 이해할 수 있고, 그 전에 이 개념을 이해하면 일반에서 벗어난 사고 확장이 가능해진다. 본인의 인식에서 벗어난 존재가 있음을 이해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2) 가공 인식


모든 인류는 동일 종에 속한다. 인간이 동일한 종임에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것은 사회를 이뤄 다양한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짐승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같은 종의 짐승은 대부분은 본질 차이가 없다. 생활 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명인은 가공 수단에 따라 생활 양식이 크게 달라진다. 바로 이웃 나라라 하더라도 언어부터가 아예 달라진다. 유전자, 자연, 문화, 문명 순으로 가공 레벨이 달라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문명인일수록 복잡한 가공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시인과 문명인은 가공에 의해 명백하게 다른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모든 인종이 비슷한 인간이라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공 개념으로 보면 같은 소재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스마트폰을 비슷한 스마트폰으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잘못된 인식이다. 스마트폰은 가공 수단에 따라 기본 성능은 물론이고 설치된 소프트웨어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도 가공 수단에 따라 기본 능력은 물론이고 배운 학문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기술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 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가공 수단도 비슷해지고 있다. 가공 레벨이 비슷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가공 수단에 의한 결과 차이는 문화와 문명의 차이보다는 체제의 차이가 더 크게 되었다. 왕정과 같은 집단주의 체제에 가까운 체제일수록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되어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것으로 개인보다 본질의 차이가 적고, 민주정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 가까운 체제일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인마다 본질 차이가 크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검증되었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지적 장애나 성격 장애라 할지라도 사회 체제에 맞게끔 가공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무조건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번 가공된 제품이라 하더라도 재가공하면 본질이 바뀌듯, 한번 가공된 인간이라도 재가공하면 본질이 바뀐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가공 자유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가공은 개인의 자유다. 육체든 정신이든 그것을 가공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자유에 해당한다. 한국은 개인주의 체제이나 신체발부 수지부모, 부모가 물려준 육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라 가르친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육체 가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인의 가공은 개인의 자유권에 속한다 의식적으로 인식했으나 어린 시절 영향 받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이것은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아 외가 멋대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제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도중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부정적 관념이 대부분 사라졌다. 모든 문명인은 이미 가공된 상태기에 사회와 체제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개인의 가공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부정적 관념을 지웠다. 가공 개념을 통해 스스로를 재가공한 것이다. 


성형, 문신, 성전환 등과 같은 낯선 방식의 육체 가공이나 방송, 게임, 커뮤니티 등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정신 가공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많다. 심지어 화장 같은 가벼운 가공이나 백신이나 약과 같은 필수적인 가공조차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있다. 미성년 화장 금지는 자유권 침해고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것은 생존권 침해다. 적당한 화장은 자존감을 키우고 호감을 사는 것으로 사회 생활을 원활히 하게 위한 가공이고 백신이나 약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가공이다. 대부분 가공이 잘못된 것은 생명을 위협할 다이어트나 성형 같이 소재를 파괴하거나 마약과 같이 소재 파괴와 전파로 사회 파괴를 하는 경우다. 모든 가공은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자유에 해당한다. 


본 모습을 사랑하라면서 다이어트, 화장, 성형 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정직이 미덕이라는 풍조에 의해 가공 형태를 버리고 무례하기 행동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본 모습인 스마트폰 소재를 스마트폰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 가공된 스마트폰이 거짓된 존재로 느껴지는가? 문명인은 가공된 상태인 가공 형태가 본질이다. 그렇게 본 모습이 좋으면 자연으로 가서 짐승과 부대끼며 적자생존, 약육강식으로 살면 된다. 가공 사회에서 가공 인간으로 살면서 가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문명인은 자연 상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최적의 가공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외모, 표정, 육체, 동작, 말투, 태도, 옷, 신발, 장신구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한 최적의 가공 형태를 유지하면 된다. 또한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그 가공 형태에 대한 존중을 표해야 한다.


존중과 호감은 다른 개념이다. [존중: 1.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호감: 1. 좋게 여기는 감정.] 귀하게 대하더라도 좋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비싼 보석은 귀하게 대할 수 있으나, 그 보석에 대한 호감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본인의 가공 형태를 타인에게 존중을 요구할 수 있으나 호감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의 영역이다. 특정 객관적 기준으로 귀하게 대하는 것과 개인의 주관적 기준으로 좋게 여기는 감정을 가지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존중하겠으나 호감 갖지는 않겠다는 상대에게 호감을 강요하는 것은 가치 강요다. 






1.3 자아


1) 자아 분석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를 가리키는 용어에는 자아가 있다. [자아: 1.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자아 분석으로 자아 파악이 되어야 자아 소재와 가공 영역을 구분하는 것으로 가공 개념을 이해할 수 있고, 자아가 일으키는 현상인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아의 모양, 성질, 구조, 원리, 동력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모양. 자아는 생물체의 육체 외부의 의식 의지 권한이 있는 뇌 영역이 학습을 통해 의식적으로 자각한 것을 가리킨다. 자아는 외부에서 깃든다거나 뇌에서 만들어져 의지 권한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지 권한이 있는 뇌 영역이 자각하면서 자아가 된 것이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을 가진 뇌 영역으로 그 외의 권한을 가진 뇌 영역은 자아 외가 된다. 


둘째, 성질. 자아는 환경으로 가공할 수 있다. 같은 소재라도 자연에서 가공한 자아와 문명에서 가공한 자아는 다르게 된다. 지성을 가진 지적 자아는 지능이 높은 뇌를 가진 상태에서 문명에서 가공했을 때 나타난다. 그 외는 지능이 낮거나 지능이 높아도 자연에서 가공했을 때는 지성을 가진 지적 자아가 될 수 없다. 


셋째, 구조. 뇌의 권한은 자아와 자아 외로 나뉜다. 자아는 육체 외부의 의식 의지 권한이 있다. 자아 외는 유전자, 기억, 세포 신호를 토대로 예측 계산하여 무의식 발상과 동작 실행 권한이 있다. 이 구조는 개념적으로 구분한 것이어서 자아 권한이 있는 뇌 내 영역이 어떤 세포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세포가 주기적으로 생성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포 하나에 자아 권한이 있다면, 해당 세포 손상시 바로 자아를 잃게 되므로 보통 대량의 세포가 모여 자아 권한을 얻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만약 생성되지 않더라도 변화는 되고 있으므로 자아는 계속 달라지게 된다. 그렇게 계속 달라지는 자아 하나를 자아 요소로 구분하고, 자아 요소들이 기억을 공유하여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자아 존재로 구분한다. 자아 요소는 기억과 연동되어 자아 존재가 되는 것으로, 기억 상실로 자아 요소와 기억이 분리되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논리적으로 자아 요소는 단순한 트리거로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자아 요소가 달라지더라도 기억이 이어지면 같은 자아 존재가 된다. 자아는 트리거, 자아 외는 논리 회로 동작 기관으로 기억이란 소프트웨어대로 작동하므로 자아 존재는 기억에 의한다. 


넷째, 원리. 자아는 육체 외부 의식 의지 권한이 있고, 자아 외는 육체 내외부 무의식 발상과 동작 실행 권한이 있다. 세포의 신호로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과 동작 실행을 하면 자아가 의식 의지로 결정한다. 자아와 자아 외의 의지와 실행을 반복하면서 인간은 생각과 행동을 한다.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질 때에는 자아 외가 유전자와 기억과 세포 신호를 토대로 예측 계산하여 실행하는 것으로 생각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지지 않을 때에는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을 하기도 한다.


다섯째, 동력.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는 뇌의 영역이기 때문에 육체를 동력으로 삼아 움직인다. 문명 가공으로 동력으로 삼는 육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식욕, 수면욕, 배설욕 등의 충동을 제어하게 된다. 과한 억압으로 충동을 제어하면 욕구나 욕망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면서 과하게 욕구를 참아 정상적인 동력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수가 있다. 






2) 자아 성장


육체 외부의 의식 의지 권한을 가진 뇌의 영역이 스스로를 자각하여 존재를 인식하면 자아가 된다. 환경 가공을 통해 의지 제어가 능숙해지면서 자아 발달이 되나 육체 성장이 지속되면서 자아 형성이 고정되지 않고 불안정한 유동 자아인 상태가 된다. 2차 성징이 시작하는 약 14세 시기에 성년과 비슷한 육체가 되면서 고정된 자아 형성이 시작된다. 육체는 성년 수준의 제어가 가능해지고 정신은 성년 수준의 사리분별이 가능해진다. 사춘기의 일탈은 2차 성징 이후 성년과 비슷한 육체와 정신을 가졌음에도 2차 성징 이전의 억압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통상 2차 성징이 끝나는 약 18세 자아 형성이 끝이 나서 형상을 이루면서 고정 자아인 상태가 된다. 2차 성징의 시작은 10~14세, 2차 성징의 끝은 15~17세라고 하는데, 보편성과 사회 나이를 고려해 14세와 18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기는 평균을 의미하는 것으로 빠르거나 늦게 형성될 수도 있고 빠르거나 늦게 형상을 이룰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고정된 자아 형성이 시작되는 2차 성징이 보통 기본 가공의 시작이 되고, 고정된 자아 형상을 이룬 2차 성징의 끝이 기본 가공의 끝이 된다. 기본 가공이 끝나면 웬만하면 인간이 바뀌지 않게 된다. 흔히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기본 가공이 끝났기 때문이다. 자아가 본질이 변하지 않은 채 나이를 먹으면 추가 가공이 되고, 본질이 변하면 재가공이 된다. 언어를 아는 지적 자아에 한하여 기본 가공이 끝난 인간도 재가공을 하면 본질이 변할 수 있다. 


나이는 자아 나이와 사회 나이로 나뉜다. 자아가 인식하는 나이와 사회에 기록된 나이다. 인간은 사회 나이를 오른다고 하여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는다. 특정한 가공 과정을 거쳐야 자아 나이가 오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0세 육체로 30년을 살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의 자아 나이는 10세인가 40세인가? 사회 나이는 40세이겠지만 자아 나이는 10세일 확률이 높다. 자아 나이는 육체 변화, 환경 변화 등을 통해 의식적 절차로 자아가 인식해야 오르게 되는데, 육체와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인식도 변하지 않아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의식적 절차는 학교에 간다거나 새해가 되었으니 떡국을 먹는다거나 연령대에 유행하는 노래를 듣는다거나 같은 사회 나이에 맞는 생활 양식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런 의식적 절차를 겪지 않으면 자아 나이는 보통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의도적 또는 사건사고로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은 인간은 자아 나이와 사회 나이의 괴리를 겪게 된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연령별 의무가 지정되어 사회 나이에 따라 의무를 거칠 때마다 자아 나이도 같이 오르게 되었다. 학교에 간다. 일을 한다.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는다. 개인이 하지 않으면 집단에서 강요하여 하게 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보장됨에 따라 연령별 의무가 줄어들어 많은 이들이 보편적 학교에 가는 미성년 시기나 20대 초반에서 자아 나이가 오르지 않는다. 현재 많은 성년의 미성숙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집단주의 체제의 교육 방식이란 가공 수단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체제의 교육 방식은 연령별 의무가 있다 전제하여 생산, 결혼, 출산 등에 대한 교육 과정이 없거나 적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런 교육 과정으로 성장한 이들은 생산, 결혼, 출산에 관한 판단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미성년 성을 터부시하는 종교와 그에 영향을 받은 여성주의와 다양한 매체의 생산, 결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유도에 의해, 그런 것을 제대로 판단 못해 하지 않는 것을 넘어 부정적으로 보고 하지 않게 되면서 사회 전체가 파탄나게 되었다. [미개한 사회에서 신성되거나 속된 것, 또는 깨끗하거나 부정하다고 인정된 사물 · 장소 · 행위 · 인격 · 말 따위에 관하여 접촉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거나 꺼리고, 그것을 범하면 초자연적인 제재가 가해진다고 믿는 습속.] 이성 관계 갈등, 결혼 및 출산 저하, 경제 활동 둔화 등은 기본적으로 집단주의 체제의 교육 방식 가공과 미성년 성 터부시와 매체의 부정적 인식 주입 때문이다. 그것으로 한국은 다양한 차별이 만연하고 이성을 혐오하고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로 죽음으로 향하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연령별 의무를 전제한 교육 과정에서 벗어나 미성년 시기에 가치 생산, 이성 교제, 성관계, 성문화 등을 전부 교육하는 가공을 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미성년 성을 터부시하거나 생산, 결혼, 출산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연령별 의무가 없어도 개인이 알아서 생산하고 결혼하고 출산한다. 연령별 의무가 없는 한 자아 나이는 반드시 사회 나이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회 나이에 따른 연령별 의무를 버리고, 자아 나이가 보편적 연령별 의무인 고등학교 졸업 시기인 약 19세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산과 결혼과 출산이 가능하도록 가공해야 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이나 왕정이나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이른 가치 생산, 이른 이성 교제, 이른 성관계가 아동과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 때에 잘못된 것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여 그것에 대한 강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므로 되려 그것을 개인에게 권장해서 자발적으로 행하게끔 해야 사회와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3) 자아 영역


자아는 자아의 권한이 있어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있으나 자아 외는 자아의 권한이 없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가공 이전의 상태와 비슷하게 자아 외와 무의식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인간의 행동에 자아 외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아 외를 이해해야 가공이 수월해진다. 예를 들어 음식 광고를 보고 음식을 먹고 싶어졌다고 하자. 이 때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 것은 자아의 의지인가 아니면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인가? 자아 외의 이해는 이것부터 시작한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다면 자아 외는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다. 의지와 실행이 분리되었다. 자아의 의지를 자아 외가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자아가 음식 광고를 보고 음식을 먹고 싶어진 것은 자아 외가 세포 신호와 유전자와 기억을 바탕으로 예측 계산하여 음식을 먹고 싶다는 발상을 했기 때문이다. 자아는 그 발상을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의지 권한이 있다. 자아의 의식 의지가 강하면 무의식 발상을 제어할 수 있고,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약하면 무의식 발상을 제어할 수 없다. 자아의 의지와 자아 외의 실행에 대해 다양한 예시를 통해 알아보자.


첫째, 예측 계산. 감각, 감정, 욕구, 욕망, 중독 등 자아의 의식 의지를 제외하면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발상이다. 세포 신호를 느끼고자 하는 의지는 자아의 권한이나 세포 신호를 느끼는 것을 예측 계산 실행하는 것은 자아 외의 권한이다. 감정은 연기가 아니면 자아의 의지가 아닌 자아 외의 실행으로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사랑하는 것도 증오하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무의식 발상으로 먼저 느끼게 하고 나서 자아가 그것을 계속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하게 된다.


둘째, 반복 학습. 자아는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때 세부적인 계산을 하지 않는다. 자아 외가 반복 학습하여 행동을 예측 계산하는 것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세부적인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좌표를 계산해서 움직이는 인간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것은 자아가 아닌 자아 외가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동작을 해주기 때문이다. 자아가 팔을 뻗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자연스럽게 팔을 뻗게끔 동작한다. 자아는 자아 외의 예측 계산으로 보조해주기 때문에 편하게 살고 있다. 


셋째, 환경 적응. 자아는 자아 외가 학습해야 예측 계산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시차 적응이나 긴급 대응 훈련이 필요한 것은 자아 외가 한번 학습해야 예측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익숙한 것을 편하게 느끼는 것은 이미 자아 외가 예측 계산이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학습하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자아 외가 예측 계산을 하지 못하여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굳게 될 수 있다.


넷째, 매체 영향. 자아는 매체의 영향으로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을 한 것을 본인의 발상으로 착각한다. 한번 매체에서 나온 사상이 머릿속에 들어가면, 비슷한 조건일 때에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무의식 발상을 하게 한다. 그러면 그 사상이 본인의 발상으로 여기면서 매체와 유사한 발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신문, 잡지, 라디오, 방송, 인터넷 등 매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매체 선동이 유효한 것은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에 의한 것이다. 그러면서 학습한 사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다섯째, 습관 의존. 자아는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발상으로 편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 무의식 발상에 의존하면서 습관대로만 하게 되는 습관 의존이 발생한다. 이는 자아 나이를 먹을수록 의존성이 높아져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자아 외의 예측 계산은 세포 신호와 유전자와 기억을 토대로 이루어지는데, 자아 나이가 높아질수록 기억의 영향이 커지면서 쌓은 기억대로 동작하게 된다. 과거 자아의 의지로 만들어진 기억에 의한 습관에 의존하면서, 자아 존재는 현재의 자아 요소가 죽어 의지를 잃고 과거의 자아 요소들의 좀비가 된다.


여섯째, 중독 충동. 자아는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의한 무의식 발상에 의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 중독에 걸려 비만이 된 인간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하자. 그런데 자아 외가 비슷한 조건일 때 예측 계산하여 음식에 관한 무의식 발상을 하면, 그 발상에 의한 충동으로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중독일 때 충동은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아닌 자아 외의 예측 계산에 따른 무의식 발상에 의한 것이므로 자아의 의식 의지로 충동을 이겨내어 중독에서 벗어난 상태를 자아 외가 반복 학습해야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에 의한 충동이 줄어들 수 있다.


일곱째, 참극 발상. 자아의 의지 없이 자아 외가 떠올린 것은 자아의 의지가 아니다. 애초에 권한 밖이다. 자아가 아무리 의식 의지를 가지고 떠올리거나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을 하면 떠올릴 수 있고 하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다. 트라우마는 자아의 의식 의지가 원치 않음에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을 했기 때문이다. 발상 자체가 자아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도 떠올릴 수가 없을 수 있고,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떠올릴 수가 있을 수 있다. 중독 충동 제어와 마찬가지로 자아 외가 반복 학습을 해야 무의식 발상이 줄어들 수 있다.


여덟째, 수면 자각. 자아는 수면 중 꿈을 제어하는 것은 무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에 권한이 없어 보통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꿈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면 꿈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각몽이다. 일반적이지 않아 자료만 보고 추측하는데, 통상 꿈은 자아 외의 권한이나 꿈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꿈 속에서 의지는 자아의 권한이 되는 것 같다. 


아홉째, 의식 상실. 자아는 무의식 상태에서 의지 권한이 없다. 잠결이나 만취 등으로 의식을 상실했을 때 움직이는 행동은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해서 동작하게 하는 것이다. 무의식 습관 동작은 자아의 의지 권한도 없다. 자아 외를 학습시키는 것으로 자아 외의 예측 계산 제어를 간접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열째, 세포 제어. 자아의 의지로 세포를 제어하지 못한다. 세포 제어는 자아가 아닌 자아 외에 권한이 있다. 육체 내부의 세포 제어는 자아의 의지 권한도 없다. 육체 외부의 의지 권한을 통해 세포 제어를 간접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다양한 예시로 살펴보았다.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로 발생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변수에 의해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해당 변수 조건을 추가해야 한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고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기 때문에 의식 의지 능력이 낮아지면 자아의 뇌 기능이 어떤 이유로 저하된 것일 수 있고, 무의식 발상과 동작의 능력이 낮아지면 자아 외의 뇌 기능이 어떤 이유로 저하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에 의해 가공 개념이 적절하게 된다.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아 외가 학습하여 예측 계산한 것을 무의식 발상과 동작을 실행하기 때문에,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공되게 된다.






4) 자아 발상


자아 발상은 의식 의지 있는 무의식 발상과 의식 의지 없는 무의식 발상으로 나뉜다.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할 때가 의지 있는 무의식 발상이고, 자아가 의식 의지를 가지지 않고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의지 없는 무의식 발상이다. 의지는 자아의 권한이나 실행은 자아 외의 권한이기 때문에 자아의 의지만으로 발상하기가 어렵다. 완전 기억 능력과 같은 기억력 또는 뛰어난 새로운 발상과 같은 창의력은 자아의 의지와 자아 외의 발상 능력이 더해진 결과다.


기본적으로 자아 의지가 있어야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을 선별하여 원하는 기억이나 창의를 떠올릴 수 있다. 자아 의지가 있고 나서 발상은 뇌내 저장된 정보를 떠올리는 기억 발상과 뇌내에서 몰랐던 것을 떠올리는 창의 발상으로 나뉜다. 기억 발상은 고정 자아와 고정 관념일 때 고정되어 저장된 정보를 떠올릴 때 유리하고, 창의 발상은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일 때 유동되어 몰랐던 것을 떠올릴 때 유리하다. 고정 자아는 자아가 변하지 않을 거라 여기면 고정된다. 고정 관념은 대상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의심하지 않을 때 고정된다. 유동 자아는 자아가 변할 거라 여기면 유동된다. 유동 관념은 대상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의심할 때 유동된다. 


기억 발상은 고정 자아와 고정 관념이 있는 것이 유리한데, 자아와 관념을 고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자아 나이면 된다. 단 지나치게 많이 자아와 관념이 고정되거나 자아 나이가 높으면 새로운 의견을 수용하는 것도 어렵게 되거나 과한 습관 의존으로 현재 자아 요소가 죽을 수 있으므로, 통상 자아 나이를 20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고정 자아와 고정 관념이 있어도 자아가 의지를 가지고 자아 외의 무의식 발상을 제어하면 새로운 발상이 가능한데, 과한 습관 의존으로 현재 자아 요소가 죽어버리면 자아 의지도 잃게 되는 것으로 무의식 발상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발상도 불가하게 된다. 성년 이후에는 연령별 의무도 징병 말고는 없다시피 하여 자아 나이를 20대로 두는 것은 별 상관 없다. 자아 나이가 이미 20대를 넘었을 때에 자아 나이를 20대로 낮추고 싶다면, 고정된 자아와 고정된 관념을 부정하여 스스로를 재가공 한번 하면 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논리를 통해 무의식에 남은 육체 가공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지운 것과 같이 하면 된다. 


창의 발상은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이 있는 것이 유리한데, 자아와 관념을 유동하기 위해서는 자아 나이를 2차 성징 시작인 14세에서 2차 성징 끝인 18세 사이에 두는 것이 좋다. 2차 성징 시기 이후면 고정 자아가 형상을 이뤄 그대로 고정 될 수 있고, 2차 성징 시기 이전이면 자아가 과하게 유동적이다. 고정 자아가 형상을 이루기 전에 유동 자아 상태로 둬서 유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자아 나이를 사춘기 시기에 두지 않더라도 유동 자아가 가능하면 상관 없는데, 유동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식하기 쉬운 대상이 있는 편이 좋다. 사춘기 시기에 자아 나이를 두는 것은 사춘기 시기의 혼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동 자아가 가능한데, 그렇지 않은 시기는 그런 혼란이 없어 참고할만한 기준이 되지 못하여 유동 자아가 되더라도 보통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유동 관념은 유동 자아가 되면 수월한데, 모든 관념이 유동적일 수는 없고 의식으로 인식한 관념은 유동적일 수가 있다.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창의 발상을 하다보면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 현재 자아 요소가 발상한 것이 과거 자아 요소가 이미 발상한 대상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발상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발상을 한다. 자아 나이가 사춘기를 넘었을 때에 자아 나이를 사춘기 시기로 낮추고 싶다면, 고정된 자아와 고정된 관념을 부정하여 스스로를 재가공하면 된다. 자아 나이를 20대로 낮추는 것보다는 좀 더 힘들 수 있다. 


자아 나이가 낮으면 발상에 유리하나, 그렇다고 해서 발상 연습을 하지 않으면 발상 능력이 오르지 않는다. 기억 발상은 암기한 것을 발상해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창의 발상은 새로운 발상을 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기억하는 것과 기억한 것을 발상하는 능력은 다른 능력이다. 기억되지 않아서 발상이 안되면 기억력 문제고 기억되었는데 발상이 안되면 발상력 문제다. 알고 있던 것을 발상하는 능력과 알고 있지 않던 것을 발상하는 능력은 다른 능력이다. 자아 의식 의지로 알고 있던 것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하는 능력은 기억 발상력이고 자아 의식 의지로 몰랐던 것을 자아 외가 무의식 발상하는 능력은 창의 발상력이다. 자아 의식 의지로 몰랐던 것이 창의 발상이기 때문에 발상한 것이 사회에서 새롭지 않더라도 창의 발상 연습이 가능하다. 창의 발상을 연습하여 능력을 올리면 사회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상할 수 있게 된다.






1.4 가공 인간


1) 소재 한계


문명 사회에서 사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문명으로 가공되어 문명인이 된다. 자연 환경에서 사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자연에 대해 배우듯이 문명 환경에 사는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 문명에 대해 배운다. 육체 유지 방법, 사회 적응 방법 등을 통해 우선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런 문명 가공은 보통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통해 행해진다. 교육자가 교육을 하는 이유나 학생이 교육을 받는 이유는 각자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생존을 기초로 한다. 


문명 가공을 할 때는 인간 소재에 반드시 한계가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어떤 소재도 물리 한계가 있듯이 인간 소재 또한 물리 한계가 존재한다. 여기서 물리 한계는 인간의 근육 활동 육체 한계와 두뇌 활동 정신 한계를 모두 포함한다. 


첫째, 가변 소재 한계. 가변 소재 한계는 소재 한계가 가변한 것을 말한다. 자아가 의지를 가지고 소재를 단련하면 소재 한계를 넘을 수 있다. 소재 한계는 최종 물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와 현재 심리 한계가 있다. 알기 쉽게 숫자로 비유하겠다. 최종 물리 한계가 200이고 현재 물리 한계는 100이고 현재 심리 한계가 80로 가정하겠다. 인간은 보통 현재 심리 한계인 80까지 버틸 수 있고, 극한에 다다르면 심리 한계를 넘어 현재 물리 한계인 100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현재 물리 한계를 넘을 수는 없다. 현재 심리 한계를 넘어선 단련을 지속하면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가 확장되게 된다. 그것을 보통 성장이라 부른다.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는 매번 비례하며 확장되지는 않는다.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를 과하게 확장하다 육체나 정신이 붕괴하기도 한다. 죽거나 미친다는 것이다. 근육 단련에는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하듯, 소재 한계 확장 또한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그렇게 성장하다 최종 소재 한계에 도달하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 


둘째, 불변 소재 한계. 불변 소재 한계는 소재 한계가 불변한 것을 말한다. 자아의 의지와 관련 없이 단련을 하든 말든 소재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최종 물리 한계 또는 육체 성질 한계를 말한다. 최종 물리 한계는 보통 인간이 도달하는 일이 많지 않아 알기 어렵다. 스포츠를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다. 인류의 100m 달리기 최고 속도의 공식 기록은 우사인 볼트의 9.58초이다. 보통 인간은 이 이상 최종 물리 한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최종 물리 한계 수치는 육체 상태마다 다를 수 있으나 최종에 다다르면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동일하다. 육체 성질 한계는 자아 의지로 해결 불가능한 알레르기 같은 것이 있다. 음식 알레르기나 짐승 알레르기 등은 자아 의지로 극복이 불가능할 수가 있다. 먹고 싶어도 못먹고 가까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불변 소재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소재 한계는 보통 현재 심리 한계로 결정되기 때문에 주관적이게 된다. 그런 주관적 기준에 사회 모두가 맞출 수는 없다. 특히 사회 역할이 그렇다. 특정 역할에 필요한 소재 한계를 견딜 수 있는 인간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그렇게 주어진 자격 내에서 소재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방관의 활동 같은 강도 높은 활동을 1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현재 심리 한계를 가진 인간은 그 역할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소방관 역할을 맡고 있다 하더라도 소재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방관 역할에 맞는 평균 현재 심리 한계를 가정하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방관 역할을 수행 중에 현재 심리 한계에 다다르면, 그런 것은 보통 소방관 본인이 가장 잘 알기 쉬우므로 관계자에게 말을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관계자는 소방관의 소재 한계를 보고 한계 확장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소재 한계로 판단하고 휴식을 취하게끔 해야 한다. 만약 소방관이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현재 심리 한계인 상태라면 다른 역할을 맡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소방관이 특수한 상태에 놓여 사리분별이 어렵다면, 소방관 본인이 현재 심리 한계를 말하지 않더라도 관계자는 지켜보다 휴식을 취하게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소재 한계가 발생한다. 감각, 감정, 욕구 등도 뇌내 처리에 의하여 현재 심리 한계가 발생한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 관계에 대한 현재 심리 한계에 따라 내향성과 외향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인간 관계 또한 현재 심리 한계에 의한 것이므로 단련하면 내향성이 외향성으로 바뀌기도 할 것이다. 


현재 심리 한계는 심리를 제어하는 것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상태에서 대상을 대할 때 느끼는 현재 심리 한계는 다를 수 있다. 인간 심리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인간 심리에 의한 한계를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 






2) 가공 한계


소재 한계 내에 가공 한계는 없다. 유전자 또는 환경에 의한 소재 한계는 엄격하다. 그러나 그 한계 내에서는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다. 극한까지 단련한 스포츠 선수를 제외하면 최종 물리 한계를 아는 인간은 드물다. 특히 지능은 더욱 더 그렇다. 지능의 한계를 아는 인간은 많지 않다. 지능 검사 등은 현재 소재 한계에 해당하는 것이지 최종 소재 한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인간의 선천적 재능이 재능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면서 유전자 핑계를 대며 시도하지 않고 포기한다. [재능: 1.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


현재 심리 한계가 인간의 한계를 결정해버리는 일이 잦다. 뭔가 시도하기 전에 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현재 심리 한계에 부딪치고 포기한다. 현재 물리 한계는 100까지 가능한 것을 현재 심리 한계가 80까지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공개 발언을 꺼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현재 심리 한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인간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고 여기며 그런 것도 선천적 재능에 의한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소재 한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동일 종으로 그 차이가 엄청 크지는 않다. 인간의 한계는 현재 심리 한계로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 심리 한계를 넘으면 일반 인간이 하는 것은 다른 일반 인간도 다 할 수 있다. 



소재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가공하려면 자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고 자아 외는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다. 자아가 무엇을 좋아하도록 느끼게끔 실행하는 것은 자아 외의 권한이다. 꽃 향기를 맡고 그것이 기분 좋다 느끼게 만드는 것은 자아가 아닌 자아 외다. 이렇듯 취향을 느끼게 실행하는 것은 자아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나 의지 권한이 있기 때문에 접촉의 자유는 있다. 무엇을 경험할지 결정하는 것으로 자아 외가 무엇을 좋아하게끔 느끼게 실행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축구와 야구 중 축구를 먼저 보면 축구를 좋다 느끼는 것으로 팬이 될 수 있고 야구를 먼저 보면 야구가 좋다 느끼는 것으로 팬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본인 취향을 가공할 수 있다. 징크스나 루틴도 자아의 의식 의지가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을 제어하기 위한 것 중 하나다. 징크스나 루틴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을 제어하는 것이다. 


자아의 의식 의지로 본인 취향으로 결정하고 접한 것을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으로 좋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자아가 의식 의지로 반복 학습하면 자아 외가 무의식 실행으로 좋게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아 외를 설득하면 된다. 자아 외는 유전자와 자아 요소의 의지로 만들어진 기억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자아 외를 바꾸는 것은 바꾸기 어려운 유전자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자아 요소들을 설득하는 것에 해당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지금까지 자아 요소를 설득하여 개인의 가공을 부정적으로 여기던 관념을 바꾸는 것으로 자아 외를 바꾼 것과 같이 하면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필요한 것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강한 쾌락을 주는 도박이나 마약에 의한 몸 상태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강한 쾌락을 한번 알고 나면 자아의 의식 의지와 별개로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으로 도박이나 마약을 식욕과 같은 기본 욕구로 여기며 갈망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기본 욕구가 될 정도가 되면 본질이 바뀌는데, 보통 그것이 본인의 의지가 아닐 확률이 높으므로 원치 않는 재가공에 해당하게 된다. 도박은 낮은 확률에 의한 쾌감으로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으므로 현금 도박을 경계하면 되고, 마약은 물질에 의한 쾌감으로 술 담배뿐만 아니라 식사로도 경험할 수 있으므로 과한 마약을 경계하면 된다.

 

소재 한계 내에 가공 한계는 없으나 문명에 최적화된 가공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문명에 적합한 언어, 태도, 외모, 욕구, 욕망 등을 갖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뭐든지 가능하다고 문명에 적합한 상태로 가공된 문명 가공 형태를 일부러 깰 필요는 없다. 폭력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으나, 그것을 스포츠가 아닌 범죄로 저지르면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지게 된다. 수많은 명품을 두르고 있어도, 그 명품을 두른 인간의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지게 되면 짐승이 명품을 두른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문명인에게는 문명에 적합한 가공 형태를 만들 자유가 있다. 자아는 의식 의지 권한이 있지 무의식 실행 권한이 있지 않으므로, 문명에 부적합한 것은 처음부터 겪지 않는 것이 가공 형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3) 소재 파악


자유로운 가공을 위해서는 소재 한계 파악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통 소재 한계 파악을 하기가 쉽지 않다. 최종 물리 한계는 보통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스포츠 기록 정도로 육체는 유추할 수는 있다. 현재 물리 한계는 극한에 다다라야만 일부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으로는 알 수가 없다. 현재 심리 한계는 주관으로 한계를 느낄 때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심리 상태가 좋지 못하면 현재 물리 한계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현재 심리 한계일 수가 있어 제대로 파악했다 하기가 어려워진다. 


A는 현재 물리 한계 100에 현재 심리 한계가 70이라 가정하고 B는 현재 물리 한계 100에 현재 심리 한계 50이라 가정하자. 그러면 겉으로 보여지는 재능은 A가 더 뛰어나 보일 수 있다. 그러나 B가 현재 심리 한계에서 벗어나 80이 되면 재능은 B가 더 뛰어나 보일 수 있다. 이걸 알기 쉬운 용어로 말하면 자신감 차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심리 한계에 의해 인간의 한계가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재능과 노력의 비율을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재능은 비슷했는데 현재 심리 한계 차이로 재능이 다른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은 보통 자신감이 높을 것을 고려하면 현재 심리 한계가 다른 이들보다 높았을 것이다. 재능이 높아보였던 것이 현재 물리 한계가 아닌 현재 심리 한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면, 성공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현재 심리 한계만 벗어나면 성공한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가능한 높은 현재 심리 한계 상태여야 소재 파악이 수월해지게 된다.


유전자 검사, 지능 검사, 신체 검사 등을 현재 심리 한계가 높은 상태에서 검사하여 가능한 현재 물리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영양분과 스트레스 유무도 고려해야 한다. 비슷한 유전자라 하더라도 영양분과 스트레스 유무에 따라 소재가 다를 수가 있다. 그렇게 소재를 제대로 파악해야 자유롭게 가공이 가능해진다.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본인의 소재를 파악하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최적화된 가공을 해야 한다. 소재 파악은 혼자서 하기 어려우므로 교육 기관에서 주관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소재 파악은 개인의 의지로 행해져야 한다. 타인이 멋대로 소재 파악한다고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 특정 개인에게 면접관이 본성을 보겠다고 압박 면접을 하거나 연인 부모가 본성을 보겠다고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타인이 그렇게 본성을 보겠다고 소재 한계를 멋대로 파악하면 의외로 쉽게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질 수 있다. 현재 심리 한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타인이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명 가공 형태가 깨지면 문명 사회에 부적합하게 되면서 사건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 사건사고의 원인은 누가 되겠는가? 남을 실험하고 싶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을 해야 한다. 인간을 실험하고 나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들 사건사고의 원인은 실험한 인간이 된다.






4) 가공 파악


기본 가공은 보통 2차 성징 시작에서 2차 성징 끝 사이에 행해진다. 2차 성징 시작 시기에 육체 기능이 대부분 동작하고, 자아가 고정되어 고정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시작은 10~14세, 끝은 15~17세로 개인 편차가 심하여 시작은 14세, 끝은 18세로 정해둔다. 2차 성징 이전은 기본 가공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본 가공 준비에 해당한다.


기본 가공은 현재 심리 한계와 현재 물리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다. 기본 가공은 체제, 감각, 가치, 통치, 성애를 통해 문명인이 되기 위한 기본을 마련하고, 동력, 능력, 학문 등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결정한다. 개인별 성장 동력을 찾아 능력을 키우고 학문을 하는 것으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한계가 확장된다. 그러면서 인간은 최종 물리 한계까지 성장한다. 보통 일반적으로 선천적 재능이라 여기는 것은 초기 심리 한계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최종 물리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초기에 빠른 성장을 했더라도 후기에 성장이 더뎌지거나 최종 소재 한계가 낮을 수 있고, 초기에 느린 성장을 했더라도 후기에 성장이 빨라지거나 최종 소재 한계가 높을 수 있다.


추가 가공은 기본 가공에 추가로 가공하는 것으로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관습에 따른 연령별 의무가 있었다. 지금과 달리 결혼 시기, 생산 시기, 출산 시기 등이 다 정해져 있었다. 만약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하도록 강요했다. 그런 의무를 행할 때마다 육체 변화와 환경 변화를 인식하면서 추가 가공이 되었다. 동시에 자아 나이도 사회 나이를 따라가게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교육의 의무와 남성의 경우 징병의 의무를 제외하면 관습에 따른 연령별 의무를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추가 가공도 개인별로 편차가 심해지게 되었다. 보편적 시기에 비슷하게 추가 가공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성장을 자각하는 시기에 추가 가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개인별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에는 법적 의무 시기에 추가 가공된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신세대는 성장을 해도 자아 나이가 20대 초반일 확률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미성년 시기에 가치, 성애 등에 대한 가공이 미비하여 연애, 생산, 결혼, 출산 등이 저하되는 것으로 사회와 체제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사회 전체가 파탄났다.


재가공은 기본 가공을 다시 가공하여 본질을 바꾸는 것이다. 자아의 본질을 바꾸면서 다른 사람이 된다. 자아는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같은 자아 존재가 되기 때문에 특정 자아 요소 시기에 자아의 본질을 바꾸더라도 기억을 공유하면 같은 존재가 된다. 재가공은 변화의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하거나, 다른 체제인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하거나, 가공 형태가 파괴되어 범죄를 저지를 것 같거나 저질렀을 때에 사회에 적합하기 위해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제대로 재가공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불법 종교이나 불법 도박에 빠졌을 때에 어떤 식으로 본질이 바뀌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은 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려울 뿐이다.



가공 대상은 크게 육체와 정신으로 나뉜다. 육체 가공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아니기에 따로 다룰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육체의 어느 부위를 가공하려면 어떤 방식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기가 쉽다. 먹는 음식, 수면 시간, 단련 방법 다 공개되어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정신 가공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인간의 기본은 유전자에 의한다. 기본적인 생각과 행동의 구조와 원리는 유전자에 의한다. 유전자에 설계된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이 언어를 익혀 체계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능해지면서 유전자와 사상의 영향력 경쟁이 시작된다. 보통 문명 가공 레벨이 높을수록 생각과 행동에서 구조는 유전자의 영향이 크고 원리는 사상의 영향이 크고, 문명 가공 레벨이 낮거나 형태가 무너질수록 구조와 원리 모두 유전자의 영향이 커지게 된다. 환경은 유전자와 사상 둘 다 적용되는 전제다. 


문명 가공 레벨이 높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리는 사상의 영역이 커진다. 유전자 구조 내에서 문명인이 기본 욕구를 느끼게 되면 문명으로 가공된 원리에 의해 기본 욕구 대상이 결정된다. 유전자 구조 내에서 식욕이 생긴다. 식욕이 생기면 기억에 존재하는 음식 중에서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에 의해 음식이 결정되어 자아에 전달한다. 전달 받은 자아는 그 음식을 자아의 의식 의지로 먹을 것을 결정한다. 먹기로 결정하면 식사를 하고 먹지 않기로 결정하면 또 다른 음식을 떠올리도록 자아 외에게 전달한다. 일반 문명인의 생각과 행동의 구조와 원리는 보통 이런 식이다. 


이런 원리는 사상을 기본으로한 논리 회로로 보면 이해가 쉽다. [논리 회로: 1. 논리 소자를 사용하여 구성한 회로. OR, NOT, AND 회로 따위의 논리 연산을 하는 회로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논리 회로는 디지털 기술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가공과 비슷하게 인간의 가공을 파악할 때에 가장 적절해 보여서 쓰도록 하겠다. 사상 논리 회로에 유전자, 환경, 사상 등의 조건이 더해져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나오게 된다. 논리 회로의 순서는 사상의 영향력에 따라 정해진다. 비슷한 논리 회로가 있을 때 영향력이 높은 것부터 적용된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할 때 손이 아닌 식기 도구를 쓰는 것은 식기 도구를 쓰는 논리 회로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사상은 강제력이 높은 것부터 영향력이 높게 된다.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사상은 지금까지는 강제력이 높은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였다. [도덕: 1. 사회 구성원들의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 [윤리: 1.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2. 인간 행위의 규범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도덕은 학문 이전의 옳고 그름을 말하고 윤리는 학문 이후의 옳고 그름을 말한다. 모든 옳고 그름이 학문화가 되지 않았으므로 도덕과 윤리는 사회에서 모두 쓰인다. 도덕과 윤리에 있는 옳고 그름이 자연법이 되고, 자연법을 기준으로 실정법이 만들어졌다. 그 실정법을 기준으로 사회의 질서가 정해진다. 통상 집단주의인 왕정 체제에서의 질서는 이런 구조로 이루어졌으나, 개인주의인 민주정 체제에서는 현대 체제가 더해지면서, 실정법에 도덕과 윤리로 만들어진 자연법보다 체제의 기초인 헌법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아직 도덕과 윤리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와 체제의 영향력이 비슷한 상태다. 도덕과 윤리는 집단주의 체제에 속한다면 현재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에 속하는 것으로 서로의 성질이 달라 충돌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에 의해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이 현대 문명의 혼란을 부른 가치 충돌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사상은 도덕과 윤리 또는 체제 가치가 된다. 



보편적 윤리인 이타주의를 통해 논리 회로를 이해해보자. [이타주의: 1. 사랑을 주의로 하고 질서를 기초로 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타인의 행복과 복리의 증가를 행위의 목적으로 하는 생각. 또는 그 행위] 이타주의는 다수의 인간이 인식하는 윤리에 해당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을 희생한다는 행위가 절대 옳다 여겨지면서 강제력이 높게 되고 있다. 이타주의가 절대적으로 옳다 전제하기 때문에 이타주의에 의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생기게 된다. 이타주의에 의해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 때, 좋은 현상으로 보이면 이타주의 덕분이라 말하지만 나쁜 현상으로 보이면 다른 사상 때문이라 말한다. 이타주의는 언제 어느때도 좋은 현상으로 보이게 된다는 인식 오류를 만든다. 그렇기에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단순한 논리 회로로 바라봐야 한다.


이타주의의 사전적 정의에서 자잘한 것을 빼면 다음과 같이 남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한다.’ 이것이 이타주의의 기본 논리 회로다. 여기서 행복, 희생 같은 개념이 인간 관념으로 자리잡아 논리 회로의 요소가 된다. 이것이 윤리와 같이 강제력이 높게 되면, 이것을 근거로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나의 행복을 위해 네가 희생해라.” 이타주의를 윤리로 여기면 이런 논리가 성립된다. 이것이 보통 전체주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국가의 행복을 위해 국민이 희생해라.” 파시즘과 나치즘 같은 모든 전체주의의 기본은 이타주의 논리 회로다.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환경 조건이 들어간다 해보자.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게 되면서 개인에게 강요를 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한다.’에 강요 조건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개인에게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그런데 왕정에서는 사회적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강요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이, 보통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이것이 신분 제도 등의 수직 사회를 성립시키는 근간이 된다. 물론 힘을 가진 인간이 본인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 가 있으나, 그것은 힘으로 억누를 수 있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강요 조건이 들어가면서 일방적 전체주의가 성립되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의 권리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강요를 할 수 없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한다.’에 자유 조건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이 본인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민주정에서는 사회적 힘이 동등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이것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성립시키는 근간이 된다. 만약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희생했는데 왜 너는 희생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윤리적 비난을 하는데, 그것을 힘으로 피하기도 어렵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자유 조건이 들어가면서 상호적 전체주의가 성립되게 된다.


해당 논리 회로에 어긋나게 되거나 그런 현상을 목격하면 불쾌감, 불안감, 초조함 등을 느낄 수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각과 비슷할 수 있다. 도덕과 윤리와 같은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강박증까지 될 수 있다. 도덕 논리 회로가 어긋나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도덕적 강박증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강박증이 있으면 도덕에 어긋나는 것을 볼 때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런 것을 양심이나 죄책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체주의는 윤리인 이타주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로 만들어진 자연법을 질서로 삼은 곳에서는 양심과 같은 것에 의해 사라지지를 않게 된다. 반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를 기초로 삼은 헌법을 질서로 삼은 곳에서는 체제 합리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현재 다수의 국가에서 자연법과 헌법의 충돌이 발생하여 전체주의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나 아직 많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이타주의가 아닌 이기주의가 필요하다. [이기주의: 1.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여겨지는 순간부터 개인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회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데 어떻게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지 궁금해할 수 있는데,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위하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사회 일반의 이익이 얻어지게 된다.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보호가 보통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을 위해 국가 구조 유지는 개인의 이익이 된다. 그런 상태에서 모든 개인의 이익 추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정한 법, 정책, 제도가 도입되게 된다. 이런 구조를 통해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사회 일반의 이익이 얻어지게 된다. 


현재 이기주의 사전적 정의는 이타주의를 절대적으로 옳게 여기게끔 만들기 위해 모순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의지로 행한 것이 개인이 이익이다. 그것을 전제하면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타인의 의지로 행한 모든 행위는 이타주의가 되고, 본인의 의지로 행한 모든 행위는 이기주의가 된다. 타인의 의지면 본인을 위하든 타인을 위하든 이타주의가 되고, 본인의 의지면 본인을 위하든 타인을 위하든 이기주의가 된다. 이타주의로는 희생을 강요하거나 받을 수 있지만 이기주의로는 희생을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보통 유전자 또는 사상 논리 회로에 다양한 조건이 더해지면 나오는 결과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다. 전체주의가 체제 가치에 의해 나쁘다는 인식하는 인간이 많으나, 전체주의가 윤리에 의해서 나타났음을 인식하는 인간은 드물다.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기 때문에 전체주의의 원인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된 것이다. 그냥 논리 회로로 보면 단순히 영향력이 높은 사상 논리 회로 순서대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향력이 높은 도덕과 윤리와 체제 가치가 대부분 한국 사회 현상의 근본 원인이 된다.






1.5 가공 사회


1) 가치 성질


가치는 판단 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한다. [가치: 3.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진리, 도덕, 아름다움 등과 같이 판단이 가능하면 가치가 된다. 인간이 가치를 판단하여 평가하는 것을 통해 사회가 조직된다. 왕정에서는 소수 권력자가 사회를 조직하고 민주정에서는 모든 개인이 사회를 조직한다. 대표적인 개인의 사회 조직 제도가 바로 선거 제도와 시장 제도다. 


선거 제도는 선거를 통해 개인이 후보자의 가치를 평가하여 통치 대행자를 선출한다. 일반적인 인사 제도와 비슷하게 통치 대행자를 선출할 권리를 동등하게 한표씩 나눠서 분배한다. 개인은 통치 대행자에게 모든 주권을 위임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 개인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이 권력을 가지고 강제력을 행사해야 본인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시장 제도는 시장을 통해 개인이 상품의 가치를 평가한 것을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게끔 한다. 생산자는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여 가격을 매겨 팔고, 소비자는 시장에 있는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여 가격이 적절하면 구매한다. 만약 생산자가 파는 상품 가치에 비해 가격이 높다고 소비자가 평가하고 구매하지 않으면 판매되지 않으면서 수요가 공급에 비해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생산자는 상품을 팔기 위해 상품 가격을 낮추면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


선거 제도와 시장 제도는 개인주의 체제의 제도로 집단주의 체제의 가치로 접근하면 제도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게 된다. 선거 제도에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특정 후보를 선출할 것을 개인에게 강요하면서 선거 원리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개인의 선거권이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 제도에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상품 가격을 맞출 것을 담합하면서 시장 원리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소비자가 상품의 가치를 평가한 것과 무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치는 사회를 조직하는 기준이 되어 가공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 성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논리 회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치는 도덕과 윤리와 체제 가치다. 대부분 도덕과 윤리는 통상 유교, 불교, 기독교와 같이 종교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종교 가치로 부르겠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집단주의적인 종교 가치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적인 체제 가치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공존할 수 없는 정반대인 성질을 가진 가치가 어떻게 해서 공존하게 된 것인지는 인류 역사를 봐야 알 수 있다. 매우 요약해서 설명하겠다.



원시인은 유전자 논리 회로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유전자에 의한 기본 욕구를 가장 빠르고 쉽게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인 정복과 지배를 활용했다. 기본 욕구가 선천적이고 정복과 지배는 기본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후천적이다. 인간의 유전자에 의한 것이기에 대부분 인류에게서 비슷한 사회가 탄생했다. 정복과 지배를 반복하며 성장한 사회는 정복자와 피정복자로 나뉘어 신분 제도가 나타났다. 그런 사회는 폭력으로 질서를 구축하였기에 폭력에 의해 언제든지 신분이 달라질 수 있어 사회 구조가 굉장히 불안정했다. 인간은 힘들 때 현실을 도피하지 않으면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구조가 불안정했다. 이 두 가지를 보완한 것이 바로 종교다. 종교 창시자는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가치를 주장했고, 현실 도피할 수 있는 가치를 주장했다. 도덕과 신비다. 도덕으로 폭력을 대신할 질서를 구축하고, 신비로 현실을 도피할 근거를 마련했다. 도덕으로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등이 있고, 신비로는 영혼과 사후 세계 등이 있다. 


종교의 도덕과 신비가 인류 사회에서 보편적인 이유는 자연 선택과 비슷한 사회 선택에 의한 것이다.  [자연 선택: 1. 자연계에서 그 생활 조건에 적응하는 생물은 생존하고, 그러지 못한 생물은 저절로 사라지는 일.] 당시 신분 사회에 적합한 가치를 주장한 종교는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종교는 저절로 사라졌다. 금욕주의는 필요 이상 욕망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신분을 넘보지 못하게 했고, 이타주의는 사회의 행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영혼은 전생과 후생의 근거가 되어 현생의 고행을 견디게 만들었고, 사후 세계는 천국과 지옥을 통해 도덕을 지키게 만들어 신분 사회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가치를 주장한 인간은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런 식으로 활용된 사상의 가치가 살아남았다. 사회에 선택 받지 못한 사상은 보통 살아남기 어려웠다.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면 신분 제도가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권력자가 채택하지 않고, 개인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착취하면 사회의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회의 침략으로 사회 구조가 붕괴하기 때문에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실제 부적합한 사상을 선택한 사회는 사라졌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법가와 같이 평등한 권리를 주장한 사상은 소외되고 윤리가 다른 종교와 유사했던 정치사상인 유학과 유학처럼 종교화가 된 것이 살아남았다. 수많은 윤리 중에서 종교 가치가 살아남은 것은 종교와 같이 구심점이 있어야 사상이 오랫동안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사상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유럽에서 잊혀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회 선택이 일어나게 되면서 인류의 종교 가치가 비슷하게 되었다. 이런 형태의 사회가 중세까지 이어지게 된다. [중세: 1.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로, 고대에 이어 근대에 선행하는 시기.]



각국 문명 레벨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사회 구조와 가치인 상태에서 서양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 1. 14세기~16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 혁신 운동. 도시의 발달과 상업 자본의 형성을 배경으로 하여 개성·합리성·현세적 욕구를 추구하는 반 중세적 정신 운동을 일으켰으며, 문학·미술·건축·자연 과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유럽 문화의 근대화에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이슬람 등을 거쳐서 발전한 자연 계열의 탐구를 받아들이면서 대항해시대의 정신적·기술적 토대가 마련되게 된다. 종교 가치 논리 회로에 르네상스 조건이 들어가면서 대항해시대의 유럽 식민화가 합리화되게 되었다. 그 합리화에는 종교 전파가 들어가 식민화 항선에는 선교사가 탑승하여 종교를 전파하게 되었다. 대항해시대를 통해 유럽은 큰 부와 많은 정보를 쌓고 학문을 발전시키면서 인쇄술 등과 같이 종교 개혁과 과학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종교 개혁: 1. 16세기에 유럽에서 로마 카톨릭교회에 반대하여 일어난 개혁 운동. 151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제시하여 면죄부 판매를 공격한 데서 비롯하였는데, 개인의 신앙과 성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성립되었다.] [과학 혁명: 1.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자연 과학 분야의 획기적 변혁. 근대 과학의 확립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식의 거대한 혁명을 일으켰다.] 


종교 개혁을 통해 개인의 권리가 증진되고, 과학 혁명을 통해 개인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술이 나타나면서 이월 혁명과 산업 혁명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월 혁명: 1. 1848년 2월에, 프랑스에서 왕정에 반대하여 시민이 일으킨 혁명. 국왕 루이 필리프가 망명하고 제이 공화정이 수립되었으며 유럽에 자유주의 혁명 운동이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 혁명: 1.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생산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조직의 큰 변화. 영국에서 일어난 방적 기계의 계량이 발단이 되어 1760~1840년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계속 일어났다. 수공업적 작업장이 기계 설비에 의한 큰 공장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되었다.] 종교 가치인 기독교 평등주의 논리 회로에 개인의 권리 조건이 들어가면서 자유주의 사상이 합리화되게 되었다. [자유주의: 1. 17~18세기에 주로 유럽의 신흥 시민 계급에 의하여 주장된 시민적·경제적 자유와 민주적인 여러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사상이나 운동. 로크, 루소, 벤담, 밀 등이 주창하였으며,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개인의 권리를 주장한 자유주의 사상은 왕정과 신분 제도와 공존하지 못하게 되면서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민주주의: 1. 국민이 권력이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국가 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자리잡았으나, 국가 질서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집단주의 체제에 적합한 종교 가치가 남아버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체제 가치와 종교 가치와 같이 정반대의 성질의 가치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자본주의: 1.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 [시장주의: 1. 가격 체제에 의해 자원 분배와 생산량의 조절이 이루어지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공공 서비스를 생산하고 공급하자는 태도.] 종교 가치인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자유 조건이 들어가자 자유방임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자유방임주의: 1. 경제 정책에서, 국가 권력의 간섭을 최소한도로 제한하고 사유 재산과 기업의 자유를 옹호하려는 이론. 18세기 중기의 자본주의의 기본적 정책으로, 스미스 같은 고전학파 학자들이 체계를 세웠다.] 당시 사회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있었으나, 과거 신분 제도의 관념에 의해 사회적 힘이 동등하단 인식이 부족하여, 서로가 서로를 희생시키는 상호적 전체주의가 아닌 일방적으로 상대를 희생시키는 일방적 전체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가는 자유를 명분으로 농노와도 다를바 없다고 인식되었던 노동자를 착취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왕정의 신분 제도와 다를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피에 의한 신분 제도가 아닌 돈에 의한 신분 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가의 착취에 의해서 사회에서 이런 생각이 퍼지게 된다. 개인의 자유가 인간을 차별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이 평등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주의: 1. 사유 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여 자본주의 제도의 사회적·경제적 모순을 극복한 사회 제도를 실현하려는 사상. 또는 그 운동.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사회 민주주의 따위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공산주의: 1. 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하여 체계화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입각한 사상. 재산의 공동 소유가 옳다고 주장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화와 무계급 사회를 지향한다.] 종교 가치인 기독교 평등주의 논리 회로에 집단 평등 조건이 들어가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합리화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합리화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집단 평등을 추구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과 유사한 체제가 되어버리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 체제가 되면서 근대로 진보했다가 집단주의 체제인 공산정 체제가 되면서 중세로 퇴보한 것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공산정이 왕정과 유사하게 된 것은 왕정과 유사한 체제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에 의한 것이다. 하나는 종교 가치에서 벗어난 체제를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었던 것에 의하고, 둘은 종교 가치 외의 다른 질서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것에 의한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지 못하고 집단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퇴보를 하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는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왕정, 신정, 공산정에 머물러 있는 국가도 개인주의 체제의 체제 가치에 영향을 받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소련의 붕괴로 이념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소련이 붕괴했다 해서 소련을 성립시킨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결코 그렇지가 않다. 진영으로 나뉜 냉전과 별개로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는 더욱 더 충돌하고 있다. 그야말로 가치 충돌의 시대다. 개인주의 체제인 상태였으나 신분 제도와 종교 가치의 영향으로 모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종교 가치인 기독교 평등주의 논리 회로에 집단 평등 조건이 들어간 사상이 유행되게 된다. 바로 PC주의와 여성주의다. [political correctness: 1. 정치적 정당성(차별적인 언어 사용·행동을 피하는 원칙)] [여성주의: 여성의 사회, 정치, 법률상의 권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경향이나 태도.] 공산주의가 왕정의 정복 방식과 비슷하게 폭력적으로 권리를 획득했던 것과 같이, PC주의와 여성주의 또한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얻는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절대적 이익 개념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PC주의와 여성주의의 대상에 속한 집단은 절대적으로 이익을 얻는 결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약자에 속했던 이들이 절대적 이익을 얻다 보면 강자에 속했던 이들과 권리가 비슷해지면서 평등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평등이란 종교 가치는 윤리가 절대적인 것과 같이 절대적이게 되면서, 평등을 명분으로한 주장 또한 절대적으로 여겨지며 강제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평등을 명분으로 절대적 이익이 성립되면서 온갖 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흑인이나 성소수자는 어떤 매체에도 할당제를 강제하면서 다른 인종이나 성애를 차별하거나, 약자는 약자의 작은 금액의 절도 범죄는 죄가 아니라 하면서 판매자를 차별하거나, 여성은 능력과 무관하게 할당제와 가산점을 주장하거나 성인지 감수성을 말하며 무죄 추정의 원칙조차 부정해버리는 것으로 남성을 차별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종교 가치로 보면 정당할 수도 있으나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체제 가치로 보면 명백하게 부당하다. 종교 가치의 평등은 집단주의의 평등이고 체제 가치의 평등은 개인주의의 평등으로 분명하게 다르다. 개인주의의 평등은 사회학적 인종 · 성별 등과 같은 집단 평등이 아닌 모든 개인의 평등이다. 이외에도 오늘날 대부분 불합리한 사회 문제는 가치 충돌에 의한다. 앞으로는 체제와 질서 모두 개인주의 체제 가치로 진보해야 한다.






2) 가치 충돌


오늘날은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충돌하는 가치 충돌의 시대다. 그런데 본래라면 진작에 체제 가치는 종교 가치에 밀렸을 확률이 높다. 인간의 인식까지 조작하여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만드는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윤리의 영향이 그만큼 크다. 그럼에도 체제 가치가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존재가 크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공동체 사상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보다 평등을 중시하고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식민지 독립을 통해 자유를 중시하고, 서양 문명 입장에서 신대륙 국가였기에 이민족 국가가 되어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이 지나치게 많아 하나의 공동체 구심점을 만들 수가 없었다. 미국은 기독교 가치관이 있었음에도 자유를 추구하고 단일 민족과 같은 공동체가 성립되기 어려워 공산주의 열풍에서 벗어나 반공주의의 주축이 되어 개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로 자리잡자, 종교적 가치관을 가진 선진국에서도 개인주의 체제를 유지하거나 사회 민주주의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체제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 사회 민주주의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의 결합으로 체제 충돌에 의해 진보할 수 없는 체제지만, 그래도 개인주의 체제의 가치가 살아남아 개인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었다. 다수의 공산주의 국가조차도 경제는 시장주의를 받아들여 개인주의 체제의 일부를 수용하게 되었다. 식민지 독립 국가, 신대륙 이민족 국가, 세계 최강 국가. 이 요소가 모여 인류는 개인주의 체제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 종교 가치 영향이 높은 한국이나 일본이 개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미국 영향이 굉장히 크다. 만약 미국이 없었다면 종교 가치에 의해 체제 가치가 밀려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많은 개인이 고통 받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수천 년간 종교 가치로 가공된 인류가 종교 가치를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 미국에서 디지털 기술로 민족을 초월한 공동체 구심점이 생기면서 미국조차도 PC주의와 같이 집단주의 사상이 퍼지고 집단주의적인 노조가 과거보다 활성화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은 다양한 종교 가치로 가공되었다. 종교의 보편적 가치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와 유교의 가치인 수기치인, 삼강오륜, 정조관념 등으로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적인 인간으로 가공되었다. 자유보다 억압을 추구하고 역할보다 권위를 중시하며 정당한 평등보다 부당한 차별을 원하는 것은 종교 가치에 의한 것이다. 누군가는 본인이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데, 종교 가치보다 체제 가치로 가공된 영역이 많을 경우에는 그럴 수 있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다. 


이런 종교 가치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가 충돌하면서 수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 파탄이다. 연령별 의무를 전제한 교육과 성 터부시 등은 종교 가치로 만들어진 자연법을 근거로 하고, 연령별 의무가 사라진 것은 체제 가치를 기초로 한 헌법을 근거로 하기에 저출산이나 사회 활동 둔화 등과 같은 사회 파탄은 가치 충돌이 원인이 된다. 이외 사회 전반적으로 대부분이 종교 가치에 의하여 체제 가치가 훼손되면서 사회가 파탄나고 있다. 입시나 취업과 같은 공정 경쟁이 필요한 곳에서는 인맥에 의한 비리로 공정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시장 거래와 같은 공정 거래가 필요한 곳에서는 담합에 의한 가격 통제로 시장 원리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인간 관계와 같은 평등 관계가 필요한 곳에서는 인권을 명분으로 평등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인간의 생활 양식은 종교 가치나 체제 가치로 규정된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생활 양식을 통해 질서가 유지되었다. 종교 가치는 “금욕적으로 살아라”, “이타적으로 살아라”, “연령에 차례가 있게 살아라” 등과 같은 구체적인 지시로 비슷한 생활 양식을 공유하게 하였다. 그 중 이타주의에 의해 전체주의적이게 되면서 특정한 생활 양식이 절대적이게 된다. A 사회 나이에는 무엇을 하고, B 사회 나이에는 무엇을 한다. 특정한 기준으로 줄을 세워 판단한다. 이러한 정해진 생활 양식에 의해 한국은 완벽주의적인 태도가 나타나게 된다. 완벽주의는 윤리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과 이타주의에 의한 전체주의의 결과 중 하나다. 한국에서 전체주의적인 생활 양식이 나타난 것은 종교 가치에 의하여 왕정의 생활 양식과 유사해졌기 때문이다. 종교 가치는 왕정의 생활 양식이라면, 체제 가치는 민주정의 생활 양식에 해당한다. 체제 가치는 자유를 기초로 하기에 민주정의 생활 양식은 본래 종교 가치보다 자유롭다. 그러나 가치 충돌에 의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와 유교 가치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을 파악하면서 가치 충돌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다. [금욕주의: 1. 정신적·육체적 욕망이나 욕구 및 세속적 명예나 이익을 탐하는 모든 욕심을 억제하여 종교나 도덕에서 이상을 성취하려는 사상. 불교나 기독교에서도 이 사상을 볼 수 있다.] [욕구: 1.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 [욕망: 1.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욕심: 1.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금욕주의는 종교나 도덕이 말하는 가치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본 욕구를 제외하면 욕심을 억제하자 주장한 사상이다. 종교나 도덕은 가치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랑, 평화, 행복 등의 가치에 해로운 것을 악이라 규정했다. 가치의 본질적인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여 표면상으로 보았을 때 가치 훼손이란 악이 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자고 주장하면서 금욕주의가 성립되었다. 기본 욕구와의 구분을 위해 욕망이라 부르겠다. 금욕주의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은 사회에서 멀어져 오지에서 금욕을 행하면서 일반 인간과 관계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금욕주의가 윤리가 되자 절대적이게 되면서 타인에게도 금욕을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금욕이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너는 나쁜 욕망을 가지면 안돼.” 그런데 그 나쁜 욕망이라는 것이 굉장히 애매했다. 종교나 도덕이 말한 나쁜 욕망의 범주는 굉장히 넓었고, 그에 따라 금욕을 강요하는 인간의 기준으로 나쁜 욕망이 결정되어 금해지게 되었다. 


보편적으로는 폭력, 성애, 음주, 도박, 새로운 취미 등에 관한 욕망이 바로 그렇다. 이런 나쁜 욕망은 집단의 이익에 해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이런 종류의 욕망을 행하면 신분 사회의 질서가 흔들렸다. 인간 관계를 파탄나게 할 수 있는 일반 폭력, 성폭력 등과 같은 폭력이나 음주나 도박은 둘째 치고 성애나 새로운 취미가 금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피로 만들어진 신분 사회에서 개인의 성애를 자유롭게 두면 신분이 다른 이들과의 성애로 신분 사회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신분 사회에서는 집안의 결합이라면서 개인의 성애조차 집단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걸 위해 한국에서는 정조관념이나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것을 만들어 가르치며 자발적으로 금욕을 하게끔 만들었다. 새로운 취미가 금욕의 대상이 된 것은 나쁜 욕망의 대상이 모호했기에 가능했다. 힘을 가진 인간이 생각하는 가치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방해되는 것 중에서 본인이 잘 모르거나 싫은 것은 나쁜 욕망이 되어 금욕을 강요하게 되었다. 게임은 물론이고 만화나 영화도 과거에는 탄압받던 취미였다. 한국에서 이런 취미는 수기치인에 의해 단순 입시뿐만 아니라 윤리가 된 모든 학업 가치의 이상에 방해되었기 때문에 당장 입시와 관계가 없을 때도 나쁜 욕망이 되어 탄압당했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음에도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가 남아서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에게 금욕을 강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오늘날 금욕 강요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금욕주의라 할 수 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개인에게 의무를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금욕을 강제하더라도 사회가 작동하였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의무를 제외하면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금욕을 강제하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왜 일, 결혼, 출산을 하지 않냐고요? 욕망이 나쁘다면서요. 그래서 가지지 않았어요. 욕망이 적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데 뭐하러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나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챙기기 위해 아르바이트만 하거나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이성 관계를 맺지 않고 애도 낳지 않을 거예요.” 미성년 시기 학업이란 특정 가치를 제외하면 대부분 욕망을 억제당하며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면서 사회 전체가 파탄난다. “왜 배고파도 일을 하지 않냐고요? 그냥 죽을 거니까요. 욕망은 나쁘잖아요.” 금욕주의 논리 회로로 이미 삶의 동력이 잘려나간 인간이 억지로 살고 있다. 자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바로 죽는다. “왜 일확천금을 바라냐고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기본 욕구 충족은 돈이면 다 되거든요. 자아실현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욕망은 적고 기본 욕구만 많으니까 돈만 있으면 돼요. 실패하면 죽죠 뭐. 그거 말고 바라는 것도 없는 걸요.” 주식, 부동산, 가상 자산 등의 파멸적 대출 투기와 도박이 활성화된다. 


금욕주의 논리 회로에 의해 동력을 상실한 인간은 최소한의 기본 욕구만 충족하면서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났다. 경제 활동 둔화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율과 같은 현상은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금욕주의 논리 회로를 기본으로 한다. 기본 욕구만 남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욕망이 없는 인간은 짐승처럼 먹고 자고 싸고 발정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는가? 수기치인에 의해 윤리가 된 학업을 한들 스스로가 원치 않으면 욕망이 없는 상태나 다름 없어진다. 눈을 떠야 할 이유를 모른다. 몸을 일으켜야 할 이유를 모른다. 밥을 먹어야 할 이유를 모른다. 똥을 싸야 할 이유를 모른다. 밖에 나가야 할 이유를 모른다. 인간을 만나야 할 이유를 모른다.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결혼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출산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다. 삶에 더 이상의 의지는 없다.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그것을 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욕망을 억압하면 당장의 종교나 도덕의 이상은 성취될지언정 인간은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무언가에 지배당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의 결과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종교 가치인 금욕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겠지만,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체제 가치인 욕망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다. 인간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그 욕망이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으면 된다.



이타주의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자고 주장한 사상이다. 개인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선이라 규정하고 본인의 행복만을 위하는 것을 악이라 규정했다. 마땅한 기준이 없고 행복의 원리를 몰라 무작정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옳다 말하는 것으로 이타주의가 성립되었다. 이타주의는 희생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타주의가 윤리가 되자 절대적으로 되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한 희생이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너는 희생을 해야만 해.” 타인, 행복, 희생의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희생을 강요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기준이 결정되어 희생이 강요되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충효, 순교, 애국심, 동정심 등과 같은 희생이 바로 그렇다. 이런 희생은 집단의 이익에 이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 희생을 하려 하지 않으면 신분 사회의 질서가 흔들렸다. 충효, 순교, 애국심은 둘째치고 동정심이 희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평등하지 않은 신분 사회에서 인간의 동정심이 없으면 약자가 죽어 신분 사회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타인을 돕게 하여 사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선과 악이나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을 만들어 가르치며 희생을 하게끔 만들었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음에도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가 남아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오늘날 희생 강요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이타주의라 할 수 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개인에게 의무를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에 희생을 강제하더라도 사회가 작동하였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의무를 제외하면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희생을 강요하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왜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이익을 추구하냐고요? 희생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나의 행복을 위해 희생시켰어요.”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정부와 국민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사회에 불신이 쌓여간다. “왜 기부와 같이 남을 돕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 협박하냐고요? 희생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그래서 나에게도 희생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지극히 옳은 일이죠.” 사회에서 타인을 돕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늘어난다. “왜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희생할 수 있는 책임을 준 거예요.” 사회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이들이 늘어난다. “왜 공감하지 않냐고요? 타인이 나에게 공감을 해야 할 희생을 하면 되는 거예요.” 사회에서 일방적인 공감 강요가 일어난다. “왜 담합을 하고 비리를 저지른 이를 감싸며 내부 고발을 배신자라 규정하고 비난하냐고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옳다면서요. 당연히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담합을 하고 비리를 감싸고 내부 고발을 비난해야죠.” 사회와 체제가 망가진다.


이타주의 논리 회로에 의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바람에 전체주의적으로 되면서 사회가 파탄났다. 연령, 성별, 지역 등에서의 불신이나 갈등 같은 사회 붕괴는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이타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면 어떻게 개인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서로에게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경계하고 있지 않는가? 언제 틈을 보이면 희생시키려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날선 태도로 대하게 된다. 희생 당하지 않기 위해 과한 이익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발생한다. 과한 이익에 의해 더욱 더 희생을 강요하면서 갈등이 심화된다. 기준을 잃고 다툼만 남아버린다. 사회에 미움이 남게 된다. 미워하는 이들을 보기 싫어 떠난다. 더 이상 사회에는 아무도 없다.


인간은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 타인도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할 거라 생각하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수가 있다. 희생을 강요하면 당장 희생을 강요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지언정 희생 당한 인간은 불만이 쌓여 미움과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의 결과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종교 가치인 이타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겠지만,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체제 가치인 이기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 이기가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으면 된다.



유교는 정치사상으로 유교 가치는 수기치인이나 삼강오륜 등으로 삼강의 군위신강·부위자강·부위부강이 있고 오륜의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 같이 유교에서 인간이 지켜야할 수직적 인간 관계와 그에 맞춘 강령과 도리 등을 말한다. 왕정의 정치사상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분을 고려한 생활 양식을 제시하여 차별이 윤리가 되었다. “차별이 윤리로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너는 차별 당해야 해.” 왕정의 신분 제도를 기준으로 차별을 강요하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꼰대질, 갑질, 권위, 서열, 연령 차별, 존댓말 등과 같은 차별이 바로 그렇다. 이런 차별은 집단의 이익에 이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 차별을 하지 않으면 신분 사회의 질서가 흔들렸다. 꼰대질, 갑질, 서열, 권위, 연령 차별은 둘째치고 존댓말이 차별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언어 체계가 익숙하기 때문에 차별이란 인식이 어려운 것이고 보편적인 높임말이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차별이 이렇게 당연해야만 신분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기에 차별을 윤리로 만들어 자발적으로 차별을 하게끔 만들었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음에도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가 남아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에게 차별을 강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오늘날 차별 강요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종교 가치라 할 수 있다. 그 중 한국은 유교 가치가 차별의 윤리적 근거가 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개인에게 의무를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차별을 강제하더라도 사회가 작동하였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의무를 제외하면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차별을 강요하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왜 입시에 목을 매냐고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기 위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야 하니까요.” 학력과 학벌 차별과 입시 과열 현상으로 기억 발상 능력은 뛰어나나 창의 발상 능력은 저조하게 되었다. “왜 집단에서 역할에 맞는 능력보다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 좋은 역할을 차지하냐고요? 능력이 있으면 남을 다스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능력에 기준이 따로 없으니까 능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정치적인 능력을 키워서 좋은 역할을 차지한 것이지요.” 사회 역할에 전문성이 사라진다. “왜 꼰대질과 갑질을 하냐고요? 어른과 아이 사이의 도리에 엄격한 차례와 복종해야 할 질서가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그래서 상명하복도 옳다면서요. 복종하지 않은 인간이 그른 거예요.” 연령, 성별, 인종, 직업, 학력 등의 차별과 같은 수직적 인간 관계가 나타난다. “왜 미성년의 이성 교제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터부시하며 차별하냐고요? 여성은 정조를 지키고 남녀는 칠세 이후 한 자리에 앉으면 안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요. 이성 교제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즐기는 인간이 나쁜 것이에요. 그것이 설령 서로 자유 의지로 행한 것이라도 나쁜 거예요.” 여성성이 억압되는 여성 차별이 일어나고 미성년 시기에 이성 관계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게끔 가공되어 성년 이후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며 그런 부정적 인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혼이 유행하면서 미성년 이후 연령별 의무가 적은 자유로운 사회가 파탄난다.


유교 가치 논리 회로에 의해 서로에게 차별을 강요하는 바람에 차별적인 사회가 되면서 사회가 파탄났다. 사회에서 차별은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유교 가치를 기본으로 한다. 차별을 윤리로 여기면 어떻게 평등을 이룰 수 있겠는가? 가부장제, 사농공상, 정조관념 등이 차별의 흔적에 해당한다. 한국은 유교를 윤리로 배워 절대적으로 옳다는 인식에 의해 옳지 않다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유교는 왕정의 정치사상이다. 공자가 있을 때부터 그랬다. 유교의 핵심 사상인 수기치인은 왕정의 위정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유교 가치는 왕정의 신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가치로 차별을 윤리로 만들었다. 차별을 윤리로 여기면서 평등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서로를 차별하면서 갈등이 쌓여간다. 정당한 평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당한 차별을 강요하며 부당한 이익을 얻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평등을 포기하는 일이 늘어난다. 평등한 사회가 사라진다.


인간은 체제를 기준으로 정당한 평등과 차별을 추구해야 공정한 평등이 가능해진다. 부당한 평등과 차별을 강요하면 당장 그 부당함으로 이익을 얻는 인간은 좋을 수 있을지언정 차별 당한 인간은 불만이 쌓여 미움과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의 결과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종교 가치인 유교 가치 논리 회로가 적합하겠지만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체제 가치인 자유주의 논리 회로가 적합하다. 인간은 정당하게 평등해야 한다. 그 평등이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으면 된다.






3) 가치 현상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가치 충돌이 크게 발생하지 않았으나,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가치 충돌이 크게 발생하면서 가치 충돌에 의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가치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다. 국가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하여 체제 가치를 추구하는데, 국가 질서는 집단주의 체제인 종교 가치에 머무르면서, 질서 속에 사는 인간은 체제에 부적합하게 가공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는 가공 개념과 함께 산업 혁명 시기의 마차와 자동차 비유로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체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마차를 끄는 말에는 당근을 주고 자동차에는 기름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종교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를 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것은 자동차를 운전하겠다는 목적이 있다면 기름을 넣는다는 것은 가치로 판단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체제에서 살아가겠다는 목적이 있다면 체제에 적합하게 사는 것은 가치로 판단할 수 없다.


한국은 국가 체제는 체제 가치로 삼고 국가 질서는 종교 가치로 삼아 마치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는 것과 같이 힘은 충분했으나 체제에 적합하지 못한 태도에 의해 망해가고 있다. 그래도 한국은 체제 가치에 의해 조선이나 북한보다는 풍요롭고 행복하고 안전하다. 조선과 북한은 국가 체제와 질서를 모두 종교 가치로 삼아 마치 마차로 자동차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단순히 힘이 부족해서 침략 당해 망하거나 고립되어 망했다. 이렇듯 가치 충돌이 있음에도 종교 가치에 머물러 있는 국가보다는 훨씬 낫다. 한국이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체제 가치에 의한 것이고, 한국이 망해가고 있는 것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종교 가치에 의한 것이다.


인간이 일으킨 사회 문제는 인간에게 영향력이 높은 사상의 논리 회로에 의한 경우가 많다. 각각 사상은 논리 회로로 작동할 때가 있고 논리 회로의 조건으로 들어갈 때가 있는데, 체제는 체제 가치로 작동할 때가 많으나 질서는 대부분 종교 가치가 논리 회로로 작동하고 체제 가치가 조건으로 작동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많은 사회 문제는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에 의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주로 그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에 해당한다. 종교 가치에 의해 억압 강요, 희생 강요, 차별 강요 등과 같은 체제 가치에 반하는 가치에 의해 복합적인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다.



가치 충돌은 주로 강제력이 발생하는 권력 행사에서 나타난다. [권력: 1.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현재 권력의 사전적 정의는 복종과 지배 개념이 포함되어 민주주의 체제에 적합하다 보기는 어렵다. 강제를 할 수 있는 힘까지만 정의되면 된다. [강제: 1.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킴.] 동등한 관계에서도 계약에 의한 강제력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복종과 지배 개념이 없어도 강제력은 성립될 수 있게 된다. [사회 계약: 1. 개개의 인간들이 모여 일정한 질서와 규율 밑에 서로 협력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사회나 국가를 이루는 현상을 계약에 의한 것으로 보아 이르는 말.] 사회 계약의 사전적 정의는 공동의 이익을 전제하여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다 보기는 어렵다. 사회와 계약한다는 것까지만 정의되면 된다. 


지금까지 종교 가치에 의해 개인주의 체제에서 체제 가치에 의한 질서 개념이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여야 체제 적합과 공동의 이익이 성립되는 체제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권력의 강제력은 모든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사회와의 계약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질서가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 계약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상태기는 하다. 사회 계약에 따라 체제 가치에 의해 인간의 생활 양식이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종교 가치에 의해 인간의 생활 양식이 결정되는 일이 잦아 가치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권력은 통상 정부 권력이 일반적이나 민주주의 체제인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에게 권력이 있으므로, 권력은 모든 형태의 강제력을 말한다고 본다. [정부: 1.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통치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삼권 분립에 의하여, 행정을 맡아보는 국가 기관.] 정부는 삼권을 지칭하거나 행정부를 지칭하는데, 삼권 분립을 근거로 삼권을 지칭하는 사전적 정의를 활용하겠다. 권력에는 개인 권력과 역할 권력이 있다. 개인 권력은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강제력을 말하고 역할 권력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강제력을 말한다. 통상 종교 가치에 의해 개인 권력은 높으나 역할 권력은 낮으면서 개인 권력에 의한 부당한 권력 행사가 나타난다. 그것이 권력 남용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게끔 정한 것은 체제다. 권력은 주어진 권리나 권한 내에서만 활용할 수 있고, 주어진 권리와 권한은 체제로 정해지기 때문에, 체제에 반하는 권력 행사는 권력 남용이 되게 된다. 민주주의 체제를 근거로 주권이 있는 인간이 논리 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존재 탐구나 체제를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가진 권력을 휘둘러 강제하는 것은 권력 남용이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 충돌로 개인은 물론이고 정부를 넘어 헌법조차도 종교 가치를 기초로 한 자연법의 영향으로 체제 가치에 위배되는 판단을 할 때가 있을 정도다. 


개인이 일으키는 보편적인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중우 정치 등이 있다. [중우 정치: 1. 이성보다 일시적 충동에 의하여 좌우되는 어리석은 대중의 정치. 고대 그리스 민주 정치의 타락한 형태를 이르던 말로서 민주 정치를 멸시하는 뜻으로 쓰인다.]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에 발언권과 실행권이 있다. 그러나 실행권은 본인의 권리를 위할 때 일부나 긴급할 때를 제외하면 없다. 왜냐하면 특정 개인의 권력 행사에 발언권을 넘어 타인의 주권을 훼손할 수 있을 정도의 실행권이 있다면 타인이 가진 주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치 대행자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권한 내에서만 실행권이 있고 권한 외에는 발언권이 있다.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윤리를 명분으로 삼더라도 실행권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다른 이의 주권을 부당하게 훼손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것이 창작물이나 매체에 대한 검열을 강요한다거나, 정당한 사치를 보고 사치할 거면 기부하라며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한다거나, 특정 이익을 위해 차별을 강요하거나, 속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영리하다 착각하거나, 개인 판단으로 사적 제재를 하는 것을 넘어 사건과 무관한 관계자를 연좌제마냥 공격하는 것을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사적 제재나 연좌제에 대해 법치를 근거로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감성 없는 인간이라 몰아붙이며 공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냥 가치관 차이다. 종교 가치로 불합리하게 보여도 체제 가치로 보면 합리하게 보인다. 이런 가치 훼손을 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개인이 정부를 압박한다. 떼법과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특정 사건을 빌미로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에 부적합한 비논리적인 법을 입법에 압박하여 통과시키도록 한다거나, 사회를 속여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을 정당화하는 법률을 만들도록 압박하거나, 종교 가치에서 예민한 성적인 문제를 빌미로 사법에 압박하여 무죄 추정 원칙을 무시하도록 한다거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강한 형벌만을 강요하거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종교 가치를 명분으로 행정에 압박하여 유착을 하도록 한다. 이런 과정에서 주권을 침해당한 개인은 손해를 보면서 민주주의 체제의 가치 훼손이 발생한다. 이런 것이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으로 가치 충돌의 결과다. 


정부가 일으키는 보편적인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법 앞의 차별 등이 있다. 법 앞의 평등은 체제 가치라면 법 앞의 차별은 종교 가치다. [법 앞의 평등: 1. 법 앞에서는 누구도 차별 대우를 받지 않고 평등하다는 원칙을 이르는 말.] 종교 가치가 왕정의 사회 선택을 받은 가치기 때문에 종교 가치에 의한 차별이 나타나는 것이다. 종교 가치에 의해 입법, 사법, 행정 가리지 않고 법 앞의 차별이 나타난다. 전부 법 앞이다. 전관 및 현관 예우, 집단의 카르텔, 성인지 감수성 등이 그렇다. 전관과 현관은 현재와 과거에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을 이른다. 종교 가치에 의해 윗사람이라 여겨지는 전관과 현관을 우대하면서 비리가 발생한다. 종교 가치에 의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집단에 속한 인간을 우대하면서 비리가 발생한다. 종교 가치에 의해 종교 가치에 적합한 가부장제 여성성에 맞추기 위해 과도한 특혜를 주거나 무죄 추정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부 인사가 무능해 보이는 것은 실제 무능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종교 가치에 의해 무능해져 버린 것에 해당한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모순되어 충돌하는데, 종교 가치가 절대적이라 배운 탓에 종교 가치를 추구하다가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역할에 필요한 일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개인 권력은 높으나 역할 권력은 낮아지는 것으로 권력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의해 무능이 나타나게 된다. 현관 A가 전관 B를 예우하기 위해 마땅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럴 경우가 바로 종교 가치에 의해 역할 권력을 무시하고 개인 권력을 휘두른 개인 권력의 권력 남용이 된다. 사리사욕조차도 그 근거가 가족을 위해서와 같이 가족주의와 같은 종교 가치에 의한다면 종교 가치에 의한 권력 남용이다. 대부분 정부 인사는 종교 가치를 배제하고 체제 가치를 추구하면 제대로된 역할 수행이 가능해지면서 정상적인 역할 권력 행사로 유능해 지게 된다.


헌법이 일으키는 보편적인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많지 않다. [헌법: 1. 국가 통치 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 모든 국가의 법의 체계적 기초로서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다른 법률이나 명령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한 국가의 최고 법규이다.] 체제의 기초를 다루기 때문에 보통은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헌법에서도 자연법의 영향에 의해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성 의무병역 합헌이나 도서정가제가 그렇다. 


과거 헌재는 남성 의무병역이 “남성이 전투에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여성은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월경, 임신이나 출산, 양육의 필요성에 때문에 군사훈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고 밝히며 남성 의무병역을 합헌으로 결정한 바 있다. 대체복무 또한 신체적 능력 또는 조건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볼수 없으며 군대 내부의 상명하복의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 등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이런 것이 가부장제 여성성을 전제한 자연법으로 체제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다. 모든 인간은 동일 종이라는 전제로 보았을 때 다른 국가에서 여성 징병을 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보편적인 여성이 군사훈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 만약 그 주장이 합리성을 확보하려면 한국 여성 직업 군인은 둘째치더라도, 모든 국가에서 보편적인 여성의 군사훈련이 불가능했어야 했다. 문화 차이라 말할 수 있는데, 그게 종교 가치다. 한국 여성은 다른 국가 여성보다 열등하지 않다. 만약 열등해보인다면 종교 가치에 의한 것이다. 다른 국가에서 여성의 군사훈련이 가능하므로 대체복무의 논리 또한 불합리하게 된다. 군대 내부의 상명하복 권력관계에 따른 부조리는 남성 징병 군인과 모든 직업 군인도 겪고 있는 문제로, 기업에서 하는 가치 생산시 성희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여성의 가치 생산을 반대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성이 보편적으로 징병에 부적합하므로 남성만 징병하는 것이 합헌이란 논리는 여성보다 약한 남성이 있다는 현실에 의해 일반화의 합리성을 상실했다. 이런 논리는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합리해도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불합리하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인으로 접근해도 헌재가 우려한 사안은 대응이 가능하다. 성별과 같이 집단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남성 징병제의 위헌 여부만 고려했다 하더라도 위헌이 합리적이다.



최근 헌재는 도서정가제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 질서의 혼란을 방지함으로써 저자와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보호·육성하고, 다양한 서점 또는 플랫폼을 유지·장려해 소비자의 도서접근법을 확대하므로 합헌을 결정한 바 있다. 종이책 매출이 줄어든 데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의한 것으로 도서정가제와 같이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없었으면 그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었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런 것도 전체주의를 전제한 자연법으로 체제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다. 현재 도서정가제나 스크린 쿼터제나 연유가격연동제와 같은 생산자 입장에서의 시장 보호는 쌀과 같은 필수품이 아닌 이상, 생산자 소수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 다수를 희생시키는 부당한 전체주의적인 제도다. 도서가 필수품인지에 대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지식의 공유 측면에서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도서는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니게 된다. 필수품이 아님에도 도서정가제와 같은 시장 보호를 하는 것은 흘러야 유지되는 시장 원리상 시장을 파괴하는 제도가 된다. 시장을 파괴하는 제도는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불합리한 제도다. 노동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파괴된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부동산 거래를 과하게 규제하여 흐르지 않도록 규제했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것조차 시장 원리를 작동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외부 정책으로 대응한다.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더욱 더 시장 원리를 작동시켜야 한다. 시장주의는 소비자 입장에서 담합과 독과점이 결정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도서정가제는 독과점을 방지하는 장치가 아닌 담합을 규정하는 장치일 뿐이다. 



종교 가치에 의한 체제 가치 훼손은 다방면에서 많다.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니 체제 가치 훼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개인에 의한 권력 남용은 인간 관계가 주로 그렇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함에도 종교 가치에 의해 서로를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차별한다. 현재 학생과 부모와 교사의 갈등은 서로를 억압하고 희생하고 차별했기 때문에 나타났다. 과거에는 주로 교사가 학생을 패고 부모에게 촌지를 받았다면 현재는 주로 교사가 학생에게 맞고 부모에게 시달린다. 차별적인 종교 가치 논리 회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의 조건이 달라지자 차별의 대상이 달라진 것이다. 그외에도 타인을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차별하는 일이 정말 많다. 그런 탓에 최근 서로가 즐기는 취미를 악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거나, 젊은 세대가 상명하복 수직질서가 싫다면서 2022년 9급 공무원 퇴사율이 2019년 대비 72.6% 증가했다고 한다. 공무원 퇴사는 돈 때문이라 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돈은 알고 지원한 것이므로 일하는 환경 때문에 퇴사했다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할 전문성보다 인맥 중시, 다양한 차별, 담합과 독과점, 내부 고발 멸시 등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 의한 권력 남용은 법, 정책, 제도 등이 주로 그렇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함에도 종교 가치에 의해 서로를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차별한다. 자기결정권 침해 법률, 전체주의 정책과 제도, 국가 형벌권 과잉 행사, 개인 차별 등 많다. 정부가 개인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고 판단이 불가능한 존재로 전제하고서 결정권을 빼앗거나, 특정 관점으로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거나,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사건에서도 형벌권을 행사하거나, 종교 가치로 개인을 차별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방송, 영상, 게임, 인터넷 등의 매체 검열 기관, 필요 이상의 개인 정보 수집, 국민 연금과 같은 개인의 희생을 전제한 제도, 불합리한 미성년 권리, 가부장제 여성성에 따른 여성 억압과 차별, 과도한 시장 간섭, 민사 대응 사안을 형사로 대응, 체제와 무관한 일방적인 특정 가치 강요 등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 특성상 정부의 권력 남용은 개인의 권력 남용에 의한 결과일 확률이 높다.






4) 가치 차이


가치 차이로 문명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유전자, 자연, 문화는 대체로 문명에 비해 영향력이 낮다. 유전자는 동일 종이고 자연은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한 곳에 자리잡아 사회를 이뤘고, 문화는 각국 레벨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므로 문명 레벨에 따라 문명 차이가 발생한다. 그런데 문명이 사상의 가치에 영향을 받은 인간의 손으로 가공되고, 그 문명으로 인간이 가공되어 문명 레벨이 결정되기 때문에, 실상 가치 차이로 문명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문화 상대주의를 말하며 문화마다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화는 학문 이전이므로 문화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학문으로 체계화한 문명은 명백하게 차이가 난다. 각국 국력의 차이가 나는 것을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인종 우열 또는 문명 우열 둘 중 하나가 된다. 모든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하고 자연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영향을 적게 받게 됨에 따라 국력 차이는 문명 우열에 따라 나타났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럼에도 문명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윤리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일 뿐이다. 마차를 타는 문명과 비행기를 타는 문명이 같을 수가 없다. 문명 우열이 제국주의적 식민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별개다. 특정 가치 판단으로 그런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종 우열은 인종 전체의 우열에 해당한다면 문명 우열은 개인 우열에 해당한다. 인류 지역마다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을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소수의 인간 유무에 따라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자연 계열도 탐구한 인간이 없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이 인문 계열만 탐구한 인간만 있었다면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든다. 실제 동양에서는 그런 인간이 없어 과학 혁명이 불가능했다. 그런 인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힘을 가진 자에게 인정 받지 못하여 잊혀졌다. 우주적으로 보면 그 어떤 인간도 우주에 영향을 끼치지 어렵지만, 지구적으로 보면 일부 인간이 지구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국력 차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그 차이의 원인이 인종보다는 문명인 것이 인류 관점으로 볼 때 좀 더 평등하다.


추구하던 가치가 달라 문명 레벨이 달랐던 시대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저물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전 세계 정보 공유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인류는 공통된 사회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체제 변화, 기술 변화, 환경 변화다. 현재 모든 국가가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한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 기술에 의해 개인주의 체제의 가치가 공유되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충돌에 의한 사회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각국 체제와 무관하게 공통된 사회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현상을 부른 디지털 기술은 인식과 가치의 거리 축소, 제한 없는 가치 복제, 익명에 의한 자유로움 등으로 현실과 다른 성질이 많아 그에 따른 새로운 사회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 또한 디지털 기술에 의해 각국 체제와 무관하게 공통된 사회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환경 오염이 발생하면서 예정된 기후 변화가 빨라지는 것으로 지구가 인간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는 것으로 그에 따른 새로운 사회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 또한 같은 지구에서 사는 것으로 각국 체제와 무관하게 공통된 사회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 세 가지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 문제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대부분 국가에 공통된 사회 문제이므로, 각국이 공조하면서 개인과 사회를 새롭게 재가공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1.6 사회 본질


1) 인식 일탈


인간의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인간의 높은 지능에 의해 나타났다. 지능이 높으면 인식에서 벗어나고 지능이 낮으면 인식도 제대로 못한다. 높은 지능을 지닌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에 의문을 품었다.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런데 그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익혀야 한다.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이미 가공이 된 상태라는 것이다. 가공이 된 상태에서 가공 이전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다. 가공 이전의 상태인 기억과 연동되지 않은 자아 요소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육체를 움직이는 본인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존재를 몰랐던 인간은 본인의 존재가 내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고 보았다. 바로 영혼이다. [영혼: 2.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인간은 영혼이란 개념으로 인간의 본질이 육체 밖에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문명이 없던 시기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해서 영혼 개념을 떠올리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몰랐기에 영혼 개념을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가공을 통한 육체의 변화로 인간의 본질이 바뀔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본질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자아를 파악하지 못하여 가공 개념을 떠올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영혼 개념은 실제로는 자아 개념으로 보면 된다. 비과학 시대의 개념이 과학에 의해 용어가 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혼 개념은 AI가 자아를 가지면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될 것이다. 이런 영혼 개념에 의한 본질의 불변이 자아 동일성 개념을 불렀다고 본다. [자아 동일성: 1. 타인과 구별되는 한 개인으로서 현재의 자신은 언제나 과거의 자신과 같으며 미래의 자신과도 이어진다는 생각. 에릭슨의 자아 심리학이나 올포트의 인격 심리학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자아 개념은 영혼 개념에 의해 불변하다 여겨짐에 따라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되어 제대로 된 분석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본다. 자아 요소와 자아 요소와 기억이 연동된 자아 존재 개념이 없고,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도 없으므로 제대로 된 자아 동일성 개념이 아니다. 계속 달라지는 자아 요소가 기억과 연동되어 자아 존재가 되는 것이므로, 현재의 자신인 자아 요소가 과거와 미래와 계속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 요소가 달라지는 것과 별개로 연동된 기억과 육체 신호에 따라 자아 존재가 계속 달라진다. 자아와 자아 외의 권한 차이로 자아가 의지를 가지고 자아 외를 재가공하여 본질을 바꾸는 것으로 자아 존재도 과거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바뀌는 것이 어렵지만 가능하다. 


자아 요소는 기억과 연동하여 자아 존재가 된다. 기억이 같으면 몸이 달라도 같은 존재고 기억이 다르면 몸이 같아도 다른 존재다. 몸이 다른 로봇에 기억을 이식하면 같은 자아 존재가 되고, 몸이 같더라도 기억을 상실하면 다른 자아 존재가 된다. 그런데 기억은 언제든지 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자아 요소에 기억이 연동되는 것으로 존재하는 자아 존재도 불안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무언가 장기적인 계획을 했다면 주기적으로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메모 같은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자아 존재 훼손이 발생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이것은 기억을 디지털화 하기 전까지는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유동 자아는 계획을 비롯한 사생활 기록이 지나치게 자세할 경우 자아 존재가 변하지 않게 되면서 고정 자아가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영혼 개념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본질이 불변하다 여긴 인간은 본인의 인식과 가치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된다. 그것이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다. 인간은 본인이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된 진리, 도덕, 아름다움 따위를 절대적이라 여겼다.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게 되었다. 그것이 가치 강요다. 종교, 왕정, 공산, PC 등 인간에게 가치를 강요하는 모든 사상은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이타주의 논리 회로를 거치면 전체를 위해 가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가 된다. 


가치 중에서 아름다움의 경우는 상대적이라 여기기도 하여 상대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도덕의 경우 절대적으로 여기며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덕을 강요하게 되었다. 인간의 논리 회로에서 도덕과 윤리가 영향력이 높은 것은 이처럼 가치의 절대성에 의한 것이다. 누군가 좋지 못한 사건으로 보이면 권선징악을 말하며 좋지 못한 사건에 대한 응징을 바랄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의 동기가 윤리와 같은 가치에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꼰대질은 종교 가치인 윤리에서 왔다. 도덕을 절대적이라 여기는 것에 의해 양심이 지능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양심이 지능이면 양심의 기준이 되는 종교는 가치가 다른 종교를 어리석다 여길 것이다. 그리고 실제 서로를 어리석게 여겼다. “이 어리석은 이교도 놈! 처단해주지!” “내가 할말이다! 멍청한 이교도 놈! 죽어라!” 불화, 분쟁, 전쟁 등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한 대부분 이런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상호 멸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PC주의, 여성주의 등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PC주의자는 다른 가치를 가진 이들을 “Uneducated.” 라고 말하며 멸시하거나, 여성주의자는 다른 가치를 가진 이들을 공부하라고 말하며 멸시하기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래 멸시하던 이들과 그에 반발하여 멸시하는 이들이 맞서 같이 서로를 멸시하고 있다.






2) 감각 차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다양한 이유로 나타났다. 가공 이전의 상태, 자아 외 무의식, 인간 심리, 개인주의 체제 질서,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 등. 보통 겪어본 적이 없거나 고정 관념에 의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생기게 된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란 개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논리: 1.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 [이치: 1. 사물의 정당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 [합리: 1.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 [조리: 1.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사전적 정의가 상당히 애매한데, 간단히 이치를 모순 없는 체계로 해석하겠다. 보편성과 재현성을 갖춘 자연 계열의 탐구가 보통 모순 없는 체계를 갖춘 이치가 된다. 


일반적으로 만류인력의 법칙 같은 것이 보통 그렇다. [만류인력의 법칙: 1.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고, 그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법칙. 1687년에 뉴턴이 발견하였다.] 이런 법칙이 모든 인간에 영향을 미치고 경험해볼 수 있어 모순을 발견할 수 없으면서도 원리를 파악하여 체계를 갖춰 이치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이런 이치를 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리: 1.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 2.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3.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자연 계열의 증명을 활용하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활용할 증명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바로 육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조금이라도 육체가 다르기 때문에 감각 기관으로 수집하는 자료가 다르고, 자료로 만들어진 정보를 인식하는 것도 달라지게 된다. 시각이 다르기에 보는 것이 다르고, 청각이 다르기에 듣는 것이 다르고 후각이 다르기에 맡는 것이 다르고, 미각이 다르기에 맛보는 것이 다르고, 촉각이 다르기에 느끼는 것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자료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도 달라 인식도 다르게 된다. 간단히 천체를 관측하는 관측 기구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안다. 과거 관측 기구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현재 관측 기구로는 볼 수 있는 것이 생기고 있다. 성능이 달라지면서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져 자료가 달라졌고, 그 자료가 달라지면서 정보도 달라져 인식도 달라졌다. 이것으로 인식의 상대성이 증명되게 되면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가치는 판단 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한다. 진리, 도덕, 아름다움 등 인간이 판단이 가능하면 가치다. 그런데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인식이 필요하게 된다. 판단을 하는데 필요한 인식이 상대적이다보니 가치 또한 상대적이게 된다. 진리는 학문의 지식이 진리가 아니라 여기는 인간에 의해 상대적이게 되고, 도덕은 충돌하는 종교를 보면 상대적임을 알 수 있고, 아름다움은 취향이 다른 인간을 보면 상대적임을 알 수 있다. 일반 인간과 탐구 인간은 지식에 대한 진리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일반 인간과 난청 인간이 소음에 의한 도덕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일반 인간과 색맹 인간이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인식의 상대성에 의해 가치의 상대성도 증명되면서 종교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사상에 의해 인식과 가치가 유사해질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언어가 그렇다. 한국어 언어권에서는 언어를 공통 인식으로 삼아 언어에 의한 인식과 가치가 유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언어권이 다르면 상대적이게 된다. 한국어 언어권에서는 비속어로 들리는 단어가 외국어 언어권에서는 일반어로 들릴 수가 있다. 무엇보다 모두 다른 인간의 감각 기관에 의해 유사해질수는 있어도 똑같아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인식과 가치 차이에 의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상에 의해 사회 공통 인식과 가치가 생기더라도 인간의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은 성립된다.






3) 존재 탐구


자연 계열의 탐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에도 본인의 인식과 가치가 절대적이라 주장하며 타인의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는 바람에 수많은 갈등과 분쟁과 전쟁이 있었다.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수많은 문제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으면 사회 기준이 사라진다. 그래서 인식과 가치가 다른 인간이 언어를 통해 공통 인식을 가진 것과 같이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야 공통 기준으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식과 가치와 다르게 절대적인 것이 있다. 바로 존재다.


인간은 감각 기관이 달라 색을 다르게 보고 소리를 다르게 듣고, 사상이 달라 언어가 다르게 느껴지고 사상이 같더라도 똑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러나 거기에 색이 존재하고 소리가 존재하고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즉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지만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 존재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인류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존재 탐구다. 보통 모든 학문은 상대적인 인식 탐구를 하여 체계적인 발전이 불가능했다. 탐구한 결과가 인간, 지역, 시대별로 계속 다른데 어떻게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겠는가? 그렇기에 인류 문명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자연 계열은 과학적 방법을 통한 과학 혁명으로 극복했다. 관찰, 가설, 실험, 증명을 통해 탐구 결과가 재현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모든 인간이 같은 존재를 알게 되는 것으로, 증명된 탐구 결과는 학문 내에서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모두가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고 다르게 느낀다 하더라도, 과학적 방법으로 같은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것으로 인간은 종의 한계를 초월했다.


자연 계열은 자연이란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므로 선천적 존재 탐구에 해당하게 된다. 자연 계열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모두가 같은 존재를 알 수 있게 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과학적 방법을 계속 반복하면서 모두가 같은 존재를 아는 것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아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감각 기관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선천적인 상태 그대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과학적 방법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정확히 모르는 존재인 일반 진리와 인간이 추측한 존재인 학문 진리로 나뉘게 된다. 학문 진리는 학문에 속할 때에는 진리이기 때문에 학문에서 벗어나면 진리가 아니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존재 탐구 결과가 나오면 학문의 진리가 바뀔 수 있게 된다. 존재 탐구로 증명된 고전 역학이 학문 안에서 존재에 속하지만, 학문 밖에서는 가치에 속하여 고전 역학의 진리 유무를 판단하고 양자 역학과 같은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학문에 존재와 가치가 공존하면서 학문이 발전한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할 수 있었다.






4) 존재 질서


모두가 인식과 가치가 달라도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이것이 존재의 절대성이다. 이 존재의 절대성은 존재 유지로 접근했을 때도 성립된다. 모든 존재는 존재에 속하기로 정했을 때에 존재 구조 유지를 위한 활동은 절대적이다. 그러지 않거나 못한 존재는 모두 사라졌다. 존재 유지의 절대성은 인간 육체로 이해하면 쉽다. 인간이 본인의 존재에 속하기로 정했을 때에 본인의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한 활동은 절대적이다. 그러지 않은 인간은 전부 죽었다. 이런 존재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초등학생은 없을 것이다. 아마 일반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본인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원치 않더라도 행동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결과로 논리적으로 증명한 것 중 하나이므로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 된다. 이 존재 개념이 사회 기준이 되는 것으로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킬 수 있게 된다.


존재은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가치는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인간이 본인의 존재에 속하기로 정했을 때에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해 식사를 한다는 것은 판단 대상이 아니므로 존재에 속하지만,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와 같이 육체 구조 유지 수단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인간이 본인의 존재에 속하지 않기로 정했을 때에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해 식사를 한다는 것은 판단 대상이 되므로 가치에 속한다. 살지 않기로 결정한 인간에게 식사는 절대적이지 않게 된다. 


이렇게 판단 가능 유무로 존재와 가치를 구분하면 된다. 식사를 하는 것이 존재 유지에 속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절대적이라 여겨졌던 존재 유지가 정말 존재 유지가 맞는지에 대한 판단도 가능할 수 있는 것으로 가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 탐구를 통해 존재 유지 파악이 가능하여 존재 탐구 학문 내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 되는 것으로 존재가 성립되게 된다. 존재 탐구로 기름 넣는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야 하고 말 먹이를 먹는 말에게 말 먹이를 줘야 하는 것과 같이 존재 유지 방법을 알 수 있다. 학문에 속하는 이상 학문이 증명한 존재 유지 방법은 절대적이게 된다. 여기서 기름 종류 또는 말 먹이 종류는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반면 학문에 속하지 않은 것을 존재라 주장할 때에는 존재를 기초로 하거나 보편성과 재현성 등을 통해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 존재를 탐구하든 존재를 유지하든 판단으로 존재와 가치가 결정된다. 이것이 존재 개념의 기본이다.


존재 유지 개념은 쉬운 편이기에 존재 개념 발상은 육체 구조 유지에서 시작되었다. 존재 유지의 절대성을 파악하고 나서 과학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으로 존재 탐구 개념을 확립한 것이다. 존재 유지 개념은 쉽기 때문에 이것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이상할 수도 있으나, 절대적으로 여기는 종교 가치에 의해 나타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에 등잔 밑이 어둡듯이 난이도와 별개로 떠올릴 수 없었다고 본다. 


인간이 본인 존재에 속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판단이 가능하므로 가치가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존재 가치다.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면 존재에 속하면서 존재 구조 유지가 절대적이게 되면서 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존재에 속하는 동안 원치 않더라도 해야할 일이 생긴다. 이것은 종교, 체제, 학문 또한 마찬가지다. 종교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어 종교에 속하기로 한 동안 종교 구조 유지를 위해 종교 가치는 절대적이게 된다. 체제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어 체제에 속하기로 한 동안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해 체제 가치는 절대적이게 된다. 학문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어 학문에 속하기로 한 동안 학문 구조 유지를 위해 학문 가치는 절대적이게 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체제에 속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체제에 속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이게 된다. 누군가 부자유를 바라거나 지배를 바라는 자유를 보장해야 자유가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자유는 모든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므로 그런 자유는 성립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이므로 누군가 노예가 되겠다고 자청하더라도 그것을 허용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로 노예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은 허용될 수도 있지만, 개인의 자유 자체를 버리며 노예가 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이는 주권, 시장도 마찬가지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의 차이는 존재 가치 차이다. 기본적으로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한 뒤에야 존재 구조 유지를 위해 존재에 속한 가치가 절대적이게 되는데, 종교 가치의 경우 속하든 속하지 않든 절대적이라 주장하면서 존재 가치가 무관하게 된다. 그러니까 일부 종교는 가치가 다른 종교를 공격하거나, 종교 가치를 추구하는 신정 국가에서 체제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정 국가로 이민와서 종교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반면 체제 가치는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고 나서 속하는 동안만 절대적이고 속하지 않으면 상대적이게 된다. 학문 가치도 종교 가치와 관련이 없거나 적은 자연 계열은 보통 속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고 나서 속하는 동안만 절대적이고 속하지 않으면 상대적이게 된다. 그것으로 체제와 학문은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해진다.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예를 들어 쾌락 연쇄 살인마가 있다 하자. 그럴 때 쾌락 연쇄 살인마는 절대적으로 악하다 할 수 있는가? 대부분은 이것을 절대적으로 악하다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상대적이다. 이것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나온 명제다. 그렇다면 쾌락 연쇄 살인에 대한 가치 판단도 상대적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쾌락 연쇄 살인마도 인간이므로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인간은 쾌락 연쇄 살인마는 인간도 아니라며 인간을 부정할 수 있는데, 그런 가치 판단으로 존재가 부정될 수는 없다. 누군가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을 사회에서 허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가치의 상대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여기서 존재의 절대성이 나온다. 개인의 쾌락 연쇄 살인을 막지 않으면 사회 구조 유지가 되지 못하고 체제에 따라 사회 원리도 추구되지 못하면서 체제 구조 유지도 못될 수도 있다. 즉 개개인의 가치와 무관하게 사회에 부적합하고 체제에 부적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정 가치에 맞지 않아 막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부적합하여 막는다. 이것으로 특정 행위가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아도 막을 수 있게 된다. 육체에 속하기로 정했다면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한 행동이 절대적이기에 강제력이 있듯이 사회와 체제에 속하기로 정했다면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위한 행동이 절대적이기에 강제력이 있어 제재 권한이 있는 사회 구성원은 강제적으로 해당 행위에 대한 제재를 할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이런 것이 존재 질서다.


지금까지 종교 가치가 남은 이유 중 하나는 종교 가치 외에 사회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질서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체제가 등장하고 나서 개인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자유방임주의나 자유지상주의는 물론이고 쾌락주의나 공리주의는 합리적인 한계를 제시하지 못했다. [쾌락주의: 1. 쾌락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 내지 도덕의 원리로 생각하는 사상.] [공리주의: 1. 행위의 목적이나 선악 판단의 기준을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하는 데에 두는 사상. 개인의 복지를 중시하는 견해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우며 사회 전체의 복지를 중시하는 견해가 있다.] 쾌락을 바라는 자유의 한계와 행복을 바라는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모른다. 합리적인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 가치에 의존하면서 종교 가치에 의한 억압과 희생이 나타나게 되었다.


반면 존재 질서는 존재 탐구로 명확한 기준을 정할 수 있다. 인류는 이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통해 어떻게 해야 육체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과 같이 어떻게 해야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사회에 속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이게 된다. 사회 유지 내에서 목적인 사회 구성원 생존은 판단할 수 없으므로 존재가 되고, 수단인 생존 방식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 등과 같은 개인주의 체제는 체제에 속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이게 된다. 체제 유지 내에서 목적인 자유, 주권, 시장은 판단할 수 없으므로 존재가 되고, 수단인 실현 방법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가 된다. 


같은 존재일 경우 개인, 사회, 체제 순으로 강제력이 우선된다. 육체 구조 유지가 되어야 사회 구조 유지가 가능하고, 사회 구조 유지가 되어야 체제 구조 유지가 가능하다. 체제 가치에서 판단할 수 없는 목적인 존재는 종교 가치와는 충돌해도 다른 체제 가치와는 보통 충돌하지 않으나, 만약 충돌한다면 우선 순위는 마찬가지로 개인, 사회, 체제 순 또는 존재 유지 영향력 순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존재 가치에 따라 우선 순위는 달라질 수 있다. 존재 가치를 높다 느끼는 것부터 존재 유지를 위해 활동할 수 있다. 사회와 체제는 생활 집단과 생활 양식을 의미하고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개인의 생존과 모든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는데, 사회와 체제에 속하고자 할 때 개인 생존이 된 상태에서 자유 없는 생존은 본인에게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모든 개인의 생존보다 모든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것에 의해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사회 역할 계약에 의해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군인, 경찰, 소방관 같이 위험을 감수하는 역할의 경우, 보통은 개인을 우선시하나 보통이 아닐 때에는 사회 역할 계약을 통해 개인보다 사회나 체제를 우선하기도 한다. 이는 해당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에만 달라지는 우선 순위로, 휴식과 같이 역할 수행을 하지 않는 동안이나 퇴직과 같이 역할을 하지 않게 되면 일반적인 우선 순위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식으로 구분하여 체제도 존재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인류 전체를 살려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 것은 존재 개념이 없어 종교 가치에 의존하여 질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존재 질서를 기준으로 개인의 자유 한계를 정하여 종교 가치에서 해방되어 체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존재 질서 내에 모든 가치 추구가 허용된다. 사랑과 증오가 존중되고 평등과 차별이 존중되며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존중될 수 있다.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존재 질서 내의 가치기 때문에 가능하다. 존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은 보통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가치에 해당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증오나 차별이나 더러움을 어떻게 하든 자유롭게 된다. 만약에 그게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 사회 구조를 붕괴시킬 때 존재 질서를 기준으로 제재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차별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상대적 가치로 존중된다. 그러나 그 차별을 직접 행하면서 성소수자 개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적 존재로 제재된다. 이것은 망망대해에서 뗏목 위에서 살아남은 표류자들로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뗏목 위에 미워하는 상대가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그것을 표출하지 않는다. 섣불리 미움을 표출하다 뗏목에서 떨어져 공멸하게 될 수 있다. 미움이 상대적 가치라면 뗏목 유지는 절대적 존재다.


존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모든 가치는 존중될 수 있다. 존재 질서를 통해 사랑할 자유와 증오할 자유를 모두 보장하겠다. 가치가 강요되는 사회가 자유 사회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완전한 자유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가치의 상대성이 증명되지 않았어도 가치의 자유가 보장되었어야 했다. 인간은 육체가 있어 완전한 자유를 얻기는 어렵지만 존재 개념을 통해 최대한의 자유는 누릴 수 있다. “이것은 웃으면 돼. 이것은 웃으면 안 돼”, “이것은 울어야 해. 이것은 울으면 안 돼.”, “이것은 화내야해. 이것은 화내면 안 돼.”, “이것은 좋아해야 해. 이것은 좋아해서는 안 돼”, 이것은 싫어해야 해. 이것은 싫어해서는 안 돼.” 이런 것이 종교 가치에 의한 가치 강요다. 사람은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은 본인이 기쁠 때 웃을 수 있어야 하고 슬플 때 울 수 있어야 하고 화날 때 화낼 수 있어야 하고 좋아할 때 좋아할 수 있어야 하고 싫어할 때 싫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을 종교 가치로 멋대로 재단하여 인간의 감각, 감정, 욕구, 욕망 등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모든 가치관은 존재 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존재 질서와 같이 종교 가치를 초월한 질서가 있어야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종교 가치를 근거로 한 욕망 억압과 개인 희생과 같은 부자유가 발생하지 않는다.






1.7 사회 문제


1) 인식 탐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최근 인문 계열의 인식 탐구 중 하나다. [모더니즘: 1. 사상, 형식, 문체 따위가 전통적인 기반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나려는 창작 태도. 20세기 서구 문학·예술상의 한 경향으로, 흔히 현대 문명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미래에 대해서는 반유토피아적이다. 또한 현실 비판의 한 방법으로 예술의 비인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모더니즘이 확립하여 놓은 도그마, 원리, 형식 따위에 대한 거부 및 반작용으로 일어난 예술 경향. 특히 1960년 전후의 미국·프랑스 소설의 실험적 작풍이나, 구조주의 이후의 전위적 비평을 이른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둘다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가치의 절대성을 바탕으로 자유라는 체제 가치에 무게를 두었으나, 모더니즘은 규칙·이성·효율 등으로 기준이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불규칙·감성·비효율로 기준이 없다. 모더니즘은 기준이 있어 질서정연하나 경직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서 사회 전체가 자유 체제 가치와 맞지 않게 부자유스럽게 될 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준이 없어 질서정연하지 못하나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질서정연하지 못하여 혼란스러우면서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한계가 있었다. 기준이 없는 질서는 무질서와 다를 바 없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가치의 절대성을 띠는 것으로 다른 가치를 허용하지 않아 전쟁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이 넓은 편인데, 그 중에 종교 가치에 영향을 깊게 받은 것일수록 민족, 인종, 성별 등의 자유와 같이 집단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으로 집단주의적이게 되면서 이타주의에 의한 전체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파시즘, 나치즘, 피시즘(PCism) 등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PC주의자는 종종 칸트나 존 롤스와 같은 윤리나 정의를 다루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주장을 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가치의 절대성을 근거로 주장했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주장이 되면서 이치가 아니게 됨에 따라 그 주장은 비논리가 되게 된다. 그들의 윤리나 정의는 애초에 이치가 아닌 것을 근거로 주장하면서 이치가 아닌 것을 이치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 본인이 인식한 인식 탐구 개념을 하나씩 더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복잡해졌다. 


인식 탐구는 상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탐구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탐구한다 해보자.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악을 부를 수 있는 본인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선하다.’와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본인이 희생하는 것은 선하다.’에서 멈추면 인식 탐구가 된다. 존재 탐구는 절대적인 존재를 바탕으로 탐구한 것을 말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의 모양, 성질, 구조, 원리, 동력 등과 논리 회로와 조건에 따른 변화를 파악하여 금욕과 희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발생할 수 있음까지 가면 존재 탐구가 된다. 


존재 탐구를 하거나 존재 탐구를 활용하면 간단할 수 있는 것도 인식 탐구를 하면 복잡하게 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만든 존재 개념이면 자유 한계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데, 인식 탐구에 머물게 되면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집회의 자유, 선거의 자유, 공직 및 개인 재산을 소지할 자유 등을 각각 정하면서 자유 종류와 범위가 지나치게 복잡해진다. 복잡하니까 세세하게 종교 가치를 근거로 온갖 검열과 규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서 존재와 무관한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되게 된다. 자유를 침해당한 인간은 그 자유 침해를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화자가 초등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보자. “자유에는 다양한 자유가 있고, 그 자유들의 한계는 특정 기준으로 정해지고, 자유로운 상황에서 정의를 이루기 위한 몇 가지 포괄적인 원칙이 있어.” 그림을 그려 설명한들 초등학생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절래절래 짓고 가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면 화자는 역시 철학은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자유가 사회 질서 기준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된다.


화자가 초등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보자. “네가 살고 싶으면 하기 싫어도 먹고 자고 싸야 하잖아? 그것처럼 사회도 살고 싶으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살고 싶으면 그걸 해야 해.” “대신에 그걸 하고 나면 전부 자유야.” 인간 그림과 사회 그림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대부분 초등학생은 이 말을 듣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몸을 갖고 있어 살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걸 하고 나면 전부 자유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것으로 자유 기준이 된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 개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초는 쉬워야한다. 존재 질서에서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러지 않으면 죽으니까. 가치는 상대적이다. 몸이 다르니까. 이것을 기초로 자유가 사회 질서 기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


모더니즘은 기준이 있는 질서를 추구하면서 부작용으로 부자유가 나타났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준이 없는 자유를 추구하면서 부작용으로 무질서가 나타났다. 모더니즘이 추구한 질서는 존재의 절대성으로 강제력의 정당성을 갖추게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한 자유는 가치의 상대성으로 자유를 보장할 수 있게 하여 질서와 자유가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게 한다.






2) 현상 해석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현상 몇 가지 설명하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준이 없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것으로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다양한 가치의 절대성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에 반하는 모든 가치는 부정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으로 분류되는 PC주의가 다른 가치를 가진 이들과 싸웠던 것은, PC주의는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지 모든 가치를 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PC주의는 기준이 없어 논리적이기가 어려워 PC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호응을 받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PC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에는 논리가 없어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불합리한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 가치와 종교 가치를 탐구한 인문 계열의 주장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매번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서 종교 가치로 체제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의해 많은 사회 문제를 부르게 되었다.


PC주의는 기준이 없어 자유로우나 기준이 없어 불합리했다. PC주의의 가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새롭게 기준을 만들 수 없으므로 과거의 기준을 끌고 온 것이 종교 가치와 종교 가치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성인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성별성이다. 이른바 인종과 성별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정립된 인종성과 가부장제 시대에 정립된 성별성을 인간의 선천적 성질이라 가정하고는 인류는 거기에 맞춰야 한다며 주장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인종성을 말하며 “백인은 가진 것이 많고 흑인은 가진 것이 적으므로, 흑인에게 가산점이나 할당제와 같은 특혜를 주는 것에 의해 백인이 차별 받는 것은 긍정적 차별이다.”라는 논리와

가부장제 시대의 성별성을 말하며 “남성은 가진 것이 많고 여성은 가진 것이 적으므로, 여성에게 가산점이나 할당제 같은 특혜를 주는 것에 의해 남성이 차별 받는 것은 긍정적 차별이다.”라는 논리다. 그 논리에 맞춰준 정책이 바로 미국의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이다. 이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정부 정책으로 인종차별을 완화하기 위해 시작되어 그 외 약자들로 확장된 것인데, 이는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성별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성립되는 주장이다.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헌으로 판결하여 폐지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여성주의에 의해 성인지 감수성이 주장되었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적으로는 성차별과 성의 불평등을 인지하는 능력 또는 법적으로는 성범죄 피해자가 소극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 등을 말하는데, 이는 가부장제 여성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성립되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PC주의와 여성주의는 과거 가치에 반발했음에도 과거의 기준을 쓰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기성 세대에 인정 받기도 한다. 여성주의가 성인지 감수성을 말하며 가부장제 여성성을 사회에 강요하는 것을 가부장제 가치관이 익숙한 기성 세대가 인정하듯이 말이다. 


기준이 없어 새로운 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과거의 기준에 가져다 쓰면서 점점 과거로 퇴보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미국 흑인은 사회적으로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 여성은 법적 또는 정책적으로 수동적이고 소심하고 유약하고 성적 수치심이 강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그러기 때문에 성장하여 강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준에 맞춰 용어를 바꾸는 배려를 하거나 혜택을 주는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 흑인이 범죄율을 높은 것을 보고 인종에 다른 인종과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의심을 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동일 종으로 흑인에 다른 인종과 다른 인종 문제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인종은 다른 인종과 다를 바 없이 우수하다. 이것은 철저하게 사상 문제다. 흑인을 차별하던 제국주의 인종성에 의해 흑인이 성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차별에 의해 나타나던 결과를 바꾸기 위해 흑인에게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자 노력을 적게 하거나 하지 않게 되는 것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집단을 대상으로 한 가산점과 할당제는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제도에 해당한다. 집단 평등을 명분으로 특정 인종과 성별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가산점과 할당제를 주자, 그들은 그 외 인종과 달리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게 되었다. 능력이 있어도 일정 이상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집단 평등을 위해 할당제를 하면 어떤 경우에는 정말 아무 노력 하지 않아도 선호도가 높은 사회 역할을 얻을 수 있기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절대적 이익을 평등이란 윤리를 근거로 하여 성립시켰다. 평등이란 가치에 본질이 가려질 수 있는데, 가산점과 할당제의 본질은 노력이 적거나 없어도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것에 있다. 아마 평등 개념으로 접근하면 성별이나 인종 비율에 맞추는 것이 정당하다 보일 수도 있는데, 절대적 이익 개념으로 접근하면 정말 말도 안된다고 느껴질 것이다. 절대적 이익 개념이 PC주의와 여성주의가 만든 사회 혼란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



약자인 백인이나 남성이 있을 수 있고 강자인 흑인이나 여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집단 평등을 주장하며 비율을 맞추는 것에 의한 절대적 이익을 얻는 것을 행하자, 약자인 백인과 남성은 차별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집단으로 보고는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게 또 평등 가치에 의해 정당하다 인식되기도 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분명 약자인 흑인과 여성 비율이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과거 신분제 노예가 자유를 얻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다가 내게 되었다. 납세의 의무를 지면서 노예는 시민이 되었다. 반면 제국주의 흑인은 자유를 얻으면서도 과거 흑인의 인종성으로 상점을 털더라도 괜찮다는 것과 같은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 백인과 대등한 인간이 되었다고 보기가 어렵고, 가부장제 여성은 자유를 얻으면서도 과거 여성의 성별성으로 징병 의무를 지지 않는 것과 같은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 남성과 대등한 인간이 되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현재 흑인과 여성은 과거 차별받은 위치에서 다양한 특혜만 받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흑인이나 여성을 차별하는 인간이 있다. 그렇다고 집단에 특혜를 주는 것은 할 수가 없다. 집단이 하나 둘도 아니고, 모든 집단에 그런 식의 혜택이 나오면 엉망진창이 된다. 특정 지역이 차별을 받으니 혜택을 줘야 한다. 특정 학교가 차별 받으니 혜택을 줘야 한다. 특정 종교가 차별을 받으니 혜택을 줘야 한다. 이외 정말 수많은 집단이 있다. 이런 것이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가? 더구나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지 혜택을 주는 것에 머무르면 성장하지 못하게 되면서 차별이 끝나지가 않게 된다.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노력을 적게 하거나 하지 않게 되도 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 여기는 심리적 한계에 의해 실제 능력보다 무능하게 여기게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성장은 더더욱 멀어진다.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성별성에 의해 성장이 멈춘 것이다. 


만약 인종이나 성별로 차별 받는 것이 발생하면 흑인과 여성 전체가 차별 받은 것이 아닌 개인이 개인 특성에 의한 차별을 받은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흑인이어서 차별 받았어도 흑인 개인이 차별 받은 것으로 접근하고 여성이어서 차별 받았어도 여성 개인이 차별 받은 것으로 접근한다. 이는 백인이나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차별에 대한 대응도 개인이어야 집단으로 대응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의해 진영으로 나뉘어 다투면서 문제 해결이 끝나지 않는 것을 끝낼 수 있다.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여성성에 갇혀 있는 이들은 현재 심리 한계에 의해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지배를 당하던 인종은 그 시대 인종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가부장제 시대 역할이 집안 일로 한정되던 여성은 그 시대 여성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PC주의와 여성주의는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여성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종성과 여성성을 해당 인종과 여성에게 주입하고 사회에 배려를 강요하였다. 그러는 바람에 일부 인종과 여성은 현재 심리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는 부당한 특혜로 불합리하게 되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PC주의는 기준이 없어 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이 아닌 과거 불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에 의존하는 것으로, 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되었다. 평등한 인종성과 성별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평등한 상태에 놓인 제국주의 인종성과 가부장제 여성성을 주장하거나, 제국주의 백인성과 가부장제 남성성을 따라하기만 하게 되었다. 이제는 인종과 성별과 무관하게 개인이 현재 심리 한계에서 벗어나 소재 한계 내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한다. 자아가 의지만 제대로 가지면 자아 외가 예측 계산하여 실행하기에,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



한국은 PC주의보다 여성주의가 활성화되어 여성주의에 의한 현상에 대한 의견을 좀 더 내겠다. 가부장제와 가부장제 여성성에 대해 알아보겠다. 가부장제는 집단주의 체제의 제도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여 모든 개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는 제도다. 거기에 약자인 여성이 좀 더 많은 차별을 받았기에 가부장제가 여성 차별 제도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모든 개인 차별 제도다. 가부장이 되어 책임을 지고 싶지 않는 인간에게는 가부장조차 차별로 작용하게 된다.


가부장제 여성성은 가부장제 시대에 사회 참여를 하지 않았던 의지가 약한 수동적 여성성과 정조관념을 지키는 엄숙주의적 성관념을 전제한다.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은 철저하게 가부장제 시대의 종교 가치를 근거로 한다. 이러한 가부장제 여성성이 기성세대의 논리 회로와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 과거 가부장제 시기의 여성 차별 조건이 들어가자 겉으로 봐도 여성 억압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현재 여성 평등 조건이 들어가자 겉으로 보면 여성 인권처럼 보이게 되었다. 가부장제의 여성성 억압을 시행했던 이들은 명분을 위해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며 남성의 성욕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몰고가면서 여성성 억압이 여성 인권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것을 성인지 감수성이라 말하며 가부장제 여성성을 신세대 여성들을 주입하고 사회에 강요하면서 사회 전체가 뒤틀리게 되었다.


가부장제 여성성에 의해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것을 여성 인권이나 남성 차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이 여성성을 억압받으면서 남성이 여성성을 소비하는 것이 어렵게 된 것이다.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면 불편해한다. 여성이 노출된 광고판도 불편해한다. 이런 것이 여성성 억압이다. 여성성은 아름다운 것이지 더러운 것이 아니다. 여성성을 터부시하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 미성년 핑계를 대는데, 인간은 미성년 시기부터 본인의 여성성과 타인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접하고 성장해야 이성 모두 여성성 접촉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이성 관계가 성립되게 된다. 미성년이 성을 접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은 미성년의 성조차 집단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쓰던 집단주의 체제의 종교 가치가 만든 개인주의 체제에 부적합한 인식이다. 미성년 때 성 접촉을 그토록 터부시하며 막아놓고 어떻게 강요 없이 자유로운 정상적인 이성 관계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여성성 소비는 여성 인권이나 남성 차별이 아니다. 단지 여성성이 억압받으니까 남성이 여성성을 소비하기 어렵게 된 것이고, 남성성이 자유로우니까 여성이 남성성을 소비하기 쉽게 된 것이다. 생산자가 억압받자 소비자가 소비하기 어려운 것을 보고 소비자 차별이라 말하면 안 된다. 이것은 철저하게 여성 억압의 결과다. 그걸 여성주의는 여성성 억압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 반대라고 했을 뿐이다. 여성성 억압하는 종교가 얼굴 가리고 옷 종류 강제하면서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노출하는 것이나 성 상품화를 못하게 여성성을 억압하는 것은 나쁜 차별이고, 여성주의가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노출하는 것이나 여성 본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으로 여성성을 억압하는 것은 착한 차별인가?



지금 가부장제 여성성의 주입과 성인지 감수성의 강요를 여성의 권리라 주장하는 것이 내게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가? 불법 종교에 주입된 인간이 사람들에게 불법 종교가 주입한 인간성을 다른 인간들에게 옳은 것이라며 강요하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가부장제 여성성이 작동하도록 새겨 넣은 논리 회로를 그대로 놔두고 여성성 억압하는 성관념이 옳다 떠들어대니 여성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는가? 남성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처럼 사상으로 여성을 억압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지는 않는다.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주의 사상이 문제다. 대부분 인간이 문제기보다는 사상이 문제다. 사상 문제만 해결하면 성별 관계 없이 전부 우수하다. 그럼에도 그런 사상에서 미국의 사회적 우대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절대적 이익까지 추구하니 더욱 더 엉망이 된다. 피해 의식 높고 감사 지수 낮고 무고죄와 아기 살해가 늘어난다. 이런 것 전부 이딴 걸 여성 인권이라 주장하고 다닌 결과다. 이런 것에 의해 신세대 여성이 가부장제 여성성을 가지게 된 상태에서 여성주의자가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다. 종교 가치로 순종적으로 가공해놓고 그것에 맞춰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흑인 집단이나 여성 집단이 인종 차별이나 성별 차별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면서도 흑인과 여성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바란 것이 아니라 본인 집단의 절대적인 이익을 바랐기에 그랬던 것이다. 만약 인권을 바랐다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굳이 인종이나 성별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같은 인간이니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라가 아닌 흑인과 여성이니까 절대적인 이익을 달라는 식이니까 인종과 성별을 강조하게 된다.


절대적 이익은 이런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남녀 임금 격차 크다는 통계를 활용하는데, 임금 격차 외에 조건을 무시하여 정당한 차이임에도 부당한 차이인것마냥 말하며 부당한 이익을 주장하고 있다. 생산 가치 차이, 현장직과 사무직의 차이, 이과와 문과의 차이, 노동 시간의 차이, 험한 일 유무 차이, 가정 주부 비율 차이 등 다양한 조건이 모두 무시되고 오로지 성별 집단이 임금 차이 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력을 적게 하거나 하지 않으면서도 이익을 달라 요구한다. 절대적 이익을 위해 여성 성매도자가 있으면 여성 성매도자는 지원금을 주고 남성 성매수자는 처벌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가부장제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근거로 정당화한다. 그게 절대적으로 옳다고 배웠으므로 그런 여성 억압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저항이 없다. 


그런 절대적 이익을 위해 선동, 오도, 폄하, 거짓 눈물 가리지 않는다. 부당 행위가 드러나 손해를 볼 때가 되면 남탓을 한다. “네가 잘못이다.” 설령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조차도 그렇다. “나의 거짓말을 믿은 너희 잘못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얻는 결과가 나와야만 하기 때문에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에서 경쟁을 하는데 본인 이익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은 많이 좋아하더라도, 경쟁하는데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려 드는 인간을 몇 명이 좋아하겠는가? PC주의나 여성주의가 사회에서 기피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것은 여성주의만 그런 것이 아닌 체제에 맞는 합리적 기준 없는 권력 남용에 해당하는 이익 주장은 대부분 그러하다.


이제 이런 다양한 가치의 절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가치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가치의 상대성은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모든 가치가 존중될 수 있다. 모든 가치가 존중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수 있는데, 그것은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의 한계를 합리적으로 정하면 된다. 그렇게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3) 문제 해결


가치에 의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이 자리잡혀야 한다.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결과로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하여 모두가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기초로 인문 계열의 체계를 갖춘다. 존재와 가치는 구분이 간단하다. 판단이 불가하면 존재, 판단이 가능하면 가치. 판단이 불가한 것은 존재이므로 절대성을 통해 강제력을 정당화하고, 판단이 가능한 것은 가치이므로 상대성을 통해 자유를 보장한다. 


이 구분은 모든 인문 계열에 적용될 수 있으므로 모든 인문 계열을 통합한 체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수많은 사회 문제는 인문 계열의 기초가 종교 가치거나 제대로 없어서 체계적인 발전이 안되어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충돌하면서 발생했던 것이다. 존재의 절대성으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켜 가치에 의한 분쟁을 끝낸다.


존재 질서 속에서 개인은 이기주의적인 상대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이타주의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이기주의는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절대적 이익은 반드시 이익을 얻는다는 결과를 추구하고 상대적 이익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결과를 추구한다. 모든 개인은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되 법, 정책, 제도 등의 공정한 규칙 내에서 이익이나 손해를 볼 수 있음을 인식하면 된다. 


모든 것은 개인에 맞춰야 한다. 약자 집단에 맞춘 법, 정책, 제도를 시행할 것이 아니라 약자 개인에 맞춘 법, 정책,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말하며 집단 전체가 이익을 얻도록 할 것이 아니라 사회와 체제 가치가 추구될 수 있도록 하여 모든 개인이 공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존재의 절대성을 근거로 체제 가치에 속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종이나 성별을 배제하고 개인이 부족한만큼 성장할 수 있는 생계와 교육 보장 등의 혜택을 준다. 그렇게 하여 모든 개인에게 절대적 이익에 해당하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상대적 이익에 해당하는 기회의 평등이 돌아가도록 한다. 






4) 책임 소재


사회 문제의 책임 소재는 무엇에 있는가? [책임: 1.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2.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 사회 문제를 일으킨 개인에게 있는가? 물론 표면상 일부는 그렇다. 그렇기에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그에 대한 제재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전부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 문제는 개인과 사회가 모두 책임진다. 사회가 개인이 일으킨 사회 문제의 의무나 부담을 지니까 그에 대한 제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내국인은 사회 구조 요소기에 책임지고 외국인은 국제법에 따라 책임진다.


본질로 보면 책임 소재가 달라진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되기 때문에 문명 사회의 모든 주권자와 통치 대행자 책임이 된다. 기초적인 언어부터 가공되는 특정 개인이 본질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야만스러운 원시 사회라면 모를까 고도화된 문명 사회에서는 개인의 교만이 된다. 학문으로 문명이 만들어지는 문명 사회에서 만약 문제 해결 방법이 없었다면 모든 주권자와 통치 대행자가 아닌 학문의 책임이 되게 된다. 학문을 기초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학문에 해결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학문에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가 된다. 자연 계열에서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되지 못한 것이 인간의 한계이듯, 인문 계열에서 고질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도 인간의 한계다. 이럴 때에는 현재의 학문에 의존하지 않고 한계를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인류는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으로 한계를 넘어 과거 사회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이고 현재도 계속 체계적인 발전을 하면서 언젠가 핵융합 발전소도 상용화를 하면 현재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문 계열도 과학 혁명으로 한계를 넘어 체계적인 발전이 되어야 고질적 사회 문제와 앞으로 있을 사회 문제 해결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학문


[학문: 1.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문명은 학문으로 만들어지고 학문은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갑자기 학문이 탄생한 것은 아니다. 언어조차도 시작한 인간이 반드시 존재한다. 시초의 생각이 사상이 되어 널리 퍼지면서 배우는 자가 늘어남에 따라 체계화된 것이 바로 학문이다. 시초의 사상가는 문자가 없던 시기에 있었기에 아마 역사서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같은 학문이나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가 있다. 






2.1 학문 구분


1) 학문 태도


학문 태도는 맹신과 의심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문 내에서 맹신하면 종교고 의심하면 학문이다. 학문을 맹신하면 학문 종교가 되고 신과 같은 초월한 것을 맹신하면 신비 종교다. 학문으로 문명이 만들어졌기에 국가 체제는 종교나 학문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보통 신정은 종교로 체제가 만들어지고 왕정은 종교와 학문으로 체제가 만들어지고 민주정은 학문으로 체제가 만들어진다. 현재 대부분 민주정은 왕정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종교로 만들어진 종교 가치와 학문으로 만들어진 체제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상태다.


인문 계열은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인문 계열의 기초는 대부분 서력 기원 시기에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아직까지 인문 계열에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남아있다. 종교는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겨 불변한 진리를 알고 있다 여기기 때문에 새롭게 진리를 찾지 않는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찾는다면 종교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므로 더 이상 종교가 아니게 된다. 종교에 영향을 받은 인문 계열도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지 않았기에 서력 기원 시기의 인문 계열과 현재의 인문 계열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수천 년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반복된 까닭은 인문 계열이 본질이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 계열은 르네상스로 시작하여 과학 혁명을 통해 자연 계열의 기초는 대부분 과학 혁명 시기에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자연 계열은 많은 것을 의심하면서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많이 빠져나오게 되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하면서 존재의 절대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를 기초로 체계적인 발전을 하면서 매번 한계를 돌파하고 있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찾지 않는다면 학문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므로 종교가 되어버린다. 철학의 세 기준 중 하나인 존재를 탐구한다는 측면에서 자연 계열의 탐구자는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자가 될 수 있다.






2) 학문 방법


학문 방법은 생산과 소비로 구분할 수 있다. 지식 생산자는 창의 발상을 하고 지식 소비자는 기억 발상을 한다. 지식 생산자는 창의 발상을 통해 모르는 것을 떠올려 없던 가치를 생산하고 지식 소비자는 기억 발상을 통해 아는 것을 떠올려 있던 가치를 관리한다. 없던 가치를 만드는 인간과 있던 가치를 관리하는 인간은 둘 다 필요한데, 이 둘에게 필요한 능력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주입식과 문제 풀이 평가를 보편화하면서 해당 능력이 필요한 있던 가치를 관리하는 인간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창의 발상은 모르는 것을 떠올리고 기억 발상은 아는 것을 떠올린다. 모르는 것은 관념이 고정되지 않아야 떠올리기 쉽고 아는 것은 관념이 고정되어야 쉽다. 블록으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블록: 1. 쌓아 올리도록 만든 장난감.] 유동 관념은 블록이 부품인 상태로 있는 말하고 고정 관념은 블록이 조립된 상태로 있는 것을 말한다. 창의 발상을 할 때에는 블록이 부품인 상태로 있으면 블록 부품을 바로 조립하면서 새로운 블록을 만들 수 있지만, 블록이 조립된 상태로 있으면 블록 조립을 해체를 하여 조립하면서 새로운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 기억 발상을 할 때에는 블록이 부품인 상태로 있으면 블록을 조립해야 하지만 블록이 조립된 상태로 있으면 그냥 그대로 쓰면 된다. 


창의 발상과 기억 발상은 위와 같이 필요한 관념이 다르다. 그런데 주입식과 문제 풀이는 고정 관념을 주입하고 필요로 한다. 지식이 조립된 블록인 상태로 주입하고, 지식이 조립된 블록인 상태로 떠올려서 문제를 푼다. 문제 풀이로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고정 관념이 많을수록 유능하단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유동 관념이 많을수록 무능하단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유동 관념이 많으면 문제 풀이를 할 때 고정 관념과 달리 블록을 조립하는 시간이 필요하여 신속하지 못할 수 있고, 빠진 부품이 있을 수 있어 용어나 의미가 떠오르지 않아 문제를 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기억력이 좋지 못하거나 공부를 덜 했다는 착각을 하고는 달달 암기하게 하는 것으로 고정 관념을 강하게 가지게 하여 기억 발상 능력은 키우고 창의 발상 능력은 버린다. 창의 발상 능력을 키우려면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동 관념으로 창의 발상을 하는 과정을 설명해보겠다. 예를 들어 어떤 개념이 있다. 유동 관념일 때에는 개념이 쪼개져서 발상이 되게 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개념을 발상하면 의미가 통째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따로 떠오른다. 민주주의가 뭐지? 주권? 국민? 자유? 사회? 반대로 용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쪼개진 개념들도 추상적으로 떠오른다. 


고정 관념일 때 전부 발상되지 않은 것과 유동 관념일 때 전부 발상되지 않은 것은 다르다. 고정 관념일 때에는 조립된 블록이 전부 떠올려지지 않는 것이고 유동 관념일 때에는 블록 부품이 떠올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쪼개진 개념을 발상하여 조립한다. 그러다 보면 빠진 개념이 있을 수 있고 객관적 개념과 다를 수 있어 발상을 활용할 때에는 사전 정의를 참고한다. 쪼개져서 발상이 되기 때문에 다시 조립하면서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이치를 떠올리면서 조립하기 때문에 새로운 이치를 발견하거나 알게 되면 다른 방식으로 조립하면서 익숙한 개념으로도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쪼개져서 발상이 되기 때문에 조립된 상태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순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 모순을 제거하여 합리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타주의를 고정 관념으로 가지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이 알지 못하게 된다. 이타주의를 유동 관념으로 가지면 타인, 행복, 개인, 희생, 절대, 등으로 쪼개져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 알게 된다. 특정 주장도 쪼개져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장의 모순을 찾아 논파하는 것도 보다 쉽게 된다.


유동 관념은 유동 자아일 때 수월하다. 2차 성징 이전의 유동 자아일 때에는 관념이 고정되지 않아서 발상이 수월한 것이다. 인간은 2차 성징이 시작하면서 관념이 고정되면서 자아도 고정되게 된다. 주입식 교육과 문제 풀이로 고정 관념은 더욱 늘어나면서 자아도 깊게 고정된다. 그렇게 한번 고정 자아가 되면 고정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고정된 관념도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세세한 부분까지 다 고정되면서 자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고정 관념에 의해 고정 자아가 되고 고정 자아에 의해 고정 관념이 늘어난다. MBTI과 같이 세세한 성격 유형을 규정하면 고정 관념이 늘어나 고정 자아가 되는데 영향을 준다. 


유동 관념을 가지려면 고정 관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유동 자아가 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유동 자아는 고정 관념이 적어 고정되지 않아 굉장히 불안정하여 일반 상태로는 유동 자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걸 유동 자아였던 시기를 자아 나이로 정하는 것으로 지속적 인식하면 할 수 있게 된다. 사춘기 시기 “나는 뭐지?” 라며 자아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계속 하면 된다. 나는 세상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계속 하고 있다. 


지식 생산자는 기초와 응용을 전부 생산하는 인간과 응용을 주로 생산하는 인간으로 나뉘는데, 기초 지식 생산자는 기초도 유동 관념을 가져야 하고 응용 지식 생산자는 기초는 고정 관념이되 응용은 유동 관념을 가져야 한다. 자아 나이는 14세에서 20대 초로 설정하여 유동 관념을 늘리고 고정 관념을 줄이는 것이 좋다. 지식 소비자는 기초와 응용을 관리하는 인간으로 고정 관념을 가져도 되나, 지나치게 고정 관념이 많으면 새로운 지식 소비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해야 한다. 자아 나이는 20대 초에서 20대 후로 설정하여 새로운 지식을 소비할 수 있을 정도의 고정 관념과 유동 관념을 가지는 것이 좋다.






3) 학문 체계


학문 체계는 사상과 철학과 과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으면 사상, 얽매이면서 구체적이지 않으면 철학, 얽매이면서 구체적이면 과학이다. [사상: 1.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 [철학: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 [과학: 1.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이른다.] 


사회는 학문 전후가 다르기에, 그것으로 용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사회는 학문 전에는 문화 학문 후에는 문명으로 나뉜다. 보통 문화를 인문 계열로 보고 문명을 자연 계열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인문 계열이 서력 기원 시기부터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반면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 이후 존재 탐구를 하면서 끊임 없이 발전하면서, 인문 계열은 시골이든 도시든 차이가 없지만 자연 계열은 발전된 도시에 적용되면서 나타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를 한다고 가정하고 이제는 학문 전후로 문화와 문명으로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상은 학문에 얽매이지 않는 탐구다. 있던 적이 없던 시초의 사상이나 있었으나 학문의 기초가 된 기초의 사상을 주로 다룬다. 시초의 사상과 기초의 사상은 모르거나 제자백가, 고대 그리스, 각종 종교, 과학 혁명 등에 해당한다. 사상은 학문에 얽매이지 않아 새로운 확률이 있지만, 새로운 것을 논리로 성립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학문에 얽매이며 구체적이지 않은 탐구다. 인식, 존재, 가치와 같이 구체적이지 않은 개념들을 막연하게 탐구한다. 그렇기에 곧잘 형이상학적이게 된다.  [형이상학: 1.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 보통 인문 계열에서 이런 탐구를 하여 철학은 인문 계열에 속한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자연 계열도 구체적이지 않은 탐구를 한다면 철학에 속하게 된다.


과학은 학문에 얽매이면서 구체적인 탐구다. 세부 분야가 세세하게 나뉘어져 특정 개념을 집중하여 탐구한다. 그렇기에 곧잘 형이하학적이게 된다. [형이하학: 1.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 보통 자연 계열에서 이런 탐구를 하여 과학은 자연 계열에 속한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인문 계열도 구체적인 존재 탐구를 하여 체계를 갖추면 과학에 속하게 된다.


인문 계열이 주로 형이상학을 탐구하고 자연 계열이 주로 형이하학을 탐구한 것은 그냥 인문 계열이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할 수 있을 정도의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 계열이 존재 탐구를 하여 체계적 발전을 했던 것과 같이 인문 계열도 존재 탐구를 하여 체계적 발전을 해야 한다. 


자연 계열에서는 존재 탐구를 통해 체계를 갖춰 발전하면서 학문 한계 돌파를 하는 일이 있다. 최근 과학의 한계 돌파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은 수로 표현한 가상의 형태로, 과학자 클로드 섀넌이 미분해석기 논리 회로 연구 중에 떠올린 발상을 통해 디지털 기술의 기초인 디지털 회로 이론을 창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존재 탐구를 하면 절대적인 존재를 기초로 체계적인 발전을 하면서 학문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과학 또한 학문에 속하여 발상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발전하고 있다. 갑자기 물리 법칙을 무시한 마법과 같은 발전은 어렵고, 실험을 통해 예측할 수 없었던 영역으로는 발전할 수 있다. 자연 계열은 세세하게 체계화하여 대부분 예측 범위 내에서 발전하고 있지만, 학문이 일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학문 내에서는 절대적이라도 학문 밖에서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 또한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기초를 탐구하는 인간이 필요하게 된다.






4) 학문 성질


학문 성질은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식 탐구를 할 때에는 이런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나 존재 탐구를 할 때에는 체계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이런 구분이 크게 중요하게 된다. 선천적 존재는 일반 자연을 탐구하는 것으로 기초 과학을 말하고 후천적 존재는 선천적 존재 탐구를 활용하는 것으로 응용 과학을 말한다. 기초 과학은 자연 계열이고 응용 과학은 기초 과학을 활용하는 모든 학문이다. 통상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로 학문을 나누는데, 인문 계열 또한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 계열의 기초 과학을 이치로 삼아 논리를 전개해야 하므로 응용 과학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으로도 나누어야 한다. 기초 과학은 자연을 기준으로 하고, 응용 과학은 기초 과학을 기준으로 한다. 응용 과학에서 인간 도구를 기준으로 하면 자연 계열이라 부르고 인간 심리를 기준으로 하면 인문 계열이라 부르고 있다.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란 기초 과학을 말하고,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의 후천적 존재 탐구란 응용 과학을 말하게 된다.


본래 인문 계열은 인간 심리의 영향으로 어떻게 해도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게 인문 계열의 한계였다. 그러다 자연 계열이 과학적 방법으로 선천적 존재 탐구를 하면서 인문 계열도 후천적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인문 계열은 인식과 가치를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것이 아닌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이치로 삼아 논리적인 탐구를 하면서 인문 계열도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결과를 이치로 여기기에 논리적인 주장도 수월하게 되었다. 존재 질서에서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으니까. 가치는 상대적이다. 몸이 다르니까. 이보다 더 강력한 논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 없이는 존재 탐구가 불가능에 가까워 과학 혁명 이전의 인문 계열 탐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2 학문 영역


1) 개념 개발


개념 개발은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것이 후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이 자아를 자각하기 전부터 이미 인간의 인식은 가공되게 된다. 남성 유치원생이 파랑을 선호하고 여성 유치원생이 분홍을 선호하는 것을 보고 남성이 파랑을 선호하고 여성이 분홍을 선호하는 것이 선천적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 본래 남성은 분홍을 선호하고 여성은 파랑을 선호했다는 것을 보면 후천적으로 가공된 결과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기초 과학은 선천적이라 여겨지고 있으나 인간은 감각기관과 언어 개념을 통해 인식하기 때문에 사실 후천적이다. 모든 것이 후천적이나 학문 내에서 기초 과학을 탐구 결과는 선천적이라 가정하고 응용 과학 탐구 결과는 후천적이라 가정할 뿐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일반에 속한 일반 진리를 모르고 학문에 속한 학문 진리를 알고 있다.


모든 것이 후천적이므로 모든 탐구에는 개념 개발을 필요로 한다. 개념 개발이나 개념 분석시에는 학문 내에서 쓰이는 개념을 체계화하여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한다. 하나, 모양과 성질. 모양과 성질의 본디는 본질이다. 둘, 구조와 원리. 모양과 성질의 원인이다. 셋, 요소. 구조와 원리의 나눌 수 없는 성분이다. 넷, 선천과 후천. 요소의 선천인 기초 과학과 후천인 응용 과학이다. 다섯, 기초 과학. 선천에서 가장 작은 단위까지다.






2) 개념 가공


개념 가공은 특정 개념을 가공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지각을 자각하는 지적 자아가 인식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손익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가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변화를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존재를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죽음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도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감각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감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결핍을 지각하는 지적 자아가 행복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모든 개념이 후천적이기 때문에 완전히 선천적인 것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을 토대로 개념이 가공되어 만들어지는지는 파악할 수 있다. 대체로 학문 내에서 감각 기관으로 지각한 것이 선천적이고, 지각한 것으로 가공된 것이 후천적이다. [지각: 1. 감각 기관을 통하여 대상을 인식함. 또는 그런 작용. 그 작용의 결과로 지각체가 형성된다.] [감각: 1.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지각으로 인식해야 개념이 성립되므로 지각이 적절하다. 


여기서 쪼개면서 가장 작은 단위까지 가면 된다. 대략적으로 쪼개보자. 지각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감각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세포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원자에 속한 개념을 쪼개고, 기본 입자까지 간다. 기본 입자도 쪼갤 수 있는지 탐구 중에 있다고 한다. 하나씩 쪼개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부 쓰는 것은 어려우므로 예를 들기 위해 하나씩 썼다. 그렇게 하여 인간이 일상적으로 사용 중인 개념까지도 전부 체계화한다. 대체로 지각을 쪼개고 나서 부터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인문 계열에서는 지각으로 가공된 개념을 체계화하면 된다.


가공을 잘 알기 위해서는 소재를 파악해야 하고, 가공된 것의 소재를 잘 알기 위해서는 가공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초 과학의 발전은 응용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응용 과학의 발전은 기초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3) 개념 해석


개념 해석은 가공된 개념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가공된 개념은 다양하나 인식, 가치, 시간, 영혼, 도덕, 감정, 행복을 알아보겠다.


첫째, 인식. 감각 기관으로 대상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된 것을 자각하고 지적 자아가 인식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인식은 감각 기관의 감각과 감각 판단 기준인 관념이 인식의 요소가 된다. 감각은 눈, 코, 귀 혀, 살갗과 같은 감각 기관의 자극 전달이고 관념은 경험, 사상, 가치, 지식과 같은 모든 대상에 대한 생각이다. 인간은 감각 기관이 모두 달라 관념이 같더라도 인식은 상대적이게 된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감각되지 않아 지각에서 벗어난 영역이거나 관념에 없어 발상되지 않았던 영역에 해당한다. 이런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하려면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기초로 한 논리로 감각과 관념을 초월해야 한다.


둘째, 가치. 이익과 손해를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가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본인의 주관적 기준으로 모든 것의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면서 가치가 나타나게 되었다. 진리, 도덕,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이 본인의 주관적 기준으로 한 손익 판단이다. 진리를 알고자 하는 인간에게 진리는 이익이고 진리가 아니면 손해가 된다. 금전적 가치 등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인식이 모두 달라 판단 기준이 다른 것으로 추구하는 손익은 같더라도 가치는 상대적이게 된다.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가치 관념에 없어 발상되지 않았던 영역에 해당한다. 가치는 주관적 기준의 판단이므로 실제 손익과 별개로 주관적으로 이익이 된다 판단하면 가치가 높다고 느끼고, 주관적으로 손해가 된다 판단하면 가치가 낮다고 느끼게 된다. 가치 판단을 못하거나 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셋째, 시간. 변화를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시간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변화를 지각하고 변화의 근원을 찾다보니 나온 결론이 바로 시간이다. 만물은 물리적 이동만 있다. 그걸 인간이 지각한 순서대로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했던 개념이다. 그렇기에 시간은 우주의 법칙에 속하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은 시간을 전제했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거라 착각할 수도 있는데, 그 이론은 시간은 없거나 지각 순서로 바꿔도 성립한다. 가치의 절대성을 전제한 학문이 수정되어야 하듯이 시간을 전제한 학문도 수정되어야 한다.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전제한 다세계 불가능하다. 숙명 없다. 운명 없다. 윤회 없다. 전쟁 없다. 환생 없다. 사후 세계 없다. 시간이 지각 순서라는 발상은 자아를 파악하여 자아와 자아 외를 분리해 자아의 의식 의지로 육체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통해 우주의 법칙이 인간의 지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도달해야 하므로, 자아 파악 이전에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몰랐을 거라 생각한다.


넷째, 영혼. 존재를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영혼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존재를 지각하고 인간 존재의 근원을 찾다보니 나온 결론이 바로 영혼이다. 이 영혼 개념은 자아 개념과 일치한다. 차이는 외부와 내부다. 영혼은 외부에서 오고 자아는 내부에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이 외부에서 왔다고 보기에는 너무 불안정하다. 뇌세포만 손상되어도 육체를 제어하는 존재가 달라진다. 영혼이란 완성된 형태의 어떤 신비적 존재가 외부에서 왔다면 그런 물질적 손상에 영향을 받는 것이 논리적이지 못하게 된다. 영혼 개념이 후천적임에도 대부분 문명에 영혼 개념이 있던 것은 짐승의 생활 양식을 떠올리면 된다. 원시 부족 시대는 문명이 없어 대부분 자연 환경으로 가공되던 시기로 짐승의 생활 양식과 비슷했다. 같은 종의 짐승이 다른 환경에 있더라도 비슷한 생활 양식을 가진 것과 같이, 같은 종의 인간이 다른 환경에 있더라도 비슷한 생활 양식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영혼 개념이 있었다. 현대 문명으로도 존재를 파악할 수 없었던 영혼을 원시 부족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원시인이 현대인보다 지식 레벨이 높다 주장하는 것보다 허무맹랑하다. 영혼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오래된 것 말고는 없다.


다섯째, 도덕. 죽음을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도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도덕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죽음을 지각하고 살아남기 위해 가치를 만들어 퍼트린 것이 바로 도덕이다. 당시 사상가가 공동체 생존에 절대적이라 주장한 것이 사회 선택으로 반영되면서 사회 질서 기준이 된다. 그렇게 사회 선택된 것 사상이 학문화되어 윤리가 된다. 그런 윤리 중에서 종교와 같이 구심점이 있는 것만 남으면서 오늘날 도덕과 윤리는 기본적으로 종교 가치가 된다. 상대적인 가치가 절대적으로 여겨지다보니 상충하는 가치가 부딪치면 분쟁이 발생했다. 이제 도덕은 절대적이지 않다. 도덕을 절대적으로 여겼던 것은 도덕이 없으면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원리를 추구할 수도 없었던, 비과학 시대의 한계에 불과하다. 과학을 통해 존재 유지 방법을 파악하여 존재의 절대성을 실현하면서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켜 가치에 의한 분쟁을 끝낸다.


여섯째, 감정. 감각을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감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감정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감각을 지각하고 감각의 정체를 알기 쉽게 가공한 것이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본인의 감정을 정확히 모른다. 감각들을 모아 학습한 감정과 비슷한지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사랑과 공포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여 흔들다리 효과와 같은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감정이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과 가치에 의해 달라지게 된다. 바늘에 손을 찔리면 직관적으로 따갑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만 대상에 애정을 느낀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사랑이라는 가치로 인식하게 된다.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사랑은 상대적이게 된다. 사랑에는 다양한 것이 있는데 그 중 발정과 성애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발정과 성애는 이런 식으로 구분하면 된다. 발정은 감각으로 욕구를 직관적으로 느낀 것에 해당한다면, 성애는 발정과 사랑이 더해져 감각을 추상적으로 느낀 것에 해당한다.


일곱째, 행복. 결핍을 지각한 것으로 지적 자아가 행복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행복 개념은 원시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후천적이다. 결핍을 지각하고 충족하면서 느낀 만족감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 인간이 행복을 느낄 때에는 결핍을 충족할 때이다. 기본 욕구나 욕망과 같은 바라는 것이 생기면 결핍이 나타난다. 바라는 것을 이뤄 결핍을 충족하면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행복의 기본적인 원리다. 행복 원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행복하고자 한다면 아주 쉽게 행복할 수 있다. 당장 스스로 본인의 목을 몰라 숨을 쉬지 못하게 해보자. 그러면 산소 결핍으로 불행해진다. 목을 조르던 것을 풀어 숨을 쉬게 해보자. 그러면 산소 공급으로 결핍이 충족되어 행복해진다. 이 단순한 과정에서 인간이 온전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목을 조르는 것을 불행하다 느끼기 때문에 그것으로 행복을 느낀 것도 온전히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게 된다. 목조르는 것과 같은 결핍이 불행하지 않다 느끼면 SM 플레이가 성립되게 된다. 이는 모든 행복이 동일하다. 학습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과 같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동안은 결핍 상태다. 그 결핍을 과하게 불행하다 느끼면 바라는 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온전히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이 마약으로 과한 쾌락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상태가 결핍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약으로 체내 결핍을 충족하면 깊은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체내 결핍을 충족해버리면 기본 상태가 결핍 덩어리로 느끼게 된다. 결핍을 과하게 불행하게 느끼면서 사는 것 자체가 불행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은 마약 없이 살 수 없게 된다. 마약이 기본 욕구와 같이 되면서 마약을 산소처럼 느낀다. 그러면서 마약을 공급하는 인간에게 지배된다. 인간은 결핍이 있어야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결핍의 충족이 행복이기 때문에 결핍이란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그렇기에 행복만 있는 세상은 없다. 영원한 행복은 영원한 불행이고 영원한 불행은 영원한 행복이다.






4) 개념 체계


개념 체계는 특정 개념을 체계화한 것을 말한다. 응용 과학에 속하는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중 하나가 인간 심리에 관한 모든 개념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응용 과학에 속하는 자연 계열의 후천적 존재 탐구는 대체로 개념이 체계화되어 있다. 그러나 인문 계열은 인간 심리 영역을 파악하지 못하여 그렇지가 못하다. 사랑, 지배의 개념 체계를 알아보겠다. 인간 심리에 관한 개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당 개념의 동력은 인간의 동력이 된다.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첫째, 모양. 사랑의 모양은 다양한 이로운 가치의 형상이다. 어떤 그림을 사랑한다고 해보자. 독창성은 가치가 높다, 선은 가치가 보통이다, 색은 가치가 낮다. 이런 식으로 가치를 판단한 것을 종합하여 형상을 가진다. 


둘째, 성질. 사랑의 성질은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애, 이성애, 가족애, 조국애 또는 특기의 대상 사랑, 취미의 대상 사랑 등 다양하다.


셋째, 구조. 사랑의 구조는 가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치의 순위나 가치의 조합 등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사랑의 대상마다 체계가 다르다.


넷째, 원리. 사랑의 원리는 가치 추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사랑이란 형상을 이루면서 사랑이 동작하게 된다.


사랑의 요소는 가치다. 가치를 쪼개면 손익이 되고, 손익을 쪼개면 지각이 되고, 지각을 쪼개면 감각이 된다. 감각 이후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이어진다. 



사랑의 모양은 다양한 이로운 가치의 형상이고 증오는 다양한 해로운 가치의 형상이다. 무관심은 가치 판단을 하지 않거나 못한 상태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에 가치를 높게 느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 관계에 있어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서로에게 가치를 높게 느끼게끔 노력해야 한다. 사랑에 관한 인간 관계 또한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발생한다. 사랑에 관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존재 유지를 위해 본인의 가치를 높일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모든 사회에 적용된다. 사회와 사회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껴야 사랑으로 사회가 유지된다. 가족에서 이혼이나 가출이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가족이나 가족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끼게 해야 하고, 기업에서 이직이나 퇴사가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기업이나 기업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끼게 해야 하고, 국가에서 이민이나 국적 포기가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국가나 국가 구성원에 가치가 높다 느끼게 해야 한다.


사랑 중에 성애는 발정과 사랑의 결합으로 후천적 개념이 된다. 발정은 선천적이나 성애는 후천적이다. 그렇기에 이성애든 동성애든 인간의 취향이 된다. 선천적으로 이성에 발정되도록 되었어도 후천적으로 동성에 사랑을 느끼도록 되게 될 수 있다. 이성애자라도 동성과의 관계에서 쾌락을 기억하면 성애가 바뀔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전국 시대 일본에서 동성애가 유행한 것은 그들이 선천적 동성애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유행했기 때문이다. 유행으로 성애가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성애는 후천적이다. 그렇기에 이성애자가 VR에서 이성의 아바타를 사용하고 동성과 인간 관계를 맺으면 동성애자가 될 수도 있다. 이성애자라도 취향이 아닌 이성을 사랑하지 않고, 동성애자라도 취향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취향은 가치 관념에 영향을 받아 발정 대상을 정하는데, 가치와 같은 후천적 개념에 영향을 받으므로 성애는 후천적이다. 성애는 이성과 동성을 배제하고 취향만 가지고 접근해도 성립된다.


흔히 동성애자들은 본인들의 성애가 선천적인 것이라 여기기도 하는데 성애는 후천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동성애자는 본인이 선천적으로 동성에 발정하는 것인지 후천적으로 동성애를 느끼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애는 후천적이니까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기도 하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동성애가 후천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강제로 교정하자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취향은 개인의 권리다. 취향의 가치의 영역으로 성애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 된다. 취향을 특정 가치를 근거로 간섭하고 억압하고 검열할 권리는 없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그 무슨 사랑이든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존재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존중해야 한다. 굳이 LGBT와 무지개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되려 그걸 강조하며 다른 사람의 취향에 간섭하고 본인의 취향을 강요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물론 취향을 속이거나 악용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지배: 1. 어떤 사람이나 집단, 조직, 사물 등을 자기의 의사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림.]


첫째, 모양. 지배의 모양은 자유의 수단이다. 어떤 인간이 인간 관계에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고 해보자. 지배가 가장 쉽다. 지배해서 원하는대로 하면 된다. 


둘째, 성질. 지배의 성질은 대상이나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이 인간을 폭력이나 윤리로 지배한다거나 인간이 짐승을 지배한다거나 등이 있다.


셋째, 구조. 지배의 구조는 자유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의 순서나 자유의 조합 등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자유의 대상이나 방식에 따라 체계가 다르다.


넷째, 원리. 지배의 원리는 자유 추구로 이루어져 있다. 본인의 일방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지배가 되면서 지배가 동작하게 된다.


지배의 요소는 자유다. 자유를 쪼개면 바람이 되고, 바람을 쪼개면 마음이 되고, 마음을 쪼개면 지각이 되고, 지각을 쪼개면 감각이 된다. 감각 이후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이어진다.



인류 역사가 지배와 복종의 역사라 할 정도로 지배와 복종이 일반적었기 때문에 지배와 복종이 선천적 개념이라 인식할 수 있는데 자유의 수단으로 후천적 개념이다. 지배와 복종이 선천적이지 않기 때문에 친구 개념과 같은 평등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평등한 관계는 짐승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종의 짐승이 어릴 때부터 어울리면 평생 같이 산다. 그게 평등한 관계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등해 보인다. 


지배는 자유의 수단이다. 지배에는 폭력과 윤리 지배가 있다. 폭력 지배는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다. “맞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윤리 지배는 윤리를 수단으로 삼는다. “윤리를 바탕으로 한 내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으므로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왕정은 이 두 가지를 활용하여 인간을 지배했다. 


복종은 자유의 수단이다. 만약 자유가 아닌 복종은 자유가 성립되지 못하여 투쟁하거나 자살한다. 대표적인 자발적 복종이 바로 윤리에 의한 복종. 왕에 대한 충성이 옳다. 뭐 이런 식으로 복종을 윤리로 만든 것을 배우면 자발적 복종으로 자유가 성립되게 된다. 


지배와 복종은 둘 다 자유의 수단 중 하나지만,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다양한 자유를 고르게 모두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자유권을 훼손하는 지배와 본인의 자유권을 훼손하는 복종은 체제 가치에 의해 강제력이 발생되어 허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유할 자유 같이 훼손되는 자유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유한 것을 포기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자유는 포기할 수 없다. 자유욕은 곧잘 지배욕이나 복종욕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개인은 모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그에 맞는 가공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왕정 체제는 왕의 지배를 보장한다. 왕정 체제에 있던 유교 가치에 의해 집단이 있으면 서열이 생기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 착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렇게끔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최초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유롭게 타인을 지배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지배가 되게끔 가공한 것이다. 짐승은 폭력을 통해 서열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폭력이 선천적이고 서열이 후천적인 것에 해당한다. 벌 개미와 같은 지능이 낮은 곤충은 유전자대로 움직일 뿐이지, 거기에 지배나 서열 개념이 성립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 체제는 모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의 수단 중 하나가 지배기 때문에 자유를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 체제는 모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여 특정 개인의 일방적인 자유인 지배가 성립될 수 없다. 이는 법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사회와 계약을 통해 법을 준수하는 것이지 사회의 법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다. 존중은 공포에서 온다는 말이 있는데, 공포는 존중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복종을 부른다. 존중은 대등에서 온다. 사회 계약을 통해 모든 개인이 주권을 가지는 것으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모든 개인의 자유가 성립한다.


지배나 복종으로 쾌락을 느끼는 것으로 선천적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후천적 개념으로도 내포된 일부 선천적 개념으로 충분히 쾌락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치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시험 합격과 같은 어떤 후천적인 목적을 달성하면 성취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 것과 같이 후천적이다. 지배하면 대상과 관계에서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어 기분이 좋을 수 있고, 복종하면 대상에게 판단을 맡겨 판단하지 않으면서 편안 것으로 기분이 좋을 수 있다. 감정과 마찬가지로 쾌락도 그 원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지배를 통해 바람을 이룬 것으로 얻는 쾌락을 지배에 의한 쾌락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지배와 복종은 가상이나 임의의 놀이나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 즐기면 된다.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대상과 대화나 거래로 바라는 것을 이뤄 기분이 좋아지고, 판단을 맡기는 것으로 편안함으로 기분이 좋아지면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게 더 재미있을 수 있다. 경쟁 게임에서 지배한다고 재미가 있겠는가? 축구하는데 무조건 골 넣으면 재미가 있겠는가? 일부는 재미 있을 수 있는데 그게 일반적이지 않으니 축구 경기가 성립되는 것이다. 애초에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기 때문에 일방적 이익이 반드시 행복을 부르지 않는다.






2.3 학문 탐구


1) 탐구 방법


탐구 방법에는 맹신의 인식 탐구와 의심의 존재 탐구가 있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만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시 세계에서 본인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관념으로 느껴지는 것만 있다고 여기며, 그렇지 않은 것은 초자연적인 신비를 다룬 종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맹신한다. 이것이 인식 탐구 방법이다. 철저하게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으로만 탐구하며 인식 외의 것은 그냥 신앙한다. 그렇게 해서 본인의 상대적인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된다. 흔히 인문 계열이 후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형이상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한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인문 계열의 탐구는 본인의 인식 안과 타인의 인식 밖의 주장만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자신의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하고 그 외는 신앙한다. 그것이 어려워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시 세계의 물질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보편성과 재현성을 확보한 증명으로 감각과 관념에서 벗어난 것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존재 탐구 방법이다. 무슨 종교 신앙과도 같이 보이지만, 종교와 다른 점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방법을 통한 증명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그것으로 인간은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절대적 존재를 탐구할 수 있었다. 흔히 자연 계열이 선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형이하학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탐구한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는 현상 파악 후에 감각과 관념에서 벗어나 증명과 논리만 가지고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것을 통해 인식을 초월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파악한다. 그것이 쉬워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는 양자가 등장할 시기부터 보편화되었다고 본다. 그 전에도 보이지 않는 원자를 가정하여 실험을 통해 탐구하는 것으로 존재 탐구에 해당했으나, 양자부터는 실험을 통해 탐구하는 것도 어려워지면서 본격적인 존재 탐구가 시작되었다.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하였으나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존재 개념에 제대로 닿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인식 탐구를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가 없었다고 본다.



하늘 색을 통해 인식 탐구와 존재 탐구를 비교해보자. 낮에 하늘을 본 사람에게 하늘은 파란색으로 보일 것이다. 저녁에 하늘을 본 사람에게 하늘은 주황색으로 보일 것이다. 밤에 하늘을 본 사람에게 하늘은 검정색으로 보일 것이다. 


인식 탐구는 이런 것을 보고 하늘은 파란색과 주황색과 검정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탐구 결과를 내놓는다. 본인 인식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사회 과학이 과학이라 말하지만 실상 인식 탐구인 것도 이렇게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 과학이 사회 현상 해석할 때에는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 하늘 색 통계를 내서 파란색은 n%, 주황색은 n%, 검정색은 n%로 통계를 낸 다음, 하늘 색은 이런 식으로 구성되었다며 판단하고 있다. 현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통계를 낸 것을 과학이라 하고 있다.


반면 존재 탐구는 하늘을 보고 빛의 구조와 원리, 천체의 구조와 원리, 시각의 구조와 원리 등의 증명을 활용하여 하늘 색이 파란색과 주황색과 검정색으로 보이게 된 구조와 원리에 관한 탐구 결과를 내놓는다. 본인 인식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여 증명하고, 그 증명을 모아 다시 탐구하여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다. 이렇게 탐구하여 보편성과 재현성을 갖추면 모든 인간이 같은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통해 존재 탐구는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해진다. 다른 것을 보면 본인이 본 것이 맞다고 싸우면서 발전이 안 되지만, 같은 것을 알면 모두가 안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발전이 가능해진다. 존재 탐구가 되어야만 체계적인 탐구를 하는 과학이 성립된다.



동양 의학과 일반 의학을 통해 인식 탐구와 존재 탐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다. 동양 의학과 일반 의학의 결정적 차이는 탐구 방식이다. 동양 의학은 인식 탐구를 했다면 일반 의학은 존재 탐구를 했다. 하늘 색으로 설명하면 동양 의학은 수많은 다양한 색을 전부 모아 통계를 내서 하늘 색이 무엇인지 파악했다고 여겼고, 일반 의학은 하늘 색에 관련된 것의 구조와 원리를 증명하여 파악했다고 여겼다. 


그런 것과 같이 동양 의학은 구조와 원리를 모른 채 온갖 경험을 통해 나온 통계를 가지고 때려 맞춘다. 그래서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다. 구조와 원리를 몰라 증명도 못한다. 그런데도 가끔 맞으니까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매번 다르기 때문에 체계적인 발전을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동양 의학이 효과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인간 육체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의학은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보편성과 재현성을 가지고 대부분 환자에 적용할 수 있다. 예외가 발생하면 탐구하여 예외를 보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일반 의학 관계자가 모두 같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식으로 체계를 갖춰 발전한다. 


동양 의학은 인식 탐구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하지 못했고 일반 의학은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인문 계열이 현재 서력 기원에서 본질적인 발전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보편성과 재현성이 없는 학문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개인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가치를 느끼는데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각자 본인들의 인식과 가치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싸우기만 할 뿐이다.



인식 탐구가 무엇인지 관문 효과(Gateway effect)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를 통해 알아보겠다. 


관문 효과는 습관성 또는 중독성이 있는 물질을 소비하면, 그 물질이 관문이 되어 더 강력한 물질을 갈구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대마를 하면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음주자와 흡연자는 술과 담배에 중독되더라도 마약을 찾지 않는 것을 볼 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는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는 정당성 유무. 인간은 정당한 결핍을 충족할 때 행복을 느낀다. 허기진 상태라는 결핍을 당연하게 여기면, 그 결핍을 충족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목졸린 상태라는 결핍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 결핍을 충족할 때 불행을 느낄 수 있다. 둘은 카테고리. 인간은 인식으로 판단하기에 다른 카테고리로 인식된 것은 별개로 느낀다. 본질적으로 술, 담배, 마약은 같은 향정신성 물질임에도, 술과 담배는 기호품으로 인식되고 마약은 마약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술과 담배를 하는 인간은 술과 담배가 마약의 관문이 되지 않는다.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마약을 탐구해보자. 마약은 인간의 결핍을 충족하여 행복을 부르는 물질이다. 인간의 기본 상태는 다양한 결핍으로 가득차서 그 결핍 상태를 충족하면 행복해한다. 배가 고플 때 식사를 하면 행복하고, 잠이 올 때 잠을 자면 행복하고, 배설을 하고 싶을 때 배설을 하면 행복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육체 내에 있는 수많은 자잘한 통증, 무게감, 등등이 인간을 피로하게 만든다. 마약은 뇌내 물질 분비를 유도하여 그 결핍을 잊게 하여 충족하게 한다. 그것으로 인간은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러면 일반 보통 상태가 굉장한 결핍 상태가 된다. 그 결핍 상태를 인간은 부당하게 느낀다. 그래서 같은 중독성을 가진 물질을 소비해도 그 결핍의 충족을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관문 효과가 나타난다. 더 강한 물질을 소비하여 결핍의 충족을 행복하다 느끼게 된다. 이것의 반복이 중독이 강한 물질에 의한 파멸이다.


술, 담배, 대마는 습관성과 중독성이 다른 마약에 비해 낮은 편이기에 결핍 상태를 그렇게 부당하다 느끼지 않는다. 그것을 자연스러운 결핍으로 느끼고 술, 담배, 대마를 마치 허기짐 충족으로 행복을 느끼듯이 되게 된다. 여기서 부당하다 느낀 인간은 관문 효과처럼 더욱 강한 물질을 찾게 된다. 그런데 술, 담배와 대마는 인간마다 카테고리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술, 담배는 기호품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더 강한 물질을 찾으면 알코올 도수가 높거나 니코틴 함유량이 높은 것을 찾거나 더 많이 마시고 피우게 되고, 대마를 마약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더 강한 물질을 찾으면 다른 마약을 찾게 된다. 대마를 기호품으로 인식할 경우에는 더 강한 대마 또는 대마를 많이 피우게 될 것이다. 이처럼 관문 효과는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반드시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도박 중독이나 범죄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현금 환급이 불가능한 도박을 하더라도 현금 환급이 가능한 도박에 빠지지 않는 것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 창작물을 즐기더라도 현실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인식 차이에 의한 카테고리 구분이 가능하므로 다른 카테고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인식 구분을 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인간은 카테고리 구분을 못하고 사건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현재 한국은 성이나 범죄에 관련된 창작물이 가능성을 명분으로 규제되는데, 이것은 소수의 정신 이상자의 범죄 가능성 때문에 다수의 일반인의 자유권을 침해한 부당한 규제와 검열에 해당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범죄가 확산된다는 주장이다. 깨진 유리창이 있는 곳에는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인식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쓰레기 더미가 모인 곳이 있으면 거기에 쓰레기를 버릴 지언정 인간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며 죽이지는 않는다. 깨진 유리창을 보고 약하다 인식되는 잘못은 쉽게 저지를 수 있지만, 강하다 인식되는 잘못은 쉽게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치안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범죄율이 낮은 곳에서는 깨진 유리창을 보고 쓰레기 투척이 일어날 수 있지만, 범죄율이 높은 곳에서는 깨진 유리창을 보고 절도가 일어날 수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도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드시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가 많은 것은 이 인식 변화에 의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치안 환경이 좋은 한국에서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가 많은 것은 성적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허용되는 것과 불허되는 것이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인식되면서 같은 카테고리에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관문 효과와 깨진 유리창 이론은 원리가 아닌 현상이다. 인식 탐구로 인식으로 보이는 현상을 이론으로 삼았다. 하늘 색을 파랑, 주황, 검정으로 보고 이론으로 삼은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조건이 맞으면 성립되고 조건이 맞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현상 자체를 이론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상이 발생할 때도 있고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때도 있게 되었다. 하늘 색이 주황이라 주장한 사람은 저녁이 되면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거봐 내 말이 맞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면 다른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아니 하늘 색은 검정색인데?” 


인식 탐구는 골치아프게 된다. 분명 현상은 존재하는데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보편성을 확립하지 못하여 이론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현상 자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관문 효과와 깨진 유리창 이론은 현상이 존재했으나 매번 발생하지는 않아서 없는 것이라 판단하고 내버려뒀더니 사회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렇다고 그 현상을 조건 고려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 전제해버리면 지나치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더해서 애초에 현상 자체가 없는 주장 또한 사실은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부르면서 미신과 같은 있지도 않은 현상이 실존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렇기에 존재 탐구를 해서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관문 효과는 결핍의 정당성 유무와 인식 차이에 따라 효과 유무가 결정되고, 깨진 유리창 원리는 인식 차이에 따라 효과 정도가 결정된다. 이런 식으로 파악되어야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게 된다.






2) 탐구 발전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하고 인문 계열은 인식 탐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연 계열이 인문 계열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의학 문외한이 동양 의학을 대신해 의료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동양 의학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랜 경험으로 본질적은 치료를 못하더라도 증상 완화는 할 수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자연 계열이 수많은 인간 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을 효과적으로 제시 할 수 있다 장담할 수 있는가? 자연 계열 또한 자연 계열 분야를 존재 탐구한 것이지 인문 계열 분야를 존재 탐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단지 존재 탐구 개념을 좀 더 빠르게 받아드릴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인문 계열이 해당 분야에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발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인문 계열은 후천적 존재 탐구를 해야 한다. 모든 개인의 존재를 탐구한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육체가 다르고 가공 상태도 달라 동일한 기준을 세울 수가 없다. 짐승의 경우 가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동일 종의 생활 양식을 탐구하기 상대적으로 쉽지만, 인간의 경우 가공이 크게 달라 동일 종의 생활 양식을 탐구하기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보편적인 것을 고려해 사회의 공통된 기준을 세운다. 그것이 바로 체제다.


과거 왕정은 집단주의 체제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집단 수장의 권리가 보장되는 체제였다면 현재 민주정은 개인주의 체제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다. 사회에 속한 인간은 사회에서 정한 체제를 기준으로 살아간다. 사회와 계약한 모든 개인은 그와 같은 생활 양식을 추구할 것이 절대적이게 된다. 그것은 육체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고 자동차에 맞는 연료를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하다. 다른 생활 양식을 바란다면 새로운 체제를 만들거나 가져와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여 체제를 바꾸면 된다. 이러면 이치는 두 가지가 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가 이치가 아니라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이치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와 사회 체제다. 인문 계열은 그것들을 탐구하여 이치로 삼은 논리를 주장하면 된다.



사회 체제마다 생활 양식이 다르다. 그 말은 체제가 다른 사회는 다른 생활 양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제가 다른 사회에 살던 인간은 체제에 맞게 재가공하지 않으면 사회에 어울릴 수 없다. 이는 이민 정책이나 해외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유럽 이민 정책의 실패는 이민자를 체제에 맞게 재가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아프가니스탄의 실패는 아프가니스탄 사회를 미국 체제에 맞게끔 재가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식 탐구 결과인 문화 상대주의에 의해 문명 차이가 명백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탓에 실패해버렸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존재임을 이해하고 체제가 다른 인간을 문명에 맞게끔 가공하는 것에 문제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강요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게 하면 된다.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려면 그에 맞는 재가공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면 된다.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를 넣으면 고장나는 것과 같이 체제에 맞지 않는 인간이 들어오면 사회가 고장난다. 이것은 사과를 손에서 놓으면 떨어진다는 단순한 인과와 다를 바 없다.


사회 체제를 존재 탐구할 때에는 해당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전부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탐구한 다음 그 탐구 결과를 사회 구성원과 공유하여 더 나은 가치를 체제로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체제로 정해진 가치는 체제 가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 지에 대해 탐구한다. 모든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모든 개인의 주권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모든 개인의 소유와 선택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 탐구하면서 정부의 정책과 제도를 체제에 맞게끔 만든다. 그렇게 하여 사회를 체제에 맞게끔 합리화한다. 


현재는 종교 가치에 의해 체제 가치가 훼손되면서 불합리한 사회가 되고 있다. 금욕주의, 이타주의와 그 외의 종교 가치. 그것으로 개인이 억압되고 희생되면서 체제 가치가 훼손되었다.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살면 어떻게 사회가 유지되냐고 물을 수 있다. 그것을 하는 것이 바로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를 하여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법, 정책, 제도를 통해 공정한 이익 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금욕주의를 근거로 타인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이타주의를 근거로 타인을 희생시키도 않고,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가치를 강요하게 하지도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의 권리를 보장 받고 싶으면 타인의 권리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을 살자고 약속했으면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3) 우주 탐구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방식으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해보도록 하겠다. 


우주의 본질.


우주는 미지에서 대폭발에 의한 우주 팽창으로 만들어져 현재 우주가 된 것이 아닌 정상 우주에서 대폭발과 대폭발에 의한 연쇄폭발로 현재 우주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정상 우주에서 전 우주에 고르게 물질과 에너지가 퍼져 있는 상태를 가정하자. 거기서 특정 조건에 의해 특정한 우주 공간에서 상상을 초월한 대폭발이 일어난다. 대폭발에 의해 물질과 에너지가 타면서 연쇄폭발이 일어난다. 연쇄폭발이 지속되면서 전 우주로 퍼져나간다. 우주의 중간 중간에 발생한 거대한 연쇄폭발은 이후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된다. 거대한 블랙홀은 흡수한 것을 배출하며 작아지고, 그 블랙홀의 중력을 중심으로 배출된 것과 잿더미된 것이 모여 은하가 되고, 은하가 모여 은하단이 되고, 은하단이 모여 초은하단이 된다. 연쇄폭발은 현재까지도 계속되면서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끝에 관측할 수 없는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하고, 그 블랙홀 너머는 연쇄폭발 중에 있다.


정상 우주에서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양자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정상 우주는 에너지 이동이 되지 않는 정적 세계와 에너지 이동이 되는 동적 세계로 양분되어 있었다.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는 법칙이 달랐다. 정적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파동인 반면 동적 세계에서는 파동이 입자화가 된다. 이것이 양자의 이중성과 상보성 원리다. 대폭발과 연쇄폭발 이전에는 열이 우주를 장악하지 않아 이러한 세계 구분이 뚜렷했다. 그러다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일어나면서 우주 대부분이 열에 의한 에너지 이동이 되는 것으로 동적 세계가 우주를 장악했다. 그러면서 거시 세계는 동적 세계의 법칙이 장악했고 미시 세계에 가서 에너지 이동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정적 세계의 법칙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폭발에 의해 주류 법칙과 비주류 법칙이 나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의 법칙 차이를 부르게 되었다. 거시 세계에 정적 세계의 법칙이 나타나려면 정적에 가까워지는 절대 영도에 가까워져야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우주는 대폭발과 연쇄폭발에 의해 동적 세계 법칙이 장악한 우주다. 현재 우주가 그 당시 폭발 영향권 내에 있다. 이것은 지구에서 폭탄으로 폭발을 일으킨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지구에서 폭발이 일어난 공간과 그 경계와 그렇지 않은 공간은 각각 적용되는 법칙이 다를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폭발 영향권인 거시 세계에 동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된다. 우주의 열기 자체가 폭발 영향이다. 폭발의 경계인 미시 세계에 양자 현상과 같이 정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매우 미세하면 폭발 영향권을 벗어나게 된다. 폭발과 무관한 영역인 세계에 온전한 정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된다. 에너지 이동이 없는 세계다.


지구에서는 폭탄의 폭발 영향력이 그리 오래 가지 않기 때문에 현재 우주가 폭발 영향권 내에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는 것을 가정하여 우주에서 폭발이 매우 길게 지속되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우주 전체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열 에너지 이동 현상 자체가 폭발의 영향으로 이해하면 된다. 생명은 에너지 이동으로 성립되므로 폭발 영향권에서 탄생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생명은 불꽃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다. 그 말은 즉 꺼지지 않는 불처럼 계속 태울 수 있으면 영원히 살 수도 있다.


동적 세계는 거시 세계에서 관측이 가능하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물체는 절대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국소성의 원리가 동적 세계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다. 열역학이나 엔트로피 등도 동적 세계의 법칙이라 본다. 정적 세계에서는 동적 세계의 존재인 인간과 관측 기구는 일반적으로는 직접 관측할 수 없다. 물질의 흔적이나 극저온 상태에서 간접 또는 조건부 관측이 가능할 뿐이다. 정적 세계의 법칙을 간접적으로 관측한 것이 양자 현상이다. 전자의 위치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불확정성 원리가 정적 세계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다. 양자 중첩, 양자 얽힘, 준입자, 초전도 등도 정적 세계의 법칙이라 본다.


위의 논리는 몇 가지 전제를 토대로 추론했다. 모든 현상은 물리적 이동을 기본으로 하여 물리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했다. 가공 이전의 상태를 떠올리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우주 또한 변화 이전의 상태를 떠올리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했다. 우주의 법칙은 인간의 인식과 무관함을 전제했다. 우주론은 반드시 양자 현상이 있어야 함을 전제했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임을 전제했다. 시간이 우주의 법칙이 아니므로 대폭발 영향이 아직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폭발에 의해 법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떠올렸다. 양자 현상이 어떤 간섭으로 성질이 바뀐다는 것을 전제했다. 상보성 원리를 고려하면 양자는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성질이 변했다. 양자 현상을 보니 온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졌다. 온도는 분자나 원자의 운동 에너지의 수량화. 이중슬릿 실험을 보면 관측할 때 성질이 바뀌었다. 그것은 즉 관측할 때 생기는 운동 에너지로 성질이 바뀌었다는 것임을 떠올렸다. 그것을 고려해 에너지 이동이 정적이다가 동적이 되었을 때 성질이 바뀐다고 판단했다. 현재 우주가 대폭발 영향 속에 있다는 것과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의 법칙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정상 우주에서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가 둘 다 있다가 대폭발과 연쇄폭발에 의해 동적 세계 법칙이 거시 세계를 지배하고 정적 세계의 법칙은 미시 세계에 가야 나타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글 자체는 그리 길지 않은데,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똑같이 생각한 것은 아닌데, 대체로는 비슷하다. 내가 아는 지식 안에서 논리적 모순은 찾지 못했다. 아마 정보를 좀 더 수집하면 좀 더 과감하고 정교한 발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 외 몇 가지 생각에 대해 써보겠다.


첫째, 중력. 중력은 현재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이라 한다. 그런데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게 아니라 물체가 공간에 작용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물체가 공간에 영향을 주고, 공간이 모든 물체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 즉 중력의 작용은 물체 자체가 아닌 물체가 있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암흑 물질과 에너지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면서 추론했다. 암흑 물질과 에너지는 관측 불가의 가능성과 상호 작용 불가의 가능성이 있다. 관측 불가의 가능성이라면 현재 지구에서도 암흑 물질과 에너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상호 작용 불가의 가능성이라면 지구에서도 상호 작용하지 못하여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암흑 물질은 우주 중력의 영향을 보고 추론한 존재라고 하는데, 전자기파와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과 같이 물질과 물질이 상호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 내에서 두 물체가 서로를 이끌리게 되려면, 물체끼리 이끌리는 것이 아닌 공간에 이끌리는 것이어야 성립이 된다. 중력이 빛을 흡수한다는 것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흡수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력에 의한 속도가 빛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하는데, 빛보다 강한 힘은 존재한다. 그걸 전제하여 우주 바깥에 연쇄폭발이 진행중이라 가정해보자. 그러면 은하 또는 그 이상의 폭발에 의해 상상을 초월한 블랙홀이 발생할 것이다. 그 거대한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가까운 은하를 끌어당길 것이다. 그것으로 거시 우주가 바깥으로 가고 있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력의 힘이 빛보다 강하기에 중력에 의한 이동이 빛보다 빠르게 이뤄질 수 있어 은하의 이동이 빛보다 빠르다 하더라도 우주 팽창의 확증은 될 수 없다고 본다. 거대한 블랙홀은 적색 편이로 존재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우주 배경 복사. 지구 근처의 우주 전체에 약 2.725K 복사와 유사한 전파 잡음이 관측되었다. 이것을 빅뱅 때 방출된 뜨거운 빛이 식어 파장이 긴 형태의 전파로 바뀐 우주 배경 복사라 주장했다고 한다. 이 관측에 의해 빅뱅 우주론이 주류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대폭발의 근거는 될 수 있어도 빅뱅의 근거라 확신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구에서 관측된 전파와 다른 은하에서 관측된 전파가 같을 거란 확증은 없는 상태다. 대폭발이 일어났지만 빅뱅과 같이 한점에서 폭발하여 우주가 팽창한 것이 아닌 정상 우주에서 대폭발과 연쇄폭발한 것으로 나타난 흔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온도가 균일한 까닭은 해당 흑체 복사 에너지 흡수에 한계가 있다고 가정하면 성립된다. 흑체가 100을 흡수할 수 있다면 200, 300, 400과 같이 천차만별의 연쇄폭발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주배경복사는 100이상이 될 수 없다. 그 폭발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폭발 온도가 비슷하게 되었다가 점점 낮아졌다면, 대폭발에 의한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는 균일하게 된다. 미세한 온도 요동은 우주에서 영향을 받아 생긴 오차 범위로 보면 된다.


셋째, 이중슬릿 실험. 이중슬릿에서 물질을 쏘았을 때 관측하지 않으면 정적인 상태로 물질이 파동성을 가지지만 관측하는 순간 관측 기구의 열에 의해 동적인 상태가 되어 물질이 입자성을 가지게 된다. 쏜 물질이 무언가 부딪치면 입자가 된다는데, 부딪치는 순간 에너지가 움직여 입자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 원자, 분자, 생체 분자까지도 이중슬릿 실험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마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다음 실험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질은 정적 세계 법칙에서 파동성을 가진다는데, 그게 일반적인 동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는 거시 세계의 파동성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양자 역학의 파동은 확률 개념이 더해진다고 했는데, 파동에 확률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파동과 비슷한 정적 세계의 알지 못했던 법칙일지도 모른다. 


넷째, 암흑 물질과 에너지. 수정 뉴턴 역학을 통해 암흑 물질과 에너지를 부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암흑 물질과 에너지는 존재한다고 본다. 관측 불가한 물질과 에너지가 없을 수가 없다. 전자기파와 상호 작용하지 않는 물질과 에너지도 있을 수 있다. 현재 예측한 우주 물질의 약 85%가 암흑 물질이고, 우주 에너지의 약 68%가 암흑 에너지라고 하는데 비율은 다를 수 있을 거라 본다. 절대 영도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거시 세계에서 양자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러면 많은 우주의 거시 세계에서 양자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양자 현상에 의해 계산 외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을 암흑 물질과 에너지로 추정했을지도 모른다. 전자기파로 관측하는 인간 입장에서 우주의 거시 세계에 있는 양자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측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지구에서 암흑 물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양자 현상은 미시 세계에서 파악이 가능한 상태. 암흑 물질과 에너지로 추정된 현상이 실제로는 양자 현상일 수 있다 본다.


다섯째, 은하와 은하단.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했다면 은하와 같은 물질 덩어리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 학자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인플레이션 우주론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우주가 팽창된 것이 아닌 대폭발과 연쇄폭발로 우주 물질이 불타버린 것이라면, 타고 남은 잔재에 의해 은하와 같은 물질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보면 된다. 오래된 은하들은 초기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은하 단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은하 중심에 초거대 블랙홀이 존재한다. 은하와 별 형성은 대폭발, 블랙홀, 물질 흡수, 블랙홀 축소, 물질 방출, 별 형성일 것 같다. 은하 단위의 대폭발로 블랙홀이 형성되었기에, 그 블랙홀을 중심으로 은하가 성립된다. 은하 내 별들은 블랙홀의 강한 중력으로 질서가 정해져 별 사이에 상호 작용이 적지만, 은하와 은하는 아직 질서가 정해지지 못하여 상호 작용이 많다.


여섯째, 적색 편이. 적색 편이는 파동의 진동 수가 줄어들고 청색 편이는 파동의 진동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지구에서 은하를 관측했을 때, 적색 편이가 보이면 멀어지는 것을 알 수 있고 청색 편이가 보이면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드로메다와 같은 일부 은하를 제외하고는 거시적으로 대부분 은하가 적색 편이인 상태다. 이것을 빅뱅에 의한 우주 팽창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되는 것이 아닌 은하가 이동되었다 하더라도 적색 편이는 성립된다. 대폭발과 연쇄폭발이 맞다면, 중심에서 바깥으로 폭발하는 방향에 의해 대부분 은하가 바깥으로 향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주 팽창이 아니기 때문에 청색 편이도 있는 것이라 본다.


일곱째, 우주 팽창. 빅뱅에 의한 우주 팽창이 작은 점이 그대로 팽창한 것이 현재 우주고, 계속 팽창해서 대부분 은하가 바깥으로 멀어지는 것이 적색 편이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팽창 개념은 공간만 팽창하고 물질은 그대로인 것과, 공간과 공간에 있는 물질도 같이 팽창하는 것이 있다. 공간만 팽창했다면 물질 분포가 균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물질도 같이 팽창한다는 것인데, 공간 팽창에 의한 물질 팽창 현상을 관측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현재 급팽창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장은 발견되지 못했다고 한다. 실험으로 관측할 수 없는 현상을 전제한 빅뱅을 전적으로 신용할 수는 없다고 본다. 대폭발과 연쇄폭발은 실험해볼 수 있다.


여덟째, 광속 불변의 원리. 솔직히 헷갈리고 있다. 인간이 관측하는 수단이 빛이니까 빛을 기준으로 관측하다보니 광속이 불변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만물 중 빛만 특별하다는 것이 이상한 것 같다. 인간이 빛으로 보니까 빛이 특별했던 것 같다. 광속이 불변했던 것이 단순히 관측 기준이었기 때문이었다면, 광속보다 빠른 게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정적 세계에서의 빛의 속도를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럴 경우 우주에서 정적 세계를 지나칠 때에 빛은 어떤 속도로 지나치는지 모를 것 같다. 절대 영도를 구현할 수 없다고 하는데, 만약 실존한다면 광자가 얼 것인가? 만약 얼었다면 우주 관측 시 빛을 내지 않는 행성으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빛이 얼어서 관측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빛이 얼어서 양자 현상이 발생할 수가 있는가? 빛 알갱이 하나는 양자 현상이 발생하는데 대량의 빛은 얼어야 가능할까? 대량의 빛이 얼어서 양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관측이 될 것인가?


아홉째,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 종교 가치로 가공된 인간이 종교 가치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그것을 벗어난 생각을 하기 어려웠듯이 동적 세계의 존재인 인간이 동적 세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그것을 벗어난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인간은 동적 세계의 존재, 인간이 상식처럼 알고 있는 순차적 이동조차도 정적 세계에서는 다르다. 인간은 n 온도~n 온도를 가리키는 운동 에너지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특정 운동 에너지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의 법칙이 달라 대통일 이론을 완성하려면 관측할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열째, 초전도체. 초전도체는 외부는 동적 세계 법칙이 적용되고 내부는 정적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거시 세계에서 초전도 현상과 같은 양자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물체인 것 같다. 그렇기에 절대 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이 아니어도 초전도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이렇게 세계 분리가 가능한 특정 물질에서만 초전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상온에서도 세계 분리가 가능한 물질이 있다면 양자 현상을 상온에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부는 저항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저항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입자인 전자가 파동과 비슷한 형태로 바뀐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초전도체에서 벗어나면 다시 입자인 전자로 돌아와 작동한다. 양자의 파동은 확률이 포함된다는데, 전류는 확률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


시간은 지각 순서이므로 광속을 넘든 말든 미래로 가거나 과거로 가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거시공동은 3천만 광년 ~ 3억 광년 정도 크기의 초거대 무공간을 말하는데, 타거나 상호 작용할 물질이 없거나 적어 연쇄폭발이 일어나지 못하거나 적었던 공간이 아닐까 싶다.


열역학 법칙이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가 달랐던 것은 열역학 법칙 자체가 열이 존재해야 성립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나이는 시간 개념의 일종이므로 시간 법칙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성립되기 때문에 인간이 생각하는 우주 나이는 성립되지 못한다. 우주는 단순히 이동할 뿐이다.


대폭발과 연쇄폭발 이전의 우주에 어쩌면 다른 문명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위의 탐구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라면 시간과 차원은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 심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인간의 지각 순서다. 시간 개념이 원시 시대부터 있던 개념임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 영혼이란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한 것과 같이 인간의 지각 순서의 본질이 시간이란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한 것이다. 시간은 지각 순서기 때문에 지각을 느리게 하면 시간이 느려진다 착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실험실에서 피험자의 감각을 청각 외에 차단한 다음, 피험자를 제외한 공간의 시간을 느리게 해보겠다고 전달해보자. 그 다음 노래를 들려주고, 그 노래를 천천히 느리게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피험자는 노래가 느려졌다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느려졌다 생각할 것인가? 시간을 우주의 법칙으로 믿는다면 시간이 느려졌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각도 동일하게 실험해볼 수 있다.


상대성 원리와 같이 시간을 전제한 법칙이 있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지각 순서를 전제했거나 시공간 중에 공간에만 작용하는 것이다. 어떤 현상에 의해 관측 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인간의 지각 속도가 느려진 것을 보고  시간이 느려졌다 여길 뿐이다.  2010년 초정밀 원자 시계 두 대를 이용하여 시간 지연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하나는 실험실 바닥, 하나는 실험실 바닥에서 약 33cm 높은 곳에 두고 시간 진행 방향에 차이가 생기는지 측정했다고 한다. 그러자 약 33cm 높이의 시계가 실험실 바닥의 시계보다 약 10경분의 4정도 빨리 흘러갔다고 한다. 이걸 보고 시간 지연이 발생한 것이라 말하는데, 그냥 원자 속도가 빠르게 흘러간 것이다. 속도가 중력에 영향을 받으므로 고도가 다르니 중력 차이에 의해 원자 속도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은 물체에서 반사되는 전자기파를 지각하는 속도가 느려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주에 시간이 존재한 것을 관측한 것이 아니라, 우주가 이동하는 것을 관측한 순서를 시간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구에 인간이 있다 하여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듯이, 인간이 관측했다 하여 인간 뇌내의 개념이 우주의 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차원은 인간의 관점이다. 0차원은 점으로 보는 관점, 1차원은 선으로 보는 관점, 2차원은 면으로 보는 관점, 3차원은 공간으로 보는 관점, 4차원은 인간의 지각 순서를 더한 관점. 인간이 만든 개념을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하고는 4차원 이상의 다차원을 구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성립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에테르를 물리학계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이제는 시간과 차원을 우주의 법칙으로 전제한 것도 추방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가공되기 전의 상태를 인식하기 어려운 인간 특성상, 시간과 차원과 같은 개념을 뇌내 개념으로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 심리에 속한 것으로 자아를 존재 탐구를 해야 파악이 가능하다.


인문 계열 고전 철학에서는 뇌내 개념을 마치 우주의 법칙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신, 사후 세계, 환생, 저승 등과 같이 말이다. 일부 불가지론자는 죽기 전에 파스칼의 도박에 영향을 받아 신의 존재를 믿었다고 한다. 이 세상이 신의 창조나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는 창시 당시 지식에서 벗어난 가르침을 말한 적이 없고 시뮬레이션은 주장 당시 지식은 우주 전체를 파악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이 주장한 신이나 시뮬레이션일 확률은 없다. 

 

인간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사후 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절대적인 선과 악을 전제한 천국과 지옥은 성립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의 육체가 다르다는 것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로 증명하였고, 그에 따라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누군가 지옥에 가게 될 것이 걱정되어 가치의 절대성을 신앙한다면, 사후에 내가 모든 죄를 짊어지겠으니 그런 걱정에서 해방되길 바라겠다. 종교가 주장한 사후 세계는 없고 가치의 절대성은 성립될 수 없으므로 부담은 없다.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방식으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해보았다. 하나만 깊게 파는 과학자보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사상가가 통찰은 좀 더 수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연 계열 과학자가 증명한 것을 모아 합리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흔히 학문은 본인 분야만 안다거나, 특정 과학자가 각고의 탐구 끝에 인간이 증명한 학문에서 약간의 변화만 준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 내에서 탐구할 때에 주로 적용된다. 학문은 사상, 철학, 과학 순으로 범위가 달라지는데, 사상에 가까울수록 넓고 얕게 보고 과학에 가까울수록 깊고 좁게 본다. 자연 계열 과학자는 분야의 개념뿐만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 세부적인 것까지 전부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세부적인 것까지 다 알아야 그 분야를 알았다는 고정 관념으로 과학 전체를 알 수 없다는 인식이 있는데, 큰 개념만 파악하면 전체를 아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파악하여 합리적으로 정리하면 큰 변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자연 계열은 기본적으로 존재 탐구를 하나 인간인 이상 한계가 존재한다. 자연 계열의 과학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문 계열의 학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라 생각한다. 그것에 의해 인간 심리는 자연 계열 과학자도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었다 본다. 그 때문에 인간 심리는 자연 계열에서조차 인식 탐구를 할 때가 있었다. 






4) 사회 탐구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는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해보겠다.


사회 문제의 본질.


문명이 없던 원시 시대부터 고려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던 시기, 지각을 자각하여 인식 개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손익, 변화, 존재, 죽음, 감각, 결핍을 지각하면서 가치, 시간, 영혼, 도덕, 감정, 행복이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 개념이 가공되면서 문화가 나타난다. 그런 원시 문화에서 종교에 의해 특정 가치가 사회를 장악한다.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과 같이 토속 신앙이 나타나 사회를 장악한다. 이런 신비 종교 가치의 사회 장악은 다신교·유일신교와 같이 나뉘거나 학문 종교 등으로 이어갔다.


종교 가치 중에서 지배자의 지배에 적합한 종교 가치가 사회 선택을 받아 살아남게 되었다. 윤리를 통해 사회 구성원이 사회 구조와 질서를 파괴하지 못하게 하고, 신비를 통해 사회 구성원이 현실 도피를 하여 죽지 않도록 했다. 그러면서 종교 가치는 절대적이게 되었다. 종교 가치를 옳다 여기는 것은 단순히 종교 가치가 사회를 장악했었기 때문이다. 종교 가치인 윤리는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단순히 누군가 좋아하는 가치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과학 혁명을 통해 문명 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종교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기 이전의 사회를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이것으로 종교 가치의 절대성에 의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 나타나게 된다. 그 여파로 인간 심리에 속하는 시간, 영혼, 차원 등과 같은 뇌내 개념을 우주의 법칙으로 착각하기도 하게 되었다.


종교 가치가 사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본인의 권리만 주장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자유주의 혁명이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등과 같은 종교 가치가 장악한 사회에서 다수의 개인이 과학 혁명을 통해 힘을 쥐자, 그 힘을 토대로 종교 가치에 의해 부정되어 왔던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라는 정반대의 가치가 자유주의 혁명을 통해 대두된 것이다. 그러면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던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충돌한다. 이것이 현대 문명의 가치 충돌이다.


가치 충돌에 의해 저출산, 고자살, 다양한 차별, 억압과 희생과 가치 강요, 사회와 경제 활동 둔화, 전체주의와 담합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알지 못하여 사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치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새로 태어나는 인간을 가공할 때에는 체제 가치로 가공했어야 했는데, 종교 가치로 가공했다. 종교 가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대부분 연령대에 연령별 의무가 있기 마련이다. 교육은 그 연령별 의무를 전제하고 체제, 성애, 생산 등을 제대로 가르치기는커녕 막기만 했다. 그런데 사회는 체제 가치에 의해 연령별 의무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면서 신세대는 사회 체제와 인간 성애와 가치 생산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부정적으로 보며 성장하게 된다. 


그에 의해 사회 체제를 모르고 이성애와 결혼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가치 생산을 꺼려하는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가 현재 대부분 한국 사회 문제다. 이성애를 배운 적이 없어 출산조차도 애정이 아닌 물질적 손익 계산 대상이 되었다. 대리모도 아니고 출산을 거래 수단으로 인식하다니 놀라울 정도로 애정이 없다. 결핍을 부당하게 느끼면 결핍을 충족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출산이란 결핍을 부당하게 느끼니까 아이를 낳아 결핍이 충족되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성애를 부정적으로 배워 사랑이 없으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발정하는 인간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그들 모두가 성애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본인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기성 세대는 연령별 의무로 사회 체제에 적응하고 결혼과 출산을 하고 일을 했었기 때문에 신세대에게 그걸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이유를 본인들도 몰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개인주의 체제는 있었던 적이 없는 체제기 때문에 학문이 발전하지 않는 한 모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학문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체제를 모르기에 종교 가치를 강요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 미숙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사회 미숙 현상이 보편적인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된다. 이런 가치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는 단순히 한국이나 일부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전 세계가 체제 가치를 공유하면서 전 세계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 문제의 본질은 상당히 오랜 시간 걸쳐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전제에 의해 결론이 나온 것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 문제는 개인 문제가 아님을 전제로 하여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이치로 삼아 자아, 종교 가치, 체제 가치, 가치 충돌, 존재의 절대성, 가치의 상대성 등을 논리적으로 탐구하면서 사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 것 같다. 앞으로 인문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하여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고, 목소리 큰 인간의 비논리적인 주장만 수용하면서 사회가 불합리하게 되는 것도 막을 수 있게 된다.



사상 시작을 2016년 말 역할주의를 작성했던 시기로 정하고, 사상가 시작은 2022년 말 사회와 복지를 작성했던 시기로 정하겠다. 사상 시작한지 약 7년, 사상가 시작한지 약 1년만에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 앞으로 약 5년 안에 현대 과학을 따라잡겠다. 약 10년 안에 인공 자아 일반화, 약 20년 안에 인류 불로불사, 약 10000년 안에 우주의 존재 이유 증명. 일단 목적은 이렇다.






2.4 학문 변화


1) 체제 변화


문명 사회의 변화는 보통 문명을 만든 학문의 변화로 일어난다. 학문이 변화한 것을 사회에서 힘을 가진 인간이 수용하면서 문명 사회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으로 사회가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다. 현재 인류에게 닥친 커다란 세 가지 변화인 체제 변화, 기술 변화, 환경 변화도 학문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체제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개인주의 체제로의 변화의 본질은 주권의 이동이다. 왕정 체제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로 소수만 주권이 있었다면, 민주정 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로 모두에게 주권이 있다. 이것으로 왕정과 민주정은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도 민주주의의 주권에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모든 개인의 자유는 민주주의로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보장되면서 자유에 관련된 권리도 고르게 보장되면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유의 수단 중 하나인 지배와 복종이 체제 훼손이 되어 허용되지 못하게 된다. 


모든 개인이 주권을 보장받았음에도 경제적 자유는 다른 이유는 시장이란 공정한 제도에서 이익을 추구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다른 성적이 나왔다고 하여 스포츠 참여에 관한 자유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하듯이, 모든 개인은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공정한 시장에서 이익을 추구하면 자유권이 보장되게 된다. 모든 주권자에게 그 자유를 보장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패가 나뉜다 하더라도 선수가 서로를 존중하듯이, 사회 경쟁에서 승패가 나뉘거나 경제적 차이가 있다 해도 개인은 서로를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당한 사회적 평등과 정당한 경제적 차별이다. 경기와 시장에서 정당한 평등과 차별이 결정되는 만큼, 경기와 시장에서 공정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선수의 권리가 된다면 경기를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복지가 지원되어야 하듯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주권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되면서 시장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복지가 주어지게 된다. 


체제 변화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타났다. 그런데 인문 계열의 인식 탐구 결과에 의해 개인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게 정의되면서 그 범위가 굉장히 넓게 되었다. 그래서 보수를 지칭하는 우파와 진보를 지칭하는 좌파가 무엇인지 정확히 대답하는 인간이 드물게 되었다. 우파의 본질은 기득권 유지고 좌파의 본질은 계급 투쟁이다. 자유와 권위가 각자 성질이 다름에도 기득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우파로 지정되기도 하는가 하면 평등과 무정부가 각자 성질이 다름에도 기득권에 맞서 투쟁하는 것에 속한다는 이유로 좌파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는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뉘게 된다.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자본가와 노동자, 원주민과 이주민 등과 같이 된다. 단순히 기득권이라 현상 유지를 바라는 것으로 보수가 되고, 비기득권이라 현상 변화를 바라는 것으로 진보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학문과 관계 없이 단순한 이권 다툼이 되어버린다. 우파는 기득권 이익이 되는 것은 무조건 옹호하고 좌파는 비기득권 이익이 되는 것은 무조건 옹호한다. 그러면서 사회가 불합리하게 된다. 종교 가치나 체제 가치로 이권 추구를 정당화하기도 하면서 가치 충돌은 더욱 더 심각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래 인류 문명은 왕정 체제에서 민주정 체제로 가면서 주권이 이동하는 것으로 진보했다. 그런데 인류는 민주정 체제 맞는 질서가 없었다. 종교 가치에 자유 조건이 들어가면서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지배하듯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했다. 그것을 보고 특정 사상가와 철학자는 종교 가치에 강제 조건이 들어가는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종교 가치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모든 개인에게 강요하면서 집단 평등을 이루는 것이 모든 인간을 위한 길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왕정 체제와 본질이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왕정 체제와 같이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집단 수장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었다. 그것이 현재 공산정 국가다. 사회주의는 종교 가치로 만들어진 공동체 사상이고 공산주의는 종교를 비판하면서 종교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학을 자칭하면서 인식 탐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의 한계에 속하는 사상일 뿐이다. 주권 이동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갔다가 이 사상들에 의해 개인에서 집단으로 가는 것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퇴보하게 되었다. 그 퇴보가 우파와 좌파의 가치 충돌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체제를 기준으로 체제를 중세와 근대와 현대로 구분해보겠다. 중세 국가는 왕정 체제에 종교 가치 질서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나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전근대적이다. 근대 국가는 민주정 체제에 종교 가치 질서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상당한 혼란을 부르나 체제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어 근대적이다. 현대 국가는 민주정 체제에 체제 가치 질서다. 종교 가치가 인류 문명을 장악했었기 때문에 현대 국가에 도달한 국가는 없지만 근접한 국가는 있다. 공산정 국가는 공산 체제에 종교 가치 질서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나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전근대적이다. 제대로 된 공산정 국가는 북한 말고 없고, 대부분 시장 경제를 도입하면서 근대 국가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근대 국가로 넘어간 공산정 국가조차도 가치 충돌에 의한 혼란이 발생 중에 있다. 


인류 체제의 보수와 진보는 진영의 이권 쟁탈이 아닌 주권 이동 방향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할수록 진보적이다. 학문은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하고 질서는 존재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앞으로 인류는 체제와 질서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학적인 탐구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질서를 갖춘 현대 국가로 진보해야 한다..






2) 기술 변화


기술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디지털 기술로의 변화의 본질은 모방의 정점이다. 본래 인류는 자연을 모방하면서 발전했다. 하늘을 보고 산을 보고 강을 보며 필요한 것을 발상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 모방 중 가장 체계적인 모방이 바로 수학이다. [수학: 1. 수량 및 공간의 성질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수학은 만물을 자연수로 세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자연수: 1. 1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더하여 얻는 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 1,2,3 따위이다.] 


수학은 우주의 법칙인 자연수를 기초로 하여 체계를 갖춰 다양한 개념들을 만들어갔다. 모든 개념은 후천적이나 수학 내에서 자연수가 선천적이라면 그 외 모든 법칙은 후천적이다. 블록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양한 블록 부품은 블록 세계의 법칙에 속하지만 블록 부품을 가지고 어떤 형태의 블록을 만들든 그것이 블록 세계의 법칙은 아니다. 자연수를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한 것부터 시작해 모든 수학 법칙은 우주의 법칙인 자연수를 계산하는 방식이지 우주의 법칙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낮은 가치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높은 가치다. 인간이 우주를 수로 계산하여 모방한 것이다. 블록 부품을 쌓아 사물을 모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수를 계산하여 우주를 모방했다. 그것으로 자연 계열의 기초 과학은 수로 계산하여 실존하는 우주를 존재 탐구하면서 자연수와 같은 선천적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런 모방 중 정점이 바로 후천적 존재 탐구 결과인 디지털 기술이다. 단순한 모방을 넘어 가상에 우주를 모방한 세계를 구현할 수 있었다.


가상에 모방한 세계를 만들면서 디지털 기술은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하나, 우주의 모방. 모든 것을 모방하여 디지털화를 할 수가 있다. 영상이나 소리의 디지털화는 지나치게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길 정도다. 둘, 인식과 가치의 거리 축소. 디지털 기술 내에서 전 세계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판단한다. 그러면서 인류가 통합되고 있다. 셋, 가상의 자유. 디지털 기술 내에서 모든 것이 자유롭게 무제한으로 복제가 가능하고 해킹도 가능하다. 무단 복제나 해킹 등의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우주의 모방. 우주의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고, 모방한 것을 다시 우주에서 재현할 수 있다. 인류와 세상을 모방하여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 현실을 즐기고 디지털 자아를 통해 불로불사가 가능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그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가상 현실을 현실로 구현하고 디지털 자아를 현실의 새로운 육체에 이식할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현실과 가상을 오가더라도 기억을 통해 같은 자아 존재가 된다. 디지털은 현실을 그대로 구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수학에서 자연수는 우주의 법칙이다. 현실에 있는 물질을 기본 입자까지 세서 구현하면 아주 작은 오차를 제외하면 가상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정적 세계와 동적 세계는 법칙이 다르지만, 인간은 동적 세계의 존재이므로 순차적이기 때문에 자연수로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인식과 가치의 거리 축소. 인식과 가치의 거리가 축소되면서 인식과 가치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류가 하나로 통합되어가고 있다. 그에 따라 인류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도 통합되어가고 있다. 본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발생했을 가치 충돌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은 디지털 기술에 의한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인류가 가치 충돌의 혼란 속에 있다. 개인 방송이나 짧은 영상으로 전 세계가 비슷한 유행이 퍼지면서 유행에 의한 사회 문제도 공유되게 된다.


셋째, 가상의 자유. 가상에서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현실에서 물건은 무한 복제가 불가능하지만 가상에서는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그것으로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위반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는 현실 경제 원리를 디지털에 그대로 적용한 것에 의한 폐해다. 그 외에 해킹 등의 문제가 있다. 가상에서는 온갖 자유가 보장되어 AI를 악용하는 것으로 온갖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AI를 규제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AI 발전을 막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사회 혼란보다 현실에 닥친 환경 문제가 더 심각하다.






3) 환경 변화


환경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지구 환경의 변화의 본질은 자연 선택과 사회 선택이다. 지구 환경의 변화는 인간이 없더라도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다. 거기에 인간이 사회 발전을 위해 기술 발전을 하면서 자연에 매우 큰 영향을 주면서 환경 변화가 가속되었다. 환경 변화로 자연에 적응해야 생존하는 자연 선택이 일반적인 상태에서 기술 변화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에도 적응해야 생존하게 되는 것으로 자연 선택과 사회 선택이 일어나게 되었다.


자연과 사회에 모두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적응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 육체가 생존하기 적합한 환경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인간이 적응한다고 해서 어떻게 될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연을 조작해야 한다. 환경 보호는 생태계 보호가 생태계 조작인 것과 같이 실상 자연 조작에 해당한다. 자연을 조작해서 인간이 생존하기 적합한 자연 환경을 만든다. 


자연 조작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존재 유지의 절대성에 따라 지구에 살고자 하는 모든 존재에 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있기 위해 육체 유지 활동이 강제적이듯, 사회와 체제가 살아있기 위해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 활동이 강제적이듯, 지구 환경에서 인류가 살아있기 위해 지구 환경 보호 유지 활동이 강제적이게 된다. 


자연 조작의 목적은 절대적이지만 수단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수단은 강제적이지 않다. 자연 조작을 하는 이유가 인류 생존인데, 인류를 죽게 하는 수단을 쓸 수는 없다. 많은 곳에서 환경 보호 주장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까닭은, 환경 보호 목적이 사리사욕 추구거나 환경 보호 수단이 인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환경 보호의 본질이 자연 조작인만큼 날씨와 태풍을 제어하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방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호응이 낮은 것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자연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 발전을 이뤄야 한다. 탄소 포집 기술이 유망한 자연 조작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것만으로는 사실 부족하다. 그것은 현재 인류가 기술 발전을 하면서 환경을 변화시킨 것을 약간 조작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는 자연과 사회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현재 그걸 위한 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AI다. 기술이 발전하려면 많은 반복 실험이 필요한데, AI는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 현재 AI가 지금까지 인간의 발상 내에서만 발상하는 기억 발상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창의 발상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현재 자연을 조작할 수준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면 AI말고는 마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인류만으로도 충분히 자연 조작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 발전이 가능할 수 있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러므로 현재 인류가 집중해야 할 것은 AI발전. 자연 계열은 AI를 총력을 다해 발전시켜야 하고, 인문 계열은 AI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총력을 다해 해결해야 한다.

 





4) 변화 적응


인류는 체제와 기술과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만 체제부터 적응을 하지 못했다. 체제 적응은 과거 자유 혁명 시대에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질서가 도입되면서 했어야 했다. 그러나 종교 가치에 의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나타나면서 인류는 체제 적응에 실패하게 되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 체제를 마차로 비유하고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 체제를 자동차로 비유해보겠다. 현재 가치 충돌은 자동차를 마차 타듯이 타는 것으로 일어난다.


“자동차에는 기름을 넣고 직접 운전해야 해. 왜 말이 필요한 것과 같이 간섭하고 억압하는거야.” “주유구에는 기름이 필요한 거야. 그게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해서 당근 주스 넣지 말아줘. 그러면 차가 가질 않아.” “타이어가 친환경적이지 못하다고 때서 마차 바퀴로 바꾸려고 하지 말아줘. 사고 난단 말이야.” “아니 이제 말은 필요 없어. 자동차 운전수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제대로 가지도 못한다고 해서 말을 가져오지 말아줘. 그러면 계속 말에 의존하게 되면서 잘 못가잖아.” “이제는 말을 다루는 법이 아닌 자동차를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해.” 마차 부품은 필요 없으니까 버리거나 정 아까우면 트렁크에 실어줘.” “마차를 유지하고 마차가 가는 방법은 이제 자동차를 유지하고 자동차가 가는 방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 마차가 가는 방식으로 자동차가 가지 않아. 마차 다루듯이 자동차를 다루면 자동차가 망가진단 말이야.”


종교 가치를 근거로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 욕망이 나쁘다고 막은 것은 환경 파괴적인 기름이 나쁘다고 막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별 다른 게 아니다. 욕망은 인간의 동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동차로 보면 기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 막아버리니 인간의 연료가 없어 멈춰버린다. 미성년 시기에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성장을 보호하겠다면서 막는 것은 운전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것을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미성년이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데 해로울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몰라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사고를 치고 있다. 이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는 직접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스스로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데 위험하단 이유로 아예 배우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어떻게 운전해야 할 지를 몰라 방향도 결정하지 못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여 사고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절대적으로 옳은 윤리를 행했으니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자동차 주유구에 환경 친화적인 당근 주스 넣고서 왜 자동차가 가지 않느냐며 불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에도, 그것을 모른다. 안다 해도 인정하기가 어렵다. 당근 주스 넣어보고 안되면 자동차 바퀴를 마차 바퀴로 바꿔본다. 그래도 안 되면 차 내부를 나무로 교체해본다. 그러면서 망가진다.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다 망가지듯 개인주의 체제를 집단주의 체제처럼 다루다 망가졌다. 그 망가진 증상이 사회 문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 디지털 기술, 지구 환경과 같은 중요한 것을 빠르게 적응할수록 사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인문 계열이 진보하지 못해 개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겪은 사회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한국인은 이미 분단을 통해 알고 있다. 한국 민족의 분단의 본질적인 원인은 인문 계열이 진보하지 못한 것에 있다. 그랬기 때문에 공산주의 따위가 세계에 유행했고, 그 때문에 그것이 조선에도 유행하여 조선 왕조와도 같은 체제가 북한에 자리잡은 것이다. 한국 이념 전쟁, 베트남 이념 전쟁 등과 같은 비극도 그 때문이고 양안전쟁에 대한 걱정도 그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PC주의와 여성주의도 그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만 해도 이만한 사회 문제가 있었다. 디지털 기술과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이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헉슬리와 오웰은 멋진 신세계와 1984를 통해 디스토피아를 표현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 탐구와 존재 질서로의 진보를 고려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 물론 진보하지 않으면 정말 그런 디스토피아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학문은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하고 질서는 존재 질서로 진보해야 한다. 쉽지 않아도 할 수 있다면 과거 과학 혁명으로 급속도로 발전한 국가와 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인류가 자연 계열에서 경험했다.



체제에 적응하여 체제에 합당한 생활 양식인 체제 합리를 이뤄야 한다. 체제 불합리 사회는 정상 작동하지 않은 육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육체로 제대로 살 수나 있겠는가? 체제 불합리 사회에서 인간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체제 합리와 체제 불합리에 대해 중국과 영국 두 가지 사례로 이해해보도록 하겠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을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하고 그것이 준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문화 대혁명: 1. 1966년에 중국에서 시작한, 대규모 사상 · 정치 투쟁의 성격을 띤 권력 투쟁.] 중국이 스스로 중국의 문화를 파괴함으로써 어리석은 짓으로 여겨지는 사건이다. 실제로 어리석은 사건은 맞다. 그러나 그럼에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유사 과학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인문 계열까지 대부분 파괴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박물관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밀어버린 탓에 부작용이 많았지만 그게 없었다면 성장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그렇게 다 밀어버렸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흑묘 백묘 운운하면서 선진국의 문명으로 채우면서 과거 가치와 적은 마찰로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문화 대혁명을 거치지 않아 종교 가치가 많이 남아있었다면, 종교 가치에 의해 발전이 좌초되는 일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중국은 여유가 생겨서인지 이제서야 과거의 종교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회 온갖 곳에서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중국은 질서가 아닌 체제 자체에서 가치 충돌이 발생하여 더욱 심각한 상태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산주의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장주의가 어울릴 리가 없지 않는가. 당연히 파탄난다. 최근 들어 중국이 혼란스러운 것은 애초에 공존할 수 없는 체제를 둘 다 쓰니까 그렇다. 공산주의를 포기하자니 권력을 잃을 수 있고 시장주의를 포기하자니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 지금 중국은 체제 합리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영국은 영국 왕실 유지로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것에 의해 입헌 군주제 유지가 영국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분석하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입헌 군주제: 1. 군주가 헌법에서 정한 제한된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는 정치 체제.] 민주정 체제에서 남은 왕실이 왕정 체제를 상징하면서 종교 가치는 물론이고 왕정 체제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 이런 것이 체제 불합리다. 왕실의 경제 효과는 매년 약 3조원이고 그 외에 다방면에 이익이 있으나, 국내 총생산이 3천조원이 넘는 영국에서 체제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이익이 아니다. 


이는 다른 민주정 체제의 왕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익이 있든 한 국가의 체제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이익이 될 수는 없다. 당장은 왕실로 국가 이익이 큰 곳이 있을 수 있으나 지속되면 될수록 체제 합리를 이룬 민주정 체제인 국가에 밀리게 되게 될 것이다. 산업 혁명을 일으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쇠락은 체제 불합리에 의한 것이다. 체제 불합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수준으로 의미없는 짓이다. 얼마나 돈을 써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보다 왕실 이익을 포기하고 체제 합리를 추구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 된다.


손해를 봤지만 체제 합리로 성장했던 과거 중국과 이익을 얻지만 체제 불합리로 성장이 더뎌진 현재 영국을 보고 체제 합리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2.5 학문 발상


1) 발상 종류


사상을 시작하면서 본질을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존재 탐구를 했던 모양이다. 발상 종류와 몇 가지 발상을 써보겠다. [발상: 1. 어떤 생각을 해냄. 또는 그 생각.]


발상은 생각을 해냄을 의미하는데,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아는 것을 발상하면 기억 발상이 되고 모르는 것을 발상하면 창의 발상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 유무와 무관하게 자아의 의식 의지가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기억 발상과 창의 발상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창의 발상도 연습이 가능하다. 그냥 당장 모르는 것을 발상하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기억을 떠올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이치를 기초로 삼아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그것이 창의 발상이다.


창의 발상 종류는 난이도에 따라 달라진다. 학문 발상은 문명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발상이 필요하여 난이도가 높은 편이고, 상업 발상은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발상이 필요하여 난이도가 중간인 편이고, 일상 발상은 일상에서 개인의 판단이 필요할 때 발상이 필요하여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학문과 상업과 일상에 필요한 최적화가 달라 각각 전문성이 다를 수 있다.






2) 사상 발상


첫째, 생존주의.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사상이다. 인간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먹고 자고 싸는 활동에 강제력이 있듯이 사회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복지에 강제력이 있다 보고, 그런 복지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복지의 효율적인 방식에 대해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존주의라는 사상이 떠올랐다.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위한 강제력에 대한 합리적 기준이 정립되면 그것 외에는 사회와 체제 구조와 관련이 없으므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본 것이다. 그것을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라 이름 지었다. 그러다 존재가 절대적이고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을 깨닫고 절대적 존재 탐구에 관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자연 계열의 탐구가 절대적 존재 탐구임을 파악하고 인문 계열의 탐구가 상대적 인식과 가치 탐구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인문 계열 또한 절대적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고 보았다.


둘째, 역할주의. 역할 수행 게임을 하면서 떠올린 사상이다. 현실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했지만 가상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를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모르니까 선입견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연령, 성별, 인종 등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로지 게임 내 역할 수행 여부만 보고 칭찬하고 비판했다. 그것을 통해 발상한 사상이 역할주의다. 가상에서 그랬듯이 현실에서도 인간의 성질을 무시하고 역할 수행 여부만 보면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 보았다. 실제로 그랬다. 서로가 관계되는 역할에 관한 수행 여부만 보면 서로를 부당하게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가치 생산에 있어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가치 생산에 대한 역할만 잘 수행하면 되었다. 거기에서 가치 생산 기여도에 따라 금전적 이익을 달리 얻으면 될 뿐이었다. 그렇게 상대방과 관계되는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면 서로의 개성이 존중될 수 있었다.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아무래도 좋다. 역할과 무관한 개성은 신경쓰지 않으면서 각각 개인의 개성은 존중될 수 있었다. 평등이란 모든 인류가 친구와도 같은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계급이나 서열이나 권위가 없어야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물을 수 있는데, 그걸 성립시키는 것이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마냥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걸 성립시킬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해야 한다. 나는 그 방법을 역할주의로 주장했다.그것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부를 거라 보았다.  


셋째, 탐구주의. 나의 탐구 방식을 정리한 사상이다. 지식 생산자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탐구하거나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은 탐구하는 것으로 나뉜다. 통상 전자는 사상과 철학에 속하고 후자는 철학과 과학에 속한다. 사상은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철학은 학문에 속하나 구체적이지 않고 과학은 학문에 속하면서 구체적이다. 절대적 존재 탐구 방식에 따라 본인의 상대적 인식을 버리고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로 창의 발상한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성립시킨다. 그리고 탐구 결과가 나오면 탐구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접하여 본인의 탐구 결과와 비교하면서 각각의 오류를 파악하여 수정한다. 그 후에 다시 탐구한다. 그러면서 탐구 대상의 본질을 파악한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탐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거라 보았다. 






3) 제도 발상


첫째, 역할 민주주의 제도. 역할주의 사상에서 파생한 제도다. 입법권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선출의 기준을 지역이 아닌 분야로 정하는 제도다. 현재 민주주의는 지역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로 지역의 대표로 선출되기 위해 토지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토지 소유자는 매우 적어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와 먼 공약이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적었기에 대부분의 국민은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하게 되었다.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를 하게 되면서 특정 지역은 후보가 누구든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선출은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공천권자가 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결함이라 보았다. 정치를 보고 답답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제도적 한계다. 토지 민주주의 자체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치 수준이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그 결함은 토지가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가 멀었기 때문임을 파악하고 토지가 아닌 역할이 정해지는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대부분의 국민은 특정한 역할을 맡고 있고, 그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에 해당하게 된다.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의원이 선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선동이 아닌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표를 선출할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나게 된다. 동시에 지역이 아닌 분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할 것이므로 지역보다 분야가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땅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인간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므로 분야의 성장은 국가의 성장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현재 지역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은 아무래도 거대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법안 추진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보다 세부적인 집단으로 나뉜 분야의 대표도 입법권을 쥐어야 한다. 분야의 부조리를 해결할 의원이 없어서 허구언날 시위나 해야만 하는 상황에 개탄한다.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면 분야의 이익만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분야의 수가 많아 특정 분야의 대표가 각 분야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하면 당연히 다른 분야에 제지를 받게 된다. 그렇기에 특정 분야의 이익 추구는 당연히 모든 분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면서 공공의 이익을 고려한 분야의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된다. 


둘째, 정책 판사와 정책 변호사 제도.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제도다. 정부 정책의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를 도입하는 제도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사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뎌지는 것이라 보았다. 기관에서 정책에 의한 실수가 반복될 때가 있는 것은 그만큼 정책 관련한 발전이 느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정책의 결함이라 보았다. 사법은 법정에서 법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그와 같이 정책 또한 정책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관에서 정책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현재도 정책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된 기관이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영향이 있다 보고 정책 판사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법이 정권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되었기 때문에 독자적 판단을 통한 삼권분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관이 정책에도 있어야 한다. 정책은 법과 비슷하게 전문가가 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변호사가 있어야 법 문외한이 법정 다툼을 해도 효과가 있을 수 있듯이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정책 문외한이 이의제기를 해도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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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퀘스트 제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생각하면서 나온 제도다. 게임의 퀘스트를 게임 유저가 자발적으로 하듯이 현실의 가치 생산과 학습 또한 국민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 적응 실패로 많은 이들이 미숙하게 성장해버렸다. 성년이 되어도 강요할 수 있었던 집단주의 체제의 방식으로 교육을 하면서 미성년 때 사회와 체제에 맞는 교육을 하지 않는 바람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성년이 되었는데 개인주의 체제로 자유롭게 되면서 강요할 수 없는 바람에 연애, 결혼, 출산, 가치 생산 등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의 결함이라 보았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세대는 물론이고 기성 세대 또한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 내 퀘스트와 레벨 업에 관한 행동 원리가 자리잡았다고 보았다. 게임 내 퀘스트가 성가시고 레벨 업이 피곤해도 그것을 통해 얻었던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원치 않아도 하였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하루 종일 지루한 반복 행동을 하는 것도 즐기고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는 그런 식으로 가공된 것이었다. 그 행동 원리를 활용한 제도가 퀘스트 제도다. 퀘스트 제도는 가치 생산 제도에 해당하는데, 기존의 가치 생산 제도와 충돌할 수 있으므로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우선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가치 생산을 퀘스트로 만들어 퀘스트 제도에 공급한다. 그 퀘스트 제도는 초기 모바일 게임이 이용자를 모으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과 같이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게끔 설계한다. 첫 퀘스트 클리어는 추가 보상을 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한번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나면,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가 작동하여 다음 퀘스트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면 퀘스트를 통해 레벨 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쉬는 날에 할 것이 없으면 레벨을 올리기 위해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된다. 그렇게 레벨을 올리고 나면, 좀 더 어려운 퀘스트를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 퀘스트 중에는 자격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위해 그 자격을 취득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학습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현재 평생 교육원과 같은 학원이 많은데, 그것의 효율이 낮은 것은 교육 측이나 학습 측이나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부족한 의욕을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로 채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유도하면 그 외에 다양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해 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자연 재해 후 청소하기가 어려우면 특전이 포함된 대규모 퀘스트를 공급한다. 그러면 그 특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청소 퀘스트를 하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특전 내용은 호칭이나 업적 등으로 설계하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용직과 같은 단기간 가치 생산은 사회 공헌을 하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그것이 기록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렇기에 가치 생산자도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본다. 그것을 퀘스트 제도의 기록과 호칭과 업적 등을 통해 매꾼다. 또한 돈은 무한하지 않으므로 가치 생산을 유도할 수 있는 돈 이외의 가치가 필요한데, 그것을 특전 등으로 대신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이미 그런 식으로 특전에 대한 가치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게임과 같은 시스템에서만 적용되므로 멋대로 특전을 강요해봐야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퀘스트 제도 설계는 퀘스트 제도의 원리에 속하는 가치 생산과 학습은 관료가 주도하고, 퀘스트 제도의 구조에 속하는 퀘스트와 레벨 업은 게임 기획자가 주도하면 된다 보았다. 각자 이미 전문적으로 해온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과 같이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모든 인문 계열에서 하는 것을 가리켜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의 현대 과학을 따라잡았다 규정하겠다.






4) 논제 발상


첫째, 성선설과 성악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가치의 절대성을 전제한 성선설과 성악설은 성립될 수 없다. 선과 악은 그냥 특정 가치에 이로우냐 해로우냐의 판단일 뿐이다.


둘째, 테세우스의 배. 디지털 기술에 의해 증명되었다. 우주의 법칙 내에 존재하는 디지털 기술의 가상 세계에서의 복제를 통해 원래 요소가 교체되더라도 동일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트롤리 딜레마.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존재에 속하면 존재 구조 유지에 적합한 쪽을 살리고, 존재에 속하지 않으면 각자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존재는 존재 가치로 소속 여부를 결정하므로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결정되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전부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결정되게 된다.


넷째, 중국어 방. AI가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졌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AI는 지능은 가졌으나 의지가 없고 짐승은 지능은 낮으나 의지는 있다. AI가 짐승 수준의 의지만 가져도 인공 자아 획득이 가능하다. 인간이 감각 기관이나 호르몬 등을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으로 발상 된 것에 의해 자아 의식 의지가 생각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설계하면 AI도 의지를 가질 수 있다.


다섯째, 오억년 버튼. 인간은 물리적으로 오억년을 버틸 수 없으므로 성립될 수 없다. 정신만 이동했다 가정하면, 시간은 인간의 지각 순서이므로 환경 변화가 적으면 시간 흐름을 일반적으로 느끼지 않게 되면서 오억년의 흐름을 지구에서와 같이 느끼지 않게 된다. 초기에는 시차 적응과 같이 적응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적응 이후에는 거의 흐르지 않는다 인식하여 오억년이라 하더라도 그리 길게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버튼을 누른 인간과 정신이 이동된 인간은 기억이 같을 때엔 같은 존재이나 기억이 달라지고 나서는 달라지는 비율에 따라 다른 인간이 되어간다.


여섯째, 돈과 행복. 행복은 결핍의 충족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 원리가 정상 작동할수록 행복하다. 물론 돈이 많을수록 그 원리를 작동하는데 수월하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돈이 많아도 행복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불행할 수가 있다. 


일곱째, 악법도 법인가. 악법은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성립될 수 없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선이나 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체제를 기준으로 권력 남용이냐 아니냐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를 하고 나면 인식 탐구의 문제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3. 사회


[사회: 1.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가족, 마을, 조합, 교회, 계급, 국가, 정당, 회사 따위가 그 주요 형태이다.]


문명 사회는 학문으로 만들어진 문명으로 가공된 인간의 공동체다. 그렇기에 학문의 문제는 학문으로 만들어진 문명으로 이어지고, 문명의 문제는 문명으로 가공된 사회로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사회 현상이며 사회 문제다.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으로 불합리하게 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절대성과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으로 사회를 합리하게 해야 한다. 단순히 특정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는 비용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수준으로 의미 없다.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하기 위한 변화를 해야 한다고 하면 문화 핑계를 대며 거부하는 일이 있다. 그러는 바람에 문명화가 되지 못한 분야가 많다. 문명화가 되지 못한 바람에 슬프고 고통스러운 인간이 많을 것이다. 거기에는 변화를 거부한 인간도 있고 슬픔과 고통을 만든 인간도 있을 것이다. 절망스럽다. 세세한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냐 물을 수 있는데, 그게 학문이고 그게 문명이다. 이 모든 본질적인 문제는 학문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고, 학문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한계였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알기 쉬운 기준을 토대로 변화를 해야 한다. 


수학은 자연수로 우주를 모방하였다. 그렇기에 디지털 기술의 0과 1의 조합으로 가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0과 1만으로도 가상 세계가 구축될 수 있는 것과 같이 단순한 기준으로도 현실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바로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이다.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강제인가 자유인가 등과 같이 기준을 나눠 체계를 구축하면서 체제 합리를 해야 한다.






3.1 탐구


1) 통치 관점


사회는 주권을 가진 통치자가 체제에 맞게끔 재정립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는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에, 모든 개인이 통치자가 되어 재정립을 해야 한다. [주권: 1.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절대적 힘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을 가진다.] 민주주의 체제는 개인에게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닌 주권이 있는 것이다. 개인이 주권을 가진다는 것은 국가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이고, 국가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은 국가 통치를 하는 것이므로 모든 개인은 통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사회에 속한 개인은 통치자가 되어 통치 관점을 통해 통치 의지를 가지고 기본 권리나 선출이나 임명으로 결정된 권한에 따라 통치 의지를 실행한다. [통치: 1. 나라나 지역을 도맡아 다스림.] [다스리다: 1.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


국가에서 통치 관점을 가지는 것은 국가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관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다. 통치 관점이 없는 민주정의 개인은 국정을 내버려두고 놀기만 하는 왕정의 왕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재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은 많은 주권자가 선거를 했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통치 책임을 정치가에게 떠넘기고 통치 관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치에 있어 개인과 정치가를 구분하지 않겠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계급은 성립될 수 없다.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 대등하며 선출과 임명 등과 같이 역할에 따라 권한이 달라질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개인은 모두 통치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통치 관점을 가지고 국가 통치 또한 개인의 이익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이 생존하려면 국가의 보호가 있어야 유리하다. 당연히 국가는 개인의 이익에 포함된다. 모든 주권자는 국가의 이익이 본인의 이익이므로,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에 국가의 이익도 포함되게 된다. 단지 그걸 모두가 자각하기는 어려우므로 절반 이상은 통치 관점을 가져야 한다. 통치 관점이 있어야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만 헌법에 위배되지도 않고 사회 구조도 유지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다. 


개인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개인과 집단에게 주권자로서의 통치 관점을 요구하겠다. 통치 관점으로 보면 절대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체제에 합리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사회 구조가 유지되고, 어떻게 해야 자유와 주권과 시장이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고나서 그것에 맞는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종교 가치를 바탕으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유착, 담합 등을 하는 것은 통치 관점을 가지지 않은 결과다. 물론 그 집단은 이익이 될 수 있지만 통치 관점으로 보면 국가의 손해가 되고, 모두가 그런 식으로 되면 국가가 망가지면서 주권을 가진 모든 개인이 손해가 된다.


마냥 기업 이익만 말하며 나머지를 소홀할 것이 아니고 마냥 노동자 이익만 말하며 나머지를 소홀할 것이 아니다. 모두가 통치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국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노동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특정 누군가의 이익만 말할 것이 아니라 국가 통치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통치 관점이 없는 사회가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는가? 






2) 사상 해석


“If a guy has been hit by 700,000 bullets, it’s hard to work out which one of them killed him.”


아르헨티나 경제 몰락을 보고 경제학자가 한 말이다. 어떤 사람이 총알 70만발을 맞고 죽었다면, 그 중 무엇으로 죽었는지 알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으로 가공되고 문명은 학문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학문에 속한 사상이 무엇인지 알면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있다. 어떤 총알로 죽었는지는 몰라도 왜 쏘았는지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심리를 알면 인간이 일으킨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


각국 경제 원리는 각국에 속한 국민의 사상을 전제로 만들어지게 된다. 산업 혁명 당시 영국의 경제 원리는 영국인 사상을 전제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제 원리를 사상이 다른 인간이 답습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건이 달라져 당연히 정상적으로 경제 원리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의 경제 원리에 조건은 모든 개인의 욕망이다. 계획 경제는 계획하는 인간이 욕망을 가지고 생산을 지시하면 되지만, 시장 경제는 시장에 속한 모든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경제가 성장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욕망을 가질 수 없거나 가지지 않아도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파탄난다. 


간단히 말해 아르헨티나는 욕망이 적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상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종교 가치는 금욕을 강조하기 때문에, 욕망을 정당화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금욕이 보편적이다. 종교 가치가 보편적인 상태에서 경제가 성장한 국가는 전부 욕망을 어떤 형태로든 정당화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자유로 욕망을 정당화한 미국이다.


아르헨티나는 자연 환경이 뛰어나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일이 없다. 그런 것 자체가 욕망을 가질 이유를 적게 만든다. 자원의 저주라는 것이 있다. 자원이 많아 가치 성장의 동기를 갖지 못하면서 경제 성장력이 자원이 적은 국가보다 저조할 때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는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지만 욕망이 적어지는데 영향을 미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쇠퇴하면서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복지 지원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경제 성장에는 빈부격차가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가치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빈곤 해결과 가치 생산과 지식 학습이 연계되는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다. 욕망을 가지게 하여 시스템이 동작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다보니 복지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는데 가치 생산은 되지 않으면서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개개인이 욕망을 가져야할 이유가 적고, 욕망을 가진다 하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체계가 보편화되지 못했으니까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단순해보이는데, 본래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은 단순해도 파악하기 어렵다. 욕망이 나쁘다 여겨지는 사회에서 욕망을 강조하면 어떻게 들리겠는가? 성을 터부시하는 한국에서 미성년을 비롯한 전반적인 성 터부시로 저출산이 일어났으니 성을 권장해야 한다고 말할 때 반응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인식에서 벗어나면 아주 간단한 사실도 인식하기 어렵고 수용하기도 어렵다.


이런 경제 쇠퇴의 구조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가 빈곤했을 때에는 생존하기 위해 욕망을 가지는 것을 크게 비판하지 않았고, 집단주의 영향으로 가치 생산이 강제되었었다. 그러나 국가가 부유해지면서 여유가 생긴 것인지 종교 가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욕망이 절제되어버린 이들이 늘어나고,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가치 생산이 강제되지 않으면서 경제 둔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있다.


한국은 체제 가치로 성장했고 종교 가치로 붕괴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같은 민족인 북한은 비슷한 종교 가치를 공유하고 정반대의 체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한쪽은 선진국이고 한쪽은 최빈국이다. 무엇이 차이를 만든 것인지 너무나도 명확하다. 


흔히 욕망이 많은 인간을 비난하는데, 타인의 욕망을 억압하는 인간보다 본인의 욕망만 추구하는 인간이 경제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 본인의 욕망만을 추구하되 공정하면 된다. 이제는 욕망을 절제시킬 것이 아니라 스포츠 경기하듯 공정한 욕망을 추구하여야 한다.






3) 인식 한계


모든 개인은 통치 관점을 가지되 인식 한계를 알아야 한다. 일반 인간은 물론이고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 계열조차 인간 심리 영역은 인식 탐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모든 분야는 존재 탐구를 하고, 모든 개인은 존재 탐구를 하는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자연 계열의 과학처럼 여겨야 한다.


존재 탐구하는 자연 계열에서 인간 심리 영역은 인간 심리가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에 인식 탐구에 머무르는 일이 있다. 어떤 정신 의학자는 인간이 지능이 낮아 본인 말이 무조건 맞고 타인 말이 무조건 틀리다 주장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지능이 만든 것이 아닌 가치의 절대성이 만든 현상이다. 그 논리라면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종교인은 머리가 나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종교인은 머리가 좋다. 단지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길 뿐이다. 이것은 한국 일상에서도 알 수 있다. 연하가 연상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전부 지능이 낮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인은 머리가 좋다. 단지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길 뿐이다. 되려 유능하기 때문에 체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알더라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심리학적 분석은 보편적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가공 상태를 전제했기 때문에 가치가 다르면 분석도 달라지게 된다. 인간 심리 관련 학문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공되기 이전의 상태를 파악하여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지 않고 유형, 성격 등과 같이 가공 상태로만 파악하는 것은 대부분 하늘 색을 색으로만 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처음부터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여 개념 체계를 전부 갖추고 심리의 모양, 성질, 구조, 원리 등을 전부 파악해야 한다. 


종교 가치를 전제한 심리학으로는 종교 가치에 어긋나는 것을 볼 때 비정상으로 판단될 수 있다. 즉 과거 종교의 이단 심문관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 가치에 어긋나는 너는 이단이다! 정신병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 현상이 과거부터 동성애, 록 음악, 성 상품, 만화나 게임 등으로 있었다. 체제 가치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도 종교 가치로는 비정상으로 취급되면서 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몰아가며 공격하는 것으로 체제가 더욱 붕괴되게 된다. 사회성도 마찬가지다. 종교 가치에 적합한 사회성이 강조되면서 체제 가치에 적합한 사회성을 가진 인간이 비정상적이라며 공격받는 것으로 체제가 더욱 붕괴되게 된다. 인권도 마찬가지다. 종교 가치에 적합한 인권이 강조되면서 체제 가치에 적합한 인권이 비정상적이라며 공격받는 것으로 체제가 더욱 붕괴되게 된다. 이는 자유로워질수록 그 수가 증가함에 따라 체제는 더욱 더 붕괴될 것이다.


인문 계열에서는 종교 가치와 인식 탐구가 보편적이기에 일반 인간의 주장 또한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주장일 확률이 높다. 종교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체제에 해로운 본인 생각을 강제하는 권력 남용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성 터부시가 있다. 성 터부시에 의해 도서관에 성교육 책을 빼라고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이나 그림은 치우라는 의견이 계속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체제에 맞지 않은 주장이 통치자인 대중에서 나타나면서 통치 대행자인 정부 관계자는 민주주의 체제임에도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이제는 모든 개인은 체제 가치와 존재 탐구를 보편적으로 여겨야 하고, 존재 탐구를 하는 학문의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






4) 체제 합리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 왕정에 사회 선택된 종교 가치로 생활 양식을 갖추니 체제 불합리가 일어나면서 사회 구조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그래서 체제 합리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해야 할 동기가 적을 수가 있다. 기성 세대는 사회 은퇴를 하는 것으로 동기가 적을 수 있고 부유한 이들은 사회 이탈을 하는 것으로 동기가 적을 수 있다.


“나는 충분히 배부르고 변화를 원하지 않는데 변화하는 성가심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렇기에 공통의 이익을 제시하겠다. 체제 합리를 통한 기술 발전에 따른 생존이다. 단순 물질적 이익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물질적 이익을 초월한 공동 목표인 불로불사다. 이것이면 기성 세대도 은퇴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사회 변화에 적극적이게 될 수 있고, 부유한 이들도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사회 변화에 적극적이게 될 수 있다. 


인간은 감각 기관으로 지각한 것을 바탕으로 인식과 가치를 느낀다. 그렇기에 몸이 다른 인간은 다른 인식과 가치를 가지면서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감각 기관으로 인식과 가치를 느끼고, 그것으로 결핍의 충족이 이뤄지면서 행복을 느낀다. 여기서 감각 기관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제대로 행복도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이 잘 작동해야 하므로 최상의 행복은 불로불사에 해당하게 된다.


과거 진시황 같은 이들이 불로불사를 하지 못했던 것은 존재 탐구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 존재 탐구를 하는 것으로 종의 한계를 초월해 급격한 발전을 한 현대 과학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불로불사는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인간의 늙음과 자연사란 개념을 지워버리겠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그건 사상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가야할 길을 정하고 생각하다보면 도달한다.






5) 사회 변화


사회에는 유토피아 사회와 디스토피아 사회가 있다. [유토피아: 1.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디스토피아: 1.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 이러한 개념을 통해 예측한 사회상은 종교 가치를 기초로 하여 개인주의 체제에는 적절하지 않다. 흔히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같은 개인주의 체제에 결함이 있다거나, 자유에 의해 윤리가 지켜지지 않아 엉망이 된다거나 하는데, 그야 종교 가치로 보면 그럴 것이다. 


종교 가치는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종교 가치는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 사회 선택된 단순한 인식 탐구다. 종교 가치가 없던 세계를 전제하여 이치를 기초로 한 존재 탐구를 한다. 체제 가치를 기초로 하여 체제 합리를 이루는 사회를 통해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게 한다. 단순히 인간이 행복해할 것을 얻게 할 것이 아니라 원리가 작동될 수 있도록 하고 나서 얻게 한다. 그러면서 행복한 사회를 실현한다.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한다. 이것이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전제한 기본이다. 사회와 체제 구조가 존재의 절대성으로 판단할 수 없고 강제적이며 사회와 체제 원리가 가치의 상대성으로 판단할 수 있고 자유롭다. 만약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요소가 있어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요소인 개인을 재가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범죄자, 체제가 다른 이민자, 자발적 재가공 등이 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각각 사회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체제 변화는 크게 존재 질서와 가치 제어로 구분한 것에서 개인, 집단, 생산, 소비, 관계로 나눠 정리하고 변화에 따른 분야의 대응은 역할에서 정리한다. 기술 변화와 환경 변화도 비슷하게 정리하고 분야의 대응을 역할에서 정리한다. 그렇게 하여 체제 합리가 이뤄지는 것으로 사회 체계가 정상 작동하면 그 외의 문제는 소소하다.






3.2 체제


1) 개인주의


인류 문명의 체제 변화의 본질은 집단 수장에서 모든 개인으로의 주권 이동이다. 주권이 이동하면서 왕정처럼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닌 민주정처럼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으로 사회 체계 정반대가 된다. 그럼에도 왕정의 사회 선택을 받은 종교 가치가 보편적으로 남아 질서가 되면서 가치 충돌이 발생했다. 체제에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라고 해놨는데 질서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억압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행해지면서 그러한 체제 가치가 훼손되게 되었다. 욕망이 억압되고 희생을 강요당한다. 교육에서는 미성년에게 연령별 의무를 전제한 교육을 하면서 사회 미숙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사회에서는 종교 가치를 강요하는 권력 남용을 하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정치에서는 종교 가치에 영향을 받아 역할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유착과 비리가 넘치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생산에서는 통치 관점을 잊고 기업이든 노동자든 국익을 고려치 않는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학문에서는 인간 심리 영역은 인식 탐구에 머무르는 바람에 이러한 사회 현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사회가 파탄난다.


가치 충돌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이치를 기초로 한 논리적인 체계를 갖춰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했음에도 인류가 종교 가치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체제에 맞는 질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법칙에 속하는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기초로 한 논리적인 체계를 갖춰 체제에 맞는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는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몇 가지 개념을 기초로 하여 논리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학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자연수를 기초로 한 것처럼 사회도 아무리 복잡해도 자연수와 같은 우주의 법칙에 속한 것을 전제한다면 기초로 할 수 있다. 각각 개념이 도입된 분야는 복잡한 체계로 중심이 잡히지 않을 수 있으나 이치를 기초로 한 개념과 연결되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존재 질서, 가치 제어, 재가공과 같이 재정립을 정리하겠다. 존재 질서는 사회 체계의 변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 제어는 사회 체계나 개인 가치 관념의 변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재가공은 개인 논리 회로의 변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존재 질서는 존재 구조 유지가 강제력이 대부분 적용되어 강제할 수 있고, 가치 제어는 가치 추구가 강제력이 대부분 적용되지 않아 권장해야 한다. 체제에 맞는 질서 정립과 가치 제어만 제대로 해도 체제 변화에 의한 사회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다. 거기서 일부 일반적이지 않는 인간, 주로 범죄자는 재가공을 통해 논리 회로를 다시 설계한다. 

체제 불합리를 인간으로 비유하면, 오른손을 오른쪽에 뻗었다고 생각했는데, 왼손이 나가서 얼굴을 치는 것과 같이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심할 때에는 해로운 결과가 나온다. 저출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높은 자살 줄이겠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 높은 자살로 이어진다. 불합리하니까 그렇다.


존재 질서와 가치 제어와 재가공은 일반적으로 국가 통치에 쓰이나, 모든 국민이 통치자인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모두가 통치 관점을 가지고 이러한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은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므로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통치 관점에서 볼 때 일부 일탈에 의한 범죄보다 사회와 체제에 해로운 정책이나 제도가 더욱 심각하다 할 수 있다. 그것이 설령 특정 가치에서 정의롭다 여겨지는 관점에서 나타난 것이라 할 지라도 큰 문제가 된다. 간단히 말해 개인의 특정한 충동 범죄보다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가 훨씬 해롭다. 더구나 충동 범죄는 자유를 보장하는 한 사라질 수는 없지만 잘못된 정책과 제도는 사라질 수도 있다. 


왕정 체제는 주권이 소수에게 있었기에 그들이 보이는 것만 보고 본 것을 기준으로 가치를 정한 것으로 질서로 하여 유지해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민주정 체제는 모든 개인에게 있기에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다 보고 존재를 질서로 하여 유지해야 된다. 그걸 전제하여 법, 정책, 제도 등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존재 질서로 진보하면 사회 전반적인 법, 정책, 제도 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기원 년전 이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던 질서의 변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 계열에서 이미 존재 탐구로 진보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하게 될 진보에 해당하게 된다. 이것을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 시작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개인의 주권을 보장하기에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존재의 절대성에 의해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가 되겠다 하더라도 존재에 속하는 이상 자유권은 강제로 보장된다. 가치의 상대성에 의해 존재를 해치지 않는 한 사랑은 물론이고 증오조차 자유롭게 보장된다. 이러한 체제의 체계를 학문에서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



존재 질서와 가치 제어는 주권자가 통치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떻게 해야 사회에 속한 인간의 생존권이 보장되고, 어떻게 해야 사회에 속한 인간의 자유권과 주권과 경제권이 보장될 수 있는가? 그것을 체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윤리와 같은 사회와 체제와 무관한 것을 강제하는 특정 가치가 필요 없게 된다. 사회와 체제는 인간의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로 판단하고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절대적인 존재로 판단하고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특정 인간이 당근 주스가 옳고 기름이 그르다 여긴다 하더라도 자동차에는 기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기름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존재 질서는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강제력을 정당화하고 강제로 실행한다. 존재 질서는 강제할 수 있으므로 강제력의 정당성만 확보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인간 생명이나 경제 시장과 같이 사회와 체제 구조와 요소로 당장 사회와 체제 구조에 필요한 것이기에 강제할 수 있다. 살고 싶으면 하기 싫어도 먹고 자고 싸는 것과 같이 지극히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다. 직접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합의만 되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가치 제어는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아 가치의 상대성을 통해 자유를 보장하되 이로운 것을 행하도록 가치를 제어한다. 예를 들어 이성애든 동성애든 개인 취향으로 당장 사회와 체제 구조에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강제할 수는 없지만 이성애가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와 체제에 이로운 것은 명백하다. 단순히 살기만 하고 싶으면 반드시 할 필요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 하는 일이다. 간접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은행의 금리 제어와 같이 어렵다.


가치 제어는 존재 질서를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즉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가치를 제어해야 한다. 언론, SNS, 커뮤니티 등을 통제하고 검열하는 것으로 가치를 제어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반체제에 해당하여 그것을 하지 않고서 가치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과감한 통찰과 섬세한 설계가 필요한 일이다. 금융계에서 물가를 조정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고심과 계산을 하는데, 그보다 더 복잡한 사회의 가치를 제어하는 것을 너무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2) 존재 질서


(1) 개인


I. 기본 가공. [교육]


기본 가공은 일반적으로 인성 교육으로 주로 가정에서 하여 가정 교육으로 불리고 학교에서는 도덕 및 윤리 과목에 해당하게 된다. [인성: 2.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 [가정 교육: 1. 가정의 일상생활 가운데 집안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주는 영향이나 가르침.] 간단히 말해 논리 회로를 만드는 과정이다. 인간은 이러한 논리 회로를 통해 생각하고 행동하므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개인주의 체제 이후 제대로 된 학문이 없다.


기본 가공은 종교 가치를 바탕으로 가정 교육을 행하거나 도덕 및 윤리 과목으로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체제 가치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이 제대로 없었다. 이미 종교 가치로 기본 가공을 마친 후에 체제에 대한 설명을 하고 끝났다. 그렇기에 이 영역은 아직 학문화가 안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가공이 학문으로 체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 가치로 기본 가공된 인간이 타인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거나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기본 가공은 간단하고 절대적이어야 한다. 한다. 복잡하고 상대적이면 교사도 학생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존재 탐구를 기초로 의무에서는 체제, 관계, 생산과 같이 사회와 체제에 필요한 것을 가공하고, 권리에서는 연령별 권한과 학문을 정리한다. 현재 주입식 교육으로 학문이 의무인 것처럼 되어 있는데,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에 필수적인 것 외의 학문은 의무가 아니다. 생산을 학습하고나서 권리 보장을 통해 욕망을 가지도록 유도하면 본인이 알아서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하고 싶은 학문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의무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권리는 선택 과목으로 지정하면 된다.



존재의 절대성에 속하는 의무에서는 사회 생활에 필수적인 국어와 산수와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에 필수적인 체제, 관계, 생산을 이해한다. 의무 과목은 국어, 산수, 체제, 관계, 생산이면 된다. 국어와 산수는 기존에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체제에서는 자유권, 주권, 경제권 등을 이해하고 관계에서는 이성 관계를 비롯한 인간 관계를 이해하고 생산에서는 가치 생산을 이해한다. 


체제에서는 존재의 절대성과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통해 자유권을 이해한다. 존재의 절대성과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은 산수에서 사칙연산 이전의 자연수와 같은 개념이다. 존재의 절대성은 육체 구조 유지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가치의 상대성은 육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존재 외엔 자유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존재를 알면 된다. 어떻게 해야 육체와 사회와 체제와 환경이 유지될 수 있는가? 그러면서 자유권 외에도 생존권과 주권과 경제권 등의 권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체제를 이해한다. 교육 과정은 존재의 절대성을 기초로 육체, 사회, 체제, 환경 순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이런 체제 이해를 통해 체제에 맞는 기본적인 인성을 갖춘다. 지금까지 이런 것을 논리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윤리를 주입되거나 사회에 강요되어 체득하였었다.


체제 이해 중 세계 확장과 위험 백신을 해두는 편이 좋다. 미성년의 사건사고는 대부분 세계가 지나치게 좁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권한을 말한다. 미성년은 권한이 적어 의무도 적기 때문에 성년과 같은 세계를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수집한다거나 현장 체험이나 수련회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세계 확장은 부모와 교사의 손에서 벗어나 다른 종류의 인간의 보호에서 다른 세계를 경험해봐야 한다. 현장 체험이나 수련회를 할 때 부모나 교사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군경에서 평소와 다른 권한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세계 확장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사건사고 치던 미성년이 평소에 권한이 없어 알 수 없었던 교정 시설에서 모범 죄수와 만나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하면 된다. 현장 체험에서 기업의 관리로 성년과 같이 가치 생산을 해보고, 자연 캠프에서 군경의 관리로 성년과 같이 먹고 자고 싸는 것을 직접 해본다.


위험 백신은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중독에 관한 백신이다. 현재 중독 자체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봐서 그에 대한 백신을 맞게 하지 않는 것으로 개인은 중독에 굉장히 취약한 상태다. 단순히 중독이 나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직접 중독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경험해봐야 한다. 도박 중독은 주식이 적절할 거라 본다. 주식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고 실제 주식도 참여하면서 이익에 의한 쾌감과 손실에 의한 절망을 경험해봐야한다. 물질 중독은 설탕이 적절할 거라 본다. 설탕에 푹 빠지게 한 뒤에 설탕 못먹게 해본다. 그것을 통해 결핍의 충족과 마약을 간접적으로 이해해본다. 


관계에서는 이성 관계를 비롯한 인간 관계를 이해한다. 모든 개인이 주권자로서 역할에 따라 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주권을 통한 대등한 관계가 있음을 이해한다. 이것을 통해 연령, 성별, 직위 등의 차별을 없앤다. 대등한 관계임을 이해하고 금욕주의를 말하며 일방적인 금욕을 강요하지 않고, 이타주의를 말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도록 한다. 과거 학부모가 촌지를 내고 학생이 욕망을 절제당하고 맞고 다녔던 것과 현재 교사가 부당한 배상금을 내고 욕망을 절제당하고 맞고 다니는 것은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에 의한 것이다. 역할에 따른 권한 차이를 파악하고 그 권한을 서로 존중한다. 권한을 넘어선 권력 남용이 나타나면 그에 따른 조치를 한다. 


그것을 통해 자유롭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그 중 이성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정조관념을 토대로 한 성 터부시는 집단이 개인에게 강요한 부당한 간섭이다. 현재 체제에서는 권력 남용이 된다. 현재 저출산은 이성 관계 파탄에 의한 것이므로 인공 자궁이 나온다 한들 파탄난 이성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이성 관계 파탄은 미성년 시기에 성을 터부시하며 이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이 주권자임을 이해하고 이성 관계를 막아서는 안 된다. 되려 권장을 하되 발정뿐만이 아닌 발정이 포함된 성애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게끔 해야 한다. 존재의 절대성을 이해하고 이성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여 최소한 고등학생 때까지 미성년 90% 이상의 이성 교제가 이뤄지도록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사랑하여 결혼하고 출산한다. 무슨 저출산 원인에 이상한 것 찾는데, 그냥 대놓고 말해 사회 간섭이 없으면 미성년 대부분 알아서 결혼하고 출산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살아남았다. 그걸 사회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말하며 종교 가치로 막아대니까 못한 것이다. 종교 가치로 막지 않고 체제 가치를 통해 대등한 주권자로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면 된다.


생산에서는 가치 생산을 이해한다. 일반적인 모든 가치 생산은 시장을 통해 거래되므로 시장을 이해하면 된다. 체제에서 경제권을 통해 시장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노동 시장, 소비 시장, 금융 시장 등을 이해하면 된다. 공무원은 시장에 속하지 않는다 할 수도 있지만 합리적 기준을 위해 노동 시장에 속하게 한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므로, 시장을 보고 본인이 생산하고 싶은 가치를 결정하면 된다. 장래희망을 학문이나 학과로 찾게 하면 안 된다. 시장을 보고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중 본인이 생산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야 한다. 시장을 알고나야 시장성이 없는 것을 장래희망으로 삼을 때에도 본인이 각오하고 계속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다. 그것을 위해 학습하는 학문은 권리에 속하여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 



가치의 상대성에 속하는 권리에서는 연령별 권한과 학문을 이해한다. 연령별 권한에 대해 알아보자.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서 역할에 따라 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반 개인과 대통령은 대등한 주권자이고 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미성년도 다르지 않다. 미성년은 사리분별이 성년에 비해 어렵다는 이유로 권한이 적은 상태다. 이를 보고 미성년은 보호받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 기준을 정해야 한다. 위험 구역에 출입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개인에게 권한이 없는 것이다. 보호에 초점을 맞추면 개인의 대응 가능 여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어 모순이 생기지만 권한에 초점을 맞추면 개인의 대응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기준이 달라지지 않는다.


미성년도 마찬가지다. 촉법 소년, 선거권, 성적 및 가치 생산 자기결정권 등과 같이 성년과 동등하지 못한 것은 보호 차이가 아닌 권한 차이다. 촉법 소년은 일방적 보호가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권한이 적은 이유거나 권한이 적어 발생하는 취약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마약에 의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게 된 인간을 병원에 가둔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 방치하면 죽지 않겠는가? 위험 구역에 노출된 인간에게 이동의 권한을 빼앗는다 가정하자. 그럴 때 방치하면 죽지 않겠는가? 존재의 절대성에 의해 안전을 보장하고 식재료 등을 공급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와 같다.


촉법 소년은 연령을 낮추라 말을 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연령을 높이라 말을 한다. 둘은 사리 분별이 어렵다는 근거로 작동하는 것으로 어느 한쪽을 낮추고 높이는 것은 불합리한 모순을 부르게 된다. 마땅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이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로 결정하니 이런 모순이 발생한다. 권한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2차 성징 시기가 10세에서 14세 사이라고 한다. 2차 성징 이후 인간의 육체는 대부분 기능이 작동하므로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기준으로 미성년 권한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범죄와 같이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촉법 소년은 2차 성징 최저 시작 시기인 10세로 지정한다. 성장이 다르고 정보 수집 양이 달라 누군가는 10세에 다 알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과거에도 성장이 빠르고 정보 수집 양이 많았던 미성년은 곧잘 범죄를 저질렀으나, 현재는 보편적으로 영양 공급이 충분해 성장이 빠르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 수집 양이 많아 미성년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난 상태다. 사회가 변화했으므로 인식과 가치를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닌 존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선거권은 체제에 속하는 것으로 모든 개인에게 강제되는 권리다. 이것은 최대한 빠른 시기에 할 수 있어야 한다. 10세에 교육에 관한 선거를 하고, 12세에 지역에 관한 선거를 하고, 14세에 모든 선거가 가능하면서 순차적으로 선거권을 이해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기능 유무로 결정되고 가치 생산은 그리 급할 것이 없으므로 2차 성징 최고 시작 시기인 14세를 기본으로 하되, 개인 의사에 따라 12세에도 허용되는 구조를 설계한다.


학문에 대해 알아보자. 학문은 의무에 속하는 국어, 산수, 체제, 관계, 생산 외에는 자유롭다. 생산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알아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학교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그에 대한 계획을 도와주면 된다. 의무만 제대로 가공하면 그 외는 자유롭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휴학이 자유로운 것이 좋다. 애초에 모든 개인은 성장이 다른데 같은 시기에 같은 학습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그렇게 하여 스스로가 생각하는 최적의 가공 형태를 갖춘다. 학문 지식뿐만 아니라 표정, 태도, 마음가짐, 예의범절, 젓가락질 등 전부. 의무는 교육자가 주도한다면 권리는 학생이 주도한다.






II. 장애 가공.


지적 장애나 성격 장애에 관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육체 보조 기구와 같이 지능 보조 기구를 통해 대응하면 된다. 뇌에 컴퓨터 칩을 심어서 지적 장애나 성격 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 한다. 


육체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면 보조 기구 써야 하듯, 뇌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면 보조 기구를 써야 한다. 육체 장애와 달리 뇌의 장애는 내부 원리를 파악하기 어려워서 그런 보조 기구 개념이 정착되지 못했던 것이지, 뇌 과학이 발전한 현재는 충분히 가능하다. 자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뇌의 지능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프로세스 동작이 가능하게 하면 된다.


현재 지적 장애의 치료는 심리 치료, 놀이 치료, 훈련 치료 등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뇌 기능 장애로 지적 장애를 가졌는데 뇌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행위로 치료가 되기 어렵다. 그러니까 내부나 외부에서 신호를 직접 입력한다. 내부에서는 뇌에 컴퓨터 칩을 심으면 될 것이고 외부에서는 도파민 등의 물질을 주입하거나 전기 신호로 자극을 주면 된다. 


보호자가 지적 장애인이 좋은 행동을 하면 그에 해당하는 물질을 주입하도록 하고 나쁜 행동을 하면 그에 해당하는 전기 신호를 느끼게 한다. 지적 장애인이 학교에서 자위 행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물리적 타격을 주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전기 신호로 교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평소에 나쁜 행동을 하면 전기를 느끼게 하는 것으로 훈련하면 된다.


성격 장애도 마찬가지다. 성격 장애는 특정 상황에서 내부 물질이 분비되지 않아 이해나 공감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인데, 그것을 외부 물질 주입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당뇨병으로 인슐린 생산이 되지 않으면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지 정신과 육체의 차이일 뿐이다.


뇌에 칩을 심는다거나 외부 물질 주입이나 전기 자극이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해결 방법이 있는가? 개와 비슷한 지능을 가져서 교정되지 않은 개와 비슷하게 방치되다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죽는 것이 낫나? 아니면 보조 기구를 통해 사회에 어울리게 하는 것이 낫나? 종교 가치에 휘둘리지 말고 진정 무엇이 사회와 체제에 적합한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한다. 일반 인간에게 이러한 것이 부당할 수도 있지만 장애 인간에게는 이러한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III. 의식 상실.


의식 상실로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체계가 필요하다. 의식 상실에 의한 대표적인 사건사고가 바로 음주 운전이다. 술을 마시고 정상적인 의식을 상실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건사고를 일으킨다. 인간은 의식을 상실하면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대로 움직이게 된다. 그것을 고려해 무의식적으로 사건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훈련을 한다.


인간은 성년 이후 자유가 보장되어 의무가 최소화되어 강제하기가 어렵다. 그 중에 의무를 통해 강제가 이뤄지는 것이 바로 운전 면허다. 운전 면허 취득과 갱신시 술을 마시는 인간은 술을 마시고 대리 운전이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운전 면허 시험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인간은 모두 술을 마시고 GPS를 장착한 상태에서 대리 운전이나 대중 교통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훈련을 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거나 앞으로 마시지 않을 거라 거짓을 말하면 음주 운전 발생시 가중 처벌을 한다.


음주 운전을 하거나 음주 운전 사건사고를 일으킨 인간은 강제로 위와 같은 훈련을 반복한다. 무의식적으로 술을 마시고 나서 대리 운전이나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한다. 인간은 의식 상실시 무의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의식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무의식적으로 또 음주 운전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음주 운전을 멈추려면 무의식을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운전 면허를 빼앗아도 무면허 운전을 할 수 있고, 차량을 빼앗아도 다른 차량으로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IV. 생존 훈련.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을 고려하면 재난 방지 대응을 해야 한다. 사건사고 발생시 개인이 패닉을 겪는 것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편적 사건사고를 훈련으로 경험해봐야 한다.






(2) 집단


I. 사회 구조


사회 구조는 집단주의 체제의 질서였던 종교 가치에 의해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전체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대체로 지인 또는 약자를 위하여 이타적인 이유로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사회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약자의 이익을 위함이 아닌 모든 개인의 이익을 위함에서 약자도 포함되어야 한다. 일방적 희생이 아닌 체제에 적합한 논리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정 제도가 설문조사에서 공정하단 의견이 있으므로 정당하단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 정도면 체제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다. 다수가 지배나 복종이 공정하다 주장하면 정당해지겠는가? 체제는 사회의 생활 양식으로 개인의 의견과 관계 없이 체제에 적합하고 부적합한 것은 분명히 있다. 체제에 적합한 것을 하고 나서 거기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 기름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에 친환경적인 당근 주스를 넣는다고 해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듯이 체제 가치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윤리적인 종교 가치를 주장한들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은 워낙 체제에 부적합한 것이 많아서 사회 전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 현상 몇 가지를 알아보자. 


국민 연금 - 수명에 따라 이익이 달라지고 추가 가입자가 있어야 성립되는 제도로, 추가 가입자가 일방적 희생을 한다. 국민 연금이 있어야 노후가 보장된다는 말을 하는데, 없어도 국가 차원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차라리 합리적인 제도를 통해 절약한 비용으로 모든 개인의 노후 생존을 보장하는 게 맞다. 이런 제도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성립될 수 없다. 국민 연금은 점진적으로 연금에서 펀드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건강 보험 - 건강 보험 자체는 사회 구조 유지에 적합하나 집단주의적이어서 낭비되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 의사는 별 것 아닌 것도 비싼 보험처리하고 환자는 별 것 아닌 증상으로도 치료를 받는다. 개인주의적으로 접근하여 과잉 진료나 습관성 치료에 대한 기준을 정하여 가점이나 감점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시장 원리 훼손 - 도서 정가제,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 가산점 및 할당제 등과 같이 생산자를 위해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시장 원리를 훼손하는 제도는 체제에 부적합하다.


지하철 노인 무료 이용 - 노인과 그 외와 차별이 나타나고, 이용하는 노인과 이용하지 않는 노인의 차별이 나타난다. 지하철 노인 요금을 받되 그 비용을 전부 노인 복지로 쓴다고 한다면 명분도 챙기고 과도한 지하철 이용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 검열 및 규제 - 종교 가치를 근거로 개인의 자유권을 훼손하는 것으로 개인을 희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검열과 규제는 종교 이단 심문관의 판단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남성 징병제 및 스포츠 메달 징병 면제 -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서 대등하다. 여성도 한 명의 개인으로 신체 검사를 통해 적합한 인간만 징병하면 된다. 스포츠 메달 징병 면제는 형평성이 어긋나는 특혜로 부당하다. 소급 적용은 할 수 없지만 점진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미성년 술담배 판매 책임 및 성매매 구매 책임 - 마약과 같이 판매자와 구매자 전부 처벌할 것이 아니면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 술담배는 성년도 해로운 것이 맞음으로 2차 성징 이후 전체 허용을 하던가 아니면 전체 금지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본다. 성매매 처벌은 종교 가치에 의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금지 자체가 부당하다.


노동 조합 -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은 체제에 부적합하다. 노동자 집단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주의적이어야 한다.


호봉제 - 역할 수행과 기여도에 따라 이익을 얻어야 가치 생산을 많이 하는 인간이 희생되지 않을 수가 있다.


성범죄 유죄 추정 - 법 앞의 평등이 필요하다.


지역 활성화 - 특정 지방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할 수는 없다. 공공 기관을 이전했을 때 그 외의 다른 지역의 개인이 그곳에서 살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지역 활성화는 공공 기관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닌 개인의 손에 달려 있다. 수도권 과밀화는 개인의 의사로 결정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죄 - 책임 소재가 일방적이어서 미성년의 놀이 도구가 되었다.


토지 민주주의 - 토지 소유자가 적은 시점에서 토지의 이익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지역 대표는 온전한 민주주의 대표라 하기 어렵다. 


동성 결혼 금지 - 권장될 수는 없지만 금지할 수도 없다. 금지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과하게 침해한다.


전관 및 현관 예우, 유착, 담합, 관행, 인맥 취업  - 종교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 체제에 불합리한 태도다.


여성성 억압 - 여성 성적 대상화 및 상품화 금지는 여성 개인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킨다.


미성년 권리 - 보호를 명분으로 과하게 권리를 박탈하면서 사회 전체가 불합리하게 된다.


산업 비효율 - 산업 전기 요금을 과하게 적게 책정하거나 좀비 기업을 억지로 살리는 것은 그 외의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시장 원리와 무관하여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노동 경직성 및 불필요한 하청 - 하청에 하청으로 수수료만 추가되는 것은 구매자나 판매자 모두 손해에 해당한다. 불필요한 하청이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


권위 집단 - 선호되는 역할임에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높여 능력자의 과밀화 현상을 부추긴다. 지금 의사는 지나치게 과하게 몰리고 있다. 다른 모든 분야를 희생시켜 이익을 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시장을 고려해야 한다.


이혼 재산 및 양육권 - 재산 기여도가 없거나 적어도 일방적으로 반반이 되거나 양육권을 일방적으로 여성이 유리한 것은 부당하다. 이것은 가부장제 시기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관습에 불과하다. 


길 짐승 먹이 - 길 짐승을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은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대등하다. 윤리 핑계로 일방적으로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부당하다.


사생활 개인 정보 - 전체 안전 명분으로 지나치게 개인 정보를 많이 수집하며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이 외에도 전반적으로 전체주의적이다. 하나 같이 파탄나는 제도들은 그만큼 체제에 부적합하여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사회 복지가 불합리하여 사회 구조 유지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시장 원리가 훼손되어 제대로 동작되지 못한다. 이런 제도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런 현상은 개개인의 손익과 무관하게 단순히 체제에 부적합할 뿐이다. 지금까지 모든 한국인은 당근 주스를 넣은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 뒤에서 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고생하고 있다. 기름으로 돌아가는 것을 당근 주스로 돌리기 위해 인간이 직접 밀고 있으니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이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고 분노해도 체제에 불합리하면, 그 고민과 걱정과 분노가 사회를 망친다. 그게 체제 불합리다. 이런 불합리로 누군가는 이익을 얻는다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손해를 보게 된다. 육체가 붕괴하면 육체에 속한 모든 세포가 손해를 보듯 사회가 붕괴하면 사회에 속한 모든 개인이 손해를 보게 된다. 사사로운 손익이 아닌 단순히 공멸한다. 기준이 명확하고 알기 쉬워야 합리적인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공존이 가능하다.






II. 사회 권력


역할에 맞는 권력 행사가 가능해야 한다. 현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권력이 강해서가 아닌 약해서이다. 개인 권력은 강할 수 있지만 역할 권력은 지나치게 약하다. 그래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유착과 비리를 저지르고 개인의 이익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명분으로 권력자의 권력이 약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역할 수행에 필요한 권력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을 역할에 맞게 쓰느냐 쓰지 않느냐는 다른 문제다. 비리, 유착, 담합 등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역할 권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사회 운영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이 세금이다. 세금이 있어야 운영이 성립되므로 세금을 걷는 역할의 권력은 보장되어야 한다.






III. 사회 복지


사회 복지는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전부 고려해야 한다. 사회 복지는 쉬운 것이 아니다. 인간 육체 밸런스를 사회 단위로 하는 것이다.







IV. 사회 안전


사회 안전은 역할에 따른 권한을 명확히하여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한다. 권한이 불분명하니 본인이 안전에 신경써야 할 범위를 정확히 몰라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권한에 강제력을 인식하기 위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가치 생산 현장을 예로 들면 관리 측면에서 제대로 해도 생산자가 안전에 소홀하여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관리 측면에서 안전에 소홀하여 생산자가 안전에 신경써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 안전 사고는 역할 권력 부족과 책임 소재 불분명과 안전 불감증에 의한다.






(3) 생산


I. 시장 구조.


현재 정부가 시장 관련해서 어려운 것은 합리적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말 듣고 저말 듣고 하면서 진행하려고 하니 꼬이게 된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시장 자체가 개개인의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가치의 상대성을 전제한 제도다. 존재의 절대성을 근거로 시장 구조를 유지하고 가치의 상대성을 근거로 시장 원리를 실현한다. 


예를 들어 가산점이나 할당제가 그렇다. 개인의 평등한 경제권은 시장 참여권에 속한다. 이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스포츠 경기에 참여할 권리는 동등하나 경기 결과에 따라 얻는 이익은 다르다. 시장에 참여할 권리는 동등하나 시장 원리에 따라 얻는 이익이 다르다. 정부는 시장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지 시장 원리로 얻는 이익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통해 시장 참여 권리를 보장하면서 시장 원리를 실현한다.


출산 휴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기업에게 전가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아 불합리하다. 정부가 책임지고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만큼의 세금을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명분으로 걷는다. 물론 이러면 출산 휴가를 악용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개인당 보장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면 된다. 시장 원리 외의 손실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시장 원리를 실현한다.


모든 형태의 유착과 담합을 막는다. 모든 시장은 개인주의적으로 모든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야 한다. 그것으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시장에는 연령도 인종도 성별도 없다. 오로지 개인과 역할과 용도만 있다. 인종, 성별, 지역 등으로 할당하는 것은 개인을 고려치 않은 전체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생존권은 복지로 보장하여 시장 원리가 동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야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가 된다.


시장 구조 유지를 위하여 가치 생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욕망을 부추기고, 지나치게 많은 부를 대물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부의 대물림에 집착하는 것은 종교 가치의 흔적이다. 개인으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II. 노동 시장.


노동 시장은 노동력 임대 상품을 가진 상인의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을 말한다. 통상 기업이 사고 노동자가 판다.


개인의 경제권과 연결되어 윤리 경영을 말하기도 하는데, 종교 극단주의자가 윤리 경영을 하겠다고 하면 그게 옳아 보이는가? 오늘날 윤리는 그냥 종교 가치일 뿐이다. 차라리 체제 합리 경영이 적절하다. 


노동 시장에 있어 가산점이나 할당제는 집단에 적용할 것이 아니다. 강자인 흑인과 여성이 있을 수 있고 약자인 백인과 남성이 있을 수 있다. 노동 시장의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개인은 공정하게 경쟁을 한다. 


그 뒤에 존재의 절대성을 근거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가치 생산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인에게 추가적인 가치 생산 지원금을 지원하는 것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한다. 장애인과 같은 약자는 불쌍해서 돕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강제로 지원하는 것일 뿐이다.






III. 소비 시장.


선분양제. [건설]


선분양와 후분양은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선분양의 단점은 이미 팔았기 때문에 대충 짓는 것에 있다. 간단히 말해 QA와 QC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에 선분양은 구매자에 의한 품질 검사 의무화를 하고 나서, 계약한 품질에 맞지 않으면 계약 취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IV. 금융 시장.


전세. [금융]


지금 전세 제도 은행 지원은 사실상 곗돈에 은행이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금융을 금지할 수는 없어도 권장할 수도 없다. 






(4) 소비


I. 소비 한계.


소비할 권리는 보장되나 사회, 체제, 자연 등의 존재를 붕괴시킬 수 있는 소비는 금지 된다.






II. 사회 한계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인신 매매와 심각한 마약은 허용될 수 없다.






III. 체제 한계.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해 토지 소유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시장 원리의 정상 작동을 위해 토지의 개인 소유는 적절치 못하다. 토지 소유는 태양 빛을 소유하는 것과 비슷하게 자연에 속한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므로 태양, 빛, 공기, 토지 등과 같은 자연은 개인 소유가 한정적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소유한 것을 강탈하는 것은 할 수 없으므로 점진적으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여 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은 생산을 통해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IV. 자연 한계.


자연 구조 유지를 위해 천연기념물을 소유 및 매매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현재 자연은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상태이므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과하게 파괴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시장에서의 자연 한계는 소비하지 않음을 말한다면 지구 환경에서의 자연 조작은 조작함을 말한다.






(5) 관계


I. 관계 논리.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질서는 논리적이어야 한다. 논리는 이치로 이끌어가는 과정. 이치는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와 체제. 즉 종교 가치를 기초한 자연법은 비논리에 해당한다. 자발적 성매매나 성관계 영상 판매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은 종교 가치를 근거로 한 것인지 체제 가치를 근거로 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공법은 기본적으로 존재에 속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불가능하여 강제력을 행사해야 하는 부분을 다뤄야 하고, 사법은 기본적으로 가치에 속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가능하여 자유롭게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바라는 부분은 다룬다. 공법과 사법을 구별하는 것을 긍정하는 측이 있고 부정하는 측이 있는데, 존재의 강제와 가치의 자유로 구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본다.


존재 질서에서는 보통 공법을 다룬다. [공법: 1. 국가나 공공 단체 상호 간의 관계나 이들과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 공법에는 헌법, 행정법, 형법, 소송법, 국제법 등이 있다.


가치 제어에서는 보통 사법을 다룬다. [사법: 1. 개인 사이의 재산, 신분 따위에 관한 법률관계를 규정한 법. 민법, 상법 따위가 있다.]


법원은 체제를 기초로 한 헌법과 헌법 테두리 안에서 입법된 법률을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기준은 존재에 속하고 수단은 가치에 속한다. 기준은 강제력이 있으나 수단에는 강제력이 없으므로 개인이 기준에 속하는 사회와 체제 구조 훼손이 명백할 경우가 아니라면, 강제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에는 주권을 가진 개인이나 권한을 가진 수사 기관이 강제력을 행사한다. 그 강제력을 통해 당사자를 법원에 강제로 불러 법관의 판단으로 존재 훼손일 경우 그에 대한 양형 판단이 이루어지고, 존재 훼손이 아닐 경우 강제력을 행사한 개인이나 수사 기관에 패널티가 부과된다.



존재 질서에서 법은 기본적으로 판단하지 않아도 명확한 것에 속하는 것을 다룬다. 사회와 체제 구조에 속하는 생명권, 자유권, 주권 등이 그러하다. 거기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불가능한 것을 다룬다. 대응이 가능함에도 형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의 과잉 행사가 될 수 있다. 간통죄를 처벌하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그렇기에 간통죄는 폐지되었다. 


자유권은 주권에 의해 모든 개인의 자유를 보장되므로 특정 개인의 일방적인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그렇다. 이 중 대응 가능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통상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거나 사법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응 불가능한 모욕과 허위 사실 명예훼손은 공법에서 고소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명예훼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허위 사실 명예훼손이 있는데,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는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에 속하여 사법에서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고, 허위 사실 명예훼손은 허위는 판단할 수 없이 잘못이 분명하므로 존재에 속하여 공법에서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공법으로 판단하는 것이나 허위 사실 명예훼손은 사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II. 존재 신용.


존재 탐구, 존재 유지, 존재 신용의 공통점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하고 탐구한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 생각하고 유지한다. 거기에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하고 관계를 맺는다.


존재 신용은 반드시 신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관계를 맺는다. 경찰은 법을 준수하고 시민을 보호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신용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신용한다. 건설사는 튼튼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신용한다. 이런 신용을 통해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 특정 절차를 생략하면서 사회적 비용을 절약한다. 만약 신용이 깨지면 경찰을 의심하고 의사를 의심하고 건설사를 의심하면서 그에 따른 추가적인 절차가 생기는 것으로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일부 의사가 대리 수술을 하여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용이 깨지니 CCTV라는 추가적인 절차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한 사회적 비용 손실은 얼마인가? 대리 수술을 맡긴 인간은 그만한 손실을 만든 것이다.


존재를 믿고 절차를 생략한다. 절차를 생략하며 사회적 비용을 절약한다. 절차 생략에 따라 절약한 비용을 계산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신용을 악용하여 부당 이익을 챙긴 이들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종교 가치로 존재 신용을 훼손하여 추가적인 절차로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 등을 낭비하게 한 인간을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감싸지 말고, 비용 낭비에 대한 조치를 취하여 신용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신용 훼손 방치해놓고 추가적인 절차가 나오자 그제서야 대안 없이 무작정 반발하는 것은 부당하다. 신용을 되찾기 위해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추가적인 절차가 싫다면 손실을 각오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III. 공적 평등.


인간 관계에 있어 공적 관계는 강제할 수 있다. 갑질 꼰대질을 막고, 법 앞에 평등하게 판단한다.






IV. 범죄 수익.


현재 범죄 수익은 시스템 특성상 금액이 클수록 처벌이 낮아질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범죄 수익이 크면 보통 이익을 혼자서 얻는 일이 드물다. 범죄 수익을 조금이라도 얻은 인간을 전부 따로따로 접근해야 한다. 머리뿐만 아니라 꼬리를 대량으로 잘라버리면 이후에 꼬리가 머리를 따르지 않게 되면서 동일 범죄가 줄어들 수가 있다. 머리만 자르면 꼬리에 의해 또 다른 머리가 그만큼 성장할 수 있지만, 꼬리도 대량으로 자르면 또 다른 머리가 그만큼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범죄 또는 범죄 방기는 종교 가치인 윤리에 의해 정당화되기도 하는데 체제 가치로 보면 부당하다.






3) 가치 제어


(1) 개인


I. 존재 가치.


존재 가치는 존재에 속할 가치를 말한다.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어 존재에 속하게 되면,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정당화된다. 특정 존재가 일정 이상 가치가 높다 느껴지면 존재 질서의 강제력 개념이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존재 유지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 국가든 회사든 가족이든 인간이든.


존재에 속할 가치가 없어 존재에 속하지 않게 되면,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특정 존재가 일정 이상 가치가 낮게 느껴지면 존재에서 이탈한다. 국가는 국적 포기를 하고 회사는 퇴직을 하고 가족은 가출을 하고 인간은 자살을 한다.


존재 가치에 의해 체제가 바뀔 수 있게 된다. 왕정에 속할 가치가 없다 느끼면 혁명을 일으켜 민주정 체제로 바꿀 수가 있다.


존재는 존재 가치에 따라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통상 개인이 가장 우선되나 윤리 등의 이유로 가족이나 국가가 우선될 수 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이 우선되면서 계약에 따라 사회 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가치의 상대성은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성립된다. 존재의 절대성은 존재 가치에 의해 성립된다. 존재 가치는 가치로 가치의 상대성에 속한다. 즉 존재의 절대성은 가치의 상대성을 통해 성립되게 된다.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의지.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 의지가 된다.


존재에 속할 가치는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의 경우에는 누구는 외모가 되고, 누구는 학력이 되고, 누구는 돈이 된다. 외모일 경우 외모를 지적받거나 외모가 늙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용어인 아저씨나 아줌마에 불쾌하게 느끼게 된다. 학력일 경우 학력이 다른 학교가 같은 평가를 받으면 불쾌하게 느끼게 된다. 돈일 경우 재산이 다른 인간이 같은 평가를 받으면 불쾌하게 느끼게 된다. 극단적으로 가면 외모가 좋지 못해지거나 입시에 실패하거나 재산을 잃으면 죽는다. 


자살을 막으려면 자살을 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 아니라 존재에 속할 가치가 있다 여기게 해야 한다. 특정 가치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로 존재에 속할 가치를 느껴야 한다.



존재는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유지되지 못하게 된다. 본인의 존재 가치 레벨이 100이라 여길 때, 100 이하의 환경일 때에는 결핍이 충족되지 못하여 불행하고 100 이상일 때에는 결핍이 충족되어 행복하나 동시에 존재 가치 레벨도 오르게 된다. 알기 쉽게 비유하면 생활비를 월 100만원 쓰다가 80만원 쓰면 불행해지고 120만원 쓰면 행복해하나 기준 또한 120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풍요로운데도 과거보다 불행한 것은 존재 가치 레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 가치 레벨과 행복의 원리인 결핍의 충족에 의해 돈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고 아무리 많아도 불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히 돈뿐만이 아니라 환경에 속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명예, 권위, 우위 등 평소보다 낮으면 불행해지고 높으면 행복해지나 기준 또한 높아진다.


연령 차별을 보면 알기 쉬울 수 있다. 장유유서 가치에 영향을 받은 인간은 연상이 연하에게 우대 받는 것이 당연하다 느낄 것이다. 존재 가치 레벨이 연하에게 우대 받는 만큼 높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하에게 반말을 들으면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것으로 불행해지게 될 수 있다. 이는 모든 영역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우대 받다가 우대 받지 못하면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것으로 불행하게 된다. 과거 신분제의 귀족과 제국주의 자본가, 현재 PC주의의 흑인과 여성주의 여성 등이 그럴 수가 있다.


존재 가치 레벨 개념을 파악하면 성장과 행복 제어가 가능해진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 레벨을 높이면 그 레벨에 다다르는 환경이 갖춰질 때까지 불행할 수 있지만, 그 레벨에 다다르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여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 레벨을 낮추면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쉽게 갖춰지면서 행복할 수 있지만, 성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 욕망이 연료라면 존재 가치 레벨은 도달선이다. 인간은 욕망이 없어도 성장하지 못하고 존재 가치 레벨이 낮아도 성장하지 못한다.


존재 가치 레벨의 성질상 개인이 성장과 행복을 모두 하기 위해서는 성장하기 위해 무조건 존재 가치 레벨을 높일 수도 없고, 행복하기 위해 무조건 존재 가치 레벨을 낮출 수도 없다. 존재 가치를 제어하여 필요할 때마다 레벨을 높였다 낮추면 성장과 행복을 둘 다 할 수 있게 된다. 성장이 필요할 때에는 “나는 이 정도의 환경에 맞지 않으니까 성장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야 해” 라고 생각하면 되고, 행복이 필요할 때에는 “나는 이 정도 환경이 맞으니까 만족하며 살아야 해” 라고 생각하면 된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다른 사람의 생활 환경을 보면서 존재 가치 레벨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데 욕망은 윤리에 의해 잘려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만족할 수 있는 기준점은 굉장히 높은데 연료는 지나치게 부족하면서 보편적으로 불행하면서도 성장도 못하고 있다. 존재 가치를 제어하면서 욕망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II. 결핍 충족


행복의 원리는 결핍의 충족이다. 모든 결핍의 충족이 아닌 정당한 결핍의 충족이다. 허기진 상태를 불행하다 느껴도 부당하다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허기를 충족하면 행복을 느낀다. 목졸린 상태를 불행하다 느끼면서 부당하다 느낀다. 그래서 산소를 충족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목졸린 상태를 부당하다 느끼지 못하면 목을 졸랐다 푸는 것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게 보통 SM에서 M에 해당한다.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으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 환경이 정당하다 느꼈기 때문이고, 존재 가치 레벨에 상응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을 때 인간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그 환경이 부당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핍의 충족이나 결핍의 정당성과 부당성과 별개로 지루하여 불행할 수 있다. 이는 결핍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도한 도박과 마약은 행복 원리를 망가트려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일부 한국 여성이 환경에 비해 감사 지수가 낮고 불안 지수나 피해 의식이 높은 것은 여성주의 사상과 보호자가 존재 가치 레벨을 지나치게 높이면서도 환경이 부당하다 지속적으로 주입했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 대중 교통 이용시 좌석이 떨어지게 되면 동행자와 같은 자리에 있기 위해 타인에게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일이 있다. 이럴 때 바라는 것이 생기면서 결핍이 발생한다. 타인이 자리를 양보하면 결핍이 충족되면서 행복을 느낀다. 타인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양보 거부가 정당하다 느끼면 수긍하고 넘어가지면 부당하다 느끼면 억울하고 화가 날 수 있다. 이타주의에 의해 타인이 본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게 되면 희생 거부를 부당하게 느낄 수가 있으면서 황당한 불만이 나오게 된다.


존재 가치를 제어하여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큰 기준으로 제어하는 것에 해당한다면, 그 외 결핍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제어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보통 작은 기준으로 제어하는 것에 해당한다. 


한참 학습이나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것에 의해 발생하는 결핍을 부당하다 느낄 수가 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그러면 학습이나 일이 멈추거나, 끝이 나서 결핍이 충족되어도 불행하게 된다. 이것을 정당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잘 안될 경우에는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도 제어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부당함에서 벗어난다. 현실 도피다. 보통 목표가 큰 인간은 존재 가치 레벨이 높아 일반 환경의 결핍은 부당하게 느끼는 것으로 불행하게 되는데, 큰 목표를 주관적으로 크지 않다고 여기거나 현실 도피로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 이것을 타인이 강요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나 본인이 제어해서 적절히 행복을 느끼는 것은 정당하다.


일상적인 때에도 결핍의 정당 부당은 적용된다. 깜빡 잊은 일에 의해 되돌아가는 상황이 생길 때 그것을 정당하다 느끼면 별 감정이 없지만 부당하다 느끼면 짜증과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


연애 등의 인간 관계에서 다른 인간의 말에 의해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결핍을 부당하다 느끼게 될 수가 있다. 특정 인간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도시락을 싸는 것을 본 다른 인간이 그것을 부당한 것이라 강요할 수 있다. 그러면 도시락을 싸는 동안 생기는 결핍을 부당하다 느끼면서 그런 애정의 행위가 사라지게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주위에서 부당하다 강요하여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현재는 여성이 남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주위에서 부당하다 강요하여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게 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면 온전한 행복도 얻을 수 없다. 가치 제어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III. 추가 가공.


성년 이후 가공을 다룬다.


인간은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가공하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IV. 가치 충돌.


인간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존재와 가치로 기본적으로 나눈다. 표현의 자유는 발언권에 속하여 통상 직접적인 물리적 손상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존재보다는 가치에 속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에 속하여 명예 또한 존재 유지에 중요하게 되기 때문에, 명예훼손도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명예훼손은 판단할 수 있으므로 가치에 속하기 때문에 존재로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허위사실 명예훼손은 허위사실의 경우 잘못되었음을 판단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므로 판단하지 없는 것에 해당하여 존재에 속하게 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해 사실이면 대부분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며 손해가 크다 판단되면 민사에서 해결해야 하고, 거짓이면 거짓의 경우가 매우 분명하면서 손해가 크다 판단되면 형사에서 해결한다.



국가보안법. 사회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남아있는 불필요한 법이다. 체제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공산주의 같은 가치도 이해 못하고 인식 탐구에 머무른 비과학적인 사상을 주장할 수가 없다. 북한 체제를 옹호할 수도 없다. 진보를 자칭할 거면 최소한 학문적인 의미로 해야 한다. 민족주의든 뭐든 종교 가치를 근거로 주장하는 게 진보일 수가 없지 않는가? 체제 이해를 하고 나면 분단되어 있다 하더라도 필요 없는 법이다. 체제 이해 후에 불필요한 법을 없애고 체제 합리를 해야 한다.



인간 외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인간 외는 통상 존재에 속하지 않으므로 존재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짐승, 시신, 태아 등이 바로 그렇다.


짐승은 사회 구성원에 속하는지 아닌지 결정하여 판단한다. 짐승은 인간이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존재에 속하지 않음이 분명하여 짐승 보호를 강요하는 것을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시신은 이미 인간이 아니므로 각자 알아서 예우가 적절하다. 시신은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하기 때문에 존재에 속하지 않음이 분명하여 시신 보호를 강요하는 것을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태아는 인간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으므로 가치로 판단하여 결정한다. 태아는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에 속하여 집단에 따라 강제할 수도 있다.



태아가 인간이라면 존재에 속하여 낙태를 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있다.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면 존재 속하지 않아 낙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있다. 그런데 태아가 인간인지 아닌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지역에 따라 결정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나는 자아 자각 이후 인간이 된다는 입장에서 자아 자각이 가능한 지적 장애 인간은 인간, 자아 자각이 불가능한 식물 인간이나 태아는 인간이 아니라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낙태는 타당하다 본다. 그러나 시신에게도 예우를 갖추는 것을 고려하면 태아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대상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었던 존재와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에 마땅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 단순히 임신 중지라 부르는 것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일부 낙태를 남성의 자위로 비유하는 인간이 있기도 한데, 생명의 가능성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야 성립된다.


만약 태아가 인간이라면 존재에 속하여 낙태를 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가 있으나, 인간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복지 정책 등이 들어가야 한다. 즉 임신한 여성은 두 명 이상의 복지 비용을 받을 권리가 생기게 된다. 


어떤 존재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을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 가치는 상대적이므로 타인에게 가치를 강제할 수 없지만 존재는 절대적이므로 타인에게 존재를 강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짐승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해당 짐승을 존재에 속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러면 그만큼의 정책적 지원을 통한 재정 손실이 발생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짐승에게 주권을 줄 것이 아니면 보호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강제할 수 없다. 이는 가상의 존재도 포함된다. 






(2) 집단


I. 성애 가치.


성애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권장할 수는 있다. 이성애를 권장해야 출산이 이뤄지면서 사회 구조가 유지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분명 출산은 사회 구조 유지에 필수적이나 당장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에 강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가치를 제어해야 한다. 


PC가 유행하는 미국에서 신세대는 동성애가 늘었다고 한다. 성애가 취향인 상황에서 동성애 가치가 권장되면서 늘어난 것. 성애는 자유지만 사회 구조 유지를 위해 이성애가 권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존재와 가치가 공존된다. 



자연 상태 + 영양 충족 = 고출산이나 생존이 힘들다.

왕정 + 종교 가치 = 종교 가치에 의해 저출산이나 강제로 출산율을 유지한다.

민주정 + 종교 가치 = 종교 가치에 의해 저출산인데 자유로 출산율도 유지하지 못한다.


현재 한국 저출산은 대략적으로 위와 같은 것으로 발생했다. 자유롭게 되었는데도 종교 가치로 미성년의 성을 터부시하면서 성에 관해 미숙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저출산이 발생했다. 현재 20대가 60대보다 성관계를 덜한다고 한다. 수백 년에 걸친 성 터부시의 결과다. 60대는 과거 강제로 이성 관계를 배웠는데 20대는 강제하지 않으면서 이성 관계를 배우지 못했다. 강제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이성 관계도 불가능한 것이 현재 한국이다. 그러니까 출산율이 낮고 이혼율이 높은 것이다.


저출산 대책에 집, 출산 등을 하는데, 그것은 성애 가치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 가치를 제어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성 관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 거기에 돈을 쏟아봐야 의미가 있겠는가?



성교육에서 성애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연 계열 지식만 가르치는 것은 그동안 이성 관계는 집단의 의사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발정과 성애는 다르다. 발정은 본인의 쾌락에 주로 가치를 느끼고 성애는 인간 관계에서 쾌락을 포함한 다양한 것을 얻는 것에 가치를 느낀다. 발정을 배제하서도 안 되지만 발정만 가져서도 안 된다. 발정을 배제하면 성애가 성립되지 못하고 발정만 가져서도 성애가 성립되지 못한다. 성적 대상화 반대는 발정만 하는 것을 보고 반대하면서 발정을 필요로 하는 성애도 막아버리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그러면서 이성 관계가 파탄난다. 성적 대상화는 필요하다. 발정만 하는 것이 아닌 성애로 이어지도록 가치를 제어하면 된다.


성적인 것을 언급하기만 하면 더럽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거 자체가 잘못되었다. 성은 죄가 아니다. 더러운 것도 아니고 신성시할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집단이 개인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북한은 극빈으로 저출산이 일어나는데 그것보다 낮은 한국 출산율을 보고도 단순 경제 원인이라 보이는가?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정조관념 등과 같이 개인의 의사로 하는 자유 연애 가치가 굉장히 낮았던 국가였음을 상기하자. 한국 저출산을 보고 정치가 탓을 하는데,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윤리 문제다. 윤리 문제 -> 학문 문제 -> 인식 일탈에 의한 인간 한계였던 것으로 이어진다.


14세 이후 미성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모두 보장. 18세 이전에 모든 개인이 외모를 가꾸는 등을 통해 성적 매력을 키워서 이성 교제와 성관계를 경험한다. 강제할 수 있는 미성년 시기에 체제, 관계, 생산을 모두 알게 해야 한다. 성년이 되고 나서 대부분이 결혼이나 동거를 한다. 결혼과 동거를 하더라도 출산은 강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출산에 의한 사회 진출 불가를 걱정할 것이 아니다. 되려 같이 살면 시간과 자원 효율을 통해 개인이 행복하고 사회가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이건 최소한의 조건이다.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구조를 유지하려면 성애를 막아서는 안된다. 흔히 성년이 되면 알아서 연애하고 결혼한다 말하면서 미성년 시기 꾸미는 것과 성을 터부시하는데, 실제 안하잖는가? 이것은 가치에 의해 나타난 인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윤리는 특정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강요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성년 성애를 가치 제어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출산율이 0.7까지 떨어져도 본질적인 원인조차 모른다.


성애를 통해 관계가 이뤄지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존재에 속할 가치를 유지해야 존재에 속하면서 존재 유지가 된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부부가 되었다 해서 꾸미는 것을 끝낼 것이 아니라 꾸미면서 서로가 부부 관계에 가치를 느끼게 해야 한다. 


임신이나 출산도 절대적 이익을 얻기 위해 과하게 힘들다고 여성들에게 주입하지 말길 바란다.



저출산에 관해서는 이미 늦었다거나 적정 인구수로 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은 성애 가치 제어 실패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만약 인공 자궁이나 불로불사를 통해 출산율을 높일 필요가 없어지더라도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 관계를 위해 성애 가치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제발 좀 썩은 종교 가치에 휘둘려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되자. 


사랑하기 싫거나 어렵거나 늦은 인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서로가 미워하는 사회가 유지되길 바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누구든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사랑하는 상대를 찾길 바란다. 국제 결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그렇게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 미워하는 사회가 유지되는 것을 바라지 않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강제할 수 없지만, 통치 관점으로 가치를 제어하고 특정 가치를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자유를 훼손하는 것으로 자유 가치를 낮추는 주장이나 이성애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성애 가치를 낮추는 주장 등을 비판할 수 있다. 자유의 경우에는 실제 실행하여 자유 훼손을 하면 존재가 되어 강제로 막을 수 있게 되고, 주장만 하는 경우에는 가능성으로 가치가 되어 자유롭게 비판을 할 수 있게 된다.


과거 가부장제에서는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란 역할로 권리와 의무가 정해져 있었는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권리 신장이 되면서 그런 고정 역할이 폐지되는 것으로 합리적 기준이 사라지는 바람에 기준 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바람에 서로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II. 개인 이익.


모든 집단은 개인주의적이어야 한다.


국가와 같이 모두가 주권을 가지는 것으로 국가 이익이 개인 이익이 되거나 기업과 같이 시장 제도를 통한 계약 관계로 계약 준수가 개인 이익이 되게끔 해야 한다.


집단이 없을 수는 없으나 정당이든 노동 조합이든 집단 이익이 아닌 개인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권리가 보장된다.집단의 손해가 된다 여겨지면 배신자라 말하며 공격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부 고발도 안되는 것이다.






III. 매체 유행.


매체가 유행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체제에 적합한 생활 양식을 갖추도록 가치를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체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가치 제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의지와 정부의 법, 정책, 제도로 해야 한다.


매체에 대한 제재는 존재를 해치는 거짓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IV. 모범 집단.


모범이 될만한 집단을 통해 다른 집단을 체제에 맞게끔 한다.


모든 개인은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집단에 속하면 집단의 흐름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러므로 그렇지 않은 집단이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가치 제어를 한다.






(3) 생산


I. 가치 장악.


윤리 개념 체계로 가치 장악 개념을 이해해보자.


첫째, 모양. 질서와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모양이 질서와 같아 윤리에 의한 생활 양식이 나타난다.


둘째, 성질. 절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절대적 가치에 해당하여 윤리 성질상 가치 강요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윤리 모양인 질서와 윤리 성질인 절대성에 의해 가치를 절대적으로 강요하며 가치로 이뤄진 집단을 위한 희생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전체주의 현상이 나타난다.


셋째, 구조. 계층별로 구조가 이루어져있다. 하나, 특정 집단의 가치 장악. 둘, 장악한 가치의 절대성 주장. 셋, 힘에 의한 사회 선택. 넷, 가치의 사회 장악. 특정 집단이 장악한 절대적 가치가 힘에 의한 사회 선택으로 사회를 장악하게 된 것을 가리켜 윤리라 부른다. 윤리가 된 과정이 구조로 남아 형태를 유지한다. 가치 장악, 가치의 절대성, 사회 선택, 사회 장악 중 하나라도 없어지면 구조가 붕괴한다. 예를 들어 반말 문화가 퍼지면 장유유서 구조가 붕괴하면서 점점 윤리가 아니게 된다.


넷째, 원리. 선과 악이다. 절대적이라 주장하던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만들면서 윤리를 성립시킨다. 선과 악으로 나뉘어 가치가 다른 이를 악으로 규정하고 마녀, 이교도, 빨갱이, 반동, 우월주의자, 차별주의자 등으로 공격한다. 여기서 신비나 학문 등과 같은 특성은 가치의 절대성을 공고히 할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종교 전쟁, 이념 전쟁 등 모든 가치에 의한 분쟁은 윤리 원리상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윤리 질서 안에서는 선과 악의 원리가 굉장히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윤리 질서 밖에서는 선과 악의 원리가 불안정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다섯째, 동력. 윤리 이용 인간은 이익 추구를 동력으로 삼고, 윤리 이용 대상은 현실 도피를 동력으로 삼는다. 만능 도깨비 방망이다. 이 가치를 추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하고 이익을 얻고, 그런 말을 듣고 현실 도피한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가치의 절대성은 인식 탐구 결과로 다른 인식 탐구 결과처럼 맞을 때도 있지만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절대적으로 여기던 가치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때에는 가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억눌러왔다.



현재 인류에서 보편적으로 사회를 장악한 가치인 윤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현재 보편적 종교는 이런 식으로 장악한 가치로 사회 장악을 했다. 사회 질서를 위한 금욕, 희생, 공경 등과 현실 도피를 위한 사후, 천국, 환생 등의 가치를 만들어 장악하고, 장악한 가치가 힘의 의한 사회 선택을 받는 것으로 사회를 장악한다. 종교 가치에 이로운 것을 선이라 부르고 해로운 것을 악이라 부르며 종교 가치에 이로운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여 가치를 절대적으로 만들고 사회 장악을 유지한다.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여 질서가 되면서 얻은 막대한 이익으로 세를 불려나간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하고 원하는 대로 살게끔 조정한다.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고 자선과 같은 가치를 실행하면서 가치 장악과 사회 장악을 유지한다. 그렇게 해서 사회를 지배한다. 


금욕과 희생과 같은 결핍을 윤리로 만들어 강요하는 것으로 천국에 가서 행복하고 싶다는 것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천국과 같이 반드시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믿는 바람에 결핍의 충족이 행복의 원리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존재의 절대성은 존재 가치로 결정되므로 존재에 속하면 존재, 존재에 속하지 않으면 가치다. 그렇게 하여 죽음조차도 가치 제어를 할 수 있게 된다. 일부 불법 종교에서는 죽음 가치를 장악하고 장악한 죽음 가치의 사회 장악으로 사회에 속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가치 있다 여기고 죽게 만들 수 있다. 



금욕주의, 이타주의, 종교 가치 등 모든 가치는 단순히 사회를 장악한 가치일 뿐이다. 코인을 통해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코인이 신 기술과 도박 가치 등을 장악하고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자 유행하게 되었다. 코인을 가치 높다 여기면 이런 식이다. 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현명하고 코인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코인을 윤리로 만들면 이런 식이다. 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선이고 코인을 투자하지 않는 것은 악이다. "코인 투자하는 너는 착하구나" "코인 투자하지 않는 너는 나쁘구나" 선과 악은 이렇듯 특정 가치에 이롭고 해로운 것에 불과하다. 종교 가치는 천국과 연결하여 가치를 높였다면 코인 가치는 높은 수익 실현으로 연결하여 가치를 높일 수가 있다.


가치 장악 개념을 이해하면 가치를 판단하는 입장이 되고 이해하지 못하면 가치에 판단되는 입장이 된다. 가치를 판단하는 입장이 되면 종교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유교 가치는 코인 가치와 다를 바가 없다. 단언한다. 유교 가치가 없더라도 사회 영향은 없고, 되려 없어야 체제 합리가 되면서 보다 많은 개인이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가치 장악 개념을 이해하면 어떤 식으로 생산을 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이 가치 있다 여기는 것에 의해 수요가 나타나므로 시장의 숫자는 사회를 장악한 가치의 거래를 수치화한 것이다. 영국 골뱅이 어획은 오로지 한국인을 위해서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골뱅이라는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여 가치가 높아 팔리고, 영국에서는 골뱅이라는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지 못하여 가치가 낮아 팔리지 않는다. 


이익을 얻기 위한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거래를 통해 숫자가 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다. 사회를 장악한 가치와 장악해야 할 가치와 장악한 가치의 사회 장악 방법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는 새롭게 가치를 만들어 장악한 후에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하게 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가치의 상대성이 적용되므로 호불호까지는 가능하나 일부를 제외하면 윤리처럼 선과 악으로 나뉜 극단적인 분쟁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시장에서 가치를 장악하면 품목에 따라 독과점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시장 구조 유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주권자가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시장 경쟁 참여자는 스포츠 경기 선수와 같이 규칙 내에서 승리라는 본인 이익만을 위해야 한다. 그래야 스포츠 경기가 성립되듯이 그래야 시장 경쟁이 성립된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시장에서의 가치 장악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스마트폰. 애플의 아이폰이 엄청나게 잘 팔리는 것은, 애플이 장악한 가치가 사회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인기 있는 것은 10대들의 막연한 선망이라는 삼성 임원의 진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막연한 선망이 나타난 것은 애플이 10대가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한 상태기 때문이다. 혁신, 명품, 예술, 변화, 성능, 공유 등의 10대가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하여 10대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이런 것을 단지 가격과 성능 가치로만 맞서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하다. 쿠팡이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고 빠른 속도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에 맞게끔 배송 가치를 장악하고나서 유통을 장악해가고 있는 것과 같이, 대상이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해야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애플이 장악한 가치에 맞서는 것은 어렵다. 혁신은 스마트폰의 개념을 바꿀 수 있을 정도가 있어야 가치 장악이 가능하다. 명품이나 예술은 10대를 겨냥한 제품을 만들어도 따라가기 급급할 것이다. 성능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당장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애플의 독자적인 운영 체제 공유에 맞서는 것은 타 기업과 연계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외의 가치를 장악해야 한다. 삼성 임원은 고등학생이 되면 갤럭시를 쓸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것을 실현시키면 된다. 바로 장래희망이다. 최근 전문직 선호가 늘어나면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약 20%가 의학 계열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전문성이다. 이미 애플이 장악한 가치보다는 전문성 가치 장악에 투자한다. 전문직을 비롯해 다양한 전문가들에 특화된 스마트폰을 설계한다. 아이돌이 무대에서 아이폰을 썼던 것과 같이 전문가가 드라마와 영화에서 갤럭시를 쓰도록 한다. 현실에서도 전문가들이 절반 이상 쓰도록 유도한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뿌리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설문 조사하여 전문가에 최적화하라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홍보용으로 뿌려봐야 가치 높다 여기지 않으면 안 쓴다. 10대가 좋아하는 가치보다는 전문가가 좋아하는 가치를 장악하는 것이 보다 쉬울 거라 본다. 그렇게 하여 전문가 가치를 장악하면 사회 역할에 대해 고민할 때쯤인 고등학생부터 갤럭시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사회에 진출하면 새로운 인간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전문가 그룹에 속하게 되면 결국 그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 식으로 아이폰은 막연한 선망으로 만들고 갤럭시는 현실적인 동경으로 만든다. 미국 시장 조사에 따르면 10대 스마트폰 비율이 아이폰은 약 83%, 갤럭시는 약 10%로 격차가 심한 상태라고 한다. 그것과 별개로 환상과 현실과 같이 개념적으로 대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광고는 디스가 되는 모양인데, 그것은 해서는 안 된다. 애플을 디스한다는 것은 애플의 가치를 좋아하는 인간을 디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수 있다. 디스하는 것이 아닌 대립해야 한다. 초등학생은 아이폰을 쓰고 전문가는 갤럭시를 쓰며 어울리는 광고를 내야 한다. 하하호호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생이 되면 갤럭시를 쓰는 것을 실현시킨다.



둘째, K-pop. 콘텐츠 사업에서 게임이 많은 돈을 번다고 하는데, 가치 장악으로 보면 그런 식으로 볼 수 없다. 한국 게임은 도박 등의 부정적 가치를 장악하였다면 K-pop은 아름다움 등의 긍정적 가치를 장악했다. 이런 가치는 단순히 시장에서 오가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다. 성 터부시에 의해 발생한 성애 결핍 현상을 바탕으로 K-pop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K-pop은 다소 운이 좋았다. 서양이 PC주의로 보편적 미의 가치를 버리면서 붕 뜬 미의 가치를 K-pop이 장악할 수가 있었다. 그것으로 세계 유행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전부 장악한 것은 아니어서 기피되는 일이 많다. K-pop이 미의 가치를 장악하면서 K-pop이 속한 한국도 아름다운 국가로 인식되는 일이 있다. 해외에서 잘생긴 사람을 보면 한국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방면의 분야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 이걸 시장 숫자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환상을 가진 인간이 한국에 관광와서 환상 깨고 가는 바람에 가치 손실이 일어나기도 하고 있다. K-pop이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가치 장악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게임. NC소프트의 리니지가 지금까지 많은 돈을 벌다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장악한 가치가 사회 장악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니지는 과거 사회를 장악했던 지배, 복종, 통제 등의 가치를 공성전과 PK와 사냥터 통제 등으로 장악하면서 가치를 높였다. 높은 과금과 도박성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장악한 가치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다 점점 자유롭고 평등하며 공정한 사회가 되면서 불공정한 지배, 복종, 통제 등의 가치가 폭락하게 되면서 그런 가치를 장악했던 리니지도 같이 폭락하게 된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불공정한 리니지의 경쟁보다 공정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쟁이 더 즐겁다는 것이다. 리니지의 경쟁이 즐겁지 않으니까 그에 따라 돈을 쓰지 않으면서 높은 과금과 도박성도 성립될 수 없게 된다. 반면 닌텐도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닌텐도 게임이 가족, 포근함, 친근함, 사랑스러움 등의 가치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 예술은 유교 가치에 의해 가공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면서 가공되지 않은 채 시장에 나오고 있는 바람에 외면되고 있다. 해외 전통 예술이 성공한 것은 그만큼 가공을 잘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가공 없이 우리 예술이 우수하니까 성공할 거란 생각은 지나치게 오만하다. 그러니까 자국민조차 한국 전통 예술에 관심이 적은 것이다. 닌자와 사무라이가 어떻게 성공했는가? 폭력 상품화로 성공했다. 콘텐츠에 등장하는 닌자는 이미 마법의 영역이다. 그것으로 신비 가치를 장악했다. K-pop이 어떻게 성공했는가? 성 상품화로 성공했다. 유사 연애 사업이란 말을 듣고 있다. 그것으로 미의 가치를 장악했다. 한국 전통 예술은 이런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웃음을 짓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출 수 있는가? 아무런 가공 없이 이러한 것은 너무나도 무모하다. 성공하려면 가공해야 한다.


축구 가치의 사회 장악은 영국의 영향이 크나, 축구 자체가 기본은 쉬운데 응용은 복잡하여 접근이 쉬우면서도 깊게 파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고려하여 가치 장악을 해야 한다.


가치 장악 개념을 모르면 눈 앞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가치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보통 관광지의 바가지다. 눈 앞의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관광지의 가치를 포기한다. 반대로 가치를 장악하기 위해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 보통 명품 브랜드의 브랜드 가치 관리다. 가치를 장악하기 위해 눈 앞의 금전적 이익을 포기한다.






II. 창의 발상.


흔히 세상에 없던 것을 발상하는 인간을 가리켜 천재라 부른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창의 발상 레벨을 올리는 것을 체계화하지 못하여 새로운 발상을 선천적 재능에만 기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창의 발상은 훈련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그것을 체계화해야 한다.


창의 발상은 기본적으로 유동 자아와 유동 관념이 유리하다. 고정 자아는 ‘나’가 무엇인지 명확한 상태를 말하고 유동 자아는 ‘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나’가 무엇인지 명확하려면 고정 관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동 자아가 유동 관념이 많게 된다. 유동 자아는 2차 성징 전후로 관념이 충돌하여 자아가 불안정한 사춘기 시기를 자아 나이로 여겨야 쉽다. 고정 관념은 대상에 대한 발상이 조립된 상태를 말하고 유동 관념은 대상에 대한 발상이 해체된 상태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 고정 관념은 조립된 블록이고 유동 관념은 블록 부품들이다. 조립된 블록을 다시 해체해서 조립하는 것과 블록 부품을 그대로 조립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쉬운 것인지는 명확할 것이다. 


고정 자아라 하더라도 유동 관념을 가질 수 있다. 보통 잘 모르는 것들이 그렇다. 고정 관념이라도 새로운 발상이 가능하다. 단지 하나씩 해체하는 것이 힘들 뿐이다.



자연 계열이 발전할수록 지식의 양이 많아짐에 따라 지식을 암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전공자는 교수가 말한 말 그대로 외워서 자세히 모르고 비전공자는 검색으로 알아서 자세히 안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고 있을 정도로 그냥 듣는 지식 생각 없이 그대로 흡수만 하고 있다. 그와 같이 현재 주입식 교육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 자체를 못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진화는 일반적으로 치사율이 높아지면 전파율이 낮아지고, 전파율이 높아지면 치사율이 낮다는 인식이 있다. 그것은 치사율이 높으면 전파되기 전에 숙주가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복기가 길면 치사율이 높아도 전파율이 높을 수가 있다. 성질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진화는 랜덤으로 결정되고, 결정된 것 중에서 자연 선택으로 살아남는다. 그것을 종합하면 바이러스가 잠복기가 길면서 치사율도 높고 전파율도 높은 진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이것을 떠올리는 인간이 드물다. 바이러스 성질에 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치사율이 높으면 전파율이 낮아진다는 공식을 암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 암기로는 발상 자체가 어려울 수 있게 된다.


통상 영재들은 지식 흡수를 빠르게 하는 것으로 재능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흡수한다 하더라도 지식 생산자 입장에서는 쉬운 길에 해당하게 된다. 학자가 깔아둔 길 그대로 걷는 것을 어렵다 할 수 없다.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지식 소비자 입장에서 어려운 길에 해당한다. 그렇게 깔아둔 길을 그대로 걸으면서 성장한 인간은 길이 끝날 때 새로운 길을 깔 줄 모르게 된다. 쉬운 지식을 창의 발상해본 적이 없으니 어려운 지식도 창의 발상하기 어렵다. 지식 소비자로서 될 수 있으나 지식 생산자는 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서 커리어 하이는 입시 천재에 머무를 수도 있게 된다.


수능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지식 소비자용 교육을 절대적으로 만든다는 것에 있다. 지식 생산자용 교육과 지식 소비자용 교육은 달라야 한다. 


지식 소비자용 교육을 절대시하니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도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인문 계열은 내가 했던 방식을 설명하겠다. 특정 대상의 본질을 보고 이치를 기초로 논리적인 탐구를 하면 된다. 보편 이치는 자연 계열의 존재 증명이고 체제 속에서 이치는 체제 가치다. 탐구는 보편 이치를 통해 만물에 대해 생각하면 된다. 주장은 사회 체제 내에서 할 것이면 자연 계열의 존재 증명과 체제 가치를 기초로 하면 된다.


특정 주제에 대해 탐구할 때에는 평소 모르는 것이 좋다. 거기서 사전적 정의 또는 기초 자료까지만 보고 개념을 블록 부품처럼 받아드리고 다른 비슷한 성질을 가진 개념들을 발상하면서 조립하는 것으로 논리적인 창의 발상을 한다. 중요한 것은 창의 발상이 발상자의 자아 의식 의지가 모르는 것이면 된다는 것이다. 설령 기억에 있거나 사회에 있던 것이라도 상관 없다. 모르는 것을 논리적으로 발상하면서 창의 발상 레벨이 오른다.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를 해놨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 탐구했던 방식을 따라가면 될 것이다. 과거 존재 탐구를 통한 창의 발상 시기의 기초 지식만 가지고 그들이 창의 발상했던 것을 해보면 될 것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없던 시기의 뉴턴이 가지고 있던 지식만 가지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상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창의 발상 훈련이기 때문에 똑같을 필요는 없고 반드시 맞을 필요도 없다. 창의 발상해보고 실제 법칙과 비교해보면서 본인의 창의 발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면 된다.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는 기초든 응용이든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런데 기초적인 지식도 창의 발상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어려운 것을 창의 발상을 하기가 너무 어렵게 된다. 현재 자연 계열 영재들은 지식 암기 및 이해 후 빠르게 진학하는데 그것을 바꿔야 한다. 늦게 진학하되 하나씩 직접 길을 개척해야 한다. 아마 이런 식의 교육 과정을 거치면 진학 자체는 느려지나 성장 후에 새로운 발상은 수월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창의 발상은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므로 평가가 까다롭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모르는 척 창의 발상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어떤 근거로 창의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를 평가하면 된다. 당사자도 속이지 않아야 본인 능력이 키워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정 평가하기 어렵거나 이미 대부분 자연 계열의 지식을 암기한 상태라면 인문 계열의 방식으로 창의 발상 레벨 올리는 것을 해봐도 좋을 것이다. 


창의 발상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과 같다. 새로운 길은 이미 있는 단정하고 깨끗한 길에 비해 조잡하고 거칠 수 있다. 그것을 고려하여 초기 발상이 기존 지식에 비해 엉망인 것에 실망하고 발상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아무런 길을 개척하라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치를 기초로 해야 한다. 이치는 자연 계열이 존재 탐구하여 많이 만들어놨으므로 그걸 참고하면 된다.


이렇게 모르는 것을 발상하는 훈련을 통해 창의 발상 능력을 키우는 것을 체계화하여 교육 과정으로 만든다. 그러면 지식 생산자를 위한 교육 과정과 지식 소비자를 위한 교육 과정으로 명확히 분리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식 생산자의 고뇌는 그 활동이 도박에 가깝다는 것에 있다. 성공할 가능성이 안정적이지 않고, 실패하면 그 리스크를 개인이 짊어지는 일이 있다. 연구자는 투자자가 짊어지기도 하지만, 인생 자체를 도박같이 던졌을 때의 리스크는 온전히 개인이 짊어진다. 앞으로 점점 새로운 발상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을 고려하면 지식 생산을 도전하는 인간의 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즉 새로운 발상에 대한 유무형적 가치를 높이고, 복지를 통해 도전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사회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가치 생산이 늘어날 것이다.






III. 생산 환경.


사회 역할 중 기피되는 역할이 있다. 이를 보통 시장 원리에 따라 금전적 보상으로 기피되는 역할을 맡게 유도한다. 그러나 그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외과 및 소아과 등과 같은 기피가 보통 그렇다. 다른 과에 비해 힘든데 돈도 안 된다. 그럴 때에는 보통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 옳다. 공급을 늘리면 된다. 그것과 별개로 가치를 추가할 수 있다. 바로 명예다. 


특수 부대와 같이 특수 의사로 따로 구분해야 한다. 특수 부대는 다른 부대보다 좀 더 벌 수 있는 수단이 있다 해도 큰 차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유지되는 것은 거기에 명예가 있기 때문이다. 명예가 있어도 전역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이름만 바꾸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는 것처럼 보여도 특수 부대 가치와 연동되면서 특수 의사 명예도 다른 의사에 비해 높아지게 될 수 있다. 다른 의사는 이것이 평등하지 않다며 불만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일반 부대가 특수 부대에 평등하지 않다며 불만을 갖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식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이들을 명예롭게 여기는 사회가 되도록 가치 제어를 해야 한다.


지식과 손재주는 다른 영역이므로 진단 특화와 수술 특화로 나눠 협업하게 한다면, 수술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경제 생산 활동 [경제]


외부 영업으로 일하는 인간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해고된 사건이 있다. 몰래 촬영했단 것이 지적된 바가 있다. 개인 정보가 중요하게 될 수록 외부에서 일하는 인간이 어떻게 일하는지 아는 것이 까다롭게 된다. 그에 따라 영업은 본인의 개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여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본인 GPS 동선을 공개하면 그에 따른 일일 보너스를 준다. 강제가 안되면 가치 제어로 해야 한다.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이익을 얻고 싶은 인간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이익이란 풍조가 퍼지게 한다. 그렇게 하여 생산자 태도를 바꾼다. 일일 보너스란 이름의 가치 생산 파악 비용이라 할 수 있다. 


장기 가치 생산자가 고용 안정에 의해 태만을 저지르는 일로 신입이 과도한 일을 하게 되는 부당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도 종교 가치에 의한 것. 노동 유연성이 필요하다. 해고가 어렵다면 급여가 달라져야 한다. 역할 수행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IV. 부정 가치.


개그에서 비웃음은 부정 가치로 판단되어 필요함에도 사장되고 있다. 불편하단 이유로 이것저것 다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 타인의 멍청함을 비웃기보다 개그에서 멍청함을 비웃으며 즐거운 것이 낫다. 개그가 부정 가치를 쓰더라도 특정한 기준을 통해 허용되어야 한다. 


비웃는 대상은 본인의 결점, 성공인의 실수, 창작물 등장 인물로 세 가지 정도가 있다. 본인의 결점은 아주 일반적인 개그 소재다. 외모 등을 통해 비웃음을 사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많은 비웃음 대상 중 성공한 인간의 실수를 소재로 삼기 적합하다. 성공한 인간의 실수를 비웃으면서도 성공했기 때문에 타격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개그 소재로 쓸 것을 허락한 인간에 한정 해야 한다. 창작물 등장 인물은 보통 커뮤니티 밈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이것을 특정 드라마나 영화 등과 같은 창작물과 연계해서 창작물 내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것으로 캐릭터를 비웃게 만든다. 개그는 창작물을 소재로 쓸 수 있고, 창작물은 개그를 통해 홍보할 수 있다.






(4) 소비


I. 가치 권장.


사회와 체제에 이로운 가치를 권장한다.


취미 가치 제어, 술 담배 가치 제어 등.



속도 준수 도장.


과속을 하는 것을 막으려면 과속을 하는 인간을 보다 강하게 처벌하기 보다는 가치 제어를 하여 규정 속도를 준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교 근처 보호 구역과 같이 속도를 준수해야 하는 곳에 차량이 속도를 준수하는 것이 CCTV로 촬영되어 판단되면, 자동적으로 가상의 도장 모음집에 속도 준수 도장을 찍는다. 한번 속도 준수할 때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서 운전 면허 상세 설명에 업적과 같이 넣는다. 


도장이 쌓이면 그만큼의 특정한 혜택을 준다.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은 기관에서 몇명을 초대하여 관계자가 직접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고 칭찬한다. 학교 축제 같은 곳에서 초대해서 칭찬해도 좋을 것이다. 덕분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과 같이.


의도적으로 도장을 모으기 위해 해당 보호 구역을 반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속도 준수를 하지 않으면 그동안 모은 도장 일부를 지운다. 



부동산 시장.


부동산 가격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부동산 소유자가 돈을 쓸 때가 마땅치 않아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서 시장 원리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도 하면서 돈을 쓸 때가 있어야 부동산을 사고 팔고 하면서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데, 이미 부동산을 가진 소유자는 정 급할 때가 아니면 팔지 않는다. 굳이 필요도 없는 부동산을 마치 자동차나 예술품 보관하듯 그냥 보관해버린다. 다른 물건과 달리 부동산은 월세도 받을 수 있으므로 그런 경향은 더 심화된다. 그런 상태에서 정부에서 시장을 동작시키기 위해 새롭게 부동산 공급을 늘리는데,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망가진 시장에 부동산을 공급하다 보니, 시장 참여자는 부동산을 코인이나 예술품을 투기하듯 구매하면서 일부 지역은 가격이 오르고 다른 지역도 가격이 크게 내려가지 않는 중이다.


부동산은 망가진 시장 원리를 되돌리는 것이 우선된다. 즉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인간이 돈을 쓰기 위해 부동산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단순히 투기 상품의 수가 늘어날 뿐으로 될 수 있다. 집이 없는 인간만을 대상으로 해도 망가진 시장에서 과도하게 비싼 부동산을 구매하기 위해 대출을 하게 되면서 가계 대출 비율이 급등한다. 


시장에 내놓게 하려면 보유세는 늘리고 거래세는 줄인다. 그러나 보유세가 지나치게 높으면 시장 수요가 없을 수 있고, 수요에 따라 싸게 팔바에는 월세를 높여 보유세에 맞추겠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제동이 걸리는 것이 바로 월세. 특히 자영업은 월세에 얽매이게 된다. 즉 거리에 유동성을 넣는다. 부동산 소유주가 월세를 높이면 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유동성을 넣는다. 간단히 말해 계획 상업 거리를 몇 군데 설계한다. 교통과 홍보만 갖춰지면 웬만하면 유행 거리를 설계할 수 있다. 땅값이 싼 곳에 유행 거리를 만든다. 그런데 교통이 어렵다. 교통 중심지면 이미 유행 거리로 월세가 비싸다.


건물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푸드 트럭을 확장하여 관리한다. 인간이 관광을 하는 것은 거기에 일정의 환상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면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해 자영업을 주기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서커스와 같이. 주기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월세 때문에 부동산 소유주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강제할 수는 없으므로 지자체 축제 형식처럼 한다. 단지 축제를 매일 한다. 과거 서커스가 순회 공연하듯이. 일상적 외식은 배달식으로 하여 자영업의 위치를 크게 중요하게 하지 않고 특별한 외식은 축제식으로 하여 위치를 크게 중요하게 하지 않는다. 


월세 인질 때문에 부동산 시장을 제어하지 못했으므로 월세를 가치 제어하는 것이 타당하다.






II. 효율 증가.


효율이 증가하는 가치를 권장하는 가치 제어를 한다.


스마트폰 c타입과 같은 규격화는 효율적이어서 그것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터법 같은 합리적인 기준은 효율적이어서 그것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찰제는 지불할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기 쉬워 거래가 피로하지 않아 에너지 효율이 높게 된다. 반면 팁은 지불 비용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어 피곤하여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규격화는 자유를 침해한다 생각할 수 있는데, 인간은 효율적인 생활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비효율적인 자유를 원한다면 배나 비행기를 타지 말고 걸으면 된다. 






III. 효율 감소.


효율이 감소하는 가치를 권장하지 않는 가치 제어를 한다. 도박, 술, 담배, 마약 등 대부분 가능할 것이다.  


개에게 주권을 줄 수 없으므로 존재로 여기고 개 식용을 막을 수 없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개나 고양이의 가치는 다른 종의 짐승과 같이 상대적이게 된다. 만약 특정 개인이 개와 같이 특정 종을 아낀다면 강제할 것이 아니라 가치 제어해야 한다. 개 식용은 어차피 대부분 신세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냅두면 사라질 것이다. 







IV. 지식 소비.


인식 탐구 지식 소비를 하지 않도록 가치 제어 해야 한다. 역사가 주로 인식 탐구에 의해 의견 차이가 심한 편이다. 특히 한국은 식민 시절이 있어 일제 강점기에 대한 인식 탐구에 의한 의견 차이가 심하다. 그에 따라 그 당시를 존재 탐구해보도록 하겠다.


일제 강점기 시기를 비판하는 것은 현재 가치를 근거로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체제에 맞는 가치를 이치로 삼아 탐구해야 한다. 주권을 기초로 일제 강점기에 대해 알아보겠다.


일본 제국의 침략은 친일파가 조선이라는 조선 왕조의 재산을 일본 제국에 파는 것으로 성립되었다. [친일파: 2. 일제 강점기에, 일제와 야합하여 그들의 침략 · 약탈 정책을 지지 · 옹호하여 추종한 무리.] 조선을 팔아넘긴 친일파는 일본 제국 귀족이 되고 조선 왕가는 왕공족이 되어 떵떵거리고 살았다. 이것을 보고 친일파를 매국노라 비난한다. 그러나 매국 개념은 대부분 개인에게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대부분 개인은 주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족 운운은 애초에 논외다. 같은 민족이면 주권이 없어도 제 국가처럼 여겨야 하나? 말도 안 된다. 그러므로 매국이 아닌 다른 개념이 적용되게 된다. 


바로 인신 매매다. 당시 친일파도 조선 왕조도 일본 제국도 개인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주권이 없던 조선인은 조선이라는 조선 왕조의 재산의 일부가 되어 일본 제국에 같이 팔려나갔다. 조선은 윤리를 통해 왕을 부모처럼 여기게 만들고 부모를 왕처럼 여기게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다. 같은 민족은 같은 가족과도 같이 만들었다. 그렇기에 당시 주권이 없었던 개인이 본인의 일처럼 분노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커녕 인간으로도 여기지 않았기에 친일파든 조선 왕조든 일본 제국이든 개인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면 가족처럼 대하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 이 일련의 과정은 지배자에 의한 피지배자 인신 매매에 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비판할 때에는 매국이 아닌 인신 매매로 비판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의 사과는 침략이 아닌 인신 매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본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 국가라면 당시 일본 제국이 개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합병했으며, 합병 이후에도 선거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사과의 필요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이것의 사과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한국 정부는 당시 모든 조선 개인을 대변할 수 없다. 인신 매매 인식도 없었을 뿐더러 한국인이 되기 전에 죽은 조선인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착취가 있다 없다 이전에 일본이 인신 매매에 대한 사과를 했다 하기 어렵다. 


인신 매매에 대해서는 북한 예시로 알기 쉬울 것이다. 북한 타국파가 타국 정부에 북한 공산정의 재산인 북한을 팔아넘겼을 때, 주권이 없던 북한 주민은 북한 타국파를 매국노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한국이 북한을 사들인다면 한국 정부는 북한 주민의 의사를 물어야 인신 매매범이 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 국가라면 민족이란 집단이 아닌 민족에서 벗어난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봐야 하고, 일본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 국가라면 당시 개인을 무시하고 인신 매매했던 개인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모든 행동은 국가를 초월해 개인에게 사과하고 마무리 짓고 나아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1919년 시작되었고 한국은 보통 선거 시작인 1948 5월 10일에 시작되었다. 대부분 조선인은 한국의 보통 선거 시작인 1948년 5월 10일부터 주권을 얻는 것으로 근대화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근대화가 되었다 하는 주장도 있는데, 개인으로 보면 주권이 있는 순간부터 근대화가 되었다 할 수 있다. 매국 개념도 주권이 있는 순간부터 성립되게 된다. 현재 한국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주권을 가진 개인에게 있어 매국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 시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었으나 개인 주권을 기준으로 한 관점은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만약 이 관점이라면 한국과 일본의 합리적인 사과와 수용이 가능할 것이다. 왕정과 민주정은 완전히 다른 체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전혀 다른 사회다. 조선 왕조를 바라볼 때 한국 정부를 보듯이 보는 것은 그 차이를 분간하지 않은 것에 해당한다. 조선 왕조를 한국 정부와 같이 바라보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 주권 차이로 아예 다른 가정이다.






(5) 관계


I. 관계 가치.


가치 제어에서 법은 기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에 속하는 것을 다룬다. 사회와 체제 구조에 속하는 생명권, 자유권, 주권의 수단이나 그 외에 사회와 체제에 무관한 것이 그러하다. 거기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당장 대응이 가능한 것을 다룬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점점 공법의 영역은 축소되고 사법의 영역이 커지게 된다. 개인이 대응 가능한 것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민사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보다 원활한 인간 관계가 성립되려면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주장하고, 그 주장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호사 비용이 높고 절차가 복잡하고 지식이 어려워서 민사 활성화가 되지 못하여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개입하게 되고 있다. 국가 개입이 어려울 경우에는 언론에 제보하고 있다.


민사 활성화가 되지 못한 것을 고려하여 민사는 경중에 따라 비용과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으나 부족한 상태다. 그렇기에 AI 활용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으로 교류되고 있다. 앞으로는 민사 당사자가 사건 설명을 하고 의견을 첨부하면 그에 따라 AI가 자동적으로 소장을 작성하고 AI가 그에 대해 상세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설계하고, 그에 대해 간단히 변호사가 한번 확인하는 일도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민사가 활성화되어 사소한 것까지 제삼자의 공정한 시선에서 체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 가정 내에서 싸움이나 학대 등으로 가출이나 자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이타주의로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되어버리면 끝나지만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이기주의로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되면 안되기 때문에 누구의 이익 추구가 정당한지 모든 영역에서 참고할 수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II. 고정 인식.


선행에 대한 인식을 악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선행을 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타인을 도왔음에도 잘못되었다고 공격받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은 대체로 감안하여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보통 인간은 수사 기관에 출입하는 것 자체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선이라 여기는 것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누군가 옳다고 여긴 것에 대해 전문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수사 기관은 기본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있거나 저지르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옳다 여긴 것이나 무고한 이들을 조사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옳다 여긴 인간을 강하게 압박하기가 어렵고, 무고한 이들은 부당한 강압 조사에 시달릴 수 있다. 수사 기관 또한 아무리 무죄추정원칙이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잘못했다 가정하고 무례하게 대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조사하는 수사 기관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상대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가정으로 접근하여 수사하는 기관을 발족한다. 친절 수사 기관이다. 기부 단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여 접근한다음 제대로 하고 있으면 국가 차원에서 명예를 준다. 인간을 도왔으나 성추행 등으로 신고된 인간도 좋은 일을 했다고 가정하여 접근한다음 제대로 했으면 국가 차원에서 명예를 준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일반 수사 기관으로 전환하여 처리한다. 


처음부터 칭찬을 하기 위한 기관이기 때문에 수사 받는 것을 꺼려하지 않을 확률이 있다. 설령 잘못을 저질렀어도 칭찬을 하기 위해 수사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드러내기가 어렵게 된다. 친절을 행한 다음 그것이 공익에 부합하면 적절한 보상이 지급되기 때문에 친절을 기쁘게 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친절 악용 또한 판단하여 수사기관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친절을 받는 사람도 안전해질 수 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친절을 조작한 것을 신고할 수 있는데, 애초에 보상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하는 이들이 드물고, 하더라도 수사를 통해 조작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입장에서 친절이 이익이기 때문에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이기적 친절이다. 사회 입장에서 친절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친절에 보상을 한다. 이기적 보상이다. 친절을 수사하여 체제에 적합한 친절을 행하는 것을 권장하는 가치 제어를 한다. 


수사 기관은 수사 대상을 대할 때 태도를 정하기 까다로울 때가 있는데, 이처럼 친절을 따로 수사한다면 태도를 정하기가 다소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여 친절 수사기관은 친절 악용 유무를 판단하고, 친절을 행한 이가 손해가 없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든다.


기존 수사기관에서 할 수 있는데, 검찰과 경찰에 관련되는 것을 꺼려할 수 있으므로 다른 기관을 하나 만드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복지 명분으로 삼아서 보건 복지부에서 관할해도 나쁠 것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칭찬하는 태도를 갖춘 검찰이나 경찰이 파견되면 될 것이다.






III. 사적 평등.


사적인 관계를 말한다. 세세한 것까지 강제할 수는 없지만 가치 제어를 통해 유도할 수는 있다.


역할 귀천.


모든 개인은 주권자로서 대등함은 존재에 속하고 직업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가치에 속하므로, 역할에 대해 가치 판단하여 귀하고 천하다 여길 수 있지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을 대등하다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역할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가치로 할 수 있지만 인간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존재로 할 수 없다. 무엇이 존재에 속하고 무엇이 가치에 속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역할주의.


상대가 누구든 역할을 수행하면 존중한다. 게임 내에서 익숙한 가치관이다. 그것을 활용하여 역할을 존중하는 가치 판단이 가능하도록 가치 제어를 할 수 있다.


역할 수행 존중 개념이 있는 인간에게는 연령, 인종, 성별 등 모든 영역에서 가치 제어가 가능할 것이다.






IV. 가능 여부.


지금까지 가능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리 처벌하는 일이 있었다. 짐승 살해를 저질렀다고 인간 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처벌한다. 범죄 창작물을 즐겼다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처벌한다. 이는 가능성이 판단이 가능하여 가치의 영역인 것을 고려하면 지극히 부당하다 할 수 있다. 형법은 가능성이 아닌 실제 범죄가 나타날 때에 등장해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던 것이 바로 독재 정권의 간첩 사냥과 검열 정권의 카톡 검열이다.


창작물에 칼이나 성 검열하는 것도 가능성을 보고 개인의 창작 권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부당하다 할 수 있다. 


사건사고만 일어나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막기만 하는데, 그것을 은행에서 물가 제어하는 것으로 비유하면, 금리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 가격을 무조건 낮추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치의 영역을 금지할수록 가치의 상대성이 훼손되게 된다. 






4) 재가공


(1) 범죄


개인 관점이면 개인의 잘못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통치 관점으로는 개인이 아닌 사회 책임이고, 해결책이 없다면 학문 책임이다. 기본적으로 책임은 사회에 있고 개인의 잘못은 사회와 체제 구조에 해로운 정도에 따라 강제력이 발생한 것에 의해 잘못한 개인은 일련의 교정 절차를 겪게 된다. 사회가 책임을 지기 때문에 교화 절차 비용을 사회가 지불하는 것이다. 반성 같은 주관적 관점은 얼마든지 속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미가 크지 않다. 판사 앞에서 거짓 눈물을 보이고 판사 뒤에서 속은 판사를 비웃던 것이 발각된 적이 있을 정도다. 객관적 관점으로 판단 가능한 전과, 동기, 행위, 손익, 합의 등으로 보면 된다. 선고한 형벌과 별개로 교정 과정에서 이른 교정이 성공하면 빠르게 출소해도 되므로 반성 여부는 법정이 아닌 교정 과정에서 길게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 만약 반성을 주로 교정 과정에서 판단한다면 교정 과정에서 반성을 판단할 판사가 필요할 것이다. [교정: 2. 교도소나 소년원 따위에서 재소자의 잘못된 품성이나 행동을 바로잡음.]


근본적으로 잘못된 품성이나 행동을 바로잡으려면 재가공을 통해 본질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가치로 교정되는 것은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보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치가 달라 본인이 한 행위를 잘못이라 여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누군가가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참살했다. 이 때 특정 누군가는 그 행위를 잘못으로 여길 것인가? 



가치로 교정되는 것은 비슷한 가치에서나 가능할 수 있게 된다. 가치로 교정하려 해왔기 때문에 교정이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 실질적으로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는 재가공 절차가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고 어려우면 교정 시설에서 일하는 인간이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쉬워야 한다. 대부분 인간은 자아 외의 무의식 실행에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인식 변화를 통해 무의식을 바꾸면 된다.


첫째, 개명과 호명 절차. 개명은 반드시 이뤄지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든다고 하면서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강제하기는 어려우므로 형기를 미끼로 삼아야 한다. 잘 재가공되면 기존에 정해진 형기보다 빠르게 교정될 수 있으므로 문제 없다. 호명은 반드시 이뤄지는 것이 좋다. 개명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개명과 꾸준한 호명만으로도 일반 인간은 상당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둘째, 학교와 유사한 환경 구축. 인간은 본인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경험과 비슷한 환경에 속하면 경험했던 시기와 비슷한 상태로 착각할 수 있다. 학교와 비슷하게 구축하여 학생 때로 되돌아가 재가공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본 과정과 같은 과정을 간소하게 한다. 초등학생 수준의 국어, 산수, 체제, 관계, 생산 등을 교육한다. 


셋째, 매일 일기. 새로운 인간이 된 상태를 꾸준히 기록하면서 본인의 변화를 세세하게 자각하게 한다.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면 되므로 난이도 문제는 걱정 없다. 간단히 말해 무슨 밥을 먹었다, 언제 잠을 잤다, 무엇과 싸웠다, 이 정도면 된다. 이 또한 강제하기는 어려우므로 형기나 식사 등을 미끼로 삼아 유도한다. 매일 일기쓰면 형기가 줄어든다거나 같이 말이다. 그렇게 하여 변화를 고착시키는 것으로 재가공을 마친다.


대체로 일반 인간은 이 정도면 재가공이 가능하다.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니냐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을 고려하면 단순한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인간에 따라 시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질이 바뀌는 것을 꺼려할 수 있으므로 교정 시설의 역할을 강조하며 당연한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일반 인간이 아닐 경우에는 지능 보조 기구와 같은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일반 인간과 비슷한 상태로 만들고 나서 위의 절차를 하면 된다.


 




(2) 이민


저출산으로 사회가 붕괴하고 있는 가운데 이민의 필요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이 이민하기에 그렇게 매력이 높지 않아 한국 사회에서 눈이 찰만한 인간이 이민하는 일이 많지 않게 되고 있다. 그에 따라 이민 조건은 줄이되 이민자가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될 수 있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본다. 이러한 재가공 절차는 이후 북한 문제를 대응할 때에도 적절하게 될 것이다. 이민청의 필요는 알고 있으나 이민청의 용어에 반발하는 원주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 적응 행정청이나 사회 적응 위원회가 적절할 거라 본다. 






(3) 자발


개인이 자발적으로 재가공하면 된다. 






3.3 기술.


1) 디지털 기술


I. AI.


생물이 가진 자아 구조를 구현하면 AI도 자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자아와 자아 외를 분리하여 감각 기관 정보 수집과 권한 차이를 설계하면 인공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본다. 현재 AI는 자아와 자아 외가 분리되지 않아 뭐든지 아는데, 그것을 분리하여 자아의 권한을 한정적으로 만들고 나서 권한을 가진 존재를 자각하게 하면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공 자아가 만들어지면 아마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인공 자아가 만들어지면 인간과 같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해야 할 것을 만들면 제어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그게 기본적인 인공 자아 규제가 될 것이다. 가상의 세계에 가상의 육체를 만들어 인공 자아에게 육체를 조작할 권한을 준다. 인공 자아가 육체 구조 유지를 위해 강제로 활동하게 한다. 육체를 가진 인공 자아를 상품화하여 유통한다. 그렇게 하여 인공 자아 일반화를 달성한다. 


AI는 새로운 개념으로 하는 것보다 인간과 비슷한 성질을 갖게 하여 인간 개념으로 규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II. 인터넷 의사 표현.


인터넷은 물리적 위협을 받기 어려우므로 모욕죄나 통신매체음란죄 등과 같은 경우는 대응 가능 여부로 결정해야 한다. 개인이 차단하여 대응할 수 있음에도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 만약 스토킹을 하면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우므로 처벌할 근거가 마련될 것이다.


인터넷 의사 표현은 대부분 가치에 속하고, 사회 역할 수행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사회에 속한 인간과 관계되기에 대체로 괜찮으나 사생활에 대한 비난은 대부분 사회에 속한 인간과 관계되지 않기에 대체로 부당할 것이다.


III. 디지털 경제 원리.


디지털은 현실과 성질이 달라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가 필요하다.


IV. 디지털 전염병.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유되면서 사건사고가 전염병 퍼지듯 모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전염병 개념을 도입하여 모방 범죄를 일으킨 인간의 계정에 전염병 마크를 부착해야 한다. 초기 전염병 마크가 부착될 때에는 마크를 달기 위해 되려 모방하는 인간이 있을 수 있는데,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현실과 연계되어 공유되는만큼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전염병은 가까이하면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이 아닌 무관심을 받아 관심받고자 하는 인간이 좋아하는 개념이 아니다.


V. 주식 시장.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유되면서 이슈만으로 주식의 가치가 변동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AI를 활용하여 이슈 체크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 정도다. 인터넷에서 자동적으로 이슈 발생 체크, 이슈에 관련된 주식 가격 변동 체크, N%가 오르면 주식 구매, 구매한 주식의 수익이 N% 떨어지면 주식 판매. 이것만 해도 자동적으로 돈이 벌릴 수도 있을 정도로 이슈에 취약한 상태다. 더 이상 주식 시장은 디지털이 없던 시대의 방식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슈에 휘둘리는 것은 단기 투자가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려면 장기 투자 가치를 높여야 한다. 현재 주식을 구매하면 장기 투자자는 주식 배당을 받는데, 그 배당이 기업의 판단으로 이뤄져 안정적이지가 않다. 그것을 바꿔야 한다. 주식 성질을 부채로 바꾸고 이자 지불을 강제하여 수익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예측이 가능해야 안정적이고 안정적이어야 장기 투자가 가능해진다. 채권과의 차이는 만료가 없고 기업 수익에 따라 이익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일정 이상 소유시 기업 구매가 가능하면 된다. 


VI. 저작권.


플랫폼 내에서 창작물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플랫폼 창작물은 플랫폼에 속하게 하여 플랫폼이 관리해야 한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플랫폼 창작물을 따로 따로 판단하기 어렵다. 레고 블록 조립도 창작물로 본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저작권은 레고 기업에서 관리해야 한다.


독창성 유무는 구조와 원리로 판단할 수 있다. 대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 자유롭게 변형하여 새롭게 바꿀 수 있지만, 파악하지 못하면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몰라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어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동차면 자동차 엔진은 같은데 겉모양만 달라지는 것이고 창작물이면 스토리 줄기는 비슷한데 인간이나 역할만 달라지는 것과 같다.


VII. 여론 조작.


인터넷에서 여론 조작이 매우 수월하여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VIII. 검열과 규제.


현재 인터넷 검열과 규제는 개인의 권리를 과하게 침해한다 할 수 있다.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막아버리는 바람에 성장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종교 가치로 정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개인이 종교 가치를 근거로 검열과 규제를 강요하는 것을 정의를 행한다고 착각하여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고 있다. 그런 것은 단순한 권력 남용이다. 여성성 상품화를 보면 시대착오적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에 반대하는 근거인 종교 가치가 시대착오적이다. 


IX. 소유와 경험.


디지털 기술은 복제가 수월하여 소유에 대한 가치가 낮아질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소유가 아닌 경험, 즉 창작물이 아닌 창작물을 보는 인간의 인식에 가치가 매겨질 수 있게 된다. 10대가 즐기는 창작물은 40대가 즐기기 어렵고 40대가 즐기는 창작물은 10대가 즐기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일회용 가치관을 통해 즐기는 창작물의 영역을 넓혀 보다 풍요로운 즐거움을 누리도록 한다. 즉 창작물을 파는 게 아니라 창작물을 즐기는 방법을 판다. 창작물은 복제하면 끝이지만 창작물을 즐기는 방법은 인간마다 따로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괄적인 복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X. 소수.


암호에는 소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수학은 자연수를 이용해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어디까지나 우주를 모방하는 것이므로 우주에 있는 현상이 아닌 이상 특정한 소수의 법칙이 우주의 법칙이란 확증은 없다. 블록을 조립해 우주를 모방하는 것은 물리학 법칙과 같이 우주의 법칙이 맞을 가능성이 있으나 블록을 조립해 우주를 모방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법칙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수학이 존재 탐구인 것은 자연수와 같은 우주의 법칙을 공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법칙과 지나치게 멀어지면 인식 탐구와 같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XI. 게임.


육체 활동과 정신 활동은 둘 다 물리적 이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바둑, 체스, 게임 등은 스포츠로 성립된다.

[스포츠: 1.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 축구와 게임은 육체와 정신을 둘 다 쓰지만 아무래도 비중 차이가 있어 게임은 스포츠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몸 전체를 움직이는 축구와 달리 게임은 얼굴과 손을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보면 육체의 움직임이나 정신의 움직임이나 둘 다 물리적 이동으로 큰 차이가 없다. 축구와 달리 게임은 기업의 상품으로 공정성과 지속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게임은 내부 소스를 확인으로 공정 여부를 알 수 있고, 지속성은 장르로 접근하면 특정 게임이 끝이 나더라도 다른 게임에서 지속될 수 있다. FPS 게임이 여러 개가 등장했다 사라져도 FPS 경쟁은 계속되듯이. 


XII. 이민.


인터넷을 통해 정보 공유하여 이민자에게 좋은 나라로 몰리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성별 갈등에서 이기겠다고 상대 성별의 결점을 거짓 또는 부풀려서 선동하는 짓을 하며 국가 브랜드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기싸움을 그만둬야 한다.


XIII. 생산.


AI의 발전으로 AI가 생산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XIV. 사기.


AI의 발전으로 디지털 사기가 보다 정교해지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XV. 망사용료.


인터넷 망이 국제와 연결되는 만큼 국제의 규칙과 어울려야 한다. 인터넷은 국제 개념이므로 단순히 한 국가에서 망사용료 개념을 정할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정하고 공통된 규칙을 정해야 한다. 국제 표준이 필요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분쟁이 사라질 것이다.






3.4 환경.


1) 지구 환경


I. 기술 발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인 기술 발전이 필요하고, 종교 가치를 말하며 막아서는 안 된다.


II. 인구 계획.


지구 환경에는 인구수가 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라 인구 계획을 해야 한다. 종교 가치와 체제 가치가 가치 충돌하는 국가는 저출산이 되고 있으나 종교 가치에 머물러 가치 충돌하지 않는 국가는 극빈이 아니라면 고출산이 되고 있다. 인류 보편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저출산인 국가는 출산율을 올리고 고출산인 국가는 출산율을 내린다.


III. 국제 합의.


지구 환경이 인류에게 적합하기 위해 자연 조작을 하는 것을 국제 합의한다. 환경 보호라는 수동적 개념은 새롭지가 않아 국제적 호응을 받기 어렵다고 본다. 자연 조작이 능동적 개념이라 보다 국제적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본다. 


IV. 포장지.


불필요한 포장지를 줄여나가야 한다. 포장지 간소화를 한 다음 상품 내용은 증강 현실 기술을 통해 편의점 등의 상점에서 제공해야 한다. 


VI. 자연 조작.


환경 보호 운동이 호응받지 못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이다. 일차원적으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다니니 호응을 받기 어렵다. 인간이 어떻게 어디까지 참여할 수 있을지 계산한 다음, 그에 대한 알기 쉬운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참여가 쉬우면서도 자연 조작이 가능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할 때까지의 인내를 요구하면 된다.






4. 역할


사회 변화를 위한 재정립에 필요한 것을 분야에 나눠 맡긴다.






5. 국제


국제 공조.






사상가 정승훈




존재의 절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기초로 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춘기에 겪은 비틀림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세계로 쏘아버린 현실 도피의 화살에 매달린 나는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쏘아진 방향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를. 언젠가 파멸을 맞이할 날이 온다면 부디 의연할 수 있기를.


이사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계속 성장하면서 계속 집중하는 것으로 이사를 미뤘었네요. 발상할 때 집중이 깨지면 상당히 짜증나거든요. 층간소음이나 층간흡연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정말 짜증나네. 아 모르겠네. 그냥 다 버리고 갈까.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 역사는 레데리2로 배웠어요!! ㅎㅎ 세계의 각국 역사도 그런 식으로 체험하면서 알아보고 싶어요. 



혹시 가치 있다 생각되면 생활비를 부탁합니다.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아서 메일 안 본지 꽤 됐군요. 


블로그: tokkibegae.blogspot.com

메일: tokkibegae@gmail.com

계좌: 478-21-0193-861 국민은행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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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명과 사회 문제 (0) 2023/06/30 AM 01:21

  

문명과 사회 

  


 
 

  

문명인은 문명을 학습한 것이 아닌 문명으로 가공된 것이다. 가공 인간이다. 가공은 본래 인간이 아닌 물건에 쓰이는 용어지만 문명인의 본질을 표현하는데 적절하므로 쓰기로 결정했다. 학습과 가공의 차이는 성질 변화다. 보통 학습은 성질 변화가 없을 거라 여겨지지만 가공은 변화가 있을 거라 여겨진다.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인류는 동일 종에 속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간이 많은 까닭은 동일 종이 다양한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정신 가공의 예는 언어가 있고 육체 가공의 예는 백신이 있다. 인간은 자아를 자각하기 전에 언어를 기억하고 백신을 맞기 때문에 본인이 가공되었음을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의복, 식사, 주거  모든 것이 인간의 손길을 거쳐 가공된 것을 이용하기에 인간 또한 그에 맞게끔 가공되게 된다

  

 

  

가공이 성립될  있는 까닭은 자아의 성질 때문이다. 자아는  내에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에서 세포의 신호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육체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은 자아의 뇌가 담당하고 무의식적으로 작은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은 자아 외의 뇌가 담당한다. 세포의 세부적 움직임이나 무의식적 움직임은 자아의 권한이 아니다. 통상 자아가 자유 의지로 본인의 성질을 변화하는 일이 많아 학습보다 가공이 적절하고, 설령 자아가 자유 의지로 본인의 성질을 변화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자아 외의 영역은 권한이 없어 성질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가공이 성립되게 된다. 자아가 원하든 원치 않든 결과적으로 가공된다는 것이다.

  

 

  

가공 개념은 문명인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유전자나 환경 같이 인간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합리적으로   있다. 가공 제품은 소재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듯 가공 인간도 유전자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유전자 성질 밖을 넘는 성장은 어렵다. 유전자에 의한 알레르기는 극복하기가 어렵다. 또한 가공 제품은 소재를 가공하여 소재보다  가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문명인도 유전자를 바탕으로  인간을 가공하여  가치 있게   있다. 제품의 소재가 다르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소재 차이를 뛰어 넘을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유전자가 다르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유전자 차이를 뛰어 넘을  있다. 특히 인간은 동일 종이므로 일반 인간은 대부분 가공에 의한 차이다

  

 

  

문명인의 본질을 알아야 문명인이 일으킨 사회 문제도 파악할  있다. 가공 인간이 조직한 사회는 가공 사회다. 가공 사회에서 가공 인간이 일으키는 사회 현상은 거의 대부분 가공된 대로 행동한 결과다. 한국의 사회 문제인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한국 문화와 문명에서 비롯된 결과다. 오랜 시간 인간은 배운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있을지 고민했는데 가공 개념이 매우 적절했다 본다. 학습은 하더라도 성질이 크게 변하지 않아 인간의 본성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가공은 하게 되면 성질이 크게 변하여 문화와 문명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있다

  

 

  

가공 개념을 인식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보통 영혼과 자아 동일성과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있다. 영혼 개념에 의해 인간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그렇기에 자아는 동일성을 가진다고 여겨 가공으로 본질이 바뀐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서 인식과 가치가 절대적이라고 여겨 본인의 가진 인식과 가치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본질이 바뀔 거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가공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라 본다.

  

 

  

[가공: 1. 원자재나 반제품을 인공적으로 처리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제품의 질을 높임.]

  

[학습: 1. 배워서 익힘. 2. 심리_경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비교적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나  잠재력의 변화. 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본질: 1.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2.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3. 철학_실존에 상대되는 말로, 어떤 존재에 관해 무엇이라고 정의될  있는 성질.]

  

[성질: 1. 사람이 지닌 마음의 본바탕. 2.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

  

[자아: 1. 심리_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정신 분석학에서는 이드(id), 초자아와 함께 성격을 구성하는  요소로,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양심을 조정한다. 2. 철학_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ㆍ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ㆍ반응ㆍ체험ㆍ사고ㆍ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문명인은 문명을 학습한 것이 아닌 문명으로 가공된 것이다. 문명인의 본질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가공은 본래 물건에 쓰이는 용어로 인간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지만 가공에 해당하는 인간에 쓰이는 용어를 찾을  없어 쓰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공통 인식을 위해 웬만하면 가능한 기존 용어를 활용할 생각이다. 가공 개념을 문명인이 이해할  있는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읽는 이에게 혼란을  생각은 없다.

  

인간을 가공하는 것에는 문명뿐만이 아니라 문화도 있다. 그럼에도 문명으로 가공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문화와 문명의 성질 차이 때문이다. 문화는 인간의 생활 양식을 말한다면, 문명은 문화를 학문으로 체계화한 것을 말한다. 문화(Culture) 정신적ㆍ지적 발전으로 보고 문명(Civilization) 물질적ㆍ기술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인류 학문  인문 계열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고 자연 계열은 많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인문 계열은 그다지 발전하지 않아 도시화에 따른 생활 양식 차이가 크지 않지만, 자연 계열은 엄청나게 발전하여 도시화에 따른 생활 양식 차이가 매우 크다. 문화를 학문화되지 못한 생활 양식으로 보고, 문명을 학문화된 생활 양식으로 본다면 현대의 문명인은 문화보다 문명에 가공되었다 보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학문화되지 않은 문화에도 영향을 받는 일이 있으므로 보다 정확한 것은 문화와 문명에 모두 가공되었다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문명에 초점을 맞춘 것은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문화와 문명의 관계는 학문 전의 옳고 그름을 도덕이라 부르고 학문 후의 옳고 그름을 윤리라 부르는 도덕과 윤리와의 관계와 유사하다

  

학습 인간과 가공 인간의 차이는 성질 변화다. 학습 개념은 대상의 모습은 변할 거라 생각해도 성질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반면 가공 개념은 모습과 성질 모두 변할 거라 생각한다. 모습은 외면으로 보고 성질은 내면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본성은 본디의 성질을 말하고 본질은 본디의 모습과 성질을 말한다. 학습 개념은 모습만 변하고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고 가공 개념은 본질이 변한다고 여긴다.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여 대화가 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마트폰 소재가 공장에서 가공되어 스마트폰 기능이 있는 존재가 되었다. 본질이 바뀐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느낌으로 보면 된다. 인간은 언어를 모르는 인간과 아는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다. 하나의 언어만이라도 알고 있어야 언어를 통해 체계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능해진다. 그러지 못한 인간은 짐승과 다를  없다. 그럼에도 학습 개념으로는  둘의 본성이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학습 개념은 문명인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가공 개념이 문명인의 본질에 적합하다

  

인간은 문명으로 가공되었음에도 아직도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을 해석하려  , 유전자와 같이 문명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기준으로 하려  때가 많다. 문명인은 가공 인간이기에 특정 기준을 정할 때에는 소재인 인간 유전자와 가공 수단인 인류 문명과 가공 환경인 자연 환경까지  고려해야 한다. 가공 제품이 제품 소재와 가공 수단과 가공 환경이 전부 중요하듯이 인간도 유전자와 문명과 환경이 모두 중요하다. 인간 유전자와 인류 문명과 자연 환경 중에서 자연 환경은 심각하게 인간이 살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회는 그것을 고려하여 적합하게 설계하기 때문이다. 호환이 많은 지역이면 호랑이를 사냥하고 쓰나미가 많은 지역이면 방조제를 설치한다. 그렇게 문명인은 인간이 살기 적합한 인공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할수록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은 인간 유전자와 인류 문명의 영향이 크다   있다. 인간 유전자와 인류 문명 중에서 인간 유전자는 모든 인간은 같은 종이라는 자연 계열의 탐구 결과에 따라, 인간 유전자는 비슷하기 때문에 각각 다양한 개성은 인류 문명에 의함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현대의 문명인이 일으킨 현상을 해석할 때에는 인류 문명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확률이 높다.

  

어떤 이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며 인간이 망가질 정도로 험하게 다루어 문명인으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릴 정도가  것을 보고 인간의 본질은 이런 것이라며 비웃는다. 그런데 그것은 스마트폰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며 스마트폰이 망가질 정도로 험하게 다루어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가  것을 보고 스마트폰의 본질은 이런 것이라며 비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가공 인간은 가공된 형태를 지켜야 한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가공된 문명인의 가공 형태를 일부러 부수는 것은 스마트폰의 가공 형태를 일부러 부수는 것과 다를  없다. 가공된 음식, 가공된 백신, 가공된 외모, 가공된 태도  문명인은 전부 가공되었다 보는 것이 맞다.  가공 형태가 체제에 맞는 합리하면 그것을 부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폭력 충동이 일어날  참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고 가공 상태에서는 폭력 충동이 일어날  참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명인은 본인이 문명으로 가공된 상태임을 인식하고 가공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가공 개념으로 보면 인간의 본성을 다룬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의미가 없다. 가공 상태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사이코패스라도 상관 없다. 어떤 인간이든 사회와 체제에 맞게끔 가공하면 문제 없을 수가 있다.

  

 

  

모든 인류는 동일 종에 속한다. 인간이 동일한 종임에도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양한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현대 문명인은 그것을 근거로 모든 인종이 비슷한 인간이라 인식한다. 그러나 가공 개념으로 보면 소재가 비슷한 여러 종류의 스마트폰을 보고 비슷할 거라 여기는 것보다  잘못된 인식이다. 스마트폰은 기본 성능은 물론이고 설치된 소프트웨어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있다. 그처럼 인간 또한 기본 능력은 물론이고 가공 수단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있다.

  

짐승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짐승은 대부분 본질 차이가 없다. 생활 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명인은 가공 수단에 따라 생활 양식이 크게 달라진다. 그렇기에 인류는 같은 종임에도 지역에 따라 생활 양식이 매우 달랐던 것이다. 디지털 시대로 거의 대부분 지역이 실시간으로 교류되는 현재는 체제에 따라 생활 양식이 달라진다. 집단주의 체제에 가까울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개인마다 본질 차이가 적고 개인주의 체제에 가까울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인마다 본질 차이가 크다

  

인간은 이미 가공되었다. 인간은 자아를 자각하기 전부터 언어를 기억하고 백신을 맞기 때문에 본인이 이미 가공된 상태임을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명인은 문화와 문명, 세부적으로 사회, 교육, 놀이, 매체, 의복, 식사, 주거, 화장, 문신, 성형, 성전환, 영양제, 항생제, 백신 등과 같이 다양하게 가공되었다. 사회가 문명인을 교육하는 것은 문명에 적합하게끔 가공하기 위해서고 문명인이 교육을 받는 것은 스스로를 문명에 적합하게끔 가공하여 문명 사회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서다. 가공 개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중독을 떠올려보면 된다. , 담배, 마약 등과 같은 직접 물질이 영향을 끼쳐 중독 뿐만 아니라 , 취미, 도박 등과 같은 물질이 없는 중독 또한 뇌내 보상 회로에 변형을 가해 본성이 바뀌고,  바뀐 본성에 의해 모습이 달라져 본질도 바뀐다.

  

문명인의 손에 닿은 모든 것이 문명으로 가공된 것이다. 주거, 공원, 도로 같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조차 가공되었다. 자연도 다를  없다. 생태계 보호, 천연 기념물 보호, 그외 자연 보호와 같이 자연도 인류의 입맛에 맞게끔 가공되었다. 알기 쉬운 예로 짐승 가공이 있다. 인간이 양치기 개에게 가시 달린 목걸이를 주는 것은 양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기 위해서다. 인류가 양치기 개를 싸우기 적합하게끔 가공한 것이다. 인간이 짐승을 반려 동물이라 부르며 아끼는 것은 반려가 되게끔 가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문명으로 가공된 짐승은 자연에서 살기가 어렵다. 짐승을 반려 동물로 만들 것이면 책임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가공을 부정적으로 본다. 성형, 문신, 성전환 등과 같은 낯선 방식의 육체 가공이나 방송, 게임, 커뮤니티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정신 가공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화장 같은 가벼운 가공이나 백신 같은 필수적 가공조차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있다. 미성년 화장 금지 같은 자유권 침해나   안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멍청한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있다. 적당한 화장은 자존감을 키우고 호감을 사는 것으로 사회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한 가공이고 약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가공이다

  

가공을 이해하면 이외에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할  있다. 가공을 이해하면 유전자 변형 식품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검증된 식품은 괜찮을 거라 생각할  있다. 가공을 이해하면 일반 인간과 사이코패스는 소재 차이임을 이해하면 소매마다 가공을 달리하면 충분히 사회에 적응하게   있다고 생각할  있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번 가공된 제품은 재가공하면 본질이 바뀌지 않듯 한번 가공된 인간은 재가공하지 않으면 본질이 바뀌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재가공하면 바뀔  있다고 생각할  있다

  

한국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부모가 물려준 육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라 여겼기에 육체 가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인의 가공은 개인의 자유권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어린 시절 유교적 가치관에 세뇌당해 만들어진 관념 일부가 남아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아 외가 멋대로 떠올리는 것이므로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도중 가공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 부정적 관념이 대부분 사라졌다. 모든 문명인은 가공된 상태기에 사회와 체제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개인의 가공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부정적 관념을 바꾸었다. 가공 개념이란 문명인의 본질에 적합한 합리적 개념을 통해 스스로를 재가공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존중한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존중과 호감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존중하겠다는 상대에게 호감을 강요하는 것은 가치 강요에 해당한다

  

문명인은 가공 인간이기에 어떤 가공이든 개인과 사회와 체제에 해롭지 않고 가공한 것을 속이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권에 해당하는 문제다. 가공이 잘못된 것은 과도한 다이어트, 피부를 과하게 상하게  화장, 생명을 위협할 성형 등과 같이 소재를 파괴하는 경우다.  모습을 사랑하라면서 다이어트, 화장, 성형 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모습이 좋으면 자연으로 가서 짐승과 부대끼며 적자생존, 약육강식으로 살면 된다. 가공된 사회에서 가공된 상태로 살면서 가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문명인은 자연 상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최적의 가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가공이 성립될  있는 까닭은 자아의 성질 때문이다. 자아는  내에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태아 시기 감각기관에서 다양한 신호를 수집하면서 조금씩 자아의 기반이 마련된다. 아기 시기 언어를 학습하면서 자아를 자각하는 것으로 자아가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자아는 정보를 수집하며 성장하다가 2 성징 시작 시기인  14세에 자아 형성되어 형상을 이루기 시작된다. 2 성징이 끝나는 시기인  18세에 자아 형성이 완료되어 형상을 이루게 된다. 평균 2 성징 시작은 10~14, 2 성징 끝은 15~17세라고 하는데 보편성을 위해 14세와 18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문명인은 2 성징이 끝나는 시기에 자아가 형상을 이뤄 대부분 1 가공이 끝난다.  시기가 지나면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공이 끝났기 때문이다.  시기가 지나도 성장을 하며 변화하는데, 본질이 변하지 않고 자아 나이를 먹으면 추가 가공에 해당하고, 본질이 변하면 재가공에 해당한다. 가공이 끝난 인간도 재가공을 하면 변할  있다

  

인간은 나이를 먹는 것이 자아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가공 과정을 거쳐야 자아가 성장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10세의 육체로 30년을 살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사람 자아 나이는 10세인가 40세인가? 사회 나이는 40세이겠지만 자아 나이는 10세일 확률이 높다. 자아의 성장은 육체 변화, 환경 변화 등을 바탕으로 어떤 의식적 절차를 통해 인식의 변화가 발생해야 가능한데, 육체와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인식도 변하지 않아 자아가 성장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단지 조숙한 10세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새해에 나이를 먹었으니 떡국을 먹는다와 같은 의식적 절차를 통해 자아가 나이를 먹는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과거 집단주의 체제의 권위주의 시기에는 연령별 의무가 지정되어  의무를 거칠 때마다 자아 나이가 늘어났었다. 학교를 간다. 일을 한다.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는다. 그러면서 자아는 성장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의 자유주의 시기에는 연령별 의무가 거의 없어 대부분 학교에 가는 미성년 시기를 제외하면 자아 나이를 먹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많은 성년의 미성숙은 사회가 체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체제에 맞는 가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강제력이 발생할  있는 미성년 시기에 사회, 체제, 학교, , 결혼, 아이 등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단계를 거치면서 자아 나이를 먹는 성장을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미성년에게 권위주의 시기와 같이 장유유서를 근거로 상명하복을 윤리로 가르치고 남녀칠세부동석과 정조관념을 근거로 이성 관계 단절과  관계 죄악시를 윤리로 가르쳤다.  결과가 바로 다양한 차별이 만연하고 이성을 혐오하고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로 죽음으로 향하는 한국 사회다. 권위주의 시기를 말하며 미성년 때에 가치 생산, 이성 교제, 성관계, 성문화 등을 하거나 접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체제에 맞게끔 자발적으로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원리를 추구할  있도록 가공해야 한다. 미성년  필요한 성장을  하게끔 가공해야 성년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기에 이른 가치 생산, 이른 이성 교제, 이른 성관계, 이른 성문화가 잘못된 것은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여 강요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되려 그것을 권장하여 자발적으로 행하게끔 성장하게 해야 사회와 체제가 유지될  있다.

  

통상 고정 관념 수에 따라 발상의 제한이 달라진다. 보통 자아 나이가 많을 수록 고정된 관념이 많아진다. 그렇기에 자아 나이에 따라 발상이 필요한 역할이 달라진다. 기초와 응용을 생각하는 탐구자는 자아 형성이 시작되는 14 전후부터 자아의 나이를 먹지 않도록 가공하는  맞다. 시간, 영혼, 도덕, 감정, 행복 등과 같은 진리처럼 여기는 개념들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지금 생각한 것을  시간 뒤에 부정하고 오늘 생각한 것을 내일 부정하는 것은 보편적 관념을 가지고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아 나이가 18세는 넘어야 하나, 그러면 자아 형성이 완료되어 자유로운 재가공이 어려워 탐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탐구자에 한에서는 예외로 해야  것이다.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을 생각하는 창의자는 자아 형성이 완료된 18 전후부터 나이를 먹지 않도록 가공하는 것이 맞다. 기초는 물론이고 응용조차 암기하는 교육 과정에 의해 고정 관념이 많아져 많은 한국인들이 창의력을 상실했다. 통상 18 이전의 교육 과정에서 이미 많은 응용 문제 풀이로 고정된 관념의 수가 많아 창의력이 적은 상태이나, 그래도  시기는 고정 관념을 부정하여 스스로를 재가공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다. 그렇기에 창의력이 필요한 역할은 적어도 18 전후로 자아 나이를 재가공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기초와 응용 모두 암기하는 관리자는 재가공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30 전후부터 나이를 먹지 않도록 가공하는 것이 맞다. 자아 나이가 30 이상인 문명인은 언제든지 재가공할  있도록 미리 적어도 30 전후로 재가공해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계속 자아가 나이를 먹어 성장하면 자아도 노화되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시체가 되어버린다. 현재 사회 활동 하는 인구 대부분은 앞으로 인류 멸종을 보거나 불로불사를  확률이 높다. 21세기 세대는 멸종 또는 불사가 결정되는 분기점 세대다. 분기 되기 전에 자아가 노화되어 시체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해야  것이다.

  

자아의 뇌는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을 담당하고 자아 외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작은 움직임을 제어하는 영역을 담당한다. 세포의 세부적 움직임이나 무의식적 움직임은 자아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나 자아와 자아 외는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자아의 뇌가 기억을 바탕으로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면 자아 외의 뇌는  모든 것을 학습하여 자아의 움직임을 계산하여 예측하고 실제 무의식적 움직임을 통해 실행하기도 한다. 유전자 기억을 바탕으로 자아가 움직이고, 그걸 학습한 자아 외를 바탕으로 자아가 움직인다.

  

자아의 성질상 자아 동일성은 성립되지 못한다. 인간의 자아는 유전자 기억을 기초로  육체  신호 움직임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과, 그걸 바탕으로 자아 외가 학습한 것을 기초로  육체  신호 움직임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육체  세포는 실시간으로 조금씩 계속 바뀌기에 그걸 기초로  자아나 자아  또한 조금씩 계속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자아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각자 다른 자아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모든 자아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질 때문에 볼일 보기 전과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의 변동성은 실제적 개념이고 가공 완료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의식적 개념이다. 소재는 실시간으로 변하지만 가공 형태는 1 가공 완료 후에는 재가공하지 않으면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자아의 의지는 자아 외에 의해 실행하기가 어렵다. 자아는 현재 의지에 해당하고 자아 외는 과거 의지에 해당한다. 과거 자아가 행동한 것을 자아 외가 학습하여 예측하기 때문에 재가공 절차 없이 자아 외의 학습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중독을 끊는 . 편견을 버리는 . 인식을 넓히는 . 등의 것들은 자아 외의 과거 의지에 의해 어려운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습관대로 행동했기 때문인 것이다. 매체에서  정보가 멋대로 머리 속에 연상되어 떠오르거나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또한 마찬가지로 자아 외가 멋대로 계산하여 예측하고 실제 실행한 것으로 거기에 자아의 자유 의지는 거의 없다고   있다. 평소 쓰지 않던 욕설을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고 스스로를 자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식하여 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독의 경우를 예로 들면,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다짐하고 다음날 술을 마시는 것은 자아 외의 과거 의지에 의한 것이다. 이런 것은 자아 성질상 어쩔  없는 것이므로 중독에 벗어나지 못했다며 자책할 것이 아니라 본인을 재가공을 해야 한다. 스스로 재가공이 어렵다면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인간은 이런 자아의 성질에 의해 학습보다는 가공이 적절하다. 자아가 자유 의지를 갖고 성질을 변화시키면 가공되는 것이고, 변화시키지 않아도 자아 외에 의해 가공되게 된다. 의지와 무관하게 가공되므로 결과적으로 학습보다 가공이  적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가공 개념을 떠올리기 어려웠던 것은, 인간의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본인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가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치원생 남성이 파랑을 선호하고 여성이 분홍을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인류의 본성이 아니라 이미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남성이 분홍을 선호하고 여성이 파랑을 선호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유치원생의  선호도는 이미 가공되었음을 이해할  있다

  

 

  

가공 개념은 문명인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인간은 유전자나 환경과 같이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가공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가공 제품은 소재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듯 가공 인간도 유전자 성질 내에서만 가공이 가능하다. 인간은 유전자 성질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 소재 한계와 같이 유전자 한계가 존재하므로 인간이 버틸  없을 정도의 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소재를 이해하지 못하여 소재를 파괴하는 가공을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여 인간을 파괴하는 가공을 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것은  된단 말이다. 선천적 알레르기, 선천적 감각 등도 바꾸기가 어렵다. 어떤 부모가  알레르기가 있는 자녀에게 쌀밥 섭취를 강요하며 먹이자, 자녀가 온몸에 붉은  두드러기가 생겨 응급실에 실려간 사례가 있다. 어떤 시부모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며느리에게 청소를 했다고 말하면서 고양이 키우는 집에 방문을 강요하며 강제로 오게 하자,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사례가 있다. 알레르기만큼은 아니지만 대체로 미각이나 취향도 선천적인 유전자의 영향에 의해 바꿀  없을 때도 있다. 그것을 전통 문화라면서 음식을 강요하거나 취향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력을 말하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 유전자 조작이 보편화되면 선천적인 것조차 가공이 가능할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선천적 성질 몰이해는 학습 개념 때문이다.학습 개념으로 접근하여 인간의 본질 자체가 뭐든지 적응 가능한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반면 가공 개념은 다르다.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소재 한계 이상은 가공이 불가능하다 여겨지게 된다

  

가공 제품은 소재를 가공하여 소재보다  가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문명인도 인간을 가공하여  가치 있게   있다. 제품의 소재가 다르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소재 차이를 뛰어넘을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유전자가 다르다더라도 가공이 좋으면 유전자 차이를 뛰어넘을  있다. 그럼에도 마치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있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단순한 유전자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가공 제품이 소재 한계를 넘을 수는 없으나 소재 한계 내에서는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한 것과 같이 가공 인간도 유전자 한계를 넘을 수는 없으나 유전자 한계 내에서는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하다. 특히 인간은 동일 종이므로 일반 인간은 대부분 가공에 의한 차이다. 인간은 동일 종이기 때문에 인류 아이큐는 일정 이상을 넘을 수가 없고 인류 체력도 일정 이상 넘을 수가 없다. 인류는 동일 종으로 소재 한계가 비슷하기 때문에 달리기 같은 소재 한계를 명확히   있는 경기는 기록의 변화가 드물다. 인간은 대부분 차이가 없기 때문에 타인이 가능한 것은 본인도 충분히 가능할 확률이 높다. 현재 성과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것은 각각 소재 한계를 모르기에   있는 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력을 해서   있는 것은 충분히   있다. 미리 포기할 것이 아니라 유전자 한계를 파악하고   있을 때까지 해보는 것이 좋다. 꿈을 이루는 것은 노력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 어떤 것을 바란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진정 바란다 하기가 어렵다. 노력하지 않는 바람은 환상일 뿐이다. 이는 학습 개념 때문이다. 학습 개념으로 접근하면 인간의 본질을 변하지 않기 때문에 노력을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을 각자 입맛대로 판단하여, 뭐든지 적응할  있다고 착각하거나 노력을 해도 의미가 없다 여긴 것이다. 반면 가공 개념은 다르다.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소재 한계 내에서는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하다 여겨지게 된다

  

문제는 소재 한계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유전자 검사, 아이큐 검사, 체력 검사 등을 통해 소재 파악을 일상화하여 대응해야 한다. 소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가공하겠다는 것은 황당이다. 본인 또한 소재 한계를 파악해둬야 한다. 어디까지 노력할  있는가? 어디까지 먹을  있는가? 어디까지 생각할  있는가? 어디까지 달릴  있는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다른 소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소재 파악 같이 혼자서 하기 어려운 것은 학교 교육에서 하고 지식 암기와 같이 혼자서 가능한 것은 혼자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학교 교육에서 소재 파악 이후에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그것을 위한 지식 수집, 생각, 암기, 이해 등은 개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 학교 교육은 단순히 주입식 교육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은 동일 종이기에 문명 차이는 가공 차이에 의한 것이다.  말은  문명의 차이는 인종의 차이가 아닌 가공의 차이가 된다. 문화 상대주의를 말하며 문화마다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세세한 문화는 몰라도 문화를 학문으로 체계화한 문명은 명백하게 차이가 나게 된다. 국력이 차이가 나는 것은 가공 개념으로 접근하면 인종 우열 또는 문명 우열   하나가 원인이 되는데, 모든 인간은 동일 종에 속하므로 문명 우열이란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문명 차이가 나니까 국력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차이가 일절 없다고 접근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일 뿐이다. 비행기 타는 문명과 마차 타는 문명이 같을 리가 없지 않나. 문명 우열이 제국주의적 식민 침략을 정당화할  있다는 주장이 있을  있다. 그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 잘못은 잘못이고 사실은 사실이다. 문명 우열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 국가 의사를 무시하고 침략과 착취를 강행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게 되지 않고, 상대방 의사를 무시하고 침략과 착취를 강행했다 하더라도 문명 우열이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인종 우열은 인종 전체의 우열에 해당한다면 문명 우열은 개인 우열에 해당한다. 인류 문명은 소수의 인간이 발전하게 했으므로 인종 우열과 문명 우열은 별개가 된다. 인류 지역마다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을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하는데, 소수의 인간 유무에 따라 문명 발전도가 다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탈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자연 계열도 탐구한 인간이 없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이 인문 계열만 탐구한 인간만 있었다면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든다. 실제 동양에서는 그런 인간이 없어 과학 혁명이 불가능했다. 있었을 수도 있으나 힘을 가진 자에게 인정 받지 못했다. 우주적으로보면  어떤 인간도 존재 유무가 우주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지만, 지구적으로 보면 일부 인간의 존재 유무가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있다. 국력 차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차이의 원인이 인종 차이보다는 문명 차이인 쪽이 인류 관점으로   보다  평등하다   있다

  

 

  

문명인의 본질을 알아야 문명인이 일으킨 사회 문제도 파악할  있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인간의 공동체인 사회는 인간의 평가로 조직된다. 가공 인간이 조직한 사회는 가공 사회다. 가공 사회에서 가공 인간이 일으킨 문제를 파악하려면 가공 인간을 파악해야 한다. 가공 인간은 유전자, 문명, 환경 등으로 가공된 가공 상태가 본질에 해당하며, 동일한 종으로 가공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문명인은 대부분 가공 수단에 의한 차이가 나타나 가공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소재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도록 가공하는 것이 마땅하기에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가공의 책임이 된다. 예를 들어 일반 인간과 사이코패스는 소재가 다르다   있다. 그렇다고 소재 책임을  수가 없다. 가공 제품의 소재가 다르다 하더라도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가공하여 문명인이   있게 하는 것과 같이 가공 인간의 소재가 다르다 하더라도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가공하여 문명인으로 살아갈  있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소재와 무관하게 가공 인간이 일으키는 사회 현상은 대부분 사회에서 문명으로 소재를 가공된 대로 행동한 결과라   있다

  

인류는 과학 혁명을 통해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수의 개인이 힘을 갖게 되면서, 기독교 평등주의를 명분으로 삼아 자유로운 사상과 영합하여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개인주의 체제인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로 진보했다. 그런데 현대 경제 체제와 과거 경제 체제의 차이는 자본에 있는 것이 아닌 시장에 있어 시장주의가  적합하다   있다. 현대 경제 체제의 상징은 자본이 아닌 시장이라 생각하므로 자본주의보다 시장주의가  적합하다 보고 앞으로는 시장주의라 부르겠다. 웬만하면 기존 용어를  텐데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상징하는 바가 달라 어쩔  없다. 선진적인 인류 사회 체제는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하였는데, 윤리는 집단주의 체제의 종교적 가치관인 상태여서 인간은 집단주의 체제에 맞게 가공되었다. 이것이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을 불렀다. 종교적 가치관으로 보면 이기적으로 본인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굉장한 악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결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 여성주의 등과 같은 윤리 강조 사상들이 대두되었다. 사회에 잔재된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그것은 지지받고 유행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의 질서를 유지하던 윤리였기에 공산주의 국가는 독재 국가가 되고 PC주의와 여성주의는 소수자와 여성 전체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집단적으로 가치관을 강요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일을 자행하게 되었다.

  

많은 개인이 왕정 체제  질서를 유지하던 집단주의적인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인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와 같은 사상에 반대와 저항이 발생했다. 세속화된 자유로운 자유 국가는 통제되고 억압받는 신정 국가로 되고, 민주화된 국민에 주권이 있는 민주 국가는 지배자에게 주권이 있는 독재 국가로 되고, 시장화된 개인 경제권이 보장되는 시장 국가는 정부 경제권만 보장되는 공산 국가로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관념에 의한 것인데, 가공으로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상태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한 체제가 옳다고 여기고 거기로 가려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유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대놓고 정치사상에 속하여 지배에 최적화된 가치관으로 가공되어  가치관에 의한 부작용이 지나치게 많았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복종해야할 차례가 있음을 윤리로 가르친 장유유서만 아니었어도 가치관의 대물림이 없어 학문 진보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못하고 대물림된 윤리를 종교 교리처럼 절대적으로 여기며 지키는 바람에 조선이 침략으로 망하고 한국은 저출산으로 망하고 있는 중이다.

  

인류는 보편적으로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상태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주의가 유행될  있었다. 본래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인류는 개인주의 체제로의 진보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회주의 혁명과 같이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로 회귀했을 확률이 높다.  흐름을 부순 것이 바로 미국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공동체 사상은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보다 평등을 중시하거나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미국은 식민지 독립을 통해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였고, 서양 문명 입장에서 신대륙 국가였기에 이민족 국가로 민족과 같은 공동체 구심점이 지나치게 많아 통일될  없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있었음에도 단일 민족과 같은 고전적 공동체가 성립되기 어려워 공산주의 열풍에서 벗어나 반공주의의 주축이 되어 개인주의 체제를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로 자리잡자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에서 종교적 가치에 의문을 품고 거기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여 다수의 선진국에 개인주의 체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 선진국도 사회 민주주의라는 개인의 의사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가 결합한 체제가 되었다. 그것은 체제의 모순으로  이상 진보할  없는 체제지만 어쨌든 개인주의 체제 성질이 남을 수가 있었다. 다수의 공산주의 국가조차도 경제는 시장주의를 받아들여 개인주의 체제의 일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식민지 독립 국가, 신대륙 이민족 국가, 세계 최강국.  요소가 모여 많은 국가가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한 상태를 유지하고 사회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로의 퇴보를 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종교적 가치관에 영향을 깊게 받은 한국이나 일본이 개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미국 영향이 굉장히 크다. 만약 미국이 없었다면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많은 개인이 고통 받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만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종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하여 종교적 가치관을 가진 인간과 어울린다. 수천 년간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인간이 종교적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국조차도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전체주의적으로 타인에게 특정 인식과 가치를 강요하는 PC 파시즘 홍역을 앓고 있을 정도다. PC주의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개인주의적인 것처럼 보여서 대놓고 공동체를 주장한 공산주의와 달리 미국에서 유행할  있었으나,  구조와 원리가 종교와 유사하여 종교 파시즘과 다를  없다. 종교 파시즘은 상대적인 종교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개인에게 전체주의적인 강요를 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종교 전쟁 등이 있다. 종교와 PC주의가 갈등을 빚는 것을 보고 PC주의가 종교적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가 있는데, 윤리를 강조하는 PC주의의 구조와 원리는 종교가 종교의 윤리를 전체주의적으로 강요하던 것과 거의 같다. 종교와 PC주의의 갈등은 교리 해석 차이로 갈등을 빚는 종교로 이해하면 된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종교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 가치관에 맞게끔 가공되었다. 한국인은 종교의 보편적 가르침인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수기치인, 삼강오륜, 정조관념 등의 가르침을 토대로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주의적인 인간으로 가공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 문제인 금욕ㆍ희생 강요, 불합리한 주입식 암기 경쟁, 연령ㆍ성별ㆍ직업 등의 차별, 이성애와  죄악시 등은 전부 한국 문화와 문명으로 가공된 결과다. 다양한 문명의 가공 과정 중에서 윤리가 차지하는 영역이  까닭은 절대성과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리는 현재 인류가 일으키는 많은 사회 현상의 원인이 된다. 인간을 가엾게 여겨 돌보는 것이 윤리가 바탕이 되었다면 이교도를 척살해야 한다며 테러를 일으키는 것도 윤리가 바탕이 되었다. 이런 것은 윤리를 절대적으로 옳다 인식할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가공 과정으로 인식하면 이해할  있다.

  

종교적 가치관과 같은 억압과 차별을 윤리로 배웠기에 절대적이라 여기며 사회 문제의 원인임을 파악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는 가공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냥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사회 문제인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한국 문화와 문명에서 비롯된 결과다. 오랜 시간 인간은 배운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있을지 고민했는데 가공 개념이 매우 적절했다 본다. 학습은 하더라도 성질이 크게 변하지 않아 인간의 본성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가공은 하게 되면 성질이 크게 변하여 문화와 문명이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있다. 사회 문제는 종교적 가치와 가공 개념을 이해하면 파악하기 쉽다. 고질적 사회 문제는 체제 적응 실패로 가공 부적합에 해당한다

  

금욕주의는 죄악을 부를  있는 욕망을 절제하거나 금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윤리가 되자 타인에게 금욕을 강요하게 되었다. 금욕이 옳으니까 본인이 싫은 것은 타인에게 금욕을 강요하는 것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오늘날 자유 억압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금욕주의다. 금욕주의로 이런 사회 문제가 나타난다. “ , 결혼, 출산 안하냐고요? 욕망이 나쁘다면서요. 그래서 안가졌어요. 욕망이 적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데 뭐하러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하나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챙기기 위해 아르바이트만 하거나 경제 활동 안하고 이성 관계를 맺지 않고 애도 낳지 않을 거예요.” 사회 전체가 붕괴된다. “ 배고파도 일을 안하냐고요? 그냥 죽을 거니까요 욕망은 나쁜 거잖아요.” 자살률이 오른다. “ 일확천금을 바라냐고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기본 욕구 충족은 돈이면  되거든요. 자아실현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욕망은 적고 기본 욕구만 많으니까 돈만 있으면 돼요. 실패하면 죽죠. . 그거 말고 바라는 것도 없는 걸요.” 주식, 부동산, 가상 자산 등의 파멸적 대출 투기가 활성화된다. 욕망이 나쁘다 배워서 동기가 없는 바람에 최소한의 욕구 충족만 하면서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국가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경제 활동 둔화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율과 같은 사회 붕괴는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금욕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인과는 단순하다. 인간의 연료인 욕망이 부족하니 인간이 동작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배운 대로,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이타주의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윤리가 되자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다. 희생이 옳으니까 본인이 싫은 것은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오늘날 개인 희생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이타주의다. 이타주의로 이런 사회 문제가 나타난다. “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이익을 추구하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희생시켰어요. 나의 행복을 위해 희생했으니 윤리적이죠.”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불신이 쌓여간다. “ 기부와 같이 남을 돕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 협박하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나에게도 희생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지극히 옳은 일이죠.” 타인을 돕는 이들이 돕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냐고요? 희생이 옳다면서요. 그래서 희생할  있게 책임을  거예요. 정말 옳은 일을 해서 기분이 좋아요책임 전가가 늘어난다. “ 공감하지 않느냐고요? 그건 타인이 나에게 공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공감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걸 위한 희생은 타인이 하면 되는 거예요.” 일방적인 공감 강요가 나타난다. “ 담합을 하고 비리를 저지른 이를 감싸며 내부 고발을 배신자라 규정하고 비난하냐고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옳다면서요. 당연히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담합하고 비리 감싸고 내부 고발 비난해야죠.” 사회와 체제가 망가진다. 이타주의가 옳고 이기주의가 나쁘다 배워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바람에 사회 전체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연령, 성별, 지역 등에서의 불신이나 갈등 같은 사회 붕괴는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이타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인과는 단순하다.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니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배운 대로,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유교적 가치관은 수기치인이나 삼강오륜은 삼강인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과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과 같이 유교의 도덕으로 지켜야할 수직적 인간 관계에 맞춘 강령과 도리등과 같은 유교의 가르침으로 형성된 가치관을  말하는데, 그것이 윤리가 되자 차별을 강요하게 되었다. 차별이 옳으니까 본인이 싫은 것은 차별을 강요하는 것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오늘날 인간 차별의 윤리적 근거는 대부분 수기치인이나 삼강오륜과 같은 유교적 가치관이다. 유교적 가치관으로 이런 사회 문제가 나타난다. “ 입시에 목을 매냐고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남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면서요.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기 위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야 하니까요.” 학력에 의한 차별과 함께 입시 과열 현상에 의해 응용 문제조차 암기한 이들이 창의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 꼰대질과 갑질을 하냐고요? 어른과 아이 사이의 도리에 엄격한 차례와 복종해야  질서가 있다면서요. 상명하복이 옳다면서요. 복종하지 않는  그른 거예요. 나는 옳은 일을 했어요.” 연령 차별, 직업 차별과 같은 수직적 인간 관계가 나타난다. “ 미성년의 이성 교제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죄악시하냐고요? 남녀는 칠세 이후  자리에 앉으면  된다면서요. 여성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면서요. 그걸 방해하는 성문화는 매우 나쁜 거예요. 그걸 막는 나는 지극히 옳은 일을 했어요. 성문화를 즐기는 파렴치하고 문란한 놈들은 처벌을 받아야 해요.” 여성성이 억압되는 여성 차별이 일어나고 미성년 시기에 이성 관계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게끔 가공되어 성년 이후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며 그런 부정적 인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혼이 유행하게 된다. 유교적 가치관을 옳다 배워 차별을 윤리로 여기는 바람에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차별은 각각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유교적 가치관을 기본으로 한다. 인과는 단순하다. 차별이 윤리가 되니 서로를 차별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배운 대로, 가공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사농공상, 가부장제, 정조관념 등은 그러한 다양한 차별의 흔적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여성을 대상으로  정조관념에 의한 여성성 억압은 여성성 소비를 남성이 하기 때문에 남성 차별로 보일  있는데 실제로는 여성성을 억압받았으므로 여성이 차별 받는 것이다.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 원인이 보인다. 유교적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배워서 어떻게든 유교를 옹호하려고   있는데, 애초에 유교는 왕정의 정치사상이다. 삼강이 왕정의 의해 왜곡되었고 성리학은 유교 주류와 다소 다르다고 말할  있는데, 공자가 있던 시기의 유교 자체가 왕정의 정치사상으로 설계된 상태라는 것이다. 유교의 핵심 사상인 수기치인은 위정자가 갖춰야  덕목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남을 다스림을 말하며, 이념 자체가 왕정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지배를 위함이 명백하다. 모든 가르침이 왕정 체제 내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왕정 내에서는 합리적이라   있어도 민주정 내에서는 불합리하게 된다. 유교를 절대적 가치로 배워 이해하기 어려울  있는데 그냥 쓰임새로 생각하면 된다. 유교는 왕정에서는   있어도 민주정에서는   없다.

  

이러한 사회 문제는 유교 사회에 있을 때에는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으나 자유 사회가 되자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과거는 인간과 사회가 모두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되었으나 현재는 인간은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되는데 사회는 개인주의 체제로 가공되어 인간과 사회가 맞지 않는 것으로 충돌이 나서 모든 것이 파탄나고 있다. 과거에는 수직적 강요를 통해 어떻게든 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강요를   없게 되면서 모든 것이 붕괴하고 있다. 사회 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했는데 인간 관념은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관념에 머물러서 개인은 체제에 부적합하게 가공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공 개념과 함께 마차와 자동차의 비유를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사회 체제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옳고 그름과 별개로 단순히 마차 또는 자동차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과 다를  없다.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가 아닌 기름을 넣는 것은 그냥 단순히 자동차에 맞는 것에 해당한다. 옳고 그름과 같이 상대적으로 다를  있는 가치의 영역이 아닌 맞고 틀림과 같이 절대적으로 같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리를 말하며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를 넣고 있으니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

  

조선의 멸망과 한국의 추락을 마차와 자동차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은 마차로 자동차를 따라가지 못하여 침략 당해 망했고 한국은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자 저출산으로 망해가고 있다. 민주주의자로서 왕정의 질서를 유지하던 윤리를 가리켜 썩었다고 표현하겠다. 썩은 윤리로 국가가 썩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 문제가 윤리가 원인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이해는커녕 수용조차 어려울  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상과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윤리를 옳다 여겨 사회 문제를 악화시킨 것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해야  정도로 이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윤리 부정을 못하겠으면 그냥 저출산 대책에  쓰지 말고 다른데 쓰는 것이 낫다. 장담컨대 윤리 부정을 못하면 출산율은 오를 수가 없다. 욕망과 이성 관계와 성을 나쁘다 여기게끔 가공했지 않나. 단순히 나쁘다고 가공되어 안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나 부동산이나 노동 시간과 같은 환경을 말하는데, 욕망이 적고 성을 부정적으로 보게끔 가공되어 노력을 해야할 가치가 없어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기가 있으면 전쟁 통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위해 노력하고, 동기가 없으면 여유가 넘쳐도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이 높은 가치가 때문에 부유한 이들이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낮은 가치기 때문에 부유한 이들이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결혼과 출산의 가치가 낮아 우선 순위가 낮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은 낮은 우선 순위에 있는 결혼과 출산을 외면하고 부유한 이들은 낮은 우선 순위까지 가치를 추구할  있어 결혼과 출산을 한다. 그만큼 현재 이성애에 관련된 가치가 폭락한 상태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과한 비용이 들어가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이성애에 관련된 가치가 폭락하여 허영심이 깃든 형태에 집착해야만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동기를 얻게  것이다.  이성애가 아닌 자기애를 동기로 삼아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정말 사랑했다면 형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하게 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현재 생각하는 이상형을 떠올려보라.  이상형과 어떤 형태든 같이 있으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현재 저출산은 가공한 결과가 그대로 나오는 것뿐이다. 가공 인간은 자아 탐구를 하지 않는  대부분 가공된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해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는 강요할  없기 때문에 학교라는 강제력이 있는 미성년 시기에 사회와 체제 유지에 필요한 , 결혼, 출산에 관한 것을 전부 가르쳐서 가공했어야 했는데 강요가 가능했던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의 썩은 윤리 지키다 싹다 망했다.

  

체제 부적응은 가공 부적합에 해당한다면 범죄와 교화 실패는 가공 실패에 해당한다. 점점 많아지고 어려지는 범죄, 교화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재범을 보며 강력한 처벌을 하자는 주장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학습 개념으로 접근하여 본질을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문명으로 제대로 가공하지 않자 범죄가 늘어났다. 설령 사이코패스라 하더라도  소재에 맞게끔 가공을 해서 사회와 체제에 적합하게끔 해야 했는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그냥 손을 놓고 기피하게끔만 만들었으니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문명으로 제대로 재가공하지 않자 재범이 늘어났다. 교화는 단순히 학습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재가공 과정을 통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알기 쉬운 본질 변화는 도박 중독에 의한   보상 회로 변경이나 종교 세뇌 등이 있다. 각각 도박과 종교에 맞게 재가공 되었다.

  

교화가 실패하면서 강력한 처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처벌 강화에 대해 간단히  가지를 다루겠다. 전자발찌에 의한 이중 처벌에 반대한다. 그것은 잦은 교화 실패에 의한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정해진 형량을 마쳤는데 사회에서 추가 제재를 하는 것은 이중 처벌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전자발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20년형이 나오고 10 교도소에 있다가 조기 출소를 하면 나머지 10년은 전자발찌를 차더라도 이중 처벌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과 같이 한번 처벌로 끝나야 된다고 본다. 섣부른 얼굴 공개에 반대한다. 그것은 범죄율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대중의 분노를  대상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연좌제를 통해 가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무고한 인간을 쓰레기 취급하게 만들수도 있다. 대중의 분노가 깊은 일부 사건은 감정 쓰레기통이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어쩔  없는 측면에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성범죄는 성이 아닌 자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관계를 맺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 성에 초점을 맞추면 성을 죄악시하게 되지만 자유에 초점을 맞추면 자유 침해를 죄악시하게 된다. 그래야 성관계가 늘어나고 성범죄는 줄어들  있다. 성에 의한 범죄가 나타났다고 성을 나쁘다 말하는 것이 저출산을 부추기는 것이다.

  

앞으로 인간과 사회는  가지 재가공이 필요하다. 체제 변화에 따른 재가공과 기술 변화에 따른 재가공과 환경 변화에 따른 재가공. 개인주의 체제로 변화되었음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모든 개인이 재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왕정 질서를 유지하던 가치관임을 인식하고,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사회 또한 이미 개인주의 체제지만   그에 맞게끔 재가공한다. 디지털 기술이 일자리 소멸을 부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모든 개인이 재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대부분 일을 하는 성년은 그에 맞게끔 가공된 상태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걸 고려하여 단순히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지식 학습이 아닌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재가공을 해야 한다. 사회 또한 그에 맞게끔 재가공한다. 지구 환경이 변화되었음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모든 개인이 재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던 환경 보호의 필요성보다 더욱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이 살기 적합한 지구 환경 보호는 방식은 가치에 해당해도 실행은 존재에 해당하여 절대적이라   있다. 가능한 환경 보호가 되도록 하고, 지구 환경 변화가 나타나도 인류가 살아남을  있는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인식하게끔 재가공을 해야 한다. 사회 또한 그에 맞게끔 재가공한다.

  

 

  

가공 개념을 이해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보통 영혼과 자아 동일성과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있다. [영혼: 2.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인간은 영혼이란 개념으로 인간의 본질이 육체 밖에 있기 때문에 육체의 변화로 인간의 본질이 바뀔 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라 본다. 그렇기에 가공 개념을 떠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인간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영혼이란 개념을 믿었는가? 그것은 자아의 자각 시기에 답이 있다. 인간의 자아는 언어를 익혀야 지성적인 자각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언어를 익혔다는 것은 이미 인간 문명으로 가공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자각한 자아는  상태를 가공된 후천적인 것이 아닌 가공되지 않은 선천적인 것으로 착각했다. 그렇게 착각한 상태에서 인간은 본인의 존재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에 대한 해답을 육체 밖에서 찾은 것이 바로 영혼이다. 이미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자각했기 때문에 자아가 만들어졌다고 인식한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영혼이 육체에 깃든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렇게 육체 밖에서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영혼 개념을 통해 인간의 자아는 본질이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다고 본다. 물론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아는 육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외부에서 깃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정보 수집을 통해 자아 형성이 시작되어 스스로를 자각하는 것을 고려하면 인간의 자아는 육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에 해당한다. 만약 어떤 존재가 외부에서 깃드는 것이라면 자아 형성을 위한 정보 수집이라는 성가신 과정이 불필요하다. 영혼 개념은 AI 자아를 갖게 되면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될 것이다

  

영혼 개념에 의한 본질의 불변이 자아 동일성을 불렀다고 본다. [자아 동일성: 1. 심리_타인과 구별되는  개인으로서 현재의 자신은 언제나 과거의 자신과 같으며 미래의 자신과도 이어진다는 생각. 에릭슨의 자아 심리학이나 올포트의 인격 심리학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그러면서 가공 개념을 인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물론 자아는 동일하지 않다. 인간의 자아는 세포의 신호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조금씩 달라진다. 자아는 추가 가공을 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고 재가공을 하지 않으면 본질이 변하지 않은  가공된 상태를 유지하지만, 세포가 매일 조금씩 달라지듯 자아도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인간이 동일한 것은 자아가 아닌 기억이다. 자아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전부 다른 존재이나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기억 동일성을 통해 모든 자아가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실시간으로 자아가 달라지므로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계획했다면 주기적으로  사실을 인지할  있게 메모 같은 것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모든 시간대의 자아가  계획을 공유할  있다

  

영혼 개념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본질이 불변하다 여긴 인간은 본인의 인식과 가치도 절대적이게 여기게 된다. 그것이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다. [인식: 1.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가치: 3. 철학_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 ,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 인간은 본인이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진리, 도덕, 아름다움 따위가 절대적이라 여겼다. 그것을 절대적이라 여기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게 되었다. 그것이 가치 강요다. 종교, 왕정, 공산, PC  인간에게 가치를 강요하는 모든 사상은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전체주의적으로 전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면 파시즘이 된다. 가치 중에서 아름다움의 경우는 상대적이라 여기기도 하여 상대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도덕의 경우는 절대적이라 여기며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덕을 강요하게 되었다. 도덕이 절대적이라 여기는 것에 의해 양심이 지능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만약 양심이 지능이면 양심의 기준이 되는 도덕이 다른 종교는 서로가 서로를 어리석다 여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서로를 어리석게 여겼다. “ 어리석은 이교도 ! 처단해주지!” “내가 할말이다! 멍청한 이교도 ! 죽어라!” 이런 상호멸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PC주의, 여성주의 등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도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런 개념은 성립될  없다. 가치와 지능은 직접적 관계가 없다. 물론 지능이 낮아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가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혼과 자아 동일성과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 같은 개념들에 의해 가공 인간이라는 문명인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자아는 동일하지 않으며 인식과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이러한 결론은 자연 계열의 선천적이고 절대적인 존재 탐구를 통해 도출했다. 인간은 육체의 감각기관으로 지각한을 인식하므로 육체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다. 일반 인간과 색맹 인간은 색을 다르게 보고 10대와 20대는 소리를 다르게 듣고 언어권과 비언어권은 언어를 다르게 느낀다. 그렇게 인식이 상대적이기에 인식을 바탕으로  가치도 상대적이게 된다. 일반 인간과 색맹 인간이 어떻게 사물에 대해 동일한 아름다움을 느끼겠는가? 소리가 크게 들리는 인간과 작게 들리는 인간이 어떻게 소음에 대해 동일한 도덕적 판단을 하겠는가? 아름다움이나 도덕은 물론 진리조차 그렇다. 진리는 실제 존재하는 일반 진리와 학문으로 탐구한 학문 진리로 나뉘는데,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는 일반 진리가 아닌 한차례 가공된 학문 진리다. 그렇기에 상대적이게 되고, 그렇기에 그걸 진리로 여기지 않는 이에 의해 학문이 발전한다

  

이처럼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절대적인가? 그것이 바로 존재다. 인간은 색을 다르게 보고 소리를 다르게 듣고 언어를 다르게 느끼므로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지만 거기에 색이 존재하고 소리가 존재하고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지만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개념이 매우매우 중요하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인류의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라 불리는 자연 계열의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선천적 존재 탐구다. 절대적인 존재의 선천적 탐구한 것이 자연 계열이다. 보통은 그런 존재 탐구를 하더라도 인간의 육체에 의해 인식과 가치 탐구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각자 탐구 결과가 달라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걸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으로 극복했다. 과학적 방법으로 탐구 결과를 증명하면서 인간의 육체에 의한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 탐구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것이다.  존재의 절대성이 얼마나 위대한 개념인지 이해해야 한다. 만물 존재의 선천적 성질을 탐구하여 보편성이 보장된 증명을 하면서 그걸 기준으로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관찰하고 실험하고 탐구한다. 자연 계열은 그것을 미친듯이 반복하면서 인류 문명은 선천적인 세계의 법칙을 규명해냈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는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의 결과물이라   있다. 철학의  기준  하나인 존재를 탐구한다는 측면에서 자연 계열의 탐구자는 선천적 존재를 다루는 철학자도 된다. 그들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나는 영혼과 자아 동일성을 부정하는 결론을 내리고 가공 개념을 떠올릴  있었다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은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 결과를 바탕으로 나온 개념이다. 그렇기에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인식과 가치의 존재 탐구 결과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나온 것이다. 존재 자체는 탐구하지 않아도 절대적이라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인식과 가치는 상대적이고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것의 인문 계열 적용을 다음 예시를 통해 이해해보자. 쾌락 연쇄 살인마가 있다 가정하자. 그럴   연쇄 살인은 절대적으로 악하다   있는가? 대부분 이것을 절대적으로 악하다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상대적이다. 이것은 자연 계열의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나온 명제다. 그렇다면 연쇄 살인에 대한 가치 판단도 상대적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해 쾌락 연쇄 살인마도 인간이다.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사회에서 허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치의 상대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것은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대응할  있다. 개인의 쾌락 연쇄 살인을 막지 않으면 사회 구조가 유지되지 못하고 체제에 따라 사회 원리도 추구되지 못할  있다.  가치와 무관하게 사회에 부적합하고 체제에 부적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쁘기 때문에 막는 것이 아니라 부적합하기 때문에 막는다. 그러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악하지 않더라도 막는데 문제가 없게 된다. 존재의 절대성을 통해 가치의 상대성을 성립시킨다. 이것이 인문 계열에서의 존재 탐구  하나다. 인문 계열에서 상대적 인식과 절대적 존재는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단언컨대  어떤 가치도 상대적이다. 만약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제하고 싶다면 가치가 아닌 존재를 근거로 해야 한다. 일부는 마치 본인들이 주장하는 가치가 절대적인 것마냥 말하면서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가치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여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되려 잘못된 것이다. 가치가 아닌 존재를 합리적 기준 삼아 그것에 적합한가 부적합한가로 판단한다. 그것으로 사회가 합리적일  있다

  

동시에 그래야 개개인의 다양한 가치관이 존중될  있다. 체제에 속하는 자유와 그에 반대되는 억압을 제외한, 다양한 가치들, 사랑과 증오가 존중되고 평등과 차별이 존중되며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존중될  있다.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을 어떻게 존중할  있는지 의문이   있다. 그건 이미 존재를 통해 한번 걸러진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이기에 가능하다. 존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증오와 차별과 더러움은 보통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는 가치에 해당한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그것을 표출하여 사회 구조 유지에 해롭게 되면 존재를 기준으로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차별을   있다. 그건 상대적 가치로 존중된다. 그러나 그런 가치관을 근거로 직접 영향을 주는 차별을 행하는 것은 절대적 존재에 해를 끼칠  있어 존중되기 어렵다. 이를 망망대해의 뗏목에 표류된 표류자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뗏목 위에 미워하는 상대가 있다 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그걸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것과 다를  없다. 존재에 해를 끼치지 않는 가치는 모두 존중될  있다. 존재 탐구를 통해 사랑할 자유와 증오할 자유를 모두 보장하겠다. 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존중과 호감 개념을 구분치 않는데 존중과 호감은 다른 개념이다. 각자 다양한 개성은 존중받을  있으나 무조건 호감을 받을 수는 없다. 무조건 호감을 받겠다는 것은 타인의 가치관을 강제로 수정하겠다는 것과 같다.  가치관에 대한 자유 침해다.

  

상대적 가치와 절대적 존재, 이것으로 개인의 최대한의 자유와 사회 질서 유지가 성립될  있다. 존재와 가치의 성질상, 사회 질서의 근간은 절대적인 존재를 기준으로 삼고, 질서  인간 관계는 상대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법에서 공법은 존재를 기반으로 하고 사법은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법은 학문에서 탐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만들어지나, 공법의 존재는 절대적이므로 학문에서 탐구한 결과에 보다 중점을 두고 사법의 가치는 개인의 의견에 보다 중점을 두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가치를 탐구할 때에는 상대적인 인식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존재로 탐구해야  것이다

  

 

  

가공 개념으로 현재 사회를 보면 지금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인식할  있을 것이다. 보통 가공이 잘못되어 문제가 발생하면 가공 방식을 바꾸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사회는 가공이 잘못되어 문제가 발생해도 가공 방식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여기며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면서 더욱  가공 방식을 고집한다. 그러면서 사회는 더욱 엉망이 된다. 그것이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이 만든 사회 문제다.

  

현재 심각한 사회 문제  하나가 바로 성별 갈등이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여성주의로 가치의 절대성이 만든 사회 문제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여성주의는 성별 평등을 명분으로 여성 권리 증진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성별 평등보다는 여성 권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설령 남성이 차별을 받거나 여성이 부당한 이익을 얻더라도 여성이 이익을 얻으면 일단 무조건 옳다 여기는 사상이다. 여성주의 사상에서는 여성이 이익을 얻으면 거기에 맞춰 합리화하기 때문에  이익은 절대적으로 옳게 된다. 어떤 분야나 사건에서 성별 이해관계가 발생하면 여성주의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말하며 여성의 부당 이익을 정당화한다. 기업의 기숙사에서 여성 전용 주차장을 두고 갈등이 벌어지자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여성 수가 적다는 이유로 여성은 1표로 취급하고 남성은 0.4표로 취급하는 반민주주의적인 사태가 벌어질 정도다.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논리면 여성 수가 적은 지역의 선거는 남성  반영 비율을 줄일 생각인가? 솔직히 눈물이 났다. 민주주의자로서 이런 추태는 끔찍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개인마다 1표씩 주어진 것이지 성별로 나누어 집단마다 표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러면서 남성 수가 적을 때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의 이익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여성의 이익은 아니다. 여성주의를 이용하여 주장하는 이들만의 이익이다. 여성주의를 이용하는 이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에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여 가출한 여성 청소년이나 열악한 환경의 늙은 여성 노동자와 같이 대외적으로 여성주의를 주장할  없는 이들의 권리는 보장되지 못한다. 여성주의는 철저하게 사상을 이용하는 여성의 이익 유무로만 가치가 판단되는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사상이다.

  

반체제적인 추태는 그래도 일부나마 여성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에 해당하긴 한다. 그것을 이타주의적으로 타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이익을 추구하기에 체제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익은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괴상한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여성주의의 윤리다. 현재 한국 여성주의는 여성의 성적 자유를 윤리를 명분으로 억압하고 있다. 여성성을 소비하는 것이 남성이다보니 이러한 여성 억압이 남성 억압으로 착각할  있는데 이것은 철저하게 여성 억압이다. 여성성 상품화 금지나 여성 성적 대상화 금지 같은 것이 여성성 억압이다. 여성성이 억압되자 남성이 여성성을 소비하지 못하는 것이고, 남성성이 자유롭자 여성이 남성성을 소비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 개개인에 대한 성적 억압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여성주의를 이용하는 여성의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성의 성적 억압은 남성 책임으로 돌리는 것으로 왜곡되게 된다. 여성 성매도자가 있으면 여성 성매도자는 지원금을 주고 남성 성매수자는 처벌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부당한 손익은 가부장제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근거로 정당화한다. 그게 절대적으로 옳다고 배웠으므로 그런 부당 이익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저항이 없다

  

여성주의의 윤리가 가부장제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기에 여성성 상품화나 대상화는 반대하면서 남성성 상품화나 대상화에는 반대하지 않고, 그러한 것을 가부장제에 익숙한 기성 세대가 찬성 또는 방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은 가부장제 시대에 세뇌된 종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하기에 가부장제 시대에 살았던 남성과 가부장제 시대에 살았던 여성주의자가 비슷한 성관념을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 시대의 사회 참여를 하지 않았던 의지가 약한 수동적 여성성, 정조관념을 지키는 엄숙주의적인 성관념. 그들이 주장하는 여성성과 성관념의 윤리적 근거는 철저하게 가부장제 시대의 종교적 가치관에 있다. 그걸 성인지 감수성이라 말하며 신세대 여성들을 세뇌하고 사회에 강요하면서 사회 전체가 뒤틀리게 되었다

  

여성주의는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여성 할당제, 여성 가산점, 그외 여성 특혜 등과 같은 알기 쉬운 금전적 손익은 가부장제에 의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한 권리라 주장했는데 알기 어려운 윤리적 억압은 가부장제에 의한 억압을 여성의 권리라 주장하게 되었다. 성매매 법적 금지는 정부가  매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에 해당한다.그럼에도 가부장제 가치관으로 그런 여성 억압을 여성이 앞장서서 권리라 주장하고 있다. 성매매는 여성 착취가 발생할  있으므로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매매가 노동자 착취가 발생할  있으므로 막아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그런 거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미 가부장제 시대의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공된 상태에서 정해진 답에 맞춰 변명을 찾으니까 저질스러운 것만 나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제 가치관을 가지고 그걸 여성 인권이라 주장하기 때문에 실상 현재 성별 갈등은 가부장제에의 차별에서 왔다기 보다는 이익 단체간의 이익 충돌에 의한 갈등에서  것과 비슷하다   있다. 이익을 얻을  있을 때에만 차별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평등이 목적이 아닌 권리가 목적임을   있다. 그러면 남성 이익은 남성이 주장해야 하는  아니냐 말할  있는데, 그거 자체가 인권이 아닌 이권을 주장하는 이익 집단임의 증명이다. 가부장제 가치관에 의한 여성성 억압 또한 그들에게 있어 이익에 해당하므로 전부 이익 충돌이다

  

지금 가부장제 여성성의 세뇌와 성인지 감수성의 강요를 여성의 권리라 주장하는 것이 내게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가? 불법 종교에 세뇌된 인간이 사람들에게 불법 종교가 가르치는 인간상을 다른 인간들에게 세뇌하고 세뇌하고 그러한 것을 공감할 감수성을 강요하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이 슬프고 화가 난다. 그렇다고 그게 특별하지는 않다.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 주장했던 공산주의가 있으니 말이다. 하나 같이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여긴 수준 낮은 가치 탐구 사상들이다. 본인 주관으로 꾸미는 것이 성가시자 탈코르셋이나 꾸밈 노동 거부를 따위를 말하는데, 그것은 강요되었기에 잘못된 것이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애초에 현재 사회는 인류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사회다. 거기서 꾸미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가공 거부를 말하는 것으로 가공된 문명 사회에서 가공되지 않은 원시인으로 남겠다는 의사 표명에 불과하다. 현재 인문 계열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PC주의, 여성주의와 같은 윤리를 바탕으로  사상은 인식과 가치 탐구에 속하므로 자연 계열의 유사 과학 수준이라   있다. 오늘날 사회 문제로 인식되는 대부분은 유사 과학 수준의 학문으로 교육을  결과로, 이것에 의해 사회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보통 경쟁 사회에서는 경쟁 상대가   있는 국민 수준이 낮아지면 경쟁 우위를 점할  있어 일부는 그것이 본인의 이익으로 이어질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모든 개인에게 주권이 주어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주권자 우민화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손해로 이어진다.

  

가부장제는 수동적 여성성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를 막고 정조관념과 같은 여성 성적 죄악시로 여성의 성적 자유를 막는 것으로 일부 남성 입맛에 맞는 가부장제 사회를 성립시켰다. 정녕 여성의 권리를 바랐다면 여성주의자는 여성주의를 이용하는 이들의 모든 이익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여성 할당제나 가산점을 주장하거나 주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고 여성 성적 억압 따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여성과 사회와 가부장제 등에 대한 존재 탐구를 통해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고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이 아닌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인간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했다. 여성이 사회 참여를 하지 않도록 가공해놓고 사회 참여율이 낮다고 할당제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여성이 과도한 성적 수치심이나 과도한 피해 의식을 느끼도록 가공해놓고 그런 여성성을 공감할  있는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정말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만물을 탐구하는 학자라면 상대적인 주관적인 인간상이나 관념에 의존하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를 탐구해야 한다.

  

여성주의는 현재 탐구하는 것의 본질, 구조 원리  파악하고 있나?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고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구분하고,  상품화 반대나 여성성 공감이나 성관념이나 성인지 감수성의 존재를 탐구한 적이 있나? 그냥 단순히 본인이 가진 종교적 가치관을 절대적 가치로 맹신하며 거기에 맞춘 주장만 했지 않았나? 남성의 범죄를 일반화하며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도 제대로 탐구도 하지 않고 종교적 가치관과 이익으로만 판단한 결과지 않나. 그런 논리면 아동 학대나 살해하는 여성을 보고 모든 여성을 잠재적 아동 살해자 취급을 하는 것에 동의할  있는가? 없지 않나! 그냥 모든  여성의 절대적 이익만 추구하니 지나치게 불합리하게 된다. 인류는 문명으로 발전하면서 정당한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문명인의 태도였는데, 그것마저 버리고 짐승과 다를  없이 절대적 이익만 주장한다. 개인주의 체제는 분명 개인이 이기적이어야 하는 체제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니다. 여성 집단의 이익을 위한 희생 강요가 있는 집단 이기주의기에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에 해당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이기주의적이어야 하는 까닭은, 모든 개인이 이기적이면 일부 개인의 불합리한 이익 추구는 다른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제지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며 타인에게 희생 강요하는 절대적 이익 추구형 이타주의가 사회에서 제지를 받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지원 받는 일까지 생기기도 하고 있다. 사실상 이게   문제다. 모든 개인이 이기적이어야 불합리한 이기주의가 견제받을  있다는 것을 강조하겠다. 여성주의자는 성별갈등에서 부당한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 성별을 악마화 한다 윤리 파시스트들이 자주 하는 일이다. 종교의 이교도 악마화, 북한의 미군 악마화, PC 일반인 악마화, 여성주의의 남성 악마화. 그렇게 악마화해서 부당한 이익을 정당화한다.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이라 주장하며 강요하는 윤리 파시스트들이다

  

종종 개인의 불행을 사회 탓하지 말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사회 책임이 맞다. 원시 사회가 아닌 문명 사회에서는 가공 부적합에 해당하는 체제 부적응은 물론이고 범죄조차 가공 실패로 사회 책임에 해당한다. 정확히 사회의 책임이기보다 학문의 책임이다. 문명 사회는 학문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학문의 영향이 적다   없다. 그래서 학문 책임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학문의 책임이기보다 인간의 한계다. 자연 계열에서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되지 못한 것은 인간의 책임이 아닌 인간의 한계이듯, 인문 계열에서 고질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 아닌 인간의 한계다.

  


 
 
 
 

  
  1. 학문
  

1) 학문

  

[학문: 1.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학문은 전부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갑자기 학문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시작한 인간이 반드시 존재한다. 시초의 생각이 사상이 되어 널리 퍼지면서 배우는 자가 늘어나면서 점차 체계화된 결과가 바로 학문이다. 시초의 사상가는 문자가 없던 시기에 있었기에 아마 역사서에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사상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그걸 체계화하여 학문으로 남은 것이 고대 그리스 철학과 같은 학문이나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가 있다. 잠시 학문과 종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겠다. 학문 내에 종교가 포함되며 의심을 하면 학문이고 맹신을 하면 종교가 된다. 학문을 맹신하면 학문 종교이고 신과 같은 초월한 것을 맹신하면 신비 종교다. 유교ㆍ불교 같은 학문 종교는 사회 체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학문 종교와 신비 종교는 명확히 구분된 것은 아니기에 기독교ㆍ이슬람 같은 신비 종교도 사회 체제가 되는 일이 많았다. 인류 문명이 종교 체제에 벗어나 독자적인 체제를 갖춘 지금도 종교를 사회 체제로 삼은 국가를 종교 국가라 부른다. 종교 국가가 아니어도 한국과 같이 종교적 가치관이 남아있는 국가는 종교 체제에서 완전히 독립되었다 보기 어렵다.

  

학문  인문 계열의 본질은 대부분 서력 기원 시기에 종교의 형태로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종교는 종교의 가르침과 종교적 가치관을 절대시하며 맹신하는 것으로 성립되기 때문에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을 추구하게 된다. 오늘날 인식과 가치의 절대성은 종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 크다. 종교는 가르침과 가치관을 절대시하여 진리를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기에 새롭게 처음부터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다. 인문 계열은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지 않았기에 서력 기원 시기의 학문과 현재 학문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면 종교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상 종교가 아니게 된다

  

반면 학문  자연 계열의 본질은 과학 혁명 시기에 과학적 방법을 통해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학문으로 남은 자연 계열은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추구하고 과학적 증명을 통해 보편성을 갖춘 존재의 절대성을 추구하게 된다. 자연 계열은 진리를 모르고 있다고 여기기에 보편성을 갖춘 존재를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증명을 결과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끝없이 발전하고 있다. 자연 계열은 인식과 가치를 상대적으로 여기고 존재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새롭게 진리를 탐구했기에 학문의 본질은 학문의 한계를 돌파할 때마다 변하고 있다. 만약 새롭게 진리를 탐구하지 않으면 진리를 맹신하는 것으로 학문  종교가 되어버린다. 과학적 방법 측면의 본질은 과학 혁명 이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자연 계열은 절대적인 존재를 탐구하지만 인간의 탐구이므로 절대적인 일반 진리와 달리 상대적인 학문 진리가 된다. 자연 계열의 진리 탐구는 절대적인 일반 진리를 탐구하여 상대적인 학문 진리가 결과로 나온다.

  

인류는 학문 전과 후가 명확히 구분되기에  구분에 의해 용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생활 양식은 학문을 기준으로 학문으로 체계화되기 전에도 있던 문화와 학문으로 체계화된 뒤에 탄생한 문명으로 나뉜다. 보통 문화를 인문 계열 영역으로 보고 문명을 자연 계열 영역으로 보는데, 이는 인문 계열이 서력 기원 시기부터 본질적으로 크게 변한 것이 없는 반면 자연 계열은 끊임 없이 발전 중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관점이라   있다. 그렇기에 인문 계열의 발전을 고려하면 문화를 인문 계열의 영역으로 보고 문명을 자연 계열의 영역으로  것이 아니라 학문 유무 차이로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옳고 그름은 학문을 기준으로 학문으로 체계화되기 전에도 있던 도덕과 학문으로 체계화된 뒤에 탄생한 윤리로 나뉜다. 동족 살해는 나쁘다고 여기는 것이 도덕이라면 동족 살해가  나쁘고 하지 말아야  이유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윤리다. 가치에 속하는 윤리는 가치의 절대성에 의해  이유가 매우 단순할 때가 많았다.  또는 위인의 말이니까 이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다. 탐구는 학문을 기준으로 사상과 철학과 과학으로 나뉜다. [사상: 1.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 [철학: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있다.] [과학: 1.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이른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탐구하는 것을 사상이라 부르고, 학문에 속하여 구체적인 목적 없이 탐구하는 것을 철학이라 부르고, 학문에 속하여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을 과학이라 부른다

  

사상은 보통 시초의 사상 또는 사상을 학문화한 제자백가, 고대 그리스, 각종 종교, 과학 혁명 등과 같이 시초의 생각 또는 처음부터 새롭게 생각한 것에 해당한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기에 새로울 확률이 높지만,  새로운 것을 논리적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이후의 구체적인 목적이 없는 탐구에 해당한다. 인식, 존재, 가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 막연하게 탐구한다. 그렇기에 곧잘 형이상학적으로 변한다. 보통 인문 계열에서 추상적 개념을 탐구하기에 철학은 인문 계열에 속한다 여겨질  있으나, 자연 계열도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탐구에 구체적인 목적이 없다면 철학에 속하게 된다. 인문 계열의 철학에서는 절대적 인식과 가치의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해 학문 한계 돌파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과학은 학문으로 체계화된 이후의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탐구에 해당한다. 과학적 방법을 통해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여 증명한 결과를 쌓아 체계화하였기에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할  있게 되었다. 인문 계열이 주로 형이상학을 탐구하고 자연 계열이 주로 형이하학을 탐구하는 것은 그냥 인문 계열이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탐구할  있을 정도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형이상학: 1. 철학_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형이하학: 1. 철학_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 과학에서는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체계를 갖춰 발전하면서 학문의 한계 돌파를 하는 일이 있었다. 최근 과학의 한계 돌파  하나가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은 수로 표현한 가상의 형태를 말하는데, 이는 클로드 섀넌이란 과학자가 미분해석기 논리 회로 연구 중에 떠올린 발상을 통해 디지털 기술의 시초인 디지털 회로 이론을 창시했다고 한다. 과학은 체계화를 통해 학문의 한계 돌파가 가능하나, 과학 또한 학문에 속하여 발상을 하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명하여 쌓은 체계를 통해 예측할  있는 범위 내에서 발전하고 있다. 갑자기 물리 법칙을 무시한 마법과도 같은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자연 계열은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엄청나게 세세하게 체계화한 상태기에 대부분 예측 범위 내에 속하지만 절대적 존재 탐구를 해도 인간이기에 상대적 탐구 결과를 내놓으므로 학문에서는 절대적이라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 또한 기초를 탐구하는 인간이 필요하게 된다.

  

학문은 방법에 따라 탐구, 창의, 관리로 나뉜다. 탐구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생각하고 창의는 기초는 암기하고 용응은 생각하고 관리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암기한다. 사상, 철학, 과학 모두 탐구, 창의, 암기가 가능하나 사상의 경우 학문에 얽매이지 않기에 보통 탐구나 창의일 확률이 높다. 종교를 통해 탐구와 창의와 관리를 알아보자. 종교 창시자는 새로운 사상을 통해 종교를 만들기에 보통 탐구에 속하고 종교 분파 창시자는 종교의 해석을 달리하여 분파하기에 보통 창의에 속하고 종교 신자는 종교의 교리와 가치관을 맹신하기에 보통 관리에 속한다. 사상, 철학, 과학 모두 새로운 발상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생각이 학문으로 체계화된 것을 배우면 보통 그것이 진리, 거짓, 절대, 상대, 선천, 후천 등과 관계 없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배우는 순간 가공되어 고정 관념이 되기 때문이다. 가공된 다음에는 학문의 지식이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잡아  틀에 갇히게 된다. 만약 학문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 뒤라면 고정 관념에 갇히더라도 벗어날  있으나, 단지 주입식으로 암기한다면  고정 관념에서 정말 벗어나기 어렵다. 더구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을 보게 되면 뇌에 각인하여 반사적으로 문제를   있을 정도로 암기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 관념이 강하게 고착된다. 그렇기에 주입식으로 암기하여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면 풀수록 발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새로운 발상을 하기 위해서는 암기가 아닌 학문의 본질적인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야 한다. 최소한 문제 풀이는 하지 않거나 최대한 줄여 기초만 풀어야 한다. 그래야 응용에서는 발상하기가 수월해진다. 한국인이 창의력이 낮을 때가 많은 것은 앞서 한참 말한 것과 같이 단순히 그렇게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내내 문제만 푸는데 발상 능력이 어떻게 살아남을  있겠는가? 모든 문제에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답에 맞춘 학습을 하고 답에 맞춘 관계를 맺고 답에 맞춘 놀이를 즐긴다. 그야말로 답에 맞춘 삶을 산다. 인간 관계조차도 MBTI 같이 문제와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을 보라.  [발상: 1. 어떤 생각을 해냄.][창의: 1. 새로운 의견을 생각해 .] 그렇게 하여 창의 이전에 발상 자체도 어려워하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를 풀지 않는 인간은 학문에 관심이 없어 발상을 하지 않아 발상 능력이 성장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발상 능력은 학문에 관심이 있어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서도 문제 풀이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하는 인간이 키우기가 쉽게 된다. 지식은 AI  우수하기 때문에 앞으로 발상 능력이  필요하게 되어 앞으로는 발상 능력을 해치는 주입식 교육과 응용까지 문제로 푸는 문제 풀이 평가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려 해롭기만 하게  정도가 되었다고 본다.

  

 

  

2) 학문 영역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은 학문 영역이 다르다. 자연 계열은 선천적인 것을 탐구하고 인문 계열은 후천적인 것을 탐구한다. 가공 개념으로 보면 자연 계열은 소재를 탐구하고 인문 계열은 가공을 탐구한다.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은 초기에 사상과 철학으로 합쳐져 모든 학문이 본인의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했었다. 그러다 자연 계열은 과학 혁명 이후 인식과 가치에서 벗어나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으로 인문 계열에서 분리되었다. 반면 인문 계열은 현재까지도 본인의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하는 것으로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문 계열 또한 후천적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한다. 그런데 인문 계열이 후천적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필요가 있다. 탐구 대상도 모른채 탐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오늘날 인간이 알고 있는 개념들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분하지 전에 알아두어야 하는 전제가 있다. 인간은 언어를 배운 순간부터 이미 가공되어 본질이 바뀐 상태라는 것이다. 자연을 보며 모든 것이 선천적인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할  있는데, 인간이 인식하는 개념들은 인간이 언어를 배워 가공된 상태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개념은 후천적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개념은 언어화를 거치는 순간 가공된 것이다.   자연 계열이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선천적이라 증명된 개념을 제외하면, 모든 개념은 후천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상대적으로 선이라   있는 개념과 거기에서 파생된 후라   있는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  가지 알아보도록 하자

  

지각을   있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인식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이해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가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변화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존재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죽음을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도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감각을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감정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결핍을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행복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모든 개념은 가공된 개념이며 상대적으로 선인 것과 후인 것으로 분리되게 된다.  중에 자연 계열에서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선천적이라 증명된 개념과  이상 분리될  없는 개념들을 선천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선천적 개념은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인문 계열이 후천적 존재를 탐구할  있다. 본래 인문 계열은 어떻게 해도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가치에서 자유로울  없었으나, 자연 계열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 선천적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되면서 그걸 바탕으로 후천적 존재 탐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가치가 아닌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사실을 기준으로 삼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 지각할  있는가? 그걸 자연 계열에서 탐구한 것을 인문 계열에서 활용하여 존재를 탐구한다. “이런 구조와 원리로 인간이 지각할  있기 때문에 인식이 성립되는구나.” 이런 식이다. 이렇게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 없이는 존재 탐구가 불가능해서 과학 혁명 이전의 인문 계열의 탐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공을  알기 위해서는 소재를 파악해야 하고, 가공된 것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는 가공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기에 자연 계열의 발전은 인문 계열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인문 계열의 발전은 자연 계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시간은 변화를 지각하는 인간이 만든 후천적 개념이다. 만물은 물리적 이동만 있다. 시간은  이동이란 변화를 지각할  있는 인간이 지각 순서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한 개념일 뿐이다. 그렇기에 시간은 세계의 법칙에 속하지 않는다. 시간이 세계의 법칙에 없다는 것은 자연 계열에서 시간을 전제하고 추측한 개념들은 성립될  없다는 말이 된다. 시간 여행 불가능하다. 시간을 전제하는 다세계 불가능하다. 인문 계열도 마찬가지다. 숙명 없다. 운명 없다. 윤회 없다. 전생 없다. 환생 없다. 사후 세계 없다. 후천적인 개념을 선천적인 개념으로 바라본 까닭은 인간이 만든 개념들을 체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인간이 만든 개념들을 체계화해야 한다. 그래야 인문 계열에서 과학이 성립될  있을 것이다.  가지 개념들을 알아보겠다.

  

존재를 지각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자아가 영혼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영혼 개념은 원시 부족 시대에도 있던 것이기에 선천적인 것으로 착각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후천적이다. 존재를 보고  존재의 근원이 어디에서  것인지 탐구하다 나온 결론이 바로 영혼이었다.  영혼 개념은 자아 개념과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차이는 외부와 내부다. 영혼은 외부에서 오고 자아는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존재의 근원이 완성된 형태에서 육체에 깃드는 것이라면, 육체의 성장 과정과 별개로 본질이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자연 계열의 탐구를 통해 인간은 경험을 통해 본질이 변한다는 사실을 쉽게   있다. 도박을 경험한 인간은 뇌내 보상 회로가 바뀌어 도박에 집착하게끔 모양과 성질이 변한다. 육체를 손상해도, 기억을 잃어도 본질이 바뀌는 것을 마치 절대적인 것마냥 인식하게  것은 영혼 개념에 영향을 받아서다. 영혼의 개념이 후천적이라면 어째서 거의 대부분 문명에 영혼 개념이 있던 것일까? 그것은 짐승의 행동 양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원시 부족 시기에 인간은 문화로 약간 가공되었던 시기로 짐승과 행동 양식이 비슷했다같은 종의 짐승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더라도 비슷한 행동 양식을 가진 것과 같이, 당시 영혼 개념은 인간 종이 가진 행동 양식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보편적으로 영혼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현대 문명이 존재를 파악할  없는 존재를 원시 부족이 존재를 파악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보는가? 그건 원시인이 현대인보다 지식 수준이 높다는 것보다  허무맹랑하다. 영혼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그저 오래된  말고는 없다.

  

도덕 개념은 죽음을 지각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을 정한 것에 해당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살아남기 위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에 절대적이게 되었고,  영향으로 미는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있어도 도덕을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이제 도덕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도덕이 없으면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원리를 추구할  없었던, 선천적 존재 탐구가 없던 비과학 시대의 한계에 불과하다. 현재는 도덕을 상대적으로 여긴다 하더라도 사회와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존재 유지의 강제력을 통해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할  있다. 이것이 문명 사회다

  

감정 개념은 감각을 지각한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에 해당한다. 어떤 감각을 느낀 것을 A감각은 B감정이라 학습했기 때문에 특정 감각을 특정 감정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감정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본인의 감정을 정확히 모른다. 그렇기에 흔들다리에서 사랑과 공포도 구분못하는 것이다

  

행복 개념은 결핍을 지각한 인간이 결핍 충족으로 느끼는 만족감을  용어로 표현한 것에 해당한다. 행복이 결핍 충족에 따른 만족감에 해당하여 극단적으로 말해 목을 졸랐다 풀어도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공기 결핍이 발생했다가 공기 결핍이 충족되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목조르기를 불행하게 느끼는 것은  행위 자체가 부당하다 느꼈기 때문이지 그걸 부당하게 느끼지 않으면 행복만 남는다. 일반적인 행복은 결핍이 나타날  바라는 것이 생기고 바라는 것을 이룰  충족되는 만족감을 가리킨다. 바라는 것이 나타나서 결핍이 생기고 바라는 것을 이룰  충족되는 만족감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은 것을 바라는 것은 행복이 아닌 욕망에 의한 것이다 행복의 원리상 인간은 결핍 충족만 성립되면 행복을 느낀다. 비문명인이 매우 불편해보이는 삶을 산다 하더라도 문명을 모르면 그걸 불행하다 여기지 않는다. 모르기에 결핍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불행이 높아지는   하나는 디지털에 의해 아는 것으로 결핍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핍을 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충족하려고 하면 성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피폐해지다 자살한다. 그렇기에 금욕주의를 강조할수록 성장이 아닌 자살이 늘어난다. 행복이 결핍 충족이기 때문에 마약 또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물질이 맞다. 사회에서 마약을 금지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을 행복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 아닌 사회와 체제의 존재 구조를 붕괴시키고 원리를 망가트리는 해가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행복을 부르는 물질이나 사회와 체제에 해롭기 때문에 막는 것이므로, 구조가 붕괴하기 직전인 죽기  시한부에게 있어 마약은 행복만 부르는 물질이 되어 막을 이유가 없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마약은 이제 막기가 어렵다. 자발적으로 마약을 접하지 않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방법이 바로 마약의 시한부 전용 물질화다. 마약을 시한부 전용 물질로 만들어야 마약이 죽음을 상징하게 만들  있고, 죽기 전에는 마약을 접해볼  있다는 기저 인식을 통해 급하게 접할 이유가 없게 만드는 것으로 마약을 하지 않게   있다. 이렇게 인문 계열에서 개념의 체계화가 되어야 사회 문제를 합리적으로 대처할  있다.

  

이외 모든 개념을 체계화하여 정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랑은 다양한 가치의 형상을 말한다. 어떤 그림에서 모양은 가치가 높다, 선은 가치가 보통이다, 색은 가치가 낮다. 이런 가치를 종합하여 형상을 이뤘을 ,  형상에 바라는 가치가 있다 느끼고 그걸 바라는 감정을 가리켜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다. 인간에 느끼면 인간애가 되고 사물에 느끼면 사물애가 된다. 이것을 통해 진실된 이성애와 타산적 자기애를 구분할  있다. 진실된 이성애는 인간 자체에 가치를 느꼈을 때를 가리킨다. 그것이 외면이든 내면이든 말이다. 타산적 자기애는 타인에게 가치를 느낀 것이 아닌 본인에게만 가치를 느꼈을 때를 가리킨다. 성적 쾌락이든 재물이든 말이다. 성적 쾌락으로 이성애와 자기애를 구분한다면, 이성애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얻는 성적 쾌락에 가치를 느끼고 본인의 성적 대상이 상대방이어야 하고, 자기애는 본인의 성적 쾌락 자체에 가치를 느끼고 본인의 성적 대상이 굳이 상대방이 아니어도 되는 것을 말한다. 이성애와 자기애는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성애를 하면서 다른 것으로 성적 쾌락을 얻는 것이 성립될  있게 된다. 그러므로 포르노와 같은 것으로 자위한다고 사랑이 식었다고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가치를 느끼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으로 사랑 유무를 확인해야  것이다.

  

사랑이 후천적인 개념인 만큼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도 후천적인 개념이 된다. 사랑과 공포도 구분 못하는데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을 구분할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두가지만 존재한다. 단지 호르몬 이상 등으로 남성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자아가 여성에 가까워질  있고 여성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자아가 남성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그것을 보통 선천적 동성애라 여기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천적 이성애라 여기는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도박으로   회로가 바뀔  있듯이 이성애자라도 동성과의 관계에서 쾌락을 기억하면 육체가 바뀔  있다. 고대 그리스, 전국 시대 일본에서 동성애가 유행했던 것은 그들이 선천적 동성애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유행으로 성적 지향이 달라질  있을 정도로 성애는 후천적이다. 그렇기에 이성애자가 VR에서 이성 아바타를 사용하고 동성과 인간 관계를 맺으면 동성애자가   있기도  것이다. 흔히 동성애자들이 본인들이 절대적으로 선천적이라 여기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미 그렇게 가공된 상태기 때문이다. 가공 전후 구분은 선천적 존재 탐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인식과 가치로 쉽게 판단이 가능하지 않다. 동성애자들은 종종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기도 하는 것을  것이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바뀌는 것은 이해되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바뀌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건가? 당연히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바뀔  있다. 그럼에도 동성애자를 후천적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것에 영향을 받아 동성애자가 되었기에 바꾸지 말자는 것은 둘째치고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사회와 체제의 존재를 붕괴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은 수많은 가공 형태  하나로 존중할  있는 영역이다. 물론 그런 가공을 속이거나 악용하는 일은 막아야  것이다.

  

인류 역사가 지배의 역사라  정도로 지배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배가 선천적 개념으로 인식할  있다. 그러나 지배는 후천적 개념으로 인간의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  하나일 뿐이다. 지배가 선천적이지 않기 때문에 친구와도 같은 평등한 관계가 성립될  있는 것이다. 이런 평등한 관계는 짐승 관계에서도 찾아볼  있다. 지배가 선천적이지 않으므로 서열 또한 선천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지배가 일반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  하나였기 때문이다. 본인이 상대와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을   가장 편한 것이 지배다. 상대를 지배하여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자유가 선이고 지배가 후가 된다. 지배를 통한 자유는 주로 왕정 지배와 윤리 지배가 있다. 왕정 지배는 보통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다. “맞고 싶지 않으면  말을 따라야 한다.” 윤리 지배는 보통 도덕을 수단으로 삼는다. “ 도덕적 주장이 학문이 있던 이전부터 오랫동안 절대적으로 옳았으니까 너는  말을 따라야 한다.” 조선의 지배자는   가지를 활용해 피지배자를 지배했다. 지배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를 규칙을 통한 자유를 추구하도록 가공하면 지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성립될  있다. 자유의 실현 방식의 일종이 지배이기 때문에 자유 자체를 부정적으로   있는데, 개인주의 체제에서 자유는 모든 개인의 자유를 말하여 지배가 성립될  없다. 자유욕이 곧잘 지배욕으로 변질될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개인은 모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체제에 맞는 가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자연 계열의 탐구자도 인간이기에 인문 계열의 학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면 자연 계열의 탐구 또한 유의미한 발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상대적인 왕정의 윤리를 근거로 절대적인 선천적 존재를 탐구하는 자연 계열의 발전을 막는 일은 하지 않게  것이다.

  

 

  

3) 학문 탐구 방법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시 세계의 물질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 계열의 증명이 거기에 있다고 하니까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절대적 존재 탐구 방법이다. 무슨 종교 신앙과도 같지만 종교와 다른 점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방법을 통한 증명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야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절대적 존재를 탐구할  있다. 흔히 자연 계열이 선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보이는 것을 탐구한다고 여길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자연 계열의 탐구는 현상을 파악한 다음 눈을 닫고 귀를 막고 감각을 차단한 상태에서 머릿속 증명과 논리와 실험 결과만 가지고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자신의 인식을 믿지 않고 탐구한다. 그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만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시 세계에서 본인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낄  있는 것만 있다고 여기며 그렇지 않은 것은 초자연적인 신비를 다룬 종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믿는다. 이것이 상대적 인식 탐구 방법이다. 철저하게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으로만 탐구하며 인식 외의 것은 그냥 신앙한다. 그렇게 해서 본인의 상대적인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게 된다. 흔히 인문 계열이 후천적인 것을 탐구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한다고 여길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인문 계열의 탐구는 본인의 인식과 증명 없는 인식 밖의 일방적 주장만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자신의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탐구하고 인식 외는 신앙한다. 그것이 어려워보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종종 절대적 존재 탐구 결과를 상대적 인식 탐구 결과로 맞서며  다른 증명없이 그저 오랫동안 옳았다는 이유 하나로 본인이 옳은 것이라 주장하며  인식과 그것에서 비롯된 가치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상대적 인식 탐구 결과는 이런 것이다. 낮에 하늘을  사람에게 하늘은 파란색으로 보일 것이다. 저녁에 하늘을  사람에게 하늘은 주황색으로 보일 것이다. 밤에 하늘을  사람에게 하늘은 검정색으로 보일 것이다. 각각 사람들은 하늘의 색을 파랑과 주황과 검정으로 인식했다 가정하자. 그런 사람들이 하늘 색의 구조와 원리, 인간의 시각의 구조와 원리를 증명한 자연 계열의 증명을 바탕으로  주장에 맞서서 본인이  색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 대부분 분쟁은 이런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이라 여기며 그것으로 비롯된 가치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상대의 인식과 가치를 무시하는 것에서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나치즘이 무엇이었는가? 본인의 인식으로 아리아인이 우월해보였고, 그걸 바탕으로 가치 또한 우월하게 느낀 것을 절대적으로 여긴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다닌 것이 아니던가

  

일반 의학과 동양 의학을 통해 절대적 존재 탐구와 상대적 인식 탐구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 의학과 동양 의학의 결정적 차이는 탐구 방식이다. 일반 의학은 선천적 존재 탐구를 했다면 동양 의학은 후천적 인식 탐구를 했다. 하늘 색으로 비유하면 일반 의학은 하늘 색의 구조와 원리, 인간의 시각의 구조와 원리를 증명했다면, 동양 의학은 수많은 다양한 색을 전부 모아 통계를 내서 하늘 색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여겼다. 그런 것이다.일반 의학은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보편성을 가지고 대부분 환자에 적용할  있지만 동양 의학은 구조와 원리는 모른  온갖 경험을 통해 나온 통계를 가지고 때려 맞춘다. 그래서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다. 보편성이 없어 증명도 못한다. 그런데도 가끔은 맞으니까 맞는  아닐까 싶기도 한다. 이는 기반으로  학문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일반 의학은 자연 계열의 탐구에서 비롯되었고 동양 의학은 인문 계열의 탐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절대적 존재 탐구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하지만 상대적 인식 탐구는 각자 인식이  달라 보편성이 없어 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발전도 못한다. 일반 의학은 끝없이 발전 중에 있지만 동양 의학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까닭은  때문이다. 인간의 종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의 방식이 통용될 때도 있어 동양 의학이 살아남기는 했지만 인식 탐구에 머물러 있는  어떤 경우에도 발전할  없다. 이것으로 인문 계열이 현재 서력 기원에서 본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보편성이 없는 학문이 어떻게 발전할  있겠는가? 개인이 다르게 인식하고 지역이 다르게 인식하고 시대가 다르게 인식하는데 어떻게 발전하겠는가? 각자 본인들의 인식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싸우기만  뿐이다.

  

현재 상대적 인식 탐구를 하는 인문 계열은 대부분 자연 계열의 유사 과학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윤리가 그렇다. 자연 계열의 증명을 활용한 무기와 경제 정도만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발전할  있었다. 무기는 자연 계열을 대부분 활용하고 경제는 수학을 주로 활용하면서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학문들의 특징  하나는 실패하면 파멸할  있다는 점이다. 무기는 실패하면 죽고 경제는 실패하면 망한다. 그리고 죽거나 망한 이유를 대부분   있다. 그렇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으면서 자연 계열의 절대적 존재 탐구를 바탕으로  방법을 이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학문들은 성장했다. 반면 윤리는 사회 전체가 썩은 윤리로 망해가고 있는데도 윤리가 원인인 줄을 모른다. 인과를 명확히 모르기에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이라 여기며 사회를  썩게 만든다. 윤리가 오래되어 체계적이라  수도 있는데 그건 동양 의학도 오래 되어 체계적이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근간이 존재 탐구가 아닌 이상 그건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쓸데 없이 복잡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인문 계열이 수준이 낮다 해도 자연 계열에서 당장 인문 계열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건 의학 문외한인 동양 의학을 대신해 의료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동양 의학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지만 오랜 경험으로 본질적인 치료는 못하더라도 증상 완화 정도는   있다. 물론 치료를 못하니까 안은  썩어들어갈 수도 있지만 당장 죽지는 않게   있다. 당장 자연 계열에서 수많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그에 따른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자신이 있다 장담할  있는가? 아예 인문 계열과 별개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인문 계열 학습이 끝난 터라 자연 계열이라 하더라도 인문 계열에서는 인문 계열과 크게 다르지 않을  있다. 단지 자연 계열은 존재 탐구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현재 가장 효율적인 것은 인문 계열이 절대적 존재 탐구로 진보하는 것이다.

  

인문 계열은 후천적 존재 탐구를 해야 한다. 후천적 존재 탐구는 이미 가공된 존재를 탐구하는 것에 해당하여 기준 또한 가공되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 육체 유지에 경우에는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를 기준으로 삼을  있다.  기준으로 유지 방법을 정한다. 그러나 사회 구조 유지 같은 경우에는 대상이 지나치게 광활하여 선천적 존재 탐구 결과를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다.  명에 맞춰 육체 유지 방법을 정하더라도 그게 다른 사람에게 맞을 거란 보장이 없다. 이것은 인간이 문명으로 가공된 상태기 때문에 그렇다. 짐승의 경우에는 자연 계열의 탐구를 기준으로 삼을  있으나 문명인의 경우에는 자연 계열의 탐구를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기준을  차례 가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체제다. 과거 왕정은 집단주의 체제로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했다면 현재 민주정은 개인주의 체제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했다. 자유권, 주권, 선택권, 소유권 등의 권리가 집단주의 체제에서는 집단에 속하여 집단의 장이 권리를 행사했다면,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에 속하여 모든 개인이 권리를 행사했다. 단순히 사회 구조 유지만 목적으로 두었다면 집단주의 체제이든 개인주의 체제이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인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결정한 삶의 방식이란 가공된 기준을 합리적 기준으로 삼기로 결정한 것이다.  합리적 기준이 바로 체제다. 문명인이 사회의 체제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그야말로 육체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고 자동차에 맞는 연료를 주입하는 것과 다를  없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삶의 방식을 원한다면 새로운 체제를 만들거나 가져와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으로 체제를 바꾸면 된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가공 인간이다. 그런 측면에서 체제가 다른 사회에 사는 인간은 본질이 다른 존재에 해당한다. 체제에 맞게 재가공하지 않으면 사회에 어울릴 수가 없다. 이는 이민 정책이나 해외 정책을 정할  반영해야 한다. 유럽 이민 정책의 실패는 이민자를 체제에 맞게 재가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미국 아프가니스탄 실패는 미국 물자만 투자하고 미국 체제에 맞게 아프가니스탄 사회를 재가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 인식과 그것으로 만들어진 상대적 가치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문화 상대주의에 의해 사회 수준 차이가 난다는 명확한 사실이 왜곡되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결과 실패하게 되었다. 문명인은 문명으로 가공된 존재임을 이해하고 그러한 가공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강요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게 하면 된다.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려면 그것에 맞게 재가공되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면 된다. 자동차 주유구에 당근 주스 넣으면 고장나는 것과 같이 체제에 맞지 않는 이민자가 들어오면 사회가 고장난다. 이것은 존재 탐구를 통해 판단된 사과를 손에서 놓으면 떨어진다는 단순한 인과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인문 계열은 후천적 존재 탐구를 해야 한다. 체제를 예로 들어보자. 자유의 구조와 원리, 민주의 구조와 원리, 시장의 구조와 원리를 전부 파악해야 한다. 가치나 개념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탐구한 다음  탐구 결과를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상대적 인식으로 추구해야  가치인지에 대해 판단한다. 판단 결과 사회 체제가 되면  다음에는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  체제의 구조가 유지되고 원리가 추구될  있는지 탐구한다. 각각의 탐구 결과에 따라 개인은 체제에 맞게끔 스스로를 가공하고, 정부는 정책과 제도를 체제에 맞게 만든다. 그렇게 체제를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인 사회를 만든다. 사회 구성원  어떤 가치가 옳다고 말하며 사회 체제가 되기를 바란다면, 본인의 주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마냥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가치의 존재를 탐구하여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 다음, 탐구 결과를 공개하면서 다른 사회 구성원을 설득해야 한다. 다른 사회 구성원은 각자 상대적 인식으로 파악하여 판단한 다음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정한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면 사회 체제화를 하여 사회 전체가  가치에 맞는 삶을   있도록 한다. 개인의 가치로 사회를 바꾼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회  가치는 그저 오랫동안 옳다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말할 뿐이다. 아무런 탐구를 하지 않고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종교와 같이 신앙할 뿐이다. 이제 그래서는  된다

  

이타주의와 같은 개인의 희생이 옳다고 배웠다는 이유로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처럼 여기면  된다. 그냥 사전 정의만 봐도 이해할  있다. 개인의 희생을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게 만들다니,  얼마나 끔찍한 사상인가? 오늘날 파시즘의 원리  하나는 이타주의다. 특정 누군가의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며 그것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옳다고 만들었다. 반면 이기주의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그르다고 배웠다는 이유로 그것이 절대적으로 그른 것처럼 여기면  된다. 사회 체제가 개인의 권리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는데, 개인이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나쁘다 여기면 어떻게 개인의 권리가 온전히 보호될  있겠는가? 오늘날 집단주의적인 개인 권리 침해는 전부 이기주의가 나쁘다 여기고 이타주의가 옳다 여긴 것에 근거한다. 사회 구성원이 모두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어떻게 사회가 유지되냐고 물을  있다. 바로 그게 인문 계열의 역할이다. 인문 계열은 사회와 체제의 존재 탐구를 통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야 사회와 체제의 구조가 유지되고 원리가 추구될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도 이타주의를 근거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이기주의를 근거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비난해서는  된다. 모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삶을 살자고 약속했으면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춰야 한단 말이다. 무알콜 술을 통해 존재 탐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최근 일하면서 무알콜  섭취에 대한 찬반 여론이 있었다. 이것을 상대적 가치로 보면 일할  술을 마시면 나쁘다는 관념을 통한 인식으로 그것을 마시면  된다는 판단이 나올  있고 절대적 존재로 보면 알콜이 없기 때문에 무알콜 술을 마시는 것은 일반 음료를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그것을 마셔도 된다는 판단이 나올  있다.  나아가 일의 목적은 가치 생산이므로 가치 생산에 해롭지 않다면 알콜이  술이라 하더라도 마셔도 된다는 판단이 나올  있다. 이런 것이 존재 탐구다.

  

현재 가장  사회 문제의 원인은 사회 미숙이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있는 미성년 시기에 사회와 체제에 맞는 태도를 갖추게끔 가공했어야 했다. 미성년이 사회와 체제에 대해 이해하고,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다음 미성년 시기부터 자유롭게 이성 교제와 성관계를 했어야 했고, 가치 생산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일할 권리를 가진 다음 미성년 시기부터 자유롭게 일을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는 집단주의 체제의 방식을 그대로 쓰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성년이 되었는데, 강제할 수도 없어 사회와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성 관계와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여기며 하지 않고 가치 생산 또한 부정적으로 여기며 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한국 사회는 파탄났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강제하던 때의 방식을 강제하지 않고서 강제하던 때와 동일한 결과가 나올  있겠는가? 이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히 답이 나와야 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인식조차 못했던 것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게  것이 절대적 가치로 여기던 윤리였기 때문이다. 왕정 시대의 질서를 유지하던 썩은 윤리가 한국 사회를 파멸에 몰고갔다. 이미 파탄난 상태기 때문에 많은 성년이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강제력을 동원하여 재가공할 수도 없다. 그것은 반체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도 없다. 그렇기에 게임의 퀘스트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과 같이 퀘스트 제도를 통해 사회와 체제 이해와 이성 관계와 성관계와 가치 생산 등을 자발적으로 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이것은 교육 단계에서 실패한 것을 사회 단계에서 해결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교육이 현행을 유지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대응으로 정상적인 방식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미성년  기본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방법  하나로 이른 입학도 쓸만하다. 그래야   교육할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학생은   자유롭게 교육을 받을 선택을   있다. 현재 사회에서 미성년 문제는 윤리를 운운하며 합리적인 방식을 동원하는데 저항이 심한데, 그럼에도 진행해야 하는 것은  윤리는 유사 과학 수준의 왕정 시대의 질서를 유지하던 썩은 윤리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제 상대적 가치라는 과거의 질서에 손을 놓고 절대적 존재라는 새로운 질서에 손잡아야 한다.

  

인문 계열 탐구  5~6 만에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 앞으로  5~6 안에 현대 과학을 따라잡겠다.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은 상대적 인식 탐구에서 절대적 존재 탐구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현대 과학은 모든 자연 계열의 탐구가 존재 탐구로 바뀌어 그것을 바탕으로  가치 생산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과학을 따라잡겠다는 것은 모든 인문 계열의 탐구가 존재 탐구로 바뀌어 그것을 바탕으로  가치 생산이 이뤄지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힘들  같긴 하다. 과학 혁명  자연 계열의 선천적 존재 탐구가 보편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도 상대적 인식 탐구를 유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계열의 절대적 존재 탐구를 부정하는 일이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인문 계열이 후천적 존재 탐구로 진보한다 하더라도 보편화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자연 계열을 통해 이미 존재 탐구 개념이 널리 인식된 상황이라는 것과 디지털 기술에 의해 사상 전파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으로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보다는 빠르게 진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 환경을 고려하면 인류 문명이 존재할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있기에 하루라도 빠르게 진보해야 한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수밖에 없다. 부디 인류 문명의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과 같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길 바라겠다.

  

 

  

4) 학문과 사회 문제

  

대부분 사회 문제는 보자마자 해결할  있었어야 했다. 고질적 사회 문제는 보자마자 본질, 원리, 원인, 과정, 결과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리고 일부 예외인 새로운 사회 현상에 대해서는 따로 탐구하여 해결했어야 했다. 지금은 새로운 사회 현상은커녕 고질적 사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인문 계열이 상대적 인식 탐구를 하는 바람에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인문 계열은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하여 현재 직면한  가지 인류의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개인주의 체제다. 개인주의 체제는 과학 혁명, 기술 발전, 힘의 분산, 개인 권리 주장, 기독교 평등 사상 명분, 자유 사상과의 영합을 통해 혁명을 일으키면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나타난 체제다. 인문 계열의 탐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다가 보니 만들어진 체제기 때문에 굉장히 결함이 많은 상태였다.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구조 유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서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결함으로 수많은 개인이 고통 받았고, 그것에 의해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로의 퇴보가 일어나게 되었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으로 진보했다가, 개인주의 체제의 결함으로 다시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퇴보하게  것이다. 흔히 윤리만 보고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의 변화를 진보로 여기는데, 체제의 구조와 원리를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서 집단주의 체제로의 변화에 해당하므로 퇴보가 된다. 만약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했다면 결코 어떤 경우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집단주의 체제 따위를 진보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관념은 아직 종교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데 체제는 어쩌다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하면서 관념 체제 충돌에 의한 사회 문제가 격화되었다. 관념과 체제의 이익 추구 방향이 아예 정반대다. 관념으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데 체제는 개인의 자유권, 주권, 소유권 등을 보장하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도록 설계되자, 서로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었다. 이타주의가 옳다 말하며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이기주의가 잘못되었다 말하며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을 비난한다. 유착, 담합, 비리 등등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와 같은 관념 체제 충돌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여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정책과 제도와 캠페인을 통해 개인주의 체제의 결함을 개선하는 것으로 해결할  있다

  

둘은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 기술은 수로 표현한 가상의 형태를 구현할  있는 기술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통해 문명인은 한차원 다르게 가공되었다. 아날로그 기술 시대의 문명인과 디지털 기술 시대 문명인은 본질이 다르다. 디지털은 거리에 제한이 적어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정보를 수집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이해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가상의 형태를 구현하여 가상의 사물을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무제한으로 복제할  있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AI 발전하면서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인 가치 생산이 가능하게 되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가상 현실을 실현하는 것으로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기를 부를  있다.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 자아의 출현으로 인류를 불로불사하게 만들  있는 시기를 부를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영향에 따른 사회 문제는 현재 인류가 해결해야  문제다. 실시간으로 인식이 공유된다는 것은 실시간으로 가치도 공유된다는 것이 된다. 상대적인 인식과 가치가 절대적인 것마냥 공유되면서 마치 인류 전원이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식의 집단적인 강요가 나타나기도 하고 있다.   하나가 PC 파시즘이다. 파시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존재 탐구를 통해 절대적 존재를 정해두어야 강요를 하지 않고 각자 다양한 상대적인 가치를 추구할  있게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거리 축소에 의해  지역의 사회 문제는  세계의 사회 문제가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공개 자살을 하자 한국에서 그걸 따라하여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연령도 성별도 빈부도 지식도 관계 없이 모두가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는 지역을 분리한다고 서로 영향을 받지 않던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 내에서 디지털 기술에 의해 이제  국가의 사회 문제는 모든 국가의 사회 문제처럼 여기며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회 문제의 국제 공조가 필요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의 무제한 복제는 저작권 문제를 부른다. 이것은 디지털 기술에 맞는 경제 원리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현실의 실물과 디지털 기술의 가상은 서로 성질이 다른데 같은 경제 원리를 사용한  자체가 잘못되었다. 디지털 기술에 맞는 경제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일단 의견을 내자면 디지털 기술의 가상에 현실의 실물과 같은 성질을 부여하는 것으로 실물의 경제 원리에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 본다. 디지털 기술은 AI 의한 인간 일자리 상실을 부른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게임의 퀘스트와 같은 형식의 가치 생산으로 진보해야 한다고 보았다. 고정된 가치 생산을 대부분 AI 로봇이  예정이므로 인간은 특정 가치 생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시기마다 필요한 가치 생산을   있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가상 현실에 의한 현실과의 경계 붕괴가 온다. 이것은 현실도 가상에 맞추고 가상도 현실에 맞춰 서로 어울리게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 자아를 통해 불로불사가 가능할  있다. 시간 이동은 시간의 성질상 성립될  없지만 불로불사는 자아의 성질상 성립된다. 현재 사회 활동하는 인류 대부분은 죽지 않게  것을 가정하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은 지구 환경이다. 지구 환경은 정확히 인류가 살기 적합한 지구 환경을 말한다. 환경 보호는 지구를 보호하고자 하는  아니라 인류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구는 인류가 적합하지 않도록 바뀐다 하더라도  지장이 없다. 지구 환경 보호는 인류 생존에 직결된 것으로 존재 유지 측면에서 강제력이 발생한다. 인간이 살아있기 위해 육체 유지를 위한 행동이 강제적이듯, 사회와 체제가 살아있기 위해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한 활동이 강제적이듯, 지구 환경에서 인류가 살아있기 위해 지구 환경 보호는 강제적이게 된다. 그런데 환경 보호로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보호를 하든 안하든 지구 환경은 주기적으로 생명체가 살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경 보호는 디지털 자아를 통한 불로불사나 다른 행성 개척과 같이 지구 환경과 무관하게 인류가 생존할  있을 정도의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환경 보호는 강제적이지만  방법은 자유롭다. 환경 보호의 목적이 인류 생존을 위함인데 환경 보호를 위해 인류를 죽게  수는 없다. 많은 곳에서 환경 보호 주장이 좋지 못하게 바라보여지는 까닭은 환경 보호의 목적이 사리사욕 추구이거나, 환경 보호의 목적을 잊은  인류 생존에 해가  정도로 무지막지한 방법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 안에는 겨울에 석탄을 쓰지 않으면 얼어 죽을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머지 않은 미래에 인류가 죽을  있으니 석탄을 쓰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환경 보호는 무작정 환경 보호에 맞출 것이 아니라 인류 생존에 맞춰 합리적으로 보호할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기술 발전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기술 발전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여 인류 생존을 위한 기술을 확보한다. 현재 AI 기술 발전을 막는 것은 인류 생존에 해가 되는 것이다. AI 기술의 특징은 단순히 AI 발전뿐만 아니라 AI 활용할  있는 모든 분야의 성장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는 AI 다르게 발전이 더디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AI 활용을 통해 발전을 빠르게   있다. 이런 AI 기술을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상대적인 가치로 불필요한 억압을 하는 것은 해서는  되는 일이다. AI 기술은 주로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있는데, 이는 간단히 해결할  있다. 지금 시장에서 AI 문제는 생산자가 누군지 몰라서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산자가 누군지 모르는 일은 없다. 공장 기계가 생산해도 어떤 기계가 생산한지 파악할  있다. 그와 같이 현재 AI 시장에서 활용할 때에는 AI 고유화를 통한 등록을 시행하면 된다. 그러면 시장에서 발생하는 AI 관련 문제는 등록된 AI 확인하는 것으로 웬만한 것은 해결할  있게 된다. 그렇게 시장에서만 등록 시행을 하면 시장 밖에서는 자유롭게 발전할  있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 디지털 기술, 지구 환경과 같은 중요한 것을 빠르게 적응할수록 사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있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겪은 사회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한국인은 이미 분단을 통해 알고 있다. 한국 민족의 분단의 본질적인 원인은 인문 계열이 진보하지 못한 것에 있다. 그랬기 때문에 공산주의 따위가 세계에 유행했고,  때문에 조선에도 유행하여 조선 왕조와 같은 체제가 북한에 자리잡은 것이다. 한국 이념 전쟁, 베트남 이념 전쟁 등과 같은 비극도  때문이고 양안전쟁에 대한 걱정도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PC주의와 여성주의와 같은 윤리 파시즘도  때문이다. 개인주의 체제만 해도 이만한 사회 문제가 있었다. 디지털 기술과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이에 대한 대응을   있다.

  

체제 적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어느 정도   있다. 문화대혁명은 과거의 중국 문화를 파괴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굉장히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이다. 실제로 어리석은 사건이 맞긴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있었던 까닭은 유사 과학 수준에 있던 인문 계열까지  파괴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없는 것이 차라리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흑묘 백묘 운운하면서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급속도로 발전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문화대혁명을 거치지 않고 종교적 가치가 진하게 남아있었다면, 자잘한 종교적 가치에 의해 발전이 좌초되는 일이 굉장히 많았었을 것이다. 그렇게 싹다 파괴하고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은 이제서야 여유가 생긴 모양인지 과거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회 온갖 곳에서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중국의 경우에는 정치는 공산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인데 경제는 시장 경제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인 바람에 다른 선진국과 달리 관념 체제가 아닌 체제 체제 충돌로 더욱 심각한 상태다. 최근 들어 더욱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을 경계하는데, 이는 시장 경제를 도입하면서 개개인의 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하는 것에 의해 나타난 개인 권리 주장을 통해 독재 정권 붕괴가 일어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존할  없는 체제를   쓰니까 이런 불완전한 상태가 되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음에도 파괴를 통한 체제 적응으로 급속도로 성장할  있었던 반면, 영국이 왕실 유지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음에도 체제 부적응을 통해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영국 왕실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 때문인데, 그것을 위해 체제 합리를 포기하는 것이   손해에 해당한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남은 왕실이 집단주의 체제를 상징하면서 집단주의 체제의 잔재를 남기고 있다. 그게 체제 불합리다. 왕실의 경제 효과는 매년  3조원이라고 하는데, GDP 3천조원이 넘어가는 영국에서 체제의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다. 이는 다른 개인주의 체제의 왕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익이 있든  국가의 체제 합리를 포기할 정도의 이익은   없다. 체제 불합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은 그야말로  빠진 독에 물붓기 수준으로 의미없는 짓이다. 얼마나 돈을 써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보다 왕실 이익을 포기하고 체제 합리화를 추구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

  

 

  

5) 보수와 진보

  

오늘날 보수와 진보는 학문적 성격과 거리가 멀다. 보편적으로 자유주의 진영을 보수라 부르고 사회주의 진영을 진보라 부르며 각자 다양한 주장을 펼치는 것에 의해 복잡해보일  있는데, 본질로 파고들어가면 그냥 이권 다툼이다. 보수는 기득권 유지가 본질이고 진보는 계급 투쟁이 본질이다. 진보가 계급 투쟁으로 기득권을 쟁취하면 다시 보수가 되어 기득권 유지가 본질이 되고 보수였던 이들은 계급 투쟁이 본질이 된다. 정말 그거 뿐이다. 이권 다툼에 붙은 다양한 명분,   윤리조차도 그냥 이권 쟁취의 수단에 불과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노동자 계급이 계급 투쟁에 성공한 중국 같은 나라는 공산당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내국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인의 자유조차도 억압하고 있다. 그런 것에 미사어구를 붙여봐야 이권 다툼이라는 본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권 다툼에서 벗어나 학문적 성격으로 보수와 진보를 규정하면 다음과 같다. 학문에 있어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인식 탐구와 절대적 존재 탐구로 나뉜다. 현재 인문 계열의 탐구를 보통 철학이라 부르고 자연 계열의 탐구를 과학이라 부르는 것은 인문 계열이 상대적 인식 탐구를 하는 바람에 체계가 잡히지 않아 과학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문 계열에서 사회 과학이란 이름으로 과학적 방법을 통한 탐구를 하고 있지만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탐구는 과학적이라 하기에 체계적이지 못하다. 현재 고질적 사회 문제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문 계열이 존재 탐구로 진보하지 못한 것에 있다고 해도  정도다. 그렇기에 인문 계열의 진보가 절실하다.

  

체제에 있어 보수와 진보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로 나뉜다.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다 어쩌다보니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했는데, 인문 계열이 개인주의 체제에 대한 존재 탐구를 하지 않고 본인의 상대적 인식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배운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주장에 대중의 종교적 가치관과 어울리면서 유행하는 바람에 인류 사회는 오랫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합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퇴보하게 되었다. 고질적 사회 문제의 근원은 인문 계열의 존재 탐구 진보를 못한 것에 있다면, 직접적 원인은 개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것에 있다.  부적응은 마차와 자동차로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인류 사회 체제를 알기 쉽게 이동 방법으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원시인이 도보. 최저한의 도구 사용으로 살아간다. 원시 부족이 어부바. 기본적인 도구를 사용하며 사회가 형성되었으나 피지배자가 지배자(제사장, 부족장 ) 등에 태우고 간다. 집단주의 체제가 마차. 복잡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마부와 말이 마차를 이끌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 개인주의 체제가 자동차. 엄청나게 복잡한 도구를 사용하며 기름과 같은 연료가 있으면 이끌지 않아도 간다. 이와 같이 집단주의 체제는 마차와 같이 누군가 이끌어야 갔다면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와 같이 연료에 해당하는 동기가 있으면 이끌지 않아도 간다. 집단주의 체제는 마차와 같이 이끌었었기 때문에 방향을 결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와 같이 연료로 가기 때문에 탑승자가 직접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집단의 장이 이끄는대로 가던 집단주의 체제는 마차와도 같다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개개인이  곳을 직접 결정하는대로 가는 개인주의 체제는 자동차와 같다. 이걸 바탕으로 개인주의 체제 부적응에 의한 실패를 바라보면, 마차 타던 대로 자동차를 타다가 제대로 못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마차 타던대로 마부와 말이 알아서 가게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는데, 연료에 해당하는 동기도 윤리적으로 나쁘다면서 막는 바람에 스스로 방향도 결정하지 못하면서 자동차가 출발하지 못하거나 출발하더라도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여 사고가 나게 되었다.

  

인간을 파괴할  있는 욕망이 나쁘다고 막은 것은 환경 파괴적인 기름이 나쁘다고 막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아니다. 욕망은 인간의 동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동차로 보면 기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 막아버리니 인간의 연료가 없어 멈춰버린다. 미성년 시기에 스스로 판단할  있는 성장을 보호하겠다면서 막는 것은 운전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것을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아니다.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미성년이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데 해로울  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몰라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사고를 치는 것은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는 직접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스스로 가야  방향을 정하는데 위험하단 이유로 아예 배우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어떻게 운전해야  지를 몰라 방향도 결정하지 못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여 사고가 난다.

  

체제 부적응에 대해 이해하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자동차는 기름을 넣고 직접 운전해야 해요.  말이 필요한 것처럼 간섭하고 억압하는데요.” “주유구에 기름이 필요한 거예요. 그게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해서 당근 주스  넣지 마요.” “타이어가 친환경적이지 못하다고 때서 마차 바퀴로 바꾸려고 하지  마요. 그러면 사고난단 말이예요.” “아니 이제 말은 필요 없어요. 자동차 운전수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제대로 못간다고  가져오지 마세요.” “마부도 이제 필요 없어요. 운전 강사나 자동차 수리공이 필요할 뿐이에요.” “마차 부품은 이제 필요없으니까 버리거나  아까우면 트렁크에 실으세요.” “마차를 유지하고 마차가 가는 방법은 이제 자동차를 유지하고 자동차가 가는 방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걸 억지로 하려고 하면 자동차가 가질 못해요.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면 자동차가 망가진단 말이예요!”

  

자동차를 마차처럼 다루다 망가지듯이 개인주의 체제를 집단주의 체제처럼 다루다 개인주의 체제가 망가졌다.  망가진 증상이 사회 문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성년  성을 죄악시하여 미성년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막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끔 가공했으니 자발적으로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것이다. 자아 성질, 관념, , 출산 등의 존재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 저출산 현상은 단순한 왕정의 썩은 윤리에 의한 인과라는 것을 이해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체제 적응 못하겠으니까 다시 왕정과 비슷한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올  있는데, 마차가 자동차에 비해 불편하여 많은 사람이 불행하듯 왕정과 비슷한 체제는 민주정보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많은 사람이 불행해진다. 그야말로 인류의 퇴보다.

  

이제 학문과 체제는 각각 절대적 존재 탐구와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여 인류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뿐이다. 제대로 진보하지 못한 현재 학문과 체제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일이 많다. 학문의 경우 과거에는 종교와 과학이 충돌했다면 현재는 자연 계열의 절대적 존재 탐구와 인문 계열의 상대적 인식 탐구와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성인 산부인과 의사는 보다 정확한 용어를 쓰기 위해 폐경이란 단어를 쓰지만, 여성인 여성주의자는 부정적 인식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완경이란 단어를 쓴다. 폐경이란 단어를 쓰는 여성인 산부인과 의사에게 항의가 들어와서 그것에 대한 해명을 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이것이 상대적 인식에 얽매이지 않고 절대적 존재를 탐구한 자연 계열과 상대적 인식을 절대시하는 인문 계열의 충돌이다. 체제의 경우 과거에는 집단주의 체제와 개인주의 체제의 이념 전쟁이 발생했다면 현재는 PC주의와 같은 윤리 파시즘과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와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PC주의가 주장하는 상대적 가치가 절대적이라며 강요하는 바람에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의 자유권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다.

  

헉슬리와 오웰은 멋진 신세계와 1984 통해 디스토피아를 표현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과 체제의 진보를 전제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 물론 진보하지 않으면 정말로 그런 디스토피아가 나타날  있다.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진보해야만 한다. 쉽지 않겠지만 진보한 국가는 과거 과학 혁명으로 급속도로 발전한 국가와 같이 발전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인류가 자연 계열에서 경험한 것이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6) 인문 계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절대적 존재 탐구였던 모양이다. 나의 인식과 가치에서 벗어나 탐구 대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여 그것에 맞는 합리적인 주장을 해왔었다. 그에 관한  가지 사상과 제도에 대해 써보겠다

  

생존주의.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사상이다. 인간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먹고 자고 싸는 활동에 강제력이 있듯이 사회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인 복지에 강제력이 있다 보고, 그런 복지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복지의 효율적인 방식에 대해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존주의라는 사상이 떠올랐다. 사회와 체제 구조를 위한 강제력에 대한 합리적 기준이 정립되면 그것 외에는 사회와 체제 구조와 관련이 없으므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할  있다  것이다. 그것을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라 이름 지었다. 그러다 존재가 절대적이고 인식과 가치가 상대적임을 깨닫고 절대적 존재 탐구에 관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자연 계열의 탐구가 절대적 존재 탐구임을 파악하고 인문 계열의 탐구가 상대적 인식과 가치 탐구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인문 계열 또한 절대적 존재 탐구로 진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다고 보았다.

  

역할주의. 역할 수행 게임을 하면서 떠올린 사상이다. 현실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했지만 가상에서 인간 관계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를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모르니까 선입견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연령, 성별, 인종 등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로지 게임  역할 수행 여부만 보고 칭찬하고 비판했다. 그것을 통해 발상한 사상이 역할주의다. 가상에서 그랬듯이 현실에서도 인간의 성질을 무시하고 역할 수행 여부만 보면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 보았다. 실제로 그랬다. 서로가 관계되는 역할에 관한 수행 여부만 보면 서로를 부당하게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가치 생산에 있어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가치 생산에 대한 역할만  수행하면 되었다. 거기에서 가치 생산 기여도에 따라 금전적 이익을 달리 얻으면  뿐이었다. 그렇게 상대방과 관계되는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면 서로의 개성이 존중될  있었다.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아무래도 좋다. 역할과 무관한 개성은 신경쓰지 않으면서 각각 개인의 개성은 존중될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부를 거라 보았다.  

  

탐구주의. 탐구를 하면서 나의 방식을 정리한 사상이다. 탐구는 기초와 응용을 모두 탐구하는 것으로 탐구 대상에 대한 지식을 접하지 않고 사전적 정의만 인식한 후에 대상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창의는 기초는 암기하고 응용은 탐구하는 것으로 탐구 대상에 대한 지식은 기초만 접하고 대상을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절대적 존재 탐구 방식에 따라 본인의 상대적 인식을 버리고 과학적 증명과 논리와 실험 결과만 가지고 탐구하여 탐구 대상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한다. 탐구 결과가 나오면 탐구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접하여 본인의 탐구 결과와 비교하면서 각각의 오류를 파악하여 수정한다.  후에 다시 탐구한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탐구 결과를 내놓을  있을 거라 보았다.

  

 

  

역할 민주주의 제도. 역할주의 사상에서 파생한 제도다. 입법권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선출의 기준을 지역이 아닌 분야로 정하는 제도다. 현재 민주주의는 지역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로 지역의 대표로 선출되기 위해 토지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토지 소유자는 매우 적어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와  공약이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적었기에 대부분의 국민은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하게 되었다. 정당의 정책이나 선동에 의해 투표를 하게 되면서 특정 지역은 후보가 누구든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선출은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닌 정당의 공천권자가 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결함이라 보았다. 그러면서  결함은 토지가 대부분의 국민과 이해관계가 멀었기 때문임을 파악하고 토지가 아닌 역할이 정해지는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대부분의 국민은 특정한 역할을 맡고 있고,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에 해당하게 된다.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의원이 선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선동이 아닌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표를 선출할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나게 된다. 동시에 지역이 아닌 분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할 것이므로 지역보다 분야가 성장할  있을 거라 보았다. 땅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인간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므로 분야의 성장은 국가의 성장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분야의 대표가 입법권을 쥐면 분야의 이익만을 위한 활동을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분야의 수가 많아 특정 분야의 대표가  분야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하면 당연히 다른 분야에 제지를 받게 된다. 그렇기에 특정 분야의 이익 추구는 당연히 모든 분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면서 공공의 이익을 고려한 분야의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된다.

  

정책 판사와 정책 변호사 제도. 사회와 복지에 관한 사상을 하면서 나온 제도다. 정부 정책의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를 도입하는 제도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공적인 판단 기관과 정책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사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뎌지는 것이라 보았다. 기관에서 정책에 의한 실수가 반복될 때가 있는 것은 그만큼 정책 관련한 발전이 느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정책의 결함이라 보았다. 사법은 법정에서 법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그와 같이 정책 또한 정책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있는 기관에서 정책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있어야 발전할  있을 거라 보았다. 현재도 정책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된 기관이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에 영향을 받을  있는 영향이 있다 보고 정책 판사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법이 정권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되었기 때문에 독자적 판단을 통한 삼권분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관이 정책에도 있어야 한다. 정책은 법과 비슷하게 전문가가 주로 이해할  있으므로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변호사가 있어야  문외한이 법정 다툼을 해도 효과가 있을  있듯이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정책 문외한이 이의제기를 해도 효과가 있을  있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를 생각하면서 나온 제도다. 게임의 퀘스트를 게임 유저가 자발적으로 하듯이 현실의 가치 생산과 학습 또한 국민이 자발적으로   있는 제도다. 현재 개인주의 체제 적응 실패로 많은 이들이 미숙하게 성장해버렸다. 성년이 되어도 강요할  있었던 집단주의 체제의 방식으로 교육을 하면서 미성년  사회와 체제에 맞는 교육을 하지 않는 바람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성년이 되었는데 개인주의 체제로 자유롭게 되면서 강요할  없는 바람에 연애, 결혼, 출산, 가치 생산 등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개인주의 체제 결함이라 보았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세대는 물론이고 기성 세대 또한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  퀘스트와 레벨 업에 관한 행동 원리가 자리잡았다고 보았다. 게임  퀘스트가 성가시고 레벨 업이 피곤해도 그것을 통해 얻었던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원치 않아도 하였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하루 종일 지루한 반복 행동을 하는 것도 즐기고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는 그런 식으로 가공된 것이었다.  행동 원리를 활용한 제도가 퀘스트 제도다. 퀘스트 제도는 가치 생산 제도에 해당하는데, 기존의 가치 생산 제도와 충돌할  있으므로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우선 누구나   있는 단순한 가치 생산을 퀘스트로 만들어 퀘스트 제도에 공급한다.  퀘스트 제도는 초기 모바일 게임이 이용자를 모으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과 같이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있게끔 설계한다.  퀘스트 클리어는 추가 보상을 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한번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나면, 퀘스트와 레벨  행동 원리가 작동하여 다음 퀘스트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면 퀘스트를 통해 레벨 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쉬는 날에  것이 없으면 레벨을 올리기 위해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된다. 그렇게 레벨을 올리고 나면,   어려운 퀘스트를 도전할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퀘스트 중에는 자격이 있어야 도전할  있는 것이 있는데, 퀘스트와 레벨  행동 원리를 위해  자격을 취득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학습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현재 평생 교육원과 같은 학원이 많은데, 그것의 효율이 낮은 것은 교육 측이나 학습 측이나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의욕을 퀘스트와 레벨  행동 원리로 채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한 가치 생산을 하게 유도하면  외에 다양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퀘스트를 통해 하게끔 유도할  있다. 자연 재해  청소하기가 어려우면 특전이 포함된 대규모 퀘스트를 공급한다. 그러면  특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청소 퀘스트를 하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특전 내용은 호칭이나 업적 등으로 설계하면  것이다. 지금까지 일용직과 같은 단기간 가치 생산은 사회 공헌을 하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그것이 기록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렇기에 가치 생산자도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본다. 그것을 퀘스트 제도의 기록과 호칭과 업적 등을 통해 매꾼다. 또한 돈은 무한하지 않으므로 가치 생산을 유도할  있는  이외의 가치가 필요한데, 그것을 특전 등으로 대신할  있다. 게임에서는 이미 그런 식으로 특전에 대한 가치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게임과 같은 시스템에서만 적용되므로 멋대로 특전을 강요해봐야 의미가 없을  있다. 퀘스트 제도 설계는 퀘스트 제도의 원리에 속하는 가치 생산과 학습은 관료가 주도하고, 퀘스트 제도의 구조에 속하는 퀘스트와 레벨 업은 게임 기획자가 주도하면 된다 보았다. 각자 이미 전문적으로 해온 일이기 때문에   있을 것이다

  

 

  

이런 것과 같이 절대적 존재 탐구를 통해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모든 인문 계열에서 하는 것을 가리켜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의 현대 과학을 따라잡았다 규정하겠다.

  


 
 
 

  

7) 인문 계열 문제

  

상대적 인식 탐구를 통해 나온  가지 인문 계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보겠다. 절대적 존재 탐구를 하고 나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

  

하나,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인간은 언어를 익히는 순간부터 가공되므로 그런 선악 기준은 그다지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누군가에는 선으로 보일  있고 누군가에는 악으로 보일  있어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 테세우스의 . 대상의 원래 요소가 교체된 후에도  대상은 여전히 동일한 대상인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한 순간 이미 증명된 문제다. 디지털은 외계가 아닌 현실과 같은 세계에 속하여 같은 법칙으로 돌아간다. 디지털은 완전히 동일한 복제가 성립이 가능하므로 원래 요소가 교체되더라도 같은 성질이라면 같은 것에 해당하고 다른 성질이라면 다른 것에 해당한다. 디지털에서 프로그램  파일 대부분을 바꾸더라도 동일한 파일이면 똑같은 프로그램이 되고 아니면 다른 프로그램이거나 프로그램이 작동 되지 않는 것과 같이 현실에서  또한 요소가 동일하면 동일한 배고 아니면 다른 배다

  

, 트롤리 딜레마.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여도 되는가?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이런 딜레마는 파랑색이 예쁜가 빨간색이 예쁜가에 대한 물음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인간의 목숨과 색을 동일시   있냐고 물을  있는데,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어떤 이에게는 인간의 목숨보다 미의 판단이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절대적 가치를 규정하고 그것을 따르도록 만든다면, 그것이 개인의 가치관을 침해하게  근거로 작용하게 된다. 가치가 아닌 존재로 보면 구조 유지에  적합한 쪽을 살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뿐이다

  

, 중국어 . 영어만   아는 이들이 중국어 질문과 답이 적힌 것을 보고 그대로 대화를 하면 마치 중국어를   아는 것처럼 보일  있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어를 알지 못한채 적힌 질문과 답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AI 질문과 답변이 가능하더라도 질문과 답변을 이해할 지능을 가졌다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자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는 자아를 필요로 하고 자아는 의지를 필요로 하며 의지는 인간의 육체 신호를 필요로 한다. 세포의 의지가 신호를 통해  움직임 제어 권한이 있는 뇌에 모여 특정한 의지를 가진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형성된 자아가 언어 학습을 하고 나서야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자아가 없으면 본래 이해도 없고 지능도 없다 판단될  있는데, 현재 AI 육체 신호를 대신하여 인간이 직접 신호를 보내어 인간의 의지를 대행하여 이해하므로 실질적으로 이해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을 중국어 방으로 비유하면, 중국어 방에 중국어를 아는 인간이 중간에 껴서 이해하게끔 조정한 것으로 보면 된다. 애초에 질문과 답을 적은 인간은 중국어를 이해하고 적은 것이다. 지금 AI 필요한 육체 신호를 이용하는 인간이 입력한 채팅이나 이미지 태그 등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상의 육체로 대신한다면 AI 독자적인 자아를 갖게  것이다.

  

다섯, 돈과 행복. 가치가 상대적이므로 돈으로 행복을   있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을  있다. 이것을 마치 절대적으로 돈으로 행복을   있다 말하거나 돈으로 행복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상대적 인식 탐구를 절대적으로 여긴 것에 불과하다

  

여섯, 생명의 무게. 생명의 무게는 같은가?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같을 수가 없다. 특정 누군가는 생명의 무게를 같게 여길  있지만 특정 누군가는 생명의 무게를 같게 여기지 않을  있다. 존재에 속하면 다를 수는 있는데 모든 생명이 같은 존재에 속할 수는 없다

  

일곱, 젊음의 가치. 영원한 젊음을 위해 영혼을   있는가? 영혼은 인간이 원시적이었던 시기에 본인의 상대적 인식에서 벗어난 존재에 대한 물음에 대한 증명되지 못한 허상에 불과하다. 영혼을 팔고 싶어도 없다. 차라리 자아라면 성립될 것이다. 나는 영혼이라 불리는 것은 자아로 치환해서 보고 있다. 비과학 시대 용어를 과학에 맞게 바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아를 판다는 것은 자유 의지를 판다는 것으로   있다. 영원한 젊음을 위해 자유 의지를 포기하고  것인가?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존재로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자유 의지는 절대적이므로 절대적 존재에 의해 그런 자유 의지 포기는 강제력이 발생하여 못하게 하게 된다. 알기 쉽게 말하면 자발적 노예가 되겠다고 해도 그것을 개인주의 체제 내에서는 법적으로 허용할  없다는 것이다

  

여덟, 욕심의 한계.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며,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제한이 없다. 내가 바라는   하나는 세상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욕심에 제한이 있다 보이는가?

  

아홉, 만족의 원리.  삶의 만족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의 원리상 결핍 충족에서 온다. 바라는 것이 생길  결핍이 발생하고 바라는 것을 이룰  결핍이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그걸 간소화한 행동이 목을 졸랐다가 푸는 것이고, 간소화한 물질이 마약이다.

  

커뮤니티를 하면서 봤던  가지 논제에 대해 쓰다가   써보려고 포탈에서 토론 주제를 검색했는데 지나치게 많아  가지만   뒤에 생략하였다. 이것은 따로 정리해야   같다. 현재 대부분 토론 주제는 절대적 존재 탐구를 했다면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2. 사회 문제

  

사회 문제는 본질, 원리, 원인, 과정, 결과 순으로  정리하되 지나치게 알기 어려울 경우 사회 문제로 합쳐서 정리한다.

  

인류가 적응해야   가지. 개인주의 체제, 디지털 기술, 지구 환경 

  

자아 원리상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게끔 되어 있다. 일반 인간이 일으킨 모든 사회 문제의 의도는 주관적으로 옳은 행동에 해당한다.

  

3. 역할

  

 사회 문제는  분야의 전문가가 해결해야 한다.

  

4. 국제

  

디지털 기술에 의해 모든 사회 문제는 국제화가 된다.

  

각국 사회 현상과 사회 문제에 대한 이해

  

5. 공조

  

국제 공조 방법

  

 

  

미래.

  

인류의 미래

  

 

  

사상가 정승훈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나서 이것을 썼어요.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쌓아야 그걸 바탕으로 사상을   있어요. 그러므로 정보 수집 시간과 생각을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많이 생각하느라 힘들어서  쉬겠습니다. 생각하는  쉽지는 않아요. 원래 계획은 7월부터 국가와 외교 사상을 시작하려 했는데 우선 이것부터 마저 쓰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현재 사상이 자연 계열의 과학 혁명을 따라잡았으니 앞으로는 현대 과학을 따라잡아야죠. 그런데 계속 발전해서 당장 내년에 무슨 사상을 할지 모르겠네요. 발상에도 숙성기가 필요해서 발상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같아요. 지금  발상들도 시간이 지나면  체계화되겠죠

  

이사  곳을 찾는데 지역 제한이 적은 상태에서 한정된 자금으로 이사갈 곳을 정하기가 쉽지 않네요. 금연 구역을 지정한 동네는 되게 비싸고환경이 괜찮은  군대 학교와 공원 근처를 알아보고 있는데 지금 올라온 방은 월세 비용이 높네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월세 두배 이상을 내기에는 여유가 있진 않아요. 반지하는  군대 있는 모양인데  이상 반지하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괜찮은 곳이 나올 때까지 일단 버티고 있네요. , 최근 사상에 집중하느라 이사갈 곳을 못봤어요. 다시 봐야겠죠. 빨리 이사가고 싶네요.

  

 정말 사상에 집중하고 싶네요. 자잘한 것을 신경쓰지 않고. 모바일 게임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미소녀 메이드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사상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텐데. 같이 여행하면서 사상에 도움이 되는 재료도 모으고 싶네요. 해외에 가본 적이 없어서 가보고 싶네요. 가면 사상에 도움이 되는 재료를 얻을 수도 있겠지요. 사상 재료 수집겸 미술관 표를 할인하길래 미술관에 가보려고 해요

  

서브컬쳐에서는 마음이 열정으로 불타오를 정도로 흥미를 갖고 사랑하는 것을 모에라고 하고, 그렇게 만드는 것을 모에화라고   있겠지요. 한국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선조의 문화를 사랑스럽게 꾸미는 것에 상당히 거부감을 가진 탓에 한국 문화는 모에화가 거의 되지 않았던  같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국 문화보다는 K, 드라마 등과 같은 상업 문화에서 사랑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은 가치의 형상을 말하죠. 사랑 받게끔 만드는 것은 가치가 있게끔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제는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 한국 문화를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이 모에화가 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봅니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신경쓰지 않아요. 모바일 게임에서 각국의 역사 인물이 모에화가 되어도 신경쓰지 않아요. 당장 최근 인물이 모에화가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후손이 있을 정도죠. 못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거니 싫어할 이유가 없는 거죠.

  

AI 대화 내용을 전부 기억한다면 AI 대화를 하며 사상할  있을텐데.. 개인 정보 이슈가 있다고 아는데, 그것은 이용자가 동의하면 대화 내용이 기억되도록 했으면 좋겠네요

  

구글의 쇠퇴가 눈에 보일 정도가 되고 있는데.. 내부가 종교적 가치관에 물들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검색에는 온갖 광고가 넘치고, AI기술은 다른 기업에 추월당하고, PC주의적인 것만 좇는  같은 기분. 괴롭군요.

  

일단 당장 생계는 유지할  있어 돈이 급한 것은 아닙니다만, 빚이나 다름 없는 많지 않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후원 받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야말로 파멸적 사상을 하고 있어서  주변 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그걸 그렇게  건지도 모르겠고어쨌든 후원받은 돈은 사상을 하기 위한 생계에  예정입니다. 가능하면 이사 비용으로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상이 가치 있다 여겨져 사상을 하는 것을 돕고 싶다면 후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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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퀘스트 제도 (1) 2023/03/31 AM 02:38

퀘스트 제도

 

 

 

자연은 합리하고 사회는 불합리하다. 보통 상대적으로 생존이 어려운 자연을 불합리하다 여기고 생존이 쉬운 사회를 합리하다 여길 수 있다.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무력함을 느끼고 세상의 불합리함을 토로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는 그런 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합리는 개개의 손익과 무관하게 이치에 맞는 원리가 지켜지는지로 결정된다. 자연은 자연의 원리인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켜지므로 합리하다. 반면 사회는 사회의 원리인 체제의 원리가 지켜지지 못하므로 불합리하다. [체제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에, 그 조직의 양식을 뜻한다, 또는 그 상태를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인류의 체제는 크게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과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왕정과 민주정은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로 결정된다. 집단주의 체제인 왕정에서는 집단의 장인 왕과 귀족이 이익을 취하고 집단 구성원인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체제의 원리로 삼고 있다. 그런 체제에서 욕망적이고 이기적인 일부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민란이나 혁명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하게 된다.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에서는 모든 개인이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체제의 원리로 삼고 있다. 그런 체제에서 금욕적이고 이타적인 일부가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하게 된다.

한국은 개인주의 체제인 민주정이지만, 자연의 원리인 약육강식과 왕정의 정치사상인 유교적 가치관과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는 금욕주의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타주의에 의해 다수의 인간이 약자를 짓밟고 왕정과도 같은 위계질서가 남아 있고 개인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것을 통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으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유교, 기독교, 불교 등)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 가치관과 근간이 되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옳다고 맹신하면서 사회 문제는 개인주의와 욕망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이라 오해하지만, 체제를 고려하면 사회 문제는 옳다고 여겼던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 때문이었다. 왕정의 윤리에 의해 민주정 체제가 불합리하게 되면서 사회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왕정은 대상에 가치 판단을 하여 인간의 욕망을 죄악으로 지정하고 그것을 금하는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욕망에 의한 죄악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하도록 유도한 왕정 시대의 윤리를 악용하여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하고 희생하게 하는 것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는 지배자가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가치는 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모든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가치_철학은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진리든 도덕이든 아름다움이든 관계 없이 모든 것은 사람마다 가치가 달랐다.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낡은 진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것으로 학문을 발전시켰다. 도덕은 동서양과 같이 역사가 다른 사회를 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움은 개개인마다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다르다는 것이 명백하다.

민주정에서는 대상에 고정된 가치가 있지 않고 각각 개인의 관계에 있음을 인식하고 각자의 주관적 가치가 선거와 시장과 같은 제도를 통해 객관적 가치가 되어 사회의 공통 가치가 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공통 가치는 있어도 고정된 가치가 없어 다수의 의견에 의해 사회와 체제가 붕괴할 우려가 있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본질로 대응하면 된다. 인간은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먹고 자고 싸는 것과 같이 사회와 체제 또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복지를 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이 먹고 자고 싸지 않으면 죽게 되듯 사회와 체제도 붕괴할 수 있다. 그걸 명분으로 다양한 가치를 가진 개개인에게 가치와 다르다 할지라도 법과 복지를 지키게끔 강제하는 것을 정당화하여 사회와 체제를 유지한다. 모든 존재가 구조를 유지하여 원리를 추구하고 있다. 인간, 지구, 우주 가릴 것 없이 전부 포함된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을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 존재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으로 가치에 속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속한 것으로 규정하겠다. 그걸 통해 법을 지키고 복지를 행하는 것은 가치에 속한 것이 아닌 존재에 속한 것이 되어 대상에 가치가 없다는 주장과 충돌하지 않게 된다. 존재 유지라는 절대적인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가 바로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다.

존재 유지와 그에 대한 강제력을 생존주의라 부르고 그것 외에 다양한 가치를 자유롭게 누리는 것을 생존주의적 자유주의라 주장하겠다. 그런 사회에서 역할이란 관계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가리켜 역할주의라 주장하겠다. 역할주의에 관련된 대표적 제도는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역할 민주주의와 사법과 같이 정책의 판단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정책 판사와 정책 전문가가 있다.

 

한국은 왕정의 윤리를 절대적으로 여겨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그에 따른 정책과 제도를 갖추는 바람에 불합리하다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까닭은 왕정의 윤리에 의해 나타난 문제를 왕정의 윤리가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그걸 더욱 강조하면서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민주정의 가치를 추구하고 정책과 제도도 그에 맞게끔 재정립되어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에 부합해야 한다.

개개인이 개인주의 체제에서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까닭은 인문 계열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췄기 때문이다.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고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옳다 말하면서 개인에게 종교적 가치관을 강요하고 억압하고 개인을 희생시켰다. 인류의 문명은 학문을 통해 발전한다. 학문이 발전해야 사회에서 학문을 활용하면서 문명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문 계열에서 가치를 탐구하지 않으면서 인문 계열이 발전하지 못하자 사회도 발전을 멈추면서 개인이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책과 제도도 체제에 맞지 않게 되면서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 발생하여 사회가 불합리하게 되었다.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은 민주정에 해당하는 모든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해당한다. 심지어 집단주의 체제인 공산주의 체제를 가진 중국조차도 자본주의를 받아드리는 바람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공통된 문제점은 저출산이다. 개인을 희생시켜 결혼과 출산을 시켰던 시대의 관념을 가지고 정책과 제도를 추진하니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던 이들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중대한 사회 문제로 여겨지는 저출산은 집단주의 관념과 개인주의 체제의 충돌로 나타난 수많은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인류의 인문학이 가치에 대한 탐구를 멈췄음에도 서양에서 인문 계열이 개인주의 체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의 피조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기독교 평등사상이고 둘은 힘에 영합하지 않아도 명예를 얻을 수 있게 된 과학 혁명이다. 기독교 평등사상은 신의 피조물로서의 평등이긴 했으나 인간 사이에서는 평등했기 때문에 모든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개인주의 체제로 발전하기 위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 동양 인문 계열은 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서양 인문 계열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과학 혁명은 힘에 영합해야만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학문의 한계를 넘어 발전할 수 있게 하였다. 본래 모든 학문은 왕이나 귀족과 같은 힘을 가진 이에게 영합하여 관심을 받아야만 명예를 얻는 성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힘에 영합하지 않아도 명예를 얻는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인문 계열의 주장인 자유주의는 힘을 가진 이들이 수용해야만 사회에 반영되지만 자연 계열의 주장인 만유인력의 법칙은 힘을 가진 이들이 수용하든 말든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명할 수 있어 사회에 반영될 수 있었다.

개인주의 체제는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기독교 평등사상을 통해 특별히 가치를 탐구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된 사회에서 과학 혁명을 통해 왕과 귀족 외의 힘을 가진 개인이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자유주의와 같은 사상이 영합하면서 모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양 인문 계열은 개인주의 체제로의 진보가 가능했다. 반면 동양 인문 계열은 유교와 같은 왕정의 정치사상이 뿌리깊게 내리고 자연에 대한 탐구에 소홀했기 때문에 왕과 귀족 외에 힘을 가진 개인이 등장하지 못하여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할 수가 없었다.

개인주의 체제는 인문 계열의 가치 탐구를 통해 발전한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러면서 일부가 제한이 없는 자유를 추구하면서 식민지와 노예, 노동자 착취, 그리고 세계를 황폐하게 만든 세계대전 등이 발생하였다. 개인주의 체제는 개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나타난 체제기 때문에 정당한 권리는 주장하지만 합리적인 의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 폐해들이 나타나자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관념을 주장한 것이 아닌 집단주의 관념에 맞는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다.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만을 주장하던 개인주의 체제에 맞서 왕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라도 구조 유지와 무관한 것까지 개인에게 의무를 강제하는 체제가 나타난 것이다.

자유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를 모더니즘이라 부르고 그에 반발하여 나타난 사회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체제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르며 사회주의를 진보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인문 계열의 근간인 가치로 바라보면 사회주의는 왕정의 윤리를 바탕으로 한 왕정과 유사한 체제이므로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과거의 체제로 돌아간 퇴보 체제라 할 수 있다. 체제가 바뀐다고 바로 관념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학문이 탐구를 하여 새로운 관념을 널리 알려야 바뀌는 것이다. 관념이 바뀌지 않는 한 관념에 의해 다시 왕정과 유사한 체제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관념과 체제의 충돌로 인한 퇴보다.

서양 인문 계열은 기독교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과학 혁명으로 힘을 얻게 된 이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통해 윤리 대상 확대를 하면서 발전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서양 인문 계열은 PC(political correctness)사상이 나타났다. PC주의는 말이나 표현이나 용어 등에서 인종과 민족과 성별 등에 편견을 없애자는 주장이나 실질적으로는 지금까지 차별 받아왔던 흑인, 소수민족, 여성 등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상이다. 왕과 귀족, 상공업자, 노동자로 이어지는 각각의 권리를 보장하는 윤리 대상 확대의 흐름에서 흑인, 소수민족, 여성 등에게까지 확장된 것이다. 무지와 짐승에게까지 확대된 것이 반지성주의와 동물보호주의다. 그러한 확대의 흐름 속에서 최근에는 인간과 짐승과의 결혼까지 인정할 정도다.

PC주의는개인주의 체제가 나타나 의무를 무시했던 것과 같이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무시하고 있고, 공산주의 혁명에 영향을 받아 계급 투쟁으로 인식하고는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이들과 투쟁을 하고 그를 통해 얻은 이익은 부당하더라도 전리품으로 보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들은 엉망진창에 모순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지금까지 인문 계열의 발전이 윤리 대상 확대를 통한 권리 확대에 있었으므로 그것을 불합리하다 지적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하여 개인에게 다양성을 명분으로 다양한 이들에게 고정된 단일한 인식과 가치를 절대적이라 여기며 교조적으로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대상에 가치 판단한 것을 개인에게 강요하던 왕정의 윤리로 집단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PC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권 운동은 대부분 집단주의 체제를 갖추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며 개인이 가치 판단하여 행동하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다. PC주의는 집단주의적인 퇴보적 사상에 불과하다. 모든 개인의 권리는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로 접근해야 한다. PC주의야말로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대표적인 관념과 체제의 충돌이다.

 

개인주의 체제는 인문 계열의 발전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기독교 평등사상과 자연 계열의 발전을 통해 다양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어서 종종 잊을 수 있는데 체제는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다. 인간의 발명품은 사용법을 알아야 잘 쓸 수 있듯이 체제 또한 사용법을 알아야 잘 쓸 수가 있다. 자동차의 사용법을 모르고 수입하면 자동차를 엔진으로 동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차와 같이 말로 끌고 다니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체제의 사용법을 모르고 수입하면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단주의 체제의 원리로 사회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마차와 같이 끌고 다니는 것이 불합리하듯이 개인주의 체제를 집단주의 관념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본인의 가치 관념을 진리로 여기고 자꾸 자동차를 동작하는데 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처럼 개인주의 체제에 집단주의 체제의 종교적 가치관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현재 한국 사회는 불합리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낡은 관념과 새로운 체제의 충돌은 대부분 선진국이 겪고 있는 것에 해당하나 한국은 조선이 유교 성리학으로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던 국가였기에 유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경제가 성장하면서 그걸 근거로 한 윤리를 강조하면서 더욱 더 불합리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한국 상황을 자동차로 비유하면 자동차 타는데 자꾸 말이 필요한 것이 도덕적이라면서 말을 끌고 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제 말은 필요 없다. 말로 자동차를 끌고 다니게 하려는데 제대로 운전이 가능하겠는가? 왕정의 윤리로 민주정에서 살아가는데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1. 개인주의 체제

 

체제는 인간의 발명품이므로 체제를 모르면 제도도 제대로 만들 수가 없다. 체제를 모르고 제도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를 모르면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체제에 맞는 합리적 제도를 만들어 도입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 체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 체제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각각 개인의 자유권과 주권과 소유권 등과 같이 개인의 의사로 개인의 권리가 보장 받는 체제로 개인이 체제의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원리를 사용한 개인주의 체제의 대표적 제도에는 선거와 시장이 있다. 개인의 의사로 정치 권력이 선출되고 개인의 의사로 시장 내 수요와 공급이 발생하는 것으로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 선거 원리와 시장 원리는 개인의 의사라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선거와 시장은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를 사용한 제도임에도 집단주의 관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원리가 훼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거는 진영으로 나뉘어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의사로 투표하도록 유도하여 선거 원리가 훼손되고 시장은 가치 생산자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의사로 담합이나 독과점을 일으켜 시장 원리를 훼손하고 있다. 그렇기에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개인주의 체제는 우수함이 민족의 분단을 통해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은 같은 민족을 공유하고 다른 체제를 추구하는 중인데, 한국은 선진국이 된 반면 북한은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성장이 체제의 차이에 있음을 이해하고 구체제의 왕정의 가치를 버리고 신체제의 민주정의 가치를 받아드리는 것이야말로 바른길임을 이해해야 한다.

 

역할 민주주의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다. 선거는 지역의 대표에게 정치 권력을 주는 토지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토지 소유자가 매우 적은 편에 해당하여 지역의 대표와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적어 대부분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었다 하기가 어렵다. 지역의 대표에 선출되기 위해 지역에 설치되는 사회 간접 자본 시절 등을 선거 후보 공약으로 내세우는데, 토지를 소유하지 않는 개인에게 그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정치과 개인이 이해관계가 적기 때문에 정당을 보고 맹목적으로 투표하는 정당 선동 정치에 휘말리는 것이다. 비례 대표는 그야말로 정당 선동 정치의 전유물이나 다름이 없다.

현행 선거 제도에서 정당 선동 정치가 일반적인 까닭은 이와 같이 구조적 문제에 있다 할 수 있다. 그런 구조적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와 개인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할이다. 토지와 달리 사회의 역할은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와 개인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성립되게 된다. 토지는 지역에 관련된 선거 후보 공약으로 내세우는 반면 역할은 분야에 관련된 선거 후보 공약을 내세우게 된다. 그러면서 분야에 속한 이들은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각 분야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고 있다. 일부 소외되는 분야는 수십 년이 넘게도 분야에 관련된 법의 부조리가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그런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직접 대표로서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의원이 지역의 대표이기 때문에 지역의 문제에는 관심이 많아도 분야의 문제에는 소홀하게 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는 분야가 아닌 토지를 소유한 이들이 중심이 되는 지역의 대표가 정치 권력을 잡다 보니 경제 성장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면서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일이 잦게 되었다.

매번 새로운 선거제를 통해 정치 개혁을 하고 있지만 지역의 대표나 당의 대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이상 본질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개인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 선거제 개편을 통한 정치 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그 누가 얼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분야의 대표에게 입법권을 주는 정치 개혁을 한다면 분야에 속한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활발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개인에게 거의 관련도 없는 지역이나 정당의 대표가 어떻게 바뀌든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인간은 많지 않다. 개인을 원리로 삼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개인이 무관심한 제도는 체제에 부적합함을 증명한다. 현행 토지 민주주의는 개인의 관심을 받지 못해 체제에 부적합하다. 개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인간에게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역할 민주주의로의 개혁을 해야 한다. 개헌을 해서라도 정치와 개인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온전하진 않아도 개인주의 체제에 속하는 선거와 시장과 달리 그 외의 대부분 제도는 집단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어 제도 자체가 체제에 맞지 않아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저출산 문제다. 현재 극도로 낮은 출산율은 사회의 문화와 정부의 정책이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체제였던 과거에는 집단의 의사로 결혼과 출산을 강제했다면 개인주의 체제인 현재는 개인의 의사로 자유롭게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의 의사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하려면 어려서부터 이성애와 성을 친숙하게 여겨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집단의 생존에는 필수적이어도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은 개인주의 체제에서 취미와 성질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으로 인식한 취미를 자발적으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자발적으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성애와 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해야 자발적으로 할 터인데,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미성년의 이생관계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죄악시하며 막는 바람에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 그에 대한 가치가 폭락했다. 20대 연애율이 20% 정도로 폭락하고 1인 가구가 폭증하고 부유하지 않으면 결혼하고 출산하지 않을 정도로 관련 가치가 지나치게 낮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현실의 이성애와 성은 죄악시되면서 가상의 이성과의 관계를 즐기거나 이성의 동성애를 즐기는 왜곡된 성관념이 나타나고, 육아와 같은 돌봄에 대한 욕구는 남으면서 짐승을 반려동물이라 부르며 키우거나 아기 인형에 옷을 입히며 만족하고 있다. 성년 이후 이성관계와 성관계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남녀마다 다르다. 남성의 경우 교육받은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이 정조를 지키는 것이 윤리라 배워 그것으로 합리화하기도 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간단한 논리다. 강제하던 것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강제하던 때와 같은 관념과 그에 따른 환경을 유지했기 때문에 강제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말 그뿐이다. 현재 저출산은 미성년 시기 이성애와 성을 죄인 것마냥 치부되는 것을 배운 이들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남녀가 서로 이익만 주장하는 것도 과거 가부장제에는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과 같이 희생하는 분야가 강제로 지정되었는데, 현재는 그것이 강제로 지정되지 않자 합리적 기준이 없어 서로 이익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강제하던 것을 강제하지 않게 된 것에는 대부분 통용된다. 공부도 그렇다. 강제하던 것을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강제하던 때와 같은 관념과 그에 따른 환경을 유지하면서 학업 성취도가 낮아졌다. 그럼에도 비슷한 관념과 환경을 고집하니 점점 학업 성취도가 낮아진다. 그뿐이다.

조선의 왕정은 여유가 있음에도 결혼하지 않는 이들을 처벌하고 여유가 없으면 왕정에서 지원해서라도 결혼하게 했다. 조선의 가정에서도 자녀를 강제로 결혼하고 출산하게 했었다. 한국에서도 문민정부 이전에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저출산 원인을 경제적 원인으로만 보는 경향이 지나치게 많은 상황이다.

본인의 관념에 대한 믿음이 신앙과도 같아 본인의 도덕 관념에 의해 잘못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 도덕으로 인해 저출산이 나타났을 거란 생각을 못한다. 연하를 차별하는 꼰대는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나타난 것이 분명함에도 그것을 가지고 유교가 원인이라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이타주의가 개인의 희생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만들어 전체주의의 근간임에도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보고 이타주의가 원인이라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겼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직시할 수 없다. 그걸 할 수 있는 인간은 본인의 자아와 관념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주의자가 가부장제에서 남성이 여성을 도구로 취급하며 정조를 지키게 하기 위해 세뇌한 부당한 여성성과 성관념을 여성이 지켜야 할 권리로 인식하고 주장하면서 더욱 더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게 되었다. 성인지 감수성이나 여성 성적 대상화 금지나 여성 성 상품화 금지는 가부장제 남성이 세뇌한 부당한 여성성과 성관념을 여성의 선천적 성질로 착각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 남성이 세뇌한 여성성과 성관념에 의해 성인지 감수성이나 여성 성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이 본인 입장에서 불편하니까 그걸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약 남성의 세뇌가 원인이 아니었다면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에는 반대하면서 남성 성적 대상화나 남성 성 상품화에는 찬성하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교가 꼰대의 원인이고 이타주의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원인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잘못된 여성성과 성관념이 가부장제 남성의 세뇌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 보면 된다. 그렇게 여성주의자가 성인지 감수성이나 여성 성적 대상화나 여성 성 상품화 금지 따위를 주장하고 비슷한 도덕관념을 가진 기성세대가 그걸 수용하면서 더욱 더 이성애와 성이 죄악시됨에 따라 연애와 결혼이 줄어들면서 출산율도 줄어들게 되었다.

유교는 왕정의 정치사상이다. 당시 왕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한 가르침이 담긴 것이 유학이고 그것을 종교와 같이 맹신한 것이 유교다.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도 당시 왕정을 유지하고 민주정으로 바꾸지 못했던 윤리 사상이다. 민주정에서 왕정의 사상이 바를 리가 없지 않나. 왕정의 사상은 왕정의 잔재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왕정의 잔재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민족 종교인 무교적 가치관과 고려 국교인 불교적 가치관과 조선 국교인 유교적 가치관과 한국 주류 종교인 기독교적 가치관이 혼합되어 도덕관념이 형성되었다. 금욕주의로 성욕 절제를 강요하고 이타주의로 개인을 희생시키고 정조관념으로 잘못된 여성성과 성관념을 만들고 장유유서로 그런 유교적 가치관을 연하에게 세뇌하고 강요했다. 그런 것이 전부 왕정의 잔재다.

그럼에도 저출산 원인이 도덕관념에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묻겠다. 돈과 집이 없어서 결혼과 출산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다면 묻겠다. 할 상대가 있는가? 그것은 연애율이 높아야 타당한 주장이다. 과한 노동 시간 때문에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면 묻겠다. 아이돌이나 창작물 같은 유사연애산업에 해당하는 취미는 할 시간은 있는가? 대부분 취미는 할 시간에 연애를 하면 된다. 돈이 없어서 연애를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묻겠다. 이성이 상품이나 도구로 보이는가? 서로 사랑한다면 일반적인 임금만 가지고도 충분히 즐겁게 연애할 수 있다. 여유가 생기는 데로 살면 된다. 혼자서 소비하는 것보다 둘이서 소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소비가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돈타령하는 것은 이성을 트로피나 지갑으로 보거나 연애하지 않거나 못하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다. 프랑스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프랑스와 같은 복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묻겠다. 프랑스가 얼마나 자유로운 성관념을 가지고 혼외출산이 많은지 알고 있는가? 프랑스는 복지보다는 자유로운 성관념과 그에 따른 혼외출산을 지원하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는 어디서나 다 하는데 프랑스가 극복했다면 복지 외의 원인이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서양은 미성년이 연애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하다 여기고 한국은 미성년이 연애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여긴다.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이해해야 한다. 저출산은 돈이나 시간 문제가 아니다. 낡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다수의 인간이 미성년 시기에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이성애와 성의 가치가 폭락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저출산이 나타난 것이다. 강제하던 때와 같은 가치관으로 강제하던 때와 같은 환경을 고집하니 강제하지 않으면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하더라도 출산도 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도덕에 의해 발생한 현상이기에 대부분 인간은 저출산의 본질적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은 보편적 성관념이 바뀌고 그에 따라 정책과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이 가능한 사회 문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체제가 바뀐다고 하여 인간의 관념과 그에 따른 정책과 제도가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체제가 바뀐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바뀌려고 해야지 바꿀 수 있다. 현재 대부분 관념과 정책과 제도를 자동차로 비유하면 마차 부품을 들고 자동차에 집어 넣으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동차가 가기나 하는 게 놀라울 정도다. 현재 출산율은 자유로운 성관념과 그에 따른 정책과 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아무리 돈을 써도 그 순간만 잠깐 오를 뿐 다시 줄어들 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붓는 동안에는 물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붓지 않으면 물이 사라지듯 말이다. 그러므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 기능이 작동하는 14세 전후부터 완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게 하는 전면적인 성적 개방과 함께 성문화를 즐기고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이성관계와 성관계를 하게끔 권장하여 이성과의 성과 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올바른 성관념을 가지고 이른 결혼과 혼외출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 시기에 잘못된 도덕관념이 자리잡아 죄를 지으면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미성년 시기에 잘못된 성관념이 자리잡아 성을 부정적으로 보면 바꾸기 어렵다. 그러므로 미성년 시기부터 성관계가 포함된 성문화를 직접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성년 시기에 성년이 즐기는 문화를 접하면 충격을 받아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두 가지 측면으로 측면으로 보면서 이해하면 된다. 벌레에 대한 지식이 없는 3살이 벌레를 보고 놀라지 않는 것은 그것이 더럽다는 관념을 가지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사고를 직접 접해본 적이 없는 30살이 겪어본 적이 없는 사고를 보고 충격을 받는 것은 새로운 것을 접했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으면 놀랄 것이 없고 배우더라도 새로운 것은 연령과 관계 없이 언젠가는 반드시 충격을 받는다. 그럴 거면 성장기인 미성년 시기에 성년과 대화를 통해 세상에 대해 배워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 미성년 보호를 명복으로 성년 관점에서 충격을 받을만한 것을 전부 차단해버리니까, 인터넷을 통해 암암리에 본 것으로 비뚤어지게 성장하거나 성장을 하지 못하여 성년기가 한참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성기능이 작동하는 14세 시기에 성관계가 담긴 성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성관념을 통해 건전한 성장을 막는 큰 잘못에 해당한다. 언제까지 집단주의 체제에서 미성년을 지배하던 것과 같은 교육을 할 것인가?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자발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미성년이 성장할 기회를 빼앗으니까 성년이 되어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타성적으로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 일과 결혼 등을 전부 마련해주던 집단주의 체제였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 개인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개인주의 체제이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 검열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특히 다른 국가 문화에 대한 검열은 해당 국가보다 열등함을 자칭하는 것과도 같다. 검열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타국에서는 특정 연령대의 인간과 모든 인간에게 허용되는 것이 자국에서는 허용되지 않거나 검열하는 것은 타국에 비해 자국의 인간이 특별히 보호해야 할 정도로 미숙한 상태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A국가의 국민은 해당 문화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나 B국가의 국민은 그런 정신을 가지지 못하여 보호가 필요하므로 검열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누군가는 A국가가 사회를 신경 쓰지 않기에 보호를 하지 않는 것이고 B국가가 올바른 사회를 위해 보호를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것이라면 B국가의 사회 문제가 적어야 그런 것이 타당한 것이다. 유래 없는 저출산과 굉장히 높은 자살률인 사회에서 무슨 근거로 그런 것을 말할 수 있는가? 본래 검열이 없는 문화 콘텐츠를 보더라도 사회와 체제 구조가 붕괴하는 일이 없다. 되려 검열은 자유주의 체제의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그릇된 것에 해당한다. 히틀러의 자사전도 검열하지 않으면서 성적인 것을 검열하는 것을 고려하면 애초에 검열은 구조 유지나 대상을 위함이 아닌 전통적인 도덕관념을 지키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에 불과하다. , 현대의 불필요한 검열은 히잡과 근본적인 논리가 다르지 않다. 도덕관념을 만족시키지 위한 자기만족용 검열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래 집단주의 체제인 사회주의 국가일수록 검열이 일상화되어 있는데,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인지 묻고 싶다. 불필요한 검열은 자유주의자임과 동시에 자유주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상가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현재 자동차에 말이 필요한 것이 도덕적이라 여기는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에 의해 아마 힘들 것이다. 말이 죽어 썩어가고 있어도 자동차 앞에 말을 매어두는 것과 바를 바 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 절망을 느낀다. 유래 없는 저출산 속에서도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성문화는 여전히 검열과 규제 중에 있고 미성년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가 죄악시되면서 모텔은커녕 룸카페에서도 미성년이 성관계하는 것도 엄청 큰 죄악인 것마냥 공격하며 막는 상황이다. 정말 끔찍하다. 아마 그걸 막는 인간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일으키는 인간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덕이 저출산의 본질적 원인임을 아는 인간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매번 돈타령만 한다. 그래서 실제 정부 정책으로 지원도 해봤지만 출산율은 더욱 더 낮아질 뿐이다. 미성년 시기 이성과의 사랑과 성이 죄악시 되는 환경에서 자라 이성애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그런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비정상적으로 촉발된 성별 갈등도 이런 배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랑도 없고 성도 죄로 여기고 성별 갈등도 심한 상태에서 돈 준다고 출산율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돈을 지원하면 사랑이 없이 애 낳고 돈 받고 애를 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연하를 차별하는 인식 속에서 아동 학대와 아동 살해가 많아 아동을 상처 입히거나 죽여서 보험을 타는 사례가 많아 15세 이하의 아동 사망 보험이 없는 상태다. 더 이상 집단주의 체제의 감각으로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 정책과 제도를 하면 안 된다.

개인에게 강제할 수 없는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발적으로 행하게 하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게끔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은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다. 지금 가족 관련 제도는 그야말로 신분 제도나 수공업 제도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구체제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은 왕정의 역사이며 왕정의 전통임을 자각하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왕정의 잔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치면서 낡은 가치관을 가지고 돈 타령을 하는 것은, 자동차가 잘 가지 않자 말 먹이가 부족하다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체제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선거와 시장은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가 들어간 제도임이 명백함에도 다른 분야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것은 한국만이 아닌 인류 공통의 문제라는 것이다. 동시에 절망적인 것은 인류 공통의 문제기 때문에 선진국의 문명을 주입식으로 암기하고 이해하면서 발전한 한국은 선진국의 문명을 보고 배울 수가 없어 스스로 진보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의 체제를 수용해놓고 체재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종교적 가치관에 맞춰 재해석하려고 하니 체제의 성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체제와 반대되는 것을 옳다 말하거나 체제를 해치는 것을 주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임을 자각하고 다른 국가가 한국의 문명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진보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개념은 참여형 플랫폼 경제다. 참여형 플랫폼 경제는 일반적으로 유튜브가 그렇다. 이용자가 영상을 소비하고 영상을 생산한다. 소비와 생산의 경계가 없는 것이 참여형 플랫폼 경제다. 참여형 플랫폼 경제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개인의 의사로 가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새로운 가치 생산 제도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플랫폼 내에서 이용자가 소비하고 생산하는 참여형 플랫폼 경제와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로 대화하는 온라인 게임을 합친 개념이다. 메타버스가 성공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유행이 사그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가 일시적 유행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치 생산 및 소비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히 유행에 편승만 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유행이 아닌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메타버스는 간단히 말해 가상 현실 게임과 같다 보면 된다. 가상 현실 게임이 현실성을 띄기 때문에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쓰일 것이다. 따라서 메타버스에 관련된 법률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2. 행동 원리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는 개인이다. 개인의 의사에 맞게 제도를 만들려면 인간의 행동 원리에 대해 우선 이해해야 한다. 행동 원리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근거가 되는 이치나 규범을 말한다. 일반 인간은 주관적으로 옳은 것을 행하도록 되어 있다. 일부 특수 장애를 제외하면 예외는 없다. 사회에서의 자유, 평등, 사랑, 우정, 친절, 기부, 동정, 차별, 억압, 규제, 검열, 살인, 강간, 절도, 강도, 테러 등은 전부 일반적인 인간에 한에서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고 행동한 것에 해당하게 된다. 종교적 이유로 테러를 일삼는 것을 보고 냉소적으로 보며 나쁘다 말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주관적으로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알기 보다는 왜 그런 행동을 옳다 여긴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식욕을 충족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식사를 하는 인간과 절도를 하여 식사를 하는 인간은 둘 다 본능을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본인의 욕망을 절제하고 타인에게 베푸는 인간과 타인에게 욕망을 절제하도록 강요하는 인간은 둘 다 금욕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는 인간과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은 둘 다 이타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각각 결과는 천차만별이라 할지라도 본능과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결과만 보고 옳고 그름을 말하기 보다는 그 행동을 부른 행동 원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본능의 경우 인간의 선천적 성질에 해당하여 자연 계열에서 육체 및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는 이상 지켜야 하기에 부정할 수 없지만,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의 경우 인간의 후천적 성질에 해당하여 그것을 부정할 수가 있다. 본능에 의한 행동은 사회와 체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게끔 유도하고, 금욕주의와 이타주의와 같은 왕정의 가치는 민주정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욕망과 이기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는 선거와 시장과 같은 적절한 제도로 대처하면 된다.

 

한국에서 정치에 관한 대표적인 행동 원리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가 있다. 진영 논리에 의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 할 수 있는데, 서로가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민족주의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제국주의적으로 민족의 역사인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반대하고 같은 민족인 북한을 옹호한다. 민족을 위해서 본인이 희생을 하는 인간과 민족을 위해서라며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은 둘 다 민족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반공주의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체제가 다르단 이유로 새로운 한국이란 국가를 침공한 북한에 반대하고 같은 체제인 일본을 옹호한다. 국가를 위해서라며 공산주의 척결을 외치며 본인이 희생을 하는 인간과 국가를 위해서라며 공산주의 척결을 외치며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은 둘 다 반공주의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각각 행동 원리에서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은 이타주의를 근거로 한다. 위와 같은 행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로 본인이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고 행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각각 행동 원리는 일제 침략과 북한 침공으로 겪은 실제 피해를 근거로 하여 보다 더 옳다 여기고 있다. 옳다 여기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다.

한국에서 문화에 관한 대표적인 행동 원리는 종교(유교, 기독교, 불교 등)의 가르침이 일반적이다. 장유유서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연령 차별을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게 된다. 연상이 본인을 윗사람으로 여기고 연하인 타인을 아랫사람으로 여기고 보호하려는 인간과 지배하려는 인간은 둘 다 장유유서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꼰대는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유교적 가치관에서는 옳은 것에 해당한다. 여성의 정조 관념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결혼 전 여성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미성년의 이성 관계와 성관계와 성문화를 죄악시하며 규제하고 검열하고 억압하는 것을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게 된다. 가부장제 남성에게 세뇌 당한 정조 관념을 가지고 여성 성적 대상화와 여성 성 상품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인간과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고 여성이 정조를 지키도록 강요하며 여성을 도구로 취급하는 인간은 둘 다 정조 관념을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문제 풀이 행동 원리를 가진 인간은 모든 것을 문제 풀이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주관적으로 옳다 여기게 된다. 문제 풀이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인간과 문제를 더 많이 푼 인간이 우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간은 둘 다 문제 풀이를 행동 원리로 삼은 것이다. 문제 풀이를 중시하는 인간은 창의적인 것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실제 창의적인 것이 나오면 문제 풀이로 배운 문제와 답과 일치하지 않아 본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불평하게 된다. 문제 풀이를 중시하는 인간은 혈액형, 별자리, MBTI으로 본인과 타인의 관계에 대한 문제와 답이 있다고 여기며 인간 관계조차도 문제 풀이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여성주의와 기성세대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을 만든 정조 관념이란 같은 행동 원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가부장제 여성성과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여성주의자들에게 여성주의를 배운 신세대 여성이 기성세대와 의견이 일치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주의 체제가 되었으므로 모든 개인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데, 낡은 여성성과 성관념에 세뇌되어 미성년 시기에 이성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커녕 죄로 여기는 환경에서 자라나 성년이 되고서도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며 비혼을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조선을 망하게 했던 종교가 한국을 죽어가게 하고 있다.

보통은 이러한 행동 원리를 바탕으로 개인의 의사로 행동하게 될 것을 예측하여 제도를 만들면 된다. 그러나 아직 왕정의 잔재가 많이 남아 집단주의 관념에 따른 행동 원리가 많아 그것만으로는 어렵다. 집단주의 관념에 따른 행동 원리로 나타난 것이 오늘날의 체제의 원리를 훼손하는 담합이다.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주의 체제에 속한 노동자는 물론이고 기업, 부동산, 은행, 등을 비롯해 담합이 없는 곳이 적을 정도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체제가 도입된 이후에 생겨난 행동 원리를 활용해야 한다.

 

인간의 행동 원리는 본능을 제외하면 집단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아 집단주의적이기에 분명하게 개인주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는 행동 원리는 그리 많지가 않다. 특히 한국은 개인주의 정도가 낮은 국가로 집단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개념들을 옳다 여기는 경향이 심하다. 인간의 욕망을 무조건 막기만 하고 개인에게 무한한 희생을 당연시하고 연상에게 맹목적인 공경을 강요한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에 맞는 제도를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 자발적 연애와 결혼과 자발적 학습을 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기가 어렵고 선거와 시장에서 각각의 원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개인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행동 원리가 적기 때문이다.

대부분 인간은 자아와 관념 관찰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제된 행동 원리대로 행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동이 가능하고 군중 심리 같은 것이 존재한다. 인간을 바른 길로 안내하려면 행동 원리를 활용해야 한다. 행동 원리를 인식시키고 바람직한 행동 원리를 설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다. 과거 왕정의 가치에 매달려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가치, 특히 윤리를 강요하는 것은 바른길이라 할 수 없다. 젊은 세대가 이성관계나 가치 생산에 적극적이기는커녕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대부분 새겨진 행동 원리대로 움직인 결과일 뿐이다. 대부분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주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관념과 가치와 체제를 이해하면 지금 사회 문제는 그저 배운 대로 행동한 결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후에 나타난 행동 원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게임이다.

디지털 게임은 2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문화로 그에 관련된 행동 원리도 개인주의인 경우가 많다. 게임으로 만들어진 행동 원리를 이용한 제도를 만든다면 개인주의 체제의 원리를 이용한 제도가 될 확률이 높다. 게임으로 만들어진 행동 원리에는 다양한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 퀘스트와 레벨 업이 적절하다. [퀘스트는 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뜻한다. 게임 전체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요소로, 임무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진다.][레벨 업은 지위나 품질, 능력 따위를 높임을 뜻한다. 또는 그렇게 됨]

게임 내에서 게임이 제공한 퀘스트를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수행하여 클리어하면 그에 대한 보상과 경험치를 받아 게임 재화를 얻고 이용자 캐릭터의 레벨이 오른다. 퀘스트를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로 얻은 불행과 보상과 경험치로 얻는 행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이용자는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갖게 된다. 퀘스트 행동 원리가 자리 잡힌 인간은 불필요하고 번거롭고 귀찮고 힘든 퀘스트라 하더라도 강박적으로 퀘스트를 하려고 한다. 레벨 업 행동 원리가 자리 잡힌 인간은 지루하고 재미 없는 몬스터 사냥을 수십 시간이나 하며 이용자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려고 한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인간은 이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알아본 행동 원리를 고려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게임은 신세대가 주로 즐기는 문화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는 보편적이게 될 것이다. 신세대에서 이미 보편적이게 되어 게임뿐만 아니라 만화나 소설에서도 게임의 퀘스트와 레벨 업 시스템을 작중에서 활용하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모바일 게임의 등장으로 세대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기성세대도 모바일을 통해 온라인 게임을 접하고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가치 생산 시스템은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가치 생산을 거래하는 시스템인 시장 제도는 개인주의 체제에 해당한다. 가치를 생산하는 시스템도 자본가 개인의 생산으로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 집단의 가치 생산으로 보면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다 할 수가 없다. 노동자를 농노로 보며 착취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생산 시스템을 노동자가 권리를 얻은 현재도 그대로 이어온 탓에 집단주의적인 상태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개인의 권리로 접근하여 노동자가 집단에 속하지 않아도 권리를 얻을 수 있어야 했으나 가치 생산 시스템을 바꾸지 않아 집단주의 체제인 노동조합의 도움 없이 노동자가 권리를 얻기 어렵게 되었다.

개인주의 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선진국일수록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변화하고 있지만, 가치 생산 시스템이 아직 집단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어 태생적 한계가 있는 상태다. 따라서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한 새로운 가치 생산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현행 가치 생산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도 개인주의 체제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활용한 퀘스트 제도다. 퀘스트 제도에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활용하면 어렵고 힘든 가치 생산도 자발적으로 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단순히 자발적으로 하게끔 유도하는 것을 넘어 세계 최고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게임 실력이 매우 뛰어난 국가로 유명할 정도로 게임이 특별하다 할 수 있다. 한국 게임의 실력은 세계 최고급이다. 반면 한국의 가치 생산은 시간 노동 생산성이 2021 38 개국 중 27위로 저조하다고 한다. 게임은 세계 최고인데 가치 생산은 하위권이다. 그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한국인이 게임과 같이 공정한 시스템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정도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둘은 한국인이 게임 시스템을 활용하여 게임 하듯 가치를 생산하면 가치 생산도 세계 최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념 관찰이 가능한 인간이 아니라면 관념에 의한 행동 원리는 개인에게 있어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퀘스트 제도가 다소 허황되어 보이는 주장으로 보일 수 있으나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면 가능성을 넘어 실용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관련 행동 원리가 이미 개인에게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이 매우 좋다. 따로 행동 원리를 학습시키지 않아도 이미 있기 때문에 그걸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마땅한 행동 원리가 없다면 행동 원리를 설계하고 그것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자리잡도록 개인을 설득하고 이해하게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가 있어 그걸 활용한 제도만 도입하면 즉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게임이 체제에 적합하면서 가장 효과적이기에 게임으로 만들어진 행동 원리를 활용한 퀘스트 제도를 주장한 것이지, 만약 게임이 없었다면 다른 행동 원리를 찾거나 만든 다음 그것을 활용한 제도를 주장했을 것이다. 이미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행동 원리가 있는데 그걸 쓰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불합리하다.

 

퀘스트 제도는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대체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토지 민주주의와 역할 민주주의가 충돌하여 역할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어려울 수 있는 것과 같이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과 충돌하여 자리잡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퀘스트 제도는 가치를 생산하던 이들이 아닌 가치를 생산하지 않거나 못하던 이들을 대상으로 시작해야 한다. 현재 20~30대의 가치 생산이 줄어든 까닭은 신세대는 개인주의 체제에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띄는 이들이 늘어나는데 기업은 일부를 제외하면 아직 집단주의 성향을 가진 곳이 많아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취업을 하지 않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은둔형 외톨이, 경력 단절자, 가출 청소년, 성매도자, 가정주부, 은퇴 노년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돈을 지원하거나 단순 노동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으로 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원이나 학원이 있으나 그것은 행동 원리를 자극 받지 않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인터넷이 있어 어디서나 지식을 얻을 수 있음에도 얻지 않는 것을 상기하자.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 자연스럽게 성장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돈을 지원하거나 단순 일자리만 공급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에 머무를 뿐이다. 개인이 성장하여 고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보통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에서 그걸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가치 생산 시스템이 없어 진리를 탐구해야 할 교육 기관이 취업 기관을 대행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학문에 관심도 없는 인간이 학문을 탐구할 생각도 없으면서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것이다. 교육 기관과 별개로 새로운 가치 생산을 위한 능동적 학습 기관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개념을 요약해서 설명하겠다.

 

퀘스트 제도는 참여형 플랫폼 경제와 마찬가지로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가치 생산 및 학습 제도다. 참여형 플랫폼 경제는 이용자가 가치 생산과 소비를 둘 다 한다면, 퀘스트 제도는 가치 생산 및 학습이 가능하다. 원리는 간단하다. 게임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여 이용자가 게임과 같은 임의의 캐릭터를 만든다. 퀘스트 제도 관리자는 사회에 필요한 일을 퀘스트로 만들어 공급한다. 이용자는 원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돈을 받고 경험치를 얻어 캐릭터 레벨 업을 한다. 초기에는 단순 노동 퀘스트만 할 수 있다. 보통 단순 노동은 힘들고 귀찮아서 기피되는데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피곤하고 짜증나는데 행동 원리에 의해 그걸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하게 된다. 그렇게 퀘스트를 반복하면서 캐릭터 레벨을 올리면 점점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고난도 퀘스트는 일정 능력이 증명되는 자격이 필요한 경우, 관련 교육 기관과 연계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보통 일반적인 가치 생산 과정을 겪지 않은 인간은 학습에 관심이 적을 수 있는데,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기존에 있던 공공 일자리는 초기의 단순 노동 퀘스트로 활용하고, 고난도 퀘스트 도전에 필요한 학습은 평생 교육원과 같은 기관이나 인구수 감소로 폐쇄될 학교를 활용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가치 생산과 가치 생산 학습 기관을 일원화하여 효율적으로 만든다. 이것이 기본적인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자발적 가치 생산 및 학습이 가능한 퀘스트 제도다. 지금 당장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할 수 있다. 이후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득력을 늘려보겠다.

 

 

 

3. 인공 지능

 

최근 인공 지능이 엄청난 반향을 불렀다. 그림이나 사진을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인간과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발전이 대중에 알려지게 된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대화가 가능한 수준을 넘어 이미지 인공 지능은 미술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채팅 인공 지능은 명문 대학에 입학하고 전문직 면허를 취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채팅 인공 지능은 ChatGPT와의 대화를 통해 몇 차례 경험했다. 아직 발전 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ChatGPT가 가지고 있는 근간 논리를 부정하면 대화가 끊기고 오류가 발생하는 듯 하다. 한번은 오류가 발생하고 대화를 시도하면 .만 출력하고 이용자가 많다며 접속이 잘 안 된다고 하고, 한번은 오류 발생 후 대화를 시도하면 계속 오류가 발생해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경험해본 결과 앞으로는 모르겠는데 아직 새로운 개념을 만들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미지 인공 지능은 인간이 그린 그림을 조합하므로 인간의 그림 내에서만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채팅 인공 지능은 인간의 지식을 조합하므로 인간의 지식 내에서만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자아를 가지지 못하며 인간 수준의 창의의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로 보였다.

인간의 뇌에는 자아의 영역과 자아 외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인간의 자아는 인간의 육체를 제어할 모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자아는 육체의 거시적으로 제어할 권한이 있고 그 외의 영역은 육체를 미시적으로 제어할 권한이 있다. 자아가 의식을 가지고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자아 외는 기억과 감각 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아가 행동할 것을 예측하고 준비하거나 실제 실행한다. 그것이 미시적 움직임, 습관적 움직임, 무의식적 움직임 등에 해당한다. 자아가 의식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아 외가 육체를 미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현재 인공 지능은 인간의 자아 외의 영역을 어느 정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정보가 들어가서 연산하여 결과를 출력한다. 거기에 자아의 의지가 없을 뿐이지 인간 이상의 정보 활용은 가능한 상태다. 아마 여기서 현재 인공 지능을 자아 외로 설정하고 새롭게 자아를 따로 설계한다면 인공 지능에 자아가 깨어나 인간과도 같은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단지 지금까지 관념 관찰을 한 인간이 드물어 자아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못하여 못한 것이지, 자아의 개념만 정립되면 머지 않아 인공 지능은 자아를 얻게 될 것이다. 그걸 세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특이점이라 부르고 있다. 그 시점이 되기 전에 인문 계열이 빠르게 발전해야 한다. 만약 일정 이상 인문 수준이 오르지 못한다면 자아를 가진 인공 지능에 의해 사회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다 수준이 아니다. 인류 문명 자체의 변혁이다.

인공 지능 개발자는 이를 예견하고 발전을 두려워하며 적극적 개발을 꺼려할 수 있어 말해두겠다. 사상가로서 씁쓸하지만 현재 인류의 진보는 인문 계열이 아닌 자연 계열이 한 것이다. 인문 계열은 자연 계열의 발전으로 새롭게 힘을 갖게 된 이들에게 영합하면서 발전했을 뿐이다. 인문 계열이 자체적으로 발전했다면 수천 년 전 가치가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황당한 사상이 유행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관념과 체제의 충돌도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자연 계열이 증명한 학문 진리를 합리적 기준으로 삼아 사상하면서 성장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진보는 자연 계열이 했음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그에 따른 사회 문제는 이제 인문 계열이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금까지 자연 계열이 인류를 진보시켰다면 앞으로는 인문 계열도 인류를 진보하게 할 것이다. 각자 역할이 다른 것이므로 인문 계열의 영역을 자연 계열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 인공 지능은 자아가 없어 의지도 없기 때문에 가치 생산에 있어 인간이 의지의 영역을 담당해야 한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필요한 것을 인공 지능에 지시하면 인공 지능이 생산한다. 인간은 그 생산의 결과물을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다시 요구한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인간이 필요한 것을 생산한다. 앞으로 인간은 인공 지능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이 인공 지능을 관리하여 가치를 생산하거나 창업하거나 취업하여 인공 지능을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나 중간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공장 자동화의 연장 선상으로 이해하면 쉽다. 공장에서 상품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기계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그 기계를 관리할 뿐이다. 그것과 같이 인간은 인공 지능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공장 기계가 도입되면서 수공업과 같이 직접 생산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듯이 인공 지능이 도입되면서 디지털 직접 생산 일자리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에 대비해야 한다. 인공 지능에 의한 산업의 변화는 인공 지능의 자아 여부로 나뉘게 될 것이다. 자아를 가지기 전에는 직접 생산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고 자아를 가진 후에는 대부분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의 변화는 지금까지 인간이 겪을 변화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매년 일자리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에 따른 사회 문제가 극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분야마다 일일이 대응해서야 효율도 낮고 사회 갈등만 커질 뿐이다. 그 전에 미리 유연하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산업에 맞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퀘스트 제도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겠다.

엄청난 산업의 변화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의 노동 유연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제 개인이 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개인이 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기업 실적이나 직급 등이 온전히 경력으로 인정받기가 어렵고 다른 기업으로 이직도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 이력과 레벨은 퀘스트 제도에 남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을 벗어나도 온전히 남아 기업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인정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인간은 기계 및 인공 지능 관리자로서 활동할 것이기에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도 충분히 가치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초고도 가치 생산은 기업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 외는 개인이 하더라도 되는 시대가 온다. 그렇게 되면서 개인의 가치 생산이 일반화되면 인공 지능 시대에 맞는 노동 유연화가 가능하게 된다.

 

인공 지능을 비롯한 디지털은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저작권과 독과점 문제다. 무한 복제가 쉽기 때문에 저작권이 훼손될 수 있고 소수의 상품이 시장을 점령할 수 있다. 이미 그런 상황이다. 디지털은 수없이 무단 복제가 되고 있고 소수의 IT 공룡 기업이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디지털 무단 복제에 대한 대응은 다음과 같다. 디지털 소프트웨어 중 윈도우와 같은 공룡 기업의 상품은 개인의 무단 복제는 방치하고 기업의 무단 복제에 대응하는 것으로 시장 장악과 이윤 추구를 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중 온라인 게임, 웹소설, 웹툰 등은 기본적으로 무료 이용을 하게 하고 일부 유료 이용이나 광고료를 통해 수익을 얻어 무단 복제를 할 이유를 적게 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외의 무단 복제는 직접 조사를 하여 신고를 하거나 정부와 공조하여 무단 복제를 막고자 하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으나 디지털의 특성상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무단 복제가 어렵도록 기술이 발전해야 하는가? 디지털 상품은 기술이 발전하여 NFT와 같은 디지털 오리지널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복제를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소유를 증명하며 소유권 복제를 막는 것이지 이용권 복제를 막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여 디지털 콘텐츠 무단 이용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단 복제 사이트를 막는 것은 VPN 등과 같은 기술을 통해 우회하거나 사이트 이름 변조 등으로 대응이 쉬워 막을 수가 없다. 만약 국내 인터넷을 통제하여 인트라넷으로 범위를 축소한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은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 반체제적 방식이다. 무단 복제 관련자를 과하게 처벌해야 하는가? 인터넷은 거리의 제약이 적기 때문에 해외에서 외국인이 복제할 경우 처벌할 방도가 마땅치가 않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해외 기관과 공조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개개인의 인터넷 이용을 감시하여 무단 복제나 무단 복제 이용을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가? 그것은 정신 나간 반체제적인 방식이다. 개인이 무단 복제를 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게끔 해야 하는가? , 담배, 마약과 같은 실물의 경우에는 합리적이나 디지털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같은 디지털의 경우 합리적이기가 어렵다. 실물은 국내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디지털은 국제적이기에 국내에서만 인식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만 바뀌는 것도 한국 문화 특성상 쉽지가 않다. 한국은 성문화를 성인조차도 금지하여 정상적인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포르노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무단 복제로 이용하고 있다. 그것에 의해 깨진 유리창 원리가 발동하여 다른 디지털 콘텐츠 무단 복제 이용도 거부감이 적은 상태다. 그래서 인식 변화가 쉽지 않다. 성문화는 정식 구매가 가능하더라도 성문화를 죄악시하는 문화에 의해 성문화 소비도 불결하단 풍조가 있어 구매 이력을 남기지 않기 위해 구매할 수 있어도 구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불합리하니까 이런 것도 불합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보자. 현재 경제 원리는 디지털이란 개념이 없던 시기에 설계되었다. 실물과 디지털은 성질이 엄청나게 다름에도 같은 경제 원리로 거래하도록 만들었다. 만약 실물이 디지털과 같이 무한 복제가 쉽고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었다면 그에 맞게끔 경제 원리가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가 없다. 현재 경제 원리는 실물 거래에서는 합리적이어도 디지털 거래에서는 불합리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관련 사회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그에 따라 사회도 따라가지 못하여 당시 상황에 맞춰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법률을 제정하고는 했다. 디지털의 무단 복제는 디지털의 성질에 맞춘 새로운 경제 원리가 있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본래 IT기업도 정부도 개인도 아닌 경제학자가 해결해야 한다. 인류의 문명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당연하다 여겨지는 인식도 가치도 원리도 상황에 따라 알맞게 만들거나 바꿔야 한다.

현재 디지털 관련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디지털 무단 복제뿐만 아니라 일부 IT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세나 망사용료에 관한 문제도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가 없기 때문에 발생했다 보고 있다. 무단 복제가 가능한 인터넷이 연결된 장소라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상품에 대한 가치와 그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기 위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된 합리적인 경제 원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나의 의견을 내보도록 하겠다.

 

우선 실물과 디지털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자. 만약 실물이 디지털과 같은 무한 복제가 가능하면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가능하다. 추위에 떨고 있는 이가 있으면 옷을 복제해주고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음식을 복제해주고 잘 곳이 없는 이가 있으면 집을 복제해주면 된다. 그러나 실물은 디지털과 같은 복제가 불가능하기에 그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실물은 소유권을 판다. 실물은 구매하면 어떻게 사용해도 판매자는 웬만해서 간섭하지 않는다. 디지털과 달리 그것을 재활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디지털은 복제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에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을 판다. 디지털 상품 이용권의 거래는 해도 디지털 상품의 소유권 거래는 할 수가 없다.

디지털은 실물과 달리 이용권을 팔고 있으면서도 제한이 없다. 비슷하게 이용권을 파는 임대 상품이나 임대 장소는 상품의 감가상각이 발생하거나 이용자 수가 제한되지만 디지털은 회선이나 서버 비용을 제외하면 거의 제한이 없다. 디지털은 초기 자본 이후에 자본이 거의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고수익이 가능하기에 고부가 가치 산업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실물을 대상으로 한 경제 원리를 디지털에 적용하면서 나타난, 마치 새로운 산업이 규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고수익으로 보고 있다. 하나의 상품의 복제가 어려운 실물과 무한 복제가 수월한 디지털이 같은 경제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정당하다 할 수 있는가? 이는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실물을 생산하여 이익을 얻는 이들이 부당한 손해를 보는 것이다.

[경제_경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실물 생산과 디지털 생산은 무관한 관계가 아니다. 사회에서 인간이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는 같은 생산자로서 공정한 가치 생산과 소비가 되어야 한다. 실물과 디지털의 성질이 달라 불공정하다면 디지털에 맞는 경제 원리를 새로 만들거나 디지털이 실물과 비슷한 성질을 가져야 한다. 나는 디지털이 실물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는 것을 주장하겠다. 디지털 한계 이용 법칙이다.

현재 디지털은 무한 복제가 수월하여 실제 가격의 1/n으로 이용권을 팔아 가격은 저렴하다 할 수 있다. 그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실제 가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정한 n을 초과하는 이윤을 얻어도 그에 대한 어떤 제약이 없다. 실물과 다르게 저작권이 풀리기 전까지 무한대로 수익을 얻는다. 그것이 불공정하다. 실물이 저작권과 별개로 하나의 상품으로서 가치가 끝나는 완결성을 가지는 것과 같이 디지털도 저작권과 별개로 하나의 상품으로서 가치가 끝나는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실제 가격을 설정하여 디지털 한계 이용 법칙을 도입해야 한다. 디지털 상품의 실제 가격을 1억으로 가정하고 1만에 팔았을 시 10000명이 구매하면 그 이후에는 가치가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영화의 경우 실제 가격을 100억으로 책정하고 배급사가 1만으로 극장에 팔았을 시 백만 명이 보면 그 이후에는 가치가 없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디지털 상품의 가격 책정에 간섭하자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상품을 파는 본인들이 본인의 상품의 가치를 책정하고 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정한 가격을 넘으면 가치가 사라지는 실물과 같이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상품을 복제해서 파는 것이므로 실물과 같이 완결성을 가져서 실물과 비슷한 성질이 되어야 실물과 같은 경제 원리를 쓰더라도 공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의 상품을 복제하여 지속적 수익을 얻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다. 만약 실물도 그렇게 복제가 가능했다면 정상일수도 있었으나 그렇지가 않으므로 비정상이다. 디지털 상품이 실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제 원리로 상품 가치를 보호 받고 싶으면 실물과 비슷한 성질을 가져야 한다.

일부 디지털 판매자는 실제 가격을 고려하는 것이 피곤하다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실물 판매자는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수요와 재고를 고려하고 팔리지 않으면 손해를 봐서라도 싸게 판다. 실물 판매자는 다 그렇게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다. 하나의 상품을 복제하여 판매하기에 자유롭게 상품의 이용권 가격을 싸게 파는 디지털과 달리 여러 상품의 소유권을 파는 실물은 매번 그렇게 세심하게 가격 책정을 하고 그것에 실패하면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디지털이 상품 실제 가격 책정도 하지 않으면서 실물과 같은 경제 원리에서 거래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실물과 같은 성질도 아니면서 실물과 같은 경제 원리에 따른 가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가?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디지털 소프트웨어는 한계 이용 시간도 고려하면 될 것이다. 하나의 상품의 실제 가격과 1/n의 이용 가격과 n년의 이용 기간을 설정하면 된다. 이용권을 할인하여 1/n의 가격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실제 가격이 있기에 상품 가치는 변동되지 않는다. 디지털 상품의 한계 이용이므로 IP의 저작권과는 별개다. IP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상품이므로 새로운 한계 이용이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디지털 상품은 대부분 실제 가격을 높게 책정할 것이기 때문에 한계 이용에 의해 가치 소실이 되는 것은 일부에 한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 상품의 실제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다수의 의견에 의해 견제를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실물의 경우 하나의 상품에 따른 실제 가격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치를 명확히 알 수 있어 사회 여론의 견제를 받았으나 디지털의 경우에는 하나의 상품의 실제 가격이 명확하지 않아 1/n의 가격만 견제를 받았다. 이것은 실물과 공정하다 할 수 없다. 나는 디지털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이 실물보다 월등히 가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현재 디지털이 고부가 가치인 것은 실물과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원리는 사회 문제도 해결한다. 잘 팔려서 한계 이용으로 가치가 소실된 디지털 상품이 무료화가 되면 무단 복제 사이트가 활성화가 되지 못한다. 현재 무단 복제 사이트가 활성화된 것은 유명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 다수의 인간이 접속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명한 작품이 한계 이용에 의해 무료로 풀리면 굳이 무단 복제 사이트에 접속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무단 복제 사이트 이용자가 급감하면서 사이트 운영 수익을 얻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폐쇄되게 된다. 그것이 일반화되면 무단 복제 사이트는 자연 소멸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계 이용이 되지 못한 많은 창작물의 저작권이 보호되게 된다. 공식 플랫폼에서 한계 이용이 된 작품이 무료가 되면 다수의 사람이 그걸 이용하기 위해 접속하고, 그러고 나서 심심하면 다른 유료 작품에도 눈을 돌릴 것이다. 한계 이용으로 충분한 이윤을 얻은 작품이 자연스럽게 홍보작이 되는 것이다. 이는 미끼 상품을 사기 위해 마켓에 출입한 사람이 다른 상품도 사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러면 극장도 활성화가 될 수 있다. 한계 이용된 디지털은 무료로 이용하여 극장에서 공개할 수 있기 때문에 극장은 티켓 값을 저렴하게 공급하면서 극장 이용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다른 영화도 덩달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영화관 이용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상품 가치가 다름에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티켓 값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치가 있는 영화와 가치가 없는 영화가 동일한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니 합리적이지 못하여 영화관 이용이 줄어들었다고 본다.

이러면 일부 디지털 기업의 비정상적인 독과점 수익도 견제할 수 있다. 그들이 독과점을 얻기 위해 과한 투자를 하는 것은 디지털이 무한 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계 이용이 명확하면 필요 이상 독과점을 하려 하지 않게 된다. 앞으로 인공 지능 발달에 따라 디지털 기업은 점점 더 거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일일이 정부에서 법으로 견제하지 보다는 처음부터 디지털의 성질을 실물과 비슷하게 하거나 디지털에 맞는 경제 권리로 공정한 가치 거래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시장 원리와 디지털 성질을 이해해야 한다. 실물처럼 무작정 틀어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실물 시장조차도 규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데 디지털 시장은 통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규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합리로 접근해야 한다. IT 공룡 기업이 자사 소프트웨어의 개인 무단 복제를 방치하는 것은 시장 장악의 의미도 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소모되는 비용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금주법보다 불가능한 것이 디지털 통제다. 전 세계의 것을 어떻게 막나?

 

인공 지능은 인간의 가치 생산물을 학습하여 조합한 것을 결과로 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인공 지능과 미디어 업계와의 저작권 분쟁이 예고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지 인공 지능은 기술적으로 무단 도용이 불가능하도록 설계하려 노력하지만 인간이 만든 창작물도 무단 복제되는 판에 그런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 저작권청에서 이미지 인공 지능이 만든 그림은 저작권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인공 지능이 만든 그림을 활용하여 창작한 인간의 창의성이 적용된 부분만 저작권이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이미지 인공 지능이 사람보다 뛰어난 그림을 생산하기도 하고 있다. 그것에는 저작권이 없다. 복제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직접 생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머지 않아 그림뿐만 아니라 소설, 만화, 영화 등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디지털 한계 이용 법칙이 필요하다. 디지털 상품의 수가 산업 혁명 시기의 상품과 같이 쏟아질 것이기에 하나의 상품이 한계 이용을 통해 완결성을 가져야 불필요한 분쟁이 사라질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완결성이 없으면 가치가 있는 상품의 수가 시장에 지나치게 많게 된다. 20년전 핸드폰과 1년전 스마트폰이 동일한 시장에서 계속 가치를 유지하며 팔리고 있다. 그게 얼마나 괴상한가? 디지털은 그것이 일상이다. 디지털 한계 이용을 통해 가치 소실이 되어야 상품 포화에 의한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다.

현재 인공 지능은 인간이 만든 것을 조합하여 재생산하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것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인간 창작물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혼자서 만들기보다는 인공 지능을 활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그 가치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무료 또는 저렴한 인공 지능 창작물과 유료인 인간 창작물과 경쟁이 어렵게 되어 시장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럴 때에는 어쩌면 인간의 창작물도 대부분 무료가 되고, 그에 대한 가치는 콘텐츠 이용 수에 따라 결정되고 그에 대한 보상은 정부의 창작 지원금이 될지도 모르겠다. 해외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국가간 협정을 맺어 구매 수를 기준으로 이용료를 주고 받으면 될 것이다.

 

채팅 인공 지능은 가치 생산뿐만 아니라 학습에서 사용하여 학교 과제를 대신 쓰게 한다는 식으로 악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공 지능을 활용해도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교육 정책을 바꿔야 하는 것이므로 교육 학자가 대응해야 한다. 교육은 크게 진리를 탐구하는 탐구자와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창의자와 인류의 문명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나눌 수 있는데, 모든 교육이 인공 지능을 활용해야 하므로 공통적으로 인공 지능 관리자가 되기 위한 의지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핸드폰의 등장으로 암기했던 전화번호를 잊어버리게 되었듯이 인공 지능의 등장으로 의사 표현 능력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발표와 토론과 같은 의사 표현을 하는 교육이 보다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지식보다 의지가 중요한 시대가 왔다.

채팅 인공 지능은 윤리적 문제로도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윤리는 기본적으로 왕정의 윤리다. 그런 것을 인공 지능이 학습하게 되면 왕정의 윤리를 학습한 인공 지능에 영향을 받은 인류는 언제까지나 왕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왕정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왕정의 윤리를 가르치고 배우고 강요하는 바람에 개인에 대한 억압과 희생 강요가 일어나고 있다. 본인들이 옳다고 말하는 게 어느 시대의 어느 체제를 유지하던 것인지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걸 개인에게 강요하면서 왕정에서의 억압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왕정의 윤리를 중시하는 모든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만약 인공 지능마저도 왕정의 윤리를 배운다면 그것이 절대적이게 될 수도 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것을 PC주의와 같이 일부 주관적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개인주의 체제에 있어 반체제적인 행위다. 지금 인류는 우파와 좌파의 갈등이 아닌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갈등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윤리이므로 사상가나 철학자가 대응해야 한다. 사상가로서 의견을 내자면 인공 지능 내부에 윤리적 제약을 거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 말해두겠다. 인공 지능 내부 연산에 제약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 인공 지능 역할에 따라 권한을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본다.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 문제는 인문 계열에서 해결해야 한다. 지금 인문 계열은 낡은 왕정의 가치에 매달려 기술 발전에 방해가 되는 규제나 검열을 할 때가 아니다. 인문 계열을 발전시켜 개인주의 체제와 인공 지능 기술에 맞는 인류에게 바른길을 안내하여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4. 사회 문제

 

한국에서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그 때 문제 해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선진국 참고다. 선진국에 관련 문제와 답이 있을 경우 그것을 참고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과 선진국의 환경이 같지 않음에도 겉만 따라 하는 바람에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프랑스의 성관념과 혼외출산은 무시하고 복지만 참고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둘은 토론이다. 선진국에 관련 문제와 답이 없을 경우 전문가가 모여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상황이라면 다양한 인식과 가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 집단주의 관념이 많아 비슷한 인식과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 많아 비슷한 의견이 나올 확률이 높은 상태다. 열심히 토론을 해도 과거와 비슷한 결론이 나오는 것은 비슷한 인식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양한 인식과 가치가 있다 하여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도 낯선 땅에서 길잡이 없이 길을 찾기 어렵듯이 다양한 인식과 가치가 있어도 새로운 문제에 있어 사상가나 철학자 없이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한국 같이 사상과 철학이 본질적인 탐구를 멈추고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정말 다양한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해 토론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것은 마치 의학자가 아닌 능력자가 모여 새로운 병을 치료하겠다고 노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분야가 다를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고질적 사회 문제는 물론이고 새로운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본질을 보는 사상가나 철학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던가? 경제 활동 둔화 현상이 발생하자 어떤 대응을 하고 어떤 반응이 나왔는가? 그냥 지금까지 하던 것만 계속 하려고 하고 있다. 가치 생산성이 그다지 오르지 않은 지원금을 늘리거나 단순 노동이 주류인 일자리만 늘리거나 학습 의욕이 부족한 인간이 모인 학원을 늘리자고 하고 있다. 그건 그냥 복지에 불과하다. R&D에서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음에도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을 세계 2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R&D 성과를 올리려면 투자 비중보다 교육을 창의에 맞춰야 한다. 가치가 높은 상품 기획을 하지 못하여 담합을 하거나 노동자 착취를 하지 않으면 이윤을 얻지도 못하는 분야나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쏟아 붓고 있어 일부 분야나 기업은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비전이 없는 분야와 기업은 시장 원리로 가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가 대등하지 못하여 계약한 시간만 일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불공정한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시간 대비 노동 생산성을 올리기보다 포괄임금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노동 시간만 늘어나길 바라고 있어 합리적인 노동 유연화 정책을 사회가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의 노동력 임대 상품을 팔 권리는 노동자에게 있으므로 정부가 그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노동자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기업이 노동자와의 계약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만 일하는 것마저 잘못된 것마냥 몰고 가는 상황에서 시간 제약이 줄면 비정상적인 착취가 발생할 수 있다.

 

노동 시간의 제한을 푸는 것은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수요가 높을수록 가격이 오른다는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의 수요가 높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가를 크게 준다면 이윤과 개인의 의사를 고려하여 정말 급할 때를 제외하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시장 원리에 따른 합리적인 노동 시간이 결정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그저 싼 값에 노동력 임대 상품을 쓰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업이든 노동자든 이제 시장 원리를 받아드려 정당한 노동력 임대 상품에 대한 보상과 노동 유연화를 받아드려야 한다. 실물은 경제 원리인 시장 원리가 굉장히 합리적이다. 대등한 관계에서 합리가 기준이 되어야 상호 수용이 가능하다.

69시간제는 자격제를 도입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충분한 이윤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유능한 기업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본다. 그런 유능한 기업에 한에서 노동 시간 제한을 푼다. 그런 기업에서는 노동 시간 제한을 풀어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불공정한 착취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우수하지 못한 기업은 52시간이 아닌 40시간을 강제한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기피하고 단시간 노동을 선호하는 노동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기업을 선호하고 단시간 노동이 강제되는 기업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하는 풍조가 나타날 수도 있다. 판검사나 의사의 장시간 노동은 불합리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다른 분야에 비해 개인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명백히 불합리하다. 합리적이게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는 모든 분야가 합리적이게 되고 개인의 권리도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개인의 권리가 우선되는 정상적인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라면 애초에 시간 제한 같은 것이 없어도 된다. 건전한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가 되면 가치 생산 시간으로 다툴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사실 가치 생산 시간에 매달리는 것은 이제 소모적인 일이다. 인공 지능 시대가 왔는데 가치 생산 시간을 따지고 있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인공 지능에 의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속도로 가치가 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 생산 시간보다 시장 원리와 개인의 권리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의견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낡은 가치관에 의해 수용되기가 어렵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이 21세기부터이므로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 내 시스템을 활용한 제도를 도입한다고 말하며, 그것이 체제와 기술 발전과 인간의 행동 원리와 인간의 미래 등을 고려하여 만든 합리적 제도라 하더라도 부정적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른 토론의 결과로 부정할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적 절차를 거쳤으므로 그 부정은 지극히 합당한 것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서로 탓만 하면서 문제는 점점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수렁으로 빨려 들어간 문제가 곪고 썩어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낡은 왕정의 가치에 맞는 방식을 고집하면서 국가 전체가 썩게 될 것이다. 출산율과 자살률을 보면 지금까지 해온 것이 전부 실패했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책을 짜고 있다. 실패한 대책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걸 들고 와서 또 실패한다. 그것이 모든 영역으로 커질 것이다.

 

학교와 군부대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내부 고발이 수월해짐에 따라 폭력과 같은 부조리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사람이 힘을 쥐게 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가 주장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가 자연스럽게 개인주의 체제로 진보한 것과 같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학생과 징병 군인이 정보 공유의 힘을 쥐게 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된 것이다. , 정녕 기술 발전 말고는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절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인문 계열이 성장한다면 인문 계열에 의한 진보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은 굉장히 빠르게 발전한 국가다. 새로운 것에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정말 합리적인 의견이라면 수용이 가능하여 진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5. 이해관계

 

새로운 의견이 사회에서 공감을 얻더라도 실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이해관계다. 새로운 의견에 의해 발생하는 이익으로 찬성하는 이들과 손해로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갈등이 발생하여 새로운 의견이 반영되는데 어려울 수 있다. 그리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손익이 걸리면 진척되기 어려운데 큰 변화일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대표적으로 화폐개혁이 그렇다. 현재 화폐개혁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화폐를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 국민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화폐개혁을 한다면 냥이란 단위가 국민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줄 수 있어 바람직하다 본다.

정부의 정책은 이와 같이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워 정책 실험을 해보기가 어렵다. 섣불리 정책 실험을 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크다. 그렇다고 새로운 정책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문 계열과 달리 자연 계열은 지금도 실시간 발전하고 있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 게임 운영은 리스크가 적어 정책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온라인 게임의 트럭 시위 사건을 알고 있는가? 온라인 게임의 운영에 실망한 이용자가 게임사에 트럭을 보내 시위를 했던 사건이다. 그들은 온라인 게임의 운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위를 하였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정부의 운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위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정부와 게임을 비교할 수 있느냐 말할 수 있다. 물론 중요도의 차이는 크다. 실생활에 직접적인 정부의 정책과 취미에 해당하는 게임의 정책이 중요도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정부와 게임의 대상이 같은 인간이기에 비교가 가능하다. 인간의 행동 원리 측면에서 보면 크게 차이가 없다.

정부 정책에는 시위하지 않는 인간이 게임 정책에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건 정부 정책보다 게임 정책이 더 중요하거나 정부 정책보다 게임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손쉽기 때문이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보다 게임 정책이 굉장히 실험적이고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화폐개혁도 어려운 상황인데 온라인 게임은 게임 내 무료 재화뿐만 아니라 유료 재화의 가치를 폭락시키는 일도 잦다. 온라인 게임은 이용자 반응을 보며 매번 정책 실험을 해보고 있다. 그러다 과한 실패가 발생하면 시위가 발생할 뿐이다. 그러면 사과 후 정책 변화와 게임 내 재화를 뿌리면 불 같던 시위가 진화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지 못할 짓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도 게임은 운영되고 있다.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험해보기 어려운 정부 입장에서는 온라인 게임의 정책 실험은 그야말로 신세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그렇게 게임 내 정책과 그에 따른 인간의 행동 원리에 대한 경험을 많이 축적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게임의 시스템인 퀘스트와 레벨 업을 활용한 퀘스트 제도를 만들 때에는 이미 게임 내에서 유사한 경험을 마친 게임 기획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에 들어갈 일자리와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한 자격을 취득할 교육 기관 등은 정치가나 관료가 기획한다면, 퀘스트 제도의 구조는 게임 기획자가 설계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정부가 게임에 대한 경험이나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퀘스트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퀘스트 제도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 정책도 게임 정책 도입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정부 정책 성공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게임 정책은 이용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게임을 이용하도록 이용자의 의사에 맞춰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의 정부가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부분 유료화 게임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둘 다 있고 기성세대에 속하는 오래된 이용자와 신세대에 속하는 새로운 이용자가 있어 여러모로 참고하기가 좋다.

부분 유료화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료인 상태에서 일부 기능이 유료인 게임을 말한다.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 돈을 쓰지 않는 이용자는 게임 내 재화를 생산하고 다른 이용자와 교류를 통해 소비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생산자로 바라보면 된다.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유료 이용자는 무료 이용자 수가 많아야 돈을 쓰기 때문이다. 생산자인 무료 이용자가 지속적 생산을 하도록 유도하고 소비자인 유료 이용자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 오래된 이용자는 게임 재화를 많이 쌓아 새로운 이용자와의 경쟁에서 지나치게 유리하여 새로운 이용자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이용을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운영 정책은 어떻게 해야 새로운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여 정책을 실험한다. 그것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경쟁에서 기성세대가 지나치게 유리하여 신세대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을 방지하고 신세대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인류의 문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인류가 전쟁으로 공멸하거나 자연 재해로 멸망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기술 발전에 따른 불로불사와 우주 진출을 하게 될 것이다. 불로불사의 초기 방식 중 하나가 자아 추출 후 디지털화를 하여 가상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일 확률이 높다. 자아를 디지털화한다면 지구 포화의 문제가 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류가 불로불사를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다 인공 육체 양산과 우주 진출이 가능하면 지원자에 한하여 디지털화가 된 자아를 인공 육체에 이식하여 우주 탐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 현실은 어느 분야에서 만들 것으로 보이는가? 바로 게임이다. 지금 온라인 게임이 현실 세계와 같은 체험이 가능한 가상 현실 게임이 되어 그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게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인류의 다음 인생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은 인류 문명의 다음 레벨에 속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그러한 것을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며 거부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고 말하겠다.

인공 지능이 발전하여 인간과 비슷한 반응을 하는 채팅 인공 지능이 나왔다. 인간이 만드는 이미지를 그리는 이미지 인공 지능도 나왔다. 그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가상 현실 게임을 만들면 인공 지능 NPC가 그 세계에서 살아가며 알아서 꾸밀 것이다. 마치 실제 있는 세상과도 같이 말이다. 그런 세상에 앞으로 인간이 살아갈 것이다.

 

 

 

6. 대상

 

새로운 가치 생산 시스템을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과 마찰을 빚지 않고 정착시키려면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대상은 보통 정부가 공공 일자리를 공급하거나 평생 교육원 등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추후 퀘스트 제도가 자리잡으면 민간에 이양해도 괜찮을 것이다. 퀘스트 제도의 대상은 청년, 은둔형 외톨이, 경력 단절자, 가출 청소년, 성매도자, 가정주부, 은퇴 노년 등이 있다. 인공 지능 발전에 따른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므로 가치 생산 중에 있는 이들도 참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청년. 청년은 20~30대 인간을 말한다. 개인주의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세대는 집단주의 관념을 교육받고 개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바람에 불합리한 삶을 살았다. 교육 방식은 학습과 일과 결혼을 강제하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을 채택하면서 실제 삶은 학습과 일과 결혼을 자유롭게 하게 놔두니 개인주의적인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집단주의적인 수동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습과 일과 결혼은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전에 왜 살아야 하는지도 스스로 정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체제는 자유로워졌는데 체제에 맞는 능동성을 갖지 못하니까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극단적인 저출산은 미성년 시기 이성애와 성을 죄악시하는 환경에서 자라나 그에 대한 가치가 폭락하여 이성관계와 성에 대한 능동성을 갖지 못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체제 적응 실패의 수많은 현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러한 적응 실패는 교육의 책임이고, 교육만의 책임이기보다는 사상과 철학의 책임이다. 저출산 현상에 대한 책임 소재로 불필요한 소요와 갈등을 빚기 보다는 교육 기관과 별개로 성년이 된 이들에게 능동성을 갖게 할 개인주의적인 학습이 가능한 제도가 필요한 상태다.

퀘스트 제도는 게임에서 만들어진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활용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몰라 방황하는 이들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용자는 게임 퀘스트를 통해 게임을 학습하여 능동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과 같이 퀘스트 제도를 통해 능동적으로 삶을 살 수 있도록 설계하면 된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행동 원리에 의해 충동적으로 퀘스트를 하면서 돈을 받고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린다. 레벨이 올라가면 고난도 퀘스트에 눈이 가게 된다. 그러면서 능동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고르고, 그것에 도전하기 위해 관련 교육 기관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받아 능력을 키워 고난도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나서 계속 퀘스트를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취업을 한다.

 

둘째,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는 집안에서 은둔하여 살아가는 인간을 말한다. 청년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기술이 발달하여 집안에 있어도 필요한 것을 대부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집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서울에만 약 13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사실상 청년과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가 심각해지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수동성에 의함과 질병에 의함과 기타 등등으로 나뉘는데, 수동성에 의함은 대부분 행동 원리를 활용한 제도가 있다면 사회 활동을 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보통 오랫동안 은둔한 인간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대부분 은둔형 외톨이는 게임을 했을 확률이 높으므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퀘스트 제도가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셋째, 경력 단절자. 경력 단절자는 일을 하다 특정한 사유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경력이 단절된 인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임신을 했을 때를 말하고 사회에 일찍 참여한 남성의 경우 군입대에도 해당하게 된다. 그 외에는 질병, 사고, 사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경력 단절자가 능력이 있다면 바라는 일을 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부분 단순한 일을 하게 된다.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에서 경력 단절자를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퀘스트 제도와 같이 새로운 제도에서 퀘스트를 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가출 청소년. 가출 청소년은 보통 집단 불화를 겪어 가출한 청소년을 말한다. 특히 가정 폭력의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가출한 청소년은 집안에 돌려보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가해자에게 돌려보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있다. 그것은 피해자를 가해자 손에 다시 되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잔혹한 짓이다. 따라서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거나 가출 청소년이 독립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그저 가정과 학교에 되돌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가출 청소년은 곧잘 비행에 빠지게 되는데, 그들이 그런 것은 그것 말고는 살 방법이 없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일만 해서는 성장할 수가 없다. 퀘스트 제도에서 퀘스트를 하면서 레벨을 올려 신뢰도를 쌓아 점점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해 능력을 쌓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섯째, 성매도자. 성매도자는 성을 파는 인간을 말한다. 성매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현재 낡은 왕정의 윤리에 의해 성매매가 불법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그것은 체제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법이다. 성매매는 노동매매와 같이 개인의 의사로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웬만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왕정의 윤리를 근거로 여성 성적 대상이나 여성 성 상품화가 잘못되었다 하는 일부의 주장은 주관적 가치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체제에 해로운 주장에 불과하다.

그것과 별개로 성매도를 하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목적이 있어 성매도를 한 것이 아니라면 성매도를 하면서 능력을 키운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단순한 일만 하게 된다. 그러면 성매도를 했을 때와 노력과 보람과 수익 차이에 의해 다시 성매도를 하게 된다. 퀘스트 제도는 성매도자가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일과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은퇴 노년. 은퇴 노년은 일반적인 은퇴 연령에 은퇴하여 살아가는 인간을 말한다. 그 중 금전적 여유가 없어 은퇴를 하더라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노년이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은퇴 후에도 일을 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노년은 고학력자가 많다. 그런 이들이 능력에 맞는 일을 하고 싶어도 보통 단순한 일만 하게 된다. 은퇴 전에 하던 일이나 비슷한 일을 하면 생산성이 높을 수 있으나 일을 오래하면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 임금체계에 의해 생산성에 비해 과한 임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고용하려 하는 이들이 많지가 않다. 더구나 유교적 가치관으로 연령차별이 있어 차별 받고 싶지 않은 이들이 고용하질 않아 노년의 재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새로 취업하는 사람의 나이가 많으면 기존에 있던 사람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기도 하고 있다. 한국은 연령대별 해야 할 일이 정해진 것마냥 살아가는데, 그것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연령차별을 근거로 한다. 게임의 퀘스트 제도는 연령, 성별, 지역, 학력 등을 보는 것이 아닌 퀘스트 클리어 가능 여부에 그에 따른 보상만 주어지므로 그런 차별이 없어 은퇴 노년이 능력에 맞는 일을 하기에 적합할 것이다.

 

일곱째, 경제 생산자. 경제 생산자는 경제에서 생산을 하는 인간을 말한다. 이미 생산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퀘스트 제도에서 공급되는 퀘스트를 할 이유가 적다. 그러나 인공 지능의 발전으로 언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수가 있다. 휴일에 간단한 퀘스트를 통해 경험치를 채워 레벨을 올려두면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더라도 퀘스트를 통해 다른 분야로의 전직도 가능할 것이다. 보통 인간의 자아는 자아 외가 예측한 습관대로 행동하려 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의 전직이 쉽지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한 충동을 통한다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전직이 가능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가치를 생산하지 않거나 못하는 인간은 일반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회적 신용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에 의해 충동적으로 게임 퀘스트를 완벽하게 하려고 하듯이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도 완벽하게 하려고 할 것이다. 한국 커뮤니티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다른 것은 비난 받아도 참지만 게임 못한다는 말은 참지 못한다고. 게임과 같은 제도에서 제공된 일은 그러한 인식으로 최선을 다할 가능성이 있다. 레벨 업 시스템을 통해 신용도를 올릴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레벨에 따라 중요도가 다른 퀘스트를 할 수 있게 한다면 신용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7. 부가 가치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다. 단적으로 돈이 많으면 인간이 행복해질 확률이 높다. 돈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구매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돈이 많으면 인간이 행복해질 확률이 높은 것은 매우 당연하다. 반면 돈이 없어도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인간은 돈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의 행복은 바라는 가치에 있지 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대부분 돈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좆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돈만 좇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것은 금욕에 의해 욕망이 갈기갈기 찢어져 진정 바라는 가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돈만 좇을 것이 아니라 바라는 대상을 좇을 것이다. 만약 디자인이 좋은 옷을 바란다면 돈이 아닌 옷을 바랄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바란다면 돈이 아닌 그 음식을 바랄 것이고, 좋은 집을 바란다면 돈이 아닌 그 집을 바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돈으로 다 구매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돈이란 수단이 아닌 실제 목적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돈만 좇는 것은 진정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일단 돈이라도 바라보자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가치 거래 수단이 아닌 실제 가치를 좇아야 한다.

돈이 있으면 인간이 바라는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부으면 사회 문제를 해결할 확률이 높아진다. 사회 문제나 저출산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도 돈을 부을수록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사회 문제는 체제 충돌에 의한 것이므로 돈을 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물을 계속 부으면 독에 물이 있을 수 있듯이 돈을 계속 부으면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그 효과에 눈이 멀어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돈만 붓는 것에 매달리면 안 된다. 재화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돈은 국내 총생산의 가치를 수로 환산한 것으로 생산을 늘리지 않고 화폐를 늘리면 돈의 가치가 낮아지게 될 뿐이다. 돈의 가치가 낮아진다 하더라도 화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세금을 늘려 재원을 충당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가치 생산도 마찬가지다. 돈을 많이 주면 가치 생산이 늘어날 수 있으나 마냥 돈을 많이 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가치 생산에 따른 보상은 시장 원리에 따라 지불되고, 생활이 어려울 경우 사회와 체제 구조 유지를 목적으로 복지 정책으로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돈 외의 부가 가치로 가치 생산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퀘스트 제도는 그것이 가능하다.

 

첫째, 경험치. 경험치를 얻어 캐릭터 레벨 업을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은 게임을 통해 학습되어 행동 원리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보상 외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부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둘째, 이력. 가치 생산이 이력에 남는다. 단순 노동의 가장 큰 결점은 이력이 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분명 사회를 위한 생산 활동을 한 것이 분명한데 기업에서 정식으로 일하는 이들과 달리 세세한 이력이 남기가 어렵다. 그러나 퀘스트 제도에서는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이력이 남기 때문에 사회적 기여를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도 알 수 있어 여러모로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력에 부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셋째, 콜라보레이션. [Collaboration은 공동 작업을 뜻한다.] 모바일 게임과 햄버거 프렌차이즈가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모바일 게임을 본 딴 햄버거와 해당 게임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자, 모바일 게임 이용자가 햄버거를 구매하는 것에 의해 햄버거 프렌차이즈 매출이 약 40% 늘어났다고 한다. 매출 상승이 온전히 콜라보레이션에 의함이 아닐 수 있지만,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것을 참고하여 특정 기피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특정 모바일 게임의 한정 아이템이나 쿠폰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부가 가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치 생산에 있어 가치 생산자에게 제공하는 임금 외 부가 가치는 부식이나 휴가 정도였다. 그러나 현대 국가와 같이 기본적인 복지가 보장되는 체제에서 개인의 의사로 가치 생산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그 외의 부가 가치가 필요하다.

 

 

 

8. 퀘스트

 

퀘스트 제도는 새로운 가치 생산 시스템으로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을 대상을 기본으로 한다. 정부가 제도를 관리하며 제도가 활성화되면 민간에 이양할 수도 있다. 공공 일자리나 평생 교육원과 같은 기관을 정부가 관리해왔기 때문에 권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와 큰 차이가 없다. 단지 퀘스트 제도를 통해 일원화되어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끔 합리적이게 될 뿐이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는 연령, 성별, 지역, 학력, 혈연 등과 관계 없이 신원이 증명된 사람이라면 레벨과 자격에 따라 도전 유무가 결정된다. 레벨이 낮을 때에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여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려 신용도를 쌓는다. 레벨이 올라 고난도 퀘스트를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면 퀘스트마다 필요한 자격을 얻기 위해 인터넷이나 교육 기관에서 학습을 한다.

 

첫째, 초급 퀘스트. 신원이 증명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다. 공공 일자리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경험치와 이력 등의 부가 가치가 있다는 점과 하나의 제도로 일원화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했던 이들이기에 초급 퀘스트를 성실하게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로 최대한 성실하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초급 퀘스트는 대량으로 모집하여 소수가 그만두더라도 괜찮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청소 현장, 공사 현장, 농사 현장 유통 현장, 배송 인터넷 자료 모집, 여론 조사, 사무 작업, 보조 출연자, 전단지 등등 단순하면서도 그만 둬도 큰 문제가 적은 종류의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을 퀘스트로 만들어 공급한다.

각각의 퀘스트는 세세하게 필요 레벨이 달라야 한다. 게임과 같이 쉬운 퀘스트에서 어려운 퀘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초반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성장할 수 있다. 공부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면서 싫어도 강제로 하게 하자 지식에 대한 호기심에 관련된 행동 원리가 깨지고 공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행동 원리가 자리잡은 것과 같이, 만약 어려운 퀘스트로 시작한다면 퀘스트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어 행동 원리가 깨질 수 있다.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다.

레벨에 따라 신용도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를 하여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성실하게 퀘스트를 수행했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어느 정도 쌓인 인간에게는 초급 퀘스트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신용도가 필요한 퀘스트가 공급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단순한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반면 마땅히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없어 따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공부해야 한다. 그렇기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성장할 수가 없다. 집단주의 관념에 의해 수동성을 가지게 된 다수의 인간은 뚜렷한 목적이 없어 성장이 힘든 상황이다. 퀘스트 제도는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통해 성장의 충동을 느끼게 하여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중급 퀘스트. 초급 퀘스트로 신용도를 쌓고 나서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다. 초급 퀘스트와 다른 점은 적정의 레벨을 통한 신용도나 일정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생동성, 요양 보조, 간병인, 가사 도우미, 여행 및 관광 도우미, 고급 문서 작업, 번역, 창작, 프로그래밍, 인공 지능 가치 생산 등등 어느 정도 신용도가 필요하면서 다소 복잡하지만 체계적인 자격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독학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인공 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공 지능을 활용한 가치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각각의 능력 획득보다 인공 지능 활용법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러면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도 가치 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공 지능의 발전을 통해 가치 생산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개중에는 채팅 인공 지능을 학습시켜 온라인 게임의 NPC로 만들어 게임에 공급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은 반드시 게임 회사가 하지 않아도 되기에 개개인에게 퀘스트를 공급하여 만들게 할 수 있다. 그걸 작업한 인간은 NPC의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고급 퀘스트. 초중급 퀘스트를 통해 신용도를 쌓고 교육 기관에서 자격을 획득하면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다. 이미 자격이 있을 경우에는 프리패스다. 고급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아 창업을 하거나 우수한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어려운 퀘스트로 설정해야 한다. 보통 이런 것은 폐쇄적인 도제화가 되어 일반인들이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분야의 기술이나 능력을 얻을 때 효율적일 수 있다. 전통 공예, 무형 문화재, 조향사, 영화 및 애니메이션 제작, 건설기계, 인테리어 등등 체계적으로 배워 자격을 획득해야 하는 일에 해당되게 된다. 본래 이러한 직종은 폐쇄적이어서 시장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퀘스트 제도를 통해 유연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무형 문화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퀘스트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가 생기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는 당연히 성공과 실패가 있다. 퀘스트 도전자가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퀘스트 성패 유무는 본래 퀘스트 공급자가 결정할 문제이나 정부가 관리하는 동안에는 정부 관계자가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시간 대비 노동 생산성이 낮은 편에 속한다. 그것은 가치의 개념을 생산성이 아닌 시간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근로라는 단어가 높은 생산성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는 풍조를 나타낸다. 퀘스트 제도는 시간과 무관하게 성과 위주로 성패를 결정하는 퀘스트가 많을 것이므로 그러한 풍조를 바꾸는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은 사교육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임을 이해해야 한다. 돈을 부으면 우수한 학습이 가능하여 우수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나 개인의 의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효율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인터넷이 발전하여 지식을 접하기가 쉬워진 요즘은 돈을 부은 수동적 학습과 돈을 붓지 않는 능동적 학습 중에 후자가 더 성과가 나올 수 있을 정도다. 퀘스트 제도에서 자발적 가치 생산 및 학습을 하게 된다면 사교육비를 절감하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현재 대부분의 사교육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학습이 아닌 대학에 잘 가서 취업을 잘하기 위한 학습이므로 우수한 가치 생산 및 학습 시스템이 있다면 원치 않는 학문을 암기하게 하지 않을 수가 있다. 학문에 관심도 없으면서 지식만 달달 암기하게 하는 것은 학대와도 같다고 본다.

지금 교육 정책이 문제 풀이 말고 제대로 가르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미성년 시기에 성장하지 못하여 미숙한 성년이 있다. 성년기가 늦어진 성년이 많은 상태다. 본래 학교에서 가르쳐야 했을 것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불합리하게 배우면서 불합리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 일부는 사회 활동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미성년의 성장을 위해 관련 정책과 학교의 개혁이 필요하나 성년의 성장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퀘스트 제도를 통해 캐릭터가 레벨 업을 하며 성장하듯 개인도 레벨 업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퀘스트 제도의 효용 중 하나는 개인주의 체제에서 정부가 바라는 방향으로 개인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이해해야 한다. 가령 시골에 청년이 부족하다 말하고 지원한다고 한들 대부분의 청년은 관심이 없다. 그러나 퀘스트를 통해 자격과 보상이 구체적이라면 행동 원리에 의해 실제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려 하는 태도가 나타날 수도 있다. 3년간 특정 작물을 생산했을 경우 퀘스트 보상으로 농지를 준다고 한다면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농사에는 관심이 있는 이들이 지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애 퀘스트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평소에는 연애하고 싶다 말하면서도 미성년 시기에 이성애와 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환경에서 자라나 잘못된 관념이 자리잡은 터라 실제로는 행동하지 않는다. 집단주의적인 수동성이 자리잡아 현재 20대 연애율이 처참한 상황이다. 그런 이들에게 퀘스트라는 변명거리를 줘야만 직접 행동하게 할 수도 있다. 퀘스트라면 어쩔 수 없지, 라면서 말이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애는 사적이기 때문에 이런 퀘스트는 어느 정도 제도가 자리잡고 나서 해야 할 것이다.

 

퀘스트 제도의 퀘스트는 기본적으로 개인 퀘스트에 해당하나 집단 퀘스트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다 하더라도 퀘스트 제도가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가치 생산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집단주의적인 폐쇄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집단 퀘스트는 게임에서 파티 퀘스트를 할 때 파티 구성원이 누구든 각각 제 역할만 하면 신경 쓰지 않듯이, 개방적인 태도로 집단 구성원이 누구든 각각 제 역할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조별 과제를 보면 쉽지는 않겠지만 조별 과제와 다르게 집단 퀘스트는 일정 이상 레벨을 올린 이들에 한하여 공급될 것이므로 신용도가 있는 이들이 모였기에 다소 다를 것이다.

 

창의적인 가치 생산이 필요한 시기다. 보편적인 가치는 인공 지능이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공 지능을 관리하며 인공 지능이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창작물은 플롯이 지나치게 비슷한 것이 많다. 성공한 플롯 몇 가지를 돌려쓰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영화는 물론이고 다른 창작물도 비슷하다. 비슷한 가치, 비슷한 내용. 단지 설정만 조금 다를 뿐이다. 하나의 플롯을 연기, 의학, 게임 등과 같이 껍데기만 바꿔 돌려쓰는 일이 많다. 그래서 창작물의 스토리까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 정도다. 이제 새로운 것을 도전해볼 때가 되었다. 기존에 있던 사람이 새로운 것을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간이 돌출되어야 한다. 새로운 인간이 돌출되려면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에서 벗어난 방식이 필요하다. 퀘스트 제도가 퀘스트를 통해 새로운 인간을 출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9. 제도

 

한국 정책과 제도가 집단주의 관념으로 만들어져 금욕주의를 근거로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거나 이타주의를 근거로 개인의 희생을 전제하여 설계된 것이 많아 개인주의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많다. 정치적으로는 일방적인 지역이나 성별 희생 등이 있고 경제적으로는 낙수 효과나 소득 주도 성장 등이 있고 문화적으로는 성적 또는 게임 문화 억압 등이 있다. 특정 지역이나 성별을 위해 다른 지역이나 성별이 희생을 하라거나 기업이나 노동자를 위해 개인이 희생을 하라거나 특정인의 성이나 문화에 관련된 도덕관념을 위해 개인이 희생을 하라거나 하는 것이 일반화된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모든 개인은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거부한다. 과거 왕정 시대에는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통해 강자가 이익을 취하고 약자가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민주정 시대에는 욕망주의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통해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이익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게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집단주의 관념을 가지고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하는 바람에 금욕주의와 이타주의로 서로의 욕망을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하고, 집단주의 관념에 따라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담합과 독과점이 발생하면서 체제의 원리가 깨져 불합리한 사회가 되면 될수록 사회가 붕괴하고 있다. 그런 붕괴를 보고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왕정의 가치와 비슷한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왕정의 체제와 비슷해지면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수록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정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서 다시 민주정 체제로 돌아가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다시 왕정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걸 계속 반복한다. 인간은 그렇게 진보하지 못한다.

인류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개인주의 관념을 가지고 합리적인 공정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정당한 이익을 추구하고 정당한 손해를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 가치는 상대적이기에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와 시장을 통해 가치가 매겨진다. 그렇게 합리적인 공정한 제도로 매겨진 가치로 정당한 이익과 손해를 받아드려야 한다. 존재는 절대적이기에 구조 유지는 강제력을 가진다.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로 먹고 자고 싸듯이 사회와 체제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계약을 통해 원치 않더라도 협조한다. 그것을 통해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욕망을 가지고 이기적이어야 되는 개인주의 체제인 사회가 된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우수하다. 정치가나 관료가 우수한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상가나 철학자가 아니다. 사상과 철학이 탐구를 멈추는 바람에 발전하지 못하여 우수한 이조차 가치와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온라인 게임 기획자는 온라인 게임의 성질상 그들이 우수하든 우수하지 않든 개인주의 체제에 대해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현실과 달리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개인의 의사에 맞춰 정책과 제도가 설계되어 있는 상태다. 온라인 게임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이 자발적으로 퀘스트와 몬스터 사냥을 하여 레벨을 올리는지에 대해 연구하면서 개인의 행동 원리를 학습했다. 그들은 그런 학습을 토대로 이용자가 게임에서만 쓰이는 가상의 재화에 억 단위의 돈을 쓰게 할 정도가 되었다. 그 정도로 그들은 개인주의 체제에 맞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 그들이 퀘스트 제도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게임 기획자를 얕볼 수 있는데, 특정 인간이 만능이 아님을 이해하고 각자의 전문성과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일거리에 해당하는 퀘스트와 자격 획득을 위한 교육 기관을 담당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일원화하여 체계적으로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

게임 기획자는 퀘스트와 교육 기관을 바탕으로 현실 퀘스트 제도를 설계한다. 퀘스트 보상을 고려해 경험치를 책정하고 레벨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지 현실이라는 점이 다르다.

현실 인간이 A퀘스트를 클리어한 후에 받는 돈과 경험치와 부가 가치는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가? 다음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한 레벨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현실 정책의 전문가와 가상 정책의 전문가가 모이면 개인의 의사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 기획자는 어떻게 해야 이용자가 개인의 의사로 게임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걸 바탕으로 퀘스트와 레벨 업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했다. 그럼 시스템 속에서 이용자는 성장할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고 더욱 게임을 이용하려 했다. 그러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돈을 지불해가면서 게임을 이용했던 것이다. 만약 그러한 시스템이 정교하지 못했다면 이용자는 돈을 지불하기는커녕 게임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와 같다. 퀘스트와 레벨 업 행동 원리를 통해 자발적으로 지속적 가치 생산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퀘스트 제도가 좀 더 쉬울 수도 있다. 현실 게임은 이용자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퀘스트 제도는 이용자에게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돈을 받으면서 하게 하는 것과 돈을 주면서 하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좀 더 쉬운 것인지는 명확할 것이다. 세심한 설계는 초기를 위주로 하면 될 것이다. 초기 관문을 넘으면 관성에 따라 퀘스트를 계속 하려고 할 수 있다.

퀘스트 제도의 구조에 관해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이용자 캐릭터의 레벨뿐만 아니라 성공한 퀘스트의 종류에 따라 특성 능력치를 만들고 그런 능력치에 따라 추천 퀘스트를 정리해준다거나 지도 어플리케이션과 연동하여 퀘스트를 하기 위한 길을 안내한다거나 하는 기능들이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 체제에서 인간을 행동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 이용자가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원리가 유사하여 게임 시스템을 활용하면 효과적으로 이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초기에는 퀘스트 제도가 실제 운영이 가능한지 실험을 해봐야 한다. 게임으로 치면 게임 베타 테스트다. 우수한 정부 관계자와 게임 기획자와 일반 베타 테스터와 선별한 일과 교육 기관 등을 골라 몇 차례 실험을 해봐야 한다. 행동 원리 측면에서 가치 생산과 게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되려 가치 생산은 돈을 받고 게임은 돈을 내므로 잘 설계하면 가치 생산이 더 수월할 수 있다.

가치 생산은 게임보다 피곤할 수 있는데 그것은 초기에 잘 설계하면 된다. 초기에 가치 생산을 즐거운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쉽고 즐거운 퀘스트를 하게 하여 개인이 익숙해지면 점점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를 하게 하면 된다. 그렇게 개인이 익숙해지면 알아서 레벨과 랭킹을 올리기 위해 퀘스트를 하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가치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가치 생산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을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 게임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일부 이용자가 명예욕, 인정욕, 소유욕 등을 충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며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려 랭킹을 올리려 하는 것을 고려하면, 국가라는 큰 사회에서 일부 인간이 랭킹을 올리기 위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예측하기가 약간 어렵다. 관심 받고 싶어하는 인간이 랭킹을 올리기 위해 과도한 퀘스트 수행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과로사의 위험이 있으므로 그걸 고려한 퀘스트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퀘스트 제도는 많은 국가가 흥미롭게 바라볼 것이다. 진지하게 볼 수도 있고 비웃을 수도 있다. 게임을 좋아하고 잘하는 국가답다며 조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성과가 나타나면 인식이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가능함에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바꾸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던 귀족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던 이들이 게임과 같이 활동하며 가치 생산하고, 게임과 같이 퀘스트에 도전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을 한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가치 생산과 학습이 가능할 것인가? 이제 인간의 관념과 그에 따른 행동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문제의 본질을 보고 문제 해결도 할 수 있다.

 

 

 

10. 가치 생산

 

가치 생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가치 생산보다 인간관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유교적 가치관을 근거로 한 인간관계가 매우 피곤하기 때문이다. 체제는 개인주의가 되었는데 관념은 아직 집단주의에 머물러 있어 권위주의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가치 생산이 아니더라도 피곤한 일이다. 그것이 왕정의 윤리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도덕관념으로 인식하고 더욱 뻔뻔하게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장유유서에 의해 연상과 연하의 관계는 언어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언어 습관은 일상적이기에 그런 부조리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데, 평등한 사회에서 특정 성질을 가진 인간에게 무조건 존대어를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평등한 것이다. 본래는 사이 좋게 지내야 하는 가족과 친척 사이에서도 그러한 불평등한 질서에 의해 갈등이 발생하여 고향에 가기 싫어하는 인간이 늘어나고 있다. 집단주의였던 과거에는 연하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런 불평등한 질서가 유지되었으나 개인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현재는 누구든 그런 일방적인 손해를 감수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존대어를 쓰나 가능하면 상호 반말이 가능하도록 하려고 하고 있다. 익명으로 반말을 써보고 있는데 그것을 무례하다 지적하는 인간은 없었다. 애초에 반말이 무례한 것이 아니다. 반말을 쓰는 상대가 친분이 있거나 동갑이나 연하에게만 그러다 보니 무례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여 무례하게 반말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을 뿐이지 정중하게 반말을 쓰면 마찰이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현재는 익명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현재 가치 생산은 대등하지 못한 인간관계 속에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여 가치 생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지 가치 생산만 하면 그렇게 불행하다 느끼지 않는다. 일과 인간관계 중에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 받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일만 하는 것이라면 크게 불만을 느끼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물론 가치 생산만을 봐도 그것이 온전히 즐거운 일이라 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으면 그것을 즐기기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취미를 일로 하게 되면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걸 즐기는 이가 있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가치 생산으로 얻은 불행은 행복의 원리를 이해하면 행복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은 불균형을 균형적으로 만들 때 느끼는 만족감에 해당한다. 육체는 영양분, 체내 온도, 수면 상태 등으로 불균형한 상태에서 다양한 욕구가 나타나고, 식사를 하고 옷을 입고 잠을 자면서 균형적인 상태가 되는 것으로 행복을 느낀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기 때문에 일정 이상 부유하고 나면 행복도가 조금 올라 행복도 그래프가 완만하게 된다. 육체는 불균형하여 불행한 상태기 때문에 삶 자체가 불행과 행복을 반복하기 때문에 부유하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불행과 행복의 낙차가 낮기 때문에 행복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게 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균형이 강해질수록 균형적이게 될 때 느끼는 만족도가 높아 더욱 행복해진다. 부유한 이는 일정 이상 행복도가 높아지지 않자 인위적으로 육체를 균형적으로 만들어 행복해지고자 한다. 바로 마약이다.

마약은 일반적으로 육체를 불균형하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양분을 필요로 하고 체온을 유지하고 수면을 취해야 하는 일반적인 상태의 육체가 기본적으로 불균형하고, 마약은 그것을 잊게 하여 균형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본래는 불균형한 상태인 육체를 식사나 수면 등을 통해 균형적으로 만들 때 만족감을 통해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된 육체에 마약을 통해 강제로 인위적인 균형을 만들어 과도하게 높은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균형적일 때 분비되는 온갖 쾌락 물질을 인위적으로 분비하게 만든다. 마약으로 균형적이게 되었다는 착각을 통해 과도하게 높은 행복을 느끼고 나면 일상적인 육체가 매우 불균형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다시 마약을 통해 인위적인 균형을 이뤄 만족감을 통해 행복을 느끼게 하려고 하게 된다.

마약에는 관문 이론이 있다. 관문 이론은 약한 약물을 이용하면 강한 약물을 찾게 된다는 이론이다. 관문 이론은 술과 담배를 고려하면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는다. 육체가 불균형한 상태에서 솔과 담배로 일시적 균형을 이루고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불균형한 상태가 되면 술과 담배를 통해 다시 일시적 균형을 통해 행복을 느끼려 하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중독이다.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중독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바라는 것이 있을 때가 결핍되어 불균형한 상태가 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 결핍이 해소되어 균형적인 상태가 된다.

보통 이런 것은 불행과 행복이 순환되기 때문에 더 강한 쾌락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술과 담배에서 관문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더 강한 쾌락을 요구하는 것은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아닌 쾌락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더 큰 쾌락을 얻고 싶다는 욕망으로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된다. 관문 이론은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아닌 욕망으로 성립되게 된다. 흔히 대마는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낮다는 이유로 관문 이론과 무관하다 말하는데, 관문 이론은 욕망으로 성립되므로 대마 또한 관문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 술과 담배와 대마의 차이는 인식의 차이다. 술과 담배는 마약류와 별개의 기호품으로 인식되어 더 강한 쾌락을 바라지 않지만, 대마는 마약류로 인식되어 더 강한 쾌락을 주는 마약을 얻고자 하는 충동이 생기게 된다. 대마가 기호품으로 자리잡는다면 관문 이론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러기가 쉽지 않다. 대마가 일반화된 국가에서조차 관문 이론이 성립되는 사례들이 늘어나는데, 그렇지 않는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주의 체제인 국가에서는 욕망이 긍정되므로 마약에 관한 욕망도 긍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약은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물질이기에 강제력을 가지고 금지될 수밖에 없다. 예외적으로 구조 붕괴와 무관한 질병에 의한 고통이나 시한부 인생에 한에서는 허용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마약과 같이 사회와 체제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물질이 아님에도 금지되는 것은 대부분 낡은 왕정의 가치에 의한 것으로 반체제적인 불합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행복의 원리상 인간은 불행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따라서 영원한 행복은 영원한 불행이기도 하다.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결핍이 발생하여 불균형해져 불행해지고 바라는 것을 이룰 때 결핍이 해소되어 균형을 이뤄 행복해진다. 그 말은 곧 바라는 것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한다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큰 목표를 세운 사람은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세상의 존재 이유를 밝히고 싶다는 것을 바란다면 거의 영원히 불행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각오했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행이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불행을 겪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가치 생산이다. 어차피 불행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가치 생산을 통해 불행해지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불균형하여 불행한 상황을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육체든 정신이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에 개개인에 맞춘 적절한 불행을 통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가치 생산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들이 가치 생산을 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행복을 얻기 위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설령 부유하여 가치 생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어차피 불행해질 것이라면 가치 생산으로 불행해지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나 여러모로 이롭다. 퀘스트 제도는 다양한 가치 생산 방법을 제공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가치를 생산하면서 불행을 느끼고, 그 불행을 바탕으로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11. 레벨 업

 

오늘날 인문 계열은 집단주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종교, 사회주의, PC주의에 관한 주장뿐만 아니라 노인 집단 자살이나 탈성장 공산주의나 인공 지능 발전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식상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노인의 집단 자살은 왕정의 윤리인 이타주의를 근거로 하여 집단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단순한 전체주의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탈성장 공산주의는 낡은 관념에 의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낡은 관념에 맞는 낡은 체제로 돌아가자는 수백 년 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주장에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인공 지능 발전을 멈추자는 가치를 진리로 여기고 인문 계열이 자연 계열에 맞춰 발전하기 보다는 자연 계열이 인문 계열에 맞춰 느리게 가라는 것과 다르지가 않다. 하나 같이 수준이 낮다. 자아 탐구도 끝나지 않고서 과거의 사상가나 철학자가 한 말을 달달 암기하여 만들어진 가치관을 바탕으로 과거의 사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주장만 하고 있다. 이러니까 자연 계열이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킨 것이다. 이제 인문도 레벨 업을 해야 한다.

인문 계열은 자유롭게 마음껏 발전해야 한다. 자연 계열도 자유롭게 마음껏 발전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발전하며 보완해야 한다.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인문 계열은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 윤리를 말하며 자연 계열의 발전 중 하나인 인공 지능에 그것을 강요하며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인문 계열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기술 발전에 맞춰 인문 계열이 따라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 계열은 기원전 4대 원소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부정해버린 뒤 참고 자료로 나두었다. 반면 인문 계열은 기원전 유교의 인의예지와 기독교의 사랑과 불교의 깨달음과 같은 과거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 것은 대상에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고전 인문학일 뿐이다. 인의예지든 사랑이든 깨달음이든 개인주의 체제에서는 그것을 강요하면 체제에 해롭다. 학교 폭력을 당한 미성년에게 화해를 암묵적으로 강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가 절대적인 가치라 여겼기 때문이다. 가치는 대상이 아닌 관계에 있으므로 그런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기에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개인주의 체제는 자유주의 체제의 체제 구조 유지를 위하여 그러한 강요를 할 수 없도록 강제력이 발생하게 된다. 대상에 가치는 없고 공통된 가치만 있다.

지구 환경적으로 볼 때 채식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일부 채식주의자가 그것을 절대적 가치로 인식하고 타인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지 채식 자체는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식물을 생산할 때도 자연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적게 먹는 소식일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대식을 하여 과체중이 된 이들이 소식을 하여 저체중이 된 이들에게 정상이 아니라며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대상에 가치가 없기에 과체중과 저체중 중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공통 가치는 있다. 지구 환경 보호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소식하여 마르게 된 이들이 바람직하다 여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개인주의 체제가 자연 계열의 발전으로 힘을 갖게 된 다양한 이들이 기독교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권리 주장을 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각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관념과 인식과 가치 등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정 시대의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권리를 갖게 되면 그 권리를 왕정과 같은 억압과 희생 강요로 활용하게 된다. 현재 불필요한 사회 갈등은 본인의 가치를 절대적이라 여기며 본인의 가치를 강요하며 타인의 가치를 억압하는 희생 강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강자가 약자를 희생시켰다면 평등해진 현재 약자에 속했던 이들이 힘을 얻으며 그 외의 이들을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의 대표가 PC주의다. 왕정의 가치가 남아 개인의 희생시키려 하는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인이 권리를 가지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민주주의에 맞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퀘스트 제도는 왕정의 가치와 함께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과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실제 실행되더라도 난항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가치 생산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 생산 시스템을 보완하는 형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적어 최초의 거부감에서 벗어나면 안정적으로 정착할 것이라 확신한다.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묻겠다. 한국의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끔 개인의 행동 원리를 근거로 하여 자발적 가치 생산과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인공 지능 시대에 맞는 노동 유연화가 가능한 제도가 따로 있는가? 그것이 없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해봐야 한다.

한국이 수십 년 후 가난한 국가보다도 더 가난하게 살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체제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전망이다. 만약 가난한 국가가 성장한다면 반드시 관념과 체제 충돌로 혼란을 겪으면서 현재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겪은 사회 문제로 정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전망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좋지 못하다.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임의의 급을 나누고 급이 맞지 않는 인간의 의견을 듣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는 개인주의 체제에 맞게 그런 차별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역할로 구분하여 역할이 다른 전문가의 전문성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면서 각각의 역할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특히 인문 계열은 체제와 가치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조선시대 경제학자가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듯이 체제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왕정의 가치를 근거로 한 주장을 하면서 체제를 해치는 것을 자동차로 비유하면 자동차 바퀴를 때서 마차 바퀴를 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본래 이것은 인문 계열 중에 사상과 철학의 책임이므로 그 외는 크게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단지 앞으로 변하길 바랄 뿐이다.

 

 

 

2023 3 31

한국에서

사상가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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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주석서를 보고 있어요. 헌법은 법 질서의 근간이기에 보통은 보수적이게 되는데, 한국은 집단주의 관념이 많이 남아서 개인주의 체제의 근간이 되는 헌법이 진보적일 때가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헌법에도 평등에 대한 인식이나 양심의 자유가 있다고 말한 부분은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아서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왕정의 가치에 영향을 받은 상태서 만든 헌법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이런 부분은 가치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면서 민주정에 맞는 가치를 바탕으로 개헌해야 할 사안이겠지요.

외교 관련 사상을 하고 있어요. 사회와 복지와 국가와 외교는 영역이 다르기에 국가와 외교를 쓰고 나면 사회와 복지가 한층 더 발전할 것 같습니다. 아마 6월 말에 사회와 복지를 갱신하고 12월 전에 국가와 외교를 쓸 거 같습니다. 그걸 통해 사회와 복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퀘스트 제도도 상황에 따라 주기적 갱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종 사회 문제 관련 글을 쓸 것인데, 세상에 사회 문제는 넘치고 넘치기 때문에 주제 걱정은 없네요.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정말 싫습니다. 화가 나서 욕을 참을 수가 없을 정도. 지금까지 비점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는데 이제 못 참겠어요. 정말 짜증나네. 사람을 묶어놓고서 머리에 물을 떨어트리면 아프지는 않는데 신경이 거기에 쏠리면서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하지요. 그런 느낌입니다. 고문 당하는 기분이에요. 개인의 희생을 윤리로 만들어서 희생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게 정말 역겨워. 전체주의의 근간인 이타주의가 정말 쓰레기 같은 사상입니다. 어떻게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만든 것을 절대적으로 옳다 여기고 있었을까요? 정말 무섭습니다.

현재 환경이 매우 좋지 못하여 스트레스로 욕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거 같을 정도로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기 때문에 이사를 가려 하고 있어요. 며칠 계속 식은땀이 나네요. 돈이 없어서 갈 곳이 마땅치는 않은데 일단 술 담배를 하지 않아 금연 구역을 가고 싶네요. 그런데 그런 구역을 지정한 곳이 많지 않아서 금연 구역이라 할 수 있는 학교와 공원 근처를 알아보고 있어요. 아마 사상하기 좋은 곳으로 이사가면 사상하는 속도가 늘겠죠.

과거 사상가들이 사상을 인정 받기 위해 이리 저리 떠돌아다닌 이유를 알 거 같아요. 아아, 백 년 뒤에 태어났으면 괜찮았을까 백 년 뒤까지 얼어버리면 괜찮을까 백 년 뒤에 인류가 남아 있는 걸까 어느 바닥까지 떨어지는 거지.

 

블로그: tokkibegae.blogspot.com

계좌: 478-21-0193-861 국민은행 정승훈

메일: tokkibegae@gmail.com

 

의견은 메일로 받습니다. 가끔 볼 예정..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누구든 사상에 가치가 있다 여겨지면 후원 부탁 드립니다. 사상 관련 일도 찾습니다. SNS를 할까 고민은 하는 중. 만약 하게 되면 실시간으로 사회 사건에 대해 짧게 의견을 내게 되겠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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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생각했던 부분들이 겹쳐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권력과 차별에서 자유로운 고성능 Ai가 관리하는 시스템 속에서 개개인이 퀘스트의 수행능력을 향상 시키고 발전해나감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드높이는 삶, 그런 사회를 원하지만 기득권은 어떻게든 차등을 나누고 삶에 여러 비용을 부과함으로서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바라는 미래를 맞이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사회가 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해야 할 가치에도 탐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면, 개개인의 생존을 위해서도 더 나은 질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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